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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홀리데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No.7
맷 홀리데이(Matthew Thomas Holliday)
생년월일 1980년 1월 15일
국적 미국
출신지 오클라호마주 스틸워터
포지션 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신체조건 193cm 105kg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7라운드
소속팀 콜로라도 로키스(2004~2008)
오클랜드 어슬레틱스(200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009~ )


1. 개요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의 강타자. 포지션은 좌익수. 세인트루이스의 타선을 이끄는 선수. 별명은 대디(Big Daddy)와 더 스틸워터 스팅어(The SteelWater Stinger). 그리고 해외야구 갤러리에서의 별명은 산기꾼.[1]

커리어 전체적으로 꾸준히 3할에 20~30홈런 이상은 기대할 수 있는 활약은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은근히 잔부상이 많은 편이라서 의외로 실가동 자체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다. 주자가 득점권에 있는 클러치 상황에서 다소 부진하다는 점이 팬들에게 까임거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구안과 장타력 모두 뛰어난 정통 우타거포도 그리 흔한 편은 아니다.

2. 커리어

2.1. 콜로라도 로키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콜로라도 로키스의 지명을 받아 메이저리그에 뛰어들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미식축구와 야구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였기 때문에 미식축구로 가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있었지만, 다소 낮은 지명순번인 7라운드 지명을 받고도 그냥 야구 쪽을 택했다. 사실 이는 그의 가족이 모두 야구 관련 가족이고, 특히 그의 삼촌이 콜로라도의 스카우트였다는 사실이 더 컸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경력은 쩔어서 그의 모교인 스틸워터 고교에서는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시켰다.

어쨌든 마이너리그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기량을 다진 후, 2004년 주전 외야수들의 부상을 틈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신인치고는 제법 준수한 성적인 14홈런 57타점을 기록하면서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5년에도 다시 19홈런 87타점을 기록하면서 슬슬 재능을 보여주더니, 마침내 2006년부터 완전히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2006년 0.326 34홈런 114타점으로 래리 워커가 떠나고, 토드 헬튼이 노쇠한 팀 타선의 리더로 일약 떠오른다. 그리고 2007년에는 0.340 36홈런 137타점을 기록하면서 최다안타 1위(216개), 타율 1위, 타점 1위, 2루타 1위(50개)를 차지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팀도 막판 13승 1패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찍고, 와일드카드 원게임 플레이오프를 통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극적으로 제치면서 PO에 진출했고, 급기야 7전승으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등극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도 0.333 2홈런 4타점을 활약하며 챔피언십 MVP에 올랐다. 이 때의 기세를 일컬어 Roctober라고 하는데, 이 록토버 돌풍의 주역이 바로 맷 홀리데이였다. 하지만 정작 리그 MVP는 유격수로 30홈런을 친 지미 롤린스에게 간발의 차로 뺐겼다.

2008년 부상 여파로 살짝 주춤하기는 했지만, 25홈런 88타점을 기록하고, 0.320의 타율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강타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의 에이전트는 스캇 보라스였고, 이제 FA까지 1년 남은 타자와 장기 계약이 어려워지자, 결국 콜로라도는 결단을 내린다. 마침 새롭게 들어온 신예 트로이 툴로위츠키에게 팀의 리더를 내주고, 그를 트레이드 카드로 쓴 것. 때마침 연고지 이전이 무산되면서 우승에 도전할 필요성이 생긴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그를 원했고, 그 결과로 그는 휴스턴 스트리트, 그렉 스미스, 카를로스 곤잘레스와 트레이드되었다.

2.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문제는 이 트레이드는 오클랜드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 리그의 변동과 타자에게 불리한 오클랜드의 홈구장 콜로세움의 영향 때문인지 초반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며 팀 타선의 중심을 기대한 빌리 빈의 구상을 여지없이 좌절시켰다.

게다가 오클랜드의 구장은 언제나 비어있다며 이런 텅텅 빈 구장에서는 뛸 의욕이 나지 않는다는 팀디스성, 태업성 발언까지 겹치며 팀내의 지지도를 잃었고, 시즌이 진행될 수록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OPS를 0.800 이상으로 끌어올리긴 했지만, 결국 2009시즌 PO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한 오클랜드는 태도의 문제까지 겹친 홀리데이를 영입 후 반시즌만에 다시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았다.

