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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

last modified: 2015-03-11 16:17:05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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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Zeppelin.

왼쪽부터

각 멤버를 떼놓고 봐도 레전드인 몇 안되는 밴드이다.

Contents

1. 소개
2. 결성
3. 도약
4. 전성기
5. 황혼기
6. 해체
7. 해체 이후
8. 재결성 (?)
9. 평가
10. 표절 의혹
11. 레드 제플린의 앨범들


1. 소개


영국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록밴드. 평론가들이 분석한 음악적인 성취도도 높아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록밴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드록헤비메탈 계열에 영향력을 미쳤으며(특히 하드록을 헤비메탈로 발전시킨 밴드로 평가받는다), 그들의 실험성과 서정성 또한 던록의 시대에도 멈추지 않고 영향력을 이어나가고 있다.[1]

2. 결성


루스 록과 초기 하드록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밴드이다. 영국 3대 기타리스트가 모두 거쳐간 것으로 유명한 "드버즈"(Yardbirds)의 기타리스트였던 지미 페이지가 제프 벡 등 당시의 멤버들이 모두 떠나고 밴드가 해체되자, 자신이 리더가 되어 새 밴드를 이끌고 가기로 한 데에서 밴드의 역사가 시작된다.

지미 페이지는 "밴드 오브 조이"등에서 활약한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드러머 존 본햄, 그리고 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유능한 베이시스트이자 키보디스트존 폴 존스를 영입하고, "뉴 야드버즈" (New Yardbird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곧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이란 밴드명으로 바꾼다.[2]

3. 도약



1968년에 발표된 데뷔앨범인 "Led Zeppelin"은 불과 30여시간만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당시 유행하던 사이키델릭 록블루스 성향이 짙은 앨범이지만, "Good Times Bad Times", "Communication Breakdown"과 같은 짧고 날렵한 하드 록 넘버도 있고, "Baby I'm Gonna Leave You" 같은 곡에서는 이후 레드 제플린이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모습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사이키델릭 록의 절정인 "Dazed And Confused"에서 지미 페이지는 바이올린 활로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적이 있다. 신출내기 밴드의 데뷔앨범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어 명반으로 추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표지의 떨어지는 비행선 그림은 1930년대 폭발해 떨어져 수많은 사상자를 낸 독일의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를 그린 것이다.

2014년 6월 리마스터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CD, LP 포맷으로 만나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Led Zeppelin(앨범) 항목을 참조.


데뷔 앨범과 달리 1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쳐 만든 두번째 앨범 "Led Zeppelin II"는 블루스 색채가 약간 적어진 대신 스트레이트함이 강해진 하드 록 성향이 강조되었으며, 헤비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면서도 중간에 여러가지 사운드를 실험한 곡 "Whole Lotta Love"는 이 앨범 중 가장 유명한 곡이며, 여성적이고 날카로우면서 바이브레이션이 강한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은 이후 러쉬의 게디 리, 헬로윈의 마이클 키스케 등 수많은 하이톤 록 보컬리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2014년 6월 리마스터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CD, LP 포맷으로 만나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Led Zeppelin II 항목을 참조.



본 앨범에서는, 60년대 포크 록밴드 팔로 스프링필드를 음악적 이상으로 여겨 도노반이나, 로이 하퍼와도 협연한 지미 페이지의 포크적 취향이 잘 드러난 앨범으로, B면은 아예 모두 목가적인 브리티시 포크 록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간결한 느낌의 "The Immigrant Song"이나, 루브감이 엄청난 리프의 "Celebration Day", 로버트 플랜트의 한서린 목소리가 전율을 일으키는 비장감의 극치인 "Since I've Been Loving You" 등등 헤비 록 측면에서도 괜찮은 곡들이 많다. LP시절 앨범표지는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종이 원반이 상판 내부에 들어있고, 이걸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리면서 그림을 바꿔 볼 수 있는 구조. 돈있는 위키니트는 당장 LP를 사보도록 하자

2014년 6월 리마스터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CD, LP 포맷으로 만나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Led Zeppelin III 항목 참조.

