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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last modified: 2015-04-15 14:18:55 by Contributors



수도 쿠알라룸푸르(KL)의 야경.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유명하다.[1][2]
(ɔ) from

국기 [3]
공식명칭 말레이시아 (Malaysia)
면적 329,847㎢
인구 30,018,242명 (2014년 통계)
민족구성 67% 말레이인 24.6% 중국계 화교 7.3% 인도인
수도 쿠알라룸푸르 (행정수도 푸트라자야)[4][5]
GDP(명목) 3,669억 달러 (2014년)
1인당 GDP(명목)11,062 달러 (2014년)
GDP(PPP) 7,468억 달러 (2014년)
1인당 GDP(PPP) 18,509 달러 (2014년)
정치체제 연방입헌군주제, 양원제
국가원수 술탄 압둘 할림 무아잠 (Sultan Abdul Halim Mu’adzam Shah) 국왕
정부수반 나집 툰 라작(Najib Tun Razak) 총리
공용어 말레이어
국교 이슬람교
화폐단위 링깃
대한수교현황 남북한 동시수교 (남한 1960, 북한 1973)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고대
2.2. 말라카 왕국
2.3. 영국의 지배
2.4. 독립
2.5. 싱가포르의 독립
2.6. 현대
3. 교통
4. 정치
4.1. 군사
5. 사회
5.1. 민족
5.2. 치안
6. 경제
7. 외교
7.1. 대한민국과의 관계
8. 문화
8.1. 음악
8.2. 스포츠
9. 말레이시아 출신의 유명인

1. 개요

Malaysia Travel Video Guide

말라야 반도와 르네오섬 북부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 인구는 28,000,000. 수도는 쿠알라룸푸르. 행정중심도시는 푸트라자야.[6] 이웃나라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연방 국가, 줄여서 마련(馬聯) 또는 말련(말聯)이라고도 한다.

2. 역사

2.1. 고대

최초로 말레이시아에 인간이 거주한 건 약 4만 년 전으로, 이들은 오랑아살이라고 불리며 인구의 11%를 차지한다. 이들은 주로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나 말레이어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다. 이 중엔 흑인도 있으며 말레이인들은 이들을 야만인이나 짐승 취급했으며 노예가 되거나 살해당하기도 하였다. 지금 말레이시아의 인구의 54%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열[7] 사람들은 20,000년전부터 말라야 반도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원후에는 여러 왕국이 이 지역에 존재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남긴 기록으로 존재 여부와 위치가 확인되는 국가들은 '랑아수', '적토국', '단단' 등으로서, 각각 파타니, 끌란딴, 뜨렝가누 등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Andaua 2001: 22). 이 국가들은 대략 6세기부터 중국 사서에 나타나는데, 중국 남조 국가들이 남방과의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덕분이라고 여겨진다. 7세기 이후에는 리비자야라는 말레이계 해상왕국이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반도에서 번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국가들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현 말레이시아 사회와의 연계성을 증명하기에도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역사에 있어 가장 핵심인 '사람' 과 '사람의 활동' 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결국 말레이시아의 역사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1400년대 초반으로서, 말라카 왕국의 건설과 함께였다.

2.2. 말라카 왕국

말라카 왕국의 건국자는 통상 '팔렘방의 한 왕자인 파리메비사라' 였다고는 하는데, 스리비자야 왕실 가계의 왕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일반적인 설명은 팔렘방이 자와의 공격을 받고 패하자, 그가 추종자를 거느리고 탈출하여 말레이 반도 방면으로 정착하였다는 것이다. 처음 정착한 곳은 말레이 반도 남단에 있는 떼마섹 섬이었는데, 파리메비사라는 이 곳을 '사자의 도시' 라는 의미로 '싱가푸라' 라고 불렀으니, 바로 오늘날의 싱가포르이다. 이곳에서 다시 말라카(Malacca)로 옮긴 것이 1402년의 일이다.

