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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컬리 컬킨

last modified: 2015-03-29 05:00:09 by Contributors



Macaulay Carson Culkin
막걸리 걸친 매콜리 카슨 컬킨[2]


1980년 8월 26일 ~

Contents

1. 상세
1.1. 계속되는 사망설
2. 여담

1. 상세


크리스마스에 산타와 함께 필수적으로 만나는 인물

국내판의 성우는 박영남, 손정아(SBS), 오인실(KBS 방영의 마이걸)이 있으며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박영남의 맥컬리 컬킨을 최고로 뽑으며 또 전담 성우로 생각한다. 짱구와 함께 대중적인 전담역중 하나.
일본의 경우엔 야지마 아키코가 맡고 있으며 해당 성우 또한 짱구를 맡고 있기도 하다.

나홀로 집에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덩달아 개초딩 케빈 역을 맡은 그도 큰 인기를 누렸다. 당시 인지도는 지금의 유명 아역 연예인 이상으로 가히 전세계 역사상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아역배우, 세계인의 남동생이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지나친 인기가 되려 독이 되어서 배우 커리어는 물론 인생 자체가 막장으로 굴러떨어졌다.

여러 영화에서 단역으로 활동하다가 1989년 존 휴즈가 감독한 1천만 달러 저예산 영화 벅 아저씨(국내 비디오 제목은 벅 아저씨는 못 말려)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와 이 영화가 북미 6675만 달러를 벌면서 흥행하자 알려지게 된다. 이 때, 감독인 존 휴즈의 눈에 띄어 그가 각본과 제작을 맡은 나홀로 집에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이 중간에 야곱의 사다리에서 후반부 카메오로 나오기도[3] 했고, 1990년 <나 홀로 집에>가 엄청난 대박을 거두면서 전성기이던 1990년 초반에는 1천700만 달러(228억6천5백만원)에서 5천만 달러(무려 672억 5천만원.뭐 절반은 세금으로 빠져나가지만...) 상당의 출연료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나홀로 집에 1, 2 말고는 대박 성공작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1991년에 휴즈 제작에 크리스 컬럼버스가 감독한 영화 리 더 론리도 기대 이하 흥행인 2183만 달러로 부진했다. 그나마 <마이 걸>이 6천만 달러로 제작비 1600만 달러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여기에선 죽는 배역이라 속편에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어린 아나킨 스카이워커 역으로 기획되기도 했다.[4] 다만, 당시 제작기술 및 여러가지 사정으로 조지 루카스가 6년 넘게 연기하면서 컬킨의 스타워즈 출연도 없던 일이 되었다.

나홀로 집에 2을 찍으면서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억지로 출연한 <위험한 아이/Good Son(1993)>에서는 정신이상적인 꼬마를 연기했다. 제작비 1600만 달러에 4450만 달러 북미수익으로 흥행은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케빈이 책을 읽으면서 칼 휘둘러대는 격"이라는 비웃음까지 받으며 서서히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험한 아이> 다음에는 자신이 발레까지 배워가면서 나온 영화 호두까기 인형이 제작비 2천만 달러에 흥행 수익 211만 달러라는 참혹한 성적을 거두었고 그 다음 영화인 아빠와 한판승, 애니메이션과 합성한 영화 페이지 마스터같은 작품들이 계속해서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처절하게 참패하면서 영화인생도 꼬이기 시작한다. 결국. 아버지인 킷 컬킨[5]이 대리인으로 마지막에 참여한 영화 치 리치[6]조차도 3800만 달러라는 부진한 성적[7]으로 막을 내리면서 그 유명세는 확실히 묻혀버렸다. 이어 1995년에 부모는 이혼했으나 재산과 양육권을 가지고 법정싸움까지 가게 되었고, 이후 자신도 1998년에 레이첼 마이너와 결혼하였으나 2000년에 이혼하였으며, 결국 부모와도 결별했다. 부모와는 재키 쿠건법[8]으로 이전부터 원수지간이 되었기에 그다지 신경도 안 썼지만.

결국, 이런 저런 일로 구르다가 마약에 손을 대고 말았으며, 마약흡연 혐의로 체포당하고 만다. 설상가상 친누나 다코타 컬킨은 2008년 불시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역 때 깜찍했던 얼굴도 생고생을 거치면서 말상이 되어, 영화를 즐겁게 보았던 뭇 누님들을 실망시켰다. 2010년 1월 찍은 사진에선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폭삭 삭아보여서 소년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고 미술에 전념하고 있다. 2012년 9월 동료 예술가인 아담 그린, 토비 굿생크와 함께 1년동안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회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예술가로서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해보자.

마약으로 인해 시한부 인생이라는 말이 돌았는데 컬킨의 대리인은 건강상태는 완벽하다며 반박했다.

2013년 개봉 예정이다가 미뤄져서 2015년에 개봉예정인 영화 서비스 맨(Service Man)에 캐스팅 된 상태라고 한다. 그동안 크고작은 영화활동은 꾸준히 해왔지만, 이번에 재기가 가능할 지 팬들이 기대하는 중.

1.1. 계속되는 사망설

2014년 4월 미국 찌라시 언론#을 통해 사망설이 퍼졌으나 거짓 루머인 것으로 판명났고, 11월에 또 한번 사망설이 터졌는데 MSNBC발이라서 정말로 죽은 것일까 하고 여론이 들썩였다.# 하지만 도메인을 자세히 보면 MSNBC의 사칭 계정인데다 저격글까지 올라오는 등 또다른 거짓 루머인 것으로 가닥이 잡히는 중. 유명인 XXX씨 숨쉰채 발견! 드립 치는 한국 기레기들은 양반이었네

2. 여담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과 매우 절친한 사이다. 어릴 때부터 잭슨과 함께 네버랜드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으며, 뮤직비디오에 나오기도 했다. 또한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중 하나인 Black and white 도입부에는 스캣트랙이 하나 들어가 있는데 그게 맥컬리 컬킨의 목소리다. 게다가 잭슨이 성추문 사건으로 힘들어 할 때도 언제나 지지해주던 친구였다.[9] 그러다 보니 잭슨의 자녀인 패리스 잭슨의 대부이기도 하다.


