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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 히데키

last modified: 2015-03-31 15:18:51 by Contributors


이름 마쓰이 히데키
(松井秀喜, Hideki Matsui)
생년월일 1974년 6월 12일
국적 일본
출신지 이시카와현 노미시
신체조건 188cm 99.8kg
포지션 중견수(요미우리 시절)
좌익수,지명타자(MLB 진출 이후)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2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1993~2002)
뉴욕 양키스(2003~2009)
LA 에인절스(2010)
오클랜드 애슬레틱스(2011)
탬파베이 레이스(2012)

1996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토마스 오말리
(야쿠르트 스왈로즈)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후루타 아쓰야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노구치 시게키
(주니치 드래곤즈)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2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스왈로즈)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가와 게이
(한신 타이거스)

2009년 월드 시리즈 MVP
콜 해멀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쓰이 히데키
(뉴욕 양키스)
드가 렌테리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목차

1. 소개
2. 프로 입문 전
2.1. 유년기
2.2. 세이료 고등학교 시절
3. 선수생활
3.1.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3.2. 양키스 시절
3.3. 양키스 시절 이후
3.4. 은퇴
4. 플레이 스타일
4.1. 공격
4.2. 수비/주루
5. 이모저모
5.1. 연도별 역대 기록

1. 소개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일본정ㅋ벅ㅋ 하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 성적을 거뒀다. 차기 요미우리 감독 후보 1순위, 잘 알려진 별명은 고지라 혹은 고질라, 대한민국 한정 별명으로 맛순이, 박수희, 마대갈, 최형우[1]등.

2. 프로 입문 전

2.1. 유년기

마쓰이는 아버지 마쓰이 마사오(松井昌雄)의 영향으로 한신 타이거즈의 팬으로 자라왔으며, 6살 때 처음 고시엔에 가서 카케후 마사유키의 사인볼을 받으며 카케후를 동경하는 베이스볼 키즈로 자라랐다. 아버지의 극성 권유로 소학교 1학년 때 3학년 이상 수준의 연식야구팀에 입단시켰지만 너무 어린 나머지 감독의 지시를 이해 못하는 등 야구랑은 좀체 친해질 수 없었다. 대신 또래보다 체격이 커서 유도스모 선수로 활약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서 마쓰이는 야구, 유도 중 뭘 할까 고민하다가 중학교에 유도부가 없어 결국 야구에 전념하게 됐다. 이때는 주로 포수투수로 활약했고, 타자로서 중학 통산타율이 6할대를 넘기기도 했고, 3경기 연속 홈런도 기록하기도 했다. 중3 때 친 홈런의 비거리가 130m에 달하기도. ㅎㄷㄷ... 하지만 이미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에 몸무게가 90kg를 가볍게 뛰어 넘을 정도로 비만이었고, 세이료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야구부 감독으로부터 80kg까지 다이어트 하고 오라고 듣기도 했다.

원래 동네야구시절 우타자였으나 실력차를 극복하지 못한 친형과 친구들이 우타석에서 타격하면 같이 야구 안하겠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좌타석에 들어섰는데, 웬걸 상시 스팀팩+초샤이언인 모드임을 자각하여 좌타자의 길로 나섰다.

2.2. 세이료 고등학교 시절

사실 마쓰이는 세이료(星陵) 고등학교가 아닌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공립 고마츠메이호 고등학교로 진학하길 원했지만, 세이료 고등학교에서 마쓰이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여 진학하게 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초창기에는 투수로 활약했지만, 정작 마쓰이는 "투수는 별로"라는 얘기를 해 바로 1루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다시 3루수로 포지션을 옮기면서 벌써 1학년부터 3루수, 4번타자 주전을 맡았다. 팀도 여름 고시엔에 나갔지만 첫 경기에서 광탈. 하지만 2학년 때 팀을 여름고시엔 8강까지 이끌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여름 방학에 야구부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체력측정에서 "키요하라 카즈히로 이후로 처음 나오는 기록"이라고 들을 정도였다.

고3이 되자 이미 세이료 고등학교의 스타가 됐고, 고시엔 센파츠 대회(봄 고시엔)에서 나가시마 시게오가 보는 앞에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2] 아쉽게도 여름 고시엔 2회전에서 메이토쿠기주쿠고교[3]에게 패해 탈락했지만, 이 경기에서 무려 5연타석 고의사구를 얻어내 일본고교야구연맹에서 갑작스레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4] 어쨌든 마쓰이 히데키는 싹부터 남달랐다.

