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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엔필드

last modified: 2015-07-16 23:07:42 by Contributors

제2차 세계대전기의 영국군 보병장비
개인화기볼트액션 소총리-엔필드, 드 라일 카빈
기관단총스텐 기관단총, 톰슨 기관단총
권총웨블리 리볼버, 콜트 M1911, 브라우닝 하이파워
지원화기기관총커스 기관총, Bren, 루이스 경기관총
대전차 화기PIAT, 보이즈 대전차 소총


Contents

1. 개요
2. 개발
3. 실전과 개량
4. 바리에이션
4.1. 뉴질랜드
4.2. 인도


1. 개요

Lee-Enfield.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까지 사용된 영국군의 주력 소총이다.

2. 개발

미국의 총기 설계자인 제임스 패리스 리(James Paris Lee)는 1880년대 후반 당시 최고의 볼트액션 소총이었던 마우저제 라이플을 연구하여, 마우저제 라이플의 장전 손잡이보다 적게 움직이고도 장전이 가능한 작동 방식과 탈착형 탄창을 골자로 하는 신형 소총을 미 육군에 제안했지만, 미군에 거절당하고 영국에 건너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피력한다.
리의 설계는 마침 단발총에서 벗어나 신형 연발총을 가지고자 하던 영국 육군의 흥미를 끌었고, 리의 작동기구에 영국의 총기 기술자인 윌리엄 엘리스 메트포드(William Ellis Metford)가 설계한 7조우선 총신을 결합하게 되는데 이것이 1888년 리-메트포드 소총이다.

그러나 이미 1886년에 프랑스가 세계최초로 무연화약을 쓰는 소총 Lebel Mle 1886를 내놓았고, 리-메트포드가 개발된 1888년에는 독일도 최초의 무연화약식 연발총 M1888[1]이 등장하는 바람에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리-메트포드는 완성되자마자 구식이 되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1891년, 리-메트포드의 .303(7.7mm)탄과 거의 같은 규격에 장약을 무연화약으로 바꾼 .303 브리티쉬 탄이 등장하지만, 흑색화약에 맞춰 설계된 메트포드의 총신은 신형탄을 견뎌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엔필드 조병창에서 총신을 재설계하여 리-메트포드를 개량, 드디어 리-엔필드가 탄생한다.

3. 실전과 개량


리-엔필드 No.1 MK I

리-엔필드 No.1 MK I(일명 롱 리-엔필드)는 8연발인 리-메트포드보다 2발 늘어난 10연발인 점을 제외하고는 외형이 거의 같았다. 1899년 발발한 보어전쟁에 투입되어 실전을 경험하는데 여기서 영국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리-엔필드의 성능문제가 대두되었다.
사실 총 자체의 문제보다는 현지상황에 밝지 못한 영국군과 무능한 지휘부, 그리고 게릴라전을 효과적으로 벌인 보어군과 보어 민병대의 활약이 원인이었지만 게으른 선비가 붓 타령 하는 법이라지, 아무튼 리-엔필드는 개량이 가해져 길이가 14cm 정도 짧아지고 탄창을 찰탁하지 않고도 노리쇠를 후퇴고정시키고 직접 클립으로 장전할 수 있게 개량이 가해진 일명 SMLE (Short, Magazine Lee-Enfield)라 불리는 리-엔필드 No.1 MK III가 개발되었다.

(ɔ) Armémuseum (The Swedish Army Museum) from

리-엔필드 No.1 MK III, 통칭 SMLE 그림 출처

여기에 이와는 별도로 아예 리-엔필드를 대체하기 위해 마우저 7.92mm 탄과 마우저 계열 소총을 모방한 .276(7mm) 림레스(Rlmmless)탄환과 엔필드 P-13 소총을 개발한다.[2]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P13은 재고가 거의 없고 생산라인도 미약한 .276(7mm)탄의 문제로 개발과 생산이 중지되고, 이를 리-엔필드와 동일한 .303 브리티쉬 탄을 쓰도록 개조한 P14가 등장하지만, 바뀐 탄환과의 부조화 문제와, 실전상황에서 잦은 고장 등 내구성과 신뢰성이 문제를 드러내며[3] 오히려 1차대전의 참호전을 통해 내구성과 신뢰성에서 재평가된 리-엔필드와 입장이 역전되고 만다. 결국 P14는 저격전용으로 돌려지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 영국 육군의 주력은 리-엔필드 계열 소총이 차지한다.


이쯤되면 반자동 소총 수준의 연사력이다. 실제 1차 대전당시 병사들은 분당 20~30발 정도는 쏘도록 훈련받았으며, 1분동안 사격해서 300야드(270m) 거리에서 12인치(30cm) 표적에 15발 이상 적중시킬 것을 요구받았다. 1차대전 중에는 이를 넘어서는 실전 기록을 곧잘 찾아볼 수 있는데, 최고기록은 1914년 기록된 분당 38발이다. 그냥 쏘기만 한 것도 아니라 300야드 거리의 30cm 표적에 38발을 다 맞춘 것이다. 이쯤 되면 무섭다.
때문에 영국군 보병들이 1분동안 미친듯한 속사를 퍼붓는 것을 가리키는 '미칠듯한 1분(Mad Minute)'이라는 용어가 영국군에서 통용되었을 정도다.


