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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피어리

last modified: 2015-04-04 01:26:48 by Contributors

이름 로버트 피어리(Robert Peary)
생몰년 1856년 5월 6일 ~ 1920년 2월 20일

미국의 탐험가. 한때 위인전 등에서는 인류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실상은 천하의 개쌍놈.

Contents

1. 소개
2. 천하의 개쌍놈
3. 그는 북극점에 도달했는가?
4. 트리비아

1. 소개

펜실베이니아주(州) 크레슨 출생으로 1881년 미합중국 해군 토목기사가 되어 니카라과 운하의 조사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 후 그린란드를 거쳐 북극을 탐험하고, 1898∼1902년에는 북위 84 °17', 1905∼1906년에는 북위 87 °6'에 도착하고, 1909년 4월 6일 드디어 북극점에 도달하였다...고 알려졌다.

2. 천하의 개쌍놈

그런데 문제는... 로버트 피어리는 그냥 북극점만 정복한 게 아니라 가서 이누이트들을 가혹하게 부려먹고 심지어 그들을 속여서 미국으로 데려와 전시하고 입장비를 챙기는 천하의 개쌍놈 짓을 했다. 이런 천하의 개쌍놈스러운 면모가 널리 알려지면서 90년대 중반부터 국내의 어린이 위인전에서 피어리가 사라졌다. 실제로 최근 등장하는 위인전을 보면 북극을 탐험한 프리드쇼프 난센이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로알 아문센, 심지어 비극의 콩라인 로버트 스콧까지 자주 등장하나 유독 피어리만은 언급이 없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전에 출간된 숱한 학습용 위인전에는 로버트 피어리가 빠짐 없이 실려 있다. 그래서 위인전 열풍 속에서 자라난 70,80년생들은 아직도 로버트 피어리를 영웅적인 탐험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후로 무수한 소송에 걸려 늘그막을 재판장에서 죽었다는 비아냥까지 나왔을 지경이며 심지어 그가 북극점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돌 정도였다(...)[1] 공교롭게도 피어리를 괴롭히던 인물이 바로 아문센과 같이 벨지카 호에 탔던 프레드릭 쿡이었는데 서로가 북극점에 먼저 갔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논란이 거셌다.

더불어 피어리가 욕먹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이누이트를 마구 부려먹은 것 말고도 결정적인 게 있다. 피어리에게 속아서 미국까지 와서 자연사동물원에서 살아 있는 야만인이란 표본으로 전시되던 이누이트 부자가 있었는데 그만 아버지가 일찍 병으로 죽자 자연사박물관 측은 시체까지도 해부하여 박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아들인 미닉은 영어를 배우고 나서야 아버지 시체를 돌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는 피어리에게 가서 애원했지만 차거운 대답만 돌아왔다. 되려 피어리는 그 박제 관련 수익을 나에게도 내놓으라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하는 추태까지 벌였다.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살다보니 전통적인 이누이트 생활방식을 잊어버려서 고향으로 돌아가도 살아갈 수 없었지만 인종차별로 미국에서도 고생하던 미닉은 나무꾼으로 근근히 살다가 1918년 28살 나이로 병사한다. 죽기 전까지 그나마 극소수 친구들에게 제발 아버지의 시체와 같이 내 유골을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한 맺힌 유언을 남겼다. 그러다가 박제된 그의 아버지 시체는 1997년에서야 미닉의 유골과 같이 고향에 돌아가 묻혀지게 된다. 국내에도 나온 바 있던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에서 이걸 자세히 다룬 바 있다. 보다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심지어 피어리는 이누이트 여성과 사귀어서 아이까지 얻은 전력이 있다. 당시로선 있을 수 없는 스캔들이었고[2] 밝혀질 경우에는 피어리의 인생뿐 아니라 북극탐험 스폰서의 대거 이탈을 가져올 우려가 있어서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이지만 대중은 모르는 전설이 되었다. 1960년대야 공개적으로 이야기되었고 피어리의 발견된 아이들과 미국의 친척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3. 그는 북극점에 도달했는가?