말라카 왕국은 해상 국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했는데, 그 성공 이유는 대강 이 정도로 요약된다고 한다. 먼저, 말라카의 지배자들은 국제 상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주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말라카 해협은 해적들이 들끓던 곳이었다. 말라카는 이런 해적들을 상대로 상인들을 보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교역 시설을 확충하여[8] 무역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법과 행정이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상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덕분에 말라카 왕국은 100년 넘게 흥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11년 향료를 찾아나선 포르투갈인들이 향료를 독점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곳으로서 말라카를 공격, 치열하게 맞서 싸웠으나 결국 멸망당한다. 그 이후로는 여러 유럽 세력에 의해 지배를 당하다 결국 영국의 영향권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2.3. 영국의 지배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자 영국의 동남아시아 진출은 급진전했다. 네덜란드가 나폴레옹의 공격을 받아 정복당하고, 왕은 영국으로 명명해 아시아 지역에서의 네덜란드 지배권을 모두 영국에게 위임했다(1795). 그러자 영국은 더욱 대담하게 동남아시아 식민지 경영에 착수하여 페낭에 영국 상관을 설치하고, 말라카 및 바타비아를 접수했으며, 향료 제도에 이르기까지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영국은 페낭을 얻었고, 이 곳을 시작으로 해서 1819년에 싱가포르를 건설하기까지 말레이 반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증대해 갔다. 1824년에는 네덜란드와 맺은 조약(런던 협약)에 의해 수마트라, 자와 등 현재의 인도네시아 지역은 네덜란드가, 말레이 반도 지역은 영국이 관할하기로 결정되었다. 결국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를 한데 묶어 '해협 식민지(Straits Settlements)'를 만들기에 이른다(1826). 하지만 이 때까지의 영국의 관심은 무역로 장악이었을 뿐이고, 특히 중요한 것은 '중국으로의 길' 이었다. 해로상의 거점을 장악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당시까지는 말레이 반도에서 수익성 높은 자원이 생산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19세기부터 영국의 변화에 관심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주석이 있었는데, 주석을 이용한 함석 제조 기술이 발전하고 수요가 증대함으로써 말레이 반도의 주석 광산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던 것이다.

주석 광산의 운영에는 세 집단이 관련되어 있었다. 첫째는 주석 광산을 보유한 술탄이었고, 둘째는 그것을 운영하는 영국의 자본가들이었으며, 셋째는 바로 주석 광산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이렇게 말레이 반도로 건너온 중국인들이 뛰어난 교육열과 부지런함으로 영국령 말레이시아의 중간 공무원들이 되기도 하고 말레이시아의 경제권을 장악하기도 하면서 소외된 말레이계 사람들과 점점 반목하게 된다. 당시 영국인들은 말레이계열은 착하고 성실하지만 단순하고 게으르고, 중국인들은 능력있지만 영악하다고 평가했다.[9]

2.4. 독립

이렇게 영국의 술탄들을 통한 사바사바하게 간접적인 통치는 계속되는데, 일본태평양 전쟁이라는 병크를 터트리게 된다. 이 때 말레이시아를 점령한 일본은 중국계를 때려잡는 삽질을 하면서 결국 8만명을 죽이다가 패배하고서 도망간다. 이후에 들어온 영국은 말레이시아에 자치를, 그리고 1957년에 결국 독립을 허용한다.

영국은 말레이시아의 여러 술탄국들이 한나라가 되어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같이 말레이시아인으로서 살게 된다는 이상을 가지고 독립을 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말레이인들은 불만을 품었다. 굴러들어온 돌이나 다름없는 화교계가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점령하게 되니 말레이인들은 당연히 참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 말레이계, 중국계 지도자들의 합심으로 독립은 해냈다. 말레이계가 군인경찰, 공무원쪽을 차지하게 되고, 공용어는 말레이어로, 교육과 경제정책은 말레이계열을 우대하는 한편으로, 중국계나 인도계도 말레이시아 국민으로서 그대로 말레이시아에서 살 수 있었다. 거기에 경제적 기득권도 빼앗지 않고 계속 인정해 준다는 것이 요지이다.

2.5. 싱가포르의 독립

싱가포르와 보르네오섬의 사라왁, 사바 지역은 영국에서 독립한 후 말레이시아 가입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싱가포르가 특히 문제였는데,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가 다수이지만 싱가포르만은 중국계 화교가 압도적 다수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싱가포르는 식민지 시절부터 말레이반도의 압도적인 경제중심지. 말레이시아는 중국인이 다수인 싱가포르계가 들어와서 "중국계 차별하지 말라"며 화교계와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경제를 휘어잡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잠시 합쳤다. 이 때가 1963년.

당시 싱가포르 주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인들의 말레이시아'(Malaysian Malaysia)를 주창했다. 인종에 상관 없이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말레이시아인에게는 똑같은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말레이계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었다. 경제나 학업면에서 말레이계가 너무 뒤쳐져 있으니 이대로 똑같이 평등하다면 말레이계는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리콴유-싱가포르-중국계의 주장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어쨌든 국가적인 중국계 차별은 중국계에겐 억울한데다가, 중국계라고는 해도 몇 대째 말레이시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치열한 국가관의 차이는 신생 독립국의 존립을 흔드는 위험한 문제였다. 결국 1965년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주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내기로 한다. 그리고 싱가포르주의 총리, 리콴유는 울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고 진짜 독립선언할 때 울었다. 싱가포르의 독립은 세계 역사상 흔치 않은, 독립을 원하지 않았으나 떠밀려서 억지로 독립하게 된 케이스였다.[10]

