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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경제학

Contents

1. 개요
2. 이론적 특징
2.1. 변증법적 유물론
2.2. 가치론
3. 이론적 의의
3.1. 이론사적 특수성
3.2. 개념적 자원
3.3. 위기론
3.4. 경제사 이론으로서의 의의
4. 비판
4.1. 가치 개념의 문제
4.2. 과학적 정교함의 부족
4.3. '역사성'의 문제점
5. 기타
6. 변론
7. 결론
8. 보론
9. 참고 항목

1. 개요

"화폐는 인간의 노동과 생존의 양도된 본질이다. 이 본질은 인간을 지배하며 인간은 이것을 숭배한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자본가들의 머리 위에 투하된 가장 거대한 폭탄"
─프리드리히 엥겔스,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에 대해 평하며

Marxian Economics
카를 마르크스가 정립한 정치경제학 비판이론으로부터 출발한 경제사상. 노동가치론에 입각하여 경제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다른 경제학 분파들과 가장 구분된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지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지지받고 연구되며, 당연하지만 과거 동유럽권 붕괴 이전의 현실 사회주의권에서는 공식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동유럽권 붕괴 이후엔 소수의 사람들만이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일컬어 정치경제학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시기가 80년대 군사독재 시기였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면 위험했으므로 다른 식으로 돌려 말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굳이 다른 이름이 아니고 정치경제학이냐 하면, 마르크스 본인의 시대(19세기)에 경제학을 일컫는 공식명칭이 정치경제학이었고,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정치경제학 비판'(Critics on political economy)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비판'이라는 개념이 잊히고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사실 정작 그건 마르크스 생전의 논적들의 이름이다 이후 주류경제학이나 정치학에서 정치경제[1]라는 분야를 다루기 시작하고, 국내의 이념탄압이 완화되면서 이런 용법은 서서히 사라지는 추세이다.

세계적으로도 주류경제학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역시 많은 발전을 해 왔고 많은 네임드도 배출해 왔다. 폴 스위지, 로버트 브레너, 벤 파인 등 비교적 최근까지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도 있으며, 수학적으로도 (특히 전형문제 해결을 위해) 예전보다 더 많은 고등수학적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과학이나 경제학의 일부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를 바라보는 사상이나 관점, 철학에 가깝다. 그래서 사회학 전공생들이 오히려 경제학 쪽보다 상당히 심도있게 접하는 경우도 많다.

2. 이론적 특징

2.1.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마르크스주의 전체 사상과 마찬가지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그 철학적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성격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과학적이기보다 이념적인 것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으나, 사회과학의 분파 혹은 방법론에 있어 그 철학적 기반이 따로 있는 것은 굉장히 흔한 일이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과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행동주의 접근법은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그 철학적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과연 변증법적 유물론의 핵심이 무엇이고 그것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이는 마르크스가 항상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인식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변증법적 유물론이 어떤 것이냐를 철학적이고 체계적인 서술로 남긴 바 없기 때문. 다만 그 방법론의 핵심은 마르크스가 <자본> 서문에 남긴 몇 가지 언급들로 미루어 유추해 볼 수 있다.

...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개인이 이러한 관계들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 제 1판 서문 중
 
...발표(서술) 방법은 형식의 면에서 조사(탐구) 방법과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조사는 마땅히 세밀하게 소재를 파악하고, 소재의 상이한 발전형태들을 분석하고, 이 형태들의 내적 관련을 구명해야 한다. 이 조사가 끝난 뒤에라야 비로소 현실의 운동을 적절하게 발표(서술)할 수 있다. 조사가 잘 되어 소재의 일생이 관념에 반영된다면, 우리가 마치 선험적인 논리구성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등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 제 2판 서문 중

