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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last modified: 2015-04-14 21:06:19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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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lyn Monroe


세기의 섹스 심벌이자 비극적인 사생활로 잘 알려진 여배우.

본명은 노마 진 모턴슨(Norma Jeane Mortenson) 혹은 노마 진 베이커(Norma Jeane Baker).

Contents

1. 개요
2. 결혼이혼
3. 사망
4. 기타
4.1. 먼로가 플러스 사이즈?

1. 개요


정신장애가 있는 모친의 사생아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고아원과 양부모 집에서 양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힘든 환경에서 도피하고자 같은 학교 연극반이었던 제임스 도거티와 16세 때 결혼을 했지만 이런 결혼이 늘 그렇듯이 4년 만에 헤어졌다. 먼로를 맡아 기르던 위탁가정의 부모가 멀리 이사를 가는데, 법적인 문제로 먼로를 데려갈 수 없고 그렇다고 아직 어린 소녀를 그냥 내버릴 수도 없어 후다닥 결혼을 시킨 거라고 한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방위산업체에서 페인트 분무기를 뿌리는 일을 하다가 부대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되었다. 달력의 누드 모델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1] 1947년 <쇼킹 미스 필그림>이라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여 스크린에 데뷔한다.

그 후로도 단역을 전전하다가 1950년에 <아스팔트 정글(The Asphalt Jungle)>, <이브에 관한 모든 것(All About Eve)>에 출연하여 배우로서의 자질을 인정받는다. 53년에 <나이아가라>의 주연을 맡아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되는데 20세기 폭스사는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는 먼로 워크를 중심으로 화려한 선전을 전개, 그녀를 세계적인 섹스 심벌로 만들었다.

이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백만 장자와 결혼하는 법>, <돌아오지 않는 강>, <7년 만의 외출[2]>, <버스정류장>, <왕자와 무희>, <거운 것이 좋아>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금발의 백치미인 컨셉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실제로는 똑똑했다고 한다.[3] 다만 팬들이 자신의 백치미적인 모습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백치미 "연기" 를 했다는 얘기도 있다. <마릴린 먼로가 <율리시스>를 읽다>라는 유명한 사진에는 그녀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인 율리시즈를 읽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다. 진짜로 읽었는지 궁금했던 한 영문과 교수가 기자에게 문의한 결과 진짜였다고... 물론 이 책을 읽는 행위가 똑똑함의 척도가 될 수는 없지만, 무식하면 책을 안읽긴하지, 아니 책을 안 읽으면 무식해지는건가? 영미문학계에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권위와 책이 가진 괴랄한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 책을 다 읽었다는 것만으로 그녀가 상당히 교양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로렌스 올리비에는 먼로가 자신이 이제껏 공연한 여배우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재능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고, 아서 밀러(세일즈맨의 죽음의 저자)가 그녀와 결혼을 한 이유 중 하나가 먼로의 지적인 면에 반해서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여성 운동 등에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양부모에게 성추행당한 과거를 고백하는 등, 당시로선 앞서가는 의식을 지녔었다고 한다.

게다가 마릴린 먼로 자신은 자기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 놓은 백치미 컨셉에서 벗어나 진정한 연기력을 키우고 싶었다고[4]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멍청한 금발 미녀"라고만 기억하고 있다.... 안습[5]

먼로의 마지막 완성작 <The Misfits>에서는 번번히 촬영장에서 지각을 해서, 클라크 게이블과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불쾌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고아로 자란 먼로가 평생동안 가지고 있던 정서불안, 자신의 연기나 사람들의 거절감에서 오는 두려움 등등에서 기인했다. 아마 약물중독도 원인이었을 듯...

