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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

last modified: 2015-04-09 22:59:10 by Contributors


이름 Mariah Carey
생년월일 1970년 3월 27일
출생 미국 뉴욕 Long Island
신체 175cm
데뷔년도 1988년
가족 슬하 1남1녀
홈페이지, 트위터, 인스타그램


Contents

1. 개요
2. 음악 인생
2.1. 화려한 데뷔
2.2. 전성기 시절
2.3. 새로운 변화
2.4. 흑역사
2.5. 화려한 복귀
2.6. 복귀 이후
2.7. 두 번째 침체기
3. 음반
3.1. 앨범
3.2. 싱글
3.2.1. 빌보드 1위
3.2.2. 빌보드 2위
3.2.3. 빌보드 3위~10위
3.2.4. 빌보드 10위~20위
4. 필모그래피
5. 비판과 논란
5.1. 외모 논란
5.2. 나이를 잊은 디바?
5.3. 목소리와 립싱크 논란
5.3.1. 목소리의 악화
5.3.2. 립싱크 논란
5.4. 미국형 가수
5.5. 비교적 약한 콘서트
5.6. 기타 확인되지 않은 논란
5.6.1. 싱글 덤핑 논란
5.6.2. 페이올라 논란
6. 기타
6.1. 남자 관계
6.1.1. 토미 머톨라
6.1.2. 에미넴과의 관계
6.1.3. 마크 수댁
6.1.4. 닉 캐넌
6.1.5. 기타
6.2. 타 가수와의 관계
6.2.1. 휘트니 휴스턴
6.2.2. 셀린 디옹
6.2.3. 마돈나
6.2.4. 니키 미나즈
6.2.5. 제니퍼 로페즈
6.2.6. 기타 다른 가수들과의 관계
6.2.7. 머라이어 키즈
6.3. 워커홀릭
6.4. 별명
6.5. 내한공연
6.6. 갑질 논란

1. 개요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R&B의 최고봉이자 전설적인 디바
90년대 미국 최고인기 가수
원조 아메리칸스윗하트
The Voice
1991년 모습

90년대 최고의 가수이자 완전히 망한 상태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몇 안 되는 여가수. 여가수들의 수명이 대체로 짧다는 것을 보았을 때 이만큼 성공한 여가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MTV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소리 1위에 선정되었다. 수 많은 여가수들의 롤모델이며 그녀때문에 가수가 된 여가수들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밑에서 설명하는 머라이어 키드들이 그 예이다.

전세계 1억 7천만 이상의 앨범 판매고와 2억 장이상의 레코드 판매(앨범+싱글)를 가지고 있으며 여가수로는 마돈나셀린 디옹에 이어 3위, 미국에서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 이어 앨범 판매고 여가수 2위.전세계 통틀어 음반판매(앨범+싱글) 순위 8위에 빛난다. 30세에 이미 빌보드 Hot 100 차트 넘버원을 15곡이나 만들어냈으며 38세까지 18곡을 만들어내면서 비틀즈에 이어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Dreamlover), 앤비)(We Belong Together, Butterfly), 가스펠(Fly Like A Bird, Make It Happen, My Saving Grace), 소울, 힙합(It's Like That, Migrate 등), 발라드(All I Ever Wanted), 덜트 컨템포러리, 댄스(Obsessed), 라틴(My All, After Tonight), 클럽(앨범 《Glitter》), (Bringin'On The Heartbreak), 컨트리(Make It Look Good), 레게(Cruise Control) 오페라 등 갖가지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형 가수.

Hot 100 18곡의 1위뿐 아니라 그 하위 부류인 알앤비/힙합 차트에서는 8곡의 넘버원, 팝 차트에서는 4곡, 댄스/클럽 차트에서는 15곡,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까지 8곡의 넘버원을 뽑아내며 빌보드의 메인 차트들 중 록 차트와 컨트리 차트를 제외한 모든 차트에서 1위곡을 뽑아냈다. 특히 그녀의 곡 〈One Sweet Day〉는 16주간 1위를 차지해 19년 넘게 깨지지 않는 기록이 되었으며 그녀의 곡 <We Belong Together> 또한 14주 1위로 이 부문 공동 2위를 기록중이다. 하지만 2015년 3월 현재 그녀의 기록이 마크 론슨과 브루노 마스에 의해 깨질 위험에 있다. 기록을 지키기위해 미국팬들의 힘이 필요하다. 그녀의 캐롤곡〈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때가 되면 빌보드 Hot100에 재진입을 하는 기염을 토한다. 또한 저 전설의 캐롤은 피지컬 판매량 1600만장 디지털 판매량 350만건으로 약 1800만장의 싱글 판매고를 올렸다. 이는 피지컬로는 전체 10위 피지컬+디지털로는 전체 8위이다.

미국뿐만이 아닌 한국일본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가수로서 캐럴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흘러나오고 있으며 곡 〈Hero〉는 영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머라이어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여자 가수이다. 2위가 S.E.S.

일본에서도 에이브릴라빈과 레이디가가를 능가하는 엄청난 인기였는데 <#1's>는 280만장을 팔며 일본내 해외앨범판매량 1위이다. 심지어 침체기의 앨범이였던 <글리터>마저도 100만장을 팔았다.그녀의 일본내 앨범판매량은 1700만장이며 싱글판매량 300만장으로 일본에서 2000만장의 음반판매고를 올리고 있고 96년,98년도에는 인터넷도 없는시절에 도쿄돔공연을 매진시켰다.
일본 해외가수판매량 1위이다. 일본의 왠만한 대형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판매량이다.

음역대가 0옥타브 레#(Eb2)부터 5옥타브 솔#(G#7)까지 총 5옥타브 3노트이다. Eb2 (0옥타브 레#)는 〈You Had A Chance〉에서 나오고 근데 당최 어디있다는건지... G#7 (5옥타브 솔#)은 1991년 〈Emotions〉 라이브에서 한번 나온 후 종적을 감췄다가 23년 후인 2014년 〈Heavenly (No Ways Tired / Can't Give Up Now)〉에서 한 번 더 출연한다. 자세한 기록은 http://youtu.be/d_5mIaJin3g 참고. 2014년 새로운 앨범에서 갱신되었다. 이 정도의 음역대를 가진 메이저 가수들은 전세계를 통틀어도 머라이어밖에 없다.

최고음 G#7까지 올라가는 팝 가수나 소프라노들은 아주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종종 있긴 한데 핵심은 최저음이 Eb2라는 것. 웬만한 남자가 내는 중저음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머라이어는 콘트랄토인 셈. 중음도 안비는 데다가 완벽한 발성으로 구사한다는 것이 더 놀라운 점이다. Hot 100 넘버원 18곡 중 잭슨 5의 〈I'll Be There〉 리메이크를 제외한 17곡 모두를 본인이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머라이어의 노래들은 〈Hero〉같은 몇몇 곡들을 제외하면 난이도가 미친 듯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히어로의 곡 난이도가 낮다고 보기는 힘들다. 중간 정도. 쉬운 노래를 꼽자면 〈I Still Believe〉 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마저도 후반부에 4옥타브 가성이 있지만 진성 부분은 무난한 편. 팬들이 꼽는 미친 난이도 노래는 〈Butterfly〉, 〈Outside〉, 〈Lead the Way〉, 〈Fly Like a Bird〉, 〈Anytime You Need a Friend〉, 〈There's Got to Be a Way〉, 〈Whenever you call〉, <If It's Over> 등 이다.

2. 음악 인생

2.1. 화려한 데뷔

아일랜드백인(미국 국적)인 어머니와 베네수엘라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다인종 혼혈이다. 그런데 백인으로 보면 곤란하다. 일각에서는 머라이어가 만약 동양인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모든 인종이 결합된 아이라는 얘기도 있다. 부모는 오페라 가수였다. 부모가 세 살 때 이혼하여 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이때 집안 환경이 막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머라이어에겐 언니가 있는데 이 언니는 아동 성추행을 당하고 나중에 매춘부가 되어서 가수 지망생이던 머라이어에게 용돈을 주면서 지원해 주기도 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머라이어를 곤란하게 했다. 90년대 후반 미국의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와의 인터뷰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온다. 머라이어 캐리의 동생은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언니가 문제였다. 성공한 이후 머라이어는 언니가 바른 길을 가기를 원했지만 지원해준 돈은 흥청망청 써버리고 여러모로 머라이어를 힘들게 했다. 아마도 머라이어가 토미 머톨라와 에미넴 다음으로 가장 싫어하는 인물일 듯. E=MC 앨범의 〈I Wish You Well〉에서 잘 되기를 빌었다.

뉴욕으로 이사한 후에는 가수 브랜다 K. 스타의 보조 가수로 활동했다. 이후 머라이어는 #1's 앨범에서 브랜다의 〈I Still Believe〉를 리메이크해 은혜를 갚았다. 브랜다와 함께 파티에 갔다가 컬럼비아 레코드사의(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SME) 토미 머톨라를 만나 데모 테이프를 건네주었는데 머톨라는 파티를 떠난 후에야 노래를 듣고 감명해 다시 파티에 돌아가 보았으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결국 머라이어를 다시 찾아내 음반 계약에 성공했다. 머라이어 캐리 주연의 영화 《글리터에 상세히 나와있다. 이 영화는 2001년 9월 11일에 발매된 영화. 2000년대 최악의 영화 3위에 당당히 랭크. 머라이어 본인은 최악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흑역사.

그 후 캐리는 동명의 앨범 《Mariah Carey》로 데뷔한다. 앨범 수록곡 모두에 본인이 작곡에 참가했으며 평단의 환영을 받았다. 판매량은 미국 내 1000만 장,월드와이드 1500만 장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이 앨범에서만 빌보드 Hot 100 1위곡을 4개나 뽑아내기에 이른다. 바로 〈Vision of Love〉, 〈Love Takes Time〉, 〈Someday〉, 〈I Don't Wanna Cry〉. 이에 그래미도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Best New Artist상을 수여하게 된다.

