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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

last modified: 2015-04-02 01:52:40 by Contributors


젊은 시절


현재 모습

Mary Louise "Meryl" Streep
메리 루이스 "메릴" 스트립
1949년 6월 22일

미국의 배우
연기의 여신
현 시대 최고 그리고 최강의 여배우
Acting machine[1]

"메릴 스트립이 되어라. 적어도 노력하라."


본명은 메리 루이즈 스트립(Mary Louise Streep)으로, 메릴이라는 이름은 메리 루이즈에서 루이즈의 앞글자를 붙여서 나온 것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의 굇수급 그 이상의 여배우다. 다른 배우들은 평생 한 번 받기도 어려운 아카데미상3회나 수상하고 깐느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도 수상한 대배우. 하나만 모으면 된다.

1949년 뉴저지 주 서밋의 약품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했다. 성악가를 목표로 12살 때 부터 성악 트레이닝을 받았다가 진로를 배우로 결정한 그녀는 바사 대학교에서 예일 대학교 연극학부에 진학한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은 명문대 입학이 쉽다. 한국도 찬가지 아닌가? 엠마 왓슨(브라운), 나탈리 포트먼(하버드)이나 조디 포스터(예일)가 그 경우. 그러나 메릴 스트립은 데뷔하기 전에 이미 예일대 연극학부에 들어갔다. 또한 예일 대학의 연극학부는 현재도 SMU, 줄리어드 등과 함께 미국에서는 물론 세계에서도 최고이다. 하물며 60~70년대에는 영미권 연극학부를 줄리어드와 양분한 학교이다.

메릴 스트립은 데뷔하기까지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어떤 때에는 숙박비가 없어서 런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2]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하루하루의 생활비를 벌기도 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호텔의 웨이트리스로도 일을 하였다. 1971년에 《세비야의 플레이보이》라는 작품에서 데뷔했고 1977년 TV 영화인 《치명적인 계절》(The Deadliest Season)으로 영화에 들어섰다.

메릴 스트립의 필모그래피에 중요한 초석이된 작품은 1978년에 나온 영화 《디어 헌터》로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 조연상에 지명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후보지명 기록도 여기서부터 시작.

1979년작 《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스트립의 초기 필모그래피에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연기파 배우 더스틴 호프먼과의 열연으로 그녀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후로 2015년 현재까지 배우로서 활약중. 그녀가 괴수급 이상이라는 증거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와 수상경력만 보더라도 충분히 증명이 된다. 그녀는 2015년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9번이나 지명되었으며 아카데미 역사상 그 어떤 배우도 스트립만큼 지명된 배우가 없다. 19번 노미네이트에서 3번 수상에 그쳤다는 게 아쉽지만. 여러 번 후보에 오르고도 한 번도 수상 못한 배우도 많은 걸 생각하면 상복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그녀가 찍는 영화는 무조건 평타 이상이라서 밸런스 조절 차원에서 그랬을지도..

그녀의 아카데미 후보 기록을 보면 실로 두려울 정도다.

  • 1978년: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 1979년: 《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여우조연상 수상.
  • 1981년: 《프랑스 중위의 여자》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첫 노미네이트.
  • 1982년: 《소피의 선택》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여우주연상 수상.
  • 1983년: 《실크우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85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87년: 《엉겅퀴꽃》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88년: 《어둠 속의 외침》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0년: 《할리우드 스토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5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8년: 《원 트루 씽》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9년: 《뮤직 오브 하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02년: 《어댑테이션》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08년: 《다우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09년: 《줄리 & 줄리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12년: 《의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여우주연상 수상..[3]
  • 2014년: 《어거스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15년: 《숲속으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그외에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선 29번 노미네이트 되어서 8번 수상했고(《의 여인》까지 포함) 에미상과 그래미상 등 각종 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했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인정받아서 베를린 영화제에서 3번 수상했고(한번은 여우주연상격인 은곰상) 칸에서도 1번 수상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이게 사람이야 굇수야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18번째의 후보 지명을 받았으나, 케이트 블랜칫에게 밀려, 4번째 수상은 실패했다.현재 커리어로는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20번은 기본으로 찍을 것 같다. 그 와중에 4번째 수상은 덤인가(...)

영화 역사를 통틀어 여배우중 그녀에 비견될 만한 커리어를 쌓은 사람은 할리우드 초중기의 전설적 여배우였던 캐서린 헵번(1907.05.12 - 2003.06.29)[4]뿐이다.[5] 아카데미 12회 노미네이트, 4회 수상. 스트립이 지금의 추세로 계속 커리어를 쌓아 나간다면 그녀를 넘어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6]

《철의 여인》을 촬영하면서, 대처의 경제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그녀의 선택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는 것을 알고있다고 하여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그녀는 유명한 민주당 지지자이다.