즉 요약하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선 사회적 범주의 내적 논리를 유기적으로 서술하는 것, 그리고 그 논리 안에 내재하는 운동성과 부정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2.2. 가치론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가치'라는 개념을 전제하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경제학 분파라는 점이다. 사실 마르크스 이전의 고전파 경제학자들도 널리 가치라는 개념을 사용했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는 노동가치론을 전제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그러한 개념과 전제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만의 것이 된 이유는, 마르크스가 당대의 개념을 정교화시켜,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형태로써 완전히 자신의 개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 가치라는 개념을 버리지 않고서는 마르크스의 이론체계를 벗어나기 어려워졌다는 것. 이러한 난국은 이후 주류경제학의 한계혁명을 통해 극복된다.[2]

이 부분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주류경제학 및 여타 비주류 경제학(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내부의 용어로 하면, 부르주아 경제학)과의 차별성 및 자기정체성을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역임과 동시에, 외부로부터 가장 많이 비판받는 영역이기도 하다. 가격과 구분되는 가치라는 개념이 상당히 추상적이고 복잡하여 직관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이러한 구분이 여러 가지 이론적 난맥을 만든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다. 특히 많은 이론적 난맥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을 실컷 괴롭히고 있는 형논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가치 개념을 폐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 개념이 없이는 착취, 이윤율, 자본의 기술적 구성 및 유기적 구성 등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핵심 개념들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핵심 개념들이 갖는 현실설명력을 근거로 하여, 그 전제가 되는 가치 개념이 이론 내적으로 문제가 있기보다 아직 풀리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3]

3. 이론적 의의

3.1. 이론사적 특수성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다른 대부분의 비주류 경제학 분파와 달리, 주류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마르크스의 명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처음부터 당대의 주류였던 고전파 경제학의 전 체계를 부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작업은 현대 주류경제학에 비하면 고전파 경제학과 닮은 것이 더 많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최후의 고전파라고까지 불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4]

3.2. 개념적 자원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점에서 상당히 큰 업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자본 개념에 대한 체계적 서술을 최초로 달성해낸 분파이다.[5] 또한 '착취'와 '공황' 등 현실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에 대해서도, 주류경제학과 달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풍부한 설명력을 제공한다.[6]

3.3. 위기론

위의 개념적 자원 부분과 연결되는 내용이지만, 특히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다른 분파에 비해 압도적인 강점을 보이는 분야가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영역이다. 주류경제학의 이론적 틀 안에서는 위기가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많이 양보해도 순환적/일시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7][8] 19~20세기 대공황의 역사와 21세기 초 장기불황의 경험에서 볼 때 구조적 위기에 대한 체계적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태생부터 이러한 공황론과 위기론의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어 왔으며, 이러한 점 때문에 주류 학계에서 완전히 밀려난 지금까지도 경제위기의 시기에 몇 번씩 주목받을 만큼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 위기론의 기초에 대해선 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항목 참조

3.4. 경제사 이론으로서의 의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경제를 역사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분파이며, 현재까지도 그 역사적 분석틀의 의미는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강점은 주류경제학이 완전히 비역사적인 방식으로 경제를 설명하기 때문에 사실상 경제사의 체계화에 있어서 이론적 뒷받침을 거의 해주지 못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더욱 돋보인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경제사 분석이나 경제의 역사적 분석을 시도하는 유일한 분파는 아니며, 제도주의 경제학이나 아날 학파 등에 의해 많은 부분이 보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세기 경제사를 정리함에 있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시기 구분 및 체제 구분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의는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측면에서만 그치지 않고, 현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이런 부분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있어 자본주의 단계론 혹은 조절체계 이론에서 잘 드러난다. 주류경제학에서 경제현상은 초역사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적 관점에선 19세기나 21세기나 경제 법칙은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 범주의 조직 구성의 차이가 중요한 논점으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 자체는 신제도주의 계열에서도 주장해온 바이며, 주류 경제학의 영역으로 포섭된 지 오래다. 학통을 살펴볼 때 신고전파가 아닐 뿐이지.

