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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다저스

MLB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소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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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Arizona Diamondb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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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다저스
(Los Angeles Dod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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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San Francisco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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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파드리스
(San Diego Pad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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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로키스
(Colorado Rok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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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로고 구단 로고[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Los Angeles Dodgers
창단 1883년
연고지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현재 연고지로 이전 1958년
구단 연고지 변천 뉴욕 브루클린 (1883~1957)
로스앤젤레스 (1958~)
구단명 변천 브루클린 애틀랜틱스 (Brooklyn Atlantics) (1883~1884)
브루클린 그레이스 (Brooklyn Grays) (1885~1887)
브루클린 브라이드그룸스 (Brooklyn Bridegrooms) (1888~1890, 1896~1898)
브루클린 그룸스 (Brooklyn Grooms) (1891~1895)
브루클린 슈퍼배스 (Brooklyn Superbas) (1899~1910, 1913)
브루클린 트롤리 다저스 (Brooklyn Trolley Dodgers) (1911~1912)
브루클린 로빈스 (Brooklyn Robins) (1914~1931)
브루클린 다저스 (Brooklyn Dodgers) (1932~195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Los Angeles Dodgers) (1958~)
홈 구장 워싱턴 파크 (Washington Park) (1884~1890, 1898~1912)
이스턴 파크 (Eastern Park) (1891~1897)
에베츠 필드 (Ebbets Field) (1913~1957)
루스벨트 스타디움 (Roosevelt Stadium) (1956~1957)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 (Los Angeles Memorial Coliseum) (1958~1961)
다저 스타디움 (Dodger Stadium) (1962~)
구단주 구겐하임 베이스볼 매니지먼트 (Guggenheim Baseball Management)[2]
(마크 월터, 스탠 카스텐, 매직 존슨)
사장[3] 앤드류 프리드먼 (Andrew Friedman)
단장 파르한 자이디 (Farhan Zaidi)
감독 돈 매팅리 (Don Mattingly)
월드 시리즈 우승
(6회)
1955, 1959, 1963, 1965, 1981, 1988
내셔널리그 우승
(21회/18회)[4]
1890, 1899, 1900, 1916, 1920, 1941, 1947, 1949, 1952, 1953, 1955, 1956,
1959, 1963, 1965, 1966, 1974, 1977, 1978, 1981, 1988
디비전 우승
(13회)
1974, 1977, 1978, 1981, 1983, 1985, 1988, 1995, 2004, 2008, 2009, 2013,
2014
와일드카드 획득
(2회)
1996, 2006
홈페이지
유니폼
원정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브루클린 다저스
2.2. 서부 이동과 1960년대의 전성기
2.3.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다저스
2.4. 암흑기 아닌 암흑기
2.5. 막장 맥코트 시대
2.6. 다시 태어난 내셔널리그의 공룡구단
3. 이모저모
3.1. 홈구장
3.2. 진취적 시도
3.3. 라이벌
3.3.1. 신시내티 레즈
3.3.2. 뉴욕 메츠
3.3.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3.3.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3.3.5. LA 에인절스
3.3.6.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3.4. 대한민국 내 인기
3.4.1. 타 MLB 팬덤과의 충돌
3.5.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
3.5.1. 트리플 A
3.5.2. 더블 A
3.5.3. 싱글 A
3.5.4. 루키
3.5.5. 2000년대 이후 팜 관리
3.6. 빈 스컬리
4. 선수 목록
5. 영구 결번

1. 개요

MLB의 프로야구단.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로스앤젤레스.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며, 가장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시도를 많이 한 구단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5] 참고로 메이저리그 유일의 전구단 영구결번인 42번이 바로 다저스 소속의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구단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다.

박찬호가 이 팀에서 데뷔하여 2001년까지 전성기를 보냈다. 이후 최희섭서재응도 다저스를 거쳐갔지만 좋은 활약을 하지는 못했으며[6] 2013년 류현진이 성공적인 선발 첫 시즌을 보냈다.KBO 제11구단 나성 다저스


2. 역사

2.1. 브루클린 다저스

브루클린 다저스
Brooklyn Dodgers
원래는 뉴욕의 브루클린을 연고지로 했었다. 1884년 브루클린 애틀란틱스라는 팀으로 출발하여 팀 이름을 몇번 바꾸다가 1932년 브루클린 다저스로 개명. 뉴욕 연고 구단들인 뉴욕 양키스, 뉴욕 자이언츠와 세 팀이 모두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내셔널리그의 대항체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에서 뛰었지만, 이 리그가 해산된 후에, 내셔널리그에 가입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브루클린 다저스 경기장인 에베츠 필드

초창기에는 중하위권의 성적을 올리는 팀이었다. 1916년과 1920년에 내셔널리그 우승에 성공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패배. 그리고 또 한동안 침체기를 가졌다가 1940년을 기점으로 강호로 성장한다. 1941년 다시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한 후, 브루클린 시절이 끝나는 1957년까지 7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약 내셔널리그의 강호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내셔널리그 우승을 못하던 시절에도 2등을 5번 차지하는 등, 완벽하게 리그 최고의 강호로 군림했다. 특히 1947년 재키 로빈슨을 데뷔시키면서 메이저리그의 인종의 벽을 무너뜨린 것은 백미 중의 백미. 그렇지 않아도 내셔널리그의 강자로 성장했던 다저스는 이 업적 하나로 순식간에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존경받는 팀의 하나로 더욱 거듭났다.


1956년 뉴욕 양키스 vs 브루클린 다저스 월드시리즈 포스터

하지만 현실은 이런 형태였다. 아래쪽의 추레한 캐릭터가 바로 브루클린 다저스의 마스코트 Brooklyn Bum(혹은 Dem Bums).

문제는 월드시리즈에서 번번히 뉴욕 양키스를 만나 번번히 깨졌다는 것(...) 1941년, 1947년, 1949년, 1952년, 1953년 모두 뉴욕 양키스를 만나 월드시리즈에서 모두 지면서 그야말로 콩라인이 어떤 것인지를 철저하게 보여줬다. 다행히 1955년에 뉴욕 양키스를 누르면서 한 차례 우승을 차지했지만, 다음해 1956년에는 양키스에게 밀리면서 월드시리즈에는 매번 제대로 물을 먹었다. 뉴욕 시절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양키스에 조공(?)한 월드 시리즈만 해도 다저스가 6, 자이언츠가 4개이다.지금의 양키스 전설은 대부분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만들어 줬다 양키스는 다저스와 자이언츠를 누르고 뉴욕의 패권자가 되었고, 다저스는 뉴욕의 2인자, 3인자의 지위로 떨어진 뒤였다.

2.2. 서부 이동과 1960년대의 전성기

뉴욕의 1인자가 되기 위한 시도로 당시 구단주인 월터 오말리는 브루클린 행정당국에 돔 구장 건설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이 협조 요청은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구장 여건에 대한 불만 및 뉴욕에서 밀린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57 시즌이 끝나자 뉴욕 자이언츠의 구단주였던 호레이스 스톤햄을 서부로 가자고 꼬셔서 서부로 이동한다. 다저스는 로스앤젤레스에, 자이언츠샌프란시스코에 입성하는데 이 결정이 두 팀의 운명을 갈랐다.

다만 여기엔 약간의 카더라급의 여담이 있는데 원래 오말리는 뉴욕을 떠날 생각이 없었고 될 수 있는 한 팀을 뉴욕에 잔류시키기 위해 애썼는데 오히려 시에서 나 몰라라 했다는 것이다.



여하간 이러나저러나 오말리는 옛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팬들에겐 송병준과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농담처럼 적혀 있는데, 이 당시 다저스와 자이언츠 팬들의 멘붕은 이정로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뉴욕에서 2위이고, 3위라고 하지만 다저스와 자이언츠는 뉴욕 양키스 안티팬들만으로도 어지간한 빅마켓 수준을 자랑했다. 그런데 두 구단이 떠난다고 하니 팬들은 애원, 협박, 성토, 설득, 분노 등을 통해서 이전을 막으려고 애썼고, 이 일의 원흉인 오말리 성토대회는 거의 매일 열렸다고 한다. 특히 다저스의 연고였던 브루클린은[7] 하층민들이 주로 거주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다저스는 유일한 희망이나 마찬가지였다.[8] 이 당시 이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1958년 뉴욕의 대표적인 두 칼럼리스트 잭 뉴필드와 피트 햄밀이 역사적으로 태어났으면 안 될 인물 10명을 꼽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쓴 글에서 1위에서 3위까지가 모두 같았다. 1위 아돌프 히틀러, 2위 이오시프 스탈린, 3위 월터 오말리.