그 후 국내에는 돌고래(Whitsle, 하이노트) 소리로 유명한 곡 〈Emotions〉가 수록된 2집 앨범 《Emotion》을 발표하지만... 소포모어 징크스를 이기지 못하며 평단에게 기교만 있는 앨범이라고 가차없이 까이며 판매량도 미국 내4 50만 장,월드와이드 800만 장으로 급 추락하게 된다. 게다가 립싱크 의혹과 다른 사람이 불러 Best New Artist상을 받은 리 바닐리와 같이 다른 사람이 불러 준 거 아니냐는 의혹까지 흘러나오니 흠좀무. 데뷔 당시 싱어송라이터라기엔 모델이나 영화배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도 이 논란에 한 몫.

그러자 화난 머라이어는 다음 해 MTV를 통해 라이브 공연을 열어 충공깽을 시전했다. 이 공연을 앨범으로 발매한 MTV Unplugged의 수록곡 〈I'll Be There〉(원곡 잭슨 파이브) 는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게다가 이 앨범은 전 세계 700만장이상이 팔려나갔다.

2.2. 전성기 시절

그 다음 해인 1993년, 머라이어 캐리는 전세계 3,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 《Music Box》를 내놓는다. 첫 싱글 〈Dreamlover〉는 8주 1위, 〈Hero〉도 덩달아 1위를 기록하게 된다. 그 외 <Without You>를 비롯해 〈Anytime You Need A Friend〉 등 싱글이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국내에서도 판매고 100만 장을 찍는다. 특히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Without You는 머라이어의 싱글 중 두번째로 전 세계적인 히트를 거둔 곡. 마이너했던 고전 밴드 배드핑거의 곡을 리메이크했다. 지금도 자주 들리는 세기적인 리메이크곡 중 하나. 국내에서 팝 앨범 100만 장 판매량의 기록은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셋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이렇게 《Music Box》가 대박을 치고 루서 밴드로스 옹과 함께 부른 〈Endless Love〉(국내에선 우리 결혼했어요에 등장)도 인기를 끌자 94년 크리스마스 앨범계의 전설로 평가받는 《Merry Christmas》를 공개하는데... 수록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국내외 많은 가수들이 따라불러 매년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캐럴 음원 차트를 점령해버려 빌보드지에서도 역대 크리스마스 송 No.1으로 선정했다. 이 전설적인 캐롤앨범은 총 1500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캐롤앨범이 되었다.

그리고 1995년에는 《Daydream》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도 역시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으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이 앨범의 싱글 또한 대박을 치면서 본격 3대 디바 빌보드 쟁탈전이 벌어졌다. 앨범 발매 전 팬들의 빗발치는 요구로 앞당겨서 발매한 첫 싱글 <Fantasy>는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에 이어 빌보드 역사상 두번째 1위 핫샷 데뷔곡이 되었고 여성가수로는 최초이다. 이 곡은 2일 동안 무려 38만장이 팔려나가서 단 2일만의 판매량 집계로 1위에 오른것이며 라디오 공개는 이 후에 했기 때문에 오직 판매량으로 1위에 올랐다. 심지어 핫샷 데뷔 후 1~2주 버티고 하락하는 다른 핫샷 데뷔곡들과 달리 이곡은 8주동안이나 정상을 지켰다. 그 후 1위를 뺏은 가수가 바로 휘트니 휴스턴이다. 휘트니의 <Exhale> 이 <Fantasy> 를 끌어내리고 핫샷 1위 데뷔를 한다. 하지만 1위의 기쁨도 잠시.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투맨이 함께 부른 〈One Sweet Day〉가 빌보드 정상을 16주간 차지해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싱글 덤핑 등 말이 많아 머라이어 캐리 팬들에겐 양날검. 그래도 역시 곡은 좋다. 덕분에 휘트니의 <Exhale> 은 11주간 2위를 기록하면서 신기록 수립과 동시에 휘트니 팬들은 일제히 머라이어를 원망했다(...) 게다가 머라이어 캐리의 <One Sweet Day> 를 끌어내린 곡은 바로 셀린 디온의 <Because You Loved Me> 이다. 저 곡이 6주 동안 1위를 차지하는 동안 머라이어의 3번째 싱글이자 팬들이 <One Sweet Day> 대신 최장기 1위를 했어야 한다고 입모아 말하는 <Always Be My Baby> 가 나왔다. 셀린 덕분에 핫샷 1위 데뷔를 놓치고 2위 데뷔(...) 게다가 셀린한테 밀려 4주 2위후 1위를 드디어 거머쥐고 장기집권을 하나 싶었더니 2주 1위하고 또 다른 곡에 밀려 5주 2위를 하며 총 9주 2위를 기록해 머라이어의 최장기 2위곡이 된다.

1996년 이 해에 머라이어의 인기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르렀다. 일본 도쿄돔 5만석 공연 3일분, 그러니까 15만석을 3시간만에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하고 미국에서도 잘 나가는 가수만 한다는 뉴욕 Medison Square Garden 공연도 매진시키며 첫 대형투어는 대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그래미에선 8부문에 지목하고 정작 상은 안줬다(...)

토미모톨라의 앨범 판매량을 위한 싱글 발매 억제때문에 4번째 싱글은 발매하지 않았다. 앨범은 총 2500만장이 팔리고 미국 내1000만장을 팔며 두번째 다이아몬드 인증앨범이 되었다.

2.3. 새로운 변화

1997년 토미 머톨라와의 별거를 인정한 머라이어 캐리는 다음 앨범 《Butterfly》에서 디바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해 탱크톱 등 무리한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앨범은 그럭저럭 중박은 쳤다. 미국기준 전작에 반토막이난 500만장 월드로는 1500만장. 하지만 평단과 매체는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 후로 평론가들에게 가열차게 까이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에선 진모가 유명하다. 그나마 임진모는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 받아들였는데, 1993년 이후 장르 변화로 바로 등돌린 배철수는 아직까지 데뷔앨범으로 돌아오라며 머라이어를 극딜한다. Letting go 가 필요한 시점. 전작 <Daydream>의 후파 덕분에 첫 싱글 <Honey> 는 핫샷 데뷔를 해 머라이어 캐리는 현재 독보적인 핫샷 데뷔곡 최다보유 가수이다. 두번째 싱글 <My All> 도 1위를 차지하지만 첫 1주 1위곡이 되고만다. 놀라운 점은 18곡의 1위곡 중에서 1주 1위곡은 단 2곡뿐이다.

위기를 느낀 머라이어는 앙숙지간이었던 휘트니 휴스턴와 결합해 《이집트 왕자》의 삽입곡인 〈When You Believe〉를 내놓으나 이미 두 사람은 셀린 디옹에 발려 시망. 특히 휘트니는 이 뒤로 남편 때문에 약물에 빠져 더더욱 망했고 결국 뚜렷한 재기를 못한 채 사망한다.

그 후 1998년 하반기에 자신의 1위곡들과 신곡 몇곡을 수록한 베스트앨범 <#1> 가 발매된다. 이 앨범은 1800만장의 판매고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해외앨범이 되었고, 앨범의 싱글 <I Still Believe> 는 4위를 기록한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공군기지 공연를 촬영한 것으로 머라이어가 지금과 달리 얼마나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메리칸 스윗 하트였는지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99년, 엄청난 노출을 시도한 《Rainbow》 앨범을 내놓으나 〈Heartbreaker〉에서 커밍아웃소녀 컨셉(당시 머라이어 캐리는 30세)으로 역시나 또 까이고 만다. 앨범은 전작에 비해 판매량이 더욱 하락하여 총판 1000만장에 그치고 만다. 이 때가 앨범시장 황금기였던 데다가 불과 3년 전까지 2천만장 이상씩 팔아버리던 머라이어였기에 저 앨범판매량도 높은 건 아니다. 하지만 역시나 넘버원 곡 두 개를 만들어내며 10년동안 빌보드 1위곡 15개를 만들어낸 아티스트로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해 빌보드에서 선정한 1990년대를 빛낸 아티스트 1위에 랭크되었다. Billboard Music Award 에서 대중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 90년대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는 장면은 머라이어의 인기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2.4. 흑역사

2000년 소속사와 결별하고 새 소속사와 엄청난 금액에 재계약한 후 2001년 반자전적 내용을 다룬 영화 《글리터》를 발표한다. 그런데 하필 발표날이 9.11 테러일이여서 망. 역시나 앨범도 망. 평론가들의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었다. 싱글 〈Loverboy〉는 2위까지 올라가지만 1위를 못해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1위를 지켜오던 기록은 깨지고 말았다. 토미 머톨라가 방해 공작을 위해 머라이어가 샘플링으로 쓰려던 곡을 제니퍼 로페즈의 곡으로 선수쳐 사용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쿨하지 못한 남자. 이런저런 이유로 본인도 싫어하는 듯. 일례로 내한 공연 당시에 한 팬이 여러 앨범과 이 앨범을 함께 사인받으려고 했는데 이 앨범에만 사인을 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앨범판매량은 바닥을 치게 되어서 총판 300만장에 그친다. 현재 앨범시장에 빗대어 본다면 50만장 정도 팔렸다고 볼 수 있다.

소속사로부터 엄청난 위약금을 받고 계약해지된 머라이어는 또 소속사를 옮겨 앨범 《Charmbracelet》을 내놓지만 싱글 〈Through The Rain〉이 최악의 성적을 거둔다. 캐리는 지금까지 모든 첫 싱글(〈Vision of Love〉, 〈Emotions〉, 〈Dreamlover〉, 〈Fantasy〉, 〈Honey〉, 〈Heartbreaker〉)이 1위에 올랐고 그 망했다는 〈Loverboy〉도 2위였다. 하지만 〈Through The Rain〉은 81위. 더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결국 또 패망. 이러니 한 물 간 가수라는 얘기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기에 역시나 줄기차게 등장했다. 앨범판매량은 200만장...현재 시장으로 본다면 30만장이다.