사실 20세기 경제학의 일면은 어찌보면 '주류 경제학이 진화하여 마르크스 경제학을 경제학계에서 몰아내는 일련의 레콩키스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학계의 탄압이 아니라 순수히 이론의 경쟁력 측면에서 주류 경제학이 마르크스 경제학을 능가함으로써 마르크스 경제학을 경제학계에서 퇴출시켰다고 해석해야 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슘페터가 아꼈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폴 스위지의 예와 같이, 당시 미국 내에 반공주의가 거셌던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제도권 학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었다. 또한, 새뮤얼슨과 모리시마 간에 이루어진 '가치-생산가격 전형논쟁'은 결국 68혁명이 고조된 상황에서 전개되었다는 측면에서 단순히 이론 내적 문제 뿐만 아니라 이론 외적인 문제가 클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론 내적으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가지는 오류에 대한 비판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케인즈학파 역시 가격경직성이라는 가정이 상당한 비판을 받고 어느정도는 그 비판에 대응하지 못해 위축되었지만 맨큐의 메뉴비용이론 등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론적으로 다시 부활한 것과 비교해보면 더더욱 문제가 될 만하다.

4. 비판

현실 설명력에 대해서도 상당히 의심을 받고 있으며, 내적 정합성은 아래에서 보이듯이 더더욱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 시점에서는 과학이라 볼 수 없다. 경제학은 인간 집단의 선택 행위에 관해 연구하는 과학이다.

고로 한줄 요약 :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이름과는 달리 과학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사회과학의 특수성 운운하지만 경제학이나 심리학 등은 다른 사회과학에 비하면 자연과학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사회학, 정치학 등과 그 접근 방식이 다르다.

4.1. 가치 개념의 문제

주류경제학자들은 가치 개념과 노동가치론[9]이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가치 개념의 반증 불가능성과 수학적 엄밀성의 부족으로 크게 정리해 볼 수 있다.

먼저 가치 개념의 반증 불가능성의 경우, 노동가치론에 초점을 맞춘 비판과 가치 개념 그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비판은 케임브리지 학파의 창시자 마셜에 의해 간명하게 제기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의 전부가 노동의 산물이라고 가정한 것은 그들이 입증해야 할 가정을 오히려 논증의 근거로 삼는 모순을 범한 것이라고 한다. [10] 또한 많은 사람들이 노동가치론은 금융이나 서비스 영역 등을 설명하지 못하며, 2차 산업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었던 개념이라고 주장한다.[11]

또한 원료나 기계가 스스로 가치를 창출할 수 없듯이, 노동 역시 노동만으로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노동과 자본의 두 개 이상의 각종 요소가 결합하여 이 서로 만나야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를 현실에서는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노동가치설 자체는 이미 고전학파의 콥-더글라스 생산함수나 솔로우 모형 등을 통한 실증분석 결과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게 사실이다. 실제 콥-더글라스 분석에 따르면 나라마다 산업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경제성장에 따른 자본의 소득분배율(=성장에 대한 기여율)은 특정 값에 수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2]

좀 더 근본적이고 타당한 비판은 가치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에 따르면 가격과 구분되는 가치라는 것은 현실에서 관측될 수 없는 것으로,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관측을 통해 자신을 수정해 나간다는 과학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조차 지킬 수 없는 형이상학적 틀이라고 한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큰 중요성을 갖는 이윤율 분석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 자신조차 가격으로부터 가치를 도출해낸 후 가치에 입각한 이윤율을 계산하지 못하고, 가격을 가치와 일치하는 것으로 가정하면서 분석을 전개하는 것에서 이러한 비판의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13]

4.2. 과학적 정교함의 부족

많은 주류경제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불신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수학적으로 모델링되기 어렵다는 측면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진정한 과학 운운한 점을 생각하면, 과학에서 중시하는 측정가능성에서 약점을 보인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애당초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윤 등의 개념이 자본주의 사회의 측정방식으로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면 그것이 자본주의를 설명하는데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주류경제학보다 열등한 것이 아닌가하는 문제가 생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도 경제학의 일종이기 때문에 많은 수학적 도구를 사용하지만, 현실에서 수집될 수 있는 1차 자료를 수학적으로 가공하여 설명할 수 있는 알고리즘은 분명 많이 발전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주류경제학과 달리 모든 사회적 요소를 수치화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옹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수학적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우월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즉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

