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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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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레지널드 웨인 밀러
Reginald Wayne Miller
생년월일 1965년 8월 24일
201cm
체중 88kg
드래프트 1987년 1라운드 11순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지명
등번호 31번
역대 소속팀 인디애나 페이서스
(1987년~2005년)
전 NBA 선수. 18년동안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만 뛴,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

인디애나 페이서스 영구결번
No.31

Contents

1. 스포츠 엄친아 집안
2. 대학시절
3. NBA 커리어
4. 플레이 스타일
5. 플레이오프 역사 및 은퇴
5.1. 1990
5.2. 1991
5.3. 1992
5.4. 1993
5.5. 1994
5.6. 1995
5.7. 1996
5.8. 1997
5.9. 1998
5.10. 1999
5.11. 2000
5.12. 2003
5.13. 2004
6. 영상
7. 이것저것

1. 스포츠 엄친아 집안

레지 밀러는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당시 엉덩이뼈 쪽이 기형이어서 4살때까지 보조기를 차야했다. 보조기를 뗀 후에는 농구의 매력에 빠져 늘 1살 누나인 셰릴과 1대1 시합을 했다고. 참고로 밀러의 형 데럴은 메이저리그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포수로 뛰었고, 여동생인 타미는 배구선수, 그리고 그의 누나 셰릴은 미국 여자농구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였다.



셰릴 밀러는 신장 188cm의 센터로 고등학교 시절 한경기에서 105점을 넣은 기록도 있으며 여자농구 명문 USC에서 뛰었고 84년 LA올림픽 미국 여자농구 금메달리스트이며, 농구 독립리그인 USBL에(남자리그다) 여자선수로써 드래프트 지명을 받는 등 90년대를 대표하는 여자농구 스타이자, 여자농구 올타임 베스트 플레이어에도 10위권 내에 들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는 여자 농구의 전설 of 레전드.

레지는 어렸을 때 장애로 신체조건이 불리했던데다, 누나와 키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던 어렸을때 누나와 1대1 시합을 하면 아무리 돌파를 잘해도 쫓아온 누나에게 블록 슛을 먹었는데 하도 당하다보니 누나를 1대 1로 상대할때 멀리서 최대한 빠른 타이밍에 슛을 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잡자마자 바로 던지는 광속의 릴리스 타이밍을 유지하는 슈팅폼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슈팅폼은 정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슈팅 후 양팔이 크로스되는 특이한 모션으로, 다른 선수보다 공에 스핀이 별로 안들어간다. 릴리스가 매우 빨라서 팔꿈치가 펴지는 것과 동시에 공이 날아가며, 슬로우 모션으로 보지 않으면 손목 스냅이 잘 안보인다. 그런 퀵릴리스에 특화된 폼에 근육이 잘 붙지 않던 체질때문에 한참 마이클 조던의 영향으로 힘과 기술을 고루 갖춘 스윙맨들이 등장하던 무렵 역으로 드리블링이나 몸싸움을 이용한 포스트업 기술을 익히기보단 경기 내내 오프 더 볼 무브로 주구장창 뛰어다니면서 중요한 순간 갑툭튀해 3점슛을 성공시키는 특유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2. 대학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농구명문인 UCLA에 입학한다.[2] 레지는 과거 1960년대 초반에 UCLA를 2연패로 이끌어냈던 故월트 해저드 감독의 가르침을 받고 2학년때 팀을 NIT챔피언쉽에 이끌어 우승을 일궈냈고, 3학년때는 PAC-10지구 정규시즌 우승도 이끌어냈다. 졸업을 앞두고는 카림 압둘 자바에 이어 학교 통산득점 2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NBA드래프트를 신청한다.

3. NBA 커리어

레지 밀러는 1987년 드래프트에서 데이비드 로빈슨, 아몬 길리엄, 데니스 홉슨, 레지 윌리엄스, 스카티 피펜, 케니 스미스, 케빈 존슨, 올덴 폴리니스, 데릭 매키, 호러스 그랜트에 이어 전체 11순위로 인디애나 페이서스에 지명된다. 많은 인디애나 팬들은 인디애나에서 태어났고 인디애나 대학을 나온 홈타운 보이[3]인 슈팅 가드 스티브 알포드의 지명을 기대했기 때문에 밀러가 지명되자 심한 야유를 보냈고, 201cm 88kg라는 밀러의 깡마른 체격은 거친 NBA에서 살아남기엔 불안해보였기에 더욱 더. 그러나 페이서스의 선택이 옳았음은 곧 증명되었는데, 레지 밀러는 18년 동안 페이서스에 헌신하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반면, 알포드는 2라운드 26위로 지명되어 4시즌간 백업선수로 이런저런 팀을 전전하다 은퇴하게 된다.