어쨌든 고교시절 통산 타율 .450, 60홈런[5]을 기록해 1992년 드래프트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즈, 주니치 드래곤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등 네 구단으로부터 1위 지명을 받아 이 중에서 교섭권을 얻은 요미우리에 입단했다.(계약금 1억 2,000만엔, 연봉 720만엔)

3. 선수생활

3.1.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데뷔 시즌인 1993년 스프링 캠프때부터 요미우리 OB나 스태프로부터 "오 사다하루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데뷔 시즌 성적은 57경기 .223/.296/.451로 딱히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11개의 홈런을 치면서 장타력은 이 때부터 싹이 보였다.

이후 2시즌동안 전 경기 출장을 하면서 조정기를 거친 마쓰이는 96시즌에 .314/.401/.622 38홈런 99타점으로 폭발하면서 센트럴 리그 MVP를 수상, 요미우리의 대표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꾸준히 3할 타율과 30+홈런을 찍어주면서 요미우리의 순혈 4번타자 계보를 잇게 되고, 98시즌에는 첫 번째 홈런왕와 타점왕 타이틀 득템, 다시 2000시즌에 MVP와 홈런왕, 타점왕을 거머쥐게 되고[6] 2001시즌에는 수위타자 타이틀 획득,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2 시즌에는 .334/.461/.692 50홈런 107타점이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찍으면서 다시 MVP, 홈런왕, 타점왕 타이틀을 싹쓸이하게 된다. 이 해 소속 팀까지 일본 시리즈 우승을 또 차지했다.

이미 요미우리로부터 2000시즌이 끝나고 8년간 56억엔, 2001시즌이 끝나고는 5년간 50억엔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두 번이나 제시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단년 계약을 체결, 향후 얻게 될 FA자격을 통해 메이저리그로 갈 것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었다.

선수시절의 화려한 성적으로 인해 동 시대에 퍼시픽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이치로와 많이 비교가 됐는데, 가지고 있는 타이틀은 이치로가 더 많았지만 홈런 타자가 주는 매력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라는 상징성이 더해져서 NPB 시절 인기는 마쓰이가 더 높았다. 지금은 이치로의 메이저리그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때문에 인기도 역전된 느낌이지만......사실상 둘은 거의 대등한 실력의 선수로 취급받았다[7].

이 당시 마쓰이가 이적하자마자 일본에서 프로 야구의 인기가 잠시 주춤했다는 점을 봐도 마쓰이가 일본 야구계에서 가지는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2. 양키스 시절

일본을 개발살내고 FA가 되기 직전 초거대 계약을 거절한 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중 하나인 뉴욕 양키스와 3년 $21M 계약을 체결하고, 3년간 .297 .370 .484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펼친다. [8] 수준이 보다 높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적응하기 위해 스윙을 변화시키면서 홈런은 2004년 31홈런을 제외하면 적은 편인 70홈런에 그쳤으나, 찬스마다 적절한 클러치 히팅으로써 군림하며 매년 100타점 이상을 쓸어담으며 고질라라는 별명을 얻었다.[9]

그러나 4년 $52M 연장에 합의하고 자니 데이먼이 양키스에 입단한 2006년부터 그는 부상에 시달리게 되는데, 2006년에는 수비 중 슬라이딩으로 뜬공을 처리하다 손목이 골절되어 야동보고 DDR도 못하고 거의 반 시즌을 날려먹었다가 9월에 겨우 복귀했으며[10], 미일통산 2천 안타를 기록하게 된 2007년에 다시 풀시즌을 소화하는가 했더니 2008년 외야수에겐 치명적인 무릎부상으로 수술을 겪으며 지명타자로 전환하게 된다.[11] 그래도 타격만큼은 죽지 않아 꾸준히 OPS 8할과 100타점 내외를 기록할 수 있는 고질라로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2009년, 팀의 주전 지명타자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과 월드시리즈 진출에 공헌한 그는 외계인절벽선생이 버틴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무려 .615의 타율과 3홈런으로 팀의 27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십수년간 양키스와 라이벌리를 형성해온 페드로를 상대로 때려낸 홈런과 6차전의 8타점[12]은 그 백미로, 이 무시무시한 활약으로 인해 양키스타디움에서의 3경기에만 선발 출전한 풀타임 지명타자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와 지명타자라는 한계로 인해 양키스는 그와의 재계약을 포기하였다.

