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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가쿠 요시카타

last modified: 2015-07-12 05:44:28 by Contributors


六角義賢
1521 ~ 1598

소개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 가쿠 사다요리의 아들로 1552년 아버지 사다요리가 죽자 당주가 된다.

당주 자리에 오른후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소카와 하루모토를 도와 미요시 나가요시와 에구치 전투를 벌였지만 연패를 거듭했으며, 1558년에 그나마 쇼군 요시테루와 나가요시를 중개하여 쇼군을 교토로 귀환시키며 체면치레를 하였다. 자이 히사마사가 공격하자 이를 격퇴하여 아자이 가문을 종속시키면서 히사마사의 장남에게 카타마사(아자이 나가마사)로 개명하게 하거나 가신인 라이 사다타케의 딸을 시집보냈다. 1559년 당주 자리를 아들 카쿠 요시하루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불교에 귀의해 법명을 쇼테이(承禎)로 하였으며, 1560년 아자이 나가마사가 반기를 들자 대군을 이끌고 출진하나 노리다 전투에서 대패하고 만다.

1561년에 아들인 요시하루가 이토 요시타츠와 동맹을 맺을 때 서신을 통해 반대의 뜻을 표했지만 동맹은 성사되었다고 하며, 1563년 요시하루가 가신 고토 타카토요를 간논지성에서 암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가신들이 반기를 드는 간논지 소동으로 아들인 요시하루와 함께 간논지 성에서 쫓겨난다. 이 때 모 사다히데, 모 가타히데[1] 부자의 중재로 간신히 성으로 귀환한다. 1566년 아자이 나가마사가 영토를 침략하기 시작하자 신나게 털린다. 이런 상황에서 1568년 오다 노부나가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여 교토로 진군하자 저항을 벌이나 또 패배하여 간논지성을 빼앗기면서 롯가쿠 가문은 멸망한다.

이후 쇼군 요시아키와 노부나가가 대립하여 반 노부나가 포위망이 결성되자 한 축을 담당하여 1570년에 노다 성, 후쿠시마 성 전투에 참전하거나 코가 군에서 출진하여 미나미오미에서 노부나가와 싸우다가 오오기마치 덴노의 칙령으로 화목했다가 시바타 가츠이에가 지키는 쵸코지 성을 공격하나 또 패배한다. 이후 보다이지 성에서 저항을 벌이다가 노부나가에게 항복한다. 이후 사쿠마 노부모리의 감시하에 있었으나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이후 행적에 대해서 계속해서 호족들을 규합해 저항을 벌였다거나, 혼간지에 몸을 숨겼다거나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등 확실하지 않다. 이후 1598년 사망한다. 향년 78세.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 등장하면 능력치는 무용이 70대 중후반치를 차지하고 궁술계열 고급 특기를 들고 나온다. 태합입지전에서도 궁술 비기를 가지고 있다.이는 일본궁도의 근간이 되는 헤키류(日置流) 혹은 요시다류(吉田流)의 계보에서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본궁도의 또 다른 축은 오가사와라류가 있지만 이는 궁마술로 유명한 유파로서 보병궁술은 요시다류에 기초를 두게 된다)

헤키류는 전설적인 인물로 일부에선 신성시되는 日置弾正가 창시한 궁술유파로 일본의 궁술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혁신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으뜸가는 제자였던 요시다 시게카타(日置弾正와 동일 인물설이 있다)가 요시다류를 창시하여 크게 흥했고 현재 요시다류는 헤키류 요시다파 정도로(물론 그 안에 복잡한 계파가 있다) 칭하고 있다. 일본궁도계의 역사에서 이토록 중요한 인물인 요시다 시게카타에게 유일하게 면허개전을 받고 오의를 전수받은 인물이 바로 롯카쿠 요시카타인것이다. 이로 미루어 당대에서도 독보적인 궁술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간성이 쪼잔해서 요시다류의 전승은 살짝 꼬이게 된다. 요시다 시게카타의 장남인 시게마사는 훗날 가전절학인 요시다류의 오의를 전수해줄 것을 롯카쿠 요시카타에게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이에 열받은 요시다 시게마사는 롯가쿠가를 떠나 일시 아사쿠라가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훗날 롯가쿠 요시카타는 롯가쿠 가문으로 복귀한 요시다 시게마사와 양자결연을 맺고서야 요시다류의 오의를 전수해줘서 요시다류는 겨우 종가가 이어받게 됐다.

