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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MLB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소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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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매리너스
(Seattle Mari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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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Los Angeles Angels of Anah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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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애슬레틱스
(Oakland Athl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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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레인저스
(Texas 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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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애스트로스
(Houston Ast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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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ɔ) Los Angeles Angels of Anaheim. Original uploader was Kalel2007 at en.wikipedia from
모자 로고 구단 로고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Los Angeles Angels of Anaheim
창단 1961년
연고지 캘리포니아애너하임, 로스앤젤레스
구단 연고지 변천 로스앤젤레스 (1961~1965)
애너하임 (1966~)
구단명 변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Los Angeles Angels) (1961~1965)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California Angels) (1966~1996)
애너하임 에인절스 (Anaheim Angels) (1997~2004)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Los Angeles Angels of Anaheim) (2005~)
홈 구장 리글리 필드[1] (Wrigley Field) (1961)
다저 스타디움 (Dodger Stadium) (1962~1965)
에인절 스타디움 오브 애너하임 (Angel Stadium of Anaheim) (1966~)
구단주 아르테 모레노 (Arte Moreno)
사장 존 카피노 (John Carpino)
단장 제리 디포토 (Jerry Dipoto)
감독 마이크 소시아 (Mike Scioscia)
월드 시리즈 우승
(1회)
2002
아메리칸리그 우승
(1회)
2002
지구 우승
(9회)
1979, 1982, 1986, 2004, 2005, 2007, 2008, 2009, 2014
와일드카드 획득
(1회)
2002
홈페이지
원정 얼터네이트

Contents

1. 개요
2. 연혁
2.1. 원조 LA 에인절스
2.2. 안습했던 시절
2.3. 도약과 좌절
2.4. 신흥 강호
2.5. 2010년 이후, 몰락? 유지?
2.5.1. 2010 시즌
2.5.2. 2011 시즌
2.5.3. 2012 시즌~현재
3. 이모저모
3.1. 홈구장
3.2. 명칭을 둘러싼 논쟁
3.3. 스타
3.4. 인기와 라이벌
3.4.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3.4.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3.4.3. 텍사스 레인저스
3.4.4. 보스턴 레드삭스
3.5. 랠리 몽키
3.6. 영구결번
4. 선수 목록
5.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5.1. 트리플 A
5.2. 더블 A
5.3. 싱글 A
5.4. 루키

1. 개요

MLB의 프로야구단.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애너하임, 로스앤젤레스.

이 팀의 애칭으로 헤일로스(The Halos)가 있는데, 팀의 로고처럼 천사 머리 위에 달린 링이 Halo이다.


전체적으로 화려하진 않아도 그렇게 안습하진 않은 성적을 올려왔다. 2002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첫 우승 후 2004, 2005, 2007, 2008, 2009 5차례 지구우승을 하며 강호로 떠올랐다.

2. 연혁

2.1. 원조 LA 에인절스

동부 중심으로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가 생겨나 흥행하던 야구판에서 미국의 제2 대도시인 LA에는 퍼시픽 코스트 리그등을 비롯한 여러 야구리그가 존재했고, 1892년에 창단한 Los Angeles Angels는 PCL에 참가한 팀이었다.

그런데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가 인기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 하면서 브랜치 리키의 주장을 통해 그 외의 작은 야구리그를 이너 리그로 통합하면서 이 PCL소속 LA 에인절스는 시카고 컵스의 마이너리그팀으로 계약을 맺었다. 홈구장 네이밍 권리까지 사서 "리글리 필드"(현재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과는 다른 구장)라는 이름을 붙였고 컵스의 마이너리그로 활동하던 도중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의 월터 오말리가 다저스의 LA 이전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컵스에게서 이 구단을 매입하면서 팀 이름 사용권까지 샀고, 이후 다저스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이 팀은 워싱턴의 스포케인으로 연고를 옮긴다.

2.2. 안습했던 시절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이전이 예상이상의 큰 경제효과를 가져온 것에 자극받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아예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의 전국 확장을 노렸고 이에 미국 제2의 시장인 LA를 노리던 아메리칸리그와 진 오트리를 비롯한 원주민 야구팬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1961년의 메이저리그 확장 당시 워싱턴 세네터스(현재 텍사스 레인저스)와 함께 최초로 생겨난 팀이다. 그리고 당시 월터 오말리가 가지고 있던 팀 이름 사용권은 진 오트리가 35만달러를 주고 매입했다.