루키 시즌 밀러는 슈팅가드 존 롱의 백업으로 뛰었으며, 2년차부터 스타팅 멤버가 되어 은퇴할 때까지 계속 주전으로만 출전했다.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1976년부터 1986년까지 플레이오프에 2번 밖에 진출하지 못한 약체였으나, 밀러가 3년차 되던 해인 1989년부터 은퇴 시즌인 2004년까지 딱 한번(1996년)을 제외한 전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하며 오늘날까지 가지고 있는 '은근히 강팀'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 시기 동안 컨퍼런스 파이널 5회, 파이널에 1회 진출했는데 결국 우승하지는 못했고 이는 밀러의 커리어에 가장 큰 한으로 남은 부분. 패트릭 유잉뉴욕 닉스에게 2번, 샤킬 오닐과 페니 하더웨이의 올랜도 매직에게 한번,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에게 한번,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L.A.레이커스에게 한번, 배드보이즈 2기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한번 가로막혔고 그 중 4-3 풀세트까지 가서 진게 3번, 4-2로 진게 3번이다.

레지 밀러는 NBA역사상 최초로 3점슈터로써 스타가 된 인물이다.[4] 79~80시즌부터 NBA에 도입된 3점슛 제도는 초창기만 해도 3점슛 제도를 먼저 실시한 ABA에서 뛴 선수가 아니라면 매우 생소한 룰이었고 아직까지 기존 제도에 익숙했던 선수들이 농구의 절대 명제중 하나인 골대 가까이서 쏴라라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옵션이 아니었다. 레지 밀러의 2년차 시즌인 88~89시즌에야 뉴욕 닉스가 최초로 팀 합계 1000개 이상을 시도하는 파격적인 전략을 시도하기 전까지 8년간 NBA 팀 평균 3점슛 시도는 연간 300회 내외였다.(지금은 팀 평균 3점슛 시도는 1700회 가까이 되며, 전문 슈터들은 한시즌에 500회 이상은 던진다.)

그리고 그때부터 레지 밀러는 매년 300개 이상의 3점을 던지는 3점 전문슈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3점슈터로 평균득점 18~20점대를 기록하며 스타플레이어로 부상한다.

18년에 걸친 그의 커리어 통산 성적은 평균 18.2점 3.0리바운드 3.0어시스트, FG 47.1% 3P 39.5% FT 88.8%. 시즌 커리어 하이도 평균 24.6점(1989년)으로 보통 정규 시즌 19~20점의 평균 득점을 기록했고 꾸준하기는 했지만 슈퍼스타치고는 그렇게 고득점을 올리던 선수는 아니었다. 개인상 수상 실적도 전혀 없고 All-NBA 3rd팀에 3번. 올스타에 다섯번 선정된게 고작이다. 한때 3점슛 시도/성공개수 NBA통산 1위였다가 이것도 레이 알렌에게 기록이 경신되면서 2위로 내려갔다. 콩라인?? 이때문에 스탯과 수상실적을 위주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는 '과대평가된 선수'로 불리는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5]

밀러가 역대 최고의 슈터 중 하나이자 레전드인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일단 가장 큰 이유는 플레이의 임팩트이다. 정규 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 특히 강했으며[6], 긴장감이 높고 중요한 순간일수록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자주 보여주었다. 정규 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서, 1/2/3쿼터보다 4쿼터에서, 점수차가 많이 나는 게임보다 시소게임에서 더 높은 집중력을 보여주었던 진정한 에이스. 어쩌다 몇번 그러면 그냥 뽀록인가보다 하겠지만 유명한 4쿼터에만 25점 넣어 역전승, 8.9초 동안 8점 넣어 역전승을 위시한 다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다보니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어이자 플레이오프 명장면 제조기로 명성을 날렸으며 동명의 맥주 광고에서 따온 밀러 타임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전에 NBA감독을 대상으로 클러치 슛을 맡길만한 선수를 설문조사하였을 때 대부분의 감독들이 '역전승하는데 2점이 필요하면 마이클 조던을, 3점이 필요하면 레지밀러에게 슛을 맡기겠다'라고 답하였을 정도로 승부처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또한 승부근성과 투지, 리더십은 동 시기의 마이클 조던에 비견될만 했으며 18년이라는 세월 동안 인디애나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팀 리더로서 한결같은 헌신을 보여주며 명예롭게 은퇴한 점 또한 높이 평가받는다.