"저에겐, 싱가포르의 독립은 아픔의 순간입니다. 저는 말레이와 싱가포르가 통합되어 말레이시아라는 한 나라가 될 거라고 평생을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2.6. 현대

장기집권한 마하티르 총리와 말레이계 최대정당 UMNO는 굴러들어온 중국계(인구 25%), 인도계(10%)에게 시민권을 준 대신, 말레이계에게 도움이 많이 되고, 중국계와 인도계는 차별로 느낄만한 강력한 정책을 시작하였다. 1969년 당시 말레이계의 인구는 60%였지만 경제에서 말레이계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4%일 정도로 취약했기 때문. 덕분에 1969년 총선에서 중국계 정당이 약진했을 때 말레이계는 분노와 두려움에 폭동을 일으켜 중국계의 상점과 집을 불태우고, 수백명을 살해했다.

우선 교육이 문제인데, 워낙 교육열이 높은 중국계가 계속해서 사회 엘리트 지위를 점했기 때문에 말레이계의 교육수준을 높임과 동시에 중국계 학생을 엿먹일 불리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대학입학시험은 말레이어로만 보게 하거나, 가장 인기가 많은 공립대학에서 학생들을 뽑을 때 말레이계는 60%, 중국계는 30%, 인도계는 10% 이런 식으로 비율을 정해 말레이계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줬다. 요즘은 이런 낯간지러운 배당은 폐지했지만, 말레이시아에서 공립대학 들어갈 때의 여러 방법 중 가장 쉬운 matriculation 를 뽑을 때 말레이 계열을 90% 뽑게 해놔서 눈가리고 아웅이다. 대학입학시험 때도 알음알음 말레이 계열에게 더 점수를 준다고도 하고...[11] 다만 너프에 너프를 거쳐도 화교들은 돈이 잘 벌리거나 사회에서 실력으로만 판가름나는 학문으로 다 돌아서서 의대생들이나 상공업관련 학과를 보면 말레이 학생들은 적고 죄다 화교 학생들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성적을 나쁘게 줘봤자 사회에 나와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면 그냥 공부 열심히 한 말레이계 학생들보다는 지옥을 뚫고 올라온 화교계 학생들이 대체로 실력이 좋다고 한다.[12]

경제 쪽에서도 신경제정책을 세우면서 말레이계 중산층을 밀어주는 모습을 보인다. 차나 집을 살 때 말레이계는 10% 더 싸게 살 수 있었고, 정부가 자동차 회사 프로톤이나 페트로나스 같은 석유대기업을 만들면서 말레이인들이 취직하기 훨 유리하도록 하였다. 공무원 뽑을 때도 마찬가지며, 기업을 설립할 때 말레이인의 지분이 30% 이상이어야 한다는 법 등도 마찬가지. 산업면에서도 농업에서 프로톤 등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 석유, 광물 공업 등 중공업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투자를 받은 가전제품, 반도체 제조업도 성공적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정책은 성공했다. 독립 당시 대부분의 말레이인들은 가난한 농부였지만, 지금은 말레이계 중산층이 튼튼해졌고, 빈곤율도 60%에서 10%으로 낮아졌다. 구매력 환산 GDP는 2012년 현재는 $16,942[13]. 동남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를 제외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튼튼한 중산층에, 시골에서도 우리나라 시골의 90년대 수준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프로톤이나 페트로나스같은 잘나가는 대기업에, 쿠알라 룸푸르나 페낭 같은 매력적인 도시도 생겨났다. [14][15]

좀 가혹한 중국인 차별정책도 결과적으로 보면 나름대로 성공이었다는 평.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역설적으로 말레이시아에 인도네시아 같은 반화교 폭동도 없고, 여전히 잘 나가는 경제를 생각해보면 말레이 특혜정책은 올바른 정책이었다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계와 인도계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게 함정

하지만 앞으로도 중국계와 인도계를 끝까지 2등급 시민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일. 말레이계열의 지도자들도 조급한 마음을 내비추고는 한다. 말레이계 특혜 정책을 강력 추진하던 마하티르 전 총리도 요즘은 말레이 학생에게 쉽게 대학가서 이슬람법 따위 공부하지 말고, 제발 공학공부 같이 어려워도 쓸모있는거 공부하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 총리인 라작은 One Malaysia 라는 모토하에 말레이계 특혜를 줄여나가려는 모양이다. 위에 언급한대로 화교들은 공학쪽이나 의학쪽으로 진출을 많이 해뒀으며, 이것은 말 그대로 실력만 믿고 가는 학문이기 때문에 정부에서조차 손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학점받기 쉬운 이슬람 법이나 이슬람 문화를 공부하는 말레이계 학생들이 원망스러울 뿐. 아니 왜 대체 화교들이 안 죽는고야? 난 햄보칼수가 읍서!

