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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무시나

last modified: 2015-03-28 12:31:08 by Contributors

이름 Michael Cole Mussina
생년월일 1968년 12월 8일
국적 미국
출신지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1990년 드래프트 1라운드 20순위
볼티모어 오리올스 지명
소속팀 볼티모어 오리올스(1991~2000)
뉴욕 양키스(2001~2008)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기타


1. 소개

전 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 뉴욕 양키스의 투수였으며 희대의 엄친아+콩라인 투수이다.

별명은 성에서 딴 대로 Moose. 한국식으로 말하면 말코손바닥사슴이지만 학자들이 아닌 이상은 다들 무스라고 부른다.

2. 선수 시절

일찍이 고등학교 때부터 야구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고등학교 때 기록은 24승 4패에 평균 자책점은 0.87이였다. 또한 축구와 농구도 수준급이었다고 한다.[1]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었으나 입단을 대학 졸업 후로 보류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한다[2]. 대학교 진학 후에도 그 실력은 상승세를 보였으며 졸업 후 바로 오리올스에 입단하였다. 오리올스에서도 애지중지하던 투수로, 마이너에서조차 불펜 투수로 등판한 적이 없고 전부 선발 투수로 출전했다.

1991년 빅 리그 데뷔, 1992년 본격적으로 풀 타임을 뛰며 18승 5패에 2점대 중반의 자책점을 기록하며(당시 경기영상) 돌풍을 일으켰으나 사이 영 상에선 4등을 하며 고배를 마셨다.[3]

하지만 이후에도 15승을 넘나드는 활약을 보이며 오리올스의 에이스 역할[4]을 했으며 2001년 FA로 6년 8천 8백 5십만 달러로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다. 이후에도 양키스의 선발진의 한 축을 맡으며 활약했으며 08년 20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현역에서 은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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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1.16 MB)]

결정구였던 커브

전성기 시절 무시나는 최고 90마일 중반대에 육박하는 패스트볼클커브, 자신 고유의 체인지업 등을 던지는 파워 피쳐였으며,[5] 공식적으로 던질 수 있는 구질은 너클 커브, 포심, 투심,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이 있다. 나이를 먹으며 평균 구속이 88~89마일 정도로 떨어지면서 상황에 따라 완급조절이나 팔 각도 조절같은 지능적인 투구로 상대 타자를 현혹하는 타입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마쳤다. 릴리즈 후 살짝 앞으로 뛰는 특유의 투구폼이 인상적.

2007시즌에는 노쇠화로 인한 직구 구속 하락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무시나는 마이너를 포함해서 전 경기를 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2007년 시즌 중반에 성적 부진으로 인해 불펜 계투로 잠깐 돌린 적이 있고, 딱 한 경기 불펜 투수로 등판했는데, 그게 무시나가 프로가 되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펜 투수로 등판한 경기가 되었다. 부진의 이유는 직구 구속이 너무 떨어져서 변화구랑 구속 차이가 크게 안 난다는 게 핵심적 문제였는데... 그는 이 극복하기 힘든 문제를 변화구 구속을 낮춘다는 획기적(...)방법으로 타개하는 데 성공했다.

2008년 시즌 초반에도 부진이 이어지자 공동 구단주 자격으로 있던 행크 스타인브레너가 '무시나는 제이미 모이어처럼 던질 필요가 있다' 라며 듣기에 따라서 빅 리그 짬밥이 20년 가까이 되는 베테랑 투수에게 상당히 치욕적인 말을 한 바가 있는데 이에 '나에겐 왼손잡이용 글러브가 없다'고 간단히 응수했다. 왕첸밍을 더불어 그와 앤디 페티트를 제외한 모든 선발 로테이션 멤버가 부상으로 들락날락하는 최악의 팀 상황에서도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며 분투, 선수 생활 최초이자 최후로 20승을 달성하고 몇 시즌만 더 던지면 통산 300승이 유력한 상황에서 팀의 재계약 제안을 뿌리치며[6][7] 깔끔하게 은퇴해버리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무시나는 통산 270승/2,813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실제로 3년 정도 더 뛰었다면 300승 클럽과 3,000K 클럽에 동시에 가입한 메이저리그 역대 11번째, 실질적으로는 10번째[8] 투수가 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 아무리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무시나가 3년 정도 더 뛰면서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하고 은퇴했더라면 명전 입성은 당연한 것이고 첫 턴 입성도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9]

그 명성과 실력에 비해, 유독 상복이 없었던 투수. 거기다가 모든 투수들의 목표이자 꿈인 퍼펙트게임을 달성 직전에 세 번이나 놓친, 불운한 투수.[10] 그리고 이상하게 그 화려하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양키스 우승 신화가 공교롭게도 무시나가 영입된 2001년부터 끊겨버린지라 양키스 팬들이 간혹 '무시나가 오고 나서부터 우승 못했다. 재수없다.' 하는 식으로 대차게 까는 경우도 있었다(...). 지못미. 그리고 그가 은퇴한 직후인 2009 시즌. 양키스는 27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Mr. Almost. 그나마 위안이라면 골드 글러브는 7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수비 능력이 민첩하고 빈틈이 없다.