4. 전성기



제목이 없는 앨범으로 유명한데, 앨범 제목대신 각 멤버들을 상징하는 괴이한 부호가 적혀있다. 보통은 "Led Zeppelin IV"라고 부른다. 이들의 가장 성공한 앨범이며, 레드 제플린하면 바로 떠오르는 불후의 명곡인 "Stairway to Heaven"[3]이 들어있다. 이 앨범부터 신비주의와 민속음악에 탐닉하는 그들의 오컬트적 취미가 여실히 드러난다.[4]

그런 취미가 드러난 곡이, 브리티시 포크 록밴드 "페어포트 컨벤션"의 여성 보컬 "샌디 대니"가 참여한 "The Battle Of Evermore"이며, "Stairway to Heaven"도 그런 경향이 드러난 대표적인 곡이다. 이런 실험과 더불어 헤비 록적인 면에서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Black Dog", "Rock And Roll" 등의 곡이 수록되었고, 데뷔 초부터 끝없이 추구한 고전 블루스를 리메이크했던 노력은 그루브감의 탄력이 굉장한 "When the Levee Breaks"에서 이어진다.

2014년 10월 리마스터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CD, LP 포맷으로 만나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Led Zeppelin IV 항목을 참조.



5집 "Houses of the Holy"는 3집 "Led Zeppelin IV" 때의 포크 지향과는 달리 좀 앰비언트적인 성향이 강한, 프로그레시브 록에의 지향성이 드러나있으며, 벌거벗은 금발소녀가 자이언트 코스웨이를 기어오르는 선정적인 앨범커버로도 유명하다.[5] 멤버들의 취향을 알 수 있다. 물론 믿으면 심히 골룸하다.

로버트 플랜트의 하이톤 보컬의 최전성기를 보여주는 장엄한 헤비 록 대곡인 "The Song Remains the Same"으로 시작해, 킹 크림슨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로트론 음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곡 "The Rain Song", 레게의 영향을 짙게 받은 "The Crunge", "D'yer Mak'er", "Dancing Days" 등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최고의 곡은 음울하고 몽환적인 "No Quarter"이며, 존 폴스 존스의 렉트릭 피아노 연주의 독특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2014년 10월 리마스터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CD, LP 포맷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들 최초의 더블 앨범으로, 그 많은 곡의 양만큼 그들의 음악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반이다. 주로 헤비 록적인 스트레이트함이 강조된 기타리프와, 절정에 이른 존 본햄의 파워풀한 드러밍이 돋보이는 곡들이 주류를 이루며, 그 중 최고봉은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10분에 이르는 대곡 "In My Time of Dying"이다.[6] 하지만 신비주의와 민속음악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Kashmir"[7]같은 대곡도 있고, 서정적인 슬로우 넘버 "Down by the Seaside", "Ten Years Gone" 같은 곡들도 있다.

5. 황혼기



이 시기에 로버트 플랜트가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에 앉아 녹음했다고 하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의 아들이 사망하는 등 밴드적으로 결속력에 잠깐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곡들의 주류는 , 뉴올리언스식 블루스들을 그루브감을 높여 재해석한 헤비 블루스로, "Nobody's Fault But Mine", "Royal Orleans" 같은 곡들이 그렇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대곡인 "Achilles Last Stand"나 침울한 블루스 "Tea For One"같은 곡도 실려있다.

  • (Live Album) The Song Remains The Same




그들의 들을 위해서 그들의 음악과 생활을 다룬 영화운드트랙이며[8], 좋은 앨범이지만, 그들의 당대 맞수였던 딥 퍼플Made in Japan 앨범과 비교해서는 연주적으로나 녹음적으로 헛점이 많다고 얘기되는 앨범이며, 이 후 그들이 명예회복을 위해 "BBC Session"이나 "How The West Was Won" 등의 초기시절 쌩쌩했던 라이브 앨범을 내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카더라. 하지만 원곡보다 훨씬 길게 연주되며 사이키델릭 삘이 만빵인 지미 페이지의 기타연주와 주문을 외는건지 알 수 없는 주술사스런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이 빛나는 "Dazed And Confuzed"는 굉장하게 느껴진다.

