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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페타지니

last modified: 2015-04-09 03:40:24 by Contributors



이름 로베르토 안토니오 페타지니(Roberto Antonio Petagine)
생년월일 1971년 6월 7일
국적 베네수엘라
출신지 카라카스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소속팀 휴스턴 애스트로스(199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1995)
뉴욕 메츠(1996 ~ 1997)
신시내티 레즈(1998)
야쿠르트 스왈로즈(1999 ~ 2002)
요미우리 자이언츠(2003 ~ 2004)
보스턴 레드삭스(2005)
시애틀 매리너스(2006)
멕시코시티 레드데블스(2008)
LG 트윈스(2008 ~ 2009)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10)

200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스왈로즈)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LG 트윈스 등번호 29번(2008~2009)
제이미 브라운(2008) 로베르토 페타지니(2008~2009) 이택근(2010~2011)

Contents

1. 개요
2. 유망주 시절
3. 일본으로
3.1. 야쿠르트, 요미우리에서의 기록
4. 보스턴, 시애틀 시절
5. LG 트윈스 시절
5.1. 한국 프로야구 기록
6. 다시 일본으로
7. 그 외

1. 개요

메이저리그 출신으로 일본프로야구한국프로야구LG 트윈스에서 활약했던 前 프로야구 선수. LG 시절 때의 별칭 페타신(神), 페느님.

2. 유망주 시절

페타지니는 1992년, 1994년 BA 선정 휴스턴 애스트로스 팀내 유망주 탑 10에 들었던 1루수 유망주였다.

1993년 더블A에서 타출장 3/4/5를 기록하며 텍사스리그 MVP를 받자 1994년에는 메이저리그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는데, 대타로 기용된 5타석에서 무안타에 그치며 곧바로 트리플A로 내려간다. 이후 타출장 3/4/5를 기록하며 7월말에 콜업을 받지만, 페타지니가 얻은 기회는 단 3타석. 8월 12일 파업으로 인해 리그가 중단됐고, 더군다나 휴스턴의 1루수는 만장일치로 리그 MVP를 수상하는 휴스턴의 레전드 제프 배그웰이었으니 3타석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래저래 기회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1995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가 된 페타지니는 다시 한 번 개막 로스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된다. 트리플A로 잠깐 내려가기도 하지만 144경기의 단축 시즌에서 플래툰 및 대타 요원으로 89경기 152타석의 기회를 얻는데, 선구안만 통하는 모습으로 fwar 0.3을 찍는다. 1996년에는 뉴욕 메츠로 팀을 옮기고 트리플A에서 역시나 타출장 3/4/5를 기록하지만 빅리그에서는 방망이가 차게 식으며 50경기 113타석에서 fwar0.1을 찍는다.

1997~1998년에는 투수 친화적인 트리플A 인터내셔널리그에서 아예 타출장 3/4/6을 찍으며 MVP를 차지할 정도로 트리플A를 초토화시킨다. 그러나 1997년 메츠에서는 FA로 영입된 1루수 존 올러루드가 fwar 4.4를 찍는 활약을 펼치면서, 페타지니는 9월 확장 로스터 때서야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았고 그 마저도 대타로 출장한 18타석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1998년에는 신시내티 레즈에서 8월에 콜업을 받은 뒤 34경기 79타석에서 OPS .873를 기록하며 fwar 0.6, bwar 0.5를 찍었지만 fwar 0.8, bwar 0.9를 기록한 3살 어린 팀내 유망주 션 케이시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1]

결국 20대 후반의 AAAA형 1루수가 된 페타지니는 일본행을 결심한다.

3. 일본으로

그리고 최강의 용병이 된다.

야쿠르트 스왈로즈 입단 첫 시즌인 1999년에 OPS 1.146의 몬스터 시즌을 보내며 홈런 44개로 홈런왕[2] 자리에 올랐고 2001년에는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하는 활약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센트럴리그 MVP를 수상했다. 1999~2002년 내리 4년 간 베스트나인에 선정됐으며, 2000~2002년 동안 3차례의 골든글러브를 획득하기도 한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7억 2천만엔의 일본프로야구 최고 연봉자가 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는데, 2003년 요미우리에서는 페타지니를 기존의 1루수였던 기요하라 가즈히로와 함께 기용하기 위해 우익수로 돌리는 실수를 범한다. 그런 탓에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무릎은 악화됐고, 5월에는 왼쪽 무릎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되는 등 100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100경기에서 34홈런과 OPS 1.139를 기록하는데, 일본쪽 데이터에 따르면 2003시즌 페타지니의 oWAR는 5.1로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음에도 리그 3위였다. 요미우리의 중심타자인 타카하시 요시노부, 기요하라의 oWAR가 각각 4.2, 2.2였고 출루율이 낮은 타입이지만 홈런 공동 1위, 타점 1위, 장타율 1위, 타율 2위인 알렉스 라미레스의 oWAR가 5.2였으니 타격에서는 밥값을 했던 셈.애초에 외야수로 쓰는 게 잘못