뉴욕 헤럴드지는 쿡이 북극점에 먼저갔다고 주장했으며 뉴욕 타임스는 피어리를 편들었고 결국 다수결 선거(?)끝에 135대 34로 피어리가 승리했지만, 그 증거가 명확하지 않았다. 즉 북극점에 도달했다는 경도와 방위각을 측정하지 않았으며 항해일지가 너무 깨끗하다는 점[3] 단 며칠 사이에 70킬로미터를 헤쳐갔다는(참고로 피어리 탐험대는 이전에 하루에 3킬로미터 이하에서 멈칫거리며 느리게 횡단하고 있었다.) 게 말이 되느냐는 온갖 불신론에 시달렸으며, 쿡의 집념어린 반격으로 피어리는 해군소장으로 진급했다는 것 빼곤 온갖 소송과 비난에 시달렸으며 늘그막에는 온갖 위장병으로 고생하다가 죽는데, 되려 그가 한 짓을 보면 참 평온하게 살다가 갔던 것이다. 비록 죽기 며칠 전까지 혼수상태에서 "아냐…. 난 북극점에 갔단 말이야."라고 중얼거릴 정도로 워낙에 비난을 들어서 한이 맺혔지만.[4]

그런데 1996년에 발견된 피어리의 새로운 일지를 검토해 본 결과 북극점에서 40km 못미친 지점까지만 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피어리의 탐사를 지원해줬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피어리의 일지를 재검토한 결과 피어리가 북극점에 도착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었고, 일지에 나오는 기상정보를 통해 피어리의 위치를 다시 계산한 결과 피어리의 최종 도착점은 북극점인 북위 90도가 아닌 북위 89도 57분으로 밝혀졌다.## 물론 피어리는 북극점을 항해와 도보로 향했으므로 당시 기록으로는 가장 북극점에 가까이 도달한 것이 맞지만 북극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이때문에 피어리의 북극점 탐험 성공을 대대적으로 기사화했던 뉴욕 타임스는 진상이 밝혀지자 79년 만에 정정보도를 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서 피어리는 '해당 지점에 도달한 최초의 사람'도 아니다. 그의 길을 안내해준 이누이트 족 안내인들이 먼저 해당 지점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기사나 뉴스, 사전에서도 로버트 피어리를 북극점에 최초로 도달한 인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역시 모든 건 국적빨이다.[5] 그 동안 피어리가 북극점에 갔다고 써논 위인전이 많아서 개정이 안 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피어리가 북위 89도 57분까지만 도달했다고 명시한 기사에도 피어리가 북극점에 최초로 간 사람이라고 적어놓는 이상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로버트 피어리는 북극점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북극점에 아주 가까이 갔을 뿐이다. 게다가 미국 국적으로 아주 가까이 간 것도 피어리보다 더 먼저인 사람이 있었다!

(ɔ) Unknown from

바로 매튜 핸슨(Matthew Henson, 1866~1955)이다. 보시다시피 흑인인 그는 어릴적부터 마차 및 개썰매 조종에 뛰어났고 이뉴이트어도 잘하고 사냥도 잘하며 피어리의 조수로서 활약하며 1시간이나 먼저 북극점에 당시 도달했음에도 이걸 질투한 피어리가 숨기고 자신이 먼저 갔다고 개뻥치며 조작했던 거였다. 나중에 피어리는 핸슨이 먼저 간 것이라고 하던 쿡에게 그가 흑인이라 잘 몰라(?) 북극점에 가지 못했다고 어거지로 질투에 열폭했다.

이렇게 흑인이라서 인종차별도 당하며 모든 공로를 부정당하고 그냥 조수로서 도왔다 수준으로 알려진 핸슨은 빈민굴에서 어렵게 살아가다가 세상을 떠난다.물론 흑인들에게는 피어리 개색히보다도 핸슨이야말로 진정한 위인이라고 존경받았으며 빈민굴 속에서도 핸슨은 우대받았다고 한다. 세월이 훨씬 지나서야 핸슨의 시신은 1988년 알링턴 국립묘지로 옮겨진다. 우습게도 그의 곁에는 피어리의 무덤이 있는데 즉 피어리랑 동급으로 우대받는 셈이다.물론 핸슨에게 불명예같으나 반대로 그동안 피어리의 따까리 수준으로 무시당하던 핸슨이야말로 동급이라고 인정한 셈. 후원하던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 진정한 북극점 도달자라고 2000년 영예의 메달을 피어리가 아닌 핸슨에게 사후 수여했다.

