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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 바웬사

last modified: 2015-04-13 18:33:55 by Contributors

Lech Walesa (레흐 바웽사)

< 1981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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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 로널드 레이건 레흐 바웬사 1982 - 컴퓨터

< 198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
(ɔ)

Photograph: JonathunderMedal: Erik Lindberg (1873-1966)

from
1982 - 알바 뮈르달 레흐 바웬사 1984 - 데즈먼드 투투


1943년 9월 29일 폴란드 브워츠와베크(Wloclawek) 생.

폴란드의 전직 대통령이자 노동 운동가.

폴란드 북부 단스크-레닌 조선소에서 조선공으로 일하던 중, 1980년 폴란드 정부가 공장의 노동자들을 단체로 해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웬사는 이에 저항하면서 실질적 노동자 대표로 그단스크-소포트-그디니아 지역의 노동자 총 파업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 공산주의 체제가 허용하지 않는 자율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 노조는 폴란드 연대노조(솔리다르노시치)라고 불리고 바웬사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연대노조가 워낙에 강력했던지라 정부조차 협상 대표로 바웬사를 인정했다. 하지만 주변 동유럽 국가에 혼란을 막기 위해 소련의 압력을 받은 폴란드 정부는 1981년 12월 13일에 계엄령을 선포, 바웬사 등 노동운동가들을 체포하였다. 그 후 바웬사는 1년간의 가택연금을 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연대노조를 지원하는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공산권 간에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교황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토로했다.

가택연금 직후 프랑스 파리로 자신의 자서전을 몰래 보내 〈희망의 길 Un Chemin d'Espoir> 를 발매했으며 이는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련 등의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폴란드의 사회운동가로 손꼽히던 그는 1989년 폴란드의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에 기여했고 1990년2대 폴란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참고로 초대 대통령은 이치에흐 야루젤스키로 공산 폴란드 시절 육군 참모총장을 거쳐 서기장을 지냈다. 1980년대 말 협상 끝에 자유노조가 인정되기 이전 자유노조를 강경하게 탄압한 사람이 아루젤스키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노조의 세력이 강해지면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처럼 소련군이 직접 나서겠다는 소련의 협박을 받고, 소련군이 폴란드를 장악하느니 폴란드인 스스로 문제를 정리하자는 의미도 있었다.(야루젤스키 자신은 2차세계대전때 소련군에게 끌려가 시베리아의 가혹한 환경속에서 강제노동을 했고 이때문에 시력에 치명타를 입은 전적이 있다) 때문에 퇴임 후에도 심한 처벌은 받지 않았다. 결국 개혁파들의 퇴임 압력에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2대 대통령으로 바웬사가 된 것. 바웬사가 2대라고 해서 야루젤스키가 수십년간 독재를 한 건 아니고, 폴란드에서 대통령직이 생긴 게 1989년이고 야루젤스키의 대통령 임기는 1989년 12월 21일~1990년 12월 22일의 366일에 불과했다.

1996년까지 폴란드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당시 정책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는 당시 폴란드의 경제 사정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컸으며, 퇴임 후에도 폴란드에서 그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 아니다. 사실 이건 바웬사도 변명할 여지는 있는데 공산체제 붕괴 이후에도 대외여건이 안 좋은데다가 외채가 탕감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부담이 된건 마찬가지였으며, IMF나 서방국가들의 입김도 있다보니 별수없이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고, 덕택에 복지확충이나 긴축정책 중단 같은걸 할수 있는 상황은 못되었다. 그러서 대선때 약속했던것과는 다르게 실업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인플레율도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제3의 고무우카, 혹은 제2의 기에레크가 된 것.[1] 그래도 1970년대 후반기부터 폴란드 경제에 부담이 된 외채를 적극적으로 탕감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외채를 반 이상 줄여내는데 성공을 거두어, 대외부담을 다소 덜어낸 공로는 있다. 여하간 퇴임하면서 모든 퇴임 대통령의 권리를 포기한 덕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토크쇼 MC 등을 본다고 한다.

물론 대통령 재임 시의 정책과는 별개로 그가 폴란드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한 것은 많은 폴란드인이 인정하고 있다. 훌륭한 투사와 훌륭한 정치가는 전혀 별개의 직책이라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른 신생 독립국의 국가 원수들처럼 기껏 독재 정권을 몰아냈더니 또다른 독재자로 타락하지 않은 점은 칭찬할 만 하다.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데, 2006년 경에 면도날 제조 회사인 질레트가 면도를 하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 했으나 "난 태어날 때 부터 이 콧수염을 달고 태어났다"라며 거절했다. 그런데 또 몇 년 뒤에는 놀랍게도 깔끔하고 면도를 했는데, 이 때 언론에서 이유가 뭐냐고 물어 보니 "그냥 재미로"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198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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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고무우카나 기에레크도 레흐 바웬사와 비슷하게 폴란드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권좌에 올랐지만 역시 경제문제로 불명예스럽게 퇴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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