"만약 다저스팬이 히틀러와 스탈린과 오말리와 한 방에 있으면서 총알은 두 발 밖에 없다면 어떻게 할까요?","오말리에게 두 방"이라는 것은 당시 유명한 조크. 이 농담은 나중에 여러 버전이 생겨났지만 원조는 월터 오말리다.



다저 스타디움

다저스는 로스엔젤레스 입성 2년만인 1959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1962년 지금까지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다저 스타디움이 개장한 이후, 다저스는 샌디 쿠팩스라는 불세출의 투수를 앞세워 1963년, 1965년 월드시리즈를 재패했다. 특히 1963년 월드시리즈는 뉴욕 양키스를 4-0 스윕하는 다저스의 완승으로 끝났는데, 명언제조기 요기 베라의 말씀이 아주 걸작이다. 월드시리즈 시작 전 25승 5패 평균자책점 1.88의 성적을 올린 샌디 쿠팩스를 두고 저런 애송이에게 25승이나 내주다니 내셔널리그 타자들은 전부 바보인가?라고 말했는데, 시리즈 종료 후 25승을 어떻게 올렸는지 아주 잘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5패나 한겨?[9] 1966년에도 월드시리즈에 오르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4-0 스윕을 당한다.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샌디 쿠팩스가 30세의 젊은 나이로 돌연 은퇴를 선언하는데[10] 27승 9패 평균자책점 1.73의 기록을 올린 괴물 에이스의 공백을 메꾸는건 절대로 불가능했다.[11] 결국 그렇게 다저스의 1960년대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서부 이동은 다저스에게 큰 성과를 가져다 주었다. 메이저 스포츠에 굶주려 있던 당시 서부 지역 사람들은 옮겨온 명문팀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었다.[12] 그래서 구장 부지도 비교적 헐값에 얻을 수 있었고, 최초로 흑인 선수를 등용하면서 우수한 흑인 및 히스패닉 선수들을 무한정으로 얻었다. 여기에 흑인 관중 유치에서 가장 앞서나간 것은 덤. 인기가 올라가면서 자연히 다저스는 더욱 성공적으로 로스엔젤레스 지역에 정착할 수 있었고, 결국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했다[13]

2.3.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다저스

샌디 쿠팩스가 은퇴하고, 돈 드라이스데일이 노쇠하면서 다저스는 잠시 흔들리게 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망한 것은 아니었다. 1970년부터 1973년까지 4년 연속 서부지구 2위를 기록하면서 암흑기 아닌 암흑기를 걷게 되었을 뿐, 강호로서의 입지는 여전히 탄탄했다. 그리고 1974년 다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 당대 최고의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게 패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등장한 '빅 레드 머신' 신시내티 레즈와의 치열한 패권다툼의 시대가 전개된다. 일단 1975년과 1976년에는 신시내티에 밀려서 지구 2등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1977년, 1960년대의 영광을 이끈 월터 앨스턴 감독이 은퇴하고, 후임으로 토미 라소다가 등장한다. 그리고 1977년과 1978년, 2년 연속으로 신시내티를 제치고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만년 하위팀에서 강호로 등장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2년 연속 제치고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 때도 다저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뉴욕 양키스였다. 2년 연속 만난 과거 뉴욕의 라이벌과의 클래식 매치에서 다저스는 2년 연속 패배하면서 1970년대는 결국 2인자의 시절로 마무리해야 했다.


1981년 우승 장면


1988년 우승 장면

그러나 근성의 다저스는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라는 멕시코 출신의 에이스를 발굴하며, 히스패닉 계열의 팬들을 끌어 모으면서 다시금 인기의 발판을 마련한 후, 마침내 1981년 월드시리즈에서 지긋지긋한 뉴욕 양키스를 꺾고 드디어 26년만에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1983년과 1985년에는 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패배했으나, 1988년 월드시리즈에 올라 최강 전력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1차전 커크 깁슨의 그 유명한 절뚝거리면서 끝내기 홈런을 시작으로 당시 리즈시절이었던 에이스 오렐 허샤이저의 역투까지 더하여 4승1패로 우승을 차지한다. 1988년의 이 우승은 현재까지 다저스 마지막 우승이다.

전반적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강호로서 군림하기는 했지만, 우승을 노리기에는 한 끗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늘 상위권에서 활약했던 시절이었으니, 실패한 시즌은 거의 없었다.

2.4. 암흑기 아닌 암흑기

이후 90년대에는 암흑기 아닌 암흑기를 보내게 되는데, 1995년과 1996년에만 플레이오프 진출했으니 암흑기라 해야 맞지만 정작 성적은 꾸준히 5할 이상 내는 괜찮은 성적이라서 완벽한 암흑기도 아니었다. 특히 5년 연속 신인상(마이크 피아자, 에릭 캐로스, 라울 몬데시, 노모 히데오, 토드 홀렌스워스 등)을 배출하고, 아시아 지역의 개척에 나서 노모 히데오박찬호를 등장시킨 것도 1990년대였다. 흥행이라는 면에서 보면, 흑인 선수 및 그 시장의 개척, 히스패닉 선수 및 그 시장의 개척에 이어, 세 번째로 다저스가 또 다시 새로운 시장을 발굴했으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아무튼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1990년대가 다저스의 최고 침체기였던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1996 시즌을 마지막으로 다저스 최고의 명감독 토미 라소다가 팀을 떠나고, 다저스의 아버지라고 할만한 구단주 오말리 가문이 구단을 70 넘어서도 2세를 본 루퍼트 머독의 FOX 코퍼레이션에 팔아넘기는데, 이때부터 2004년까지는 다저스 팬들도 완벽하게 흑역사 취급하고 있다. 감독들은 두 시즌 간격으로 교체됐고[14], 좀 한다 싶은 선수들에게 지나친 거액을 안겨주여 계약하면서[15] 팀 운영도 힘들어졌다.

특히 90년대에는 훗날 명예의 전당급으로 성장하는 페드로 마르티네즈, 폴 코너코를 다른 팀에 퍼주며 남 좋은 일만 해주는 등 여러모로 속쓰린 일이 많았다. 토미 라소다의 감독직 은퇴 이후 한솥밥을 먹었던 유격수 빌 러셀에게 밀려 감독직을 얻지 못한 과거 다저스의 명포수는 결국 옆동네로 떠나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세이버메트릭스를 팀의 모토로 삼았던 디포데스타 단장은 팀내 리드오프감 중견수 유망주를 두번이나 룰5 드래프트로 내몰고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기도 했는데, 그 선수는 2008년부터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내셔널리그 외야 골드글러브를 3연패한 중견수 셰인 빅토리노. 이때부터 DTD는 시작되었다

2.5. 막장 맥코트 시대

돈을 우선시하던 FOX 계열에서 부동산 재벌 프랭크 맥코트가 팀을 인수하고, 고액 연봉의 먹튀들을 차례차례 처분하면서 다저스는 다시 회복되어 갔다. 물론 이 때는 맥코트가 다저스의 진정한 재앙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어쨌든 2004년 8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비록 첫 상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처참히 말리고 탈락했지만. 이후 2006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2년 연속으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 올라가지만 2년 연속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패배했다. 월드시리즈는 20년째 못 올라가고 있지만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강자 자리를 탈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기간동안 좋은 성적을 보여주자 떠나갔던 관중들도 차츰 돌아와서 메이저리그 전체 관중동원 2위의 초인기구단의 위상을 회복했다.

그러나 다저스의 진정한 재앙이 찾아오는데, 바로 구단주 맥코트가 상상 이상의 막장이었던 것. 이미 빚을 내서 구단을 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빚을 만회하기 위해 다저스를 이용할 것은 점쳐졌지만, 구단주 부부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팀을 담보로 싸움질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기에 팀의 재정을 구단주의 사적인 일로 낭비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팀을 도저히 돌볼 수도 없는 상태임이 드러났다. 다저스를 담보로 거액의 돈을 빌려 사치를 일삼았고, 심지어 다저스를 통해 정치 자금을 모아 정계 진출까지 꿈꿨다고 한다. 여기에 점성술사를 고용해서 그들의 점에 따라 승패를 점쳤다고 하니 이건 뭐(...) 그래서 대권을 노리고 질러야 할 2009년 오프시즌 동안에 정작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동쪽의 누구는 이해할 수 없는 괴짜스러운 행동을 저질러도 제국을 재건하기라도 했지...

