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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전뉴스

last modified: 2015-08-31 12:58:21 by Contributors

Contents

1. 5공 시절 언론 장악의 상징
2. 대한민국 인디밴드 밤섬해적단의 노래


동전을 소재 삼아 집중 취재한 뉴스가 아니다!
땡전은 본래 동전이나 아주 적은 액수의 돈을 낮잡아 부르는 단어이다. 엄연히 국어사전에도 실려 있다.

1. 5공 시절 언론 장악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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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인물은 박종세 아나운서. 참고로 1961년 5.16 군사정변 방송도 박종세 아나운서가 했다.

전두환 대통령 재임 당시, 뉴스 시보를 알리는 땡 소리와 함께 맨 먼저 전두환 대통령의 근황부터 소개하고 그 다음 다른 기사를 내보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당시 대한민국언론들이 얼마나 권력에 순종하였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 공산당, 중국 국가주석, 중공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선전하는 중국 중앙 텔레비전 수준의 언론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불공정 보도를 했던 대한민국 언론사의 흑역사 중 하나다.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지 불과 30년도 안 되었다. 그만큼 대한민국도 스페인처럼 독재 정권에 시달렸다는 증거이다.

위 이미지의 내용을 방송한 TBC는 이후 전두환 정권이 진행한 언론통폐합으로 KBS에 강제적으로 매각되어 KBS 2TV, 2FM, 3라디오가 된다.

"한국 언론사의 수치이자 흑역사." 이 덕분에 명목상으로는 공영방송이던 KBS와 MBC는 5공 때엔 실질적으로는 국영방송의 색채를 띠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특히 보도 프로그램을 본다면) 사실상 국영방송이긴 했다. 어차피 유신 체제, 군부독재였으니까.

이름의 유래는 제5공화국 당시 방송국(언론통폐합 이후에는 KBSMBC 뿐이지만)이 거의 매일 동시에 무슨 일이 있던 필수적으로 9시 종이 땡~울리자마자 "두환 대통령은…"또는 "오늘 두환 대통령…"으로 시작하는 뉴스를 내보냈기 때문에(본뉴스 시작시에는 앵커의 인사말 후) 땡전뉴스라 불린다. 또한 시보 후[1]에 주요뉴스 배경음이 나왔기 때문에 "뚜뚜전 뉴스"라고 하기도 했다. MBC는 그럼 뭐가 되는거지? 당시 양 방송사의 땡전뉴스 경쟁이 심해서 KBS에서는 대통령 영상만 취급하는 전용 편집실을 두고, 뉴스 편집 데스크와 청와대 담당 기자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계속 땡전 뉴스를 보도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경쟁 방송사인 MBC도 땡전 뉴스 전용 편집실을 만들게 되었다.한편, 어느 날 대통령 동정 영상이 9시가 되도록 도착하지 않자, 결국 대통령 소식을 9시 뉴스 첫번째 소식에 담지 못하고 겨우 두번째 소식에 담게 되었는데, 중대한 방송사고로 처리되어 당시 관련 기자는 3개월 감봉과 청와대 출입이 교체되는 중징계를 받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2]

심지어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 있었던 1983년 9월 1일자, 소련군이 자국 비행기를 격추시켜 250여명이 사망한 중대한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KBS 스 9, MBC 뉴스데스크의 시작도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과 "또한 이순자 여사는"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전두환이 자칭하던 호는 일해(一海)였으나, 항간에서는 전두환의 호가 오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할 정도.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의 소식 뒤엔 항상 "또한 이순자 여사는..." 과 같이 또한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영부인 이순자의 소식을 전했기 때문에 당시 이순자의 호가 또한이라는 농담도 돌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그 당시에는 전두환과 이순자를 9시 탤런트라 비꼬아서 불렀다고 한다. 땡전뉴스가 나왔던 당시 대중가요로 인기있던 노래 중에 가수 이선희의 J에게가 유행이었는데 데모 군중들은 "Jeon[3]~ 아홉시 뉴스에~"로 시작하는 노래마저 불렀을 정도. 그리고 오후 9시부터 9시 10분까지의 전국 수도 사용량이 최고로 집계되었다고 하는 소문이 있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9시 뉴스 초반은 볼 필요가 없으니 이때 주부들이 설거지를 시작하기 때문이라나.

