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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잉주

중화민국 역대 총통
10대, 11대 12대, 13대 (현직)
천수이볜 마잉주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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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英九(마영구) / Ma Ying-jeou [1]

영구없다
이쮸


장풍 쏘시는 총통 각하


1970년대의 해군 장교 복무시절.[2]

중화민국(대만)의 정치인. 현직 총통.
1950년 7월 13일 영국홍콩~.

Contents

1. 개요
2. 총통 재임기간
2.1. 2008년~2012년 제 12대 총통 재임
2.2. 2012년~현재 제 13대 총통 재임
3. 기타

1. 개요

1950년 7월 13일 홍콩에서 태어났다.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국립대만대학 법학과(대한민국서울대학교 법대에 해당), 뉴욕대 법학석사, 하버드대 법학박사이다. 대학을 마치고 소위로 중화민국 해군으로 입대해 병참기지에서 군복무를 했으며 소령으로 전역했다고 한다. 80년대에 정치에 입문하기 시작해서 총통부 제1부국장으로 있었고, 중국 국민당 중앙위원회 부비서로 있었으며 무부 부장으로도 있었다. 영어를 매우 잘해서 장징궈의 통역 비서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생김새도 잘생긴 편.

1986년 10월 <워싱턴 포스트>의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과 인터뷰하는 장징궈 당시 총통. 가운데 통역하는 이가 마잉주다. 당시 장징궈는 "조만간 계엄령 해제를 포함하여 헌정질서 복귀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고, 마잉주는 이때의 심정을 "전율적이었다"고 회고했다.[3]


2011년 경선 홍보영상. 객가어대만어로 되어있다. 노래는 환취가(歡聚歌)라는 노래로 1995년에 나온 대중가요이며, 마잉주는 타이베이 시장으로 출마하던 1998년부터 이 노래를 사용한 광고를 하나씩 만들고 있다. 참고로 1998년부터 2008년 까지의 원주민 대상 광고는 계속 같았다.(...) 대만 정치인들은 꼭 유세할때만 대만어 객가어 드립치지...

2. 총통 재임기간

중화민국의 현직 총통. 특이하게 출생지가 홍콩이다. 부모 모두 국민당원으로 후난 성 출신이다. 부모가 고향을 떠나 타이베이로 옮기는 과정에서 임시로 머물렀던 홍콩에서 태어났던 것. 아버지는 2차대전 직후, 국부천대 전에 근무지가 잠시 대만였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누나 중 하나는 대만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국적은 당연히 태어났을 때부터 중화민국([4]이다. 아기 때인 1952년에 가족과 함께 타이베이에 와서 성장하였다. 한족의 한 갈래인 하카(객가인) 출신이다. 후난 성에 외가 쪽 친적이 아직도 살고 있다.

당적은 중국 국민당. 1994년 당선되어 현직이던 천수이볜1998년 선거에서 이기고 타이베이 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천수이볜은 총통으로 2002년에 한번 더 재선되어 2006년까지 타이베이 시장직에 있었다. 천수이볜삽질에 힘입어 2008년 중화민국 총통 선거에서 전직 가오슝 시장[5]민주진보당 창팅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7,658,724 대 5,445,239로 당선.

2.1. 2008년~2012년 제 12대 총통 재임

선거 4개월 전에 대한민국에서 그분이 당선되자 마잉주는 그분의 747정책을 벤치마킹하여 633정책[6]을 내세워서 인기를 얻었으며 이에 질세라 창팅가오슝시장 시절 환경오염이 극심하던 아이허(愛河)를 환경친화적인 관광명소로 만든 것을 주지시키며 선거운동에 그분의 청계천을 적극 활용하며 서로 자신이 바로 대만의 그분이라며 선거운동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2008년 촛불시위등 정부정책의 반작용과 지지율 폭락이 일어나고 대만에서도 마잉주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자 갑자기 그분 정부와의 선긋기에 들어갔으며 참고자료, 2008년 9월에 마잉주정부는 633정책을 포기했다(;;;) 참고자료

총통에 당선되고 나서 중화대륙과의 양안관계를 개선시키고 있다. 중국과의 양안경제협력기조협의(ECFA)를 발효시키고, 중국과의 평화협정도 검토하는 등 여러가지 양안 개선책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서 타이완 경제가 중국 경제에 의존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 이런 상황을 해소해 보고자 일본자유무역협정을 시도하고 TPP가입도 시도하려 하고 있지만.. 대륙이 가만 있을까

하지만 중화민국의 정통성에 대해서는 단호하다.[7] 한창 대만 독립론 때문에 양안간 긴장이 심했던 2006년 국민당 주석이었던 그는 "하나의 중국이란 바로 중화민국이다. (대륙 정부는) 중화민국이 필요한가, 아니면 대만 공화국이 필요한가?"라는 발언을 하면서, 그나마 하나의 중국 정책을 놓고 국민당과 협력을 강화하려던 중국 정부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2.2. 2012년~현재 제 13대 총통 재임

이래저래 실정도 있고 해서 2012년 1월 14일에 실시된 총통 선거에서 민주진보당 차이잉원 후보와 친민당 쑹추위 후보가 급속도로 쫓아오면서 재선여부가 불투명해 진 상황이었으나 선거 막판 양안관계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상당한 표차로 재선에 성공하고. 동시에 의석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입법의원 선거에서도 과반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누가 이기든 미래는 불안하다[8]