2. 결혼이혼

첫 결혼은 1942년, 16세 때 항공사 정비공으로 일하던 짐 도허티와 치렀다. 그러나 4년 만에 먼로가 모델 일을 하는 문제로 헤어졌다. 이 결혼은 당시 먼로의 위탁 부모가 타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먼로를 데려가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차마 아직 미성년인 여자아이를 내버려 두고 가기가 미안해서 이웃의 청년과 급하게 짝을 맺어 준 것. 짐의 부모,특히 어머니가 먼로가 성실하고 정숙한 처자라고 환영을 하며 결혼을 빨리 치루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훗날 짐 도허티는 "여전히 먼로를 사랑합니다만,먼로에게 빠진 것은 아니예요"라는 말을 남겼다. 김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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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당시 위문 공연온 먼로. 한겨울에도 군인들을 위한 과감한 패션!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두번째 결혼을 했으나 또다시 이혼한다. 두 사람 사이는 한국 위문 공연 이후 틀어지기 시작했다. 부상으로 쉬어야 했던 디마지오가 전지훈련 겸 팬 사인회로 먼로와 함께 일본에 갔는데, 계획에 없이 한국의 최전선 장병 위문 공연 제의가 들어왔고 먼로가 거기에 응했다. 이 위문공연을 본 후부터 디마지오가 먼로를 계속해서 닥달했다. 영화 '7년만의 외출' 촬영현장에서 큰 소리로 다투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 둘 다 자존심이 세서 자주 다투었다. 이미 전성기가 끝난 디마지오보다 마릴린이 더 인기 있었고, 그것이 한 때 야구선수로서 큰 영광을 누리던 디마지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유명한 일화로 먼로가 많은 청중에 둘러싸여 환호를 받으면서 "이 기분을 당신은 모를거에요"라고 하자 디마지오가 "잘 알아"라고 대답한 일이 있었다.

결국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어찌나 맞았는지 이 시절의 마릴린 먼로는 얼굴의 멍을 감추기 위해 늘 짙은 화장을 해야 했었으며 심지어 야구 선수였던 디마지오는 야구 배트까지 동원하며 폭행하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 결국 디마지오와도 이혼했다.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 사후 매주 3번씩 먼로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그녀를 그리워했다. 유언 중에 "이제 먼로를 다시 만날 수 있겠군."이라는 말도 유명하다. 케네디 가문의 형, 동생과 먼로의 스캔들을 사실이라고 믿어 평생 케네디 가문을 싫어했고,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도 거절했다. 이상의 일화를 통해 디마지오를 대단한 로맨티스트로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위에 언급한 폭행 문제와 맞물려서 잘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최소한 미국인에게 디마지오가 애처가라느니, 로맨티스트라느니 이런 소리했다간 비웃음을 당하기 쉽다. 죽을 때까지 먼로를 그리워했던 것을 보면, 운동만 하느라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사랑이 집착이나 폭행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사람에게 로맨티스트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6]

이후 극작가 아서 밀러와 세 번째 결혼을 한다.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희곡작가였으니, 말 그대로 당대 최고의 지성과 당대 최고의 육체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다.하지만 이 결혼도 곧 실패로 끝난다. 밀러가 매카시즘에 휘말려서 고생한 것이 이혼 사유 중 하나이다. 사족으로 밀러가 매카시즘에 휘말렸을 때 의원 한명에게 아내 먼로와 사진을 찍게 해주면 사면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밀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밀러와 이혼 후 이런 저런 추문에 휩싸였다. 촬영 중에는 각성제 및 음주...로 대본을 못 읽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 중요한 촬영을 고의로 펑크내고 케네디 대통령 생일잔치에 참가해서 노래를 부르는 추문을 일으켜[7] 바로 해고되었고 이후 은둔생활을 하였다.[8] 그외에도 "thank you mr. president"라는 자작곡을 불렀는데 속옷도 입지 않고 꽉 끼는 드레스를 입어 좌중이 그 꼴림매력에 경악했다고 한다. 당시 무대 뒤에 서 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경호원이 케네디 암살 50주년을 기념해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내 기억에 남은 것은 그 여자의 엉덩이와 고혹적인 목소리 뿐이었어. 그리고 내 나이에는 그 정도로 충분했지."대체 그 많은 높으신 분들이 온 자리에서 몰래 뭘 했던 거유? 마릴린 먼로가 온다는 말에 재클린은 매우 불쾌해하며 참석을 거부하고 말을 타러 떠났고 케네디는 그 많은 기자들이 있는 와중에 마릴린과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그때 기자 하나가 달려들어 사진을 찍어 댔는데 미합중국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고 그중 일부만 공개를 허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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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형제와 한자리에서 찍힌 유일한 사진 당시 꽉 끼었다는 드레스를 입은 사진

한편 재클린은 마릴린과 케네디의 사이를 눈치채고 있었고 케네디의 생일파티에 마릴린이 온다는 말을 듣고 격노하여 "당신 혼자 가세요."라고 쏘아붙이고는 말을 타러 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마릴린이 죽었다는 소릴 듣고 매우 기뻐했고(...) 케네디와의 사이도 다시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해에... 케네디는 암살당했다.