3.3. 양키스 시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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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132.46 KB)]


양키스를 떠난 마쓰이는 우연히도 양키스의 홈 개막전 상대인 LA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에 입단하여 동료들과 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대를 받으며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수령했고, 월드시리즈 MVP이자 양키스의 2000년대를 풍미한 영웅으로서 기립박수를 받았다. 타석에 들어설 때와 필 휴즈에게 홈런을 때려냈을 때에도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1년 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 옮기면서도 계속해서 성적이 하락했다. 그래도 미일통산 500홈런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지만. 하기사 타격 친화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을 벗어나 리그의 대표적인 투수 친화 구장들만 돌아다녀서 그런 원인도 있겠지만...

2012년 뉴욕 양키스헤수스 몬테로시애틀 매리너스로 트레이드한 뒤 양키스 복귀설이 있었지만 양키스가 라울 이바녜즈를 영입하며 무산됐다. NPB 복귀 대신 연봉에 구애 없이 빅리그에 남겠다는 본인의 의지로 LA 다저스와 링크가 났지만 이 역시 무산.

그러다 결국 2012년 5월 1일(현지시각) 탬파베이 레이스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당시 이미 레이스에서는 짐 캐리 닮은 어떤 대단한 신인투수가 마쓰이의 55번을 선수치고 있었기 때문에, 마쓰이는 프로생활 최초로 55번 이외의 번호를 달게 됐다. 결국 35번을 달며 2012년 5월 29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경기에 나와 2012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100여 타석에서 부진을 거듭하고 결국 7월 말 지명할당을 거쳐 방출되었다.

3.4. 은퇴

결국 2012년 오프시즌에 은퇴를 선언하였다. 일본 복귀를 바라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미 일본 떠난지 10년이 넘었고 본인도 10년 전만큼 할 자신이 없다 라고 하면서 그냥 떠나기를 결심 한 듯 하다. 이후 뉴욕 양키스에서 지도자 수업을 밟을 예정이라고 한다.

2013년 4월 7일, 스승인 나가시마 시게오와 함께 국민영예상 수상이 결정되었고 5월 5일 도쿄돔에서 은퇴식과 국민영예상 수여식을 가졌다[13].

2013년 현지시각 7월 28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마쓰이 버블헤드데이와 은퇴식이 열렸다.[14]

4. 플레이 스타일

4.1. 공격

일본 리그에서는 전형적인 홈런 타자다. 1996시즌부터 7년 연속 30+홈런을 기록한 요미우리 거포 계보를 잇는 선수다. 홈런 타자답게 삼진도 좀 먹는 편이지만 선풍기 수준은 아니고, 선구안도 괜찮아서 볼넷도 많이 얻어나가는게 특징. 통산 타율(.304)에서 볼 수 있듯이 무조건 홈런만 노리는 타입의 타자도 아니었고 필요할 때는 꼭 한 방씩 쳐주는 클러치 능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특히 일본인치고는 비거리가 아주 긴 편으로 일본 리그기록으로 평균 홈런 비거리가 120 미터를 넘을 정도로 일본인 타자중에서는 단연 톱.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와서는 타율 3할 언저리에 OPS 0.8~0.9정도 찍어주는 적당한 중장거리형 타자. 메이저리그 첫해에는 0.8도 안 되는 OPS에 홈런 수가 일본에 있었던 직전 시즌의 1/3로 줄어서 구단을 실망시켰다.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스테이크를 시켰더니 햄버거가 나왔다"라는 발언을 했을 정도. 그래도 클러치 능력은 알아줘서 부상 전까지 매년 세자릿수의 타점을 적립했다. 04시즌에는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서 30홈런을 쳤다. 성적만 보면 메이저리그 시절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 일본 팬들이 걸었던 기대에 비하면 살짝 아쉬운 수준. 하지만 2000년대 양키스의 역사를 기록할 때 반드시 언급될 중심타자임에는 분명했기에 모 네티즌은 다음과 같은 평을 내렸다.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졸라 비싸고 맛있는 수제 햄버거가 나왔다." #

마지막 시즌인 2012 시즌까지 미일통산 507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NPB에서 7위에 해당되는 기록이다.[15] 당연히 일본프로야구 구회의 입회기준인 통산 2000안타도 넘겼다(2012 시즌까지 2643안타). 나이에 따른 커리어 저하를 생각한다고 해도 이 정도면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전설급 성적.

