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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리족

last modified: 2015-01-27 14:22:26 by Contributors


따이아하(taiaha)라고 불리는 무기를 든 마오리 전사의 모습

Contents

1. Māori
2. 마나와 터부의 사회
3. 전투종족?
4. 백인들과의 공존
5. 뉴질랜드 영어속의 마오리어

1. Māori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평화로운[1] 원주민.
흔히 마오리족으로 알려져 있으나, 마오리어로 māori는 '보통의', '일반적인'이라는 형용사이며 자신들은 스스로를 탕아타 훼누아(Tangata whenua)라고 칭한다. '땅의 사람'이란 뜻. 한국사람들에게는 보통 코와 코를 비비는 인사법인 '홍이'(hongi)와 박력있는 전투춤인 하카(haka)로 잘 알려져있다.[2]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 정착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10~11세기 경이다. 이들이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오리족의 정착에 대해서는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는 신화전설들을 통해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원래 거주하던 곳은 하와이키(hawaiki)라는 섬이었다.[3] 하와이키에는 여러 부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계속되는 전쟁과 부족해진 식량으로 인해 배를 타고 새로운 섬을 찾아 정착하려 하는 부족들이 생겨났다. 어느 날 하와이키의 대족장인 쿠페(Kupe)는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도중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우연히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하지만 쿠페의 아내는 뉴질랜드 남섬 특유의 만년설을 멀리서 보고 "저기는 섬이 아니라 긴 흰구름이에요."라고 말하며 상륙을 말렸다. 하지만 쿠페는 그곳으로 가 보았고, 이렇게해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마오리어로 뉴질랜드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하는데, '긴(roa) 흰구름(aotea)'이라는 아내의 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마오리족이 상륙하기 이전에 뉴질랜드는 무인도였으며, 섬에는 모아같은 대형 육지조류들이 서식했다. 이들은 사람이 얼마나 위협스러운 종족인지 알지 못했으며, 따라서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 않았기 때문에 마오리족의 손쉬운 사냥감이 되고 말았다. 결국 16세기에 이르러서 모두 깡그리 씨가 말랐다.(...) 마오리족은 고구마를 경작하고, 돼지를 키우며 살았는데, 특히 돼지가 이러한 새들의 알을 잘 파먹었기 때문에 더더욱 개체수가 감소할 수 밖에 없었다고...마오리족은 뉴질랜드의 환경에 잘 적응했는데, 이들의 집은 화산섬인 뉴질랜드의 지열을 이용한 난방효과를 얻기 위해 땅을 파서 지붕을 낮게 올렸으며 구덩이를 파서 고구마와 돼지고기등을 묻고 뜨겁게 달군 자갈돌을 그 위에 덮어놓아서 음식을 요리하는 항이(hangi)라는 요리법을 발달시켰다.[4]

2. 마나와 터부의 사회

마오리족의 사회는 매우 엄격한 신분질서로 움직였다. 상위계급에는 족장과 전사들이 있었으며, 여자와 노예는 하위계급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마나(mana)였다.

마오리족은 모든 이들에게 서로 다른 마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마나는 마나가 높은 이로부터 물려받거나 - 즉 족장이나 전사의 아들로 태어나거나 - 공을 세워 부족 전체에 도움을 주거나, 아니면 죽은 적의 살을 먹음으로써 마나를 흡수하는 것이다. 마오리족은 의식적으로 식인을 행했는데, 적의 살을 먹음으로써 그의 마나를 흡수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1643년에 네덜란드의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이 이끄는 탐험대가[5] 뉴질랜드에 상륙했을 때, 마오리족은 이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죽은 선원들의 시체를 먹었다. 이에 질려버린 아벨 타스만은 그대로 철수, 마오리족은 한동안 평화로운 시기를 누렸다고 한다.[6]