4. 플레이 스타일

레지 밀러의 플레이 스타일은 만화 슬램덩크의 캐릭터 정대만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정대만이 만화에서는 기술적으로 서태웅에 비견되는 만능형의 선수인데 반해 실제 레지 밀러는 만능형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빠른 릴리스의 3점슛외엔 그다지 장점이 없는 선수였다. 키는 2번치고는 장신이지만 볼 핸들링이 뛰어나지는 못했고, 마른 체격과 평범한 스피드 때문에 상대의 밀착수비때는 돌파나 패스에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수비력 역시 근성은 있지만 대인마크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물론 수비나 돌파, 패스에서 특출한 강점은 보이지 않았다 뿐이지 그렇다고 딱히 약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패스 센스도 꽤 좋은 편이었고 근성있는 수비수라 마크맨을 정말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허슬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48분 내내 하프코트 전체를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3점슛.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스크린을 타고 돌아다니며 순간적인 노마크 찬스를 만들고, 패스를 받아 빠르게 풀업점프슛을 날리는 오프 더 볼 무브(Off the ball move)는 역대 NBA 최고로 평가 받는다. 슬램덩크의 또다른 3점 대마왕 신준섭이정환의 알고도 못막는 페네트레이션 이후 킥아웃으로 3점슛을 성공시키는 반면, 레지 밀러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팀 전략상 뛰어난 킥아웃 패스보다는 빅맨의 무한 스크린과 밀러의 운동량을 바탕으로 한 3점슛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산왕전에서 이젠 림밖에 보이지 않는 체력 떨어진 정대만의 플레이와 유사.

'동네 한바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플레이스타일은 외곽에 머물러있다가 노마크 상황에서 킥아웃 패스를 받아 오픈 3점을 쏘는 받아먹기와는 달리 높은 BQ, 순발력, 빠르면서 정확한 슈팅 능력이 요구되어 이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선수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역대로 따져봐도 밀러 수준에 가깝게 오프 더 볼 무브를 구사할 수 있다고 평가되었던 슈터는 리차드 해밀턴, 레이 알렌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플레이 스타일을 슈터의 로망으로 생각하는 팬들도 꽤 많다. 이런 슈터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던 래리 브라운을 만나서 스타일을 확립한 것도 밀러의 선수시절 행운 중 하나.

대충 이런 류의 플레이. 1998년 플레이오프 시카고 불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게임 위닝샷으로, 인사이드에서 뛰어나오며 릭 스미츠의 스크린을 이용해 론 하퍼를 떨쳐내고 스위치된 마이클 조던을 노골적으로 밀쳐버린후(...)[7] 인바운드 패스를 받아 3점슛을 성공시킨다.[8]

또한 어렸을때부터 누나와의 1대1을 통해 다져진 개인기도 의외로(?) 괜찮은 편이라, 치고 들어가다가 날리는 요상한 미들슛이나 뜬금없이 날리는 장거리 3점, 돌파 후 멋없는 레이업 또는 작대기 덩크라도 종종 보여준덕에 공을 들었다고 방심하긴(...) 어려운 선수였다. 특히 페이크 낚시 능력이 좋았다. 페이크 후 파울 유도를 통해 자유투를 얻어내는 실력이 무척 탁월했는데, 솔직히 Flopping(헐리우드 액션)이 심한 선수 중 하나였고 후에 밀러 본인도 자기가 리그 최고의 Flopper였다고 시인한 바 있다(...) 어쨌든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거의 90%에 가까운 탁월한 자유투 슈터였기 때문에 일단 자유투를 얻어내기만 하면 거의 득점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리딩 가드 스타일의 플레이를 거의 하지 않았고 볼을 끄는 타입도 아니라 볼 소유 시간이 매우 짧았고 의외로 슛을 많이 던지는 선수가 아니었다. 경기 당 슛 시도 회수로 보면 동 시대의 라이벌 조던은 22.9회인데 비해 밀러는 12.6회에 불과하고, 밀러와 곧잘 비교되는 레이 알렌은 15.6회이다. 팀의 넘버원 득점원인 슈팅가드치고 난사 or 볼 호그 기질이 없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인데 그렇게 공을 적게 만지면서도 필요할 때는 반드시 해결사 역할을 해주었다는 점이 그의 매력이라고 하겠다.