분명 2010 시즌 선발진은 화려했다. 제2의 샌디 쿠팩스를 꿈꾸는 88년생 좌완 영건 클레이튼 커쇼, 2009 시즌 전반에 사이 영 페이스를 달렸던 채드 빌링슬리[16], 첫 시즌부터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좋은 모습을 보인 존 일라이, 일본인 투수 구로다 히로키, 준수한 4~5선발의 성적을 보이는 비센테 파디야까지. 하지만 구단주의 막장짓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흔들리는 팀이 성적이 잘 나올리가(...)

급기야 명문 다저스가 선수들 월급을 못 줄 신세에 몰렸다. 결국 중계권을 FOX에 헐값에 팔아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개입해서 중계권 계약을 무효로 만들었다. 결국 맥코트 부부가 파산신청을 하면서 다저스는 2011년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행히 명문 다저스라는 위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저스를 노렸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이나, 다저스의 스타 출신인 티브 가비가 이끄는 투자자 집단, 그리고 옛날의 구단주인 오말리 가문 등등.

2011년에는 이렇게 팀이 제정신이 아니고 연봉이나 덜어내며[17][18] 리빌딩을 시작해야 할 처지까지 가나 했지만, 맷 켐프클레이튼 커쇼[19]가 다저스 팬들의 유일한 희망으로 군림하였고 후반기에 콜업된 유격수 유망주 디 고든이 3할을 치면서 눈을 즐겁게 해줬으며 옛 명감독 토미 라소다는 84번째 생일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명예 감독으로 덕아웃에서 선수단을 지휘하고 홈 관중들에게 생신 축하 노래를 들었다.

시즌 종료 후 커쇼는 다저스의 암울한 득점지원 속에서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안 케네디와 공동 다승왕에 올랐고 아메리칸리그의 금강불괴와 함께 78년만의 양대리그 동반 트리플크라운을 이뤄내는 대기록을 세웠고, 켐프는 리아나와의 결별 이후 분노의 맹타를 휘두르며 39-40으로 아깝게 40-40을 놓쳤지만 내셔널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에 등극했다.

2.6. 다시 태어난 내셔널리그의 공룡구단

각 시즌의 내용은 해당 시즌 항목 참조.

맥코트의 막장 행각으로 지쳐가던 팬들에게는 다행으로 팀은 과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스탠 카스텐, 매직 존슨과 그 외 여러 사장단이 뭉친 구겐하임 컨소시엄에게로 넘어갔다. 팬들은 다른 누구보다 카스텐 사장이 야구단을 잘 경영했던 경험이 있으므로 다저스의 부활에 대해 기대를 걸었다. 더불어 네드 콜레티는 이제 카스텐에게 밀려 바지단장이 될 거라는 환호성도 같이 질렀다.(...)

2012년 중반 핸리 라미레즈를 영입하고 보스턴 레드삭스와 대규모의 트레이드를 단행하여 아드리안 곤잘레스, 조시 베켓, 칼 크로포드를 영입, 페이롤을 확 올리면서 돈 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2013년 1월, 자세한 규모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여하튼 최소 1년 3억 달러 가까운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25년 70억 ~ 80억 달러의 중계권 계약을 체결하며 그야말로 공룡 구단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시청률 상승, 그리고 팀 성적 상승에 대한 의지 표명 및 보험으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네임밸류와 연봉만 높은 고령자들도 받아들인 게 흠이라면 흠.

2013년, 위엄넘치는 빅마켓 구단으로 다시 태어난 다저스의 운영 원칙은 스탠 카스텐이 클레이튼 커쇼의 7년 2억 1천 5백만 달러 계약 발표 당시 가진 기자 회견에서 잘 나타난다. 이 때 카스텐 사장은 5년차 옵트 아웃이 있지만 트레이드 거부권은 없는 계약에 대해 '옵트 아웃은 얼마든지 넣어줄 수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 거부권은 말도 안 되는 조항이라고 생각한다. 옵트 아웃보다 어이가 없다. 내 생전 트레이드 거부권을 계약에 넣은 적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

한 마디로 '네가 잘해서 돈 더주는 건 얼마든지 더 줄 수 있는데 네가 못하는데 자리 보전해달라는 징징은 ㄴㄴ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고효율은 포기하더라도 고효과는 포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 이는 빅 마켓으로서 나름 현명한 처신이며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팜을 가꾸는 데에도 카스텐 사장이 직접 나서서 발언할 정도로 열심이라, 유망주 팜의 전체적인 두께는 얇더라도 탑 100에 들어가는 핵심 유망주들은 사수하면서 열심히 키우고 있다.

2013, 2014년 좋은 정규시즌 성적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시즌에서 좌절하자, 2014년 10월 탬파베이 레이스의 단장 앤드류 프리드먼을 영입하여 사장에 앉히고 전권을 부여했다. 로건 화이트를 비롯한 예전 프런트 멤버들 다수가 교체되었고 프리드먼은 맷 켐프를 과감하게 트레이드하는 등 본인의 색깔에 맞는 방향으로 팀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3. 이모저모

3.1. 홈구장

다저 스타디움 항목 참고.

3.2. 진취적 시도

메이저리그에서 최초타이틀과 상당히 관련 깊은 팀이다.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이 바로 다저스 소속이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의 신인왕-사이영상 동시 수상자 페르난도 발렌수엘라[20]도 다저스에서 데뷔했으며, 사실상 최초의 동양인 선수인 노모 히데오도 다저스에서 데뷔[21]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팀이다. 또 최초의 1억 달러 계약도 1999년 다저스가 케빈 브라운과 맺었다. 그리고 최초의 2억 달러 투수 계약도 2014년 클레이튼 커쇼와 맺었다.

거기에 최초의 스프링캠프를 실시한 구단 역시 다저스다. 1940년대 브루클린 시절 단장이었던 브랜치 리키가 제안하여 플로리다노는 땅 베로비치에 야구장과 연습장, 심지어 골프장 등을 건설해 종합 전지훈련장을 만들어 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를 운영했다.[22] 때문에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상당히 선구자적 팀으로 평가받는데, 다른 나라의 선수들을 데뷔시키는 것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야구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일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 아카데미 역시 다저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또한 중국, 러시아 등 야구를 접하지 않는 나라에도 보급하는데 열성이었다. 한국의 프로야구 초창기에 각 구단이 전지훈련가서 메이저리그 팀들의 훈련을 참관하거나 메이저리그 코치들에게 지도 받을때도 대개는 다저스와 관계된 경우가 대부분. 또 최초로 전용기를 구입한 구단 역시 다저스다.

프런트 및 스탭 쪽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여성 인력의 메이저리그 진출에도 상당히 진취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남자 선수들과 신체적 접촉이 요구되는 수석 트레이너 자리에 역시 여성인 수 펄소니를 기용한 것도 메이저리그에서 다저스가 최초이다. 이렇듯 여성인력을 적극적으로 기용함으로써 메이저리그에 알게 모르게 형성되어 있는 금녀의 벽을 허무는 일에도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23][24]

3.3. 라이벌

미국에서 뉴욕 다음가는 대도시를 연고로 하고 있다보니 뉴욕의 대표구단인 뉴욕 양키스와 라이벌 관계이다.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부터 뉴욕 자이언츠서브웨이 시리즈를 벌이며 쭉 라이벌이긴 했으나..... 양키스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라서 월드시리즈나 가야 만날 수 있다보니 평상시에는 라이벌 관계가 잘 안 드러난다. 하지만 미국 현지의 야구팬이나 기자들이나 최고로 기대하고 최고로 원하는 월드시리즈 매치업을 꼽으라면 단연 양키스vs다저스를 꼽는다. 물론 MLB 사무국과 FOX 방송국에서도 간절히 원하는 매치업이다. 좀더 파고들면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다저스-컵스, 양키스-레드삭스가 붙어서 다저스와 양키스가 월드시리즈를 여는 게 이들에게는 진정한 드림매치. 그래야 시청률이 극대화되지. 게다가 각 시리즈가 7차전씩 가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 이전에 메츠와 필리스, 에인절스와 화이트삭스까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대진표를 짜는 게 MLB 사무국과 FOX 방송국의 평생 소원일 듯.

꿩 대신 닭이라고 70년대 중반에는 신시내티 레즈,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80년대 중반에는 뉴욕 메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LA 에인절스와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3.3.1. 신시내티 레즈

신시내티 레즈의 경우 1970년대 '빅 레드머신' 시절에 NL 서부지구를 놓고 자주 붙었던 이력이 있다. 지금은 레즈가 그저그런 팀이 돼버려서 예전의 라이벌 의식이 적어졌긴 했지만 아직도 '레즈-다저스'의 라이벌전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이 많다. 두 팀의 상반되는 팀컬러, 즉 레즈의 빅 레드머신(공격력)-다저스의 다저블루(투수력)는 바로 1970년대 내셔널리그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70년대 후반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단골로 붙었다. 그 때는 다저스가 번번이 승리하면서 필리스 팬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잠깐 그 관계가 역전되면서 필리스 팬들 입장에서는 통쾌하게 복수하게 된다.