덤으로 리 어메이 중사[4]와 영국인 개리 아쳐의 사격 대결을 보자. 스프링필드와는 확실히 차이가 나지만[5] 반자동 소총에는 살짝이 못 미친다. 그것보다 저 영국인 아저씨 옷차림이며 꼿쎄이부더뀐 대사며 참 누구 닮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리-엔필드는 당시 수준으로는 엄청난 속사능력[6]을 발휘하여 한때 독일군이 영국 육군의 기관총 보유수를 잘못 계산할 정도의 위력을 보이는데, 이것은 제임스 패리스 리의 기본설계부터가 속사에 적합하게 만들어진데다가[7] 영국 육군의 훈련체계가 속사를 우선시하여 이루어진 점, 그리고 세계대전 직전에 보어 전쟁을 치러 실전으로 숙련된 고참병들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지만, 영국 육군 지휘부의 삽질과 가혹한 전장환경 덕에 1914년말쯤에 와서 고참병들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병원행이 되어버리자 이런 점들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전간기 기간동안 영국도 미국이나 소련처럼 신형 반자동소총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대전후 경제악화와 곧이어 불어닥친 대공황, 그리고 거대 해군과 신생 공군을 위해 육군의 예산이 삭감되는 등의 문제로 일찌감치 포기하고 리-엔필드의 개량으로 선회한다. 장인정신

이렇게 해서 가늠자가 보다 눈에 가까운 위치로 옮겨져 보다 정밀하고 정확한 조준이 가능하게 되었고 외형도 단순화되어 생산성이 향상된 No.2 MK I이 개발되었지만, 육군 예산의 문제로 거의 양산되지 못한채 제2차 세계대전을 맞는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의 영국 육군은 제1차 세계대전때와 마찬가지로 SMLE를 주력으로 보유했으나, 프랑스에서의 패배와 됭케르크 철수작전으로 대부분의 SMLE를 버리고 오게 된다. [8]


리-엔필드 No.4 MK I

이후 영국군의 주력소총은 No.2 MK I을 다시 개선한 리-엔필드 No.4 MK I이 차지하게 되며, 리-엔필드 No.4 MK I는 한국전쟁때까지 영국군의 주력으로 사용되다가 영국판 FN FAL인 L1A1의 제식화와 함께 일선에서 물러난다.


'정글 카빈' Lee-Enfield No.5 Rifle Mk I

제2차 세계대전중 No.4 계열을 동남아시아의 정글전을 위해 개조한 리-엔필드 No.5 MK I이 개발되었으며, 휴대성을 위해 기존의 No.4 소총을 짧고 가볍게 만들고 소염기를 단 모델이었다. 그러나 반동이 강하고 소염기에도 불구하고 총구화염이 심해서 그다지 평가가 좋지 못했다. 리-엔필드 No.5 MK I는 일명 "정글 카빈"으로도 불리는데, 이것은 대전후 이 모델이 미국 민간 총기시장에 수출되면서 미국 수입업자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1956년 영국의 리-엔필드는 생산이 종료되었으나, 그보다 좀 더 오랫동안 호주와 인도에서 리-엔필드(그것도 1차대전 모델인 SMLE!!)가 계속 생산되었다. 특히 인도는 1980년대까지 12연발 7.62mm NATO탄 버전인 Rifle 7.62mm 2A/2A1, 일명 이샤포어 엔필드를 생산, 지금도 경찰이나 후방부대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2008년 뭄바이 테러사건 때 인도 군경이 들고 다니는 것이 TV나 신문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와 함께 리 엔필드를 제식 사용하는 가장 긴 케이스. 그리고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여전히 많지는 않지만 군/경,민간인들이나 무장집단의 손에 남아있다고 한다. 구하기 어려운 .303탄보다 싸고 익숙한 7.62mm NATO탄을 쓰고 탄창 또한 탈착식을 써서 편했으며, 속사능력과 신뢰성 좋은 엔필드 기반인 점 때문에 나름 민간인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는 모델이다. 캐나다 북극 경비대에서도 사용한 경력이 있다.

l42a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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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42A1 저격총

영국군내에서의 리-엔필드는 L1A1의 보급과 함게 일부 잘맞는 총들이 7.62mm NATO 탄을 쓰는 L42A1 저격총으로 개조되어,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나, 포클랜드 전쟁을 치르면서 총 자체가 한계에 달했다는(수명으로나 성능으로나) 평가를 받아 1990년대에 L96등으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다.