이러한 현실에는 어느 정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 자신의 태만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20세기 초까지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당대의 고전파 경제학에 비교하여 결코 수학적 도구를 적게 활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류경제학이 한계효용 혁명 이후 고도로 수학화되면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역으로 조절체계 이론이나 원전 해석 등으로 후퇴했고, 이것이 이론의 정체를 불러왔다. 비공산권 중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연구가 나름대로 활성화되었던 일본 도쿄대학 교수진들 중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는 딱 한 명이고, 나고야대의 수많은 과목 중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과목은 한두개씩만 있다. 이런 현상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도 관찰된 바 있다.]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계는 경제학에서 수학을 못하는 학생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윤율 추계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드문 편인데, 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14]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핵심 개념임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이론적 태만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비판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는데, 바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마르크스 이후 주목할 만한 이론적 업적을 달성한 학자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것은 토머스 쿤 식의 정상과학 개념과도 연결되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아직 정상과학으로서 갖추어야 할 일정 수준의 체계화와 제도화를 갖추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입장 역시 존재한다.

이상의 비판들은 분명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 마르크스 경제학들은 후학 양성의 어려움 등을 지적한다. 다만, 저 주장 역시 결국에는 변명에 지나지 않다. 이런 류의 문제는 비주류 경제학이나 과거 비주류 경제학이었던 학파들(행태경제학, 신제도주의, 재무경제학, 케인지안, 오스트리아 학파 등등)이 다들 겪어온 문제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학파 정도를 제하면 이들은 그 와중에도 자기들의 입지를 다져왔고, 결국 오늘날 이 학파들은 그렇게 무시당하지는 않거나 주류의 영역으로 포섭되었다. 이 점을 감안하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그 자체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과연 과학적인지는 스스로 증명해야 할 사안이다. 기존 주류 경제학의 각 학파들은 스스로 과학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기나긴 세월동안 모형과 논리를 다시 다지고, 실증분석을 통해 이론의 현실설명력을 계속 시험해왔다.

다만, 굳이 변호를 하자면 학문에 과학만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무가치한 것는 아니다. 가령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마르크스의 철학을 공부한다던가 그에 영향을 받아 나온 철학들을 연구하는데 유용한 길잡이 정도는 할 수 있다.

4.3. '역사성'의 문제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경제학이면서도 통일적인 역사 발전론에 근거해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양식을 분석하기 때문에, 이전부터 역사학계에서도 큰 떡밥이 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이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과거로부터의 근거에 많은 비판을 받았고, 현재로서는 '원시 공산주의 →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로 연결되는 발전론 자체가 무너졌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따른 역사 시대의 분석은 기껏해야 유럽 안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체제라는 비판이 이전부터 가해져 왔다. 애초에 중국의 봉건제는 빠르면 진시황, 늦으면 한무제 때부터 군현제에 의해 대체되었고,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 또한 고려 시대쯤 들어서면 이미 군현제가 사회의 주류를 차지했다. 즉 이 두 국가에는 농노제 비스무리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 사학계는 한국에 대해 정체성론을 제시하며 '중세'의 부재를 주장하였다. 심지어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유럽 내에서도 그렇게 일관성 있게 적용되지는 않는데, 마르크스가 규정한 봉건제 영역이 교과서적으로 나타는 지역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으며,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토지 분배나 수취 상태 정도 역시 차이가 있었다. 가령 네덜란드에서는 노동 지대보다 생산물이나 화폐지대가 지배적이었으며, 북중부 이탈리아에서는 자영농이 발달했다.

