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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last modified: 2015-04-12 14:10:03 by Contributors

明洞聖堂

MDchurch.jpg
[JPG image (158.42 KB)]
외부 전경 내부 전경[1]

기본 정보
위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교 가톨릭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지위 주교좌성당(Cathedral)
건축 정보
축성 1898년 5월 29일
건축가 유진 코스트
빅토르 루이 푸아넬
양식 네오 고딕(고딕 리바이벌)
착공 1892년 5월 8일
완공 1898년 5월 29일
건축 내역
전체 길이 69m
전체 너비 28m
종탑 높이 45m

Contents

1. 개요
2. 건축
3. 역대 본당 주임신부
4. 결혼식장
4.1. 사진
4.2. 피로연
4.3. 그외
5. 이것저것
6. 주변 시설

1. 개요

  • 한국어 : 서울대교구 주교좌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성당/명동대성당
  • 라틴어 : Cathedralis Ecclesia Immaculatae Conceptionis Mariae Virginis in Myeongdong
  • 영어 : Cathedral Church of the Virgin Mary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in Myeongdong/Myeongdong Cathedral
  • 프랑스어 : Cathédrale Notre-Dame de l'Immaculée Conception/Cathédrale de Myeong-Dong
  • 스페인어 : Catedral de la Virgen María de la Concepción Inmaculada/Catedral de Myeongdong

성당 공식 홈페이지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가에 자리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주보성인은 '원죄없이 잉태되신(無染始胎)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당의 정식 명칭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성당이고, 줄여서 '명동대성당', '명동성당'으로 부른다.

대한민국 최초의 고딕 양식 성당이자,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라는 자랑스러운 역사와 함께 당시 조선대교구장이던 뮈텔조선총독부에 부역하고 독립운동가를 밀고한 대가로 확장된 흑역사를 동시에 가진 곳.[2] 또한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열사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추도미사에 참석했던 이완용을 습격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완용 죽였어야 했는데! 1976년 3월 1일 3.1 민주 구국선언이 발표된 장소도 이 곳. 1898년 건립된 이래 11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유적지이며 사적 제258호. 김수환 추기경 때 그 유명한 10월 유신 반대 크리스마스 미사와 6월 항쟁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각종 미사들이 여기서 집전되었으며, 지금도 주요 미사는 여기서 거행된다. 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성의교정, 성신교정의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매년 이곳에서 거행된다.

사실 명동의 최동단이기 때문에 명동역보다 을지로3가역이 가깝다. 명동에서 올 때는 오르막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걸어오는 경우라면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서 오는 편이 더 낫다. 을지로1가 쪽이라면 CGV 명동점이 있는 눈스퀘어에서 우리은행 명동금융센터 방향으로 직진해도 나온다.

2. 건축

성당이 있는 명동 언덕은 한국 천주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범우의 집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 천주교 미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김범우는 이승훈, 약전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고 자체적으로 미사를 보았다. 포도청 당국이 이를 적발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명문가 자제라서 적당히 훈방 조치했지만, 김범우는 중인 계급이라 고문을 받고 귀양을 가다가 사망했다. 이후 개화기에 조선에서 천주교가 허용되고 나서 새로 성당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 명동성당이다.

한국에 있는 고딕[3] 성당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본당의 높이는 23m, 탑의 최고 높이는 45m다. 현성당을 설계한 코스트(Coste) 신부가 후에 명동성당을 설계하였고, 파리선교회의 재정지원을 받아 1898년에 완성하였다. 구조적, 양식적으로 약현성당과 유사한 편.약현성당에 대한 이해 벽돌로 쌓은 교회이기도 하다. 20여종의 벽돌과 붉은색, 회색을 섞어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각종 민간 쇠붙이 생필품이나 철로 등과 마찬가지로 군수품으로 쓴다며 종탑의 종을 공출당할 뻔했고[4], 6.25 전쟁 때는 성당 전체가 폭격으로 날아갈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5]. 1947년과 1973년, 2009년에 보수공사가 있었다.

비교적 고딕 양식에 충실하지만 전형적이라고 하기는 힘든데, 전형적인 고딕 성당과는 조금 다른 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평면 구성은 여느 고딕 성당처럼 십자가의 형상이지만, 십자가의 양 날개 부분인 트란셉트(transcept, 교차랑/익랑)가 짧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다. 엄밀하게 말하면 직사각형에 가까운 셈.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중앙의 통로에서 천장이 높은 곳은 네이브(nave, 신랑/중랑)라고 하며, 좌우의 낮은 통로는 아일(aisle, 측랑)이라고 하는데, 아일의 폭이 트란셉트에 맞먹는다.