2014 시즌 접어들어서는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많이 두각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라는 전통의 적과 새롭게 대립구도가 형성되는 적을 가졌다는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3.3.2. 뉴욕 메츠

뉴욕 메츠는 1960년대 창단한 팀에 양키스와 같은 동네를 연고로 한 뉴욕이라는 것을 빼면 딱히 뭐 부딪칠 건덕지가 없다. 80년대 중, 후반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2번 붙으면서 라이벌 관계가 조금 있었으나 사이좋게 1승 1패. 오히려 메츠는 뉴욕을 연고로 한 내셔널리그 팀들의 적통을 잇기위해 세운 팀이라 팀컬러는 물론 구장까지도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과거를 계승하는 성향이 강하다.[25] 메츠의 새 구장 시티 필드는 에베츠 필드를 그대로 본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 계승 의식을 놓고도 다저스와 충돌을 보이는 경우도 별로 없다. 대표적으로 메이저리그의 레전드이면서 다저스의 최고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 전체 영구결번의 주인공 재키 로빈슨에 대해서도 재키 로빈슨 재단을 후원하는 등 적극적인 기념사업을 하는 팀이 메츠이기도 하고 미망인인 레이첼 여사 역시 다저스보단 메츠쪽에 더 마음이 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이언츠는 아예 관심도 없는 듯 하다.[26] 양키스라는 공공의 적에다, 메츠는 같은 지구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라는 앙숙들에, 다저스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에인절스라는 앙숙들에게 신경쓰기 바쁘기도 하다.

3.3.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같은 디비전에 속해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도 라이벌리를 구축하고 있다. 2005년 무렵부터 파드리스가 NL 서부지구의 최강자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다저스팬들에게 듣보취급당해온 파드리스 팬들이 한풀이를 하는 과정에서 양팀 팬들 간 감정이 고조되었고, 2012 시즌 초, 다저스가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파드리스 개막전에서 3연전을 스윕하면서 파드리스 팬들을 좌절시켰지만 후반기 들어오면서 다저스가 DTD를 타면서 부진하면서 파드리스가 3연전을 두번이나 위닝시리즈로 가져가면서 두 팀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파드리스의 기둥이었던 애드리안 곤잘레스보스턴 레드삭스에서 2012년 8월 다저스로 이적하고, 2013년 4월, 펫코 파크에서 잭 그레인키카를로스 쿠엔틴의 맞짱이 벌어지며 라이벌리가 급격히 심화되었다.

3.3.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65년 당시의 양 팀 간에 방망이를 들고 일어난 벤치클리어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27번 투수 후안 마리샬(Juan Marichal)이 방망이를 들고 다저스의 포수 조니 로즈보로(Johnny Roseboro)를 치려고 하기 전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뉴욕 양키스보스턴 레드삭스의 서부판. 실제로 대다수의 다저스 팬들은 다저스의 주적은 자이언츠와 에인절스라고 한다. 실제로 두 팀 팬들과의 사이는 나쁘다 못해 험악하다.

다저스의 최고의 라이벌을 꼽으라면 역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두 팀 모두 뉴욕에서 창단되어, 캘리포니아로 비슷한 시기에 이주해 왔고,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라는 캘리포니아 주 양대도시간의 감정도 그렇고, 두 팀 모두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소속이다보니 한 시즌에 진짜 뻔질나게 만난다. 그러다보니 열기가 식을 일도 없다. 다저스팬과 자이언츠팬 사이에 난투극도 종종 발생하며, 이로 인해 사망자도 생길 정도.

자이언츠가 서부로 옮겨온 이후 대대로 빌빌거려서 오랜기간 다저스 우위였지만, 2000년대 초반 으로 각성한 배리 본즈를 앞세운 자이언츠에게 잠깐 밀렸다. 하지만 배리 본즈의 은퇴 이후 팀 전력이 강해진 다저스가 다시금 우위에 섰지만 2010년, 2012년 자이언츠의 월드시리즈 우승과 2011년 맥코트 구단주 문제로 다시금 혼전 양상. 적수가 없었던 본즈 이후에는 팀 린스컴이 등장하면서 클레이튼 커쇼와 라이벌 기믹을 세우고 있다. 2000년 개장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AT&T 파크의 개장경기 승리투수는 바로 박찬호다. 자이언츠 팬들은 이 사실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 여기에 다저스는 토미 라소다 시절이던 80년대에만 우승을 두번 했을 뿐, 1988년 우승 이후 월드시리즈에 나가보지도 못한 것이 어언 26년이 돼간다. 반면 자이언츠는 1989년 옆동네 양아치에게 4연패 싹슬이를 당해 패한 뒤, 별 다른 소식이 없다가 2002년 13년만에 첫 출전을 기록하고 그 후 2010년, 2012년 두 번 출전해, 두번 다 우승으로 이끌었다. 여기에 2014년 올해에는 직접 홈으로 불러다놓고 혼쭐내고 보란듯이 내셔널리그 지구우승을 이끌었음에도 자신은 월드시리즈 실패에 오히려 '철천지 웬쑤'가 진출했으니 멘붕이 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듯 하다.

이미 극성팬들은 흥분하면 서로를 죽이고 폭행하는 영역까지 라이벌리가 악화되어 있다. 다저스 팬이 샌프란시스코 클럽에서 감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저스 저지를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샌프란시스코 팬에게 피살당하기도 했고, 자이언츠 팬도 다저스 팬들에게 아무 이유없이 얻어맞아 뇌손상을 입어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경우가 나오기도 했다.

3.3.5. LA 에인절스


또한 LA 에인절스하고의 사이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저리가라 할 정도로 험악하다. 통칭 프리웨이 시리즈. 자이언츠와 달리 에인절스는 시범경기나 인터리그에서만 만나는 탓에 마주칠 기회는 비교적 적지만, 일단 붙으면 분위기가 살벌하다. 다저스가 로스엔젤레스에 입성 후부터 로스엔젤레스의 주인이라며 자주 다투던 사이에다가 다저스가 로스엔젤레스에 입성하고 나서 같이 다저스 구장을 공유하고 있었을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일부 에인절스 팬들은 다저스 팬들이 에인절스 팬들에게 연고지 드립으로 일방적으로 어그로를 끈다고 책임을 돌리나, 사실 이 문제는 누구한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에인절스는 이름에 LA가 들어가기는 하나 에인절스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팬덤의 베이스는 오렌지 카운티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구단 입장에서는 대도시 로스엔젤레스로 팬덤을 넓히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에 슬금슬금 대도시 로스엔젤레스로 팬덤을 넓히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모습이 다저스 팬들 입장에서는 좋게 보일 리 없다. 그 와중에 에인절스 팬들은 팬들대로 '왜 LA로 들어오냐?'는 다저스 팬들의 성질이 듣기 싫어서 'We're not LA' 와 같은 티셔츠를 입기도 하며 충돌이 벌어지는 것.

유튜브에는 에인절스와 다저스 팬들의 난투극이 비디오로 업로드된 것도 많이 찾을 수 있다. 누가 잘못인지 설전을 벌이는 병림픽이 적잖게 일어날때도 많은듯 하다. 한창 에인절스의 성적이 절정에 달했던, 2002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던 2000년대에는 이 갈등이 극에 달했다. 그 시기 다저스는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기 때문에 에인절스 팬들이 놀리고 도발도 했고, 다저스 팬들 역시 부글부글 끓던 시점. 거기에 2011년 마침내 앤절스가 다저스보다 더 많은 관중이 들어오고, TV 중계권료도 무려 100M가 인상되면서, 슬슬 두 팀의 관계가 역전되려나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에인절스가 대형 FA 영입에서 역사에 남을만한 거듭된 삽질을 세 번씩이나 저질러 주며 성적이 추락하자 인기가 조금씩 시들해지고, 반면 다저스는 맥코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매직 존슨 - 스탠 카스텐 컨소시엄의 체계적인 관리 아래 들어가고 25년 80억 달러의 대형 중계권료 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성적도 기록에 남을만한 승률을 보여주며 압도적 지구 1위를 차지하는 등 호재가 겹치며 인기가 대폭발했다. 2013년의 다저스와 에인절스의 경기 당 평균 관중수는 4만 5천명 vs 3만 7천 명이다. 에인절스의 수치도 리그 7위의 수치로 나쁜 수치는 아니지만, 다저스와는 8천명이 차이날 정도.