4.2. 수비/주루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시절에 주로 중견수를 봤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이후에는 메이저리그 커리어 동안 좌익수 출장이 가장 많으며, 가끔 중견수를 봤다. 무릎 부상 전에는 어깨는 딱히 강하지는 않지만, 송구동작은 민첩한 준수한 외야수로 평가 받았다. 그래서 간간히 보살 능력도 괜찮았던 외야수였다. 그러나 무릎 부상 이후에는 사실상 수비가 불가능하게 되어 지명타자로 전환하였고, 이것이 양키스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선수 본인은 자기가 수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계속 어필하고 있지만 어려워 보인다.

주루 또한 부상 전에는 100m를 11초에 끊을 정도로 괜찮은 발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 받았지만, 팀에서 의도적으로 도루를 자제시키는 바람에 도루 관련 기록은 썩 좋지 못하다. 무릎 부상 이후에는 사실상 평균 이하의 주루능력으로 감퇴. 여담이지만 추신수이치로에게 홈에서 저격당한 적이 있다.

참고로 일본시절에는 금강불괴로 유명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전 이닝 출장 수위타자'라는 진기록을 달성한 세 명 중 한 명이며[16] 메이저리그 시절에도 부상 전 세 시즌은 전 경기 출장을 했다. 햇수로 따지면 12시즌 전 경기 출장을 한 셈.

5. 이모저모

  • AV 매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요미우리 시절부터 스프링캠프 때 반드시 챙겨가서 봤다고 한다. 마쓰이 히데키가 좋아하는 AV배우는 사카와 란이라고 한다.

  • 하지만 저런 취향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론에 공개하기 꺼려서
    alg-matsui-wife-jpg.jpg
    [JPG 그림 (62.22 KB)]

    이렇게 손수 그림을 그려서 공개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좋아하는 AV 배우 그린거라 착각한다 카더라
  • 짱구는 못말려마쓰이 히데키의 이름을 딴듯한 선수가 나왔다. 자세한 내용은 장미반을 참고
  • 근거없는 한국계 루머가 끊이지 않는 선수 중 하나지만 말 그대로 제대로 된 근거는 하나도 없다. 아버지인 마쓰이 마사오(松井昌雄)는 유리교회(瑠璃教会)의 교주로 일본 팬덤에서는 '교회=기독교니 한국인들이 유독 기독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계일 것이다'라는 소문이 있지만 실제로는 마쓰이 마사오의 유리교회는 정통기독교와는 전혀 뿌리가 다른, 각종 종교의 장점만을 뽑아내서 만든 일본 특유의 신흥종교다. 또한 야끼니꾸(불고기)[17]를 좋아한다든지 아버지 마사오의 昌와 히데키의 喜자가 한국계들이 많이 쓰는 한자라는 주장도 있지만 불고기를 좋아한다고 재일이라는건 억지에 불과하고 昌이나 喜같은 한자는 토종 일본인들의 이름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한자다. 또한 마쓰이 히데키가 일본 국가대표 경력이 없기 때문에 재일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이 간혹 있지만 실제로는 1991년 고2 때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3국 대항 친선 고교야구 대회[18]와 1992년 9월 고3 때 서울에서 열린 한미일 3국 대항 친선 고교야구 대회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력이 있다. 다만 마쓰이는 고시엔에서의 맹활약과는 달리 고교 일본 대표로 출전한 대회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일본에선 마쓰이의 고교 일본 대표 시절은 잘 언급하지 않는다.[19] WBC 1회 대회 기간 중 일본인 기자들 앞에서"뭐, 오늘 쨉[20]의 모임이 있는거야?"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해당 영상[21]을 보면 말그대로 농담 수준이며 그 발언을 듣고 있던 일본인 기자들도 같이 웃으면서 즐기고 있는걸 볼 수 있다.

결정적으로 한국에는 번역 출판이 되어 있지 않지만 마쓰이 히데키의 아버지인 마쓰이 마사오가 쓴 책 '秀さんへ。(히데씨
에게)'에 마쓰이 히데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조상에 대한 족보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 책을 보면 마쓰이 히데키는 재일
가문이 아니라 일본의 엘리트 가문의 후손이라는걸 알 수 있다.