성당의 입구나 창문은 중간이 뾰족한 첨두식 아치를 사용하였다. 리브볼트, 성당 내부 리브볼트, 성당 입구
성당외벽, 플라잉 버트레스는 없음

실내 천장에 리브볼트(Ribbed vault)[6]를 사용한 점은 고딕양식에 충실한 점이지만, 전형적인 고딕 성당은 석재로 되어 있는 반면 명동성당의 리브볼트와 종탑 지붕은 하중을 줄이기 위해 목구조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석재 리브볼트가 기둥을 좌우로 밀어내는 힘을 감당하기 위한 구조물인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7]가 명동성당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성당이 건설되면서 발생했던 붕괴 사고 때문에 원 설계안보다 기둥이 굵고 작은 창을 가지게 되어 고딕보다는 그 이전의 육중한 양식인 로마네스크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3. 역대 본당 주임신부

순서 이름 재임기간   순서 이름 재임기간
1대 백규삼(장 마리 귀스타브 블랑) 1882~1890 2대 정가미(카미유 외젠 두세) 1890~1892
3대 박도행(빅토르 루이 푸아넬) 1892~1926 4대 우일모(마리 피에르 폴 빌모) 1926~1942
5대 이기준 토마스 1942~1950 6대 장금구 요한금구 1950~1957
7대 양기섭 베드로 1957~1962 8대 이종순 라우렌시오 1962~1963
9대 신인식 바오로 1963~1964 10대 황민성 베드로 1964~1965
11대 이계중 요한 1965~1968 12대 이문근 요한 1968~1971
13대 최석우 안드레아 1971~1972 14대 김몽은 요한 1972~1978
15대 경갑룡 요셉 1978~1982 16대 김수창 야고보 1982~1986
17대 김병도 프란치스코 1986~1988 18대 정의채 바오로 1988~1988.9
19대 조순창 가시미로 1988.9~1994 20대 장덕필 니콜라오 1994~1999
21대 백남용 바오로 1999~2003 22대 이성만 토마스 2003~2004
23대 박신언 라파엘 2004~2010 24대 여형구 미카엘 2010~2013
25대 고찬근 루카 2013~현재

4. 결혼식장

웬만한 결혼식장 홀을 압도하는 고딕 양식의 웅장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천주교 신자라면 한 번쯤은 명동성당에서의 혼배를 꿈꾸기도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까다롭다. 신랑 신부 둘 다 가톨릭 신자이거나, 최소한 둘 중 한 명은 신자여야 한다. 만약 한 사람이 신자가 아닐 경우 혼배성사에 준하는 관면혼배를 받고 이 결혼으로 태어나는 아이에게는 가톨릭 유아 세례를 줄 것을 서약해야 한다.[8] 그래서 다른 한쪽(특히 여자)도 개종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있다.

당해 혼배미사 일정을 전년도 하반기에 전부 추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대개 한 주에 한 번 혼배미사 일정을 받는 여타 성당과는 달리 주 10회를 혼배미사로 배정하는데도 신청자가 굉장히 많아서 경쟁률이 엄청나다.

사실 쾌적하게 결혼식을 올리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우선 시간이 굉장히 짧다. 위에도 설명했지만 주 10회라는 엄청난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한 부부 당 1시간간 안에 결혼식을 끝마쳐야 한다. 축의금 천원 넣고 피로연 식권을 쓸어가서 정작 하객들은 앉아서 먹지 못하게 만드는 정장 입은 노숙자들이 많아 식권관리의 난이도가 높은 결혼식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성당이라는 이미지 덕분인지, 결혼식에 있어 제약과 금지사항이 많다.

