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로헬리오 푸네스 모리

last modified: 2014-10-12 05:53:48 by Contributors


에스키셰히르스포르 No. 18
로헬리오 푸네스 모리 (Rogelio Funes Mori)
생년월일 1991년 5월 3일
국적 아르헨티나
출신지 멘도사
신체조건 185cm
포지션 스트라이커
프로입단 2009년 리버 플레이트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2009~2013)
벤피카 (2013~ )
벤피카 B (2013~ )
에스키셰히르스포르 (임대)(2014~ )
국가대표 1경기

Contents

1. 유망주 시절의 평가
2. 선수시절
3. 일화


아르헨티나의 공격수. 어렸을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 곳에서 살았다.

1. 유망주 시절의 평가

축구가 전공이지만 축구 말고도 테니스, 농구, 야구, 배구등의 구기종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영, 육상등의 종목에도 발군이며 심지어는 공수도, 태권도 등의 격투기에마저도 모두 능수능란한 만능 스포츠맨이었나 보다. 당연한 얘기지만 주먹싸움실력도 굉장하다.

크레스포와 마찬가지로 이 녀석도 득점 기계... 스타일까지 빼박았었다. 드리블, 패스, 슈팅, 헤딩, 몸싸움, 공중장악력, 프리킥... 모든게 능수능란했다. 키도 무려 185cm에 달하는데 이런데도 드리블 속도마저 빠르다. 그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서커스 같았고, 골 넣는 방법이 장난아니게 다양했다.

미국에서 FC댈러스 유소년팀에 입단했는데 미국 유소년 축구 자체를 그 혼자만의 힘으로 완전히 평정해버렸다.

2. 선수시절


이후 푸네스 모리는 귀국하여 리버플레이트에 입단했다. 입단 이후 그를 유망주 사서 임대놀이하는첼시에서 심하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적시키고 싶어서 첼시로 데려가 입단테스트를 하고 입단계약까지 완료했다. 그러나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파기됐다. 유럽 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EU비자가 푸네스 모리에게는 없었던 것. 그렇게 푸네스 모리의 첼시 입단은 불발되었다.

2011년 6월 강등 플레이오프에 빠진 팀을 구해내지 못했다. 유럽 팀들이 쾌재를 부르며 영입해갈만 하나 문제는 본인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리버플레이트의 강등에 일조했다는 사실.

그 뒤로 2년간 내용 갱신이 없는 걸 보면 알겠지만 2년 간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2013년 8월 10일 5년 계약으로 벤피카에 입단하였으나 1군에선 단 5경기도 뛰지 못했다. 2014년 7월 9일 터키 쉬페르리그 에스키셰히르스포르로 임대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나이도 유망주 나이를 벗어난 상황에서 그냥 중하위리그 쩌리 공격수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3. 일화

  • 푸네스모리가 아르헨티나의 U-20 축구팀에 소속되어 있을 무렵 프랑스의 U-23 축구팀과 A매치를 했다. 푸네스모리는 이 경기에서 두 골을 연달아 때려넣어 3-3으로 무승부를 했다. 아르헨티나의 20살과 프랑스의 23살이 비겼다.

  • 2연속 디팬딩 챔피언인 아르헨티나 축구 올림픽 대표팀의 주포로서 지역예선에 출전했으나 푸네스 모리 이외의 멤버들이 그다지 좋지 않은 실력을 갖고 있던 탓에, 특히 에릭 라멜라 같은 훌륭한 유망주들이 엔트리에서 대거 제외된 것이 컸는데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2대회 연속 디팬딩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우루과이에 밀려 남미 지역예선 3위로 탈락했다.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올림픽 본선에 오른 우루과이는 80년 만에 본선에 진출했고 아르헨티나의 3연속 올림픽 금메달의 꿈은 좌절됐다.

  • 항목 자체에서 보이듯 엔하위키의 누군가가 밑도 끝도 없이 굉장히 빨아주던 유망주.최상단에 떡하니 박히던 세계 축구계의 거포이자 캐사기 유닛 항목을 보면 본인 가족이 썼나 싶을 정도의 내용이었다(...) 사실 원래는 항목이 있는 게 이상할 정도의 선수인지라 갸우뚱해지는 게 사실. 이 항목 자체보다 다른 항목에서 크레스포의 재림 드립이 나오면 딱 그거. 그 마수(?)는 위키백과에도 퍼져 그 곳에도 그 밑도 끝도 없이 빨아주며 실제 리그에서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활약은 거의 서술이 없는(그리고 업적이 없으니 관심있는 수정자도 없어 수정되지도 않는) 상황이다. 이 모든 찬양의 근거 중 하나가 엑스포츠뉴스의 한 기사인데 거기서 같이 열거된 7명의 (당시) 유망주들 중 제일 성공한 게 이바르보(...)이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4-10-12 05:53:48
Processing time 0.1253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