2004년에는 기요하라와 플래툰으로 기용되는데, 계속된 무릎 부상의 영향으로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을 겪다가 중반 이후 페이스를 끌어올려 29홈런, OPS .970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당시 타고투저의 리그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연봉과 명성에는 못 미치는 성적이었고, 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에서 연봉을 대폭 삭감한 3억 엔 정도에 재계약 조건을 제시했으나 퇴단한다.

3.1. 야쿠르트, 요미우리에서의 기록

연도 경기 안타 홈런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999 134 147 44 112 0.325 0.469 0.677 1.146
2000 136 153 36 96 0.316 0.432 0.601 1.033
2001 138 149 39 127 0.322 0.466 0.633 1.099
2002 131 146 41 94 0.322 0.438 0.649 1.087
연도 경기 안타 홈런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003 100 107 34 81 0.323 0.457 0.683 1.139
2004 117 111 29 84 0.290 0.409 0.561 0.970

비록 요미우리 시절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 시기의 페타지니는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강의 용병타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 6시즌의 OPS 1.079는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 용병이라는 랜디 바스의 통산 6시즌 OPS 1.078, 역대 1위인 오 사다하루의 통산 OPS 1.080과 대등한 수치. 마쓰이 히데키와 센트럴리그를 양분하면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됐는데, 마쓰이의 일본프로야구 최전성기였던 1999~2002시즌과 페타지니의 야쿠크트 시절을 비교하면 동기간 마쓰이는 170홈런 414타점 OPS 1.094, 페타지니는 160홈런 429타점 OPS 1.090을 기록했다. 나이 40줄에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한 시즌을 더 뛰며 비율스탯을 까먹긴 했어도 페타지니의 통산 OPS 1.051는 3000타석을 기준으로 일본프로야구 역대 2위다.[3]

4. 보스턴, 시애틀 시절

2005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산하 트리플A 팀인 포터켓과 계약을 맺는다. 보스턴이 케빈 밀라의 백업 후보군으로 페타지니를 스프링캠프에 초청하는데, 스프링캠프 기간 중 왼쪽 무릎연골 손상으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빅리그 도전이 무산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후 꽤 빠르게 회복했고, 트리플A 74경기에서 20홈런 69타점 .327/.452/.635 OPS 1.088의 스탯을 찍으며 가볍게 트리플A를 정리한다.

보스턴은 케빈 밀라/존 올러루드의 공격력 불안으로 페타지니를 8월초에 메이저로 콜업하는데, 콜업 후 첫 경기였던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는 4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하는 등 8월 한 달 동안 13경기 30타석에서 1홈런 8타점 OPS .900의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1루 왼손타자 자리가 메츠 시절에도 자신을 가로막았던 존 올러루드에게 다시 돌아가면서 9월에는 6타석 밖에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고, 결국 OPS .799로 시즌을 마친다.

시즌 종료 후 케빈 밀라와 존 올러루드는 팀을 떠났지만, 보스턴에서는 1루 자리에 3루수 유망주인 케빈 유킬리스와 새로 영입한 수비요정 J.T 스노우를 플래툰으로 쓸 계획이었고 FA 유격수인 알렉스 곤잘레스를 영입하면서 40인 로스터 중 누군가는 빠져야 되는 상황이 오자 2006년 2월에 페타지니를 방출 시킨다.

그 후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는다. 시범경기 21경기에 출장해서 OPS 1.125를 기록했고, 시범경기 성적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당시 한신 타이거스의 마무리였던 쿠보타 토모유키로부터 홈런을 뽑아내기도 한다. 일본킬러

그런 덕분에 1루수 리치 색슨의 백업으로 개막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며 시즌을 시작하는데, 개막전에서는 대타로 나와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홈런을 쳐낸다. 이후 4월 한 달 동안 대타로 출장한 11타석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팀에서는 지명타자 자리에 시즌 내내 부진하여 fwar -0.8을 찍게 되는 칼 에버렛을 중용했고, 이후에는 페타지니가 무너지면서 시즌 31경기 32타석에서 OPS .683, fwar 0.0의 부진한 성적으로 방출 당한다.