당연히 내셔널리그의 LA 다저스 입장에서는 후발주자가 들어왔으니 견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첫해 LA 에인절스가 쓰던 홈구장 리글리필드의 개축문제 때문에 이듬해에 새로 개장한 "차베스 래빈"(Chavez Ravine, 지금의 다저 스타디움)"을 브루클린에서 이사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함께 사용했다.[2] 1965년에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1966년 애너하임 스타디움(現 에인절 스타디움)이 개장하자, 연고지를 현재의 애너하임으로 옮겼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불과 3년 전에 온 LA 다저스의 텃세를 제대로 당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다저스는 유서깊은 내셔날리그의 명문이고, 에인절스는 아메리칸리그의 초짜라서 그런 면도 있다. 그렇게 연고지도 밀려나고, 좋은 선수도 나타나지 않아 창단 이래 1970년대 중반까진 신생팀이 늘 그렇듯 안습의 동네북팀이었다.
창단을 주도하고, 구단주가 된 영화배우 출신의 진 오트리는 팀에 대한 애정은 있었지만, 애정이 있다고 다 잘되면, 모든 팀들은 전부 우승했을 것이다. 그만큼 초기 에인절스는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구단주의 애정 속에서 꾸준한 투자로 야금야금 전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2.3. 도약과 좌절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고 전력이 안정되면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1979년, 1982년, 1986년 3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당시는 지구가 2개뿐이었고 1위만 진출). 이 시기를 상징하는 선수가 바로 전설적인 투수 놀란 라이언. 올스타 유격수인 짐 프레고시를 뉴욕 메츠로 보내는 대가로 넘어온 이 투수는 에인절스의 간판으로 성장하면서 팀을 여러 차례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그러나 세 번 모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퇴했다.
1979년에는 1970년대를 주름잡은 강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험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패했다. 한 점차 승부가 두 차례 있었을 정도로 선전했지만, 1970년대를 지배한 이 강호와 대적하기에는 역시 경험의 차는 무시할 수 없었다. 1982년에는 레지 잭슨과 로드 커류 같은 강타자를 앞세워 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밀워키 브루어스에게 밀렸는데, 이 때부터 본격적인 흑역사개막. 5전 3선승제인 리그 챔피언십에서 먼저 2승을 따내고도 내리 3연패하면서 탈락한 것.
흑역사의 백미는 1986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7전 4선승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차전까지 3승 1패로 앞서있는데다 5차전도 9회까지 5:2로 앞서고 있어 1이닝만 막으면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할 수 있었던 그 순간, 레드삭스의 돈 베일러의 2점 홈런, 그리고 1점을 지키러 나온 에인절스의 구원투수 도니 무어[3]가 9회말 투아웃에서 데이브 헨더슨에게 통한의 2점 홈런을 허용하며 5:6으로 역전패. 그리고 남은 2게임까지 연패당하며 3승 4패로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이 시리즈 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악연이 시작 됐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존재감 없는 팀이 된다. 중하위권에 맴돌면서 지구 최하위도 했지만 겨우 5할을 넘겨보면 와일드카드는 실패하는 식으로 90년대 내내 플레이오프에 발을 들여보지 못했다. 이런 안습팀의 이미지를 얻어서인지 에인절스를 주제로 한 영화 외야의 천사들에서는 천사님들이 안습의 팀을 도와주시어 에인절스가 우승하는 코믹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 개봉 다음해인 1995 시즌에는 2위팀 시애틀 매리너스에게 9월 한달동안 무려 12경기차의 리드를 뒤집히며 정규시즌 1위에 실패하는 팀 두번째 흑역사를 쓰기도 했다. 참고로 이 때의 단장이 대인배 빌 버베이시.

그 사이 팀을 위해 헌신했던 진 오트리 구단주는 1998년 타계했고, 소유권은 1996년부터 트디즈니 사로 넘어갔으며 97년 '애너하임 앤젤스'로 팀 명칭을 바꾼다. 하지만 디즈니 사가 딱히 야구단에 돈을 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애너하임에 디즈니랜드를 세웠던 디즈니는 에인절스를 자기네 마케팅 상품으로 이용해먹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전통의 에인절스 유니폼을 갖다버리고는 새로운 디자인을 채용하기도 했다. 투자를 안 한 건 아니어서 1998 시즌이 끝나고 FA로 당시 역대 최고계약인 6년 80M에 특급 타자를 데려오는데 그게 먹튀 모 본[4].

이 시기에 주요 선수들로 타자인 팀 새먼, 개럿 앤더슨, 마무리투수 금지어 트로이 퍼시발 등이 꾸준히 활약했고, 에이스 척 핀리와 중견수 에드먼즈는 1999 시즌이 끝나고 팀을 떠난다. 이 시기에 향후 활약하게 될 린 어스테드(Darin Erstad), 트로이 글로스, 로드 워시번등의 유망주들이 드래프트를 통해서 충원되었다. 버베이시가 드래프트했다는 것이 믿겨지지는 않지만

2.4. 신흥 강호

1990년대 암흑기를 보냈던 에인절스는 1999년 항명사건으로 불명예를 쓴 테리 콜린스를 경질하고 2000 시즌 천조국김경문 LA 다저스의 감독 경쟁에서 밀려난 마이크 소시아를 영입하면서 팀을 개편했다. 소시아의 첫 시즌은 풀타임 2년차 트로이 글로스가 47홈런을 쳐내고 모본과 앤더슨, 새먼이 30홈런을 넘겼으며 린 어스테드는 .355의 타율에 25홈런 28도루 100타점의 마이크 트라웃을 연상시키는 역대급 1번 타자로 활약했다. 하지만 홈런은 많았으나 득점력은 그에 못미쳤고 선발진이 막장 of 막장이어서 승률은 5할을 간신히 넘긴다. 이후 소시아는 現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감독인 버드 블랙을 투수코치로 영입하여 제로드 워시번, 존 래키, 라몬 오티즈 등 선발 투수를 키워내고, 브렌던 도넬리,벤 웨버,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등의 신예 불펜진을 끌어올려서 트로이 퍼시발 앞에 깔았다. 타선에도 데이빗 엑스타인과 아담 케네디의 키스톤 콤비를 비롯한 스몰볼 요원들을 보강했다.