3. 교통

현지에서 KLIA로 흔히 줄여 부르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은 말레이시아의 관문 공항이다.[16] 이 공항을 허브로 사용하는 말레이시아 항공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큰 규모의 항공사들이다. 반도으로 이루어진 넓은 국토 덕분에 국내선 항공도 매우 활발하다.

철도교통말레이반도말레이 철도(KTM)이 3개의 간선 위주로 운행하고 있다. 주요 역은 버터워스 역, 쿠알라룸푸르 역, KL 센트럴 역, JB 센트럴 역 등. 태국의 핫야이와 싱가포르로 이어지는 국제열차, 화물열차도 활발히 운행되고 있다. 싱가포르우드랜즈 역말레이 철도가 관할한다. 르네오 섬보르네오 철도말레이 철도와는 전혀 별개로 운영되며 관광열차 위주로 다닌다.

4. 정치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술탄국들이 독립하여 결성한 연방 국가이며, 영국의 영향을 받아 입헌 군주제에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왕은 의외로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인데, 9개 주[17]의 술탄 중에서 선출된 국왕(Yang di-pertuan Agong)이 5년을 임기로 왕위에 오른다... 근데 사실상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한다.

(ɔ) Kepresidenan Indonesia from


2011년 12월 왕위에 오른 압둘 할림(Abdul Halim) 국왕은 크다(Kedah)주 술탄인데, 이미 1970년부터 5년간 국왕으로 재임한 바 있다. 왕위에서 물러난 후에 수십년이 지나고보니 다시 크다 주의 순번이 돌아와 두번째로 왕위에 오른 셈. 말레이시아 독립 이후 한 사람이 두번 국왕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입헌군주제 국가인만큼, 실권은 총리가 주도하는 내각에 있다.[18] 독립 이래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BN) 계열의 정당이 범여권 연합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말레이시아 민족통일기구(UNMO)의 세력이 가장 커서 줄곧 집권해 왔다.

그러나... 2008년 총선에서는 BN이 개헌의석인 2/3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140/222석), 몇몇 주의회에서 야당에 다수당 자리를 내주는 등 사실상 패배했다고 보는 분위기. 수십년간 지속되던 말레이계 우대정책에 대한 중국계등 소수민족의 이탈과 이슬람 정당들의 선전이 주요원인이었다.

근데 이렇게 되자, 야당인 인민정의당 지도자인 안와르 이브라힘이 동성애[19] 혐의로 기소되었다... 흠좀무. 이 사람은 원래 마티하르 전 총리 밑에서 부총리를 하던 사람인데, 이미 1998년 동성애와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쫓겨나서 6년간 옥살이를 했으나 결국 무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출소한 뒤에는 야당의 핵심인물로 부각되었다가 또다시 동성애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부당한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결국 2012년 1월 9일, 검찰이 제출한 DNA 자료에서 신뢰할만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하여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검찰이 여기에 대해 항소했고 결국 2015년 말레이시아 대법원은 동성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후 2013년 총선에서 위낙 접전이라 정권교체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예상보다 큰 의석차로 국민전선(BN)이 야권연합인 인민연맹(PB)를 누리고 승리하여 정권을 연장하였다.(133석 vs 89석) 그러나 득표율은 BN이 PB보다 뒤쳐진데다가 유권자들을 매수하고 선거에서 쓰인 안 지워지는 잉크가 지워진다는 등 관권, 금권선거를 했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때문에 야당에서 불복하고 있는 중.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야권이 선거에서 패한 결정적인 요인은 게리맨더링(지도 참조)이었다. BN(파란색)은 47%를 득표했으나 선거 결과를 보면 거의 전국을 휩쓸었고 야권연합은 50.9%를 득표했음에도 패배했다. 참고로 말레이시아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비례대표가 없다.)

5. 사회

5.1. 민족

여전히 각 민족 사이에는 아직도 깊은 차별 사고방식이 자리잡은 모양이다. 전세계 여러 나라 대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각 나라 대학생들과 같이 지내면서 문화 교류를 하던 활동을 담은 책자인 캠퍼스 로드에선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대학생들의 증언을 보면 화교나 비이슬람 거주자들의 대학 입학도 제한되어있고, 반대로 화교나 비이슬람 측들의 학교 건립이나 여러가지도 꾸준히 막고 있다고 한다. 가톨릭으로 개종했더니 별별 세금 고지서가 마구 날라오고 직장도 잘린 부모를 둔 대학생의 하소연을 보면 여기도 꽤 시간이 많이 걸려야 할 듯 싶다.