3. 사망

62년 8월 5일 그녀의 방 침대에서 나체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공식적으로는 수면제 과다복용에 의한 사망으로[9] 되어 있으나, 존 및 로버트 케네디 형제와 친밀한 관계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죽음에 마피아 조직이 개입된 모살설도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10]

4. 기타

애정결핍과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무시하고 몸뚱이로만 보던 영화계의 시선 때문인지,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려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절했다고 한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그 당시에도 유색인 팬들이나 유색인 국가 방문시에도 예의바른 태도로 좋은 말을 들었다. 심지어 당시 후진국 중에서도 후진국이던 한국에서도 잘했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 방문시 한국인 팬이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신문기사를 즐겁게 보는 한국어를 모르니 내용은 모를 거다 먼로의 사진이 남아 있다.

그녀가 똑똑하면 안된다고 믿고 싶었던 기자들은 먼로가 "도스토예프스키죄와 벌의 역할을 맡아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한다는 질문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스펠링은 아냐?"였다고

닥터후에서 언급되기를, 1952년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11대 닥터와 결혼했다고. 마릴린 맨슨은 그녀의 이름에서 따왔다.

미드 Quantum Leap 5기 17화 "Goodbye Norma Jean"에서, 원래 역사대로라면 죽어야 하지만 샘의 개입으로 마지막 작품이 되는 영화를 찍고 영화계에서 은퇴한다. 그 후에는 어찌되었는지 모르지만 잘 살았을지도.

입가에 있는 점이 매우 유명하다. 흔히 애교점이라 불리는 그것을 먼로점이라고 따로 불리우게 할 정도.

마이클 셰이본의 대체역사소설 유대인 경찰연합에서는, 리 하비 오즈월드에게 암살당하지 않고 영부인클린 케네디이혼하는 데 성공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마릴린 먼로와 재혼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2011년 7월, 시카고의 번화가에 있는 파이오니어 광장에 마릴린 먼로의 환풍기씬을 재현한 대형 동상이 설치되었다. 크기가 8m나 되는 동상이며 먼로의 얼굴 표정이나 옷, 발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굉장히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었는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제작자도 그걸 알았는지 판치라를 특히 정교하게 표현하는데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게다가 주변을 울타리로 막은 것도 아니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만져볼 수 있도록 완전 개방해 놓았기 때문에, 먼로의 다리에 키스하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든지 두 다리 사이에 서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사진을 찍는 등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너도나도 당연하다는듯이 그렇게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설치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허벅지 부분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놓는 등 마찬가지로 민망한 방식으로(…) 동상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고인드립 선정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 날짜로 2012년 5월 7일에 철거된다고 한다.[11] 이제 시카고에 가도 더 이상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사진은 검색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고 캘리포니아로 옮겨졌었다. 2014년 6월 현재 뉴저지에 있다.

한편, 빈센트 반 고흐의 유작을 한국인 경호원에게 선물해주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녀의 성미를 생각한다면 있을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소문의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 근데 이 대작품이 한국인 손에 들어온 것도 의문 진실은 저 너머에

영국에서 <왕자와 무희>를 찍는 과정에서, 감독인 로렌스 올리비에 밑에 조수로 일했던 콜린 클락은 자신과 마릴린이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경험을 책으로 2편을 써 냈는데, <The Prince, the Showgirland Me>와 <My Week With Marilyn>이다. 전자는 드라마화되기도 했고, 후자는 2011년 동명의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12] 먼로를 연기한 셸 윌리엄스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와 골든 글러브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밖에 케네스 브레너가 로렌스 올리비에로, 에디 레드메인이 콜린 클락으로 출연한다. 세간에는 이 영화가 실화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영화 속 배경은 사실이나 둘 사이의 관계는 전적으로 콜린 클락의 주장이기 때문에 이를 전적으로 믿는 건 곤란하다. 하긴 둘다 고인인데 가려봐야 뭣할까 싶긴 하고.