요시다 시게마사로서는 정말 힘들게 배운 오의인지라 쉽게 남에게 전수해주기 싫었을지도 모르지만 노부나가의 침공으로 요시다류가 끊길것을 우려해 넷째아들인 吉田重勝에게도 오의를 전수했고 그는 쿄토로 이주하여 사관은 하지 않고 유명인사들과 교류하여 요시다류 전파에 성공했다. 일본 궁도의 근간이 되는 헤키류 요시다류인지라 워낙에 크게 퍼져 유파라 계보는 정말 많다. 그중 특이한것이 요시다 종가라고 할수 있는 요시다 시게마사의 장남인 시게타카는 주군인 롯가쿠 요시카타에게 전수받아 혈통상으로는 종가인 出雲派는 사실 롯가쿠에게서 이어지는등 복잡한 계보를 자랑한다.

아무튼 궁술의 독보적인 달인이고 승마술도 大坪流, 佐々木流등을 배워 말타고 활쏘는 사람이라는 무사의 본래 소양에 있어서는 절정고수였을것으로 추정되나 때는 전국시대였고(즉 이미 한물 가도 한참 간 개념이었다는 소리) 상대가 하필 노부나가여서 정말 심하게 털린 것이 저평가의 이유이다. 조상때부터의 전법인 18개의 지성(방위거점으로 작게는 진채 목책에서 작은 성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을 거느린 관음사성에서 농성했지만[2] 노부나가 입장에선 병력도 적은 놈이 그걸 19개로 쪼개놓은 상태였으니.... 자잘한 지성따위 싹 무시하고 부대를 셋으로 나눈 오다군에 의해 주요 거점들이 순식간에 붕괴되자 본거지인 관음사성을 싸워보지도 않고 버리고 달아나버렸으며 결국 각개격파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도망을 제때 친 덕분에 멸문을 면하고 이후로도 계속 오다군과 싸울 수 있었으니 아주 어리석은 선택은 아니었겠지만 워낙 꼴사나운 패배라 평가가 박할 수 밖에 없었다.

코에이 게임에서는 늘 박한 능력치를 받아들었으나 병과적성이 생긴 이후로는 대출세했다. 능력치는 여전히 형편없지만 궁술의 달인중의 달인인 덕에 병과적성S에 천도에서는 강력한 고유전법(적장을 저격 부상시키는 부가효과도 있다)을 소유한데다가 강력한 병과인 攻城櫓를 다루는데 있어서 게임내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궁술S에 병기S는 한명도 없고 병기A가 4명에 불과해서 병기B를 가진 롯가쿠 요시카타는 1000명이 넘는 등장인물중에서도 다섯번째쯤 되는 攻城櫓 적성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참고로 궁술S에 병기B도 5명 뿐이다. 궁술S에 병기A는 정말 전국시대 100년 역사의 레전드급 인물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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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가모 우지사토의 조부, 부친이다.
  • [2] 흔히들 말하는 우주방어모드로 수많은 방위거점을 무시할 수 없으니 오다군도 결국엔 군사들을 자잘하게 쪼개어 일일히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노렸다. 오다군이 흩어지면 그중 병력이 집중된 주요거점에서 반격하여 흩어진 오다군을 각개격파하고 각 거점은 그 때까지 버틴다는 전략이었다. 선대에 재미꽤나 본 방법이었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상대를 정말 잘못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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