2002 시즌을 앞두고 옛날 캘리포니아 시절 유니폼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색 계통의 유니폼으로 복귀하고, 99승의 호성적을 냈다. 다만 20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던 빌리 빈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밀려 서부지구 2위. 그래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3승 1패,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4승 1패로 물리치고, 창단 후, 41년만에 월드시리즈에 처음 진출하였다. 상대는 같은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월드시리즈에서의 13년 만에 '캘리포니아 시리즈'로 관심[5]을 받기도 했던 이 월드시리즈에서 에인절스는 1차전을 내주었지만, 2, 3차전을 내리 이겼다. 그러나 4, 5차전을 다시 내주고, 2승 3패로 벼랑에 몰렸다. 6차전도 7회초까지는 0:5 로 지고 있었는데, 7회말 에인절스의 1루수 스캇 스피지오가 당시 특급 셋업맨이었던 펠릭스 로드리게스[6]에게 라뱅쓰리런을 뽑아내고, 8회말 대린 어스태드의 선두타자 홈런, 자이언츠의 마무리 투수였던 롭 넨에게 때린 트로이 글로스의 2타점 좌전적시타로 6:5로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이때 배리 본즈는 글로스의 좌전안타 타구를 더듬어 주자 2명이 모두 홈에 들어오는 실책을 범해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이렇게 극적인 역전승으로 치러진 7차전에서도 2회초에 선취점을 내주었지만, 존 랙키가 추가점을 내주지 않고 5.2이닝을 잘 막아냈으며 바로 2회말에 동점을 만들고, 3회말에 3점을 뽑아낸 뒤 4:1로 승리.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한다. 정리하면, X○○XX○○. 당시, 7차전 선발이자 몇 안되는 월시 7차전 승리투수는 존 랙키. 월드시리즈 MVP는 트로이 글로스. 글로스 뿐만 아니라 에인절스의 뒷문을 단단히 잠갔던 셋업맨 'K-Rod'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와 마무리 트로이 퍼시벌도 거의 시리즈 MVP급의 활약을 보여줬다.

2003 시즌에는 2002 시즌 우승의 주역들 상당수가 부상과 부진을 겪으면서 의외로 5할에 못미치는 77승에 그쳤다. 하지만 이 해에 팀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니 새로운 구단주,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히스패닉계 구단주인 모레노가 등장하면서 적극적인 투자를 천명한 것이다. 오프시즌에 애너하임은 투타 탑 FA인 블라디미르 게레로바톨로 콜론빔 에스코바, 세 기옌까지 싹쓸이한다. 그리하여 2004년에는 드디어 지구 1위에 오르고, 2005 시즌을 앞두고 LA 전체 마켓을 겨냥하기 위해 팀 이름도 2014년 현재의 이름인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으로 개칭한다.

2005년에도 서부지구 1위를 했고, 2007년부터 3년연속 서부지구 1위를 했다. 이 시기에 에이스 존 래키외에 레드 위버, 어빈 산타나, 선더스 등 꾸준히 선발투수들이 성장했고 불펜은 계속 강했으며 타선에서는 게레로와 앤더슨의 중심 타선에 숀 피긴스, 하위 켄드릭 같은 스몰볼 요원들도 팜에서 계속 등장했다. 사실 타자 유망주는 그 외에도 풍부했지만 브랜든 우드, 댈러스 맥퍼슨, 케이시 카치맨 같은 선수들은 결국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정도로 팜도 좋았다. 게다가 랜도 카브레라바비 아브레이유 등 부족한 선수들은 계속 FA로 영입하니 팀이 잘 굴러갈 수밖에. 다만 중견수 포지션에는 흑역사가 있어서 FA로 거금을 주고 영입한 노장 스티브 핀리, 플루크 게리 매튜스 주니어 등 영입하는 족족 말아먹었고[7], 이것은 2008년 토리 헌터를 영입하면서 일단 해결된다.

하지만 매번 월드시리즈까지 가지 못하고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지고 만다. 2005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1승 후 2차전에서 화이트삭스 포수 A.J. 피어진스키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사기에 휘말리며[8] 그대로 4연패했고, 2004년, 2007년, 2008년은 모두 보스턴에게 패배. 3시리즈에서 1승 9패로 발리면서 호구 이미지로 각인된다. 2009년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천적인 보스턴 레드삭스를 드디어 3연승으로 꺾고 복수하며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지만 챔피언쉽 시리즈에서는 뉴욕 양키스에게 2승 4패로 밀리면서 디비전 시리즈 진출까지만 만족해야만 했다.[9]

어쨌든 호성적을 계속 올리면서, 반대로 구단주 잘못 만나 이 시기에 빌빌대던 LA 다저스를 제치고 LA 지역의 인기 구단으로 급성장했고, 작았던 시장 규모도 애너하임이라는 지역명 대신에 다소 무리수를 둬 가면서까지 LA를 집어넣은 결과 상당히 커졌다.

2.5. 2010년 이후, 몰락? 유지?

2.5.1. 2010 시즌

얼마 쓰지도 못한 마크 테셰이라는 모랄레스로 메꿨지만, 존 래키도 보스턴 가버리고 만능 유틸맨인 숀 피긴스도 지구 라이벌 시애틀 매리너스로 가버렸다. 빠따의 핵심이었던 게레로는 골골 대더니 결국, 텍사스로 갔는데 다시 게선생님으로 복귀했다. 시애틀이 타선 보강을 안해서 망정이지 시애틀도 터졌으면 에인절스는 꼼짝없이 꼴등할 뻔했다.

2010 시즌 시작과 동시에 야심차게 준비했던 선발은 안습.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데려온 호엘 피녜이로는 기대 이하이며, 스캇 카즈미어는 부진에 빠졌다. 조 선더스는 작년의 성적[10]은 타선 덕분이었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성적... 그나마 어빈 산타나제러드 위버가 외롭게 마운드를 지켰지만 방화테스 브라이언 푸엔테스는 마무리 자리에서 신나게 방화를 했다.