  • 8. In The Through The Outdoor (1979년)




8집 "In The Through The Outdoor"는 실상 그들의 마지막 앨범으로, 당시 몇몇의 록밴드가 그랬듯이 유행을 따라 뉴웨이브적인 성향에 가까운 곡들이 주류이며,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은 이전의 날카로움은 완전히 없어진 대신 느끼하고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자세한 것은, In Through the Out Door 항목을 참조.

6. 해체


1980년, 드러머 존 본햄이 사망했다.

지미 페이지의 윈저 저택에서 스크류 드라이버를 마시면서 과음하다가 다음날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존 본햄의 후임으로 "코지 파웰"이나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칼 파머" 등등이 후임 드러머로 거론되었지만, 남은 멤버들은 "존 본햄이 없는 레드 제플린은 의미가 없다"고 하여 밴드의 해산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물욕과 명예욕에 의한 이전투구와 배신이 넘치는 음악계에서 보기드문 의리있고 깨끗한 결단이라고 하여 칭송했다. 하지만 실은 존 본햄을 대체할 드러머가 없다는 것이 큰 이유였고, 과장이 아니라 "Stairway To Heaven"이나 "Moby Dick"에서처럼 강약 조절과 리듬조절이 탁월했던, 그야말로 레드 제플린 음악의 역할을 했던 드러머는 존 본햄밖에 없었다.


9집 "Coda"는 그들이 해산된 직후 발표되었으며, 그동안의 미발표곡 중 수작들을 골라모아서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통일성이 부족한 잡탕 앨범이라 평가절하되었지만, 각각의 곡들은 매우 훌륭하다. 존 본햄의 드럼 연주곡인 "Bonzo's Montreux"와 포스트 펑크적인 진행의 대곡 "Wearing And Tearing", 광기어린 지미 페이지의 기타연주가 돋보이는 "I Can't Quit You Baby" 리허설 버전, 미니멀스러운 리프의 어쿠스틱 곡 "Poor Tom" 등이 눈에 띈다.

7. 해체 이후


밴드 해산 후에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는 제프 벡과 함께 "허니 드리퍼스"라는 밴드를 이끌기도 했고, 로버트 플랜트는 솔로 활동으로도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으며, 지미 페이지는 배드 컴퍼니 로저스, 플랫리스 베이스의 달인 "토니 프랭클린" 등과 함께 "더 펌"이란 밴드를 조직하기도 하고, "콜로세움"의 보컬리스트 "크리스 팔로우" 등과 함께 몇 장의 훌륭한 작품을 내기도 했다. 또 "화이트 스네이크"의 리더 "데이빗 커버데일"과 "Coverdale And Page"란 앨범도 발표했고, 이 앨범에서 레드 제플린적 감성으로 돌아간 음악을 들려주었다.[9][10]

존 폴 존스는 이후 꾸준히 세션계에서 활동하며 R.E.M., "디아만다 갈라스" 등의 앨범에 참여하였고, 후기 킹 크림슨을 연상케 하는 전위적인 프리재즈, 프로그레시브 계열 솔로 앨범들을 발표하였다.

8. 재결성 (?)


레드 제플린의 재결성 여부는 이후 록계에서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으며,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 때 나머지 세 멤버가 모여 레드 제플린의 곡을 연주한 적이 있었다. 이때 드러머는 제네시스의 드러머이자, 솔로가수로 유명한 필 콜린스로, 그가 드러머로 가입하며 레드 제플린이 재결성된다는 루머가 돌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는 않고,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가 "Page and Plant"라는 밴드를 결성해, 중동인도의 민속음악적 느낌으로 레드 제플린의 곡을 재해석한 곡들과 약간의 신곡을 가미한 어쿠스틱 언플러그드 앨범 "No Quarter: Jimmy Page and Robert Plant Unledded"[11]나, 이전의 레드 제플린 취향의 서정적인 블루스 취향이 많이 발현된 "Walking Into Clarksdale" 등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지미 페이지는 서던 록 취향의 신진밴드 "블랙 크로우즈"와 레드 제플린의 곡들을 연주하기도 했다.