4. 바리에이션

4.1. 뉴질랜드

한편 뉴질랜드에서는 이것을 마개조해서 찰턴 경기관총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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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영연방의 변방 뉴질랜드도 일단 전쟁중은 전쟁 중이어서 유럽에 파병도 하고 나름 일본의 침략에도 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영연방에서 흔히 쓰이던 이스 기관총이나 Bren은 나치랑 싸우느라 코가 석자인 본국에서는 유보트가 득실거리는 바다를 건너 이것들을 지원해주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Philip Charlton이라는 양반이이 새끼들이! 내가 직접 나서겠다! 구닥다리 고물 -메트포드 소총과 리-엔필드 소총을 짬뽕해서 비상시에 완전 자동 사격이 가능한 반자동 소총을 만들었다. 볼트액션 + 볼트액션 = 반자동 1분에 600발 정도를 쏠 수 있다. 10발짜리 리-엔필드 탄창이나 Bren의 30발들이 탄창을 쓸 수 있다. 이것도 두가지 버전이 있는데 뉴질랜드 찰튼 자동차 공업소(...)에서 생산된 버전[9]과 호주에서 SMLE Mk III*를 개조해서 만든 버전이있다. 뉴질랜드에서 1942년 부터 종전까지 대충 1500정 정도가 만들어졌는데 전쟁 직후에 창고에 불이 나서 죄다 태워먹었다.(...) 런던의 전쟁기념관과 뉴질랜드, 호주의 군사 박물관에 한정씩 살아있다.

4.2. 인도

Ishapore410Muske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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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선 좀 특이한 개조를 했는데, 남아 돌다못해 썩어 문드러지는 리-엔필드의 재고를 이용해 단발식 후장 활강 머스킷(산탄총)을 만들었다. 이는 경찰과 교도소 경비들을 위한 특수한 개조품이었는데, 탄창은 나무 플러그로 막아버려 쓸 수 없게 하고 탄약은 .410 Indian Musket이라는 특제 탄약을 사용했다.

.410 인디안 머스킷 탄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410 샷쉘이 아니다! 교도소 폭동 등으로 탈취당하거나 도둑맞아 흘러나가더라도 재사용이 어렵도록, .303 라이플 탄피를 조금 자르고 주둥이를 넓혀 만든 탄약이었다. 그래서 탄피 전체가 황동 탄피이며, .410 샷쉘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에 호환성이 아예 없다. 상업용 .410 산탄과 구분하기 위해 보통 .410 I 라고 표기한다. I는 Indian이나 Ishapore의 약자.

나중에 군수물자를 민간 불하로 팔려나가면서 이렇게 개조한 리엔필드 머스킷도 민간시장에 팔려 나갔는데, 이쪽에서는 경찰에서도 소량만 보유하고 있던 .410 인디안 머스킷 탄을 구할 수 없기에 다시 총신을 개조해서 상업용 .410 산탄을 사용할 수 있게 개조하거나, .410 인디안 머스킷 탄의 탄피에다 리로딩을 반복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흘러나간 리엔필드 샷건은 단발총이지만, 리-엔필드가 탄창이 달려있던 흔적이 있다보니 탄창을 틀어막은 나무 플러그를 뽑고 SMLE 탄창을 끼워 다시 연발총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다수 있었다. 하지만 그냥 SMLE 탄창을 달아선 소용 없고 개조를 하거나 산탄이 맞는 특제 탄창을 써야 했다.

2008년 11월에 발생한 뭄바이 테러 당시 출동한 인도 경찰 중 상당수가 리엔필드로 무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 때문에 테러의 초동진압에 실패했다는 의견이 강하다. 인도 경찰의 열악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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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명 "위원회 소총". 독일 육군이 잘나가는 마우저를 배제하고 개발한 총으로, 문제가 많아 나중에 마우저의 Gew98로 대체한다.
  • [2] 현대 영국 육군이 온갖 욕을 들어먹는 SA80을 어떻게든 써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3] 엔필드 등 영국의 조병창들에서 기존의 화기들(리-엔필드 소총이나 빅커즈, 루이스 기관총 등)을 제조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P14는 영국과 미국의 민간 총기회사에 생산을 의뢰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주문을 받은 회사마다 총의 각 부품의 수치가 미묘하게 달라서 다른 회사의 부품이 섞이면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많았던 것도 영국 육군이 P14를 포기하게 되는 원인중의 하나라고 한다.
  • [4] 영상을 보면 리 어메이는 사격준비 단계에서 견착할 때 개머리판을 손으로 파지한 채로 갖다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미군의 경우 훈련소에서는 저렇게 사격자세를 잡는다. 아직도 FM이 몸에 익어있다니 역시 교관님
  • [5] 연사력도 훨씬 빠르지만 두 배의 장탄수도 한몫한다
  • [6] 유튜브 등의 동영상 사이트에서는 초당 1발을 쏘는 장면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 [7] 노리쇠 작동구조 때문이다. http://glob.egloos.com/2195039 참조바람.
  • [8] 하지만 됭케르크 이전에 이미 북아프리카에 배치되어있던 영국군들은 SMLE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이탈리아로 전선이 옮겨가면서도 상당수가 사용되었다.
  • [9] 수직 손잡이와 양각대가 있다. 호주에서는 무겁다고 이걸 때서 사용했다. 총은 장전 안한 상태에서 7.3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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