타선은 더욱 심각한데, 팀 득점이 AL 14팀 중에서 10위를 했다. 모랄레스, 나폴리, 어브레이유를 제외하고는 타격이 전혀 안되는 모습. 그나마 잘 되었던 주루 플레이도 팀내 최다도루가 24도루의 바비 어브레이유. 토리 헌터도 타격이 작년만하지 못하며, FA로 데려온 마쓰이 히데키는 그냥 안습. 헌터나 어브레이유, 마쓰이, 나폴리 모두 20홈런 80타점 정도는 했는데 중심타선에 믿을 만한 선수가 부족했다.

더 문제는, 켄드리 모랄레스가 부상을 당했다. 이유가 더 황당한데, 만루 홈런치고 너무 기분좋아서 홈에 크게 뛰어 올라 홈플레이트를 밟다가 발목이 부러졌댄다. 망했어요 대략 10~12주 부상이라니...

하지만 카즈미어가 점차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구 1위 자리를 놓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텍사스 레인저스와 치열한 경쟁을 하며 선발투수 댄 해런까지 트레이드해왔으나 시즌 중반부터 뒷심 부족으로 인하여 사실상 시즌 포기. 결국 타자 보강을 숙제로 안게 되었다.

2.5.2. 2011 시즌

오프시즌 과제는 무조건 타선 보강이었다. 당시 타자 FA로 랜스 버크만이나 아담 던은 지명타자로 생각되어 자리가 마땅치 않았고 제이슨 워스는 2년 반짝인데다가 노리는 팀도 많았다. 그래서 에인절스와 강하게 링크된 선수는 칼 크로포드아드리안 벨트레였다. 그런데 보스턴 계약설이 돌던 워스를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웃돈을 주고 낚아챘고, 이에 보스턴이 방향을 돌려 칼 크로포드에게 지른다. 그리고 아드리안 벨트레는 멀쩡한 3루수 마이클 영을 지명타자로 옮기면서 텍사스 레인저스가 가져간다. 이에 단장 리긴스는 2010 시즌 31홈런과 장타율 .515를 기록한 외야수를 지목했다. 당시 FA 계약으로 선수들의 몸값이 상승하면서 연봉보조를 많이 받을 수 없는 건 아쉽지만 대신 자리는 애매한데 몸값은 500만불은 족히 되는 백업 선수 두 명을 넘기기로 했다. 트레이드 내용은 버논 웰스+5M <=> 마이크 나폴리 + 후안 리베라. 여러분 최고의 슬러거를 영입했습니다!!

단장 토니 리긴스는 만족했지만 팬 포럼은 망했어요를 외쳤다. 앤젤스가 부담해야 할 웰스의 잔여계약은 무려 8400만 달러. 뭐 버논 웰스도 2007년부터 망가지기 시작했지만 당장 2010년에는 부활하는 기미를 보였고, 완전 나쁜 선수는 아니다. 단지 버논 웰스+4M이면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쓸 수 있고, 저 돈이면 알버트 푸홀스랑도 계약할 수 있다는 거만 신경쓰지 않는다면.[11] 그런데 그것이 1년 후 실제로...

그리고 2011 시즌 내내 타선 때문에 고생했다. 그나마 막판까지 서부지구 및 와일드카드를 노릴 수 있었던 것은 사이영급 퍼포먼스를 펼친 제러드 위버를 필두로 한 선발 투수진의 활약 덕분. 그러나 예상대로 웰스는 출루율 .248의 공갈포에 25홈런을 치긴 했지만 수비력 부족으로 그것마저도 까먹은 사상 최악의 먹튀였고, 그를 대신해 팀을 떠난 마이크 나폴리텍사스 레인저스에서 30홈런을 쳤다. 결국 PO 진출에 실패. 당연히 리긴스는 짤렸다.

팬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영상[12]. 아아...

2.5.3. 2012 시즌~현재

리긴스가 짤리고 후임 단장이 된 제리 디포토는 디백스 스카우팅 디렉터 및 임시 단장 시절 투수 보는 눈도 좋고 평가가 대단했다. 하지만 에인절스 단장으로 오면서 돈은 물쓰듯 쓰고 있지만 선수들은 늙어가고 팜은 황폐화되고 있다. 마이크 소시아 특유의 스몰볼 운영과도 맞지 않는 팀이 되어가는 중. 비록 2014 시즌 아주 높은 승률을 올렸으나 미래가 걱정되는 부분.

3. 이모저모

3.2. 명칭을 둘러싼 논쟁

1997년 월트 디즈니 사가 소유권을 가지면서, 월트 디즈니 사는 디즈니랜드가 있는 애너하임 시를 홍보하기 위해 "애너하임 에인절스"로 구단명을 바꾼다. 하지만 2005년 아르테 모레노 구단주가 취임하면서, 로스앤젤레스 지역까지 인기를 확대하기 위해 다시 팀의 이름에 로스앤젤레스를 포함시킨다. 그래서 현재 이름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이 되었다. 물론, 이 구단의 팬들은 거의 대부분 이 길어진 명칭을 싫어하며, 모레노 구단주를 깠다. 무엇보다도 이 팀의 팬 베이스는 로스앤젤레스가 아니라 오렌지 카운티이며, 우리는 LA 근처에는 살고 있지만 거만하고 싸가지 없는 대도시 LA와는 다르다는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애너하임이야 오렌지 카운티의 도시니까 별 문제가 없는데 싸가지 없는 다저스 팬들 생각나게 하는 LA를 붙이는 건 맘에 안 드는 것. 그래서 팬들 스스로가 "We're not LA"라고 외치기도 한다. 구장명에도 예외는 없는지 "에인절 스타디움 오브 애너하임"이라는 정줄놓은 이름을 쓴다. [13]