마나에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제약이 가해졌는데, 이를 마오리어로 타푸(tapu)라고 부른다. 영어의 터부와 같은 의미이다.[7] 타푸는 조상들의 무덤같은 신성한 장소와 마나가 높은 족장이나 전사들의 집, 티키(tiki)라고 부르는 우상들을 모셔놓은 성소같은 곳의 출입을 제한하는 금기와 특정 음식에 대한 금기, 그리고 행동에 대한 금기로 나타났다. 가령 마나가 높은 이들만이 복잡한 문신을 할 수 있었고, 또 노예와 많은 부인을 소유할 수 있었다. 마오리족의 마을은 파(pā)라고 불리는 요새로, 높은 망루와 목책, 구덩이 등으로 요새화되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타뿌가 존재하는 조상들의 무덤 또한 파 못지않게 요새화되어 있었다. 19세기 중엽 영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마오리전쟁 당시 마오리족의 풍습에 익숙치 않던 영국군은 마오리족의 무덤을 마을로 오인하고 포격을 가하기도 했는데, 자신들의 마나를 훼손당한 것으로 생각한 마오리족의 분노앞에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괜히 전투종족이 아니다.

(ɔ) Ingolfson at English Wikipedia

Later versions were uploaded by Kahuroa at en.wikipedia.

(Original text: en::User:Ingolfson.) from


마오리족의 마을 모습.

먼저 마을에 들어오려면 그 마을의 추장에게 입장하려는 "부족"[8]의 "족장"[9]이 선물을 바친 다음[10], 서로 마오리어로 이야기를 한다. 우리 부족은 이런 역사를 지녔다던가 등의 이야기가 오간다. 옛날에는 이런식으로 부족으로 들어오려는 허락을 받았는데,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방문하는 부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자리에서 죽을때까지 싸우는 배틀이 일어났다고 한다. 흠좀무. 그 때문에 추장 뒤에 마오리 남성들이 있고, 그 뒤에 여성이 있다. 혹 싸움이 붙으면 남성이 대를 이을 수 있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들어오려는 부족장의 말이 끝나면, 부족의 사람들이 "후이에 타이에 타이키에"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족장이 말한) 이 말에 동의한다."라는 뜻이다.

참고로 말하는데, 들어가려는 마을 부족 추장이 아무리 환영하고 싶어해도 현대화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전통을 간직하고자 매우 진지하고 마치 화난 듯하게 말하는데, 진짜 화난게 아니다. 실제 일어난 일로, 마을의 8살쯤 되는 마오리 아이가 개념이 없어서 (..) 부족장이 말하는 도중에 앞에 나타나서 방해를 하자, 부족장이 잠깐 말을 멈추고 웃으며 아이를 방에 들여보냈다 (..). 옛날과 다르다.

적절히 협상이 끝나면 두 부족 사이는 적개심을 풀고 바로 위에 말한 얼굴 부비는 인사인 홍이를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 땅에 뜨거운 돌덩이와 음식을 넣어서 만드는 항이 (hangi)라는 전통 저녁을 만들어 방문하는 부족과 같이 식사를 한다.


마오리족 마을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마을회관(화레 누낭아 - whare rūnanga)의 모습[11]

보통 이곳 안에는 돌아가신 조상님 사진 혹은 그림이 달려있다. 조상님 나이와 마찬가지로 건물도 무지 오래된게 대부분[12]. 또한, 마오리족이 세상을 떠났을때, 그 몸을 이곳에서 2~3일 정도 놔둔다고 한다. 그 동안은 항상 사람이 지키고 있고. 뭔가 으시시하지만 조상님들이 보살펴주는 곳이라 한다.

참고로 시체를 자신의 부족의 화레에 모시는게 매우 큰 의미이자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심지어 어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 부모와 남편이 시체를 서로 모시겠다고 맞짱을 뜬 경우가 있다. (..) 이런식으로 싸우는 것 또한 그 사람에게 존경심과 중요성을 표현하는 일로서, 그다지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세상을 뜨면 먼 친척과 아는 사람도 전부 와서 하루쯤 지내고 가는데[13] , 마오리 왕족이 죽었을때 2만 5천명이 왔다 갔다고 (..)

이 마을 회관의 또 다른 쓰임새가 있는데, 바로 사랑방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손님이 오면 여기에 담요나 매트리스 등을 깔고 잔다는 건데, 마오리 조상님 사진이 달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3. 전투종족?