오프시즌에 고향 고교 팀에서 풋볼, 농구 코치를 할 정도로 성품이 온화하고 성실한 선수임에도 승부 근성이 강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2006년 디트로이트 전에서 6-1로 완투승을 앞두고 있던 9회 2사에[11] 주자를 다시 내보내자 조 토레 감독이 교체를 위해 마운드로 올라오려 하자 'No, You stay there'라 얘기했다. 다만 이 한 사건으로 은근히 성질 있는 선수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미 감독이 같은 이닝에 올라온 적이 있었기에 라인을 밟는 즉시 무조건 교체되는 상황에서의 급한 제스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예를 들어 한국에서 김성근 감독이 코치가 먼저 마운드에 올라간 걸 깜빡 잊고 나온 바람에 김광현이 강제 리타이어된 상황에서 김광현이 '거기 그냥 있으세요'라고 소리 질렀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당시의 영상.

3. 기타

사족으로 슬하에 아들이 둘 있으며 트랙터와[12] 클래식 카 덕후이다.

등장 음악으로는 스콜피언스의 The Zoo를 사용했다.

은퇴 후에 YES 네트워크의 양키스 경기 중계에 출연하거나 고향 고교 팀 선수들에게 농구를 가르치는 모습이 알려진 바 있다.

2012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박경림과 직찍을 한 적이 있다(...) 박경림 항목 참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첫해 20.3%로 무난한 출발을 했다. 몇 년간은 쟁쟁한 선수들이 올라오기 때문에 이 정도 득표율에서 장기 투숙(?)할 듯. 다음해인 2015년도에도 24.6%의 득표율을 보였다. 승산은 있어 보이지만 자격유지 한도가 10년으로 단축되었기 때문에 쉽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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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무시나는 마이너리그 시절 부족한 월급 때문에 중고등학교 농구 코치로도 활동한 바가 있다.
  • [2] 체육 전공 쪽으로 간 것이 아니다 경제학 쪽이다. 장학금도 밥 먹듯이 탔다. 더욱 무서운 것은 3년반 만에 조기 졸업. 아니, 그 실력으로 애초부터 야구는 왜 한 거지...가장 경제적인 길을 택한 거지
  • [3] 이 해 1위는 데니스 에커슬리.
  • [4] 이 시기 볼티모어는 지독하게 문제가 많은 팀이었다. 그 극강의 타고투저 시즌에도 불구하고 타선은 약했으며 불펜도 부실했다. 단적인 예가 2000년. 팀타율 리그 11위, 팀장타율 11위, 팀홈런 10위였고, 더 심각한 것은 구원 투수진으로 팀 전체 세이브 33개로 15위. 결국 마이크 무시나의 팀동료였던 시드니 폰손이 방어율 4.82로 222이닝을 던져서 리그 이닝 5위에 오르는 처참한 상황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 무시나는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제외하고 지구인 중에서는 아메리칸 리그 투수 중 최고의 활약을 했다. 이닝 237 2/3(1위). 방어율 3.79(3위) Whip 1.19, 탈삼진 210개(3위). 하지만 그의 성적은 11승 15패.
  • [5] 이 체인지업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양키스 포수 호르헤 포사다가 무시나가 체인지업을 던질 때마다 홈런을 때렸다. 무시나가 어이없어하며 포사다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보자, 포사다는 던질 때 잡는 방법이 보인다고 귀띔해줬다. 이 말을 듣고 개량한 것이 무시나의 체인지업. 결국 포사다는 무시나의 너클 커브를 없애고(포사다의 수비 능력을 생각해 보라) 대신 체인지업을 만들어준 셈이다.
  • [6] 물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양키스가 FA 사냥에 나서기 위해 다년 계약을 제의하지 않았고 300승 도전을 위해 3년 연장 계약이 아니면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 [7] 통산 270승으로 은퇴했기 때문에 2~3년 정도 더 뛰었다면, 양키스 전력에 비춰볼 때, 본인만 삽질하지 않으면 300승은 무난했다.
  • [8] 2014년 기준으로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한 투수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월터 존슨, 스티브 칼튼, 톰 시버, 돈 서튼, 게일로드 페리, 필 니크로, 놀란 라이언,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약켓맨
  • [9] 300승 & 3,000K는 약쟁이를 넣고 계산해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10명만이 존재하는 대기록이다. 물론 300승 & 3,000K 클럽 멤버들 중 게일로드 페리가 3수, 돈 서튼필 니크로가 5수만에 입성하긴 했지만 이들은 부정투구 논란과 너클볼러라는 트집(...) 같은 기록 외적 마이너스 요인이 있었다. 실제로 별다른 기록 외적 마이너스 요인이 없었던 스티브 칼튼, 톰 시버, 놀란 라이언,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은 전부 95% 이상의 득표율로 첫 턴에 입성했다. 월터 존슨이 83.63%의 다소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긴 했지만, 그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최초의 5인이므로 그의 83.63%가 다른 이들의 득표율보다 결코 격이 낮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야구 외적으로 딱히 마이너스 요인이 없는 무시나 또한 300승 & 3,000K를 달성하고 은퇴했다면 지금처럼 명전을 가냐 마냐 아웅다웅하지 않고 여유있게 첫 턴 입성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충분했을 것이다. 부질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 [10] 1997년 9회 1사후 안타, 1998년 8회 2사 후 안타, 2001년 9회 2사 후 안타(심지어 펜웨이 파크에서였다!)... 2004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7회 1사 후 안타를 포함하면 4번.
  • [11] 그나마 저 1점도 A로드의 실책 오오 역시 Mr. Almost 오오
  • [12] 농기계 트랙터가 아닌 큰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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