2.5. 화려한 복귀

2005년, 머라이어 캐리가 엄청난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사실 이런 얘기는 글리터 때도 있었다. 이어 나온 첫 싱글 〈It's Like That〉은 머라이어가 트렌드를 수용한 힙합 아티스트로 제대로 변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앨범 《Emancipation of Mimi》가 머라이어 캐리의 앨범 첫 주 최다 판매량을 갱신하면서 과거의 디바가 현재의 트렌드와 만났을 때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지 보여주었다. 두번째 싱글 〈We Belong Together〉는 무려 14주동안 1위를 차지하면서 그 해 미국 내 최고의 히트곡으로 기록됐다. 이때 〈We Belong Together〉에 희생당한 곡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리애나의 데뷔곡 〈Pon De Replay〉와 푸시캣돌스의 〈Don't Cha〉가 있다. 이어 세 번째 싱글 〈Shake It Off〉와 〈We Belong Together〉가 나란히 2, 1위를 차지함으로써 〈We Belong Together〉가 〈Shake It Off〉의 1위를 막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어 머라이어 캐리는 신곡과 리믹스 네 곡을 묶은 《Platinum Edition》을 발매하여 싱글 〈Don't Forget About Us〉 마저 1위에 올려놓는 괴력을 발휘한다. 그래미는 15년 만에 그녀에게 상을 수여하기에 이른다. 이 때가 앨범시장 불황기가 시작할 때였으나 앨범은 13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간다.

3년 후 2008년, 첫 싱글 〈Touch My Body〉가 발표되고 엄청난 다이어트와 뮤비가 함께 화제가 되어 여가수 첫주 최고 디지털 판매량 기록을 갱신하며 1위를 차지하게 된다. 현재까지 마지막 1위곡인데 이 곡까지 18곡의 1위곡을 가져 비틀즈에 이어 두 번째로 1위곡을 많이 배출해낸 가수로 등극했다. 솔로로는 공동 1위. 새 앨범 《E=MC²》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05년에 갱신했던 개인 첫주 최다 판매 기록을 다시 또 갱신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앨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Emancipation=Mariah Carey의 2번째 전성기' 의 줄임말로 보임) 전작을 상당히 의식했던 탓에 〈Butterfly〉부터 줄곧 까왔지만 05년엔 약간 조용히 한 매체들에서는 역시나 히트 공식의 답습이란 혹평을 내놓는다. 그런데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머라이어 캐리 최고의 앨범으로 평가받는 듯하다. 두 번째 싱글 〈Bye Bye〉는 팬들 사이에서 거의 최악의 싱글컷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유는 노래가 안 좋아서라기보다 이 싱글을 내고 닉 캐넌과 결혼을 한 뒤 이 앨범의 활동을 접어버렸기 때문.아쉽게도 앨범 활동은 길지 못했으나 앨범은 500만장이상이나 팔려나가면서 전작의 성공을 이어갔다.

2.6. 복귀 이후

2009년 머라이어 캐리는 에미넴을 디스하는 곡 〈Obsessed〉로 복귀를 한다. 이 곡은 단 한번의 프로모션으로 다운로드 120만 건이라는 수치를 남기며 의외로 선전하지만 7위에 그친다. 그 후 발매된 앨범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은 머라이어와 대립각을 세우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 밀려 3위를 차지하고 판매량도 전체적으로 저조해 머라이어의 앨범 중 최초로 플래티넘 인증(100만 장)을 못 받고 출하량 인증으로 겨우 50만 장을 넘겨 골드 인증에 그쳤다.전 세계 150만장으로 그나마 폭망이 아닌 망으로 그쳤다. 특히 이 시기의 뮤직비디오들 〈Obsessed〉, 〈I Want To Know What Love Is〉, 〈H.A.T.E.U〉은 막장으로 유명한데... 흠좀무. #, #, #

2010년 모습
2010년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의 리믹스 앨범 《Angels Advocate》가 발매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얼리샤 키스, ne-yo, 니키 미나즈, 리 제이 블라이즈, 알 켈리, 치 메인, 릴 웨인, 레이 송즈, 루다크리스 등 여러 힙합&알앤비 아티스트의 피처링 녹음까지 완료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본작은 머라이어 커리어 사상 가장 이질적인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그 후 두 번째 크리스마스 앨범 《Merry Christmas Ⅱ You》를 발매해 활동하였으나 쌍둥이 임신에다가 크리스마스 앨범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몇 개월 활동하지 못하고 휴식을 하는 듯 했으나 여전히 새 앨범을 준비중이다. 게다가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어셔가 참여한다는 소식에 팬들은 꽤 기대 중. 노래 제목들도 제대로 힙합삘이다. 태교를 힙합 음악으로 할 기세

2011년 5월 머라이어는 예정 일자보다 조금 늦게 쌍둥이를 출산하였고 남자 아이의 이름은 모로칸 스콧 캐넌, 여자 아이의 이름은 먼로 캐넌이라고 한다.

6월 머라이어 캐리의 남편인 닉 캐넌은 레즈 힐튼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내로 새로운 앨범이 나온다고 밝혔다. 자장가 앨범이라는 설이 있지만 원래 여가수들은 출산하면 그런 소문은 다 도는지라... 대표적으로 셀린 디옹. 그리고 진짜로 자장가 앨범을 냈다.

2012년 7월, 아메리칸 아이돌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2012년 8월 초에 새로운 싱글이 발표되었다. 싱글 제목은 〈Triumphant (Get 'Em)〉이며 피쳐링으로는 릭 로스와 미크 밀이 참여했다.


평론가들은 이 곡이 너무 객원 래퍼들에게 의존한 나머지 머라이어의 보컬이 묻혀버렸다는 점을 공통으로 지적했다. 이러한 점은 〈Triumphant (Pulse Radio Remix)〉에서는 그녀가 전곡을 혼자서 부르면서 희석되었으나 라디오 에어플레이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 싱글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응은 한마디로 '무관심'이었다. 익명의 한 음악 관계자는 "만약 사람들이 머라이어의 신곡을 찾아서 듣고 악평을 했다면 그래도 최소한 사람들이 머라이어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라도 하죠. 머라이어의 〈Triumphant〉는 그런 악평조차도 많지 않았습니다. 라디오에서 잘 틀어주지도 않았죠. 40이 넘은 여가수가 팝 신에서 여전히 관심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2013년 2월 19일에는 디즈니 영화 《OZ》의 사운드트랙으로 실리게 될 〈Almost Home〉이라는 곡이 발표되었다. 머라이어 캐리의 공식홈에서 들어볼 수 있다.

2.7. 두 번째 침체기

2013년 5월 6일, 하반기 발표 예정인 앨범 《The Art of Letting Go》에 수록될 새 싱글 〈#Beautiful〉을 발표하였다.


R&B 신성으로 떠오르는 미겔(Miguel, 2013년 〈Adorn〉으로 그래미어워즈 Best R&B송 수상)' 과 함께 한 미드템포 곡으로 Hot 100 차트 15위까지 오르며 선전했다. 싱글 발매 직전 공개된 뮤직비디오에선 다시 고무줄처럼 살이 빠진 모습으로 여전한 실력을 보여주었고 여러 평론가들에게 2013년 Song of the Summer라는 호평을 받으며 곧 발표될 새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해당 싱글은 빌보드에서도 15위에 오르는둥 선전할 듯했다. 하지만 부족한 홍보와 리믹스 뮤직비디오 촬영 중 팔에 부상을 입고 활동중단과 함께 앨범발매 역시 연기되었다. 말이 부상이지 넘어져 갈비뼈가 금이 가고 팔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다. 운동을 하지 못해 체중증가는 덤.

2013년 11월 11일 이벤트형 싱글인 〈The Art Of Letting Go〉가 발표되었다.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리스닝 파티라고 속이고 라이브를 하며 나타나 팬들을 놀래는 영상이 유명하다. 2014년이 오고 2월 14일 발렌타인 깜짝 싱글 〈You're Mine (Eternal)〉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두 싱글 모두 전자는 100위권에도 들지 못했고 후자는 88위에 그쳐 그 망했다는 《Charmbracelet》의 싱글보다도 처참한 성과를 보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5월 앨범 발매 소식이 들렸으나 그동안 딱히 리드싱글이라 불리는 싱글이 없어 걱정을 샀지만 앨범 자체에 집중을 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4년 만에 정규앨범 《Me. I Am Mariah... The Elusive Chanteuse》발매했다.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본인을 그린 그림에 <나. 나는 머라이어다(Me. I Am Mariah)>라 써놓은 것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많이 들어온 사람, 즉 팬들은 이 앨범을 머라이어 캐리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고 통일성 있는 고퀄리티 앨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 소속사 데프잼과의 마지막 작품이니만큼 적절한 지원과 매니지먼트가 구비되지 않아 허공에 던져놓고 손을 놓은 상태이다. 발매 후 거의 한달이 지났는데도 싱글이 없는 상태. 앨범을 통째로 들을 사람만 들으라는 전략일 수 있겠으나, 첫주 판매량으로 끝나버리는 요즘의 음반시장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아예 활동의 시도도 하지 않았으니 망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곡의 난이도는 거진 별 다섯 개씩으로, 진성과 휘슬 모두 본인의 역대 최고음이 한번씩 더 등장한다. 3옥타브 라 (A5), 5옥타브 솔# (G#7) 둘 다 〈Heavenly (No Ways Tird / Can't Give Up Now)〉라는 곡. 부상으로 인한 회복기간동안 믹싱에도 여러 번 상당히 공을 들여 완성도가 높다.