뉴질랜드 럭비팀과 호주 럭비팀이 각각 마오리 하카와 어보리진 전투함성으로 서로 도발하는 장면

마오리족은 평상시에는 tangata whenua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구마 농사를 짓고, 돼지를 기르며 살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이 붙으면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싸웠다. 보통 싸움이 끝나면 패배한 부족은 모두 노예가 되고 이들을 이끄는 상위계급 전사나 족장들은 마나를 흡수할 요량으로 먹혔기 때문에 부족간의 전쟁이 끝나면, 이기는 쪽은 한번에 두배씩 커졌다. 하지만 이렇게 세를 불린 부족이 생기면 주변의 다른 부족들에게도 위협이 되기 때문에 결국 전쟁이 반복되고 반복되는 구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섬인 뉴질랜드에서 이런식으로 싸웠다간 손해도 손해지만, 언젠간 마오리족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결국 하카(haka)라는 독특한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14]

전투를 벌이기 전에 두 부족은 모든 전사들을 이끌고 평지에 집결해 일정한 대오를 갖추었다. 그리고 서로를 모욕하면서 부족 전체가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었는데, 하카의 동작은 손으로 무릎을 치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빼밀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동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15] 양쪽 모두의 하카가 끝나고, 한쪽 부족의 추장이 자신들의 세가 밀린다고 싶으면 그들은 말없이 물러났으며 전쟁은 그걸로 끝났다. 승리한 부족은 패배한 부족의 마나를 흡수했다고 여겼으며, 패배한 부족도 자신들의 소중한 인력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이익인 셈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하카를 끝나고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때는 알짤없이 공격에 들어갔다. 마오리족은 전통적으로 파투(patu)라는 초록빛 옥으로 만든 몽둥이와 타이아하(taiaha)라는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들고 싸웠지만, 19세기에 들면 유럽상인들을 통해 머스킷총을 대량으로 들어옴에 따라 전투는 더더욱 처절한 양상을 띄었다.(이걸 일명 머스킷전쟁이라고 부름) 1840년 마오리 부족들간의 갈등을 중재한 영국과 마오리 부족장들 사이에서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 이후 부족들의 갈등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때까지 마오리족은 이미 서로 2만명 이상을 살상한 상태였다. 유럽인들이 진출하기 직전의 인구추정이 10만명정도인데 이 머스킷전쟁이후에는 전쟁과 유럽인들이 옮겨온 전염병으로 5만이하로 줄어들은것으로 추정한다. 머스킷총을 갖추지 못한 부족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마오리 부족들도 이 시기 상당히 정리되었다.

이들의 대범함은 해외원정으로까지 이어졌는데, 1850년대 일부 부족들이 영국 상선을 고용해서 평화로운 원주민과 풍부한 사냥감이 있다는 텀 제도[16]로 쳐들어가서 그곳 원주민들을 싹 때려잡고 정ㅋ벅ㅋ한 사건도 있었다(채텀제도의 원주민들은 마오리족에게 잡아먹혀서 멸족당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균,쇠》에 나오는 이야기로, 마오리족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원정이라고...[17]

양차대전, 특히 제1차 세계대전참호전에서 마오리족의 용맹은 유명했으며 그곳에서도 하카를 추는 대범함으로 용맹을 떨쳤다(2차 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선 주로 노획한 독일군 무기를 애용했다고 한다). 당시 이들을 상대해야 했던 추축군 군인들은 "이건 뭐, 총을 갈겨도 맞고 쓰러져도 신음소리도 안 내고, 또 다른 놈들도 뒤도 안 돌아보고 개돌해서 아군 진지를 케첩범벅으로 만들더라..."라고 하며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대인배 원주민 부족인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마오리족 역시 자신들의 의지로 대한민국을 지키려고 파병을 자청했다. "창과 화살을들고 갔기 때문에 미군에서 총을 얻어다가 참전했다"라는 루머가 있으나 2차 세계대전당시 총과 폭탄등으로 싸운 마오리족이 활과 창을 들고 6.25에 참전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마오리족은 전투부대가 아닌 후방 지원대대를 투입했다. 이 때 참전용사들에 의해 마오리족 민요인 Pokarekare ana가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이 곡은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이란 가사로 시작되는 연가로 번안되어 불리었다.