  •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당시 야구원로들, 특히 교진군 OB들에게 크게 까였다. 마쓰이 히데키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계기로 일본의 스타급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많아질 것을 걱정했고, 심지어 장훈 옹 같이 강경한 의견을 내는 분들은 "미국에 진출해 추후 복귀하는 선수들에게는 1년 출장금지 등의 페널티를 줘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마쓰이 히데키가 일본에 복귀하면 여러모로 애매한 것이 '메이저리그 제1의 명문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위대한 일본선수'로 봐야 할 것이냐, 아니면 '교진군을 버리고 자신의 영예를 위해 미국을 선택한 배신자'로 봐야 할 것이냐 하는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특히, 통산 2000안타-500홈런을 넘겼어도 교진군 순혈 아니면 절대 감독으로 쓰지 않는[22]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관습을 봐서는... 거기다 마쓰이는 한신 타이거즈 팬 가족 밑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한신 타이거즈가 영입 제안을 날리고 있다. 다만 은퇴 뒤에는 타나베 츠네오 회장이 직접 차기 감독 후보로 언급하기도 하고 하라 타츠노리 감독과 함께 면담을 하는 등, 구단쪽에서 차기 지도자로 밀어주려고 하는 분위기인듯. 그리고 사실상 차기 감독으로 확정 난 듯 하다.

  • 사진을 보면 얼추 느끼겠지만 대두(2번 항목)다. 한국 한정으로 별명중에 마대갈, 마대갈장군도 있을 정도. 현재 공인된 마쓰이의 머리사이즈는 모자 사이즈로 추정컨대 8사이즈, 약 64cm로 추정된다. 2012년 현재 MLB현역중엔 독보적이고, 그보다 더 큰 선수는 한때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었던 외야수 케빈 멘치뿐이다.[23]

  • 2002년 미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일본에서 열렸을 때, 도쿄돔에서 약을 빨고 신이 된 사나이와 홈런 더비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물론 발렸다.

  • 한일 슈퍼게임에서 한국인 투수에 굉장히 강했던 관광가이드 타자 중 한 명이다. 그리고 당시 한국 최고의 투수였던 주니치 드래곤즈선동렬에게도 15타수 5안타 타율 0.333[24]으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25] 아이러니하게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엔 또 다른 한국의 최고투수라고 할 수 있는 박찬호에게는 약했는데[26] vs 박찬호 통산전적이 10타석 9타수 1안타[27] 1볼넷 3삼진이다. 마쓰이도 박찬호의 공은 도저히 칠 수가 없다라고 말한 적도 있고...

  • 성우 아사노 마스미가 지은 그림책에 실명으로 등장한다. 제목은 "우리집에 마쓰이 히데키?" 내용은 황당함.
hmatsui.jpg
[JPG 그림 (23.48 KB)]