정치성이 아니더라도 생산 기반에 대한 인식도 문제였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생산 관계 정의에 따라 '고대 노예제' 사회로 분류되는 로마 제국이나 한나라의 실제 노예 인구 수는 많아야 10 ~ 15%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득세할 때 추정했던 통계(보통 30% 정도로 예상했다)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수치이다. 한국에서도 신라 민정문서가 발견되면서 고대 노비 비율이 10%도 안 되는 것으로 밝혀지자 마르크스주의 사학계에서는 크게 당황한 바 있다. 반대의 사례도 있는데, 조선의 노비 비율은 적어도 30% 이상인 것임이 확인되었으므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 따르면 한반도는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고대 노예제 사회의 생산성에 진입한 것이 된다. 당연히 문명의 발전 수준을 고려했을 때 택도 없는 소리이다. [15]

역사 사료가 부족한 고대 - 중세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근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가설도 현대 역사학에서는 많이 약화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단선론적 자본주의 발전론에 따르면, 유럽 외의 타 지역이 유럽을 따라가지 못했어야 하는데, 정작 늦어도 15세기까지 중국은 유럽의 생산력보다 앞서 있었으며 유럽이 중국을 능가했다고 확언할 수 있는 시대는 빨라도 18세기 후반이라는 실증 분석이 이뤄졌기 때문. 즉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이해하면 경제 발전의 단계상으로 후진적인 사회가 실제로는 오히려 경제 생산력 면에서 한동안 선진적이었다는 것이다. [16]

결국 현대 경제사학계에서 도달하는 결론은 세계 역사에 일원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역사 발전 가설의 존재 자체를 회의하고 각국 역사의 개별적인 변화와 발전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고대', '중세', '근대'라는 틀은 점차 역사학계에서 비전문 용어화되어 가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적인 생산력 - 생산 관계의 직선적인 발전론이 깨지면서 '결국 세계는 경제의 발전에 따라 공산주의에 이를 것이다'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결론도 역사학적으로 볼 때는 위태로운 상황.

길게 서술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3. 4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강점으로 꼽았던 역사적 경제 구조에 대한 분석, 시기 구분, 체제 구분 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 경제의 발전 단계가 역사적으로 증명되어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근거가 뚜렷해질 것인데, 그 부분에서 연결고리를 잃어버리면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과학적인 변증법에 따른 발전상을 설명한다'고 말할 근거를 상실해 나가고 있다.

5. 기타

괴상하게 들리겠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은 신고전파와 마찬가지로 고전파 경제학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특히 인간의 이기성, 합리성 등을 가정한 점은 서로가 유사하다. 따라서 아래와 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신고전파와 마르크스 경제학이 오월동주가 되는 격도 많이 볼 수 있다. 유명한 리드리히 하이에크트비히 폰 미제스를 상대로 스카르 랑게 등의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이 계획경제의 가능성을 논쟁한 논쟁에서, 마르크스 경제학과 오스트리아 학파라는 두 비주류 경제학은 신고전파라는 주류경제학을 기반으로 해서 논쟁이 이뤄졌으며(...) 하이에크의 첫 가설을 논파한 랑게의 계획경제 모형은 아예 완전히 신고전파에 기반해서 구상되어 있었다(...) 이 논쟁은 오스트리아 학파 측에서 신고전파적 접근은 정보처리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어 현실 설명력이 부족하다는 반론을 가해, 더 이상 공유하는 점이 없어서 중단된다. 밀턴 프리드먼 등이 하이에크의 제자를 자처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엽기적이기까지 하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이 신고전파를 이용하면서 옹호하고 오스트리아 학파가 신고전파를 공격한 셈(...) 하지만 이런 사실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존립에 대해서 그 어떤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렵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신고전파와 달리 과학성이 없어서 까이는 것이지 그 뿌리가 다르다고 까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6. 변론