기본적으로 대도시보다는 교외의 중소도시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오렌지 카운티를 기반으로 하는 에인절스로서는 다저스의 팬 규모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 사실 오렌지 카운티에도 다저스 팬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리키 놀라스코. 놀라스코는 오렌지 카운티 출신이지만 아버지가 다저스 팬이었고 그를 따라 본인도 열혈 다저스 팬이 되었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환자이던 다저스 팬과 맷 켐프의 만남이 뉴스에 탄 적이 있었는데 그 팬의 거주지는 로스엔젤레스도 아닌 샌프란시스코 교외였다.

진짜 에인절스가 죽어라 노력하고 다저스가 폭망에 가까운 삽질을 해서 간신히 관중동원에서 다저스를 추월한게 2011년의 결과이다. 다저스가 2012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만 보였는데도 두 팀의 관계는 다시 원위치이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에인절스가 마케팅을 해도 로스엔젤레스 본진으로 파고 들기는 쉽지가 않다. 물론 공격적 마케팅으로 로스엔젤레스 도심에도 에인절스 팬들이 조금씩 생겨나고는 있지만, 어찌됐든 로스엔젤레스는 다저스의 본진이며 역으로 다저스도 오렌지 카운티에 마케팅을 하고 있다. 거기에 2013년의 에인절스는 삽질만 하고 있으며 다저스는 기적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애초에 2013년의 결과는 다저스의 팬이 크게 늘었다기보다는 떠났던 팬들이 돌아왔다고 봐야 하며, 아직도 팬덤의 넓이와 깊이에서 다저스가 에인절스에 비해 앞선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두 팀은 인터리그에서도 불꽃튀는 시리즈인 프리웨이 시리즈를 벌인다. 한국으로 말하면 덕아웃 시리즈의 두산엘지정도 실제로 두 LA팀의 사이가 한국의 LG와 두산과의 사이와 어느 정도 흡사한 것이 다저스는 한국의 LG와 같이 팬들도 많았고 예전의 리즈 시절과 긴 암흑기, 그리고 2013년의 급반등 또 숨어있던 팬들의 대란 이 비슷하고, 에인절스는 두산처럼 포수 출신의 감독이 부임하면서 2000년대부터 아메리칸리그의 강호로 부상했다. 2013년에는 두산과 달리 죽을 쑤고 있지만. 박찬호의 태권 발차기를 비롯 유독 벤치클리어링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리즈 중 하나이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첫 완봉도 이 프리웨이 시리즈에서 나왔다.그래도 2002 월드 시리스에서 앤젤스와 자이언츠가 맞붙었을때는 아무래도 자이언츠가 훨씬 더 큰 적이기에 많은 다저스의 팬들과 관계자들이 에인절스를 응원했다.

3.3.6.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13년 들어서도 기존의 주적관계가 유지된 가운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대립각이 날카로워졌다. 이안 케네디의 빈볼쇼 때문. 문제를 일으킨 케네디가 샌디에이고로 떠나면서 디백스와의 대립은 어느 정도 유야무야 되어가는 느낌이었으나, 9월 19일 애리조나 원정경기에서 지구우승을 확정했을 때 다저스 선수들이 체이스필드 풀장에 난입해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바람에 디백스 팬에게 대대적인 어그로를 끌어버렸다. 애리조나 주가 지역구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까지 전직 대통령 후보 체통까지 던져버리고 돈 많이 받아먹으면서 싸가지없는 놈들이라는 트윗을 올려 공개적으로 까면서 두 팀간의 대립은 확전되는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브라이언 윌슨은 매케인에게 '콩라인 주제에 말이 많다' 라는 요지의 트윗을 시전했다. 풀에 뛰어드는 버락 오바마를 지켜보는 매케인을 합성해 두 배의 굴욕 유도.(...)

2014년 이전에도 애리조나는 다저스 타도를 외치며 야심차게 많은 걸 준비했지만 시즌 이전부터 고꾸라지면서 탈꼴찌에 급급한지라 2013년의 대립구도는 흐지부지 이어지지 않는 중.

3.4. 대한민국 내 인기

한국인들에게는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가 뛰었던 팀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2013년부터 류현진의 소속팀으로 다시 한 번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얻는 인기는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에 비할 바가 못될 정도다. 오죽하면 KBO 제11구단 나성 다저스라는 농담마저 있을 정도. 이런 인기는 당연히 박찬호 시절부터 시작된 인기다. 다저스는 박찬호 시절에도 '제9구단'이라 불렸다. 지금이야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이 많아지고 한국 프로야구도 2000년대 후반들어 확고한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뛰었던 시기는 IMF 외환위기로 국민들이 꿈도 희망도 없던 시절이기에 박찬호가 차지한 인기, 다저스에게 가지는 호감은 상당히 컸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다지 좋지 못했던 성적 때문에 다저스 자체의 인기 보다는 그냥 '박찬호 팀'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반면 류현진이 다저스 소속이 된 2013년에는 초장에 좀 삽을 푸긴 했지만 이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손꼽을 질주를 시작해 드라마틱한 반전, 화려한 경기들을 보여줘 단순히 '류현진 팀' 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저스 구단 자체가 얻는 인기가 크다. 처음에는 류현진 경기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강했지만 아무래도 매체가 발달해 다저스의 다른 경기에도 인터넷, 케이블 방송 등으로 접근이 용이했던 점도 크다. 추신수가 출전하는 신시내티 경기보다 류현진이 등판하지 않는 다저스 경기의 인터넷 중계방 인원이 더 많다. 게다가 은근히 무시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시차인데, 미국 서부해안지역과 한국은 16시간의 시차가 발생해서 다저스가 저녁경기를 하면 한국에선 점심시간에 경기를 라이브로 즐길 수도 있다. 홈인 로스앤젤레스 뿐 아니라 같은 지구 소속 샌프란시스코, 샌디에고 등지로 원정경기를 떠나도 마찬가지. 추신수가 뛰던 신시내티와 한국은 13시간, 현재 소속팀 연고지역인 텍사스와는 14시간 차이가 나서 저녁경기도 아침~오전중에 생중계를 봐야 하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27].

다저스에서 류현진과 박찬호처럼 주전으로 활약하지는 않았지만 최희섭이나 서재응이 잠시 뛴 적이 있기도 하는 등 한국인 메이저리거와 메이저리거 출신들과 대부분 인연이 있다.

3.4.1. 타 MLB 팬덤과의 충돌

다저스의 대규모 팬덤 유입은 MLB 팬덤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도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중이다. 류현진의 진출로 다저스는 MLB 팀 중 국내에서 독보적인 팬층을 보유하게 되었고 자연히 언론들과 중계진들도 다저스 편애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각 포털사이트의 해외야구 뉴스란은 다저스의 기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TV중계도 다저스 편파방송이다.[28] 거기다가 류현진의 경기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서 상대팀을 비난하는 것으로 악명높은 허구연이 중계하여 효과는 두 배. 거기다가 민훈기는 덤으로 지원사격 까지 한다. 다저스팬 입장에서야 국대중계 보는 기분으로 방송을 즐겁게 즐길 수 있지만, 상대팀을 응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방송보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질 지경. 상대팀의 선수가 실책이라도 하면 베이징 올림픽 중계에서 재미를 봤던 "고마워요 XX" 드립까지 날린다. 이러한 중계들과 국내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단순한 편파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다저스와 타팀의 충돌시에 근거 없는 루머나 LA 언론의 썰을 마치 당연한 사실인마냥 국내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위험한 점은, 평소에 MLB를 즐겨보던 사람이라면 적당히 이런것들을 걸러들을 수 있지만, 새롭게 MLB에 입문한 팬들은 이것들을 믿기가 쉽다는 것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잘못된 지식을 가져서 다른 팀에게 악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좋은 현상이 아니다. 이러한 루머나 썰들의 가장 큰 희생팀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제한맨 시절의 해외축구 사정이 해외야구에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보면 쉽다. 기존 다저스 팬들은 여기에서 블로그에서 머물며 이런 편애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나타내고 있진 않지만 채팅 등을 뒤져보면 '샌프란시스코 팬들 닥치게 만들어 속시원하다' 는 식으로 그들 나름대로 이 상황을 즐기는 중.사실 자신들이 안나서고 남들이 알아서 욕까지 먹어주면서 딜해주니 편하긴 할듯

문제는 지나친 의혹 제기와 시비 걸기다. 일례로 2013년 NLCS 1차전에서 다저스의 핸리 라미레즈가 카디널스의 조 켈리의 투구에 맞아서 부상을 당하자 엠엘비파크의 유입 다저스 팬층은 고의논란으로 난리가 났다. 미국 현지보다도 '고의론'이 힘을 얻었는데, 이 때문에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비이성적으로 다른 팀을 깐다'면서 타팀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6차전 승부가 급격하게 기울자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상대 핵심선수에게 빈볼을 던져 관자놀이를 박살내자!(살인 선동이다).