성격이 불같고 트래쉬 토킹에 일가견이 있어서 마이클 조던, 게리 페이튼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트래쉬 토커로도 유명했다. 특히 스파이크 리와의 설전은 유명하다. 밀러 전성기의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패트릭 유잉이 이끌던 같은 컨퍼런스의 뉴욕 닉스와는 그야말로 숙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치고 받고 물고 물리는 관계였는데, 닉스의 광팬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는 늘 관중석 앞자리에서 레지 밀러를 도발했고 그러면 밀러는 이에 지지 않고 슛을 던져 성공시킨후 스파이크를 데꿀멍시키는게 주 패턴.

5. 플레이오프 역사 및 은퇴

5.1. 1990

레지의 첫 번째 플옵 진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3전 전패.

5.2. 1991

1990/91시즌 도중에 감독이 Dick Versace에서 밥 힐[9]로 변경되는 와중에도 플옵 진출.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초반에 2승을 거두면서 선전했으나, 5전 3승 2패로 탈락.

5.3. 1992

이때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셀틱스에게 설욕하려 했으나, 3전 전패로 광탈.

5.4. 1993

뉴욕 닉스에게 3승 1패로 탈락. 이로 인해 밥 힐 감독이 경질됨.

5.5. 1994

1994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뉴욕 닉스와 맞붙게 된 페이서스. 시리즈는 2-2 타이를 이룬 상황에서 5차전은 뉴욕 홈구장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다. 페이서스는 3쿼터까지 58-70으로 크게 뒤지고 있었고 이때까지 밀러는 겨우 14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스파이크 리는 레지 밀러에게 "니가 3점 빼고 뭘 할줄 아는 게 뭐 있냐? 니한테 연봉 처먹이는 인디애나도 한심하지"라며 야유를 보내고 있었는데, 빡친 레지 밀러는 스파이크 리에게 손가락 4개를 펴보이면서 Choke Sign(목조르는 시늉)을 보낸다. 즉 '4쿼터에 님 좆될거임'이란 뜻. 그리고 닉스는 4쿼터에 35-16으로 털리면서 실제로 좆이 됐고, 그 35점 중 25점을 밀러가 혼자 넣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스파이크 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What about Spike Lee?)라는 질문에 "스파이크 누구라고요?"(Spike who?)라고 디스.
밀러의 이 경기 성적은 39점 6어시스트, FG 14-26 3P 6-11 FT 5/6. 4쿼터 25점은 역대 플레이오프 4쿼터 최다 득점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10]


그러나 이 시리즈 자체는 7차전까지 가서 페이서스가 졌다.

5.6. 1995

94년 드라마를 썼던 닉스와 페이서스가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다시 붙었다. 경기장은 역시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1차전에서 페이서스는 게임 종료까지 단 16.9초를 남기고 99-105로 6점 뒤지고 있었고, 상식적으로 역전이 나올 수가 없는 상황에서 밀러는 인바운드 패스를 받자마자 3점을 넣고, 닉스의 인바운드 패스를 스틸하자마자 3점 라인으로 나가 다시 3점을 넣고, 닉스 자유투 2개가 실패한 뒤 리바운드를 잡고 파울을 당해 자유투 2개를 넣었다. 총 8점을 넣어 107-105로 역전시키는 동안 걸린 시간은 8.9초. 밀러는 31득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 4스틸, FG 7-18 3P 3-7 FT 14-15를 기록했다.

이 퍼포먼스는 트레이시 맥그레디가 2004년 12월 9일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정규 시즌 경기에서 33초 동안 13점을 몰아 넣으며 역전승을 이끌어낸 "티맥 타임"과 함께 한 명의 선수가 역전을 만들어낸 가장 쇼킹한 경기로 꼽힌다.


이 시리즈에서 역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으로 뉴욕 닉스를 꺾고 [운명의] 전년도의 복수를 한 인디애나였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샤킬 오닐과 페니 하더웨이가 버티는 올랜도 매직에게 3-4로 패배한다.[12]

5.7. 1996

밀러는 시즌 종료 단 5게임을 남겨두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경기에서 수비수와 충돌, 눈 주위 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는다. 에이스를 잃은 페이서스는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2-2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게 되었고, 안되겠다 싶었는지 밀러는 5차전에 부상을 무릅쓰고 안면 보호대를 찬채 출전을 강행. 그러나 29점을 올린 밀러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팀은 87-89로 패배하여 1라운드 탈락한다.