2007년 9월 12일, 같은 해 12월 10일에 열린 아틀란틱 레코드사의 공동 설립자로 수많은 뮤지션을 발굴했던 "아흐메드 에트레군 (Ahmet Ertegun)"의 추모 콘서트에 존 본햄의 아들인 제이스 본햄을 드러머로 둔 레드 제플린이 재결성 공연을 갖는다는 소식에 많은 팬들이 기대했고, 이후 공연이 이루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설'의 재결성을 기대했다.

이후 2008년, 지미 페이지가 레드 제플린의 "Gratest Hits 'Mothership'"의 홍보를 위해 도쿄에 방문한 자리에서 '새로운 월드투어'를 계획중이다.'라고 발표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레드 제플린의 공식적인 재결성을 기대하게 되었고, 이후 재결성은 거의 확정적인 듯 싶었으나, 2008년 중순에 로버트 플랜트가 GQ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재결성 투어 및 2007년 공연에서 그가 느낀 불쾌감을 이야기하면서 뭔가 엇나가게된다.

결국 플랜트와의 재결성 협상이 결렬된 페이지와 존스, 본햄은 '뉴 레드 제플린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플랜트 없이 새로운 레드 제플린을 꾸려가려 했으나, 팬들의 적잖은 비난 여론 때문이었는지, 2008년 말에 "프로모터", "하비 골드스미스"와 지미 페이지는 이 계획이 '레드 제플린과 관계없는 새 프로젝트'라고 언급했다. 허나, 이 프로젝트마저 지미 페이지의 매니저 로버트 맨쉬가 "'몇몇 보컬들을 불러 테스트를 해봤지만 밴드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보컬을 찾을 수가 없었다.'라는 말이 나오면서 계획은 완전히 끝났다. 현재 그들은 어떠한 향후 계획이 없는 상태다."라고 밝힘으로서, 재결성에 관한 모든 것들은 현재 완전히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2012년도까지 계속 월드 투어를 하면서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면 재결합만 하지 않았을 뿐 계속 레드 제플린으로서 활동은 하는 중이다.

9. 평가


핫뮤직 편집장이었던 음악 평론가 조성진씨의 의견에 따르면,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록이면서도 록이 아닌 그 무언가이다."

헤비 록의 기조를 지켜나가면서도 고전 뉴올리언스 블루스, 사이키델릭 블루스, 아메리칸 포크록, 브리티시 포크 록, 중동과 인도의 민속음악, 프로그레시브 록, 레게, 뉴웨이브 등 수많은 자양분을 받아들인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언제나 새롭고 시대에 뒤떨어져지 않았으며, 항상 똑같고 지루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다. 어찌보면 항상 엘리트적 입장에서 실험이 너무 지나쳐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오버하지도 않고, 실험성이 부족하여 똑같은 기성품적인 록음악만 만드는 밴드처럼 고루하지도 않고 매우 중도적인 음악을 해왔는데, 이런 면에서 실험과 파격으로 그들의 음악을 계속 급진적으로 변화시켜온 더 후같은 밴드에 비해 평가절하되기도 하고 특히 펑크 록 밴드들에게 엘리트 부자 밴드로 공격당하기도 했다.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레드 제플린의 앨범은 독특한 앨범아트로도 유명하며, 3집과 6집은 커버가 요리조리 접히고 열리고 움직여 다른 모양으로 만들수있는 이트폴드 커버, 5집, 7집, 9집은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커버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힙그노시스"의 디자인으로 이색적인 예술성을 선보인다.

10. 표절 의혹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되려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즉, 오리지널리티의 부족: 수많은 곡들이 표절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그러한 과정들이 자연스레 잊혀지고 결과물만 남았기에 이렇게 전설적인 밴드가 되었을 수 있었지만 냉철하게 바라본다면 장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그들의 대표곡 대부분이 표절 의혹이 있는 곡이 많다. 참고로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관련 내용이 실려있었지만 수정전쟁으로 인해 사라졌다.

● 아래는 표절의혹이 있었던 곡들의 일부에 관한 내용이다.