팬들은 뛰어나다고 평가하지만 대중의 평가는 참담하다. 머라이어 캐리 최악의 흑역사. 앨범은 첫주 판매량 5만 장을 찍고 차트에서 광탈했고 2014년 9월 8일 기준으로 총 10만 장이 판매됐다. 전작인 '회고록'이 이 200만장을 판매한 것에 비하면 1/20의 안습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으며 싱글도 15위까지 올라간 〈#Beautiful〉을 빼면 모두 망했다. 분명 나쁜 음반은 아니다. 깔끔하게 잘 빠진 앨범이고 그 전까지 머라이어가 보여주던 트렌드를 쫓아가기만 하던 행보와는 달리 음악적인 성찰이 담겨있어 평은 상당히 좋다. 완성도 높게 잘 짜인 앨범이지만 나쁘게 평가하자면 모든 곡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재미가 없다는 말도 되고, 실제로 킬링트랙이라 할 만한 곡이 없어서 결국 흥행에는 실패하게 되었다.

올해 2015년에 라스베가스공연을 하기로 했고 공연에서 그녀의 1위곡들과 히트곡들을 부를 예정이다. 또한 그녀의 1위 컴필레이션 베스트앨범인 <#1's>를 <Rainbow>앨범 이후부터의 1위곡들도 추가하고 신곡을 담아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에픽레코드의 사장 L.A리드가 머라이어의 커리어를 살릴 수 있다고 자신해 그와 계약하려했으나 계약금이 한화 3억이라는 처참한 계약금이었다.하지만 계약이 취소됬다는 소문이 잠깐 돌았지만 결국 에픽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 팬들에겐 2005년에 L.A리드와 재기를 이루어냈으니 이번에도 재기를 이루리라는 희망이 있다.

4월 27일에 베스트 앨범의 리드싱글로 추정되는 <Infinity>가 공개될 예정이다.

3. 음반

3.1. 앨범

3.2. 싱글

3.2.1. 빌보드 1위

  • Vision of Love (1990 - 4주)
  • Love Takes Time (1990 -3주)
  • Someday (1991 - 2주)
  • I Don't Wanna Cry (1991 - 2주)
  • Emotions (1991 - 3주)
  • I'll Be There (1992 - 2주)
  • Dreamlover (1993 - 8주)
  • Hero (1993~1994 - 4주)
  • Fantasy (1995 - 8주)
  • One Sweet Day (1995~1996 - 16주)
  • Always Be My Baby (1996 - 2주)
  • Honey (1997 - 3주)
  • My All (1998 - 1주)
  • Heartbreaker (1999 - 2주)
  • Thank God I Found You (2000 - 1주)
  • We Belong Together (2005 - 14주)
  • Don't Forget About Us (2005~2006 - 2주)
  • Touch My Body (2008 - 2주)

3.2.2. 빌보드 2위

어떻게 보면 머라이어 캐리는 2위와의 인연이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 가수 본인 자체가 1위 곡이 많기도 한 데다가 2위 싱글들이 본인의 기록을 계속 깨먹으니...
  • Can't Let Go (1991) - 첫 2위 싱글로 아쉽게 여기서 데뷔 이후 5개 연속 싱글 1위 기록이 끊겼다.
  • Endless Love (1994) - 루서 밴드로스의 싱글을 피처링.
  • Loverboy (2001) - 이 곡으로 11년 연속 1위를 배출해낸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
  • Shake It Off (2005) - 본인의 곡인 〈We Belong Together〉가 이 곡의 1위를 가로막았다.

3.2.3. 빌보드 3위~10위

  • Make It Happen (1992)
  • Without You (1994)
  • Every Time I Close My Eyes (1997) - 베이비페이스의 싱글을 피쳐링.
  • I Still Believe (1999)
  • I Know What You Want (2003) - 버스타 라임스의 싱글을 피쳐링.
  • Obsessed (2009)

3.2.4. 빌보드 10위~20위

  • Anytime You Need A Friend (1994)
  • It's Like That (2005)
  • Bye Bye (2008)
  • Just Stand Up! (2008) - 08년 프로젝트 싱글. 15명의 여가수가 참여.
  • #Beautiful (2013)

4. 필모그래피

  • The Bachelor (1998)
  • Glitter (2001)
  • Wisegirls (2002)
  • State Property 2 (2005)
  • You Don't Mess with the Zohan (2008)
  • Tennessee (2008)
  • Precious (2009)
  • The Butler (2013) - 여러 사람들이 도데체 어디서 머라이어 캐리가 등장한거냐?라고 의문을 갖는다. 영화 극초반에 주인공의 어머니로 출연하며, 대사도 거의 없다.(아예 없던가?) 백인 주인에게 검열삭제를 당하러 창고에 끌려간 이후로 출연이 없다가, 노년의 모습으로 다시 나오나, 실어증이라는 이유로 또 대사가 없다.

5. 비판과 논란

다른 가수들의 페이지에 비해 여기가 너무 정성스럽게 쓰여져 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머라이어 캐리는 극성 안티가 가장 많은 가수 중 한 명이다. 웬만한 팬들 뺨칠 만큼 머라이어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는 안티들도 많다.

5.1. 외모 논란

보다시피 머라이어 캐리의 외모는 타 디바들에 비해 아름다운 편이었으며 다인종 혼혈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에 거의 근접한 피부색으로 당시에 큰 이점을 보지 않았겠냐는 비판이다. 당시 본인도 그런 비판에 꽤 신경썼는지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롱 드레스를 보통 즐겨입었고 팬들도 외모보다는 음악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했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 이후로 흑인 음악을 하면서 흑인 팬층 얻으려고 흑인인 척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 비판은 약간 무리가 있다. 머라이어가 백인 중심의 스탠더드 팝을 한 것은 소니의 전략이었다는 평이 많고 그녀도 원래는 흑인이기 때문에 흑인 음악을 듣고 자랐다고 밝혔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많은 힙합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아니면 《Angles Advocate》 같은 앨범이 만들어질 리 없다. 실제로 그녀는 어릴 때에 어떤 인종에도 속하지 못하고 차별을 받았다. 본인 곡 〈Outside〉와 〈My Saving Grace〉 등에서 이와 관련된 가사를 다루고 있다.

5.2. 나이를 잊은 디바?

초기와 리즈시절 머라이어 캐리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디바 기믹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Daydream》 시절까지는 머라이어 캐리를 디바라고 생각했고 머라이어 캐리와 소속사도 그 이미지를 이어갔다. 그러나 디바 이미지는 바로 다음 앨범인 《Butterfly》에서 처참하게 깨지게 된다. 콘서트장에서도 검은 롱드레스로 일관하던 머라이어가 흰색 탱크톱을 입고 킬힐 그리고 관능적인 눈빛과 춤을 추며 나오는 모습에 모두들 경악했고 많은 디바팬들이 그녀를 떠나갔다. 여러 잡지와 평론가들 역시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러나 《Butterfly》 앨범은 정말 줄기차게 까였음에도 불구하고 1위곡을 두 곡이나 만들어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토미 머톨라와 이혼하면서 나온 새 앨범 《Rainbow》의 첫 싱글 〈Heartbreaker〉는 공개와 동시에 팬들, 언론과 대중의 입을 완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29살의 머라이어 캐리가 10대 소녀의 감성으로 노래를 부를 뿐만이 아니라 〈Heartbreaker〉의 뮤직비디오는 가히 충공깽 수준으로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소녀 머라이어 캐리가 친구들과 영화관에 가서 Heartbreaker한테 찝쩍대는, 새로 등장한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틴팝을 의식하기라도 했는지 10대의 감성을 엄청나게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비앙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아예 자기의 소녀 분신을 만들어버리니... 언론과 잡지에서는 그녀를 나이를 잊은 디바라며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고 그 비난은 앨범이 나오자 더욱 심화되었다. 게다가 앨범 사진에는 탱크톱을 입은 머라이어가 을 들고 있으며 옷에는 무지개가 새겨져있다.

하지만 머라이어 캐리는 이런 반응들을 무시하고 영화 《글리터》를 내며 본인의 퍼스널리티는 쭉 10대 소녀였음을 커밍아웃했다. 하지만 그 후 영화와 음반의 실패, 외모 급변,건강 악화,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10대 소녀 컨셉은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33살에 철이 든 머라이어 캐리 하지만 공주 컨셉은 유지하는 듯. 본인은 디바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고 한다. 콘서트장에서도 디바 시절 노래는 부르기 꺼려하며 특히 〈Hero〉는 싫어하지만 팬들이 좋아하는 곡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데뷔초에도 〈Love Takes Time〉과 같은 노래는 스스로 만들기조차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2005년의 대형 히트작인 《The Emancipation of Mimi》부터는 10대 공주병에서 섹시 + 노출 컨셉으로 선회했다. 매우 성공적이었던 이 노선은 2014년 기준 현재까지 계속되지만 이제는 나이도 있고 몸무게도 고무줄이라 파파라치들에게 굴욕샷을 자주 찍히는 등 이 컨셉에 대해서는 대체로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하고 있다. 안티들에게는 살찐 코끼리라든가 공주병 걸린 할머니라는 비아냥을 듣는 상황.

5.3. 목소리와 립싱크 논란

가장 큰 논란이자 안티들이 현재의 머라이어 캐리를 까는 가장 큰 요인이다. 팬들도 목소리와 립싱크 얘기가 나오면 모두들 더듬이(?)를 곤두세우며 키배에 맞서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5.3.1. 목소리의 악화

머라이어 캐리가 데뷔 시절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 하이노트 등의 과도한 사용으로 목이 안 좋아졌기 때문에 《Butterfly》 때부터 중저음 위주의 노래로 전향하지 않았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캐리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Butterfly》 이후의 노래들이 부르기 더 힘들다. 또한 하이노트는 상대적으로 목이 덜 상하는 Whistle 창법이다. 목이 아예 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단 노래를 하면 당연히 목이 상한다. 머라이어가 목이 상한 이유는 두성과 Whistle의 사용 때문이 아니라 가성과 벨팅 때문이다.