땡전 뉴스를 직접 보고 싶은 사람들은 아래 충격과 공포의 동영상을 감상해보자. MBC에서 제공되는 20년 뉴스 보기에서 1987년 2월-1988년 2월 뉴스데스크 자료를 참고해도 좋다. 단, 전반적으로 땡전뉴스가 나오지 않는 주말뉴스는 권장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 전두환이라지만 주말에도 자신의 근황을 맨 앞에 소개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관련 다큐멘터리다. 초반만 봐도 충격과 공포 북한 방송 특유의 표현과 억양만 없지 너무 비슷하잖아.. 47초에 나오는 영상을 보고 누군가가 생각이 났다면... 참고로 2분 27초 쯤에 저 위의 캡처화면도 등장한다. KBS의 NHK표절은 덤이다



1985년 뉴스데스크의 두가지 영상. 여기는 시보음이 "뚜 뚜 삐~"가 아니란 점에 유의. 하지만 내용은 영락없는 땡전뉴스다.


시보장면이 나오지 않는 1982년 뉴스데스크의 영상. 시보장면이 없지만 이 역시도 땡전뉴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다 당시에 나온 제품광고까지 포함된 영상.아이고 편해라 현대자동차, 동아제약, 삼양라면이 익숙하다 다만 뒷부분에도 설명되듯이 잠깐(...) 땡전뉴스가 잘 편성되지 않았던 기간이라서 그런지 민생관련 뉴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1982년 KBS 9 뉴스 영상.


그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아침뉴스에서도 땡전뉴스가 나왔다. 1982년 MBC 뉴스쇼 영상.


심지어 작은 규모의 뉴스에서도 땡전뉴스는 나왔다. 1986년 MBC 생활뉴스 영상. 이 영상에 나오는 정구호 청와대 대변인이 이때 이후 땡전뉴스를 주도했던 KBS 사장으로 임명 되었다는게 더 흠좀무

라디오에서도 땡전뉴스는 나왔다. 1984년 MBC 라디오 녹음.

실제로 전두환은 겉으로 보이는 정치적 억압의 정도는 박정희 시절보다 크게 완화하면서[4] 자신의 프로파간다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7년간의 독재 체제를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했는데,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허문도를 공보비서관에 임명하여 정책 홍보에 매우 요긴하게 써먹었고 자신의 해외 순방 때에도 몇 시간이나 방송 분량을 할양하여 생방송을 하게 하는 등 언론에 상당한 압력을 행사하였다.[5]

특히 각 방송국들은 전두환의 해외 순방 비디오를 개인 소장용으로 따라 만들어 준다던지 전두환이 애청했던 '수사반장' 등의 드라마 녹화 테이프를 손수 조공해 갖다 바치는 등의 행태를 보여, 이 시기 언론이 얼마나 권력에 굴종적인지를 보여 주었다. 일명 각하만을 위한 다시 보기 서비스. 더 알고 싶은 사람은 KBS 미디어 포커스가 6월 항쟁 20주년 특집으로 만든 전두환 정권, 그리고 방송을 참조. 그리고 방송사에서 그것도 모자랐는지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아예 정권 홍보성 드라마를 15번에 걸쳐서 방영했으며[6] 이는 KBS의 방만한 경영태도와 가뜩이나 심각한 양 방송사의 편파보도에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을 분노시켜 결국 호남 농촌지방을 중심으로 조금씩 퍼져나가던 KBS 시청료 거부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크나큰 기여를 하게 된다.