5.8. 1997

감독 래리 브라운과의 불화로 포인트가드 마크 잭슨이 덴버 너게츠로 트레이드되어 버리고 레지 밀러에 이은 팀의 2옵션이었던 센터 릭 스미츠가 부상으로 단 30경기밖에 출장을 못하는 등 로스터에 큰 균열이 생긴 해. 이로써 페이서스는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라는 수모를 겪는다.

5.9. 1998

전년도의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래리 브라운이 물러나고, 신임 감독으로 래리 버드가 임명된다. 동시에 마크 잭슨이 복귀하고 스몰 포워드로 크리스 멀린을 영입, 릭 스미츠(C), 데일 데이비스(F), 크리스 멀린(F), 레지 밀러(G), 마크 잭슨(G), 백업 멤버로 트래비스 베스트, 제일런 로즈, 앤토니오 데이비스가 버티는 역대 최고의 끈끈한 라인업을 구축하게 된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2라운드에서 뉴욕 닉스를 차례로 꺾고 좋은 우승 기회를 잡은 페이서스. 밀러는 닉스와의 4차전에서 종료 5초전 동점 3점을 꽂아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가고, 총 38점을 득점하며 팀의 승리를 이끈다. 이 경기도 뉴욕 홈에서 열린 경기였다.

그러나 하필 이 시기가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데니스 로드먼의 불스 왕조 시대였다(...)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로 꼽히는 97-99 시카고 불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벌인 인디애나는 7차전에서 시종일관 접전을 펼쳤으나, 결국 83-88로 분패하고 만다. 이 시리즈 4차전에서 밀러의 종료 0.7초전 역전 3점슛이 나왔다.

5.10. 1999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피차 지긋지긋한 뉴욕 닉스에게 4-2로 패배(...)

5.11. 2000

또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뉴욕 닉스를 만난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날아다니며 1999년의 복수를 한 밀러와 페이서스는 드디어 NBA 파이널에 진출한다!

그런데 하필 또 이 시기가 샤킬 오닐코비 브라이언트의 레이커스 왕조 시대... 시리즈의 분수령이 된 4차전에서 연장전 끝에 118-120으로 패배한 인디애나는 2-4로 반지를 내주게 된다. 그리고 이 때가 90년대 페이서스 전성기를 이끈 라인업의 마지막 해였다. 래리 버드는 등부상 때문에 감독직 수행을 계속 하는 게 무리였고. 릭 스미츠와 크리스 멀린은 은퇴 직전이었으며 밀러도 이미 35세를 넘기고 있었다.

2001년부터 리빌딩에 들어간 페이서스는 레지 밀러와 제일런 로즈를 제외한 주전이 모두 빠졌고 2003년까지 3년 연속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 영입된 저메인 오닐, 론 아테스트, 자말 틴슬리 등이 점차 성장해 나가며 다시 성적이 점차 상승하게 된다.

5.12. 2003

2003년 아이재이아 토마스에서 릭 칼라일로 감독이 바뀐 페이서스는 61승 21패로 NBA 정규 시즌 1위를 찍고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다시 진출하지만, 배드보이즈 2기로 불리는 천시 빌럽스 - 테이션 프린스 - 라쉬드 월리스 - 벤 월러스 - 리차드 해밀턴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2-4로 패한다.

5.13. 2004

39세가 된 레지 밀러는 올해가 마지막 해임을 밝힌다. 그러나 이미 동부 No.1 센터로 성장한 저메인 오닐과 리그 최고의 수비형 SF 론 아테스트 등이 버티고 있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컨텐더 팀으로서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밀러가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마지막 좋은 기회. 그러나 시즌 초반에 론 아테스트의 관중 폭행 사건이 터지면서[13] 팀 주전 5명 중 3명(론 아테스트, 저메인 오닐, 스티븐 잭슨)이 출장정지를 당한다. 아테스트는 73경기(즉 시즌 전 경기), 오닐은 15경기, 잭슨은 30경기. 시즌 초반에 벌어진 일이라 그야말로 우승은 커녕 플레이오프 진출도 못할 판에 나머지 주전 2명인 틴슬리와 포스터는 부상까지 당한다. 릭 칼라일 감독은 10년 전에나 쓰던 39세의 노장 레지 밀러를 공격 1 옵션으로 쓰는 오래된 전술을 다시 꺼내 들었고, 레지 밀러는 인디애나에 다시 돌아온 데일 데이비스와 함께 망한 팀을 추스려 44승 38패의 성적으로 동부 컨퍼런스 6위를 기록, 팀을 플레이오프에 끌어 올린다.
이 시기의 레지 밀러는 평균 20득점을 기록하며, 3월 18일에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레이커스를 상대로 39점을 넣는 등 전성기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4]

