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레이 알렌

last modified: 2015-04-12 18:58:54 by Contributors

Ray_allen_heat.jpg
[JPG image (29.81 KB)]

이름 레이 알렌(Walter Ray Allen)
생년월일 1975년 6월 20일생
196cm (6 ft 5 in)
몸무게 93kg (205 lb)
포지션 슈팅가드
드래프트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 지명
등번호 34번(1996~2007)
20번(2007~2012)
34번(2012~2014)
역대 소속팀 밀워키 벅스(1996~2003)
시애틀 슈퍼소닉스(2003~2007)
보스턴 셀틱스(2007~2012)
마이애미 히트(2012~2014)
수상내역 All-NBA Second Team 1회 (2005)
All-NBA Third Team 1회 (2001)
NBA All-Rookie Second Team(1997)
NBA All-star 10회 (2000-2002,2004-2009,2011)
NBA Three-Point Shootout champion (2001)
NBA Sportsmanship Award(2003)
UPI Player of the Year(1996)
Big East Player of the Year(1996)

Contents

1. 개요
2. NBA 입성 이전
3. NBA 커리어
3.1. 밀워키 벅스
3.2. 시애틀 슈퍼소닉스
3.3. 보스턴 셀틱스
3.4. 마이애미 히트
3.5. 기타

1. 개요

NBA 선수. 만렙찍은 남자 그래서 국내에선 만렙 슈가 만렙횽등으로 불린다.[1] [2] 누구보다도 철저한 자기관리와 모범적인 몸가짐으로 인해 안티가 거의 없고 가족사랑도 훌륭해 선수로써나 인간으로써 존경받는 남자이다. 지금은 레지 밀러를 제치고 3점슛 성공개수 NBA 역대 1위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가장 정석에 가까운 슛폼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폼이 흔들리지 않아 그의 슛폼 사진을 모아놓고 Ctrl + C, Ctrl + V 식의 짤방도 돌아다니는 수준.

2. NBA 입성 이전

5명의 형제중 3번째로 태어난 알렌은 힐크레스트 고등학교를 주 챔피언으로 이끌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후 농구 명문대학중 하나인 유콘, 코네티컷 허스키스로 진학, 빅 이스트 올해의 선수상을 받고, 한 시즌 총득점 대학기록인 1,922점. 3점슛 115개를 성공시키는 등의 활약을 했다. 훗날 코네티컷 대학교에서는 그의 백넘버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3. NBA 커리어

3.1. 밀워키 벅스

Ray_allen_bucks.jpg
[JPG image (74.07 KB)]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 1996년 드래프트에서 알렌은 전체 5순위로 미네소타에 지명되었지만 바로 밀워키가 4순위로 지명한 테판 마베리와 트레이드 되면서 밀워키 벅스에서 루키 시즌을 보내게 된다. 훗날 많은 팬들은 이 트레이드에 대해 아쉬워 하는 분위기가 많은편. 테판 마베리의 커리어가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막판에 몰락한것에 비해, 알렌은 현재까지 꾸준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 하지만 당시 마베리는 전도 유망한 포인트가드이자 차세대 플로어리더로 평가받던 선수였기 때문에 당시 트레이드는 미네소타나 밀워키나 그리 나쁘다고 할 선택은 아니었다.[3]

당시 밀워키에는 1994년 전체 드래프트 1위 출신인 득점 머신 렌 로빈슨, 베이커등 팀내 간판스타들이 있었지만, 레이 알렌은 한경기만 빼고 81경기[4]에 주전으로 출전. 올 루키 세컨드 팀에 당당이 이름을 올리게 된다. 당시 밀워키가 워낙 하위권 팀인데다 스몰마켓팀이었기 때문에 많은 주목은 받지 못했다.

루키 시즌만 해도 이전의 간판스타였던 베이커,빅독에 밀려,공격 3옵션으로 팀내 비중이 그리 크진 않았다.하지만 오프시즌에 시애틀-밀워키-클리블랜드의 삼각 트레이드가 성사되며,빈 베이커는 시애틀로 옮기고,밀워키는 클리블랜드로부터 올스타 포인트가드 테렐 브랜든과 블루칼라워커 타이론 힐을 닫아들인다.