문제는 중국계와 말레이계 사이에 통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20] 보통 이런 문제는 인종적으로 혼합되면서 해소되는 법이지만 문제는 종교. 국교이슬람교인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무슬림이고, 타 종교로 개종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말레이인이 아니다. 또한 이슬람 교리상 무슬림과 결혼하려는 자는 반드시 이슬람으로 개종해야만 한다. 중국계들 역시 자기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말레이계와 중국계는 잘 섞이지 않고 있다. 이들 중국계 말레이인들의 종교 역시 이슬람교가 아닌 불교로 2010년 종교 조사에서, 이슬람이 국교인 말레이시아의 불교 인구는 19.8%에 달했다. 그냥 중국계는 중국계들끼리 어울려 산다는 이야기... 게다가 인구의 8%나 되는 계 인도인들도 저들끼리만 살고 있어서... 그나마 중국계와 인도계 사이의 통혼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오랑 아슬리라 불리는 원주민은 200만 명 가량이나 있지만 존재감이 희박하다. 베트남어와 같은 어족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5.2. 치안

말레이시아는 정세가 안정적이고 총기규제도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싱가포르 다음으로 치안이 괜찮은 수준이다. 따라서 필리핀처럼 총격 살인 등 강력범죄는 드물기 때문에 조금만 조심해도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 수도 알라 룸푸르의 치안도 양호한 편이나 강력 범죄가 드문 대신 소매치기, 오토바이 날치기 등 좀도둑이 상당히 많다. 쿠알라 룸푸르의 명동격인 부킷 빈탕에 날치기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을 정도다. 차도 반대쪽으로 크로스백을 단단히 매고, 목걸이 등 장신구도 되도록이면 빼고 수수한 차림으로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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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 주 동부 해안과 그 주변 섬들은 필리핀과 가까워서 반군이 배를 타고 사람들을 납치,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등 정세가 매우 불안하기 때문에 여행자제/철수권고 구역으로 정해져 있어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외 지역에는 여행경보가 발령되어 있지 않으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나 그 근교도시에서도 몸값을 노린 납치 범죄가 가끔 벌어지므로 웬만하면 밤에 인적 드문 곳은 피하도록 하자. 사실 밤에 인적 드문 곳은 어느 나라건 위험하긴 하다.

6. 경제

7. 외교

아랍 나라들과 이슬람 동맹국으로 우호를 다지면서도 종교에 빠지지 않고자 노력은 하는 편이다. 하지만,이런 점 때문에 아랍 나라들과 다소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단 이스라엘을 정말 싫어하는 이슬람 국가다. 두나라 사이 외교관계 자체가 없다. 말레이시아 사람들 에게는 이스라엘은 여행 금지 국가로 여권 앞면에 이스라엘 빼고 여행가능이라고 적혀 있을 정도, 간혹 기독교 등의 화교 인도인 교인(비말레이인) 등이 특별 신청으로 이스라엘로 여행이 가능 하긴 하지만, 100% 확실히 갈수 있는것도 아니고 일단 엄청난 서류작성과 인터뷰가 뒤따른다.

이웃 싱가포르태국이나 주변 나라들과 사이는 그다지 안 좋다. 태국과는 영토 분쟁 및 과거 말레이시아 쪽 무슬림계였던 소수 자치왕국들(파타니 주, 나라티왓 주, 얄라 주)을 강제로 통합한 태국에 불만이 크며 그런 작은 나라들을 자국령으로 생각하기에 당연히 태국과는 원수지간급으로 사이가 나쁘다.[21]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관광객의 막장짓에 안티가 많고 불만이 크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골치라서 독립시켰더니만 뽐낸다고 비꼰다. 싱가포르와 페드라 브랑카 분쟁이라는 영유권 분쟁을 벌였다가 2008년에 진 적도 있다. 역사적인 부분에서는 싱가포르를 가볍게 눌렀는데 현실적 실효지배 문제에서 대차게 발려서 오히려 페드라 브랑카 섬이 싱가포르 영토란 사실만 세계적으로 공인해준 격. 정작 같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도 영토 분쟁으로 사이가 안 좋아서 해상에서 무력 충돌도 벌어지곤 한다. 게다가 인도네시아불법체류자에 대한 태형 집행 등 강경 대처로 국민감정이 악화되기도 한다.

7.1.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1960년에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1965년 싱가포르가 분리독립한 이후에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역협정, 문화협정, 항공협정, 이중과세협정, 사증면제협정, 과기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다른 동남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류컨텐츠가 꽤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 물건들, 특히 휴대폰과 전자제품, 자동차[22][23]가 많이 유입되어 있는 상태. 그래서 그런지 최근 현지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관심은 꽤 높은 편이다.[24]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외국인 울렁증이 마구마구 도지라고 한국에 대하여 여러가지를 물어보는 경우가 꽤 있으니 대비해 두면 좋다.[25] 그리고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를 칭할 때 South Korea라고 하면 약간 과장해서 거의 못알아 듣고 Korea라고 해야 알아듣는다.[26] 애초에 북한은 아오안 취급이다[27]