그리고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것이 가장 확실한 사람은 로알 아문센이다. 지구 양 쪽 극점을 정복한 정복왕의 위엄.. 로버트 피어리의 북극점 탐험은 무효가 되었고 공중항로로 북극점에 최초로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리처드 버드의 경우에는 일지의 기록이 지워져 있고 육분의의 기록이 공식 기록과 일지의 기록이 다른 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문센이 남극점에 도전한 이유가 원래 꿈이였던 북극점 정복을 피어리에게 뺏겼기 때문이였던 걸 생각하면 미국에게 두 번이나 엿을 먹은 셈이다. 미국인: 너희 영국인들은 로버트 스콧이 남극점에 먼저 도착했다고 가르쳤다지? / 영국인: 너네는 너네 나라 사람들이 최초로 북극점에 도착했다고 구라치고 다녔다면서?

한편으로 피어리는 북극점이라 생각했던 지점에 국기를 꽃으면서 북극점을 미국 영토로 선포하는 2000년대 관점으로 봐서는 무개념한 짓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소련은 북극 1호로 최초로 북극점을 비행기로 도달했고 나중에는 북극해 해저에 위치한 북극점에 도착해 티타늄으로 만든 자국의 국기를 박았고[6] 이는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려 북극해에서 양 측의 병림픽이 격렬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4. 트리비아

  • 그나마 업적이라고 한다면 북극점은 바다에 있다는 것과 이누이트 족의 생활을 꼼꼼하게 기록해 이누이트 족의 문화와 생활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많이 남겼다는 점이라고 그동안 알려졌으나 이마저도 핸슨이야말로 공로자이다. 핸슨이야말로 이뉴이트어로 그들과 이야기하며 그들 생활을 꼼꼼하게 적었기 때문이다. 결국 피어리가 한 일은 핸슨이 한 일을 가로챘다는 점으로 업적이랄 것도 없다.

  • 미합중국 해군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군함들이 여럿 진수되었지만, 피어리의 이런 추악한 면모가 드러난 뒤에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역 함정 중에도 크선인 USNS Robert E. Peary가 있고, 제2차 세계대전리버티선 SS Robert E. Peary가 4일 15시간 30분만에 건조부터 진수까지 마무리하는 몰뭐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한지라 현역 벌크선이 퇴역하더라도 비전투함 명칭으로 오랫동안 우려먹을 것 같다. 그래도 주력 전투함에 이름이 붙던 것에 비하면 좀 개선된 점...일까? 더불어 핸슨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미해군 수송함에 핸슨의 이름을 따서 USNS Henson호라고 이름이 지어져 그를 기리고 있다. 확실히 피어리랑 차원이 다르게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하던 일을 다하고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로를 남긴 핸슨이야말로 피어리랑 차원이 다르게 존중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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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은 사실 끝난 일이긴 하지만... 90년대 나온 대중적 역사책에는 아예 피어리가 안 간 걸 사실화한 적도 있었다.
  • [2] 어떤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이누이트의 성개념은 다른 문명권과는 다르다. 안소니 퀸 주연의 '야생의 순수'(1960년)이라는 영화에서도 이누이트를 방문한 선교사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자기집 부인과 잠자리를 주선한 사건 때문에 투닥거리다가 선교사가 과실치사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문제는 피어리가 이누이트 여성과 관계를 맺은 건 여자가 14세였을때였다. 밝혀지면 안 되는 이야기.
  • [3]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북극 탐험때 당연히 씻지도 않고.. 기름이 니글니글한 페미컨만 우적우적 먹기 때문에 일지 자체가 꾀죄죄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가 당시 공개한 부분은 중요한 부분도 없고 깨끗했다.
  • [4] 기존에는 피어리가 약간의 쇼맨쉽이나 가필을 부렸지만 북극에 간 건 맞는 것으로 보았다. 앞서 말한 없어진 꾀죄죄 노트도 공개되었고, 실제 피어리가 탐험했다는 경로를 피어리 시대의 장비로 탐험한 탐험대가 거기에 써있는 말대로 며칠 사이에 70킬로미터를 어렵잖게 가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쿡 자신이 제시한 증거는 피어리의 증거보다도 더 빈약했다. 쿡은 이 사건 이후로 완전히 묻혔고, 그가 이전에 했던 업적 하나도 의심을 받게 되었다. 하여간 쿡은 말년에 다른 일로 석유탐사를 했고 그 보고서마저도 조작의혹에 시달렸다.
  • [5] 국적 이전에, 탐험가의 인성이 더 크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드먼트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의 경우처럼, 본인이 마음만 있다면 공동으로 등정한 사람의 이름이 빠지는 일은 없다.
  • [6] 잠수함으로 도달한 건 미국이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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