여담으로 마릴린 먼로는 최전성기땐 모든 남성들의 연인이였지만, 정작 본인은 단 한명의 진실한 사랑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가질수 없었다. 모든것을 다 가진듯한 그녀였지만 평생을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쳐야 했고 죽음마저 편할수 없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환경속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당대 최고의 섹스심벌로 가장 화려한 별이되어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남자(미국 대통령)과 염문을 뿌리며 후대에도 지대한 영양을 끼친 그녀가 바로 마릴린 먼로였다.

4.1. 먼로가 플러스 사이즈?

먼로의 옷사이즈가 12~16 이었다고 "먼로가 플러스사이즈다, 고로 빅사이즈 입어야 진정한 여성의 몸매를 가졌다" 라고고 우기는 미국여성들이 많다카더라.

현재 미국의 기성복에서 여성복 12 혹은 14 사이즈부터 빅사이즈로 따로 분류한다. 한국의 66 사이즈가 보통 4 나 6 의 사이즈에 해당한다. 미국에서는 대략 99 사이즈 이상을 빅사이즈로 분류한다.

그런데... 플러스 사이즈를 입는다면 키나 뼈대 감안해도 정상체중으로는 택도 없다. 키 170센티에 90킬로의 여성이 마릴린 먼로로 보이는가? 이것은 시대별로 달라진 기성복 수치로 인한 착오이다. 50년대 사이즈 12 는 현재의 6 혹은 8 사이즈로 한국식으로는 (미국은 어깨너비나 골반이 좀 크게 나온다) 큰 66 이나 작은 77 정도이다. 즉 그 시대가 뚱뚱한 여성을 좋아한 것이 아니고, 다만 지금같이 중성적이다싶을 만큼 마른 여성을 선호하지 않았을뿐이며, 먼로의 사이즈는 지금도 과체중과는 무관하다. 아마 점점 무거워지는 미국에서는 일상에서는 말랐다는 소리도 들을지도... 그런데 객관적으로 사진에 나온 자기 모습 보면 답이 나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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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후일 먼로가 유명해질때 이 사진이 공개돼서 파문이 일어났지만 대인배답게 솔직히 인정해서 별 일 없이 넘어갔었다.
  • [2] 그 유명한 환풍구이 나온다.
  • [3] 아이큐가 150 이상이었다는 설도 있다.
  • [4] 말론 브란도 등이 나온 뉴욕의 액터즈 스튜디오를 졸업했다. 그래도 클라크 게이블과 같이 촬영한 마지막 작품은 연기력만으로 승부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촬영이 끝난 후 두 배우 모두 사망.
  • [5] 다만 <거운 것이 좋아>에서 서랍장을 열면서 말해야 하는 "버번 위스키 어디 있어요?"라는 단순한 대사를 무려 59번이나 NG를 내서, 결국 서랍 안에 대사를 적어놓았지만 어느 서랍에 컨닝 페이퍼를 넣었는지 몰라서 모든 서랍에 넣은 후에야 대사를 말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하지만 이 때는 밀러와 이혼 후 각성제 및 음주로 대본을 못 읽을 정도로 정신이 심하게 망가진 이후였다. 공연한 토니 커티스는 먼로와의 키스는 히틀러와 키스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불평했다고 한다...히틀러랑 해봤어?
  • [6] 디마지오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그래도 먼로가 죽은 뒤 디마지오가 자신의 폭행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그리워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 [7] 이때 해피버스데이 투유~ 하고 노래를 부르는 영상은 유명하다.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가 레옹 앞에서 퀴즈를 내면서 이 흉내를 그대로 낸다.
  • [8] 80년대 후반 발견된 미공개 사진이나 디마지오 아들의 회고에 의하면 은둔생활 동안 약물을 끊고 재기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 [9] 평소에도 잠옷 없이 자곤 했다.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질문에 "샤넬 No.5"라고 대답한 것이 유명. 향수 맞다. 이 일화를 샤넬이 광고로 써먹기도.
  • [10] 실제로 로버트 케네디와 정말로 친했다고 한다. 소문의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조 디마지오는 이 소문을 사실로 믿었고, 평생 케네디 일가를 증오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켜줬어야 하는건데 그러지 못했다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다. 다만 위에서 언급된 디마지오 스스로의 폭행 문제도 있는지라...
  • [11] 논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2012년 봄까지만 설치해 둘 예정이었다고 한다.
  • [12] 한국 개봉명은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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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2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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