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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경기관총

last modified: 2015-02-26 14:55:43 by Contributors

The Lewis Gun
- 또는 Lewis Automatic Machine Gun, Lewis Automatic Ri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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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루이스! 루이스! 정말 끝내주죠? 이 총의 위력은 아주 훌륭합니다. 매력 그 자체입니다 야후!
로널드 리 어메이 in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Q&A
위키피디아 - 루이스 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벨기에 그리고 독일에게도 애용된 최초의 분대지원용 경기관총의 하나.
보통 루이스 건(Lewis Gun)이라고 불렸다.

맥심 기관총이 등장한 이후 각국 군대들이 이를 구입했을 뿐아니라 각국 군 조병창과 여러 발명가들이 이와 유사한 기관총 개발에 뛰어 들었으나, 탄띠를 비롯하여 맥심의 반동 작용식 기관총의 여러가지 구성품들이 특허출원된 덕분에 후발 주자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여러가지 새로운 개념들을 고안해내야 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발명가인 새뮤엘 맥클린도 맥심의 특허를 피하기 위해 사격의 반동력으로 캠을 돌려 탄창 자체를 회전시키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수랭식 기관총을 개발하지만, 미 육군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실망한 맥클린은 Aotomatic Arms라는 무기 회사에 특허를 팔아 버렸고 이 회사는 당시 미 육군 중령으로 병기국 소속이었던 아이작 뉴턴 루이스에게 개량을 의뢰한다.

루이스는 총과 탄창의 작동 구조는 살리고 수랭식 냉각커버를 공랭식 커버로 교채하고 총의 앞부분에 양각대를 부착한 가벼운 기관총으로 재탄생시킨다. 1911년, 루이스는 12.7kg의 경기관총으로 개량된신형 화기에 "Lewis Automatic Machine Rifle"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시제품을 미 병기국에 제출 했지만, 미 병기국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 무기를 탈락시키고 만다.[1]

미군에서는 퇴짜를 맞았지만, 대서양 너머 영국의 BSA( Birmingham Small Arms Company)사에서 영국군 표준탄 .303브리티쉬(7.7mm)탄에 맞춘 버전이 생산되었고, 이는 1913년 벨기에군에 제식 채용되었고, 이후 영국군도 사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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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은 유럽 대륙의 전쟁에 뛰어들 것을 대비하여 육군을 확대하던 와중이었고, 비싼 맥심 기관총계열인 빅커스 기관총으로는 전선에서 요구되는 기관총의 수량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에 싼 맛에 루이스 기관총을 도입한 것이었고, 최초에는 맥심과 마찬가지로 삼각대에 얹어 고정진지에서 운용 했지만, 탄띠로 수백발 단위로 급탄되는 맥심계열 기관총에 비해서 47발 원반탄창을 사용하는 루이스는 지속 사격능력이 떨어졌고, 수랭식 기관총에 비해서 공랭식 커버는 총신의 과열을 잘 막아주지 못해 처음에는 평이 좋지 않았다.[2]

그러나 가벼운 중량덕분에 보병 단위부대(소대-분대)의 진격을 따라다니며 화력지원을 해주는 소위 "돌격사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거추장 스러운 삼각대에서 해방되어 애초 계획대로 양각대를 달고 중대 지원화기에서 소대, 나중에는 분대당 1정으로 보급되면서 최초의 분대지원 기관총 중의 하나로 명성을 날렸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경기관총/분대지원 화기들 중에서 루이스는 성능이 상당히 안정적이고 균형이 잘 잡힌 무기로, 사실상 자동소총브라우닝 자동소총이나 자동소총에 한없이 가까운 마드센, 수랭식 커버까지 그대로 달려 있어 거추장 스러운 MG08/15, 고장과 과열로 악명을 떨친 쇼샤등의 라이벌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독일군, 특히 참호전 특공대(Sturmabteilung)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입수하기를 바랬던 총이기도 하고, 원 사용국인 영국, 벨기에 뿐 아니라 연합국인 러시아, 미국[3], 일본[4]에서도 구매했으며, 중립국인 네덜란드에서도 채용하여 제2차 세계대전때까지 주력으로 사용했다.