5. LG 트윈스 시절

그 후 얼마간 멕시칸리그에서 뛰고있던 페타지니를 데려온 것은 한국 프로야구 LG 트윈스. 투수 제이미 브라운을 대신해서 한국땅을 밟은 페타지니는 68경기에 나서 타율 0.347, 75안타, 7홈런의 호성적을 기록한다. 풀 시즌을 못 뛰어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기에 인정받진 못하지만, 0.347의 타율은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최고 기록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9년, 이전 시즌의 활약을 인정받아 재계약의 성공한 페타지니는 말 그대로 팀의 최고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6월까지 김상현, 클리프 브룸바, 최희섭 등과 홈런왕 경쟁을 벌이다가 좋지 않은 무릎과 나이로 인한 체력저하로 인해 홈런왕 경쟁에서는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율 0.332(6위), 26홈런(6위), 출루율 0.468(1위)), 장타율 .575(6위), OPS 1.049(2위), BB/K 1.39'''[4]를 기록하며 거의 모든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하지만 LG는 투수진 보강에 중점을 두면서 페타지니와의 재계약을 포기한다. 외국인 선수는 전부 투수(에드가 곤잘레스, 오카모토 신야)로 채웠고, 페타지니의 부재로 인한 타선은 히어로즈에서 이택근을 영입하면서 메우게 된다. 하지만 오카모토는 마무리였기에 선발 투수진은 별반 나아진 게 없었으며, 이병규, 박용택, 이진영, 이대형 등으로 구성된 외야진에 이택근까지 가세하면서 외야는 그야말로 과포화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LG팬들은 굳이 욕먹고 페타지니까지 버려가면서 이택근을 데려와야 하냐, 데려올 거면 이현승을 데려와야지라며 울부짖었다. 물론 시즌 개막 직후 이현승이 부진하자, 이현승 아쉬워하는 소리는 쏙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곤잘레스와 오카모토가 죄다 망하고 이택근은 규정타석도 못 채우고 먹튀짓을 하는 바람에 LG팬들은 페타지니를 눈물나게 그리워했다.

5.1. 한국 프로야구 기록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8 LG 트윈스 68 216 0.347 75 7 35 1 0.452 0.532
2009 115 388 0.332 129 26 100 2 0.468 0.575
통산 183 604 0.338 204 33 135 3 0.462 0.560

6. 다시 일본으로

2010년 4월 1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에 합의하여 6년 만에 일본프로야구에 복귀했다.

이후 한달 가량 몸을 만들며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페타지니는 이범호가 내려가고 5월 29일 1군에 합류하게 된다. 합류 초반에는 끝내기 홈런을 2번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으나, 아무래도 나이도 나이인데다 2010시즌 초반 무직 상태로 고향인 베네수엘라에서 거의 놀다시피하며 지냈던 탓인지 1군 81경기에서 OPS. 772 10홈런 41타점으로 크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타무라 히토시, 호세 오티즈에 이은 팀내 OPS 3위이긴 했지만.

결국 소속 팀 소프트뱅크로부터 재계약 포기 통보를 받았다. 이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7. 그 외


야구선수 페타지니는 실력 말고도 항상 따라붙는 이슈가 있다. 바로 부인인 올가 페타지니. 25살 차이의 나이 차이도 놀랍지만, 친구의 어머니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엄마를 사랑했네 이 때문에 팀을 옮겨다닐 때마다 게시판에서 이 얘기가 나왔다.

외국인 선수 답지 않게 대단히 온화한 성격이라 데드볼을 꽤 많이 맞고도 화 한 번도 안 냈다. 그러나 전성기 일본 시절엔 이와세 히토키데드볼을 던지자 달려든 적이 있긴 했다.링크

스페인어를 쓰는 베네수엘라 출신이라 그의 성(姓)이 한때 '페타히네'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부계쪽이 이탈리아계라 '페타지니'로 불러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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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션 케이시는 이듬해인 1999년에 타출장 .332/.399/.539, fwar 4.1, bwar 4.0으로 활약하며 내셔널리그 올스타가 된다.
  • [2] 이 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페타지니보다 1개 작은 홈런을 기록중이던 마쓰이 히데키의 홈런 타이틀을 가져다 주기위해 요미우리 자이언츠 벤치에서 선발 투수였던 우에하라 고지에게 고의사구를 명했는데, 우에하라는 고의사구를 내주고 남자답지 못한 승부를 펼쳤다는 속상함에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우에하라 고지항목 참조.
  • [3] 랜디 바스는 통산 2550타석. 페타지니는 소프트뱅크 복귀 전까지 3189타석.
  • [4] 97볼넷 70피삼진. 외국인 선수 단일시즌 최고 BB/K는 2001년 펠릭스 호세로, 1.76(127/7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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