그리고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애틀란틱 디비전 1위팀 보스턴 셀틱스를 꺾었으나, 전년도에 만났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2승4패로 패해 2라운드에서 탈락한다. 레지 밀러의 마지막 경기였던 2005년 5월 19일, 콘세코 필드하우스에서 열린 시리즈 6차전에서 그는 4-8 3점슛을 포함 11-16 필드골을 넣으며 27점을 기록한다. 승부가 결정되고 경기 종료 15초가 남은 상황에서 레지 밀러는 교체되어 벤치로 들어갔고, 디트로이트 감독이자 전 인디애나 감독이었던 래리 브라운은 추가 타임아웃을 불러 레지 밀러의 명예로운 은퇴를 기념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홈관중들, 동료, 코치, 상대팀 디트로이트 선수들 모두 퇴장하는 전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내주었으며,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밀러 본인이 얘기한 "사회 초년생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까지의 농구인생"이 마무리 되었다.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관중들은 모두 기립, 'Thank you Reggie'라고 써 있는 노란색 플래카드를 치켜들었고 코트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으며 많은 인디애나 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순간을 NBA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레지 밀러가 전성기에 활약하던 당시에는 그를 폄하하거나 싫어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대부분 존경 모드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면 사람에게 끝맺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90년대에 밀러라면 치를 떨었던 숙적 중의 숙적, 스파이크 리와 뉴욕 닉스 관중들은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뉴욕닉스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밀러에게 일제히 박수를 보내며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6. 영상


커리어 Top 10 Moment

10위 : 1992년 정규 시즌 vs. 샬럿 호네츠, 커리어 하이 득점 게임. 57pt 5rb 8ast를 기록.
9위 : 2005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 3차전 vs.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게임 위닝 샷
8위 : 2000년 NBA 파이널 3차전 vs. L.A. 레이커스, 33득점
7위 : 2000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5차전 vs. 밀워키 벅스, 1점차로 페이서스가 신승한 가운데 밀러는 플레이오프 커리어 하이 41점을 기록하며 4쿼터 페이서스 득점 25점 중 18점을 올림.
6위 : 1998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 4차전 vs. 뉴욕 닉스, 경기 종료 5초를 남기고 동점 3점슛을 꽂으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가져가고 총 38점을 득점하며 페이서스를 승리로 이끔.
5위 : 2000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 vs. 뉴욕 닉스, 3쿼터까지 62-62 동점이었으나 4쿼터를 31-18로 페이서스가 압도하며 NBA 파이널 진출. 밀러는 총 34점 중 4쿼터에만 17점을 득점.
4위 : 2002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5차전 vs. 뉴저지 넷츠, 40피트짜리 버저 비터 동점슛으로 1차 연장을 만들고, 1차 연장 종료 3초전 동점 드라이브 인 덩크를(그것도 In Your Face로) 성공시켜 2차 연장을 만들어냄. 밀러는 총 31점을 득점하였으며, 옥에 티는 2차 연장에서 졌다는 거(...)
3위 : 1998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vs. 시카고 불스. 경기종료 0.7초 전 인바운드 패스를 받고 턴어라운드 역전 3점슛.
2위 : 1995년 동부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 1차전 vs. 뉴욕 닉스, 유명한 8.9초 동안 8점 퍼포먼스.
1위 : 1994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 vs. 뉴욕 닉스, 위에서 언급한 'Spike who?' 경기로, '4쿼터에만 25점' 퍼포먼스.



마지막 경기
이렇게 명예로운 은퇴 경기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다.





7. 이것저것

대인배속성도 가지고 있다. 일런 로즈가 팀에 합류하고 나서, 그가 뛰어난 활약을 펼치자 "이제는 그가 우리팀의 제 1공격 옵션"이라고 하면서, 팀내 에이스 자리를 내주었고, 저메인 오닐이 합류했을때도 별다른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성장할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주었다.[15] 오오 대인배 오오.

