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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렌티 베리야

last modified: 2015-01-29 22:00:05 by Contributors

풀네임 : 라브렌티 파블로비치 베리야
조지아어 : ლავრენტი პავლეს ძე ბერია
러시아어 : Лаврентий Павлович Берия


Contents

1. 소개
2. 생애
3. 일화
4. 매체에서



1. 소개


이오시프 스탈린 시대의 소련의 관료. 비밀경찰 엔카베데(NKVD)의 수장으로 '스탈린의 개' 예조프에 이어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시킨 장본인. 히틀러에게 하인리히 힘러가 있었다면 스탈린에게는 베리야가 있었다.

2. 생애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어렸을 때 스탈린과 같은 학교 출신이었다. 그 학교는 놀랍게도 정교회 신학교인데, 스탈린과 베리야를 배출한 것만 보면 이게 신학교인지 판데모니움인지 구분이 안갈 지경.하지만 교장이 라스푸틴이라면... 신학교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하다. 어렸을 때는 일부러 친구의 물건을 훔친 뒤 친구들이 곤란해할때 자기가 물건을 찾아주면서(!) 명탐정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이때부터 악마 기질이 다분했다.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뒤에 스탈린의 눈에 띄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스탈린이 어느 지역 공산당 건물을 지나가면서 정원의 나무가 마음에 안든다고 하자 마침 인근에서 그 소리를 들은 베리야가 그대로 지나가는 사람의 삽을 빼앗아 들고는 나무로 달려들어 마구 파내기 시작… 그러면서 누가 들으라는 듯이

"난 스탈린 동지가 싫어한다면 이 동네의 모든 나무를 다 파내버릴테다!"[1]

라고 외쳐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재밌게 본 스탈린은 베리야가 귀여웠는지 나중에 모스크바로 불러들인다. 또 스탈린의 눈에 잘보인 덕분인지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는다. 그래 숙청하는 데는 영웅적 공적을 보여주긴 했지

모스크바에 입성한 베리야는 소련의 실권자가 되었는데 이는 그가 비밀 경찰 지휘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적백내전 당시에도 악명을 떨친 소련의 악명높은 첩보전은 베리야에 의해 더더욱 강해졌으며 사실상 소련의 권력은 그에게 집중되어 그의 눈밖에 난 이들에겐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탈린의 악명높은 대숙청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베리야보다는 전임자 예조프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숙청 당시 스탈린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많이 죽였다고 생각하고 그 숙청 책임자 예조프를 숙청(…)할때 앞장서고 자리를 꿰어찬 것도 베리야였다. 웃긴건 예조프도 전임자 겐리흐 야고다를 숙청하고 그 자리를 꿰어찼단 거다(...). 막장.인류제국 이단심문관?[2]

하지만 대숙청을 주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면피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베리아는 예조프를 규탄하면서 공안기관의 가혹행위를 시인하기도 했지만, 베리아 휘하에서도 체포와 처형은 계속되었으며, 특히 폴란드발트 3국에서 벌어진 민족주의자의 처형은 그가 저지른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예조프처럼 무식하게 눈에 확 보이도록 엄청나게 죽인 것이 아닐 뿐, 베리야가 죽인 사람 역시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2차 대전 중에는 의외로 소련군 원수 계급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가 경찰 조직이 군에 흡수되면서 경찰 총수였던 베리야 역시 군 원수로 추대된 것…. 이후로 소련 경찰, NKVD나 KGB 인물들은 모두 군 계급과 동일한 계급을 받는다. 베리야는 수용소 죄수를 노동한 노예노동과 전세계에 퍼져있는 스파이망을 동원한 정보수집으로 나름대로 독소전쟁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나 진주만 공습의 정확한 날짜를 빼돌렸을뿐만 아니라[3], 나치 독일에서 소련을 위한 스파이망인 레드 오케스트라를 구축했고, 연합국에 대한 첩보활동도 개시하여, 처칠, 루즈벨트 외에는 연합군 최고레벨도 그 존재를 잘 모르던 맨하탄 계획도 그 전모를 파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극비였던 원자폭탄의 초기 청사진도 빼올수 있었다.[4]

이처럼 수많은 이들을 학살하고 스탈린의 사후 소련을 이어받을 자로 가장 유력했던 인물이었다. 스탈린 사후 후계자들이 정권을 분할하였는데, 말렌코프가 정부 최고인 수상, 흐루쇼프가 당의 최고인 당 서기, 베리야는 제1부수상 겸 정보기관을 맡았다.

베리야는 의외로 스탈린식 폭정을 완화하고 고문방지 법안에(!!), 굴라그 수용자 석방에다가 심지어 외국과의 긴장관계를 해소하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래도 다른 경쟁자들은 이제까지 그가 스탈린 옆에서 한 짓도 있고 해서 베리야를 불편하게 여겼다. 결국 경쟁자들은 합심해서 베리야를 실각시키고 반역혐의로 사형을 언도하고 총살하였다. 그러나 베리야의 이런 돌변은 흐루쇼프로 이어졌다.

베리야의 실책은 정보기관을 이용해 유력 지휘관을 사찰하고, 스탈린에게 고자질 하는 등의 짓거리를 하여 군부의 전반적인 원한을 샀다는 점이다. 사실상 2차대전 이후 많은 소련 유력지휘관의 좌천이나 체포에는 그가 맡고 있던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주코프의 "비리"혐의라는 것도 베리야가 스탈린에게 일러바친 것이라고. 그래서 주코프가 그를 직접 체포한 것이나, 주코프와는 매우 사이가 안좋았던 코네프조차 이점에서는 한뜻으로 군사재판에서 베리야에게 사형을 언도했을 정도면.