단순히 상을 몇번 받았다는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메릴 스트립이 연기자로써 명실상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배우인 것은, 온갖가지 삶의 질곡과 풍상을 다양하고 능란하게 마치 그 인생을 살아온 사람처럼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때론 화사하고 아름답게, 때론 악랄하고 표독하게, 때론 더없이 순박한 시골 촌부로 진심을 담아 다양한 모습으로 연기해 온 때문이다. 스트립의 이러한 연기 특성은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을 촬영했을지라도 자신의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호평 이상을 받게 한다.

스트립의 연기 스타일은 치밀하기로 유명한데, 《소피의 선택》의 폴란드식 영어와 독일어,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덴마크식 영어 억양,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이탈리아식 영어 억양 등 자신의 배역의 억양까지 완벽하게 구사할 정도의 준비가 되어야 촬영에 임할 정도다. 가히 각 영화마다 어떤 얼굴로 나왔는가를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늘 기대하게 되는 몇 안 되는 배우 중에 배우라 할 만하다.

현 남편인 돈 거머 이전에 대부 시리즈의 프레도 콜레오네로 유명한 배우 존 커제일과 연인 사이로 유명했다. 76년 연극무대에서 처음 만난 둘은 이후 커제일이 수암 진단을 받았음에도 약 3년간 뉴욕에서 같이 살았다. 두 사람은 이후 영화 《디어 헌터》에 같이 출연하게 되었는데, 스트립은 극 중 역할에 대해 다소 의구심이 있었으나 몸이 아픈 연인을 옆에서 지켜준다는 사실에 먼저 기뻐했다고 한다. 또한, 감독인 이클 치미노와 각본가와의 협의 하에 폐암 말기까지 겹쳐 극도로 허약해진 커제일의 촬영을 먼저 할수 있도록 재조정했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촬영 직후 커제일은 골수암으로 78년 3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스트립은 죽을때까지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고 한다. 또한, 2009년에 제작된 《당신을 알았습니다: 다시 보는 존 커제일》(I Knew It Was You: Rediscovering John Cazale)이라는 단편 다큐멘터리 제작에 재정적인 지원과 함께, 직접 출연해서 그를 회고하기도 했다.

지금 만난 돈 거머와는 78년 9월에 결혼했다. 이후 남편과 30년 넘게 해로하며, 4명의 자식을 키웠다. 딸 메이미 검머와 그레이스 검머 또한 훌륭한 배우가 되었다. 이혼이나 스캔들이 일상인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사례. [7] 게다가 영화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활동 등에서 모범적이여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입었던 의상 전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자신의 직업과 가정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에서 언제나 열정적이고 모범적인 메릴 스트립을 이 시대의 수많은 여배우들은 자신들의 롤모델[8]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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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이 별명은 그녀가 매 작품마다 컴퓨터로 찍어낸듯이 새로운 스타일의 화법과 정서를 보여준다는 비판 같지는 않지만 유일한 비판(...)이다.
  • [2] 그 때 나중에 앞에 보이는 런던 리츠 호텔에 꼭 묵을거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그리고 성공 후 그렇게 했다.
  • [3]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역으로 출연. 대처는 이듬해 타계했다.
  • [4] 캐서린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4회 수상자로도 유명하지만 단 한번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이유를 물은 기자들에게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다. "거기까지 가는 것이 귀찮다! 어차피 나 말고 누가 수상을 한단말인가?"(...) 실제로 캐서린 헵번은 자신이 예술가자부심이 대단한 배우였고 자신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에게 노골적인 모욕과 적대감을 서슴치 않고 보인 걸로도 유명한 여장부였다.
  • [5] 캐서린 헵번이 작고한 뒤 출간된 그녀의 전기 《케이트를 회고하며》(Kate Remembered)에 따르면, 생전에 헵번은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계산적이라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 [6]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4회 수상자로 유명하지만 단 한번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이유를 물은 기자들에게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다. "거기까지 가는 것이 귀찮다! 어차피 나 말고 누가 수상을 한단말인가?"(...) 실제로 캐서린 헵번은 자신이 예술가자부심이 대단한 배우였고 자신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에게 노골적인 모욕과 적대감을 서슴치 않고 보인 걸로도 유명한 여장부였다.
  • [7] 메릴 스트립의 팬들은 이 부부를 스트립과 검머를 합쳐'Strummer'라고 한다. 팬픽도 있다!
  • [8] 대표적인 추종자들이 앤 해서웨이, 나탈리 포트먼, 제니퍼 로렌스 등인데, 공교롭게도 이들 전부 아카데미 수상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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