테렐 브랜든-레이 알렌-글렌 로빈슨.밀워키 빅3의 시작은 사실 이 때부터이고,레이 알렌은 프로 2년차인 이 때부터 팀의 공격 1옵션을 맡게 된다.포가-슈가-스포는 극강의 공격력을 가진 선수들이 배치되고,인사이드엔 타이론 힐-어빙 존슨 공격력은 떨어지지만 수비와 리바운드는 좋은 선수들이 버텨주는 라인업이었다.

그러다가 단축시즌인 98-99시즌에 카셀이 합류하면서, 샘 카셀-레이 알렌-글렌 로빈슨으로 이어지는 저 유명한 밀워키의 빅3가 완성된다. 98-99시즌에는 8년만에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팀도 상승세였다. 급기야는 00-01시즌에 50승을 기록하며 지난 10년동안 가장 좋은성적을 기록. 밀워키는 그해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랐다. 상대는 앨런 아이버슨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두 팀 다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을 7차전까지 치르고 올라왔다. 컨퍼런스 파이널 역시 7차전까지 가는 대 접전이었고, 레이 알렌은 평균 27.1득점에 50%가 넘는 3점슛 성공률을 자랑하며 그야말로 신들린 활약을 했으나, 7차전에서 44점을 퍼부은 아이버슨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Big3는 02-03시즌 글렌 로빈슨이 애틀란타로 트레이드 된 걸 시발점으로 해체된다. 레이 알렌 역시 게리 페이튼과 맞바뀌어져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트레이드 된다.

3.2. 시애틀 슈퍼소닉스

Ray_allen_supersonics.jpg
[JPG image (175.48 KB)]


03-04시즌은 부상으로 인해 주춤했지만, 04-05시즌에는 78경기에 출전하고 당시 하위권 전력으로 분류되었던 팀을 컨퍼런스 세미파이널까지 올리는 등 리더쉽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감독이었던 네이트 맥밀란은 레이가 솔선수범 해준 덕분에 내가 감독하기 참 편했다. 라고 인정한 바 있다. 당시 팀에는 이제 유망주 티를 벗고 뛰어난 선수로 거듭난 샤드 루이스가 있었고, 루이스와 함께 팀의 원투펀치로서 활약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때 시애틀의 전력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알렌-루이스 쌍포는 건재했지만 다른포지션이 워낙 빈약했기 때문.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시애틀은 50승을 거두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알렌-루이스 쌍포는 경기마다 40득점+를 합작했고, 골밑은 제롬 제임스와 레지 에반스를 주전으로 쓰면서 팀에 다른 빅맨들을 돌려막는(...)전법을 썼고, 게리 페이튼의 까마득한 대학 후배인 신인 포인트가드 루크 리드노어의 의외의 선전까지 더해졌다. 플레이오프에도 1라운드에서 새크라멘토 킹스를 쉽게 꺾고 올라갔지만 2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패해 탈락했다. 이때 알렌은 브루스 보웬의 집중수비를 받았는데, 워낙 짜증이 났는지 대놓고 브루스 보웬을 비난하기도 했다. 웃긴 사실은 이 두사람이 태어난 곳은 캘리포니아 메르세드로 고향이 같다.(...)

하지만 시애틀도 04-05시즌을 끝으로 다시 몰락해갔다. 알렌과 루이스는 변함없는 활약을 했으나, 팀은 빠르게 몰락했지만 알렌은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다. 그 와중에 라디미르 라드바노비치는 출전시간에 적다고 징징대자 그걸 달래주기고 했다. 06-07시즌까지 시애틀에서 뛴 알렌은 07년 드래프트가 열리던 날.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3.3. 보스턴 셀틱스

Ray_allen_celtics.jpg
[JPG image (39.16 KB)]


당시 많은 팬들은 폴 피어스레이 알렌 콤비의 탄생에 급 흥분한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게 아니라 케빈 가넷까지 오면서 본격적으로 NBA라이브에서나 볼법한 사기라인업을 탄생시켰다.

팀에는 폴 피어스라는 보스턴의 확고한 리더가 있었기 때문에 알렌은 슈터로써 좀더 편하게 농구를 할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전혀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알렌의 경우 빅3 중 나이가 가장 많았고, 양쪽 발목을 수술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브루스 '리' 보웬의 소행이였다.)하지만 알렌은 결정적인 슛으로 폴 피어스 못지않게 팀을 패배에서 구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07-08시즌 39.8%의 높은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했다.