일설에 따르면 베리야는 실각당하는 순간 재판이고 뭐고 없이 그 자리에서 끔살당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베리야가 이끄는 NKVD나 KGB, 경찰세력의 조직적인 반항을 다들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디서 죽었는지도 의문점인데, 가설 중 하나는 공산당 전당대회같이 베리야의 세력이 공식적으로 참석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곳에서 공식석상이라 무장하지않고 참석한 베리야를 역시 공식석상이라 무장할 수 없던 공산당 대의원들이 떼로 몰려가서 패죽였다는 것이다. 비밀회의 석상에서 주코프가 직접 목졸라 죽였다는 설도 유명하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그저 썰일 뿐이고, 실제로는 정식재판을 했다. 베리야는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고, 테러 활동을 통하여 미제와 서방에 협력하였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여기에 또 재밌는 일화가 있다. 재판을 할 때 증인으로 참석한 사람은 베리야에 의하여 굴라그로 끌려간 사람 중 하나였다. 그 사람이 증인으로 나와서 베리야의 악행을 술술 불자 재판장에서 베리야가 깜짝 놀라서 "당신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지?!"라고 외치자 그 증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네 기관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 했었지." 결국 유죄가 확정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 다만 매국행위. 서방 스파이 혐의는 날조된 것이었다. 애시당초 그랬으면 스탈린이 먼저 처단했을 것이다. 어차피 기존의 혐의로도 사형이 가능한데 왜 추가했는지는 불명. 공산권에서 누구 조질때 온갖 혐의 다 씌우는게 어디 하루이틀일인가

한편 현재는 사실 스탈린이 죽음에 이른 원인이 베리야가 독약을 먹인 까닭이 아닌가...하는 이야기가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동료였지만 그를 숙청하는데 일조했던 몰로토프도 자신의 자서전에 베리야, 그놈이 독살한 것임!이라고 썼을 정도니 말 다했다. 심지어 흐루쇼프마저도 회고록에 스탈린 사후 베리야가 "내가 그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여 모두를 이롭게 했다. 라고 떠벌이고 다녔다고 적어놨다고 하니. 물론 증거는 없다. 애시당초 베리야를 사형시킬 때도 기소 내용에 들어가 있지 않았을 정도니까.

3. 일화


오리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온 입술이 상당한 매력 포인트였으며 일설에는 호색한이어서 엔카베데에 끌려간 자신의 남자 형제를 살려달라는 여자를 공갈협박해서 전용기차 안에서 강간했다든가(훗날 아내가 된다……)[5] 페도필리아적인 성향을 보여 요원들을 시켜 맘에 드는 소녀들을 길가에서 마취시킨 후 마취상태에서 강간했다고 하니… 이쯤이면 새디스트라고 해도 옳을듯 싶다. 물론 베리야의 유족은 비열한 흐루시초프의 술책이라며 그를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로버트 서비스의 《스탈린 : 강철권력》에서 보면 스탈린이 자신의 딸 스베틀라나와 베리야가 같이 있는 것이나 어울리는 것에 대해서 엄청 신경썼다는 내용을 보면 100%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젊은 시절에 축구선수였는데, 실력은 영 별로였는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창립자인 니콜라이 스타로스틴에게 탈탈 털렸다. 그리고 이를 잊지않고 복수하는데...자세한 것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항목 참조.

<스탈린: 공포의 정치학, 권력의 심리학>에 의하면, 소련 과학자 쿠르챠코프와 그의 팀이 원자로 가동에 성공했을땐 너무 흥분해서 연쇄분열이 일어나고있는 원자로로 뛰어들어가려고 했었고[6], 카쟈흐스탄의 세미팔라틴스크 외곽에 있는 사막에서 마침내 핵폭탄 실험에 성공했을 때, 베리야는 버섯구름이 피어오르자마자, 4년 동안 윽박지르기만 하던 쿠르챠코프를 와락 끌어 안았다고 한다. 아주 드문 감정표출이었다고. 실험중 폭발로 부상자와 사망자가 널부러져 있는 연구소 현장에서 "이 쓰레기들을 빨리 치우고 연구를 계속해라!"라고 다그쳤다던 이 악랄한 인간도 결국 스탈린의 그늘 아래 있었던 것.

여담으로 베리야의 병적으로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을 말해주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원로배우 이순재씨는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유명한 김병욱 PD에게 "내가 지어준 별명이 옛 KGB 총책이었던 라브렌티 베리야다. 그만큼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4. 매체에서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나지않은 평행세계의 경우 조지아에서 강철남자의 충견 1로 나오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빌곶제가 유럽 털어먹는 게임에서는 스탈린을 부하로 두고 있다. 오오 인생의 승리자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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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비슷한 이야기로 괴링은 "총통이 1+1=3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정답이다"라는 병맛을 시전하였다.
  • [2] 하긴 진짜 이단심문관들의 모티브일지도 모른다. 커미사르도 있는 판에...
  • [3] 물론 이는 일본에 있던 간첩 리하르트 조르게의 능력이 대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베리아의 감독하에 있던 인물이라...
  • [4] 독일의 방첩대들이 병맛이긴 했지만, 독일 정보기관과 비슷한 짓을 하고 있던 베리야의 정보전 능력을 보면 아주 무능은 아니다. 물론 이 자에게 무고하게 숙청된 소련 군인들을 보면 정보전에서 세운 공로도 많이 사그라든다. 할힌골 직전에는 주코프도 숙청하려고 했다가 주코프가 대승을 거두자 슬그머니 제외하기도 했다.
  • [5] 좀 불확실하다. 아내가 된다는 이야기는 스볘틀라나의 회고록에서 조금 언급되는 게 전부다. 그러나 저렇게 강간한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 [6] 물론 주변의 만류로 방사선에 끔살나는건 모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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