그냥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바꿀수도 있었는데, "오브 애너하임"이 뒤에 붙은 이유는, 구단이 야구장을 보수하면서 애너하임 시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팀명에 명명권이 부여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르테 모레노 구단주가 월트 디즈니 사로부터 구단을 인수받으면서 조건에 "팀이름에 애너하임을 빼지 말라"는 조건이 있었다. 이 조건은 같은 시기에 월트 디즈니 사의 구단이었다가 팔린 NHL구단 "마이티 덕스 오브 애너하임"의 매각 조건에도 있었다. 결국, 월트 디즈니 사의 욕심과 아르테 모레노의 삽질의 조화가 이런 터무늬 없이 긴 이름을 만들어 버렸다.[14] 만약 팀명에서 애너하임을 빼면, 그 돈은 디즈니 사가 물어내야 한다.

애너하임 시에서는 모레노 구단주의 꼼수에 발끈해서 고소미를 시전했으나, 어쨌든 팀명에 애너하임이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패소했다.

이런 사연 때문에 팬들은 공식적인 팀 이름을 다 부르지 않고 에인절스 정도로 줄여서 부른다. 어차피 팀명이 너무 길기도 하고...

하지만 2015년 애너하임 시와의 불화로 인해서 연고 이전 가능성까지 제기될 정도로 연고이전 떡밥이 자주 나돌기 시작했다. 향후 자세한 이야기는 추가바람

3.3. 스타

팀에서 유명했던 선수는 놀란 라이언, 비 그리치 등이 있었고 2000년대에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토리 헌터[15], 팀 새먼개럿 앤더슨, 제러드 위버같은 선수들이 유명했다. 그외 불펜을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트로이 퍼시벌같은 유명한 선수들이 지키기도 했다.

새먼은 올스타전도, 포스트시즌도, 상복도 없던 전형적인 콩라인 선수였지만 에인절스 흑역사 시절을 지켰고, 앤더슨도 말년에는 원수 다저스에서 뛰긴 했지만 현재까지 에인절스 프랜차이즈의 타격 기록 선두를 새먼과 함께 나누어먹고 있는 등, 두 선수 모두 에인절스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다. 또한 2009년 메이저리그 루키였으나 교통사고로 사망한 비운의 영건투수 아덴하트가 있었던 곳. 구단은 푸돌이도 띄워주고 싶은 모양이지만...[16] 2012년 역대 손꼽히는 신인시즌을 보내고 만장일치 신인왕, MVP 2위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이크 트라웃이 차세대 스타로 각광받고있다.

3.4. 인기와 라이벌

창단한지 50년 가까이 된 나름 역사있는 팀이지만 내셔널리그의 인기팀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인기에 밀려 관심받았던 적이 별로 없고 성적 또한 90년대의 암흑기 포함 그렇게 인상적인 성적을 올린 적 없어서 철저히 비인기팀이었다. 그러나 2002년의 첫 우승이후 좋은 성적을 올리고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비롯한 스타선수들의 꾸준한 영입으로 메이저리그 관중동원순위에서 상위권에 위치하는 초 인기팀으로 발돋움 했다.[17]

하지만 2013년, 성적은 물론이요 구단의 향후 관중 동원 순위 또한 기로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균 관중 동원 수가 3만 7천으로 절대치 자체는 낮지 않지만 하락했으며, 순위 또한 5위권 밖으로 밀려나 7위에 위치했다. 4년 연속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고 승률 50% 도 찍지 못하는 부진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에인절스의 팜은 역대 손꼽힐 정도로 최악인 팜이라, 지금 주전 선수들이 성적을 내주고 팜을 재건할 시간을 벌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만약 지금 주전 선수들이 성적을 내는데에 실패한다면, 에인절스의 부진은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게 되면 구단의 인기도 떨어질 게 명약 관화다.

3.4.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NHL LA 킹스가 2012년 우승 기념으로 LA 다저스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다저 스타디움에서의 프리웨이 시리즈에서 함께 찍은 훈훈한 기념 사진.물론 저 모습에 속을 팬들은 없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사이는 좋지않다, 아니 험악하다. 다저스가 LA에 입성하고 나서 같이 다저스 구장을 공유하고 있었을때부터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다저스 입장에서는 좋지 않았기 보다는 당시 약팀이였던 에인절스를 다저스팬들은 자신들이 한수 위라고 자부해왔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 게다가 다저스팬들이 에인절스 팬들에게 연고지 드립으로 어그로를 끄는 행동을 자주하기 때문에 좋아할래야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실상은 에인절스 팬들도 LA는 우리꺼라고는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 팀의 팬 베이스는 오렌지 카운티이며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내 집 가지고 가족들과 전형적인 한적한 미국 교외의 중산층의 스타일이다. [18] 그래서 팬들도 전형적인 대도시인 LA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그런 LA의 이름을 자기팀 이름에 갖다 붙이는 것도 싫어한다. 심지어는 이 팀 팬들 스스로가 "We're not LA"라고 적힌 셔츠를 입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오렌지 카운티에도 다저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결코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2013년 다저스 투수가 된 리키 놀라스코. 놀라스코는 오렌지 카운티 출신이지만 아버지가 다저스 팬이었고 덕분에 다저스 골수팬으로 성장했다. 비단 오렌지 카운티 뿐만이 아니라 다저스의 팬 베이스는 굉장히 넓어서 켐프의 열렬한 팬이었던 한 암투병 소년에게 켐프가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는데 이 팬의 거주지는 샌프란시스코 교외였다.