일단 가성(falsetto) 자체가 진성의 비명격에 가깝기 때문에 목이 더 상한다. 그리고 《Rainbow》와 《Charmbracelet》 앨범에서 특히 잘 드러나는 머라이어 캐리의 가성은 1. 남성 가수에 준할 만큼 낮은 음역대의 저음 가성, 2. 귓속말하는 창법, 흐느끼는 창법이 중심인데 이 두 가지 방식의 가성은 모두 성대를 연 채로 호흡을 많이 품고 내는 목소리로 고음 가성보다 훨씬 더 목에 무리를 준다. 이는 원래부터 약한 편이였던 성대와 같이 작용해 머라이어의 성대를 심하게 손상시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대를 붙인 상태에서 호흡을 적고 고르게 빼는 창법이 목에 가장 무리를 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머라이어 캐리의 저음 가성과 속삭이는 창법은 성대를 열고 호흡을 왕창 불어넣는, 즉 정확히 정반대의 창법인 것. 호흡이 열린 상태의 성대를 자극하여 목이 쉽게 상하게 된다. 원래 목소리가 작거나 속삭이는 듯한 소리밖에 나지 않는 사람들의 목 상태가 바로 이 창법과 비슷하다. 물론 머라이어는 정석적인 발성도 당연히 완벽하게 할 수 있지만 자신만의 개성으로 이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 굳이 한국 가수 중에 이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를 꼽자면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인 정도. 물론 가인 역시 연습을 통해 만든 소리이며 함부로 따라하면 목이 왕창 상하게 되니 하지 말자(...)

머라이어 캐리의 목을 상하게 했던 또 하나의 창법은 벨팅(belting). 흉성의 매커니즘으로 중성(middle voice)이나 두성(head voice) 구간의 음역대를 내는 것. 그러니까 '쌩목 창법' 이다(...) 뮤지컬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리로 소리가 단단하고 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시 목을 쉽게 상하게 한다. 판소리 창법과 매우 유사하다. 물론 머라이어 캐리나 뮤지컬 배우들이 쌩목으로 노래를 한다는 것이 아니고 개성적인 창법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

아무튼 이 때문에 캐리의 목 상태는 복귀 이후 그날의 컨디션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 상태에 이르렀다. 전성기의 목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3대 디바(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옹, 머라이어 캐리) 가운데 셀린 디옹에 비교되는 데다가 안티들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의 라이브 영상만 보고, 팬들은 컨디션이 좋은 날의 라이브 영상만 보면서 잘한다 못한다를 논하니... 이 싸움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결국 이번 2014 내한 공연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악평을 국내언론으로부터 받았다.

5.3.2. 립싱크 논란

초기 시절 말도 안되는 하이노트의 남발로 사람들은 립싱크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한 술 더 떠 머라이어 캐리는 스튜디오 가수라는 얘기도 나오게 된다. 그러나 MTV에서 라이브 공연(MTV Unplugged)을 시전해 이런 논란은 가라앉는다.

현재 목 상태의 악화와 방송 기술의 혁신(?) 등으로 새로운 립싱크 논란이 떠오르게 되며 특히 부분 립싱크라는 새로운 립싱크도, 라이브도 아닌 방식을 선보이면서 논란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머라이어의 노래가 상한 목 상태에 비하면 상당히 어려운 점, 머라이어가 립싱크 연기를 매우매우 못하는 점, 그리고 상대적으로 높은 립싱크 빈도 등으로 급격하게 까이고 있다. 특히나 콘서트보다 방송 출연 라이브에서 립싱크 스캔들이 많이 터지는 바람에 대중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주었다. 셀린 디온도 립싱크를 상당히 많이 하지만 워낙 투어 규모가 크고 연기 (...) 를 열정적으로 잘해서 사람들이 잘 모를 뿐더러 알더라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팬들끼리의 주요 논란이 되나 보통 '립싱크는 좀 그렇다'라는 쪽과 '목 상태를 생각해줘야 한다' 라는 쪽이 대립하고 있다. 하지면 2000년대 후반에 들면서 대부분 부분 립싱크로 일관하면서 립싱크에 한해서는 비판하는 팬들도 많이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머라이어가 특히나 립싱크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른 가수들보다 프로모션을 월등히 많이 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립싱크 수가 늘어나는 것이지 비율로 보면 그다지 높지 않은 수준이다. 프로모션을 올 라이브로 뛰는 가수는 없을 뿐더러 올 라이브로 뛰면 몇 년만에 목 간다.

가장 최근의 립싱크 논란으로는 2013년 American Idol에서 신곡인 #Beautiful을 포함해 Vision Of Love, Make It Happen, My All, Hero, We belong together 이쯤되면 약간 의심이 를 메들리로 부른 영상이 있는데, 부분립이라는 의견과 사전녹음 후 립싱크를 했다는 의견으로 갈리고 있다.

5.4. 미국형 가수

머라이어 캐리는 상대적으로 유럽 지역에서의 화력이 약한 편이다. 마돈나는 콘서트의 여왕이고 셀린은 불어가 모국이기 때문에 불어 앨범을 꾸준히 내서 유럽에서 강세인데 비해 캐리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유럽 전역이 비교적 약세 지역이었다. 그 후로 유럽에서 프로모션을 자주 하는 듯 하지만 인기가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2000년대 이후의 댄스 열풍에 완전히 잠겨버렸다.

유럽에선 머라이어 캐리보다 셀린 디옹의 인기가 훨씬 많다. 머라이어가 특히나 인기가 많은 지역은 미국과 일본이다. 1990년대 머라이어의 일본 내 인기를 2000년대에는 에이브릴 라빈이 이어받았고 2010년대에는 레이디 가가가 이어받았다. 일본에서의 인기는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과 비교해도 될 정도다. 일본 내 앨범 판매량은 1500만장 이상으로 해외가수 앨범판매 1위다. 게다가 머라이어를 미국형 가수라고 하는 근거는 오직 유럽의 인기뿐이다. 하지만 유럽의 음반시장은 영국이 전세계 10%,나머지 유럽지역이 10% 정도를 차지해 20%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미국의 50%,일본의 20% 합해서 70%,그리고 한국,호주,캐나다,중국 등 그녀가 인기많았던 지역들을 합하면 거의 75%에 이르는데,유럽의 20%의 시장을 공략 못했다고 해서 미국형가수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말이다. 게다가 영국 지역에서도 아예 인기가 없진 않았고 전성기때는 앨범이 앨범차트 상위권에 들만큼 잘 나갔었다. 심지어 <Musicbox>앨범은 독일과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침체기였던 <Butterfly>앨범 이후에도 스페인에서 1위곡이 꽤 많이 나오는 등 유럽에서 인기가 적었다고 할 수 없다. 단지 마돈나나 셀린디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유럽지역의 인기가 낮을 뿐이지 절대적 인기로 본다면 머라이어 캐리도 유럽에서 잘 나가는 편이었다.

5.5. 비교적 약한 콘서트

20년 동안 Daydream 월드투어, Butterfly 월드투어, Rainbow 월드투어, Charmblacelet 월드투어 등 타 가수들에 비해 월드 콘서트 수가 적은 편이다. 400번이 넘는 마돈나나 셀린 디옹, 그에 가까운 휘트니 휴스턴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Angels Advocate 투어는 표 1+1이란 안습한 면을 보여주었다. 여러모로 머라이어는 콘서트형 가수가 아닌 데다가 본인도 인지하고 있는지 콘서트보다는 여러 프로모션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5.6. 기타 확인되지 않은 논란

5.6.1. 싱글 덤핑 논란

머라이어의 팬vs안티팬 구도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얘기가 바로 이 싱글 덤핑이다. 보통 안티팬이 머라이어 캐리를 까면 팬은 또 엄청난 1위곡으로 실드친다. 그러면 바로 이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사실 소속사와 팬들이 인정하는 덤핑 싱글은 2-3개 정도밖에는 없으나 일부 평론가들은 더 많은 싱글에 대한 덤핑 논란을 제시했다. 머라이어 캐리의 디스코그래피를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쟈넷 잭슨 등의 가수와 비교해 봐도 탑텐 싱글이 매우 부족한 데다가 Hot 100 안에 든 싱글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1위 싱글은 18개로 비틀즈에 이어 2위를 자랑하나 Hot 100 싱글의 수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걸 봐도 머라이어의 싱글 수 자체가 적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90년대 소속사에서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여 각 앨범마다 싱글 수를 적게 제한하는 전략을 썼기 때문인데 이 전략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싱글이 돋보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전략은 성공했지만 1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9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들의 팬들에겐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때의 앙금을 가지고 까는 사람들이 많다. 머라이어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90년대에 싱글컷한 노래들 중 Hot 100 안에 들어가지 못한 노래는 보기 드물다. 싱글컷을 많이 했다면 당연히 Hot 100 진입곡이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Daydream> 같은 경우는 싱글들이 너무 대박을 터트리는 바람에 앨범 총판이 3천만장을 넘지 못했다. 덤핑은 일종의 판매상술이다. 빌보드에서도 머라이어의 덤핑곡들을 다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머라이어가 덤핑으로 16주1위를 달린 것을 보고 그 후에 덤핑을 해서 저렇게 장기집권한 노래는 없다. 16주1위 한 데에는 당시 머라이어의 엄청난 인기,보이즈 투 맨과의 시너지효과, 노래의 힘 또한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머라이어의 <One Sweet Day>가 1위에 있을 때 2위에 있었던 휘트니의 <Exhale>을 포함한 1위 경합을 벌이던 곡들은 모두 덤핑을 했다. 다만 1위에 가려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Fantasy> 가 덤핑을 했다는 국내 팝블로거의 황당한 주장도 있는데 정가에 판매된게 맞다.