2001년부터 2010년까지 KBS, SBS, MBC의 지상파 3사는 말레이시아에 총 78편의 프로그램을 수출하였다. 구성은 드라마 68편, 다큐멘터리 6편, 만화영화 4편 등이다. 현재까지 최고로 인기있었던 콘텐츠는 꽃보다 남자(최고 시청률 38.7%), 대장금(최고 시청률 12%)이며, 말레이시아 방송국들은 한국 드라마를 편당 2000~8000만원 정도에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말레이시아의 TV시청자는 해외프로그램과 접촉하는 빈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0년 말 현재 해외 프로그램을 규칙적으로 시청하는 응답자들은 83.0%였으며, 그 가운데 아시아 프로그램을 규칙적으로 시청하는 사람은 77.5%였다. 한국 프로그램을 규칙적으로 시청하는 응답자들은 47.5%였다. 말레이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국 프로그램은 설문에 따르면 홍콩(38%)이고, 그 다음으로 일본(14%), 한국은 3번째(12%)로 조사되었다.[28]

남북한 양쪽과 상호 비자 면제 협정을 맺은 유일한 나라다. 그리고 일반 여권으로 북한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세계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8. 문화

8.1. 음악

한때 유머러스하고 뭔가 싼티난 특수효과가 돋보이는 PV와 몬데그린 가사에 힘입어 컬트적인 인기를 얻을 했지만 안습하게도 빠삐놈 등에 묻힌 통칭 도락커 시리즈를 부른 가수는 인도인이 아니라 '삼바락'이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가수 다크키라고 한다. 그리고 이 가수는 내한공연(?)을 한 적도 있다. 안산제3세계 외국인문화 행사의 음악공연 아티스트 자격으로 초대된 것이기 때문에 정규 내한공연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유명하다. 마하티르가 말레이시아에도 세계적인 악단이 필요하다며 석유재벌 페트로나스의 돈을 끌어다 멋진 콘서트홀도 세워서 1990년에 창립. 단번에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되었다.국내 클래식계에서도 말레이시아의 클래식 투자와 관심도를 부러워하며 음악춘추라든지 객석같은 월간 클래식 잡지에서도 이명박 서울시장 때부터 기획되었다가 늘 취소하던 서울시 오케스트라홀 건립문제와 여러가지로 견주는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 오케스트라들이었다.

8.2. 스포츠

스포츠는 축구가 제일 인기가 많다. 메르데카컵으로 70년대에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것[29]처럼 축구 열기는 여전하며, 말레이시아 수퍼 리그(1989년부터 M 리그라는 명칭을 썼다가 2004년부터 수퍼 리그로 바꾸고 2부리그는 프리미어리그로 이름을 바꿨다.)의 Selangor FA처럼 인기있는 팀은 평균관중이 4만이 넘는다. 황금기는 라이벌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리그에서 활동하던 시절. 싱가포르 라이온과 Selangor FA는 리그의 최강자이자 최대의 라이벌이었으며 이들이 말레이시안 컵 파이널에서 붙으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불타오르곤 했다.하지만 1995년 이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리그에 참가하지 않고 자국 리그인 S리그를 운영한다. 다만, S리그에는 말레이시아 팀이 하나 참가하고 말레이시아 리그에는 라이온스 XII가 참가한다.

국대에 대한 것은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배드민턴도 인기가 많은편인데, 이는 빈약한 스포츠환경에서 전국민이 편하게 즐길수있는 스포츠중 하나이기 때문이며 말레이시아에는 리총웨이라는 국제적인 배드민턴 선수가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말레이시아는 한개의 은메달만을 획득했는데 이 은메달이 리총웨이가 벌어온 은메달이었다.(그래서 리총웨이는 사실상 국민영웅 수준이며, '다토'라는 작위가 그에게 수여되었다.)

그리고 영연방 나라답게 필드하키를 꽤 하는 편이다. 필드하키같은 경우엔 2001년에 일본을 제치고 플레이오프 끝에 필드하키 월드컵에도 진출한 바 있다.아시아 필드하키 선수권 대회인 하키 아시안 컵에서는 4강에 5번 진출하는 성적을 냈다. 2007년 인도 대회에서 사상 최고인 3위를 거뒀는데 조예선에서 일본을 2-0, 3,4위전에서 다시 만난 일본을 5-3으로 이겼다. 참고로 준결승전에서 한국에게 1-2로 패했다(우승은 한국을 7-2로 이긴 인도 공화국). 아시안 게임에서도 제법 강호이긴 한데 남자 필드하키는 은메달 1개,동메달 6개, 여자 하키가 동메달 1개를 받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자 필드하키는 4위를 차지했다. 크리켓도 그럭저럭 하지만 크리켓 월드컵에 한번도 나가본 적도 없기에 세계적으로 보면 약체.