또 '왜 LA 로 밀고 들어오냐?' 는 항의는 다저스 팬들의 일방적인 어그로는 아니다. 팀 명칭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LA 로의 적극적인 마케팅과 진출은 구단의 전통적인 방침이었다. 물론 팬들은 이에 대해 반발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구단이 적극적으로 LA 시장을 노리는 것은 사실이며 당연히 박힌 돌인 다저스 팬들은 불쾌해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다저스 팬들의 성질에 에인절스의 팬들 역시 불쾌해 할 수 밖에 없다. (...) 그래도 2002 월드 시리스에서 앤젤스와 자이언츠가 맞붙었을때는 많은 다저스의 팬들과 관계자들이 앤젤스를 응원했다. 아무래도 자이언츠가 훨낀 더 큰 적이기에.

이 두 팀이 인터리그에서도 불꽃튀는 시리즈인 프리웨이 시리즈를 벌인다. 달아오른 라이벌 의식 때문인지 예전보다 상당히 흥미진진해졌다. 가끔 선수들이 욱해서 벤치 클리어링이 나오기도 한다. 박찬호의 이단옆차기가 나왔던 경기가 바로 에인절스와의 경기였다. [19] 한국으로 말하면 덕아웃 시리즈의 두산엘지정도. 실제로 두 LA팀의 사이가 한국의 엘지와 두산과의 사이와 어느 정도 흡사한 것이 다저스는 한국의 엘지와 같이 팬들도 많았고 예전의 리즈시절과 꽤 긴 암흑기를 거쳐 그리고 2013년 급반등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고[20], 에인절스는 두산처럼 포수 출신의 감독이 부임하면서 몇년 전부터 리그 강팀으로 발돋움하면서 리그 인기팀중 하나로 도약했다. 뭐 4년째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역대급 먹튀 두 명이 1년에 5천만 달러 씩 잡아먹는데다가 선발 투수진 역시 삐걱삐걱대는 에인절스는 두산과 달리 암흑기에 들어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사고 있지만. 2014년에는 반대로 에인절스가 리그 승률 2위로 순항하고 있지만 두산이 전반기에 5위로 미끄러지면서 상황이 역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1년에는 마침내 에인절스가 다저스보다 더 많은 관중이 들어오고, TV 중계권료도 무려 100M가 인상되면서 에인절스와 다저스의 인기가 뒤집어 졌다는 설레발도 나오곤 했다. 하지만 2012년 다저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기미만 보여줬음에도 다시 관중수가 뒤집어 지고, 2013년에는 4년간의 삽질 중에서도 최고의 삽질을 보여주는 에인절스의 부진과 다저스의 약진이 맞물려 꽤 큰 차이로 관중 동원수가 차이났다. 호성적에 힘입어 매 경기 4만 5천명으로 메이저리그 최고 관중 동원을 기록하고 있는 다저스에 비해 에인절스는 3만 7천명을 동원했다. 에인절스도 관중동원 7위로 인기가 없는 것은 아닌데, 평균 관중 수가 다저스에 비해 8천명 가까이 차이난다. 중계권료도 25년 80억불로 다저스가 기록적인 계약을 맺었다.

3.4.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같은 캘리포니아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사이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같은 주, 같은 아메리칸 리그에 속해있고, 캘리포니아 북부, 남부와의 지역감정 때문에 미묘한 플래그가 서 있다.

3.4.3. 텍사스 레인저스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가 2009년부터 리빌딩에 성공하고 나서부터, 지구우승을 하고 팀이 강팀으로 도약하면서 라이벌 플래그가 서게 되면서 두 팀과의 사이도 좋지 않다. 다저스 못지 많게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날 때도 빈번할 뿐더러, 그 정도가 유난히 심하기 때문이다.

특히 텍사스 레인저스는[21] LA 에인절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묶여있으며, 이 캘리포니아 지역 두 팀은 反텍사스 동맹을 형성하며 쌍으로 레인저스를 놀려댄다. 물론 오클랜드와 LA도 서로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워낙 다저스와 같은 연고 지역을 쓰고 라이벌리 역사가 길어서 다저스와의 라이벌리 묘사가 더 길게 되어 있으나, 실상 2010년대 이후 에인절스의 주적은 당연히 같은 지구인 레인저스다. 오죽하면 위의 짤방에도 그레인키가 다저스로 갔지만 레인저스 간 것 보다는 낫다는 반응이 나오겠는가.

3.4.4. 보스턴 레드삭스

2000년대 후반들어 보스턴 레드삭스와 급격히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포스트시즌에서 보스턴만 만났다 하면 오! 또 호구 오능가?! 아주 탈탈 털려서 계속 탈락해왔다. 그런데 보스턴의 라이벌인 양키스 상대로는 반대로 포스트시즌에서 만났다 하면 아주 철저히 발라먹었다(...). 여기에 2009년 초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치이는 안타까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닉 아덴하트 관련해서 조시 베켓고인드립사건이 발생한 데다가 2009년 포스트시즌에서 드디어 보스턴을 꺾었다 싶으니까[22] 팀의 에이스였던 존 래키가 보스턴으로 날라가버린데다가 난 원래 보스턴팬임 이런 멘트를 쳐서 에인절스 팬들의 심기를 계속 긁고 있는 상태. 근데 어째 에인절스 팬들만 활발하고 보스턴 쪽에서는 영 뜨뜻미지근한 분위기. 그도 그럴것이 레드삭스 입장에서야 양키스라는 거대한 떡밥도 있고 또 에인절스가 레드삭스 열받게 한 일은 별로 없어서(...)