4.1. 사진

신혼부부 당사자들에게 있어 가장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성당 내에서의 본식 스냅사진 촬영을 오로지 명동성당 내의 사진부에서만 할 수 있다. 즉 신랑신부 본인들이 찍고 싶은 외부 사진 업체를 불러다 쓸 수 없다. 명목상으로는 혼인미사 전례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결혼사진 업체들이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런걸 몰라서 제대로 못할 리가 없다. 사실은 명동성당 사진부가 이를 독점하기 위한것. 또한 사진부 자체의 사진이나 앨범 퀄리티가 썩 좋지 않고 가격도 싸다고는 하기 힘들어서, 성당 사람들이 돈벌려고 작정했냐는 음모론(?)도 있다.[9] 그나마 찍고 난 사진의 선택이나 앨범의 레이아웃 등은 최대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실제 제작할때도 본인들이 참여해서 의견을 말해가며 작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최소한의 위안일지도. 웹을 찾아보면 본식 스냅때 사진을 찍었다고 샘플 사진을 올려놓는 업체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예전에 적당히 신랑신부의 지인 하객이라고 말하고 들어가서 찍은 편법 사진들이다. 그나마도 2013년경부터는 이런 꼼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자 아예 DSLR 카메라는 무조건 입장을 금지시켜 버렸다.

그나마 명동성당 사진부가 가진 약간의 장점이라면 시중가보다 좀 저렴하다.

다만 독점이라고 해서 너무 기분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말자. 많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종파들은 종교의식을 함부로 사진 찍는 것을 좋지 않게 본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식의 촬영권한을 자신들에게 소속된 집단에게 부여하거나, 설령 외부인에게 허용하더라도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철저히 사전심사하는건 흔한 일이다 당장 집 근처 아무 성당에 찾아가서 대뜸 미사를 촬영하는 것은 엄청 무례한 일로 취급되며, 성당 관계자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주의사항을 듣는게 필수이다. 비슷한 원리로 이태원의 이슬람 모스크에서도 외부인의 촬영은 곱지 않게 보며, 철저히 사전에 허가받아야만 한다. 혼인성사는 단순히 멋지고 예쁘게 올리는 결혼식이 아니라, 성사임을 명심하자.

4.2. 피로연

하객들에게 대접할 피로연 식사는 명동성당과 협력관계인 부페업체를 이용하게 된다. 단 식 날짜와 시간대에 따라서 피로연장소는 무조건 정해주는 곳을 이용해야 한다. 성당 맞은편의 서울로얄호텔이 걸리면 중후한 분위기로 괜찮지만, 코스트홀(중에서도 1층)이 걸리면 안습. 메뉴는 3종류의 가격대로 선택이 가능하다고 말해주지만 실제로 보면 시식 날에는 한 종류(중간 가격대)의 식사만 맛볼 수 있고, 저렴한 가격대 메뉴는 중간대에 비해 빠지는 메뉴가 많아 선택하기 어렵다. 실제로는 그냥 가운데 메뉴를 고르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

4.3. 그외

명동시내 한복판이라서인지 주차장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고, 하객들의 주차에 대응하려면 근처의 미래에셋 센터 지하 주차장 주차권을 사야 한다. 축가, DVD영상 상영, 화환, 신부대기실 장식, 포토테이블 같은 것도 금지. 거의 명동성당에서 식을 올린다는 것 하나만으로 포기하거나 제약받는 것이 매우 많다.

성당에서 올리는 결혼식중에서도 까다로운 게 명동성당에서 올리는 결혼식. 사실 천주교에서도 웬만하면 소속 본당에서 혼배성사를 올릴 것을 권하기 때문에 적당한 본당 건물이 있는 성당에 다닌다면 너무 명동성당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5. 이것저것

네이버에서 명동성당을 검색하면 어린이 청소년을 담당했던 모 보좌신부가 연관검색어로 뜬다. 그 이유는 이 신부가 신자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극강 동안이었기 때문. 강론에서도 본인이 동안이라는 걸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으며, "저 같이 귀여운 신부가 이하생략". 심지어는 어떤 외국인 부부는 미사 도중에 이 신부가 지나가는 것을 보더니 "So cute"(...)라고 말한 것을 신부 본인이 강론 중에 직접 언급하며, 본격 글로벌 귀요미에 등극했다고 자화자찬하였다. 손발리 오그라진다

하지만 2012년 인사발령에 따라 이 신부는 명동성당을 떠났다. 미사 드리러가 아니라 신부 얼굴 보러왔던 신자들 안습. 한 술 더 떠서 다른 성당에 계시다가 아예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이제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는데 랜드마크로서의 상징성도 더 높지만 그 정류장을 코앞에 끼고있는 중앙극장에게 그 정류소명을 내주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극장 항목 참조.

토요일 저녁 6시, 7시 미사는 주일 미사로 진행된다. 이 중 7시 미사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사용한다. 원래 라틴어 미사였는데 미사를 집전하시던 신부님이 다른 곳으로 가는 바람에 미사를 드릴 수가 없어서 이렇게 바뀌었다. 신학교에서 라틴어 배우지 않나? 왜 다른 신부님은 라틴어로 못 드리지??