5.6.2. 페이올라 논란

데뷔 앨범의 네 싱글이 모두 1위를 차지한 점, 머라이어 캐리의 소속사가 대형 소속사라는 점, 그리고 머라이어 캐리의 남편이 그 소속사의 사장이라는 점 등으로 '아무래도 머라이어가 1위 싱글을 미친 듯이 늘려가고 있는 건 페이올라 때문이다!' 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페이올라란 돈 주고 라디오에서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는 것. 빌보드는 라디오에서 많이 틀어지기만 해도 1위를 할 수 있다. 실제로도 머라이어 캐리는 라디오 에어플레이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이득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머라이어는 95년 한 잡지의 인터뷰에서 '남편과의 대화는 보통 일상적이다. 결혼을 했다고 특혜를 운운하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다' 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실제로도 타 가수의 페이올라 논란이 그렇듯이 근거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복귀 이후, 미국에서 판매량이 10% 정도 차이났던 마돈나의〈Hung Up〉은 7위였는데〈We Belong Together〉는 14주 1위라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여전히 디지털에 비해 라디오의 심한 강세로 페이올라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데 〈We Belong Together〉가 갖고 있는 에어플레이 기록이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이유는 장르 차원에서 접근해봐야 한다. 위빌롱은 Pop과 R&B가 섞인 장르인데 그 덕분에 R&B 라디오 채널에서도 틀어줬고 팝 채널에서도 틀어줬다. 이 덕분에 에어가 높았던 곡들은 얼리샤 키스의 〈Fallin〉, 비욘세의 〈Crazy in Love〉와 〈Irreplaceable〉, 리애나의 〈Umbrella〉와 〈What's My Name?〉 이 있다.

그리고 머라이어가 페이올라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We belong together>가 처음 나왔을때만 해도 그녀는 아직 한물간 가수취급을 받고있던 시기였는데 돈을 준다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렇게 엄청나게 틀어줄리가 없다. 최근에 이곡의 에어플레이 수치를 갱신한 곡이 2곡이나 있고 페이올라 논란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수없이 나오는 곡을 굳이 음원구입해서 살 필요도 없다. 결정적인 것은 페이올라 논란은 머라이어를 싫어하는 마돈나팬들이 가장 많이 퍼트렸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단지 판매량이 약한데 에어플레이만 높아서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니 머라이어의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에어플레이는 결코 엄청난 페이올라때문이 아니다.

6. 기타

게다가 2000년대를 대표했던 곡 top100곡에 <We belong together>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I gotta feeling>은 5위를 했지만 2013년 빌보드55주년 역대 top100에선 블랙 아이드 피스의 <I gotta feeling>이 6위를 차지했고 <we belong together>은 11위를 차지했다. 그러니 페이올라 논란이 더 잦아질수밖에.

하지만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I gotta feeling> 은 연속 14주1위인데 비해 <we belong together> 은 중간에 1위 자리를 내주어 비연속 14주1위 이기때문이다.아무래도 중간에 1위를 내주었던 곡보단 굳건히 1위를 지킨 노래가 더 높은 순위에 랭크될 수 밖에 없다. 또한 <I gotta feeling>은 12주나 1위를 지키던 블랙아이드피스의 <Boom Boom Pow>를 제치고 1위를 했다.(팀킬...) 1위를 한 시점이 2009년 중후반이었고 2000년대 빌보드 top100곡은 2009년 말에 나왔기때문에 <I gotta feeling>이 <We belong together>보다 순위가 낮았을것이다. 실제로 2009년 빌보드 싱글차트 결산을 보면 <Boom Boom Pow>가 <I gotta feeling> 보다 앞서지만 빌보드 55주년 top100곡에서는 <I gotta feeling>이 더 높다)

6.1. 남자 관계

머라이어 캐리는 남성 편력으로 유명하다. 수는 딱히 많지 않지만 대부분 아주 유명한 사람들이라 더 눈에 띈다. 첫 남편 토미 머톨라와 이혼 후 루이스 미겔, 데릭 지터, 카카, 마크 수댁 등의 남자와의 열애설이 있고 에미넴도 있다? 2008년 영화배우 닉 캐넌과 결혼, 2011년 쌍둥이를 출산하였다.

6.1.1. 토미 머톨라

머라이어 캐리를 발굴해준 컬럼비아 레코드사의 전 사장으로써 1993년 결혼을 한 후 1997년에 별거를 인정했다. 그리고 1998년 이혼했다. 그를 노린 듯한 노래로는 《Rainbow' 의 〈Did I Do That?〉, 〈Petals〉, 《Charmblacelet》의 〈You Had Your Chance〉, 《E=MC²》의 〈Side Effects〉,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의 〈Standing O〉 등이 있다. 이혼 후에 머라이어에 대한 지원을 갑자기 줄여버리고, 머라이어가 소속사를 옮겨 <Glitter> 앨범 활동을 하자 리드싱글인 <Loverboy>의 1위를 자신의 소속사에 있었던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곡으로 막아버리는 등 -찌질하게- 방해를 했다. 후에 머라이어가 자신의 힘으로 재기를 이루어낸 후에 둘이 파티장에서 악수하는 사진이 있는데 당당한 악수를 하는 머라이어와 위축된 토미의 모습이 대조된다.

6.1.2. 에미넴과의 관계

별다른 맥락 없이 에미넴은 머라이어 캐리와 잤다며 사진을 뿌리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어그로를 끌면서 디스를 걸었다.사실 에미넴이 디스하지 않은 2000년대 초반 여자 연예인이 얼마나 있을 것이냐마는... 하여간 이런 에미넴의 행패에 머라이어는 《Charmbracelet》 앨범의 〈Clown〉에서 조심스럽게 타일렀다. 하지만 에미넴이 2003년에 머라이어 캐리의 목소리를 샘플링에 사용하겠다고 했고 2007년에는 방송에 나와서 머라이어와 잤다고 떠벌리기까지 하는 데다 《Relapse》 앨범의 〈Bagpipes From Baghdad〉에서 머라이어와 그의 남편 닉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디스했다. 이에 머라이어는 〈Obsessed〉에서 맞디스를 하게 된다.

이 에미넴의 디스 때문에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 앨범의 방향이 전혀 바뀌었다. 〈Obsessed〉의 괴랄한 뮤비는 한 남자가 머라이어를 너무 좋아해서 쫓아다니다가 결국 머라이어를 만나지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마는 개막장 스토리인데 뮤비 속 그 남자는 평소 에미넴이 입고 다니는 패션과 똑같은 스타일로 옷을 입고 있으며 뮤비 초중반 벽에 포스터를 붙이고 어루만진다거나하는 그의 행동은 에미넴의 〈Stan〉 뮤비에서의 열성팬 스탠의 모습과 같다. 그리고 에미넴은 〈Obsessed〉의 맞디스 〈The Warning〉을 냈다. 들어보면 안다. 들어보기. 이후에 닉 캐넌이 〈The Warning〉이 나오고 1년도 더 지나서 에미넴을 디스하려고 하긴 했는데...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머라이어는 당당하게 "뿌려봐라"라는 식으로 나왔고, 에미넴은 몇 년째 아무것도 안 뿌리는 것을 보니 아마 이것도 관심을 위한 어그로인 듯 하다. 머라이어도 역대 최고의 팝스타 중 한명이니 관심을 끌기 최적이라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시비를 건 듯.

디스곡을 발표한 후에도 에미넴은 인터뷰에서 머라이어를 디스하며 비꼬고 다니는 찌질한 면모를 보였다. 어그로 끌려고 사실이 아닌 일을 꾸며 먼저 시비걸어 놓고 욕하고 다닌 행동 때문에 욕을 먹을 만큼 먹었지만 원래 어그로는 자신이 항상 하던 짓인 탄인지 에미넴 본인은 욕을 먹든 말든 신경을 안 쓴다. 이에 반해 머라이어는 인터뷰에서 에미넴 얘기를 하자, "그런 사람 모른다, 캔디(m&m)는 먹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6.1.3. 마크 수댁

복귀 이후로 머라이어 캐리가 마크 수댁과 사귄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머라이어 본인이 사귀는 남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른다. 《E=MC²》 앨범의 내용이 수댁과 캐리 간의 이야기라는 얘기도 있다. 또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머라이어와 헤어진 앙금으로 머라이어의 컴퓨터에 침입해 《E=MC²》의 자료들을 다 지워버렸다고 한다. 머라이어는 왜 이렇게 하나같이 찌질남들만 만나는 건지... 그나마 닉 캐넌이랑 결혼해서 다행 근데 그 믿었던 닉 캐넌마저 찌질남이다...

6.1.4. 닉 캐넌

닉 캐넌과는 《E=MC²》 작업 중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I Stay in Love〉 뮤직비디오 # 의 감독으로 촬영 중 사랑에 빠진 것으로 추측된다. 뮤직비디오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흑인 남자가 닉이라는 얘기가 있으나 사실인지는 알수없다. 결혼 후 《E=MC²》의 활동을 거의 접어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를 위한 노래로는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 앨범의 〈The Impossible〉 등이 있다지만 《Memoirs》 앨범의 사랑 노래는 대부분 닉 캐넌과의 얘기다. 2014년에는 닉 캐넌과의 결별설 및 이혼설이 돌고 있는 가운데, 일본 월드투어 도중 가사를 바꿔서 "난 네가 바람 피운거 알아 마더퍼커야" 라고 바꿔 불러서 흠좀무. 이혼설 때문에 콘서트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았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닉 캐넌은 또 트위터에서 머라이어 목 나갔다는 트윗을 리트윗 했다(...) 덕분에 닉 캐넌은 팬들에게 제대로 미운털이 박혔다.

