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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마카이

last modified: 2015-02-06 12:57:16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플레이스타일
3. 클럽 경력
3.1. 네덜란드
3.2. 스페인
3.3. 독일
3.4. 다시 네덜란드
4. 국가대표
5. 기타
6. 평가

1. 개요

(ɔ) Knurftendans from

수아레즈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불행하며 과소평가 받는 스트라이커[1]
이름 뤼돌퓌스 "로이" 안토니위스 마카이
(Rudolphus "Roy" Antonius Makaay)
생년월일 1975년 3월 9일
국적 네덜란드
포지션 스트라이커
186cm
프로 입단 1993년 피테서 입단
소속팀 피테서(1993 - 1997)
CD 테네리페(1997 - 1999)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1999 - 2003)
바이에른 뮌헨(2003 - 200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2007 - 2010)
지도자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U-13 (2010 - 2011, 수석코치)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U-13 (2011 - )

네덜란드 출신의 전 축구 선수. 2012년 현재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U-13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2. 플레이스타일

전형적인 골 넣는 스트라이커. 신장 186cm로 당당한 체구를 가지고 있어서 수비수와의 경합에서 밀리지 않는다. 위치선정 능력이 몹시 뛰어나며, 갑자기 어디에선가 나타나서 유령처럼 골을 넣는 능력으로 인해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다스 판톰(Das Phantom, 유령)"라는 별명을 얻었다.

3. 클럽 경력

3.1. 네덜란드

1993년 비테세에서 데뷔했으며, 1996-97 시즌 34경기에서 19골을 넣어 득점 랭킹 3위에 오르며 팀이 시즌 종료 이후 5위를 차지해 UEFA 컵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 공헌했다. 시즌 종료 이후 여러 구단의 관심을 받았으며, 본인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CD 테네리페를 선택해 팀 동료인 페르디 비에르클라우와 함께 이적을 확정지었다.

3.2. 스페인

입단 첫 시즌에는 36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으며 적응기를 가졌는데, 팀은 감독이 토르 페르난데스에서 르투르 조르제안 마누엘 리요로 연달아 바뀌면서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다. 1998-99 시즌에는 36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득점해 팀내 최다득점자가 되었으나, 정작 팀은 19위를 기록해 시즌 종료 이후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구단에서는 재정 문제로 주전급 선수들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마카이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켜야 했으며, 결국 여름 이적시장에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팀을 옮겼다. 입단 이후 첫 시즌인 1999-00 시즌에서는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해 팀의 4:1 승리를 견인했다. 이후 시즌 종료때까지 36경기에서 22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4위에 올라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UEFA 컵에서도 파나티나이코스 F.C.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3경기에서 3골을 득점해 팀의 16강에 기여했다.

2000-01 시즌에서는 29경기에 출전해 16골을 넣었는데, 19골을 기록한 팀 동료 에고 트리스탄보다 활약도에서 약간 밀린 감이 있지만 좋은 활약을 펼치며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과 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함부르크 SV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팀의 8강에 기여했다. 2001-02 시즌에서는 30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득점하는 등 이전에 비해 다소 저조한 활약을 보였으며, 이는 트리스탄이 21골로 리그 득점왕에 오른 것과 대비되었다. 하지만 나름 분전하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팀의 8강에 기여했으며, 팀은 2년 2시즌 연속 리그 2위와 코파 델 레이 우승에도 일조했다.

2002-03 시즌에서는 발렌시아 C.F.와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경기에서 2경기에 모두 출전해 팀의 우승에 일조했으며, 크레아티보 데 우엘바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려 팀의 5:0 승리를 견인하기도 했다. 시즌 종료때까지 38경기에 출전해 29골을 넣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팀의 리그 3위에 크게 기여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는 등 11경기에서 9골을 기록해 득점 랭킹 3위에 올랐으며, 시즌 종료 이후 58포인트로 든 부츠에 선정되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덕분인지 2003-04 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에서 바이에른 뮌헨이 적극적으로 마카이의 영입을 시도했으며,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첼시 FC와의 경쟁을 뚫고 1875만 유로의 이적료로 4년 계약에 마카이를 영입했다.

3.3. 독일

뮌헨으로 이적한 마카이는 2003-04 시즌 리그에서 32경기에 출전해 23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2위에 올랐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16강 1차전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8경기에서 6골을 넣어 득점 랭킹 3위에 올랐다.

2004-05 시즌에서는 36경기에서 22골을 넣어 득점 랭킹 2위를 기록해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FC 샬케 04와의 DFB 포칼 결승전에서 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에 기여하는 등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AFC 아약스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랙을 터뜨려 팀의 4:0 승리를 이끄는 등 8경기에서 6골을 넣어 득점 랭킹 3위에 올랐으며, 팀의 8강에 기여했다.