결국 1984년 1255억원으로 파크를 찍었던 KBS 시청료 수입은 1988년 789억원으로 급감했으며 이렇게 되자 방송사를 달래기 위해 광고를 적극 장려했는데 때마침 타이밍이 맞아 이뤄진 올림픽, 3저호황의 영향으로 광고수요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1980년대 후반 KBS 재원구조는 상업방송이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급속히 상업화되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TV 수신료가 2500원으로 동결되는데 크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시민운동가 출신 서영훈 사장이 부임해 한동안은 방송민주화, 제작자율화 바람이 불어 공영방송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듯 싶었다. 과거 흑역사를 스스로 반성하는듯한 방송도 나오고 해서 시청자들이 이제 정신차렸구나 싶엇지만, 1990년 삼당합당으로 초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하자 서영훈 사장은 바로 쫓겨났다. 이에 항의 해서 벌어진 파업이 이른바 1990년을 풍미한 KBS 사태다. 물론 결과는 2012년 언론사 공동파업처럼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를 대신해 새로 부임한 서기원 사장 하에서 이전처럼 특정 정권에 기생하는 국영방송과 같은 행보를 보이면서 공영방송으로서의 명분을 다시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홍두표 사장하에서 보도국에 대대적인 쇄신을 가하고 1TV 광고를 폐지하고 나서야 겨우 나아졌다.

그리고 이런 과거는 2014년 현재까지도 시청자들이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가장 큰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기형적 재무구조, 비효율적인 인건비 지출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땡전뉴스를 비롯한 '정권에 기생하는 더러운 놈들'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가장 결정타로 작용하고 있다. 웬만한 시청자들은 이런 전력이 있는 방송사를 믿을리가 없으니 "내가 뭘 믿고 니들한테 돈을 더 줘?", "그렇게 돈이 부족하다면 1TV 광고를 다시하면 될거 아냐?"라는 논리로 나오면, KBS측은 반박할 거리가 없어지기 때문.

여담이지만 한 동안 MBC에서 땡전뉴스를 방영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이는 1982년 6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직에서 MBC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이웅희가 전두환에게 TV뉴스 맨 앞에 항상 대통령이 나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전두환에게 설득했는데 의외로 전두환도 이에 수긍은 해서 MBC에서 땡전뉴스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1년 정도가 지난 1983년 경, 생각이 바뀐 전두환은 이웅희를 부른 다음에 원상 복귀시키라고 지시했고, 결국 MBC에서 다시 땡전뉴스가 나오게 되었다.[7] 망했어요

그리고 KBS 2TV에선 1TV에서 방영되는 땡전뉴스와 시간대가 겹치던 "생방송 오늘"[8]이 땡전뉴스를 피할려던 시청자들 덕분에 시청률이 높게 나왔는데[9] 이에 불편해한 KBS 윗분들에 의해 1987년 봄 개편때 폐지되었다는 후문도 있다.

다만 의외로 일요일만큼은 땡전뉴스가 잘 방영되지는 않았는데[10] 이때 KBS와 MBC에서 평일뉴스와 별개로 심층뉴스프로그램[11]인 뉴스파노라마-MBC 뉴스센터를 편성했기 때문. 하지만 충성경쟁은 어쩔수 없었는지 1984년 MBC에서 뉴스센터를 뉴스데스크로 통합시켰고, 동시기 KBS1에선 뉴스파노라마를 8시로 옮기고 기존 뉴스파노라마가 편성되던 시간대에 KBS 뉴스센터 9를 방영한바 있다(...). 희대의 전파낭비 다만 KBS에선 1986년에 어찌된 모양인지 몰라도 다시 뉴스파노라마를 복구 시켜놨다. 그러나 MBC에서 방영된 뉴스센터는 전두환 집권기간이 끝난 1989년이 되어서야 부활했다.

후일담 아닌 후일담으로 1988년부터 1996년 상반기까지는 KBS 뉴스 9와 뉴스데스크에선 주요뉴스를 보내지 않고 바로 본방송을 시작했고[12] SBS도 비슷하게 평일 메인뉴스도 마찬가지로 주요뉴스를 내보내지않고 바로 본방송을 시작했다는 흑역사가 있다.