명성이 아직 있을 시절인 1995년에 한국의 CF에 출연한 경력도 있다. LG전자의 일체형 PC 브랜드였던 '심포니홈'의 CF에 2회분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나홀로 집에 시절보다는 많이 자란 터라 약간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 사실 이 당시에는 국내 기업들의 CF 모델 과열 경쟁이 생겨서 맥컬리 컬킨 외에도 샤론 스톤목소리는 강희선, 브룩 쉴즈 등을 비롯한 헐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던 시절이었다.

911 테러 이전 세계무역센터 옥상에 올라가 본 인물이기도 하다. 나홀로 집에 2에 세계무역센터 옥상에서 뉴욕을 감상하는 씬이 있는데 뭉클해 지기도 한다.

동생인 로리 컬킨, 키에란 컬킨[10][11] 모두 배우활동을 하고있다.[12]

최근에는 마음맞는 몇 친구들과 함께 피자 언더그라운드(Pizza Underground)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이름의 유래는 당연히 그 유명한 벨벳 언더그라운드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들을 피자라는 주제에 맞춰 패러디해 부르는 밴드라고 한다. 담당 파트는 카주 및 코러스. Meaty red bacon 앨범자켓은 안 자른 오이피클 사진으로 첫 콘서트 영상

위 밴드의 활동의 일환으로 앤디워홀의 영상패러디한 영상을 촬영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바나나 자켓도 앤디워홀 작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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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0년대 초반 언더테이커는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사진상의 맥컬리 컬킨의 모습은 2000년대 초반 언더테이커와 많이 닮았다.
  • [2]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이 이름 또한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나는 표기다. Macaulay는 '매콜리'가 올바른 표기법이다. 매콜리 카슨 컬킨이 올바른 표기법인데 '맥컬리'가 되려면 McCully 정도로 써줘야 한다. 다만, 린제이 로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이 또한 굳어버려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 [3] 죽은 주인공 제이컵( 로빈스)의 아들로 마지막에 나온다.
  • [4] 영화월간지 로드쇼 1991년 11월호 기사 참고.
  • [5] 이 사람도 역시 배우다. 다만 딱 2편만 출연하고는 빛을 못 본 전형적인 무명배우였다. 참고로 맥컬리 어머니하고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 상태였지만 진흙탕 싸움 끝에 결별하고는 새로운 애인과 함께 아리조나에서 사는 중이라고 한다.
  • [6] 오래된 코믹스 원작이 존재한다. 그것도 무려 1950년대에 탄생한. 하지만 이 원작은 80년대 초반에는 확실히 시들해 졌고, 영화 자체는 맥컬리 컬킨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맥컬리 컬킨을 좀 더 애들처럼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큼직큼직한 소품을 사용해서 상대적으로 맥컬리 컬킨이 작아보이게 하려고 노력까지 했다.
  • [7] 제작비는 4천만 달러. 다만 2차 판권시장으로 그럭저럭 성공하여 2편도 나왔으나 맥컬리 컬킨이 아닌 다른 아역배우가 나온 저예산 비디오 영화로 나와 잘 알려지지 않았다.
  • [8] 1921년 찰리 채플린이 감독, 주연한 흑백 무성영화 키드로 유명한 아역 연예인 재키 쿠건(1914~1984)이 번 돈을 어머니가 멋대로 쓴 것을 두고 오랫동안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는데, 이에 그의 이름을 따 아역 연예인의 재산은 부모가 함부로 쓰거나 차지할 수 없다는 내용의 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당시 재키 쿠건은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나이가 들어 잊혀져서 전 재산도 거의 날렸고, 단역이나 조연배우 정도로만 활동했다. 어머니는 거지꼴이 되어 알콜중독으로 시달리다가 자살같은 사고로 죽는다. 그나마 쿠건은 50대쯤에는 담스 패밀리에서 페스터 삼촌 역으로 많이 알려진 편이다. 맥컬리 컬킨도 이 법으로 재산을 상당수 유지할 수 있었다. 떠도는 루머로는 컬킨의 현 재산은 1700만달러 정도라고 한다. 생활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고, 지금도 맨하탄과 시카고 중심부에 상당히 큰 아파트에서 살고있는 것으로 보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은 남아있는 모양이다. 린제이 로한과는 정 반대상황. 컬킨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치행위나 큰소송에 연류되었던 적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큰돈이 나갈 일은 없었다.
  • [9] 사실상 둘다 어떤 면에서는 동병상련을 겪었던 인물들이다. 어린 시절에 이미 유명세를 탔던 것도 그렇고.
  • [10] 영화 무비43에서 엠마 스톤과 서로디스하던 마트 직원을 연기한 남성. 또한 친형인 맥컬리와 함께 나홀로 집에 1,2에 모두 출연했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친형제가 아닌 사촌 사이로 나온다. 형제의 피는 못 속이는지 외모가 무척 닮았다.
  • [11] 마약중독에 걸린 형을 키에란이 헌신해서 돌봐주었다.
  • [12] 참고로 동생들이 말하길 "차라리 우리가 고아였으면 형의 인생도 이따위로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며 누나도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진 않았다 ."라고 말할 만큼 부모를 싫어하고 있으며 심지어 두 사람은 부모를 부모취급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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