총통선거 이후에는 대한민국에 별로 보도되지 않다가[9], 일본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며 날뛰자 느닷없이 그럼 댜오위다오 문제도 같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는게 어때?라고 일본에 역습을 날려버렸다! [10]

2014년 들어서 대만 검찰의 국회 도청 파문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고,[11] 3월에는 야당인 민진당에서 탄핵을 거론하는 등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5월에 정작 민진당 천어우포(陳歐珀) 입법위원이 이를 기회랍시고 마잉주 상중에[12] 깽판을 치는 바람에(...) 오히려 민진당이 역풍을 맞아버렸다. 기회를 줬는데 왜 쓰지를 못해

2014년 6월 무렵부터는 미국을 비롯해서 엘살바도르 등의 중남미 국가를 순방하면서 외교에 집중하는 중.

한편으로는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서로 정상회담을 할 의향이 있어보이지만, 실제 이행될 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하여 마잉주와 시진핑이 각각 국민당 주석, 공산당 총서기 자격으로 회담할 것을 제안했지만, 마잉주는 중화민국 총통 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간의 회담을 원하고 있기 때문. 앞서 언급했다시피 야당 주석 시절에도 중화민국이 독립된 주권 국가임을 강조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중국쪽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2014년 11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참패한 직후, 국민당 주석에서 물러났다. 후임 주석에는 신베이(新北) 시장인 주리룬이 당선되었다. 이로써 국민당 주석 자격으로라도 시진핑 중국 주석과 양안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13]

홍콩에서 센트럴 점령 시위가 발생하자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 이에 있어서는 정적 민진당과도 의견을 같이하는듯.


2015년 2.28 유혈사태 추모식에 참석하여 커원저(柯文哲)[14] 타이베이 시장에게 악수를 청했는데, 대놓고 거절받는 굴욕을 당했다. 커 시장도 자신의 조부가 2.28 사건 당시 체포당해 국민당군에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3년만에 별세하여 국민당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했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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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만화 5도쟁패에서는 마앵구모에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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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어병음대로라면 Mǎ Yīngjiǔ겠지만 본인은 영어로 이름을 위와 같이 쓰지 병음대로 쓰지 않는다.
  • [2] 사진 3번에서 마잉주와 악수하는 장성은 하오보춘(郝柏村)이란 인물로 중일전쟁 시절인 1939년부터 종군하여 이후 국공내전, 진먼다오 포격전(1958년) 등에 참전했으며, 이후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에는 중화민국군의 참모총장, 국방부장을 역임한 데 이어서 행정원장(한국의 국무총리격), 집권 국민당의 부주석을 차례로 역임하는 등 대만의 군부와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5년 현재도 96세로 생존해 있는 중화민국군 역사의 산 증인. 한국으로 치자면 백선엽 장군과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 [3] 이듬해 7월에 실제로 대만의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국공내전 직후인 1949년 이후 무려 38년만의 일이었다.
  • [4] 현재 그의 자매는 모두 중화민국과 미국 이중국적자다. 자신만 유일하게 미국 국적이 없다.
  • [5] 공교롭게도 셰창팅도 1998년2002년에 가오슝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 [6] 연 경제성장률 6%,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실업률 3%이하 달성
  • [7] 사실 천수이볜과 마잉주는 이런 면에서 대조적이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통치는 못하고 있다. 천수이볜은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없고 오로지 대만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며, 반대로 마잉주는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하다. 하지만 대만 독립 찬성파와 반대파의 눈치를 보느라 서로 자신의 정체성을 통치 중 대놓고 언급은 못하는 것. 천수이볜은 집권기에 독립을 선언하거나 타이완 섬과 관련 없는 중화민국의 공휴일을 평일로 바꿔놓지도 못했다. 마잉주 역시 지금은 '중국'이 아닌 '대만'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 [8] 더 웃기는 건 부총통 후보 이름도 우둔(던)이(오돈의)다. 우둔하네? 원래 현직인 샤오완창 부총통이었으나 후보등록 직전 부총통 후보를 우던이 행정원장(총리)으로 교체했다.
  • [9] 다만 지지율이 10~20%대로 떨어져 있다는 소식은 나오긴 했다(...).
  • [10] 물론 진짜 제소하겠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럴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이었지만. 애시당초 대만은 국제적으로 그렇게 인정받는 축이 못되니...하지만 대륙이 나서면 어떻게 될까?
  • [11] 특히 마잉주의 친중(親中) 정책에 반발하는 대학생들이 입법원을 점거하는 일도 벌어졌다.
  • [12] 2014년 초반 마잉주의 모친이 세상을 떴다.
  • [13] 2015년 2월에는 대륙위원회(한국의 통일부에 해당) 전임 부주임위원이 "2014년에 마잉주 총통과 시진핑이 진먼다오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거의 합의할 뻔 했다"고 주장했는데, 대만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 [14] 유명 외과의사 출신으로 지난해 11월의 전국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을 포함한 야권의 단일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롄성원(국민당 명예주석 롄잔의 아들)을 이기고 당선된 인물이다. 개혁 성향이며, 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박원순 서울특별시장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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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1 13: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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