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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버크먼


이름 랜스 버크먼 (William Lance Berkman)
생년월일 1976년 2월 10일
국적 미국
출신지 텍사스주, 와코
포지션 1루수/외야수
투타 좌투양타
프로입단 1997년 드래프트 1라운드 16순위
휴스턴 애스트로스 지명
소속팀 휴스턴 애스트로스(1999~2010)
뉴욕 양키스(201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011~2012)
텍사스 레인저스(2013)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2.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2.3.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2.4. 은퇴
3. 이모저모


1. 개요

미국의 前 야구선수. 포지션은 1루수이며 스위치히터인데, 스위치히터 중에서도 아주 드문 축에 속하는 좌투양타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스위치히터이자, 지금은 리빌딩에 들어간 팀 사정 상 팀을 떠났지만,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2. 선수 생활

2.1.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대학교 시절 통산 4할에 육박하는 타율과 67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대형 아마추어 내야수로 이름을 떨쳤으며 1997년 휴스턴에 1라운드 16번에 지명되었다. 고향이 텍사스이기 때문에 휴스턴으로서는 동향 출신의 스타를 잡은 셈.

마이너리그에서도 꾸준히 3할 이상과 30홈런을 웃도는 타격으로 팀 타선의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평가 받았으며 99년 7월 콜업되면서 본격적인 메이저리그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학창시절부터 마이너리그까지 자신의 원래 포지션은 1루수였으나 그 자리에는 휴스턴 역사에 남는 강타자인 제프 배그웰이 버티고 있어서 거의 반 강제로 외야수로 포지션을 이동하게 된다. 1루수에서 외야로 수비를 변경했지만 타구 판단능력이 좋아 외야 어느 포지션이든 수비력은 준수한 편이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배그웰의 은퇴후 06년부터 1루수와 외야수를 겸업. 여담으로 배그웰때문에 버크웰이라는 별명도 얻게되었다.(....)

2000년 본격적으로 풀타임 활약을 시작해 21홈런 67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왕 투표 6위에 올랐다. 이후 30~40홈런을 넘나드는 장타력과 준수한 출루율크레익 비지오, 제프 배그웰, 릭 벨, 카를로스 벨트란 등이 포진해있는 킬러 B 타선에 가세해 팀 타격을 극대화 시키는데 공헌했다. 매년 꾸준한 활약으로 인해 단번에 휴스턴의 중심타자로 성장함과 동시에 프랜차이즈 스타로 변모했다. 아울러 마크 테세이라, 치퍼 존스 등과 함께 현 MLB를 대표하는 스위치 히터중 하나. 역대 스위치 히터 통산 기록 10위권에는 주루 부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 버크먼의 이름이 하나씩 올라와 있을 정도다.

휴스턴이 2000년대 들어 잘 나가면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의 강호로 군림할 때, 비지오-배그웰-벨트란과 함께 킬러 B(3기)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들의 활약으로 인해 휴스턴은 2000년대 초중반 꾸준히 5할 승률을 넘기면서 2005년에는 팀 창단 처음으로 월드시리즈까지 올라갔다. 버크만 자신도 2002년 42홈런 128타점을 기록하며 타점왕에 올라 MVP 투표 3위에 오르고, 다시 2006년에는 45홈런 136타점으로 역시 MVP투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005년 월드시리즈 진출 이후, 팀은 점차 단장의 무원칙한 팀 운영에 의해 흔들리고, 그들과 함께 한 비지오와 배그웰은 은퇴, 벨트란은 FA로 팀을 떠나면서 버크만 홀로 답이 없는 휴스턴 타선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그나마 브래드 릿지 트레이드로 온 마이클 본이 중견수 자리를 책임져주며 받쳐줬다. 어째 이 팀은 알파벳 B의 일족이 와야 잘하는 팀 같기도.