2014년 상황이다

거기에 기존 팬들도 피해자만은 아니다. 뉴비라고 해서 항상 어그로를 끄는 것은 아니고, MLB를 처음 보기 시작하며 즐기기 시작한 팬들도 얼마든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사람들에게조차 '다저스? ㅋㅋㅋ 알만 하네' 란 식으로 깔보며 편견을 가지는 기존 팬들이 늘어나고 이에 대해 다저스 팬들 역시 열받아 싸움이 시작되면 커뮤니티가 불타오른다는 것. 기존 MLB 팬들의 근거없는 부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순 없다.

이래저래 다저스의 2013년은 국내 MLB 팬덤에서 엄청난 빠들과 그에 못지않은 까들을 양산한 핫한 시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절대로 부정적인 면만 존재하는 현상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다저스에 관심을 가지는 신규 팬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신규팬들의 유입도 나름 컸기 때문이다. 류현진 진출 이전부터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많았고 그 사실이 주변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던 사람들 중 류현진 진출 이후 주변인들로부터 '얘는 잘하는 애야?' '저 팀은 잘하는 팀이야?' '저 팀은 원래 저런 스타일이야?' 등등 여러 질문을 듣게 되며 사람들의 관심이 '류현진' 개인이 아니라 다저스와 메이저리그로 가고 있다는 걸 느낀 사람들이 제법 있다. 찾아보니 없더라는 비꼼을 듣기도 하지만, 워낙 어그로가 많아서 그렇지 엠팍&엠게 같은 곳을 가면 다저스와 메이저리그의 기초적인 요소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MLB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에게 다저스가 응원하기 무난한 구단인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서부지구에 소속되어서 한국에서 중계보기에 좋은 시간대에 경기가 많다는 점, 류현진의 진출로 공짜한국어 중계를 볼 수 있다는 점,[29] 성적도 어느정도 나와준다는 점은 분명한 메리트이다.

하지만 부정 못할 부작용이 하나 있다면 류현진 진출 이전부터 다저스가 아닌 타 팀을 응원하던 메이저리그 팬들의 눈물겨운 정체성 숨기기. 넷상에서야 문제없지만 메이저리그 팬이 많지 않던 오프라인에서 류현진 팀이 아닌 다른 팀을 응원한다고 하면 '이상한 녀석' 취급 당하기 일쑤가 되어버렸다.

정리하면 자기 팀을 응원하되 괜히 너 왜 류현진을 응원 안 하냐고 비난해서는 안 되고, 류현진을 비롯한 한국인 선수가 있는 팀과 다른 팀을 응원해서 자기가 일방적으로 피해자가 됐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국뽕 타령이나 비아냥 등을 해대며 선동질을 하는 것 역시 있어서는 안 된다. 각자 자기 응원하는 팀만 응원하며 괜히 서로 얼굴 붉히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2014년부터는 각 커뮤니티의 소모적인 논쟁이 어느 정도 줄어들어가는 경향이 보인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타 구단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은 메이저리그 전문 커뮤니티들의 경우이고, 주요 포털에서는 아직도 진흙탕 싸움인 상태이다. 특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포털에서 관련 뉴스만 떠도 '사구의 팀 세인트'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3.5.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

3.5.1. 트리플 A

Oklahomacitydodgers_1.png
[PNG image (169.67 KB)]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
Oklahoma City Dodgers
창단 1962년
계약년도 2015년
소속 리그/지구 퍼시픽 코스트 리그/아메리칸 컨퍼런스/남부지구
연고지 오클라호마 주 오클라호마 시티
홈구장 치카소 브릭타운 볼파크

2009년부터 다저스는 앨버커키 아이소톱스 팀과 트리플 A 제휴 계약을 맺고 있었으나, 2014년 시즌 종료 후 제휴를 해지했다. 다저스 입장에서는 이전 제휴구단인 라스베가스 피프티원스 시절부터 지나칠 정도로 타자 친화적인 지역 팀들과 트리플 A 계약을 맺다 보니 다저스 타자 유망주들의 장타력은 과대평가 되었고, 반대로 투수 유망주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환경이 되는 바람에 유망주 육성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2015년부터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제휴를 맺고 있던 오클라호마시티 레드호크스와 제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그리고 팀 이름도 아예 '오클라호마 시티 다저스'로 바꾸었다. 다저스와의 계약이 해지된 앨버커키는 콜로라도 로키스와 새로 협약을 맺었다.

3.5.2. 더블 A

털사 드릴러스
Tulsa Drillers
창단 1975년
계약년도 2015년
소속리그/지구 텍시스 리그 북부지구
홈구장 ONEOK 필드
(ONEOK Field)
연고지 오클라호마 주 털사
  • 2014년까지는 콜로라도 로키스와 계약을 맺고 있었다. 2015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3.5.3. 싱글 A

© from
랜초쿠카몽가 퀘이크스
Rancho Cucamonga Quakes
창단 1966년
계약년도 2011년
소속리그/지구 캘리포니아 리그 남부지구
홈구장 론마트 필드
(LoanMart Field)
연고지 캘리포니아주 랜초쿠카몽가(1993~ )

그레이트레이크스 룬스
Great Lakes Loons
창단 1982년
계약년도 2007년
소속리그/지구 미드웨스트 리그 동부지구
홈구장 도우 다이아몬드
(Dow Diamond)
연고지 미시건주 미들랜드(2007~ )

3.5.4. 루키

오그든 랩터스
Ogden Raptors
창단 1977년
계약년도 2003년
소속리그/지구 파이오니어 리그 남부지구
홈구장 린드퀴스트 필드
(Lindquist Field)
연고지 유타주 오그든(1994~ )

3.5.5. 2000년대 이후 팜 관리

2014년에 들어와서야 빅 마켓 팀이고 공룡구단이지만 중계권 대박이 나기 전만 하더라도 전체적인 연봉 규모와 경제 규모가 아주 크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팜에 나름대로 신경을 써 온 팀이었다. 특히 전임 단장인 폴 디포데스타 시절에는 손에 꼽히는 팜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팜에서 튀어나온 선수들만 거론해도 맷 켐프, 클레이튼 커쇼, 채드 빌링슬리, 러셀 마틴 등등. 가히 풍요롭다 못해 엄청난 팜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 네드 콜레티는 자기 입으로는 팜에 신경을 쓴다고 했으나 사실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었기에 팜은 뎁스가 점점 얇아지고 시궁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클레이튼 커쇼조차 미겔 카브레라, 마크 테세이라의 트레이드의 칩으로 사용하려던 사실은 유명한 일화. 로건 화이트 스카우트 단장이 대노하면서 자기 목을 걸고 결사 반대했기에 무산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게 이루어졌다면 지금처럼 공룡구단이 되었어도 다저스가 대권에 도전하는 전력을 갖추는 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30]