한국 최초의 본당인만큼 사실상 속인적 본당으로 간주되어 신자들의 거주지와 상관없이 교적이 2만 개 넘게 소속되어 있으며[10], 1년에 한두번 정도 모집하는 평범한 본당들과 달리 거의 매월 예비신자 교리반을 모집한다. 군종교구 신병교육대 성당 급의 영세율을 나타낸다. 역시 견진성사 교리반도 상당히 자주 모집한다.

6. 주변 시설

성당 오른쪽에 계성여자고등학교가 있다. 분명히 있는데 입구가 주변 건물과 비슷하게 생겨서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 보호색 당연히 가톨릭계 사립 고등학교다. 명동성당 바로 뒤쪽에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다. 학교 축제날 아침에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본다. 이 미사가 끝나면 교내 시상식이 있다. 신성한 명동성당에서 와글와글 떠드는 여고생과 그들을 진압하기 위한 고함소리가 난무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도심 공동화 문제 때문에 2016년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으로 계성여고를 이전하게 되었다. 명동성당에서 하는 졸업식은 1997년생을 끝으로 영영 없어진다. 게다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된다고 한다.뭐야? 대구가 아닌 서울에도 계성고등학교가 생기나? 같은 재단[11]의 계성초등학교는 2006년 2월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역 인근으로 이전했다. 계성초등학교는 학교 이전 후 촌지 사건 등 여러모로 뒤숭숭해진듯. 계성여고도 기존의 아가씨 학교(?) 이미지를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여의도성모병원의 전신인 명동성모병원으로 지어진 가톨릭회관이 사무실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대성전이 사제 서품 미사도 열지 못할 정도로 매우 협소하다. 그래서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은 대부분 잠실체육관, 올림픽공원에서 열린다(...) 그래서 2011년부터 언덕 아랫쪽에다가 땅도 파고 탑도 쌓고 하는 대개발을 벌이고 있는데 문화재 훼손이 아주 여러 모로[12] 진행되는 등 떡밥이 부지기수로 산재한 상황이다.@


2014년 7월 1단계 개발공사가 완료되었다.

2015년 1월 현재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사무용 건물과 지하 상가가 새로 생겼다. 상가라고는 하나 내부가 광장처럼 넓고, 서점과 카페 위주로 입점하여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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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자세히 보면 현대식 제대가 없다. 또한 현재는 중앙부의 붉은색 카펫이 없 다.
  • [2] 뮈텔이 신민회와 안명근을 조선 총독부에 밀고한 대가로 총독부는 명동성당 주위의 부지를 넓히는 등의 혜택을 주었다.
  • [3] 보다 정확하게는 네오 고딕(고딕 리바이벌) 양식에 속한다.
  • [4] 이에 노기남 대주교는 종을 치는 끈을 거두고 종탑을 폐쇄했다. 그래서 종은 무사했지만 대신에 성당에 있던 철제 난간이 뜯겨져 목제로 교체했다.
  • [5] 전쟁 당시 성당 인근에 주둔하던 인민군을 몰아내기 위해 미군측에서는 그 지역을 싹 폭격한 뒤에 성당을 새로 지어주겠다고(!!!) 한국 가톨릭 교회에 제안했지만 교계에서 결사반대했다.
  • [6] 롤빵 같이 둥근 천장을 볼트라고 하며, 리브는 천장의 뼈대를 말한다.
  • [7] 성당 외부의 독립된 기둥들로, 외벽이 밖으로 쓰러지는 것을 막아준다.
  • [8] 명동성당뿐만 아니라 어떤 성당이든 혼배 미사를 위해서 내거는 조건이다.
  • [9] 참고 #1 #2 #3
  • [10] 명동의 주민등록 인구가 1만 명 선이다(...)
  • [11]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계성여고/계성초교 외에도 산하에 가톨릭대학교와 동성중고등학교(종로구 혜화역 인근)도 있다.
  • [12] 부지 전체가 아니라 대성전만 문화재라서 대성전보다도 오래된 주교관이 문화재가 아닌 것, 땅 파는데 대성전 안 무너지도록 고려 제대로 했는지 논란, 조선시대유적+근대유적 다 묻혀 있는데 무시하고 부숴버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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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2 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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