그러나 2009시즌 25홈런에 그치더니 2010시즌 중반까지 타율, 출루율, 장타율을 각각 0.238 0.344 0.383 기록하며 부진에 빠졌고, 결국 악화된 팀 재정 및 리빌딩이 필요한 팀 사정, 본인의 월드시리즈 진출 희망에 따라 트레이드 거부권을 풀어버렸다. 마침내 7월 30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완료. 양키스에서는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서 평범한 대타로서의 성적을 거두었고, 소원이었던 반지 역시 뉴욕 양키스가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밀려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2.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2010년 시즌이 끝난 후, 버크만은 휴스턴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러나 팀 매각 절차를 밟고 있으며 고액연봉 선수들 정리에 정신팔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에드 웨이드 단장은 FA사이닝이 시작되자마자 버크만을 재영입할 뜻이 없음을 밝혀 버크만과 팬들의 뒷통수를 때렸다. 페이크다 이 병신아! 고향 팀에서 계속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었던 버크만의 소망은 그렇게 무산되었고, 결국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2010년 12월, 돌아가고 싶어했던 휴스턴과 계약에 실패한 버크만은 같은 NL 중부지구에 속한 철천지 원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8M 1년 계약을 했다.

그리고 알버트 푸홀스가 커리어 최악의 부진에 빠진 가운데 푸홀스가 찍을 스탯을 버크만이 찍으면서 세인트루이스 타선을 이끌었다.

버크만은 시즌 초 푸홀스의 극심한 부진에 껴서 활약을 못하다가 4월 중순부터 폭발하기 시작하더니 4월 11일부터 4월 말까지 총 16경기중 12경기에서 멀티힛을 기록하는 미친 타격감으로 카디널스의 중심타선을 지탱했다. 4월 한달동안 홈런 8개 22타점 .388/.453/.765의 맹타를 휘둘렀다. 그리고 자신의 복귀를 거부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첫 원정 3연전에서는 3경기동안 14타수 8안타 2홈런 5타점의 맹타로 자신을 버린 휴스턴에게 처절한 뒤끝을 보여주었다. 휴스턴 원정에서는 철천지 원쑤 카디널스 선수가 되었음에도 관중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기립박수로 버크만을 맞아줬다.

5월달에는 4월의 폭주탓인지 페이스가 떨어졌지만 5월 한달 동안 23경기에 나와 무려 25개의 볼넷을 얻어낼 정도로 타선에서 집중견제의 대상이 되었다. 대체 누가 푸홀스고 누가 버크만인지... 5월 30일까지 47경기 151타수 52안타 11홈런 36타점 .344/.463/.623을 기록하며 FA 이적생중에선 최고의 기록을 냈으며 팀 동료 맷 홀리데이와 함께 타율 공동 1위를 질주했다.

다만 코너 외야 수비가 영 좋지 않아서 데이비드 프리즈가 부상을 당했을 때는 푸홀스를 3루로 보내는 극약처방까지 쓰며 1루로 기용되기도 했다. NLDS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티즌스 뱅크 파크 원정에 나섰을 때 본인의 말로는 어차피 나 수비는 좌익수든 우익수든 구멍이니까 덕아웃에서 가까운 좌익수에서 뛰었으면 좋겠음ㅋ이라고(...) 실제로는 좌익수 우익수를 번갈아가며 뛰긴 했다. 맷 홀리데이가 부상에서 복귀하는 문제도 있었고...

시즌 내내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며 0.301/0.412/0.547을 기록했고, 31홈런 97타점을 기록하면서 팀 타선의 핵심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2011년 메이저리그 기자단이 뽑은 올 해의 내셔널리그 재기 선수에 선정되었다. 아울러 세인트루이스와 2012년 $12M의 연봉으로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당초 다년간의 대형 계약도 예상되던 상황이지만 카디널스의 사정이 푸홀스 연장계약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 페이롤 압박에서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배려인듯 하다.


그리고 2011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으면서, 결국 휴스턴과 뉴욕에서 얻지 못한 우승 반지를 세인트루이스에서 얻게 되었다. 결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도, 버크먼 본인에게도 윈-윈인 한 해가 되었다.