그래서 당시 KBS 뉴스 9과 MBC 뉴스데스크 자료를 보면 "오늘의 주요뉴스" 코너가 없었던 것.[13] 윗분들과 간부진이 문제인거지 방송형식이 문제인건 아닌데...[14] 후발주자인 SBS도 1997년이 되어서야[15]가 되어서야 주요뉴스 코너가 부활되었다.

백괴사전땡전 뉴스 문서에서는 땡전 뉴스를 풍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시간 함수를 써서 매일 밤 9시부터 10시까지만 문서의 내용이 보이게 해 놓았다(…). 이 때문에 다른 시간대에 문서를 보고 싶으면 편집을 누르거나 해설을 봐야 한다.

다음은 땡전뉴스와 관련된 인물이다.

  • 전두환 -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
  • 광표 - 당시 문화공보부[16] 장관. 이후 연합통신, 서울신문 사장.
  • 문도 - 당시 언론통폐합 기획자. 이후 정무수석비서관. 국토통일원 장관
  • 원홍 - 당시 KBS 사장 및 문화공보부 장관. 이후 대한무역진흥공사 이사장, 한국차문화협회 회장
  • 현태 - 당시 KBS 사장. 이후 민정당 국회의원, 동명정보대(현 동명대학교) 총장
  • 구호 - 당시 KBS 사장. 이후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 용식 - 당시 KBS 보도본부장. 이후 문화공보부 차관.
  • 동호 - 당시 KBS 9시 뉴스 앵커. 이후 KBS 부사장, 세종대 교수, 세종사이버대 총장.
  • 광일 - 당시 KBS 9시 뉴스 앵커
  • 성범 - 당시 KBS 9시 뉴스 앵커. 이후 KBS 보도본부장. 한나라당 국회의원.
  • 윤성 - 당시 KBS 9시 뉴스 앵커. 이후 한나라당 국회의원[17], 현 MBN 뉴스 앵커.
  • 진희 - 당시 MBC 사장 및 문화공보부 장관. 이후 서울신문 · 스포츠서울 사장
  • 이웅희 - 당시 MBC 사장 및 문화공보부 장관. 이후 한국반공연맹 이사장, 한국신문협회 회장.
  • 선필 - 당시 MBC 사장
  • 득렬 - 당시 MBC 뉴스데스크 앵커[18]. 이후 문화방송 사장, 한국관광공사 사장.
  • 성구 - 당시 MBC 보도국장, 해설주간, 뉴스데스크 앵커[19] 이후 문화방송 사장,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 국회의원[20]
  • 우철 - 당시 MBC 뉴스쇼 및 여기는MBC[21] 앵커. 이후 아주대학교 교수, 대한방송언어연구회 회장.
  • 은경 - 당시 MBC 생활뉴스 앵커
  • 기도 - 당시 MBC 출입기자 및 청와대 방송담당 공보비서관. 이후 나사렛대학교 교수.
  • 순봉 - 당시 MBC 정치부장. 이후 국무총리비서실장, 제11대 및 14~16대 국회의원, 경남일보 회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2. 대한민국 인디밴드 밤섬해적단의 노래