이후 탠 카스텐 사장을 중심으로 한 사장단이 취임하며 다저스는 다시 팜 관리에 신경을 쓰는 팀으로 기조가 바뀌었다. 사실 카스텐이 들어오기 전부터 다저스는 건 화이트를 중심으로 선별안이 뛰어난 스카우팅 팀을 보유해 양질의 유망주를 잘 확보하는 팀이었다. 그게 맥코트 시절과 콜레티가 뭘 해보려고 하던 (...) 시절에는 유망주를 트레이드 칩으로만 써 제껴 부각이 안 되다가 카스텐이 들어오면서 로건 화이트에게 유망주 운영의 전권이 부여되는 듯한 기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스텐 사장의 취임 이후 다저스의 경영에 실제로 참여한 기간은 짧지만, 확실히 다저스의 팜은 달라졌다. 유망주 뎁스 문제야 일 이년에 해결될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긴 해도, 최소한 다저스의 팜은 다수의 뛰어난 유망주를 쌓아둔 팜은 아니더라도 잠재력 높은, 이른바 하이 실링 유망주를 일정 수 보유한 팜은 된다. 칼럼니스트 키스 로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 역시 '비록 다저스의 팜은 뎁스는 두껍다 할 수 없지만 소수 정예의 잠재력 높은 유망주를 보유하고 있어서 좋은 팜이라 할 수 있다' 라는 평가. 여기서 말한 소수 정예 유망주의 일원은 각각 훌리오 유리아스, 작 피더슨, 코리 시거. 2014년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 유망주 평가에서 유리아스는 15위, 피더슨은 17위, 시거는 19위를 차지했다. 말 그대로 소수 정예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 위에서 말한 뎁스 문제 역시 2014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싹수 있는 1, 2 라운더 두 명이 추가 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1라운드 15픽 그랜트 홈즈와 2라운더 알렉스 버듀고 역시 각자의 영역인 투타에서 좋은 보습을 보여주고 있다. 피더슨이 트리플 A, 코리 시거가 더블 A, 유리아스가 하이 싱글 A, 홈즈와 버듀고가 각자 루키 리그에 있으니 더 이상 뎁스가 얇다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2014년 기준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는 역시 누가 뭐라 해도 멕시코 출신 투수 유망주 훌리오 유리아스. 아직 1996년생에 불과한 만 17세 소년이 싱글 A 에서 뛰어난 피칭을 보여주며 많은 전문가들에게 1선발급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평가받고 있다. 문제라면 180cm 정도에 불과한 다소 작은 골격.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더 성장할 여지가 있지만 전문가들의 검진에 따르면 유리아스의 골격은 이미 성장이 끝난 상태라고 한다. 물론 불리한 체격 조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똑같이 180cm의 작은 체구의 소유자이자 다저스 팜 출신이었던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생각하면 희망적인 부분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2014년 말 다저스 올해의 마이너리거 상을 수상할 때 찍은 사진을 보면 185 센티미터 정도의 키인 피더슨과 키가 얼추 비슷해졌다. 아직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나이인만큼 다저스 내부에서도 어떻게든 유리아스의 골격을 키우려고 노력중인 모양.

내야수 유망주로 평가받는 코리 시거 역시 기대주이다. 요즘 팜에서 씨가 마르고 있는 대형 유격수 유망주라는 점, 체격과 파워를 타고 났다는 점을 높이 산다. 2013년 말 하이 싱글 A 로 올라와서 타격이 죽을 쑤고 애리조나 가을 리그에서도 주춤했지만 유망주가 한 단계 높은 리그를 올라가서 주춤하는 거야 뭐 걱정거리도 아니고. 진짜 문제는 수비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않으며, 타고난 체격도 큰 편이이기에 유격수로는 조금 어렵지 않겠냐는 평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3루수 빅 뱃으로 성장해줘도 감사할 일이지만 아무래도 원 포지션인 유격수가 더 욕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위의 두 유망주는 아직 싱글 A이므로 메이저리그에서 보려면 한참 시간이 남았지만 나머지 피더슨은 당장 2014 시즌에 볼 가능성이 있는 이른바 '메이저리그 레디'의 유망주다. 피더슨의 경우 2014년 트리플 A 에서 비록 타자 친화 리그인 PCL 이기는 하나 본즈 놀이를 보여주며 유망주 랭킹이 급상승했다. 2013년까지 피더슨의 위상은 데이비드 프라이스 급의 선수를 얻기 위해서는 트레이드 패키지에 끼워 넣을 수 있는 선수였다면 2014년의 피더슨은 그 어떤 선수와의 트레이드라 할 지라도 절대 칩으로 사용할 수 없는 위상. 야구 기자들 역시 '피더슨은 탐내는 팀들이 많지만 다저스는 피더슨은 트레이드 불가라고 못 박았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놓고 존 레스터 트레이드 칩으로 언급이 되었다는 소식이 새어나오긴 했다.(...) 뭐 그다지 적극적으로 진행된 이야기는 아니긴 하다.[31]

유망주 관리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면 2010년 전후로 '이 정도면 통할 것 같다' 라는 판단이 드는 선수가 있다면 과감하게 트리플 A를 제끼고 더블 A 상태에서 메이저리그로 콜업한다는 점이다. 클레이튼 커쇼, 야시엘 푸이그, 파코 로드리게스, 켄리 잰슨 등이 이런 식으로 트리플 A 단계를 건너 뛰었다.

물론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은 아니다. 푸이그는 애초에 메이저리그 주전감으로 보고 계약한 것을 외야수가 빅 네임으로 꽉 채워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마이너에 잠시 짱박아두었던 선수고, 커쇼와 파코, 잰슨은 모두 더블 A 단계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 어쨌든 다른 팀에 비해 콜업을 느긋하게 진행하지 않고 자체 판단에 따라 적극적으로 불러 올리는 것은 사실. 이것은 다저스의 해외 스카우팅 행보와도 비슷한데, 세간의 기준이나 상식과 다른 자체 판단이 나오면 미적거리지 않고 콜업 및 스카우트를 실행한다.

3.6. 빈 스컬리

다저스의 목소리(The Voice of the Dodgers),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5. 영구 결번

1. 해럴드 헨리 '피 위' 리즈(Pee Wee Reese) : 명예의 전당에 베테랑위원회의 추천으로 입성한 뛰어난 유격수. 1940년대와 50년대 다저스의 유격수로 좋은 수비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처음으로 재키 로빈슨을 인정하고 그를 보호한 것.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 토미 라소다(Tommy Lasorda) : 투수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감독으로 다저스의 영광을 이끈 인물.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팀에게 안겨주었고, 특히 1981년 월드시리즈에서는 라이벌 뉴욕 양키스에게 2패를 당한 후 4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통산 1599승에 빛나는 명장. 그 1599승을 모두 다저스에서만 거뒀다.

4. 듀크 스나이더(Duke Snider) : 1940년대말과 1950년대를 대표하는 중견수. 통산 407홈런을 기록하며 다저스의 중견수를 책임졌다. 동시대 같은 포지션에 라이벌 팀인 자이언츠의 윌리 메이스, 양키스의 미키 맨틀이라는 괴수가 나타나는 바람에 살짝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명예의 전당 입성엔 부족함이 없었다.

19. 짐 길리엄(Jim Gilliam) : 1950년대와 60년대 팀의 3루수와 2루수로 뛰면서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코치로 다저스에서 활동하던 중 1978년 뇌출혈로 급서. 다저스에서만 26년을 뛴 그의 명복을 빌고, 팀을 위한 헌신을 기리기 위해 영구결번.

20. 돈 서튼(Don Sutton) : 통산 324승을 기록한 1970년대 다저스의 최고 에이스. 통산 3574삼진을 기록할 정도로 구위도 빼어난 편이었다. 아쉽게도 우승반지와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다저스 역사에 남는 에이스 투수로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24. 월터 앨스턴(Walter Alston) : 23년간 감독으로 재직하며 1950년대부터 시작된 다저스의 전성기를 이끈 명장. 통산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다저스에서만 감독 생활을 하며 2040승을 거뒀다.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32. 샌디 쿠팩스(Sandy Koufax) : 역대 가장 센세이셔널한 왼손 투수. 사상 최고의 커브와 강속구를 무기 삼아 각성한 이후, 그야말로 리그를 초토화했다. 부상 때문에 커리어는 짧고 굵은 편이라 겨우 165승으로 선수 생활을 끝냈지만, 그 압도적인 모습 때문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세 번의 트리플 크라운, 두 번의 월드시리즈 MVP,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3번의 사이영상은 덤. 다만 현대에 와서는 거품 논란이 없진 않지만... 항목 참조.

39. 이 캄파넬라(Roy Campanella) :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흑인 주전 포수. 준수한 수비와 뛰어난 타격 실력으로 MVP를 세 번이나 차지하며, 뉴욕 양키스요기 베라와 라이벌 관계를 이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면서 일찍 선수 생활을 마쳤지만, 불굴의 의지로 회복해서 더 큰 감동을 안겨준 선수.

42.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 미국을 바꾼 야구 선수. 흑인으로 인종차별의 벽을 무너뜨리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2루수로 맹활약했다. 인종 차별을 극복한 그의 상징성도 상징성이고, 리그 MVP와 월드시리즈 우승도 차지하면서 선수로서도 맹활약했다.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 내내 다저스에서만 뛰었지만 재키 로빈슨의 42번은 다저스만의 영구결번이 아닌 전 구단 영구결번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53. 돈 드라이스데일(Don Drysdale) : 샌디 쿠팩스와 짝을 이뤄 원투펀치로 맹활약한 우완 투수. 불같은 강속구와 강한 승부욕을 앞세워 다저스의 전성기를 열었던 대투수 중 한 명. 역사상 빈볼을 가장 잘 활용했던 투수 중 한명인데, '내 할머니라도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는다면 얼굴로 공을 던질테다.'라는 패드립 아닌 패드립(...)을 치기도 했고, 돈 짐머[32]는 다저스에서 뛰다가 컵스로 트레이드 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드라이스데일을 찾아가서 자기 맞히지 말아달라고 비는 일이었다.