4. 백인들과의 공존

1840년 와이탕이 조약 당시 마오리족은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았으며 (그런데 영문과 마오리어 조약의 내용이 달라서 논란이 많다.), 이들에게는 영국에 충성할 것을 조건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토에 대한 영유권과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영역을 확장해가는 백인 이주민들과 마오리족과의 충돌이 이어지면서 결국 두 차례에 걸친 전쟁이 터졌다.[18]

뉴질랜드 정부는 자국의 공용어로 마오리어와 영어를 모두 인정했으며, 심지어 국가도 마오리어와 영어 순서로 부른다. 정부 홈페이지도 마오리어와 영어 모두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6, 70년대 마오리족은 대부분 도시로 이주함으로써 대다수가 고유문화로부터 이탈해 있었으며, 80년대 들어 뉴질랜드 정부는 마오리족을 대상으로 마오리어 보급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한때 사멸위기에 처한 마오리어는 다시금 화자수가 늘기 시작한 추세이다.

현재는 뉴질랜드 인구의 15%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위와 같이 그나마 백인에게 꿀리지 않고 저항한 역사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보리진이나 북미 원주민들에 비하면 사회적인 대접은 나은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문화를 잃어가며 가난 속에서 고통받는 마오리족도 적지 않은 편이다. 뉴질랜드 인구의 15%만이 마오리족이지만 가난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범죄자의 절반을 차지하며, 이러다 보니 극우들은 마오리족을 싫어한다. 땅 뺏고 눌러 산게 누군데?


1994년에 개봉된 뉴질랜드 영화 'Once were warriors'(한국 개봉명은 '전사의 후예')는 도시에서 빈민층으로 살아가는 마오리족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니 마오리족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한번 보자.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 한 명이 스타워즈장고 펫으로 유명한 테무에라 모리슨

5. 뉴질랜드 영어속의 마오리어

마오리어(Te reo māori)는 굉장히 단순한 발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어와 비슷한 음절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용되는 글자도 a, e, h, i, k, m, n, o, p, r, t, u, w, ng, wh가 전부다. 여기서 모음은 장모음과 단모음으로 구분되며, 자음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외래어를 번역할때 일본어 만큼이나 괴악스러운 발음이 된다. 가령 축구(football)은 마오리어로 whutoporo(후토포로), 경찰(policeman)은 pirihimana(피리히마나)가 된다.(...)[19] 단순한 발음을 커버하기 위해 마오리어는 대량의 전치사와 후치사를 사용하고, 또 접두사와 접미사도 모두 써서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문법구조를 갖고 있는데, 다른 언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요소들 때문에 언어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구조언어학에서는 아예 합어라는 새로운 언어 형식으로 분류하는데, 폴리네시아 계열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계열, 아이누 쪽에서 보이는 형식이다. Taumata가 대표적인 포합어의 예시로, 단어 하나가 문장 하나가 되는 성질을 여실없이 보여주고 있다. 일본어보다 심한 것 같은데?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Kei te tuhituhi whārangi ipurangi o te engahawiki au.[20]
지금 (그) 쓰고있다 페이지 인터넷 (~의)(그)엔하위키 나는.

= 나는 지금 엔하위키 페이지를 쓰고 있다.

뉴질랜드식 영어에는 상당히 많은 마오리어 어휘가 존재하며, 그 중 몇가지는 일반적으로 쓰인다. 아마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사용하면 정말로 반가워할지도 모른다.

Haere mai 환영합니다. (하에레 마이)
Kia ora! 안녕! (키아 오라)

Ka pai! 고맙습니다! (카 파이!) - 붙여쓰면 '정말 좋은', '맛있는'등의 뜻으로 쓰인다. It's kapai! (좋아요!), What a kapai kai! (이 음식 정말 맛있네요!)처럼...

tama 아들, 혹은 남자어린이 (타마)
tamahine 딸, 혹은 여자어린이 (타마히네) - 애칭으로 쓰인다.

whare 오두막, 별장 (화레) - 본래 '집'이란 뜻이지만 영어에선 hut의 대용으로 쓰는듯.

pākehā 백인 (파케하) - 오늘날에는 주로 뉴질랜드 출신이 아닌 백인들을 지칭할때 쓴다.