  • Baby I'm Gonna Leave You : 앤 브레든 (Anne Bredon)의 곡을 사실상 커버한 곡. 앨범 발표 때 크레딧을 지미 페이지만 적었다가 문제가 붉어지자 Bredon/Page/Plant로 수정.

  • Black Mountain Side : 메인 기타의 리프가 영국 포크뮤지션인 Bert Jansch의 "Black Water Side"와 같다. 물이 산으로 바뀌었다

  • Black Dog : 리트우드 맥 (Fleetwood Mac)의 "Oh Well"과 유사. 하울링 울프 (Howlin' Wolf)의 "Smokestack Lighting"에서도 일부 차용.

  • Boggie With Stu : 리치 발렌스 (Ritchie Valens)[12]의 "Ooh My Head"를 살짝 변형시킨 곡. 발렌스의 친척이 고소하려 하자, 곡의 크레딧 일부를 리치의 어머니 Mrs.Valens에게 주었다.

  • Bring It On Home : 윌리 딕슨 (Willie Dixon)의 원곡을 변형시킨 곡인데, 역시나 허가도 안 받고 작곡자도 Plant/Page로 표기, 딕슨 측이 고소하자 크레딧을 줘서 합의를 봄.

  • Custard Pie : Sleepy John Estes With Hammie Nixon의 "Drop Down Mama"와 유사하다.

  • Dazed And Confused : 제이크 홈즈 (Jake Holmes)의 원곡을 야드버즈 시절 페이지가 "I'm Confused"라는 제목으로 바꿔서 연주했고, 다시 가사를 수정해 데뷔앨범에 수록했으나 자작곡으로 표시.

  • Gallows Pole : Leadbelly를 커버한 Fred Gerlach의 버전을 커버. 처음엔 자작곡으로 표기했다가 크레딧을 전통곡 (Traditional)로 수정.

  • Hats Off To (Roy) Harper : Bukka White의 "Snake 'Em On Down"에서 가사를, 동일곡의 Mississippi Fred McDowell 버전에서 기타 연주를 따옴. 역시 처음엔 자작곡으로 표기했는데 재발매판에 수정을 했지만, Bukka White 등에게 크레딧을 준 것이 아니라 전통곡 (Traditional)로 수정.

  • Moby Dick : 여러 곡들에서 짜집기식 표절 의혹을 받았던 곡이다. 드럼 솔로 시작 전 합주부분은 Bobby Parker의 "The Girl I Love"에서, 드럼 솔로부분은 진저 베이커의 "Toad" 드럼솔로를 모델로, 다른 드럼 솔로부분을 George Suranovich의 "Doggone"에서 추가했다고 인정. 그런데 이외 기타리프도 Bobby Parker의 1961년 곡인 "Watch Your Step"과 흡사하다.

  • In My Time Of Dying : 옛날 블루스 곡이었고 블루스 뮤지션인 Blind Willie Johnson이 "Jesus Make Up My Dying Bed"란 제목으로 처음 발표. 이후 밥 딜런이나 록밴드 "Fear Itself" 등에 의해 여러 스타일로 커버됐는데 레드 제플린과의 레코팅은 Josh White의 버전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크레딧을 Page/Plant/Johns/Boham으로 했다.

  • Nobody's Fault But Mine : Blind Willie Johson의 20년대 블루스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 Rock'N'Roll :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의 "Keep A Knockin'"에서 드럼 인트로 등을 따왔고, 특히 70년대 플리우트 맥이 라이브에서 커버한 "Keep A Knockin'" 버전과 비슷하다고 함.[13]

  • Since I've Been Lovin' You : 60년대 사이키델릭 록밴드 Moby Grape의 곡인 "Never"의 가사에서 여러 문장을 따왔다고 한다.