3.5. 랠리 몽키

랠리 몽키(Rally Monkey)라고 하는 원숭이가 있는데, 뒤지고 있는 홈경기에서 6회나 7회만 되면 구장의 전광판에 모습을 드러내어 역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한국에선 이미 응원도구로 일상화된 막대풍선[23]과 함께 투입되면서 대히트, 특히 2002년 월드시리즈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얻어내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진짜 원숭이 맞다.(...) 원래 출연은 짐 캐리의 출세작중 하나인 에이스 벤츄라에 등장하는 원숭이.

덧붙여 마스코트는 없는 상태. 미국에서 마스코트 라고 하면, 응원석 앞에서 동물 탈 옷이나, 이런 걸 입고, 응원하는 걸 말하는데, 랠리 몽키는 전광판에만 나올 뿐, 실제로 응원단에 나오거나 하지는 않아서 마스코트로 인정되지 않는다. 위키백과 영문판의 메이저리그 각 구단의 마스코트 목록에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헥헥...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3.6. 영구결번

11. 짐 프레고시(Jim Fregosi) : 1960년대 초창기 LA 에인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유격수로 올스타에 6번 선정되었다. 1978년에는 감독으로 복귀해 1979년 팀의 지구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26. 진 오트리(Gene Autry) : 팀의 설립자. 영화배우 출신으로 팀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구단주. 안타깝게도 우승을 못 보고 1998년 타계했는데, 2002년 첫 우승 당시 우승트로피를 수여할 때, 버드 셀릭 커미셔너가 한 첫 마디가 "하늘에 있는 진 오트리도 좋아할 것." 이었다.

29. 로드 커류(Rod Carew) : 미네소타 트윈스에서도 스타지만, 여기서도 스타. 2루수와 1루수를 맡으면서 통산 3053안타, 통산 타율 0.328에 빛나는 스타. 신인상과 MVP는 미네소타에서 달성했지만, 3000안타는 에인절스에서 달성했다. 양팀 합쳐서 올스타만 18번 선정된 스타플레이어.

30. 놀란 라이언(Nolan Ryan) : 팀이 자랑하는 에이스. 뉴욕 메츠에서 별 볼일 없던 선수였는 놀란 라이언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비로소 최강의 투수로 성장한다. 팀의 에이스로 공헌한 스타라 영구결번. 참고로 휴스턴 애스트로스텍사스 레인저스에서도 영구결번되어 재키 로빈슨을 빼면 유일하게 3개 팀에서 영구결번되는 기록을 세웠다.

50. 지미 리즈(Jimmie Reese) : 선수로도, 코치로도 딱히 경력은 없는 인물. 하지만, 에인절스에서 나이 71세에 펑고를 쳐 주는 역할로 취직한 이후, 22년간 묵묵히 그 일을 수행했고, 결국 그가 94세로 타계하자, 그의 헌신을 기려 영구결번. 성격이 너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고 한다.

42.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영구결번.

이 밖에, 팀 새먼이 쓰던 15번은 공식적인 영구결번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아무도 달지 않고 있다. 2010년에 디백스에서 댄 해런이 트레이드되어 왔을 때, 해런은 원래 15번을 쓰려 했으나 에인절스로 오면서 24번으로 등번호를 바꾸었다고.

5.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5.1. 트리플 A

© from
솔트레이크 비즈
Salt Lake Bees
창단 1994년
계약년도 2001년
소속 리그/지구 퍼시픽 코스트 리그/퍼시픽 컨퍼런스/북부지구
연고지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
홈구장 스프링 모바일 볼파크

5.2. 더블 A

© from
아칸소 트래블러스
Arkansas Travelers
창단 1963년
계약년도 2001년
소속 리그/지구 텍사스 리그/북부지구
연고지 아칸소 주 리틀 록
홈구장 디키-스티븐스 파크

5.3. 싱글 A

© from
인랜드 엠파이어 식스티식서스
Inland Empire 66ers
창단 1941년
계약년도 2011년
소속 리그/지구 캘리포니아 리그/남부지구
연고지 캘리포니아 주 샌 버나디노
홈구장 샌매뉴얼 스타디움

벌링턴 비즈
Burlington Bees
창단 1924년
계약년도 2013년
소속 리그/지구 미드웨스트 리그/서부지구
연고지 아이오와 주 벌링턴
홈구장 커뮤니티 필드