그 외에 역대 유일무이의 신인왕-사이 영 상 동시 수상자이자 80년대를 풍미했던 투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34번은 비공식 영구결번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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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트위터상에선 공식 로고의 빨간 야구공을 @로 바꾼 로고를 쓴다. 하지만 작아서 잘 안 보인다는 게 함정
  • [2] 과거 NBA의 대스타였던 매직 존슨이 얼굴 마담격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나 다저스의 실질적인 구단주는 마크 월터라고 라고 봐도 된다. 다저스 지분율의 대부분은 그가 소유한 투자회사인 구겐하임 파트너스가 갖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은 독단적으로 내릴 수도 있기 때문. 매직 존슨의 지분율은 2.3%에 불과하다.
  • [3] 공식 직함은 'President of Baseball Operations'.
  • [4] 월드시리즈 출범 전인 1903년 전을 제외하면, 18회가 됨.
  • [5]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흑인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을 기용했었으며 멕시코 출신으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던 페르난도 발렌주엘라, 그리고 최초의 한국인 선수였던 박찬호와 아시아 프로리그 출신 사상 최초의 선수였던 노모 히데오가 소속하기도 했었다. 여담이지만 삼성 라이온즈와 베로비치 시절 친선경기를 한 일도 있다.
  • [6] 최희섭은 2005년 1경기 3홈런, 3경기 6홈런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어도 시카고 컵스 유망주 때 만큼 기대되는 모습은 아니었고, 서재응은 뉴욕 메츠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망했다.
  • [7] 이전 버전에서는 브롱스라고 적혀 있었는데, 브롱스는 양키스의 연고지다.
  • [8] 이후 이 팬덤을 이어받은 것이 뉴욕 메츠이다.
  • [9] 요기 베라에 이 말에 그 당시 다저스의 주전 내야수였던 모리 윌슨은 "그는 잘 던졌지만 우리가 경기를 망친 것이다." 라고 말했다.
  • [10] 팔꿈치 인대 파열로 인한 은퇴. 지금은 토미 존 서저리(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가 개발되어 인대가 끊어져도 수술을 통해 재활이 가능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수술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아 팔꿈치 인대 파열은 곧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의미했다. 만약에 그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면? ㅎㄷㄷ
  • [11] 그리고 저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좋은 은퇴 시즌 기록이다. 아니 메이저리그 모든 투수의 시즌 기록 중 가장 좋은 시즌의 기록이라고 해도 5위권안에 들만한 성적이긴 하다.
  • [12] 그 예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캔들스틱 파크를 홈구장으로 쓰던 당시, 새 구장 신축 여부를 놓고 시와 갈등이 있었는데 항간에 타 지역으로 이전을 한다 카더라, 심지어 '뉴욕으로 다시 돌아간다 카더라'란 뜬소문이 나돌자 팬들이 '부탁이오 가지마오 'Please don't go'란 피켓카드를 들면서까지 타 지역 이전을 막았다.
  • [13] 다만 스프링캠프는 한동안 브루클린 시절때 이용하던 베로비치를 계속썼었다가 2008년 3월 애리조나로 옮겼다.
  • [14] 빌 러셀-데이비 존슨- 트레이시
  • [15] 대표적으로 대런 드라이포트. 다저스 입장에서는 2000년 당시 당연히 박찬호를 우선 잡고 싶어했지만 박찬호는 FA시장에 나가서 자기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연장계약을 거부했고, 다저스는 할 수 없이 드라이포트와 연장계약을 맺는데 문제는 13승이 개인 최다승, 4.16이 최저 평균자책점, 192이닝이 최고이닝이었던 투수에게 연평균 120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이유도 없이 안겨준게 문제. 드라이포트에게 너무 큰 돈을 안겨줘서 정작 박찬호가 FA시장에 나왔을때 돈이 없어서 크게 베팅하지도 못했다. 물론 박찬호의 허리부상 염려때문에 텍사스 레인저스 말고는 접근하는 팀도 없었긴 하지만...
  • [16] 후반기에 박살나면서 무참히 꿈은 깨졌다. 그래도 4.03의 ERA에 196.1이닝 소화.
  • [17] 하지만 $12M의 연봉을 수령하는 구로다 히로키가 눈치없이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하여 다저스 팬들이 뒷목을 잡았다(...) 그래도 구로다의 성적만 보면 다저스에서 실질적인 2선발을 맡아 200이닝을 던진 공로가 있으니 까방권도 줄 수 있는 편.
  • [18] 정작 라이벌 자이언츠에서 3년 21M으로 모셔온 후안 유리베는 2할을 겨우 넘기며 자이언츠의 첩자로 거듭났다.
  • [19] 특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팀 린스컴과 자주 맞붙었는데 그 때마다 굉장한 호투를 선보이며 더욱 복덩이가 되었다.
  • [20] 다만 발렌수엘라의 주무기는 스크루볼이라서 메이저리그에서의 선수생명은 길지 않았다. 그래도 40세 넘어서도 자국 멕시코에서 활약했었다.
  • [21] 왜 사실상이냐하면 60년대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데뷔했던 일본인이 있었다. 하지만 활동기간이 짧아서... 그 선수가 현재 일본 프로야구 캐스터 중 하나인 무라카미 마사노리.
  • [22] 최근에 다저스는 스프링캠프장과 워낙 먼 거리 때문에 베로비치 시설을 일부 매각하고 애리조나에 스프링캠프를 차리고 있다.
  • [23] 그런데 2001년 다저스 부단장으로 취임한 을 단장 인선에서 계속 배제하고 디포데스타네드 콜레티 같은 어딘가 좀 맛이 간 듯한 남성들만 기용한 것을 보면 다저스가 진취적이긴 하지만 아주 급진적인 것까진 아닌 것 같다. 킴 응은 여자일 뿐만 아니라 중국계인 것도 있어서 아시아계 인사가 전무한 美 4대 프로 스포츠 프런트 오피스의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굉장히 약한 입장인 것도 있지만.
  • [24] 킴 응은 다저스가 콜레티를 단장으로 임명한 뒤에도 시애틀 매리너스(빌 버베이시, 잭 쥬렌식),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제드 호이어, 조시 번즈),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토니 리긴스, 제리 디포토) 등 여러 팀들이 단장으로 검토했고 인터뷰만 한번 하고 걸러버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2011년 3월 다저스를 떠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부사장(Senior Vice President of Baseball Operations)으로 부임했다.
  • [25] 메츠의 상징색인 파란색과 오렌지색도 일단 그 색들이 뉴욕주의 상징색이기도 하지만, 파란색으로 상징되는 다저스와 오렌지색으로 상징되는 자이언츠를 계승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파란색 보다 오렌지색을 많이 쓰는 데서도 알 수 있듯 다저스쪽에 대한 계승 의지가 더 높은 편이다.
  • [26] 오히려 역사적인 부분에 있어 상호보완하는 느낌까지 있다.
  • [27] 이런 시간차 뿐 아니라 처음으로 한국인 선수가 데뷔했던 팀이라는 잇점이 크게 작용한 점도 있다. 거기에 여러가지 좋은 경기도 많이 나왔다. 박찬호의 성적도 다저스 시절이 더 좋았고 최희섭은 이 팀 시절 3타석 연속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는 희노애락을 같이 한 팀이기에 한국인들이 많은 애정을 쏟는 것일 것이다.
  • [28] 사실상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 이민자들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고 실제 한국 국민들에게 메이저리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팀이라는 점 때문에라도 더 그럴 수 있다. 아울러 많은 한국 선수들이 거처간 팀이라는 점 역시 준 국가대표 대접을 받기에는 충분하다.
  • [29] MLB.tv는 한국어 중계가 지원되지 않으며,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1년에 10만원 넘게 지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 [30] 특히 테세이라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트레이드 될 때 당시 애틀란타 팜을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제대로 털어줬고, FA를 얻자마자 바로 팀을 옮겼으니 커쇼를 지킨 건 가치있는 판단이 됐다.
  • [31] 문제는 피더슨의 경우 보직이 중견수인지라 안 그래도 박터지는 외야에 피더슨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는 힘들다는 것. 2014 시즌이 끝난 현재 맷 켐프는 우익수로 야시엘 푸이그는 중견수, 칼 크로포드는 좌익수로 고정되어 있는데, 피더슨이 중견수 또는 좌익수로 들어가야 할 전망으로 이와 관련하여 외야 정리는 필수적인 상황. 그리고 끊이지 않는 엠게의 트레이드 배틀
  • [32] 예전에 보삭스와 양키스가 2003 ALCS에서 난투극 벌일 때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패대기 쳤던 그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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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8 15: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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