  • Stairway To Heaven : 메인기타리프가 록밴드 Spirit의 Taurus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음. 또 전반주의 진행이 Chocolate Watch Band의 "And She's Lonely"와 비슷하다고 한다. 조니 리버스의 "Summer Rain"와 Cartoone의 "Ice Cream Dreams"에서도 일부를 따온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 The Lemon Song : Howlin' Wolf의 "Killing Floor"를 표절했고, 가사는 로버트 존슨의 "Treveling Riverside Blues"에서 따왔다는 의혹을 받음. 하울링 울프의 출판사가 레드 제플린을 고소하자, Chester Burnett (하울링 울프의 본명)에게 크레딧을 주기로 하여 합의를 봤다.

  • Thank You : 코드진행이 트래픽의 "Dear Mr.Fantasy"와 유사하다.

  • Whole Lotta Love : Willie Dixon의 "You Need Love"를 표절했다며 딕슨 측이 레드 제플린을 고소해서 크레딧을 주기로하여 합의를 보았다.

물론, 레드 제플린이 대단한 밴드임에는 불구하나, 이러한 사실 또한 있었음을 잊지는 말자. 출처 참조

11. 레드 제플린의 앨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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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레드제플린이 헤비메탈을 최초로 시도했다거나 헤비메탈 밴드로 분류되거나 하지는 않는다.(최초로 헤비메탈을 시도한 곡으로 평가받는 것은 비틀즈의 Helter Skelter이다.) 곡 전반에 블루스의 색채가 짙게 묻어있기 때문에 주력 장르는 헤비 블루스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포크계열의 곡도 많다. 대표적으로 Tangerine 이라든지.
  • [2] 레드 제플린이란 밴드명은 일종의 언어유희인데, 그들이 절친한 친구였던 더 후의 드러머 키스 문(혹은 로저 달트리)과 대화하던 중 납(Lead)으로 만든 비행선 (Zeppelin)과 같이 추락할 것(영어에서 "Lead Balloon" (납으로 만든 풍선)이란 공중으로 떠올라야 할 풍선을 무거운 납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성공할 가망이 없는 허황된 계획'이란 의미이다.)이라고 한 말에서 이름을 지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Lead'를 납이라는 뜻의 '레드'로 읽지 않고 지도한다는 뜻의 '리드'로 읽을까봐 'a'를 뺀 "Led Zeppelin"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추락하기는 커녕 엄청 떠버렸다.
  • [3] 이 곡은 록 역사상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온 곡이다.
  • [4] 집을 산 뒤에 알긴 했으나 지미 페이지는 실제로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의 집에서 생활했다. 또한 페이지는 중동인도의 사상, 음악에 심취했다고 한다.
  • [5] Giant's Causeway. "거인의 길"이라는 뜻으로, 북아일랜드 북동쪽 해변에 있는 용암지대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 [6] 이 곡에서의 존 본햄은 그야말로 압권을 달리는 드러밍을 선보인다.
  • [7] 1999년 영화 "고질라"의 OST에 수록된 이 곡의 기타연주로 이름을 올려, 그의 이름이 힙합차트 1위에 오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적도 있다. 이곡의 베이스 연주와 일렉트릭 기타로 만들어 낸 고질라 소리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가 맡았다고 한다.
  • [8]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흑마술을 하는 장면도 나온다고 한다.(...)
  • [9] 이 앨범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요새 그런지, 얼터너티브니 하며 연주실력은 포기하고 대충 질러대며 이미지 메이킹이나 하는 밴드들에게 록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가르쳐주는 좋은 선배의 표본."이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 주다스 프리스트의 "Painkiller"에 대한 평은 록의 본질은 무엇인지 일갈하는 엄한 선배의 표본이다. - Burn지의 리뷰에서 인용.
  • [10] 지미 페이지는 한때 레드 제플린 못지않은 슈퍼그룹 "예스"의 멤버들과 'XYZ'라는 이름으로 뭉쳤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 [11] 사실 이 앨범은 엄밀히 말하면 언플러그드는 아니다. 몇몇곡에서 지미 페이지가 일렉기타를 연주한다.
  • [12] 로큰롤가수로, 50년대를 풍미한 인기스타였으나, 디 홀리와 함께 비행기 사고로 인해 17세의 나이로 단명했다.
  • [13] 참고로, 지미 페이지는 초기 블루스 시절 플리트우드 맥의 열성팬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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