또한 가라테도 상당히 잘한다. 역대 아시안 게임 가라테 총메달은 일본이 금 26개,은 10개, 동 7개를 받은 일본에 이어 금 12개, 은 8개, 동 7개인 이란이 추격 중이며 말레이시아는 금 8개, 은 7개, 동 15개를 받았는데 전체 메달 수로 따지면 이란을 제치고 일본에 이어 2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 3개를 받은 일본, 이란에 이어 카자흐스탄,대만과 더불어 금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받았다.

여담으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 나라에 있는 도시인 조호바루에서 이란 대표팀을 3:2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프랑스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일본 사람들은 이 일을 조호바루의 환희로 불려지면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98 월드컵 본선에선 3전전패...일본 관중이 죠 쇼지에게 침세례로 응수

9. 말레이시아 출신의 유명인

  • 양자경 - 화교로 미스 말레이시아 출신
  • 지미 추 - 유명 구두브랜드 지미추도 중국계 말레이시아 디자이너이다.
  • Danny Choo - 댄스 트루퍼로 유명한 말레이 화교계 오타쿠. 위의 지미 추의 아들로, 출생지는 영국, 주 활동 거점은 일본이라서 좀 복잡하다.
  • 토니 페르난데스 - 에어아시아 CEO
  • 제임스 완 - 영화감독. 중국계로 쿠칭 출신이며, 이후에는 퍼스에서 성장했다. 국적은 오스트레일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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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일 공동 건설인데, 건설 성과를 두고 한때 한일 네티즌들 사이에서 떡밥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렇다. KLCC공사는 타워1, 타워2, 하늘다리로 세분화 되어있었는데, 타워1은 일본기업인 하자마, 타워2는 한국기업인 삼성, 하늘다리는 한국기업인 극동건설에서 맡게 되었다. 일본은 가장 먼저 도착하여 타워1 건설을 시작하였지만 건설중 건물이 25mm 만큼 기우는 사고가 일어난다. 일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는데, 늦게 온 삼성은 별 문제 없이 타워2를 완공, 일본보다 먼저 건설해버렸다.
  • [2] 다만 이 건물에 대하여 해외에서 평은 높기만 한 건물이라고 까는 게 많은 모양이다. 대부분의 역사적 시간에서 서구가 주도했던 최고 높이의 건축물이 동양으로 넘어온 사건이기 때문에 질시되어진 것도 있다. 김영사에서 낸 앗! 시리즈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90년대 후반에는 이게 세계 최고였다.)로 나오고 그 밖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언급했다. 부르즈 할리파두바이망했어요가 되면서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 [3] 얼핏 미국 국기가 연상되지만, 실제로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깃발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한다.
  • [4] 단, 헌법 상 정식 수도는 아니고 우리나라의 세종시와 같은 Administration Centre로 지정되어 있다
  • [5]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푸트라자야는 1개 주 정도의 위상(우리나라로 따지면 광역시/특별시)을 가지고 있다. 물론 쿠알라룸푸르도 마찬가지
  • [6] 사실 쿠알라룸푸르와 푸트라자야는 매우 가깝기 때문에 동일 생활권이다.
  • [7] 현재 말레이시아에는 이 말레이계열도 여러족으로 나뉘지만, 보통 bumiputra로 통칭되어서 하나의 말레이계로 본다.
  • [8] 화재 및 도난 방지를 위해 지하 창고까지 지었다고 한다.
  • [9] 이러한 편향적인 말레이계-중국계 스테레오타입은 동남아에선 아직도 통한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통한다. 영국인 지주들은 말레이계 사람들을 하인으로 삼아 집안일을 시켰고 중국계를 부두나 시장에서 일하게 했는데, 이 때문에 아직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구 통계 작성시에 '기타'항목이 아닌 별도 항목으로 작성될 정도로 숫자가 많다.
  • [10] 이런 예를 남아공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아공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인종차별을 원활히 하기 위해 흑인 밀집 지역을 넷이나 독립시켰다. 이들 지역 출신 흑인들은 별달리 할 것 없이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대내적으로는 이들에게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지 않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저 흑인들은 남아공 사람이 아니라 흑인 국가에서 남아공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에요'라고 주장하기 위해 형식상 독립을 시킨 것이었다. 이들 나라는 만델라 정권이 들어서자 남아공으로 재편입하였다.
  • [11] 위키나 인터넷에서 돌아다녀보면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사자후로 토하는 중국계 학생들의 좌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모국을 등지고 근처 싱가포르로 떠나는 중국계 젊은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문제는 싱가포르도 말레이시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차별이 있어서 두 나라 모두 내부적으로 곯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 물론 두 나라 모두 화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 듯.