심지어는 체코 군단을 통해서 독립군 북로군정서에도 소량이 전해졌다.

따라서 구경도 영국군의 .303브리티쉬(7.7mm)뿐 아니라, 네덜란드의 6.5mm, 러시아의 7.62mm러시안, 미국의 .30-06(7.62mm) 등 다양한 탄종이 존재 했으며, 30년대 이후 영국군은 Bren으로 갈아탔지만, 후방부대, 특히 홈가드나 식민지 각부대에서 여전히 상당량이 운용되었고, 특히 SAS와 사막에서 보조를 맞춘 LRDG (Long Range Desert Group)에서 애용했다. 러시아에서도 40년대 초반까지 주력이나 보조부대용등으로 사용되었다가 DP경기관총의 보급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나기 시작 했다.

비록 세계최초의 경기관총은 아니지만, 1912년 미국에서 최초로 항공기에서 발사시험을 한 기록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인연이 된 것...이라기 보다는 탄창식 기관총 치고는 많은 장전수와(47발->97발) 상대적으로 가벼운 중량에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준 덕에 초기 연합군 전투기/추격기들의 주 무기로 쓰였고, 후에 비커즈 기관총의 공랭식 버전에 주무기 자리를 넘기 후에도 보조 화기로 전투기의 날개위에, 또는 폭격기 등의 방어용화기로 사용되었다.[5]

이미 1930년대즘 되면 주력의 자리에서 밀려나 보조, 준 주력으로 사용된 구식 무기이지만, 20세기 후반의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분쟁에서 간간히 모습을 보였고,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도 몇자루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캐나다의 저주 받은 소총 ROSS와 루이스를 섞은 듯한 경기관총도 있다. 비록 대량생산은 못 들어갔지만. 루이스보다 싸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그러나 이것의 메인은 ROSS 소총이지 루이스가 아니다. 특유의 총열 덮개만 루이스의 것과 같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샌드 트루퍼들이 들고 다니는 T-21 라이트 리피팅 블래스터는 이 총에서 탄창을 제거하고, 전선 같은걸 감아 우주총같이 치장해 놓은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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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설에 의하면 루이스와 당시 병기국장이 사이가 나빠서 탈락시켰다는 소문이 있다.
  • [2] 공랭식 커버는 이론적으로는 발사되는 탄환이 만드는 기류를 끌어들여 총신을 식힌다는 발상이었으나 실제로 커버가 있으나 없으나 냉각효율은 거기서 거기라 항공기관총을 시작으로 커버가 제거 되었으나, 육군에서는 1차대전 기간 내내 커버를 붙이고 사용했다.
  • [3] 미군은 해병대가 소수 사용하다가 세계대전 참전 후 영국군과 작전하는 부대에 보급되어 프랑스군에게 쇼샤를 넘겨받은 부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다만, 종전후 귀환할때 이 루이스들은 영국에 반환되었고, BAR이 보급되면서 해병의 루이스도 퇴역, 이후 미군은 루이스 경기관총을 더이상 쓰지 않았다.
  • [4] 일본 해군은 루식기관총이라는 이름으로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햇는데 탄까지 영국과 같은 7.7mm를 사용하여 나중에 99식 소총의 7.7mm와 혼선을 빚기도 했다.
  • [5] 이 와중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는게, 한 전투기 조종사가 자신의 바로 머리위쪽의 날개에 달려있던 루이스 경기관총의 탄이 전부 발사되어 재장전을 하려했는데 공중에서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기관총을 만지던 도중에 실수로 전투기가 180도 뒤집어져버렸다. 그러나 그 조종사는 운좋게도 재장전을 마친 루이스 경기관총의 탄창에 메달렸고, 그 덕분에 이윽고 또 한번의 천운으로 다시 반회전한 전투기의 조종석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 조종사는 목숨을 건졌고, 루이스 경기관총은 훌륭한 홍보소재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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