이전까지 알렌은 자신이 뛰었던 모든 팀의 공격 1옵션으로 뛰었던 스코어러였다.하지만 알렌-피어스-가넷 모두 슈퍼스타들이었고 누군가는 공격주도권을 양보해야 했다.여기서 기꺼이 자신의 역할 감소를 받아들인 선수가 알렌이었다.아직 어리고 부족한 론도를 대신하여 볼운반에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까지 도맡고,공격에선 오프더볼플레이에 더욱 주력하기 시작했다.보스턴에서의 알렌부터 본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이,알렌을 원래부터 캐치앤 슛만 하는 슈터로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다.어느 팀에 가든 공격 1옵션에 에이스 역할을 맡으며, 평균 22~25점을 올릴 수 있는 득점원 중 하나였는데 양보한 것이다.

플레이오프에서는 2라운드에서 좀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컨퍼런스 파이널과 파이널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2011-12 시즌 라존 론도와의 불화설이 계속되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한다. 리그 라이벌팀으로 이적한 덕분에 보스턴 팬들에게 비난을 받는 중.

3.4. 마이애미 히트

마이애미 히트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후 2012-13 개막전 상대로 친정팀인 보스턴 샐틱스를 상대하게 되었다. 30분 출장에 19득점 2리바운드 2어시스트의 준수한 기록으로 팀의 첫 승리에 공헌했다. 히트에서는 나이가 나이다보니 이전의 슈퍼스타스러운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지만 벤치멤버로 출장하면서 평균 25.8분을 뛰면서 10.9 득점을 올렸으며 히트의 연승행진과 파이널 진출에 공헌한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파이널 6차전에서는 마지막 5초를 남겨놓고 오펜스 리바운드에 성공한 크리스 보쉬의 패스를 받은 다음 팀의 전체 시즌을 구원하는 결정적인 동점 3점 슛을 성공시켜 마이애미의 2013년 우승의 큰 요인이 되면서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을 증명했다.

2013-14 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었다. 14년 12월 현재 휴가를 즐기고 있고 아직 NBA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한다. 은퇴를 고려중인것으로 보인다.

3.5. 기타

슈팅가드로써 정석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이며 슛,패스,드리블 모두가 다재다능한 만능 플레이어. 슛 폼이 대단히 부드럽고 릴리즈도 빨라, 본래 슛만 치면 '6성슈가'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던 선수. 주로 45도 지역에 자리를 잡고 공을 받아 미드레인지 게임을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며, 돌파는 근본적으로 슛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선택지 정도였지만, 수비가 슛을 막기 위해 달라붙으면 스리슬쩍 제끼고 돌파하여 뜬금없는 덩크를 간간이 보여주었다. 운동능력이 떨어진 이후 덩크는 보기 힘들어졌지만,지금도 간간이 시도되는 돌파에서의 마무리는 매우 출중하다.

또한 과소평가받는 선수중에 하나이다. 그가 전성기였을때는 비인기팀에 있었고 두세번은 더 받아야 정상일 올 NBA팀 수상이 단 두번밖에 있지 않았다. 그는 말년에서야 보스턴 마이애미 같은 명문팀에 들어가서 더 주목받을 기회가 생겼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알렌을 수상실적 때문에 과소평가받는 선수중 한명이라고들 말한다.



보스턴 셀틱스 시절 알렌의 활약만 본 사람은 레이 알렌을 오픈 찬스에서 3점 넣는게 임무인 단순한 캐치앤 슈터로만 생각하겠지만 젊은 시절에는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슬램덩크를 꽂아넣기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냥 슈터가 아니라 일정시간 보조리딩이 가능할 정도로 뛰어난 패싱능력도 갖추었다. 괜히 나이키 에어 조던의 프로젝트에 선택받은게 아니다.

마이클 조던을 존경했던 선수이며, 에어 조던의 스타 육성 프로젝트인 팀 조던의 멤버여서인지, 코트 위에서는 늘 깔끔한 모습을 유지했다. 늘 시합전에 면도를 했다고. 팬들에게 깔끔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늘 체육관에 일찍나와서 연습하고 가장 늦게 집에 들어가는 선수였다. 대학시절때부터 이런 부지런함이 몸에 베었다고 한다. 이러한 레이 알렌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전수(??)받은 것이 라샤드 루이스. 루이스가 올랜도로 이적한 때. 알렌이 올랜도 시즌 첫 원정을 온 때였다. 알렌은 자기가 먼저 왔다고 생각했는데 체육관에 자신보다 먼저온 사람이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가보니 루이스가 있었다고, 루이스는 알렌이 나를 올스타로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다. 라고 했다. 물론 현재 루이스는 연봉 조던이라고 조롱받는 처지...망했어요