1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곡이다. 밤섬해적단 자체가 그라인드코어 성향의 밴드이고 가사 자체가 거의 안 들리지만 상관없다. 가사는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진짜다. 라이브 공연 영상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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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KBS1에서 80년대 중반부터 89년까지 일일연속극(혹은 스포츠 중계, 주말엔 광고)이 끝나고 나서 ID가 나온 뒤에 바로 오프닝이 나왔다.(90년~93년엔 9시 뉴스 오프닝 화면에 시보가 나왔다.)
  • [2] 그래도 대한민국이 진짜 막장 독재 국가들보다는 좀 나았다는 증거이기는 하다. 북한이었으면 아마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을 것이고, 러시아였어도 남은 인생이 꽤나 피곤했을 테니까.
  • [3] 단 '전두환'의 로마자 표기는 영어식 발음에 의거하여 제멋대로 정한 'Chun Doo-hwan'이었기에 'J'와는 맞지 않다. 매큔-라이샤워 식으로는 'Chŏn Tu-hwan', 현행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Jeon Du-hwan'. 한국인 이름의 로마자 표기 항목도 참고하자. 가끔 현재까지도 그렇게 표기하긴 한다.
  • [4] 실제로 두발조차 적극 통제하던 박정희 시절과 달리 일반인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는 전두환 시절에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 [5] 참고로 허문도는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어용 축제 국풍81을 기획·개최한다. 전두환의 군출신 측근인 허삼수, 허화평과 함께 속칭 '3허'로 불리면서 5공초기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막강한 권력실세였다.
  • [6] 물론 공영방송이 친정권에 가까운 것 자체는 어느 나라나 별 차이 없긴 하지만 대놓고 하는 것과 은근히 하는 건 전혀 다르다.
  • [7] 참고: 한국대중매체사 563p, 강준만
  • [8] 방영시간은 평일 8:50-9:25. 지금의 생생정보통과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이다.
  • [9] 다만 당시 시청률 조사방식이 지금처럼 피플미터식은 아니고 전화, 설문조사 형식이었다는건 감안하자.
  • [10] 간간히 땡전뉴스를 앞부분에 편성한적은 있다. 그래도 평일에 비하면 사실상 없는거나 마찬가지.
  • [11] 이 중 뉴스파노라마는 뉴스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시사 프로그램의 형식을 띄고있기는 한데, 사회고발적인 성격은 약했고(그런건 추적 60분이 당담했다. 물론 당시 정치상황상 한계는 많았지만) 계몽적인 성격이나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이 강했다.
  • [12] 다만 프로그램 예고를 내보내긴 했고, 1991년 MBC 뉴스센터도 주요뉴스를 편성하고나서 본방송을 시작했으나 몇개월도 지나지 않아 흑역사化...
  • [13] 다만 본방 시작직후에 앵커가 주요소식 요약을 하는 경우는 있었다. 현재도 KBS 뉴스5나 중국CCTV 신문연파에서도 방송시작 직후에 앵커가 이런식으로 주요소식 요약을 한다.
  • [14] 참고로 당시 검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시사프로그램들 자료를 보면 (예시: 뉴스비전 동서남북, 기동취재 현장, 시사매거진 2580) 프로그램 맨 앞부분에 헤드라인을 보내고, 그 다음에 광고를 내보낸 다음에(KBS1 시사프로그램은 해당되지 않음, 광고를 편성했긴 해도 블록식이었지 프로그램별 광고방식은 아니었으니까) 본방을 시작했다.
  • [15] 단, 주말은 이미 1994년도에 뉴스 본방시작 전에 주요뉴스를 편성했다. (정확하게는 오프닝이 나오고 난다음에 주요뉴스가 방영되고 주요뉴스 코너가 끝나면 광고가 편성되고 광고가 끝나면 본방송이 시작되는 식)에 주요뉴스가 방송되었다.)
  • [16] 현재의 문화체육부+방송통신위원회에 미래창조부의 일부 기능이 포함된 부서. 독재정권에서 주로 하는 일은 언론통제와 종교단체 관리였다.
  • [17] 2010년 지방선거 직전 “또 하나 반가운 것은 10명의 기초단체장 가운데 옹진군은 무투표로 당선됐고 나머지 9군데도 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천안함 사태가 바로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났다”라는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 [18] 1974년부터 1987년까지 13년간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엄기영 앵커 다음 장수 앵커.
  • [19] 내귀에 도청장치로 유명한 방송사고 뉴스 앵커로도 잘 알려져 있다.
  • [20] 2000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2002년 탈당 후에 한나라당에 입당하였고,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하였다.
  • [21] 둘다 현재 MBC 뉴스투데이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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