5.4. 루키

오렘 아울스
Orem Owlz
창단 2001년
계약년도 2001년
소속 리그/지구 파이오니어 리그/남부지구
연고지 유타 주 오렘
홈구장 브렌트 브라운 볼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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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시카고 컵스의 홈 구장 리글리 필드와는 다르다.
  • [2] 물론 이는, 현용 대규모 경기장중 유일하게 지자체 투자지원 없이 월터 오말리의 사비로 지어진 다저스타디움의 건축비용을 보전하기위해 세를 놓은케이스라고 봐야한다. 이 때문에 월터 오말리는 잠시 입주한 LA 에인절스에게 이런 저런 명목으로 관리비를 엄청나게 뜯어냈다.
  • [3] 이날의 패배이후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3년뒤인 1989년 자살했다. 1986년의 월드시리즈에서 어메이징 메츠, 빌 버크너의 알까기로 지금까지 알려져있지만, 이 도니 무어의 자살사건도 이후 큰 이슈가 되었다.
  • [4] 처음 2년간 30홈런 100타점은 했지만 보스턴 시절보다 정확성이 많이 떨어졌고, 부상이 많아지며 2001 시즌에는 한 경기도 못 나왔다. 결국 2001 시즌이 끝나고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 트레이드로 받아온 케빈 에이피어는 선발투수로 2002 시즌 우승에 큰 역할을 한다. 2003년에는 망가지긴 했지만 모 본이 메츠에서 박살난 걸 생각하면 땡큐. 모 본은 두고두고 애너하임 팬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 [5] 물론 서부지역 팀들끼리 월드시리즈라 시청률은 역대 최악이었다. 메이저리그가 동부지역 인기가 높다보니 어쩔수 없었던 현상.
  • [6] 나중에 KIA 타이거즈 용병으로 한국에 온다.
  • [7] 한 해 반짝한 게리 매튜스 주니어는 에인절스와 5년 50M의 계약을 맺고 30홈런 30도루를 했다. 3년 합쳐서. 2007년 첫 시즌을 말아먹자 프런트는 바로 이건 아니라고 직감하고 토리 헌터를 추가로 영입. 매튜스는 백업으로 밀린다. 3년뒤 매튜스는 뉴욕 메츠가 110만불만 부담하는 조건으로 연봉보조 트레이드된다. 에인절스가 48.9M을 써서 얻은 매튜스의 가치는 WAR로 0이 조금 못된다. 뒤이어 나타난 다른 먹튀 때문에 빛이 가렸지만 대단한 쪽박 계약이었다.
  • [8] A.J. 피어진스키 항목 참고
  • [9] 중요한건 이때 패배를 헌납했던 팀이 모두 월드시리즈 우승했다. - 2008년 보스턴을 제외하고, 2004년 보스턴, 2007년 보스턴, 2005년 시카고, 2009년 뉴욕 모두 우승.
  • [10] 피칭은 안습이었지만 타선빨로 승수를 많이 챙겼다.
  • [11] 2010년 토론토 블루제이스로이 할러데이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았을때 선수 한명 주지 않고 버논 웰스만 데려가서 토론토의 연봉부담만 줄여 주더라도 로이 할러데이를 데려올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었다. 뭐 웰스가 2010년 어느정도 살아나긴 했지만 연봉을 생각 하면...
  • [12] 특이하게도 6년 계약한 모 본도 3년 쓰고 뉴욕 메츠로 넘겼고, 게리 매튜스 주니어도 3년 쓰고 뉴욕 메츠로 넘겼다. 2013 시즌 버논 웰스는 뉴욕 양키스로 보내게 된다.
  • [13] 하지만 LA와는 아주 관계가 없는 건 아닌게, 지리학적으로 보면 오렌지 카운티가 Greater Los Angeles Area에 들어간다.이는 정식 행정구역은 아니고 미국 예산 관리국(United States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에서 인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정한 통계 단위(Combined statistical area)를 의미한다. 이 점을 아르테 모레노 구단주가 노린것 같긴하다.
  • [14] 덕스야 원래부터 애너하임이었으니 오히려 '마이티'를 빼며 더 깔끔해졌지만...
  • [15] AL 중견수 골드글러브 단골수상자 중 하나이며 '홈런 도둑'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선수. FA로 팀을 이적했지만 이적 이후에도 그 기량은 변하지 않아서 대표적인 FA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 [16] "엘 옴브레" (= The Man)라는 문구까지 쓰면서 홍보했을 정도. 물론 푸홀스는 관조 팬들이나 이적을 만류했던 스탠 뮤지얼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는지 쓰지 말 것을 요구했다.
  • [17] 2012년 관중 동원 순위 5위 안에 뉴욕 팀이 두팀, LA 팀이 두팀이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시카고 컵스. 대도시의 힘이 뭔지 진짜 제대로 보여준다.
  • [18] LA 다저스가 있는 곳은 서울 중심가 느낌이라면 애너하임은 2차대전 후 일어난 Suburban 붐에 일어난 신도시 계획에 생겨난 곳으로 분당,일산과 비슷한 분위기다.
  • [19] 사실 박찬호의 이단옆차기 팀 벨처 가격사건이 워낙에 유명해서 그렇지, 인터리그 첫 시즌이었던 1997년에도 박찬호는 애너하임 원정경기에서 토니 필립스라는 상대 타자에게 빈볼을 던져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던 바 있다. 그런데 그 타자의 타격폼이 스트라이크 존에 바짝 붙은 폼이라 타자가 유도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 [20] 심지어 다저스와 트윈스는 자매구단 결연을 맺은 사이이다.
  • [21] 물론 아메리칸 리그가 키 산맥 서부에 세 팀밖에 없는 원인도 있지만
  • [22] 그런데 이번엔 철저히 발라왔던 뉴욕 양키스가 에인절스에게 복수성공(...)
  • [23] 미국에선 Thunderstick이라고 한다. 천둥같이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고 해서(...) 참고로 이 막대풍선은 우리나라가 먼저 사용했다. 미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에인절스가 우승했던 2002 월드 시리즈였는데, Youtube에 썬더스틱을 검색해보면 에인절스의 썬더스틱은 임팩트 강한 원숭이에 조금 묻히는지 오히려 농구장 응원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야빠들은 에인절스의 썬더스틱 응원은 딱히 찰진 맛이 없다면서 한국 야구장의 응원과 치어리더들에 아주 황홀한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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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7 17: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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