지금은 팀 선수단만 이전해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가 된 옛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대한 애정도 상당해서, 시애틀에서 뛰는 동안 지역 사회 공헌도 많이 했고 2007년 소닉스의 연고 이전 계획이 발표되자 이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틀 뒤 보스턴 셀틱스 행. 그래서 2013년에 추진중인 시애틀 슈퍼소닉스 재창단(새크라멘토 킹스의 매입후 연고 이전을 골자로 진행중이다.)시 가장 먼저 시애틀 시민들이 계약하여 은퇴식을 해줄 선수로 레이 알렌을 꼽고 있다.

늘 정해진 식단으로만 식사를 한다고 한다. 그것도 유기농. 이것은 알렌 본인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아들인 워커 알렌이 소아당뇨병에 걸렸던 것도 컸다. 하필이면 그때가 08년 파이널에 열리던 한창때였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워커 알렌은 생후 22개월밖에 안된 아기였다. 그래서 경기하랴 아들 병간호 하랴..5차전에서는 13개의 슛을 던져 9개를 놓치는 부진을 보였다. 앞뒤사정을 모르는 팬들은 알렌이 왜 저러냐? 면서 알렌을 비판(??)했으나 나중에 전후사정을 듣고는 대꿀멍 할수밖에...

아들의 일 이후로 레이는 당분을 줄이고, 식단에 올라오는 재료는 모두 유기농만 고집했다. 담배? 술? 그런건 당연히 하지 않았다. 폴 피어스 마저도 나는 저렇게 정해신 식단으로 살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알렌은 정말 대단한 사람 이라고 칭찬했다.

실제로 커리어 내내 좀 험한일도 겪었다. 양아버지가 전처의 아들에게 청부살인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도 그들이 해를 입히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고. 그럼에도 정작 경기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뛰고 있다. 정말 뛰어난 평정심.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밀워키 벅스 시절. 파이크 리 감독. 덴절 워싱턴 주연의 갓 게임이라는 영화에서 극중 덴절 워싱턴의 아들인 지저스 셔틀스워스 역으로 분했다. 영화자체도 수작이고 레이 알렌도 정식 연기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좋은 연기력으로 호평받았다. 사실 알렌이 맡은 역할이 전미고교 최고의 선수라는 설정도 있지만, 출세밖에 모르고 자신을 발판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며 아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애증을 잘 표현했다는 평.

위에 역할 이름때문에 한때 팀메이트와 팬들에게 지저스 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후에는 2001년 하버드 맨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했다. 주조연은 아니고 단역.
----
  • [1] 만렙+레이 알렌의 포지션인 슈팅가드해서 만렙슈가.당시 인기있었던 온라인게임 프리스타일의 영향이다.
  • [2] 외국에서는 Sugar Ray 혹은 Jesus Shuttlesworth라 불린다
  • [3] 게다가 마베리는 미네소타에서 차세대 에이스로 키우고 있던 가넷과 절친이었기 때문에(둘은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이던 95년에 맥도날드 올스타게임에서 만났으며 이후 매일 통화할 정도로 친해졌다) 당시로선 마베리가 가넷의 짝으로 딱 맞았다. 그러나 97년 가넷이 1억2천만달러짜리 계약을 하자 자존심이 상한 마베리가 "단 1달러라도 적으면 사인 안한다"고 하면서(팀이 당시 1억달러까지는 제시했다고 한다) 결국 NBA를 이끌어갈 차세대 콤비로 기대받았던 가넷-마베리 콤비는 해체되고 만다. 이때 마베리의 대가로 받아온 터렐 브랜든이 부상으로 허무하게 사라진 이후 가넷은 동료들위 지원이 부족해 원맨팀으로 한동안 고생해야했고, 또 마베리 역시 개인성적은 뛰어났지만 가는 곳마다 팀성적이 별로여서 욕을 먹은 것을 생각하면 양측에서 다 아쉬워할 트래이드였다. 사실 득점욕심이 많은 마베리같은 선수ㄴ가 포인트가드로 있으면 다른 동료들이 맞춰주기 힘들지만 케빈 가넷 항목에도 나와 있듯 가넷은 비이기적이기로 유명한 선수라 마베리와 공존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 [4] 한경기는 쥐가 나서...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2 18:58:54
Processing time 0.1863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