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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퀴스 그리솜

last modified: 2014-11-07 10:08:22 by Contributors


오오 흑형 오오
천조국범호 어디서 그딴 놈들이랑 비교를 해

Marquis Grissom (1967년~)

90년대 최고의 흐긴 꽃미남 메쟈리가 전직 메이저리거로, 지금은 워싱턴 내셔널스의 코치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단정한 외모(?)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포지션은 외야수 중에서도 주로 중견수.

국내에는 박찬호와 함께 다저스에 소속되어 있던 2001년에 많이 알려졌다. 그 당시 많은 팬들은 그의 외모와 가끔 나오는 뜬금포, 그리고 부진한 성적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2001년은 그의 커리어에서 제일 부진한 해였다. 전성기에는 빠른 발로 도루왕을 두 번이나 차지했으며 타격도 상당히 정교했다. 13년간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도 꾸준히 좋았다.

애틀랜타 출신으로, 1988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 리그에 발을 들였다.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뛰기 시작한 때는 1991년.

1993년에 .298의 타율과 19홈런 53도루, 준수한 중견수 수비로, 처음으로 올스타 경기에 나갔으며, 골드글러브를 타기도 했다. 특히 199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짧은 리즈시절에 톱타자를 맡아 공격의 첨병으로 엄청난 활약을 했다. 그러나 몬트리올, 아니 캐나다는 아시다시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아이스하키 사랑 때문에 야구는 인기면에서 좀 밀렸다. 그리고 1994 시즌 MLB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만큼이나 영광을 누리고 싶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선수 유지비용을 버티지 못 하고(...) 결국 눈물의 바겐세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 첫번째 대상이 바로 그리솜이었다. 그리솜은 1994년을 끝으로 당시 한창 리즈시절을 달리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된다.

그리솜은 1995년 월드시리즈에서 25타수 9안타 (.360 타율)로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톰 글래빈이 MVP로 뽑히면서 묻혔다 1996년에는 20-20 클럽 (23홈런 28도루)에 처음으로 가입.

1997년에는 니 로프턴이 낀 트레이드로 탑리블랜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유니폼을 입었고, 챔피언스 시리즈에서 MVP로 뽑히게 되었다. 1997년 월드시리즈에서도 홈런을 2개나 때려냈지만, 갑툭튀한 플로리다 말린스의 파죽지세를 막지는 못했다.

1998년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의 유니폼을 입는다. 1999년에는 두번째로 20-20 클럽 (20홈런 24도루)에 가입하기도. 2001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어,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었다. 두자릿수 홈런을 때렸으나, 타율이 멘도사 라인에 가까웠고 삼진은 왕창 늘어났다. 거기에다 한 시즌에 도루를 78개나 달성한 선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발까지 느려졌다. (..) 말도 안 돼! 나의 그리솜은 그러지 않아! 박찬호가 떠난 2002년 놀랍게도 부활하였고 2003년 라이벌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 2003년 3할 20홈런을 치는 등 전성기에 준하는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2005년 다시 급격한 부진을 겪고 2006년 은퇴를 선언했다.

위에서 말한대로 2001년 다저스에서 부진해서, .250의 출루율타율이 아니다과 16볼넷 107삼진이라는 극악의 볼넷/삼진 비율을 기록, 뜬금포로 기록한 21홈런 외에는 내세울 게 없는 최악의 기록으로 국내 팬들에게는 부진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커리어 전체로는 도루왕 2번에 통산타율 .272, 227홈런 429도루를 기록한 호타준족의 선수였다. 다만 최상급 테이블 세터라고 하기엔 통산출루율 .318로 볼넷이 적었다는 것이 흠.
통산성적을 보자.

2009년부터 엑스포스의 후신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코치로 활동 중이다.


이야깃거리

"메이저리그 패싸움 10계명"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벤치 클리어링 상황에서 메이저리거들이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알려주는 지침. 여기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을 때 절대로 벨호성 알버트 벨에게 싸움을 걸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카일 판스워스출동하면 어떨까? UFC MLB 드림매치

마퀴스 그리솜이 말하는 ‘메이저리그 패싸움의 10계명

  • 1. 상대팀이 우리팀을 열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극하면, 위협적인 동작과 화난 말투로 이런식의 말을 주고받는다. “어제보니 니네엄마가 니가 싸인 안한 운동화를 신고다니던 것 같던데?” (선수들은 용품계약맺은 회사용품만 쓰도록 되어있다), “정말 그렇단말이야? 음… 에이젼트 시켜서 확인해 보겠어!”

  • 2. 양팀간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항상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어라 ; 싸움이 나더라도 절대 가장 먼저 필드에 뛰어나가는 사람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먼저 튀어나가면 먼저 맞는다. 그러니 일단은 상대를 위협하는 척 하며 참다가 우리팀의 진정한 터프가이(앨버트 벨 같은)가 나갈때까지 기다리는게 상책이다.

  • 3. 모두가 필드로 뛰어나가 투수 마운드를 중심으로 일단의 싸움집단을 구성하고 나면, 그때는 싸움에 합류해도 된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로 명심할 것은 우리팀 선수들이 주변에 많은 후방지역으로 합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혹시라도 모르는 진짜 싸움이 일어날 때 보호받을 수 있고, 또 차후에 일어날 징계위원회의 비디오 필름 조사시 징계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 4. 만약 위의것들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상대팀이랑 붙어라. 하지만 여기에도 또 필히 알아둘 사항이 있다. 평소에 친했던 상대팀 선수들을 찾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 앞에 가서 서로 드잡이질 하고있는 척을 해라. 만일 상대팀에 친한선수가 없다면 그 팀의 가장 작고 약해보이는 선수를 찾아서 진짜 화난것처럼 노려보라.

  • 5. 만일 상대 선수들이 진짜 화나서 일을 벌일 것 같은 분위기일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선수 등뒤로 접근하는 것이다.

  • 6. 항상 심판의 시야 안에서 움직여라. 그것도 심판 근처에서. 그래야 진짜 싸움이 나도 그들이 말리러 올 수 있다.

  • 7. 이 모든 것이 안된다면, 그저 서성대며 위협하는 척이나 해라.

  • 8. 절대로 앨버트 벨 근처에는 가지마라. 선수생명이 끝장나는 수가 있다.

  • 9. 싸움이 끝나고 운동장이 대강 정리되고 나면 상대방을 노려보며 화난듯 소리쳐댄다. 이렇게. “내 얼굴에 대고 욕할 용기도 없는주제에 집에가자마자 웹사이트에다가 (내 욕을) 바가지로 써놓을 겁쟁이들아!” 나 “넌 모르는 지 몰라도, 니 마누라는 알 마틴(Al Martin)[1]이랑도 결혼했단다!”라고.

  • 10. 마지막으로, 우리팀이 그 경기에서 이겼다면 기자들 앞에서 그 싸움이 내부의, 가슴속의 무언가를 자극해서 우리가 이기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얘기하라. 만약 졌다면? 싸움이 팀의 상승분위기와 투수들의 리듬을 깨버려 질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해라. 미숙한 경기운영을 한 심판들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기자들이 당신의 얘기에 별로 귀기울이려 하는 것 같지 않으면, 얘기하면서 화난것처럼 으르릉거리며 서성거려라. 그들은 당신이 팀원들을 걱정하고 상대팀을 저주하는 진정한 투사인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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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4 시즌 LG 트윈스에서 뛴 그 알 마틴 맞다. 마틴도 꽃미남 흑형으로 매우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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