2005-06 시즌에서는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31경기에 출전해 17골을 넣어 득점 랭킹 4위에 올라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SK 라피드 빈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어 팀의 4:0 승리에 공헌하는 등 팀의 16강에 일조했다. 시즌 종료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팀에 잔류했으며, 2006-07 시즌에서는 33경기에 출전해 16골을 넣어 득점 랭킹 공동 2위에 올랐지만 팀은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 확보에 실패했다. 이 시즌에서 마카이는 10월 23일에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통산 3000번째 골을 기록했으며, 2007년 3월 21일 레알 마드리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는 10.12초만에 득점에 성공하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2]

시즌 종료 이후 구단의 재정비를 위해 루카 토니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영입되자 주전 경쟁에서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3년 계약으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입단하게 된다.

마카이의 활약은 몹시 빼어났으나, 이적료가 당시 바이에른 뮌헨 클럽 레코드였음을 감안하면 좀 아쉬운 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3.4. 다시 네덜란드

FC 위트레흐트를 상대로 같이 입단한 오반니 반 브롱크호르스트와 함께 데뷔전을 치렀다. 입단 이후 첫 시즌인 2007-08 시즌에서는 KNVB 컵에서 5경기에 출전해 7골을 득점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2008-09 시즌에는 리그에서 31경기에 출전해 16골을 넣어 득점 랭킹 공동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9-10 시즌에는 24경기에서 7골을 득점하는 등 다소 저조한 활약을 보였으며,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하였다.

4. 국가대표

U-21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 31경기에 출전해 르논드 브루깅크와 같은 기록을 세웠으며, 15골을 넣으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1996년 10월 5일 웨일스와의 1998 FIFA 월드컵 예선에서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199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친선경기에서 활약하며 두 번째 A매치 경기를 맞이했다. 이후 한동안 소집되지 못하다가 2000년 다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유로 2000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유고슬라비아와의 8강전에서 교체 출전하는 등 팀의 4강에 일조했다. 2002년 미국과의 친선경기에서 자신의 A매치 첫 골을 터뜨렸으며, 얼마 뒤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 유로 2004에서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발탁되었으며, 라트비아와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골을 넣어 팀의 3:0 승리에 기여하는 등 팀의 4강에 일조했다. 하지만 대회 이후 국가대표팀에 새로 부임한 마르코 반 바스텐과 불화를 겪었으며, 2005년 이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국가대표팀 기록은 43경기 출전에 6골인데, 언뜻 보면 별로 좋지 않은 기록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중 대부분이 교체로 출전한 것을 감안해 보면 무조건적으로 나쁜 기록으로만 볼 수는 없다. 당시 국가대표팀에는 데니스 베르캄프,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뤼트 판 니스텔로이 등 엄청난 공격수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들의 틈을 비집고 기회를 잡아 활약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수준급 선수였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페 데 한 감독의 요청으로 국가대표팀 대신 2008 베이징 올림픽와일드카드로 출전해 주장을 맡아 활약했으나 나이지리아와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발목에 부상을 입어 이후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8강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패했다.

5. 기타

은퇴 이후에는 페예노르트 U-13 팀의 수석 코치로 있었으며, 2011년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6. 평가

2002-03 시즌에 든 부츠를 받을 정도로 클럽 경력만 놓고 보면 분명 엄청난 선수이지만 28세가 되어서야 바이에른 뮌헨을 통해 빅클럽을 경험했고[3], 국가대표팀에서는 베르캄프, 클루이베르트, 니스텔로이 등 한시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들이 버티고 있던 터라 제대로 활용되지도 못하고 끝난 안타까운 케이스 중 한 명이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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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장 비슷한 클래스라 꼽히는 로빈 반 페르시는 현 네덜란드 부동의 원톱이다(...). 시대를 잘못만나도 한참 잘못만난 케이스.
  • [2] 이전까지의 기록은 2002년 9월 아스날 FC의 질베르투 실바PSV 에인트호벤과의 경기에서 20.07초만에 기록한 득점이다.
  • [3] 물론 데포르티보 라코루냐가 당시는 프리메라 리가를 대표하는 강팀이었지만, 명백히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양강을 위협하진 못했다.
  • [4] 반대로 생각해보면 당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선수층에 얼마나 두터웠는지 알 수 있다. 프리메라 리가 득점왕 출신이 대표팀에서는 단지 일개 후보 선수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면...
  • [5] 네덜란드도 네덜란드지만 분데스리가 득점왕 아일톤 곤칼베스 다 실바는 아예 브라질 대표팀에 소집되지도 않았다.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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