  • [12] 그런데,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말레이계나 중국계(화교계), 타밀계(인도계)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평가가 주된 평가이다. 물론 개개인들의 차이지 화교계가 더 일을 잘한다는 것 또한 스테레오타입일 수 있으니 주의하자.
  • [13] 명목GDP는 2012년 기준 $10,578
  • [14] 프로톤은 말레이시아 자동차 회사이다. 선진국이나 한국 차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현지 기준으로는 쓸만한 품질의 차를 만들어온 회사이다. 그리고 디자인도 꽤 괜찮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품질이 현지 기준으로 쓸만한거지 우리나라 차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 특히 안전에 관련한 장치(브레이크 같은...)들의 내구성과 품질이 심각하게 떨어지므로 현지에서 구매 또는 렌트 할 일이 있을 시 주의할 것. 이는 프로톤 뿐만 아니라 같은 말레이시아 자동차 회사인 퍼라쥬어(Perodua)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도 마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 [15] 참고로 무한도전 포뮬러 특집때 말레이시아에서 멤버들이 드라이빙 기술 배울때 쓰이던 차가 바로 프로톤 페르다나.
  • [16] 최근에 KLIA 2 공항이 생겼다. 원래 에어아시아와 같은 저가 항공사들은 구 공항인 술탄 압둘 아지즈 샤 공항 또는 수방 공항이라 불리는 구 공항에 있었다. 하지만 에어아시아가 제 2의 국적 항공사로 승격되고 수요도 점차 늘어나자 에어아시아만을 위한 공항을 만들기로 협의하고 KLIA 옆에 KLIA 2 공항을 신규 오픈하여 저가 항공사들만 따로 취항하게 됬다. 물론 수방 공항은 폐쇄된 것은 아니고 또 KLIA에 아직 에어아시아가 날아다닌다. KLIA는 1993년 6월 1일, KLIA2는 2014년 5월 2일에 오픈되었고 최근에 오픈되서 그런지 KLIA2는 별게 없다.
  • [17] 13개의 주 중에서 9개의 주에는 술탄이 있다. 다만 네그리 슴빌란 주의 수장은 Yang di-Pertuan Besar, 플리스 주의 수장은 Raja라고 부른다.
  • [18] 그런데 법을 제정할 때는 마지막에 국왕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입헌 군주제지만 완전한 허수아비 왕은 아닌 셈. 그리고 국왕에 대한 대부분 국민들의 인기는 높다고 한다.
  • [19] 이슬람이 국교인 이 나라에서 동성애는 최대 20년의 징역과 태형에 처해진다.
  • [20] 20세기 후반 부터는 중국계-말레이계간 혼혈이 늘고 있긴 하다. 아직 그 숫자는 적지만....
  • [21] 이 때문인지 말레이시아는 태국과 역사적,정치적으로 사이가 나쁜 미얀마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태국과 인접한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과는 사이가 좋다.적의 적은 나의 친구
  • [22] 현지에서 한국차는 꽤 고급차로 인식된다
  • [23] 참고로 현지에서의 고급차 순위는 일본차>독일차>한국차 순이다. 농담이 아니고 일본차가 독일차보다 더 고급으로 평가되고 가격도 당연히(?) 더 비싸다!
  • [24] 동아시아쪽에서 선진국이라고 하면 일본 밖에 모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21세기 들어 우리나라가 갑툭튀(...)한 상태라 상당히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고 한다.
  • [25] 다만 대부분 말레이어가 아닌 영어로 물어보니 말레이어로 대답할 대비까지는 필요 없다. 문제는 그 영어 발음이... 좀 OTL스러우니 그건 대비해서 나쁠 것 없다. 근데, 현지인과 상대를 안 해보면 대비가 안되는데
  • [26] 대부분의 나라에서 현지인에게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10번중 7번 정도는 North? or South? 하는 반응이 나온다. 어찌보면 당연한게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워낙 어그로를 끌어대니... 애초에 두 나라 모두 국명에 Korea가 들어가니 남한의 인지도가 커진 현대일지라도 북한의 실정을 잘 모르는 중립적인 외국인들 입장에서 남쪽인지 북쪽인지 물어보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때문에 한국인들 중에서는 애초에 South Korea에서 왔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곳에서는 이렇게 대답하면 되려 '어디라고?'라는 반응만 돌아온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다.
  • [27] 단 무슬림들중에는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종종 미국에게 개기는 북한을 자존심이 강하다고 호의적으로 보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는 한다.
  • [28] 말레이시아 문화콘텐츠산업의 시장특성 및 성장가능성 전망 -방송과 음악산업을 중심으로-, 정영규, 한국이슬람학회, <한국이슬람학회 논총> 23권3호 (2013), pp.57-98
  • [29] 정확히 그 당시 독재에 대한 불만을 덮고자 이 대회 우승해도 서울 거리에서 차퍼레이드를 하는 터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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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14: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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