2.3.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침 트레이드 직전에 리그와 구장 적응을 끝내며 스탯을 미친듯이 끌어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팀들이 주목했지만, 알버트 푸홀스 혼자 타선을 이끌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그를 데려갔고, 이 선택은 완전히 적중했다. 2009시즌 남은 63경기 동안 0.353 13홈런 55타점을 기록하면서 맹활약한 것. 이 때문에 세인트루이스는 2009년 PO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빌리 빈이 너무 성급하게 할리데이를 처분했다[2]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트레이드로 얻어온 유망주들 역시 폭망하면서 본인 최대 흑역사 트레이드로 남게 되었다.[3]

하지만 홀리데이는 큰 실수를 저지르는데, 바로 2009년 디비전시리즈에서 9회초 2사 후에 어이없는 낙구로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한 것. 문제의 그 장면 이 때문에 카즈는 조기 광탈하고 만다. 당시 사건에 대한 세이버메트릭스적 분석. 하지만, 그 타격실력은 정말 아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보라스와의 지리한 협상 끝에 7년간 120M으로 잡는데 성공했다. 그 뒤의 칼 크로포드라든지, 워싱턴 내셔널스로 간 제이슨 워스 등의 먹튀들의 계약에 비하면 결과적으로 아주 저렴한 계약이 되었다고 재평가받는 분위기.(...)[4][5]

FA계약 이후 첫 해인 2010년, 홀리데이는 .312 .390 .532 28홈런 103타점이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푸홀스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었다. 하지만 팀은 신시내티 레즈에 이은 NL 중부지구 2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1년에도 .296 .388 .525 OPS .912를 치는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다. 다만 부상으로 결장이 잦아 결국 30홈런 100타점 달성에는 실패하고 22홈런 75타점으로 만족했다.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NLCS에선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월드 시리즈 진출을 견인했고, WS에선 부진했지만 생애 첫 우승 반지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푸홀스가 팀을 나간 2012년 초반에는 3번을 치면서 득점권에서 잉여 모드로 부진을 거듭하면서 카즈 팬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157경기 .295 .379 .497 27홈런 102타점이라는 성적으로 다시 한번 모범 FA의 위용을 뽐냈다.

2013년에는 병살타 신기록을 세울 기세로 병살타를 31개나 치며 병살왕에 등극했고 전반기에 다소 삽질을 하며 까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300 .389 .490 22홈런 94타점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며 먹튀들이 판을 치는 2010년대 FA 계약자들 중 군계일학의 행보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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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산 + 사기꾼. 오클랜드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진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친화구장인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쓰면서 어마어마한 스탯을 찍어댔지만 오클랜드로 트레이드 된 후 투수친화구장인 콜리세움을 홈으로 쓰면서 초반에 OPS 6할대를 찍으며 빌리 빈의 기대를 저버린데 대해 해야갤러들이 구장빨 타자라고 폄하하면서 붙인 별명이다. 사실 홀리데이 뿐만이 아니라 단테 비셰트, 안드레스 갈라라가, 비니 카스티야, 래리 워커, 토드 헬튼, 트로이 툴로위츠키, 카를로스 곤잘레스 등 많은 로키스 강타자들이 구장빨 논란으로 인해 평가절하당하는게 일상이긴 하다.(...) 참고로 쿠어스 필드는 해발 1610미터의 고산지대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이 별명은 세인트루이스 시절에 히 드랍 더 볼을 시전하면서 더욱더 불리기 시작했다
  • [2] 2009 오클랜드 팀 성적 보다시피 홀리데이가 4월에 그렇게 삽질을 했음에도 시즌 끝나고 나니깐 팀내 최고의 OPS를 찍은 타자였다. 그리고 유일한 8할대 OPS.
  • [3] 다만 홀리데이는 규모가 큰 장기계약을 치룰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오클랜드의 주머니 사정상 애초부터 단기간의 성적을 뽑아내기 위해 영입한 선수였다. 그 탓에 처음 오클랜드로 영입되던 시점부터 그가 오랜 기간 오클랜드에 머물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기대이하의 성적과 위에서 언급한 발언들이 겹쳐 오클랜드는 그를 처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 [4] 사실 카디널스가 홀리데이를 잡은 건 알버트 푸홀스의 요청 때문이기도 했다. 푸홀스가 전력보강을 해서 강팀을 만들지 않으면 팀을 떠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멘트를 여러 번 날렸으니... 다만 정작 푸홀스는 맷홀의 계약 직후에 "왜 쟤 연봉이 나보다 많음?"이라며 징징거렸다.(...)
  • [5] 2011년 초에 푸돌이가 재계약 협상이 틀어지자 홀리데이는 "내 연봉 나중에 주고 푸돌이 잡으셈"이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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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4-09-29 13: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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