Aroha 사랑합니다. (아로하)[21]

kumara 고구마 (쿠마라, 코무라)

아마도 최고의 전투종족중 하나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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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과거 도덕 교과서에서 아래에 나오는 마오리족 특유의 코 비비는 인사 사진을 넣으면서 아주 평화로운 이미지로 묘사한 바 있다. 속지마
  • [2] 뉴질랜드의 럭비팀인 All blacks는 경기 전마다 하카를 추는걸로 유명하다.
  • [3] 이름 그대로, 하와이 제도로 추정. 아래에 나오듯 언어학적인 증거도 있다.
  • [4] 지열난방의 효율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겨울철이면 눈까지 내리는 남섬에서 마오리족은 거의 옷을 입지 않고 살 수 있었다. ㄷㄷㄷ
  • [5] 이 탐험대는 뉴질랜드 상륙후에 호주로 향한다. 안타깝게도 시드니 근처에서 배를 돌리는 바람에 호주의 새로운 신천지를 발견하지 못한 셈. 남방대륙 탐사와 식민지 개척의 주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인도 회사에서 비난을 받았고 말년이 비참해졌다. 타즈메니아 섬이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땄다.
  • [6] 번개를 쏘는 우상까지 들고 있는 낯선 전사들을 본 마오리족은 분명 이들의 마나가 자신들보다 높다고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 [7] 사실 taboo는 같은 폴리네시아계 원주민인 통가족의 언어 'tabu'에서 기원했다.
  • [8] 여행객이라면 여행 같이 하는 분들
  • [9] 가이드라든가... 다만 마오리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 [10] 옛날엔 동물 등이였겠지만 요즘은 그냥 지폐 (..)
  • [11] 2011년 뉴질랜드 지진사태 이후 이 화레누낭아를 중심으로 지진피해자들의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마오리족들이 지진피해복구과 구호활동에 앞장서서 이목을 끌고 있다. 보통 때의 쓰임새와 비슷하다. 관련자료.
  • [12] 50년대 만들어진것도 수두룩하다.
  • [13] 가까운 친척은 몇일을 화레에서 시체와 같이 잔다고 한다(!) 물론 붙어서 자는건 아니고 그냥 같은 방에서...
  • [14] 비단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폴리네시아 문화권 및 고립된 특징이 있는 섬나라 전반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단적인 예가 일본의 와(和)사상과 영국의 블랙 유머.
  • [15] 마오리족 특유의 혀를 내미는 동작은 사실 너를 잡아먹어버리겠다!라는 뜻의 위협이다.(!)
  • [16]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으로 부터 동쪽으로 800Km 떨어진 제도로 현재는 뉴질랜드의 자치령이다.
  • [17] 총,균,쇠 권두에 여러민족들의 사진이 몇 장 실려있는데 여기에 그 채텀 원주민의 최후의 후예라는 어떤 할머니의 사진이 있다.
  • [18] 전쟁 당시 마오리족은 이미 머스킷과 장검, 대포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때문에 식민정부는 다른 식민지들과 달리 뉴질랜드를 요새화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전쟁전에도 총독 관저를 마오리들이 태워버려 초대 총독인 윌리엄 홉슨은 군함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 [19] book은 마오리어로 pukapuka라고 하는데, 이미 존재하는 마오리어 단어와 혼동되지 않게 중복한것. 이런 단어도 상당히 많다.
  • [20] 발음은 "케이 떼 투히투히 화랑이 이뿌랑이 오 떼 에응아하위키 아우"
  • [21] 아마 하와이 언어의 aloha를 떠올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 '알로하'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그 말인 즉, 사랑합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더 있다는 것. 하와이어도 마오리어와 같은 폴리네시아계 언어로, 서로 상당기간 교류없이 떨어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비슷하다. 가령 마오리어로 하늘은 te rangi(떼 랑이)인데, 하와이어로는 ka lani(카 라니)가 된다. 그리고 하와이인들은 자신들을 maoli(마올리)라고 칭한다.(!) 마오리족의 고향이 하와이 제도일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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