다만, 일각에서는 기존의 한계를 탈피하려는 시도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존재하기는 한다. 벤 파인등으로 시작된 미국 쪽 마르크스 주의 경제학은 던컨 폴리등에 이르러서 수리적 분석들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유럽에서도 뒤메닐 등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들은 가치 법칙이나 이윤율 저하 경향에 지나치게 천착하거나 하진 않고 오히려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나의 분석적 도구로써 활용하기 위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뒤메닐의 경우 한국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을 주장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를 수리적으로 재구성하고 분석틀로 사용했을 뿐 2010년 금융위기에 대해서도 이를 이윤을 저하 경향으로 파악하는 관점들을 반박했으며 이윤율 저하 경향으로 자본주의가 몰락한다는 명제는 본인 스스로가 완전히 기각하고 있다. 또한 중국 자본주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아닌 스미스를 파악한다고 하는 등 기존 이론적 경직성들을 깬 학자들 역시 존재한다. 폴리 역시 가치 법칙을 교조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신해석을 통하여 나름의 분석틀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부류의 학자들은 소수이고 숫적이나 질적으로 주류경제학에 대항할 가능성은 커녕 마르크스주의 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7. 결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경제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류 경제학계에서 안에서 받는 취급은 꽤 참담한 편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마치 심리학자가 정신분석학 보듯하는 경향이 분명 있다. 개중에는 폴 새뮤얼슨처럼 마르크스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갖고 대화를 시도한 사람들도 있지만[17], 대다수의 주류경제학자들은 아예 관심이 없거나 극도로 적대적이다. 이는 다른 종류의 비주류 경제학과도 명백히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주류경제학계 내에서 통상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위상은 과학계에서 창조론, 심리학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추종하는 것, 말론과도 유사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국이나 많은 국가들에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마르스크 경제학자들이 내적한계를 극복 못하고 자본론에만 너무 집착한채 고립되어 있는 학자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학문적 성과를 전부 환단고기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과도한 서술이나 사실 앞서 서술된대로 경제학적 분석이라기 보다는 이래이래야 한다는 가치의 주장, 혹은 사회학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경제학으로서의 효용이나 과학적 엄밀성은 부족하다는 것. 다시 말해 경제학 내부적으로 기를 펴고 있지 못한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관해서 마르크스주의 쪽에서는 주류 경제학이 '자본론도 안 읽어봤다는 등' 마르크스 경제학을 너무 모른다고 하지만, 이 비판에는 문제가 있다. 경제학은 코란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현실 설명을 위한 과학일 뿐이지, 특정 경제학자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를 따지는 학문이 아니다. 그런 훈고학적 경향 자체가 마르크스 경제학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마르크스 경제학자들 스스로 반성이 필요하다. 그나마 뒤메닐이나 폴리류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접근방식을 취하는 신진 조류들은 이러한 비판에서는 보다 자유롭다고 볼 여지가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경제사적 의의가 있을수는 있겠지만 전형논쟁으로 알 수 있듯이 그 이론 내에 본질적인 결함이 있고, 그 결함으로 인해 과학의 중요 요건인 '내적 적합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18][19][20] 오늘날 마르크스 경제학은 마르크스가 생전이 그토록 외쳤던 것과는 달리 과학, 나아가 사회과학의 일부인 경제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철학이나 사회사상 등으로 취급받고 있는 형편이다.


8. 보론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비판론[21]은 현실의 경제정책을 다룬 서적,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나 사회주의의 실패를 다룬 서적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22]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는 역사를 중시한 바 특히 경제사를 이해하는 것이 권장된다.[23] 그 뒤에 자본론은 크고 아름다운 덩치를 자랑하므로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얇은 저서나 근래에 나온 개설서 스타일의 책들을 보아도 되고, 20세기 이후 세계경제의 흐름을 다룬 역사서 겸 경제학서를 보아도 된다. 경제학사 서적인 세속의 철학자들 에서는 제법 비중있게 서술되어 있음으로 이 책을 보는것도 추천.