또한 오프시즌에는 절친 로이 오스왈트를 설득하여 카디널스로 끌고 오려는 노력을 하면서 비록 라이벌 선수였음에도 현재의 팀을 위하는 면모를 보여주며 카디널스 팬들에게 칭송받았다. 입단 1년차만에 그야말로 (주장이나 다름없는) 실질적인 클럽하우스 리더가 되었다. 사실 카를로스 벨트란도 왔고 B자 선수 한명 더 영입해서 새로운 킬러 B's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카더라. 본격 세인트루이스 애스트로스 완성

2011년에는 우익수로 뛰었지만 2012년에는 알버트 푸홀스가 나간 뒤 카를로스 벨트란도 온 팀 사정상 1루로 돌아와서 수비부담을 줄이고 타격에 집중할 것으로 보였지만, 무릎 부상을 당하며 은퇴의 기로에 놓였다. 이대로 은퇴하기는 영 아쉬운 상황. 포스트시즌에 월드시리즈 원정 경기에서의 지명타자/대타 롤을 수행하기 위해 재활에 가속을 붙였으나 카디널스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NLCS에서 지며 무산되었다. NLCS가 끝난 후 카디널스가 언젠가 반드시 이 무대로 복귀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클럽하우스 리더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줬다.

2.3.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2012시즌 종료 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로 옮기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정상 친정팀 복귀설이 돌았지만 정작 친정팀이 1루수로 영입한 선수는 카를로스 페냐였고, 버크먼은 결국 같은 텍사스주 고향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다. 1년간 1100만 달러에 2014년 베스팅 옵션이 있는 계약이다. 애스트로스팬 입장에선 한때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선수가 라이벌팀이었던 카디널스로 가서 우승반지를 먹더니 애스트로스가 아메리칸리그 서부로 지구이동하니까 이번엔 지역 라이벌팀인 레인저스로 오는 광경이 참으로 안습하다.해야갤의 모 휴스턴팬은 버크만이 텍사스를 가자 무릎폭팔을 빌정도... 초반 상당한 활약을 했지만 결국 부상에 시달리면서 73게임 출장, 6홈런 34타점에 그쳤다. 옵션은 당연히 실행되지 않았다.

2.4. 은퇴

2014년 1월 30일, MLB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유를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라고 밝혔다. 사실 버크먼은 2012년 5월 LA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무릎에 큰 부상을 입고 그해 32경기 출장에 그쳤었다. 이후 메디컬 테스트를 통해 텍사스에 입단했지만 결과는 위에 보시는대로...

이후 같은 시기에 은퇴를 선언한 로이 오스왈트와 함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1일 계약을 맺고 4월 6일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동반 은퇴식을 할 예정이다. 팬들은 킬러 B의 막내였던 그가 은퇴선언을 하면서 세월이 흐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3. 이모저모

별명으로는 '빅 퓨마', 살찐 엘비스(Fat Elvis). 엘비스 프레슬리를 닮고 안 닮고를 떠나서 정말 인상적으로 생겼다. 자신은 엘비스보다 빅 퓨마쪽을 더 선호하는듯 하다. 버크먼은 지역 토크쇼에서 반쯤 장난 어조로 '난 내 자신을 엘비스보다 퓨마 쪽이 더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사람들은 날보고 살찐 엘비스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라고 불평한 적이 있다. 이후 빅 퓨마로 별명 확정. 은퇴 후에는 지도자 수업을 받을것이라고 하며 슬하에 딸이 넷이 있다.

2011년부터 휴스턴 애스트로스 원정 때마다 대단한 환호를 받았다.

정상급 스위치히터로 칭송받는 버크만이지만 스위치히터 버크만의 커리어에는 매우 큰 아쉬움이 존재하고 있다. 통산 좌타석 OPS .995/우타석 OPS .777으로 무려 OPS 2할 3푼 정도의 차이가 난다. 치퍼 존스(좌.947/우.889), 카를로스 벨트란, 마크 테세이라와 같이 화려한 커리어를 보낸 스위치 히터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이렇게까지 좌우타석 성적차이가 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 아버지가 미키 맨틀을 좋아해서 5살 때부터 왼손잡이라는 이점이 있음에도 스위치 히팅을 하게 되었던 버크만이기에 우타석에 들어서는 것이 대단히 손해보는 느낌. 본인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스위치히팅을 안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수비가 영 좋지 않은지라 외야에서는 늘 구멍이라 가능하면 1루를 주로 본 편이고 양키스에 잠시 몸 담았을 때엔 지명타자로 뛰었다.

비율넘버로 봤을 때, 같은 스위치타자인 치퍼 존스에 비해 모자랄 것 없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누적 성적은 2000안타도 치지 못했고 400홈런도 치지 못했을 정도로 부족한 편이라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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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1-25 22: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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