5.1. 연도별 역대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OPS
1993 요미우리 자이언츠 57 203 .223 41 9 0 11 27 27 1 14 .296 .451 .747
1994 130 569 .294 148 23 4 20 66 70 6 57 .368 .475 .843
1995 131 569 .283 141 31 1 22 80 76 9 62 .363 .481 .845
1996 130 569 .314 153 34 1 38 99 97 7 71 .401 .622 1.023
1997 135 596 .298 144 18 0 37 103 93 9 100 .419 .564 .984
1998 135 603 .292 142 24 3 34 100 103 3 104 .421 .563 .984
1999 135 573 .304 143 24 2 42 95 100 0 93 .416 .631 1.047
2000 135 590 .316 150 32 1 42 108 116 5 106 .438 .654 1.092
2001 140 611 .333 160 23 3 36 104 107 3 120 .463 .617 1.081
2002 140 623 .334 167 27 1 50 107 112 3 114 .461 .692 1.153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OPS
2003 뉴욕 양키스 163 695 .287 179 42 1 16 106 82 2 63 .353 .435 .788
2004 162 680 .298 174 34 2 31 108 109 3 88 .390 .522 .912
2005 162 703 .305 193 45 3 23 116 108 2 63 .367 .496 .863
2006 51 201 .302 52 9 0 8 29 31 1 27 .393 .494 .887
2007 143 633 .285 156 28 4 25 103 100 25 73 .367 .488 .855
2008 93 378 .294 99 17 0 9 45 43 0 38 .370 .424 .795
2009 142 526 .274 125 21 1 28 90 62 0 64 .367 .509 .876
2010LA 에인절스 145 554 .274 132 24 1 21 84 55 0 67 .361 .459 .820
2011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41 583 .251 130 28 0 12 71 58 1 56 .321 .375 .696
2012템파베이 레이스 34 103 .147 14 1 0 2 7 7 0 8 .214 .221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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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알다시피 최형우가 2008년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마쓰이를 닮아 "최쓰이"라는 별명이 있다.
  • [2] 1993 시즌에 다시 교진으로 복귀하기로 한 나가시마 시게오는 1992 드래프트 회의를 앞두고 한 이야기가 걸작이었다. 골수 한신팬이었던 마쓰이 히데키와 아버지 마사오의 마음을 모를리 없는 나가시마는 마쓰이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기자가 "세이료 고교의 마쓰이 히데키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나가시마는 "마쓰이 히데키요. 갖고 싶습니다. 제 손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얘기를 들은 마쓰이 부자는 무척 흥분했다고. 그리고 나가시마의 바람대로 당시 요미우리 프런트가 1지명 하려던 토 토모히토 지명을 철회를 이끌어냈다.
  • [3] 이쪽도 고시엔에 단골로 출전하는 고치현의 야구명문 고교다.
  • [4] 경기 전 연습장면을 본 상대팀 감독은 마쓰이를 보고 "저 팀에 프로선수가 하나 있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 [5] 하지만 고교 통산홈런 개수는 정확치 않다고 한다.
  • [6] 또한 일본 시리즈에서 MVP까지 먹게 된다. 이 해에 마쓰이는 정규시즌, 올스타전, 일본 시리즈에서 모두 MVP를 석권한 사상 네 번째 선수가 되었으며, 일본 야구계 최고상인 쇼리키 마쓰타로 상까지 수상한다.
  • [7] 세이버메트릭스의 득점 생산력을 비교하면 마쓰이가 좀 더 좋지만, 리드오프와 홈런타자의 득점 생산력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힘드니까.....
  • [8] 첫 해인 2003년 충분히 신인왕급 성적인 106타점을 기록한 바 있으며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 역시 스즈키 이치로사사키 카즈히로의 예를 들어 일본에서 뛰다 온 선수도 신인왕 자격이 있다 주장했지만 아쉽게 신인왕 투표에서는 2위에 그치고 말았다. 참고로 이 해 신인왕은 캔자스시티의 앙헬 베로아.
  • [9] 입단 첫 해인 2003년에는 16홈런에 그치며 그라운드질라로 불리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
  • [10] 그 해에 외야 공백이 생긴 양키스는 필리스로부터 바비 아브레유를 영입한다.
  • [11] 이 과정에서 자니 데이먼 역시 노쇠화로 좌익수로 옮겼고 중견수는 The 멜키갑께서 차지하신다.
  • [12] 월드시리즈 단일경기 최다 타점 타이기록이다.
  • [13] 여담으로 수여식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참여했는데, 등번호 96이 마킹된 교진 유니폼을 입고 참여해 그가 추진하는 헌법 96조 개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 [14] 참고로 이날 행사를 위해 양키스와 1일 마이너 계약을 했다고 전해진다.
  • [15] NPB 통산홈런 6위는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510홈런, 7위는 장훈 옹, 키누가사 사치오의 504홈런.
  • [16] 나머지 두 명은 오 사다하루이치로
  • [17] 자신이 자주 가던 야끼니꾸 가게의 재일 한국인 사장이 마쓰이를 보고 '박'이라고 부른 적이 있긴 하지만 왜 그렇게 부른 건지는 알 수 없으며 특히 재일 한국인들이 오래전부터 근거없는 한국계 루머를 생산 유포해 왔던 주역인걸 감안하면 그 의도를 의심을 안할 수가 없다. 결정적으로 재일이 마쓰이 보고 박이라고 불렀으므로 마쓰이는 박씨 성을 가진 한국계다.라고 주장하는건 억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18] 이 대회에서 박찬호와 맞대결을 한 적이 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364969
  • [19]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 이후 아라이 타카히로같은 한국계 일본인 선수들이 일본대표로 국제대회에 종종 나오고 있다.
  • [20] JAP은 외국인들이 일본인을 비하하는 말로 쓰인다.
  • [21] 마쓰이의 JAP 발언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1jt2IcTTH8c
  • [22] 코치라면 다른 팀 출신도 받아들인다. 심지어는 선수시절에 요미우리에서 뛰지 않았던 선수라도
  • [23] 케빈 멘치가 레인저스 소속일때 이벤트로 두 선수가 모자를 맞바꿔썼었는데 멘치가 더 컸다고. 멘치는 8 1/4(65cm)를 썼다고 한다. 거기다 멘치는 마쓰이보다 키도 작으니...
  • [24]볼넷도 없었고 5안타 역시 모두 단타였다.
  • [25] 선동렬의 은퇴경기에서 안타를 치기도 했다.
  • [26] 그것도 전성기가 지나 허리부상으로 신음할 때인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 [27] 그 안타가 바로 홈런으로, 박찬호가 양키스에서 뛰던 시절에 내준 홈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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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31 15: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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