마이클 조던처럼 돌파, 포스트업 플레이, 슈팅에 모두 능한 만능형 스윙맨이 NBA의 대세가 되면서 레지 밀러와 같은 퓨어 슈터 타입의 슈팅 가드는 이후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며, 마이클 레드나 리처드 해밀턴이 그나마 비슷한 스타일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레지 밀러의 통산 3점슛 성공 개수 기록을 깬 레이 앨런의 경우도 '슛을 특히 잘하는 만능형 플레이어'에 가깝다.

은퇴후에는 TNT농구해설가로 맹활약했다. 한때 보스턴 셀틱스가 빅3를 결성하고 나서 다른선수를 영입하려 했을때 그의 복귀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밀러는 복귀하지 않고 현재까지도 TNT해설가로서 활동중.

인디애나 페이서스 구단의 대부분 역대1위 기록을 다 가지고 있다. 통산 출전경기수 1위, 역대출전시간 1위, 필드골 시도개수 1위, 필드골 성공개수 1위, 3점슛 시도/성공 개수 1위, 자유투시도/성공개수 역대 1위, 통산 총 어시스트 개수 역대 1위, 총 스틸개수 역대 1위, 역대 총 실책개수 1위(...), 역대 총 득점 1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역사상 최초의 2만득점이상 득점자, 인디애나 페이서스 역대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 보유자(57득점) 등등. 가히 페이서스의 레전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뽑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드림팀 3). 그전에는 1994년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참가, 미국이 우승하는데 일조했다.

그의 뛰어난 3점슛 능력에 대한 일화 하나. 하루는 밀러가 슛 연습을 하는데 평소와는 달리 슛이 연달아 실패했다. 그러자 밀러는 즉시 체육관 관리인을 불러 골대높이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했고, 관리인은 측정결과 골대높이가 규정보다 높다는 걸 알고 골대높이를 다시 조절해주었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도사수준.

개성강한 선수였지만 별명이 없었다. 국내팬들도 그를 딱히 별명으로 부르는 이는 없었다. 밀러의 커리어 막판에 그를 "밀러옹"이라고 부르는게 고작.

밀워키 브루어스라이언 브론과 친분이 있는 옆집 아저씨(...)다. 라이언 브론이 미친듯이 달리다 넘어졌을 때도 경기장에서 기립박수를 보내줬으며 약물 양성 파동으로 곤욕을 치를 때도 브론을 믿는다며 응원을 보내줬다. 하지만 결국 브론은 레지를 포함한 만인의 뒤통수를 치게 되는데... 브론 항목 참조.