6.1.5. 기타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드물게 23세의 나이로 토미 머톨라와의 결혼했을 당시 수처녀였다고 한다. 데뷔 전 학교에서 한 덩치 큰 불량학생이 머라이어를 짝사랑했기 때문에 이 불량학생을 통제할수 있는 사람은 머라이어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머라이어가 데뷔를 위해 뉴욕으로 가버리자 이 학생은 흑화하여 마약밀수 등을 하다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머라이어가 면회도 자주 가는듯.

6.2. 타 가수와의 관계

누구나가 실력을 인정하는 머라이어지만, 천하의 에미넴을 상대로도 안 지고 니키마저도 가볍게 무시당한걸 보면 고등학교때 꽤나 놀았던듯. 또한 머라이어 본인이 고등학교때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토미의 압력으로 거의 갇혀지내듯이 지낼때 많이 힘들어했을만큼 고등학교때 일진 축에 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 한 마디로 리아나도 머라이어 앞에선 납짝 엎드려야 한다는 말도 있다.인맥도 장난 아닌지라... 대놓고 무시하거나 알면서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는 가수들이 있다.

6.2.1.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의 발탁 이유가 휘트니 휴스턴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컬럼비아 레코드의 의도였으니 데뷔 시절부터 관계가 좋았을 리가 없다. 이에 머라이어는 휘트니와 비교하는 언론들을 보고 '휘트니는 가수지만 나는 아티스트다!'라고 해 차별성을 두었다. 그러다 1997년, 셀린 디옹이라는 막강한 후배가 등장했다. 데뷔는 머라이어보다 먼저 했지만 잘 알려진 건 훨씬 후다. 이에 두 퇴물 디바는 합심해 〈When You Believe〉를 내놓으나 시망. 그 후 휘트니와 머라이어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욘세 등에게 새로운 시대를 내주며 내리막길을 탔다.

6.2.2. 셀린 디옹

같은 콜롬비아 레코드 소속사의 가수로서 나이도 셀린이 많고 데뷔도 형식적으로는 셀린이 먼저 했으나 이름이 뒤늦게 알려진 터라 왠지 세 번째 디바 혹은 후배 이미지가 박혀버린 것 같다. 셀린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자 위기를 느낀 머라이어 캐리는 휘트니 휴스턴과 손을 잡으나 셀린 디옹은 두 선배를 가볍게 무시하며(...) 《타이타닉》 OST로 위엄을 뽐냈다. 그 후로 머라이어 캐리는 디바 자리는 셀린 디옹에게 넘겨주고 본인은 콜롬비아 레코드의 업악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여성 아티스트의 삶을 살게 된다. 그 결과물은 글리터 하지만 그 후에도 둘은 꽤 친했던지 유산으로 낙담하던 머라이어에게 임신하는 법 등을 알려준 게 셀린 디옹이라고 한다. 그 결과 머라이어는 쌍둥이를 임신(...)

6.2.3. 마돈나

마돈나가 머라이어 캐리 데뷔 초기에 비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머라이어 캐리는 이에 '마돈나요? 마돈나는 제가 어렸을 때 인기있던 가수랍니다 ㅎㅎ.'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왠지 국내에서 머라이어의 들과 마돈나의 들은 진짜 엄청나게 싸운다. 정작 본인들은 서로 관심 없다는데 팬들이 주구장창 싸운다. 마돈나는 머라이어에게 선배 대접 안해준다고 까고 머라이어는 마돈나에게 앞에선 착한 척하고 뒤로는 호박씨 깐다며 서로간의 교류는 더 이상 없다. 팬덤끼리의 싸움은 아이돌 팬덤 저리 가라 할 수준. 머라이어의 팬들과 마돈나의 팬들은 왠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앙숙지간이다.

두 팬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 처럼 보이나 다 마돈나 팬들이 일방적으로 머라이어를 까는 것이다. 정작 머라이어의 팬들은 마돈나를 언급조차 하지않는다. 하지만 마돈나의 팬들은 머라이어의 덤핑,페이올라 등의 얘기를 계속 우려먹으며 머라이어를 공격한다. 머라이어의 빠들이 반문을 하면 그 다음에는 머라이어는 미국형 가수라고 깐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미국형 가수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반박당하면 그 다음에는 머라이어의 가창력은 다 조작된 것이며 <MTV unplugged>와 같은 무대는 다 스튜디오에서 사전녹음 된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루머를 만들어낸다. 이 같이 머라이어에 대한 악담들을 만들어 낸 마돈나팬중에 일등공신이 있으니 그는 지금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으며 타 블로거들이나 팝커뮤니티에서 엄청 까인다.

6.2.4. 니키 미나즈

아메리칸 아이돌 에서 니키 미나즈랑 머라이어 캐리가 함께 심사를 하게 되었는데, 서로 음악적 견해가 달라서 자주 충돌이 있었던듯하다. 머라이어가 비꼬는 듯이 "빌보드 1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죠~" 라는 식으로 니키를 디스했다. 머라이어는 평소에도 약간 디스하는 식으로 심사한다. 이를 계기로 니키는 트위터에 "머라이어 캐리는 그 나이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앞날은 불안하다. 그리고 정말 꼴불견이다", "머라이어는 개성 없고 단지 늙은 여자다" 등등의 트윗으로 머라이어를 디스했으나 머라이어는 정작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단 듯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트윗했다(...) 이후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니키가 "총이 있다면 그 개년의 머리에 총을 쏘겠다" 라고 한 발언이 공개되었고, 엄청난 네티즌들의 질타 이후 앨런 토크쇼에 나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나중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한 머라이어에게 진행자가 이에 대해 묻자 머라이어 캐리는 니키의 존재를 아예 모르는 것처럼 반응하였다. "누구요? 난 그게 뭔지 기억도 안 나네요. 내 인생에서 삭제해 버릴 순간이거든요"(Who? I don’t even remember what that was. That was a moment in my life that I’m just going to press delete). 니키가 한 성깔 하기로 유명하지만 이쪽은 아예 대놓고 디스곡을 싱글컷(!)하면서 에미넴과도 맞짱 뜨는 사람인지라... 전 세계적으로 에미넴과 대적할 수 있는 여가수는 몇 안된다. 국내에서 일부 머라이어의 까들이 머라이어가 K.O패 당했다, 니키 힙합인맥들에게 총 안 맞은 게 다행이다 라는 둥 머라이어가 졌다고 말하지만,머라이어 본인은 니키를 전혀 싸움상대로도 여기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머라이어의 인맥은 니키와 비교할 수 없다.

6.2.5. 제니퍼 로페즈

머라이어 캐리가 소니 뮤직과의 결별 수순을 밟고 있을 무렵, 제니퍼 로페즈는 소니 뮤직 산하의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어 승승장구한다. 상술되어있다시피 전 남편인 토미 머톨라가 방해 공작을 위해 머라이어가 샘플링으로 쓰려던 곡을 제니퍼의 곡으로 선수쳐 사용한 일화가 유명하다. 머라이어 캐리는 인터뷰에서 비욘세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칭찬 일색으로 대답하지만, 바로 뒤이어 그럼 J.Lo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I don't know her" 라고 대답한 걸로 봤을 때 정말 제니퍼 로페즈를 몰랐을 리는 없고 별로 안 좋게 생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몇몇의 인터뷰에서도 제니퍼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녀와 저는 굉장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 케케묵은 불화설은 2013년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12 피날레에서 제니퍼가 <Live It Up> 공연을 한 후, 심사위원 중에 머라이어만 기립박수를 치지 않는 장면이 포착되어 다시 논란이 되었다. 논란이 커지자 방송 관계자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을 뿐 이후 머라이어도 기립박수를 쳤다."며 일축했다. 심지어 머라이어가 한 시즌 만에 심사위원에서 하차하고, 제니퍼가 다음 시즌에 다시 투입되기로 결정된 상황이라 흠좀무...

머라이어의 앨범 《Me. I Am Mariah... The Elusive Chanteuse》와 비슷한 시기에 앨범 《A.K.A.》를 발매했다. 방송에서 예상에 못 미치는 두 신보의 음반 판매량에 대해 질문하자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 머라이어와 저는 (연예계에서) 이미 많은 것을 겪어왔습니다. 물론 제가 그녀의 성공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부진한 시기도 겪었고 재기에 성공했어요. 지금 우리는 "당장 차트에 진입해 무언가를 증명"해야하는 신인 가수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오랜 시간동안 지지를 보내준 팬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 머라이어와 불화같은 건 전혀 없어요. 과거에 그녀가 저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얘기를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지만 우리는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을 뿐더러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에요. 모두 과거에 있었던 일이니 저도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머라이어의 팬이고 그녀는 정말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My All〉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에요. 그녀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함으로써 사실상 머라이어에게 먼저 악수를 청한 셈.오오 대인배 오오

2015년 라스베가스에서 진행하는 머라이어 캐리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공연 중 하나만 고르라면 누구 공연을 보겠냐는 질문에 브리트니 스피어스 공연을 보러가겠다고 대답했다. 물론 디스의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이며, 그냥 유흥의 도시 라스베가스인만큼 춤추는 공연을 보러가고 싶다고...

6.2.6. 기타 다른 가수들과의 관계

저메인 듀프리와는 《Always Be My Baby》 때부터 같이 쭉 작업해왔고 아자와는 《Rainbow》 때부터 서로 피처링에 참여해왔다. 《E=MC²》에서는 앨범에 조언을 해주었고 〈Heartbreaker〉, 〈You Got Me〉, 〈Shake It Off (Remix)〉 등에 참여했다. 여성 랩가수 다 브랫과는 꽤 절친 관계로 다 브랫은 〈Heartbreaker (Remix)〉, 〈4 Real〉, 영화 《글리터》 등에 참여했다. 참고로 머라이어가 감옥에서 출소한 다 브랫을 먹여 살리고 앨범까지 내준다고 한다. 지못미.