역사 부분 관련해서는 영국의 유명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이 마르크스 사학자이며, 마르크스 역사학은 아니지만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자인 페르낭-브로델로부터 시작된 세계체제론 역시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시각을 받아들이고 있다.[24] 역사쪽으로 눈을 돌릴거면 홉스봄이나 세계체제론 관련 서적들을 읽어보는것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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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치에서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공공선택론과 연이 닿아있다.
  • [2] 한계 혁명은 프랑스의 레옹 발라, 영국의 앨프리드 마셜,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의 연구 성과가 결합되어 탄생했다.
  • [3] 비판자들은 이는 어디까지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만의 생각이라고 본다. 과학철학의 논리실증주의를 베이스로 할 때, 이론의 내적 정합성을 1차 시험으로, 현실설명력을 2차 시험으로 간주하는데 이건 1차 시험도 통과를 못한 셈이니...
  • [4] 이는 계혁명 이후 신고전파 경제학이 고전파 경제학을 극복하고 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마르크스 경제학이 현대 주류 경제학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
  • [5] 자본 개념에 대해서는 현재 성장론 측면에서도 여러가지로 설명이 이뤄지고 있고, 사용가치적 측면 이외에도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이 생산에 차지하는 비중이나, 뭘 물적자본으로 보고 뭘 인적자본으로 봐야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 [6] '착취'가 가치판단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이론적 전제이지 분석대상은 아니다. 착취는 생산영역에서 추상되는 것이며 분석을 행하려면 착취가 불투명해지는 교환과 분배영역의 분석이 필요하게 된다. 대신 주류경제학은 교환의 영역만을 강조할 뿐이다. 따라서 분석이 완결되려면 생산과 분배영역을 모두 고찰해야 할 것이다.
  • [7] 장단기 개념에 관해서는 오해에 소지가 있다. 일시적/영구적이라는 단어의 기준은 굉장히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다.
  • [8] 착취를 보다 광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주류 경제학에서는 독점이나 지대추구와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공황 역시 경기불황에 관해 여러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케인스리드먼 등 역시 공황의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로 언급한 바 있으며, 벤 버냉키 역시 대공황과 관련해서 통화정책 경로를 주로 연구하던 학자였다.
  • [9] 한 때는 고전파 경제학에서 널리 쓰였지만 이들은 노동가치론을 말 그대로 가정으로 여겼고 이게 진짜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이걸 아예 핵심 이론으로까지 써먹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10]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가치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해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의 가치 개념은 단순히 일상적인 어법대로 '값진 무언가'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질적으로 서로 다른 상품을 상호 비교 가능한 대상으로 균질화시켜 주는 어떤 단위에 가깝다. 이러한 단위로 이용될 수 있는, 모든 상품에 내재하는 동일한 속성은 노동생산물이라는 성격밖에 없으며, 따라서 가치는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는 것이 노동가치론의 골자이다. 모든 상품의 가치가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는 이 소전제가 제출된 후에야 비로소 상품 생산의 요소 중 불변자본에 해당하는 요소(원료, 기계)가 스스로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마셜의 비판은 노동가치론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 [11] 노동가치론이 금융과 서비스 영역 등 3차 산업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금융 영역의 경우 마르크스 본인부터가 이미 '이자를 수취하는 자본'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생산자본의 회전율 등을 향상시켜 이윤율을 증가시키는 대가로 생산자본이 만든 잉여가치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으로 설명된다. 또한 서비스 영역에 대한 비판의 경우, 마르크스가 설정한 가치와 상품의 개념이 무형 상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오해에서 나온 것으로, 2차 산업에 대한 설명이 그대로 적용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 [12] 콥-더글라스는 노동의 경우 2/3, 자본의 경우 1/3이라 봤다. 실제 우리나라 역시 90년대 초까지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득분배율이 이 값에 수렴한 모습을 보였다.