2012년 9월 7일. 돈 넬슨, 랄프 샘슨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입성 연설에서 팬들과 동료들 그리고 함께 경기했던 상대팀 선수들을 일일히 거론하면서 지난 선수시절의 추억을 회상했다. 특히 그는 "이 자리에 역대 최고의 선수가 세 명이 있다.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그리고 우리 누나." 라고 말하면서 당시 그곳에 구경온 모든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NBA 공식홈페이지에서는 그의 얼굴을 나흘동안 메인화면에 올리면서 전설에 대한 예우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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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장면이 바로 후술할 명장면 3위에 나오는 97~98 ECF 4차전 0.7초 결승 3점슛 직전의 인바운드 상황이다.
  • [2] 그런데 정작 누나인 셰릴은 우클라의 원쑤 USC를 다녔다.
  • [3] 여기엔 팬들의 고향 선수사랑도 있지만, 인디애나가 NBA 최악의 스몰마켓인데다 주변 환경도 별로라 일류 스타급 선수들이 뛰기를 꺼려하는 프랜차이즈라서라는 안습한 사실이 숨어있다.
  • [4] 래리 버드의 경우 역대 최고의 슈터 중 한명이지만 당시만 해도 스몰포워드는 지금보다 훨씬 골밑에서 플레이하는 빈도수가 잦았다. 지금은 한시즌에 삼점슛 백개를 성공시키는 빅맨도 가끔나오는데, 당시 버드는 한 시즌에 삼점슛 백개를 시도하지도 않은 적이 대부분이었다.
  • [5] 반대로 농구쪽 세이버매트리션들은 밀러를 과소평가의 대명사로 본다. 예를 들어 밀러는 3점슛과 자유투 시도와 성공을 보정한 야투율인 True Shooting 퍼센트에서 NBA 역대 6위에 올라있는 고효율의 슈터이며, 이런 스탯분석을 통해 추정한 윈쉐어 모듈을 적용할 경우, 공격쪽 윈셰어는 역대 7위로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보다도 높은 엄청난 슈터중 하나다. 다만 수비에서 많이 까먹는 편.
  • [6] 정규 시즌 평균 득점은 앞서 말했듯 24.6점이 커리어 하이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27점, 29점, 31.3점, 31.5점 등의 평균 득점을 기록했다
  • [7] 밀러는 명예의 전당 연설에서 "그래 마이클, 내가 민 게 맞네. 근데 자네도 그런 적 많잖아? 쌤쌤이지." (Yeah michael I did push you,too. but i've seen you doing it so may other times to so many other players. I figured it was OK.) 라고 이 플레이가 파울이었음을 시인한 바 있다. 다만 조던과의 차이점이라면 조던은 가드치고 힘이 굉장히 세고 체격이 탄탄해 심판 몰래 한손으로 슬쩍 밀쳐도 수비수들이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92-93 파이널에서 속공상황서 스핀무브후 선즈의 마크맨 대니 에인지를 한 손으로 가볍게 치워버리고(...) 골밑 돌파를 성공시키는 장면이 대표적.) 밀러같은 경우 본인보다 무겁고 힘이 월등한 조던을 떨쳐내기 위해 누가봐도 대놓고 밀었다. 밀러는 후에 은퇴선수들이 모여 수다떠는 nba open court란 방송에서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왠만해서는 공격자 파울이 불리지 않는다는 걸 염두에 뒀다"고 설명한 바 있다.
  • [8] 영상을 끝까지 보면 알겠지만 슛을 성공시킨 레지 밀러 이하 모든 선수들과 관중들이 흥분하고 펄쩍펄쩍 뛰고 있었지만 당시 감독인 래리 버드는 얼굴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냉정한 모습으로 선수들을 불러들였다. 왜냐하면 이 골을 성공시켰을 때 아직 0.7초가 남아있었고 불스는 바로 작전타임을 불렀기 때문. 이 상황에서 불스가 할 작전은 누구다 다 아는 그거. 플레이가 재개되고 당연하게 공은 그분의 손으로 들어갔으나 림이 그분이 쏜 슛을 외면했다. 끝까지 방심하지 않는 래리 버드의 냉철함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 [9] 샌안토니오 감독 시절 데니스 로드맨에게 '쪼다'라고 까인 그 사람 맞다(...).
  • [10] 1위는 87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포인트가드 슬리피 플로이드가 기록한 29점
  • [운명의] 장난인지 전 시즌과 똑같은 구도로 7차전이 뉴욕에서 열렸으며, 마지막 몇초를 남겨두고 페이서스가 근소한 리드를 잡은것도 동일했으며, 닉스의 마지막 공격을 에이스 센터 패트릭 유잉이 한것도 똑같았다. 다만 차이는 94년에는 유잉이 자유투라인 부근에서 슛을 성공시켜 극적으로 닉스가 승리를 거뒀으나 95년에는 유잉이 특유의 큼직한 스텝을 밟고 레이업을 했으나 림을 돌아나오는 바람에 졌다. 덩크 정도를 제외하면 레이업이 가장 성공률이 높은 슛이란 걸 감안하면 이 장면도 유잉의 수많은 불운를 상징한다고 할수 있다.
  • [12] 그런데 올랜도는 파이널에서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 로케츠에게 4-0으로 스윕당했다(...)
  • [13] 이 사건으로 론 아테스트에게는 밀러의 은퇴 시즌을 망친 놈이라는 좋지 않은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 [14] 비슷한 시기 코비 브라이언트의 인터뷰를 보면 가장 막기 어려웠던 선수는? 이라는 질문에 '레지 밀러'라고 답한 적도 있다.
  • [15] 저메인 오닐은 1996년 드래프트 당시 코비와 함께 초고교급 선수르 주목받던 선수였다. 그러나 스타군단 포틀랜드에서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인디애나로 트레이드 되었는데, 인디애나에서 꽃을 피웠다. 레지 밀러가 팀내 발언권이 큰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오닐의 영입을 반대하고 다른 베테랑을 영입하라고 할수 있었는데 밀러는 오히려 오닐이 성장할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훗날 오닐은 레지 밀러의 한경기 최고득점이자 팀의 한경기 최고득점 기록인 57득점을 깨지않고 딱 55점만 넣고 벤치로 들어가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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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3 0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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