6.2.7. 머라이어 키즈

머라이어는 1990년대 최고의 가수답게 다른 가수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머라이어를 보면서 가수를 꿈꿨고 커서 훌륭한 가수가 된 사람들을 보통 머라이어 키즈라고 부른다.

아래 목록은 머라이어 키즈 목록.

  • 넬리 퍼타도 : 머라이어 골수팬으로 유명
  • 더피 : 머라이어 캐리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링크를 눌렀더니 나오라는 에이미 더피는 안나오고 웬 유니콘이...
  • 리오나 루이스 :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머라이어 캐리
  • 리애나 :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머라이어 캐리
  • 사이먼 코웰 : 머라이어 키즈라기보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머라이어 덕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그의 앞에서 머라이어 캐리 노래를 불렀다간 가차없이 까여 사라진다. 머라이어 캐리 덕후 인증한 대표적인 예로, 미국판 X-Factor에서 생방송 직전의 Judge's Houses 심사 때 섭외를 요청한 적도 있으나 참석하진 못한다.
  • 리 제이 블라이즈 : (사실 비슷한 시기에 데뷔를 해서 머라이어 키즈는 아니고, 절친정도) <Me... I Am Mariah The Elusive Chanteuse>의 Deluxe 수록곡인 It's A Wrap 리믹스 버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 브리트니 스피어스
  • 비욘세 : 〈Vision of Love〉를 듣고 가수를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 소향 : 머라이어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수를 꿈꿨고 머라이어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 성시경 : MTV Unplugged 앨범의 〈Can't Let Go〉를 숨소리까지 외울 정도로 들었다고 한다.
  • 스눕 독 : 감옥에 있을 때 머라이어의 노래를 듣고 희망을 얻었다고 한다. 출소하고 몇 년 후에 머라이어와 듀엣을 했다.
  • 스티비 원더 : 머라이어 키즈라기보다는 머라이어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 아델 :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전부는 머라이어고 머라이어가 최고의 디바라는 발언을 했다.
  • 이효리 :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머라이어 캐리
  • 시카 심슨
  • 켈리 롤랜드 (데스티니스 차일드)
  • 켈리 클락슨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그래미 신인상을 받고 머라이어와 같은 상을 받게 됐다며 좋아했다. 그 외에도 데뷔 초에 머라이어에 대한 무한 존경을 표현해왔다.〈Vision of Love〉를 듣고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한 일화가 있다.
  • 퍼기
  • 화요비 : 모창으로 유명했었고 데뷔 초 창법이나 음색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1집의 앨범도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본딴 듯한 〈My all〉. 세월이 흐르면서 모창 가수로 남지 않고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 핑크
  • 아리아나 그란데 : 머라이어를 연상케 하는 하이노트로 머라이어의 재림으로 평가받는 93년생 알앤비/팝 싱어. 2013년 《Yours Truly》로 첫 앨범을 발매했으며 본인 역시 머라이어의 팬이라 밝힌 바 있다. 본토 내에선 외모(+노래 실력) 덕택에 현실판 인어공주라고도 불리기도.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아리아나를 '젊은 머라이어'라 하며 머라이어에게 아리아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별로 관심없다는 투로 말했다.덤으로 자신도 아직 젊다고.
  • 케이티 페리 : 3집 《Prism》에 수록될 곡 〈Birthday〉는 머라이어에 대한 무한 존경의 곡이라고 한다.
  • 제시 제이 : 콘서트에서 〈Emotions〉를 열창할 뿐만 아니라 "나는 머라이어 캐리의 공식 팬이다" 라고 할 정도로 열성팬.
  • 권순일 (어반 자카파) : 머라이어의 속삭임 창법을 연습해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누나들이 H.O.T.젝스키스 등의 아이돌을 좋아할때 자신은 머라이어 캐리를 좋아했다고... 〈Always Be Mine〉이나 〈Fly Away〉 등의 곡들이 머라이어 곡들과 참으로 닮았다.

6.3. 워커홀릭

엄청난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데뷔 때부터 끊이지 않는 프로모션 등으로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런데도 건강상의 문제로 한 번 쉬지 않고 12년동안 활동했으니. 하지만 결국 'Glitter' 활동 당시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앨범을 좀 쉬어가면서 내는 듯 하지만 역시나 엄청난 프로모션으로 유투브에서 머라이어 캐리를 치면 정말 타 가수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의 라이브 영상이 나온다. 사실 그래서 립싱크 논란이 끊이지 않지 이러한 워커홀릭 덕분에 머라이어 캐리는 10년만에 빌보드 Hot 100 1위를 15곡이나 만들어 냈다. 90년대 빌보드의 경우에는 디지털 다운로드의 개념이 없던지라 라디오가 순위를 좌우했다. 대형 소속사의 가수인 데다가 엄청난 프로모션을 뛰는 머라이어 캐리가 순위가 높은 것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그리고 내리막길을 탄 후에도 화려하게 복귀하여 1위곡을 3곡이나 더 만들어냈다.

머라이어 캐리의 디스코그래피를 주시하다보면 머라이어 캐리가 얼마나 워커홀릭인지 알 수 있다. 1990년 데뷔부터 2010년까지 96, 00, 04, 06, 07년을 제외하고 모든 해에 앨범을 발매했다. 하지만 96년에는 두 개의 넘버원 싱글 'One Sweet Day' 와 'Always Be My Baby' 활동, 00년도에는 역시나 넘버원 'Thank God I Found You', 06년에도 넘버원 'Don't Forget About Us' 활동을 하였다. 머라이어 캐리가 제대로 쉰 해는 04, 07년밖에 없지만... 이때는 투어를 다녔다. 2011년 ~ 2012년은 해산과 동시에 여러 제품을 런칭하고 광고하는 등 음악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쉬지 않고 일을 했다. 2013년에는 큰 부상을 당해 강제로 쉬었지만, 쉬는 김에 새 앨범의 추가 작업에 몰두.

6.4. 별명

머라이어 캐리는 팬과 안티 등에게 불리는 별명이 다양한데 애칭으로는 본인의 애칭인 MiMi, 팬들이 자주 줄여서 부르는 머랴 등이 있다. 하지만 의외로 머캐라고는 줄이지 않는데 어감이 좋지 않기에 안티들이 좋아하는 별명인 멀캐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멀캐는 PC통신 시절 머라이어 캐리 팬들이 부른 별명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안티들이 많이 사용하면서 팬들은 싫어하는 별명이 되었다. 그 외에는 누가 붙인 것인지 알수없는 미미겅듀(...)라는 별명도 있다. 요즘은 팬들도 공주병스러운 짓을 하면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6.5. 내한공연

한국에도 꽤 많이 내한하였다. 가장 최근의 내한인 2009년에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서 유희열과 인터뷰도 하고 노래도 불렀으나 목 상태의 악화와 음향 상태를 이유로 립싱크를 한 데다가 내한 일정 내내 태도도 그다지 공손하지 않아서 욕을 먹었다. 하지만 09년 당시 내한 때에만 태도가 좋지 않았지 이전의 내한에선여신의 포스를 보여주었다.] 우월한 키차이 박지선영어로 직접 머라이어에게 팬심을 고백하고 'Loving You' 라는 노래를 돌고래 창법(...)으로 불렀는데 차라리 이 부분이 압권. 머라이어도 진심으로 좋아한 듯. 이후에 박지선은 슈퍼스타 KBS에서 이걸 그대로 써먹었다.
2014년 10월 8일 내한공연을 한다. 기사 공연에 대한 평가는 망했다는 평이 대다수로, 머라이어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몇몇 부분을 코러스에 의존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 뿐만 아니라 요즘 머라이어 주위의 상황이... 남편인 닉 캐논의 바람 때문에(...) 닉 캐논과 이혼 논의중이다.


고음불가 특별게스트가 아님


3:22초에 드러나는 진실....

이 문제는 며칠 전인 일본공연때도 거론된 문제. 그리고 선곡이 한국에서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Rainbow》앨범이나 《Butterfly》앨범의 곡들을 부른 것도 문제. 그 유명한 Without You, I'll Be There, Vision Of Love, 심지어 Hero도 부르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 셋리스트에 들어간 곡들이 주요 곡들 위주로 빠졌던 터라, 직전의 일본 공연 라이브 영상을 보고 간 사람들은 엄청난 실망감에 빠졌다.

더 충공깽인 사실은 마지막 캐럴 곡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앵콜 곡도 아니었다) 댄서들이 춤추고 있는 아직 공연이 안 끝난 상황에서 자신만 무대에서 퇴장한 후 준비된 차 타고 공연장을 빠져 나가는 역대급 헐리웃 스타일 공연 매너를 뽐냈다고 한다. ㅎㄷㄷ 무지하게 추운 야외에서 가수가 떠난 무대를 향해 계속 앵콜을 외친 관객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그 날 머라이어의 몸상태가 최악에 날씨도 무지하게 추웠다고는 하지만...

더 아쉬운건 머라이어 특징상 투어를 하면 할수록 포텐이 터지는데 이번 역시 내한공연 후 중국공연과 동남아공연으로 나날이 라이브가 좋아지고 있다(...)

6.6. 갑질 논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약 1년동안 두 아이를 돌본 육아 및 가사도우미 'Simonette DaCosta'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일주일에 많게는 120시간까지 과도한 일을 했고, 초과한 근무에 대해 정당한 임금도 지불받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내가 해고당한 것도 캐리가 아이들이 나를 너무 좋아한다는 이유였다."라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실 여부는 재판 후에 알 수 있겠지만 팬들은 충공깽... 특히 내한했을 때 보여준 적절치 못한 무대 매너 때문에 미운 털이 박혔는지 욕 먹는게 심상치가 않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조현아 사태 등으로 갑질논란이 여전히 뜨거운 상황에 하필이면...이런 기사가 터져서 "머라이어 캐리의 갑질"이라며 두 배로 욕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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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9 22: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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