  • [13]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현실에서 관측할 수 없는 것이 과학적 개념으로 사용될 수 없는 것과 직결되지는 않는다고 반박한다. 예를 들어 중력이라는 것은 그 자체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중력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고 예측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관측할 수 있다면 중력의 존재는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치 역시 가치법칙의 틀을 통해서만 노동시장 현실과 공황 등을 설명할 수 있다면 가치의 존재가 간접적으로 증명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반박 역시 일견 타당성이 있으나, 역시 이 경우에도 최종적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형문제이다. 이론의 현실 설명력은 둘째 치더라도, 내적 정합성이 부족하다면 결국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
  • [14] 그나마도 전형논쟁 과정에서 주류 경제학의 폴 새뮤얼슨이 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하여 논파한 바 있다.
  • [15] 하지만 '아시아적 생산양식' 등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마르크스의 주장은 마르크스 경제학, 마르크스 역사학 등의 학계에서 극히 초기부터 반박이 있었고(국내만 해도 일제강점기부터 백남운의 반박이 있었다.), 현재는 주류경제학이 노동가치론 보듯(...) 인정받지 않는 학설이다. 드물게 고학 소리 안 들을 만큼의 발전이 있었던 분야(...)
  • [16] 이전 항목의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내용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자본주의 맹아론 자체가 유럽중심적인 기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이며,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부정 역시 마르크스주의와 비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이 같이 부정하게 된 것.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17] 그는 "마르크스는 너무 소중하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 [18] 주류 경제학이라는 건 엄밀히 말해 그 자체가 하나의 조직으로 구성된 학파는 아니고 그 범위 역시 굉장히 애매모호하지만 대략 신고전파 종합과 합리적 선택 신제도주의를 포함한다는 것이 시중의 널리 퍼진 해석이다.
  • [19] 내적 정합성과 현실 설명력을 중시하는 논리 실증주의에 비해서는 비주류인 칼 포퍼의 반증주의, 러다임설 등의 다른 요건도 많지만 얘들이 보기에도 마르크스 경제학을 과학으로 볼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딱 하나 과학의 범위를 가장 크게 잡는 상대주의설에 따르면 과학으로 볼 여지가 있긴 하겠지만 그 논리대로라면 창조설, 천동설, 연금술 따위의 주류 과학에서는 사이비 취급받는 학설들 역시 과학이 된다.
  • [20] 주류 경제학의 경우 현실 설명력 측면은 둘째치더라도 내적 정합성 측면에서는 거의 완벽하다 봐도 된다. 딱하나 꼬리 잡힐 뻔한 적이 있다면 자본 논쟁 정도인데 이에 대해서는 토론 결과를 두고 온갖 견해가 있으며 일각이 생각하는 것보다 주류 경제학계의 피드백 역시 smd 정리 등으로 꽤나 성공적으로 수행된 편이다. 그리고 비판자인 영국 케임브리지언들의 지적도 문제가 있는 것이, 이들은 실증분석이 결여되었다. 오죽하면 조앤 로빈슨의 제자이면서 신고전파에 속하기도 했던 스티글리츠도 이를 기펜재에 비유하며 영국 케임브리지언을 디스했다. 이런 관점에서 주류경제학자들은 대부분 그 성향을 막론하고 자본논쟁에 대해 시큰둥하다.
  • [21] 주류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마르크스경제학에 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정운찬 저 거시경제학 정도에 마르크스가 언급된 점이나, 미시경제학에서 폴 스위지라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의 굴절수요곡선 모형 정도가 언급된 것이 다다. 그나마 해당 모형은 주류 경제학에 대해 꽤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학자가 주류 경제학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거라. 그리고 폴 스위지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라는 언급은 거의 안 나온다.
  • [22] 다만, 이러한 비판에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상당부분 오해가 섞여있다.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경제학은 대중의 인식과 학계의 인식의 괴리가 크다.
  • [23] 국내에서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주로 모이는 곳 중 하나가 이런 경제학사 강의다. 가령 연세대학교 홍훈 교수나 고려대학교 김균 교수가 대표적
  • [24] 세계체제론의 4인방중 한명이자 대부격인 이매뉴얼 월러스틴도 자신이 가장 영향받은 인물로 마르크스를 꼽았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아니지만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조류인것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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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8-20 0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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