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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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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إسلامية الموريتانية(al-Ǧumhūriyyah al-ʾIslāmiyyah al-Mōrītāniyyah)
프랑스어: République Islamique de Mauritanie

공식명칭 모리타니 이슬람 공화국
면적 1,030,700km²
인구 3,359,185명 (2012년 통계)
수도 누악쇼트([1]نواكشوط)
공용어 아랍어[2]
통화 모리타니 우기야
1인당 GDP 명목 1,157$, PPP 2,121$ (2012년 통계)
민족구성 아랍계 30%[3], 혼혈 40%, 흑인 30%[4]
종교구성 대부분 이슬람[5]

Contents

1. 개요
2. 자연
3. 역사
4. 사회
5. 외교 관계
6. 여행


1. 개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로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마우레타니아에서 국명이 유래되었다. 6~70년대의 우리나라에서는 영어식 표기인 모리타니아라고도 불렸었다. 모리셔스와는 전혀 다른 나라이다.

수도누악쇼트(Nouakchott). 국토면적은 103만 700㎢, 인구는 약 350만 명. 모리타니의 수도인 누악쇼트는 모래밭 위에 지어진 계획도시로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구는 88만 명으로 전국민의 ¼가량이 수도에 살고 있다.

이 나라의 국가는 간지가 돋지만 박자 때문에 부르기 어려워서 가사를 없앴다. 아무래도 프랑스인이 작곡을 해서 그런듯 싶다. 모리타니 국가. 오오 이 박력!

2.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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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니의 위성 사진.

지형은 매우 단조로운 편이다. 산이 거의 없는 평탄한 지형이다. 최고봉 케디엣 엘 질 산도 1000m가 채 되지 않는다. 국토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과 엘주프(El Djouf)사막으로 되어 있어 농경은 거의 불가능하고 별다른 산업시설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빈곤하다. 그나마 남부의 세네갈 강 유역에선 농경이 가능했으나 이마저도 사막화현상으로 농경지가 줄어들고 있다. 다만 이 상당히 많이 생산되고 2001년에 석유가 발견되었다.

모리타니는 넓은 국토 때문에 네 가지 기후구를 가지고 있다. 뜨겁고 건조한 사하라 기후구는 국토의 절반 이상으로 차지하며 강수량 150mm 미만 지역이다.겨울에는 낮에 38℃까지 올랐다가 밤엔 0℃까지 내려가고, 여름에는 낮에 49℃까지 오르다가 밤에 16℃까지 떨어진다. 1년 내내 하르마탄이 불며 사하라 사막 중에서도 모래사막이 넓게 펼쳐진 지역이다. 그리고 식생은 시망(...) 해안 기후구는 수도 누악쇼트가 포함되는 지역으로 기후는 1년 내내 20℃에서 30℃ 정도로 바람이 몹시 세지만 생각보다 춥거나 덥진 않다. 강수량은 적고 대개 한두달동안 집중해서 내린다. 그리고 모래언덕은 여기서도 많다. 사헬 기후구는 동남부 내륙지역으로 가나 제국의 수도도 이 사헬 지역에 있었다. 물론 여기도 열풍이 불지만 비는 그래도 많은 편이고 일교차는 크지만 사하라 사막보단 적다. 세네갈 강 기후구는 서남부 지역으로 모리타니에서 유일하게 모래언덕이 없다. 또한 강수량이 600mm 정도로 비가 많이 오고 연교차도 그리 크지 않지만 이 기후구는 사막화로 인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통적인 이동식 가옥의 경우에는 땅에 15~20cm 가량 되는 구멍을 파고 기둥을 몇 개 꽂아 천막 비스무레한 걸 치는데, 이 때 구멍에 목숨만큼 소중한 을 부어 다진다. 그래야 구멍이 바스러져 기둥이 쓰러지지 않는다고....

3. 역사

고대 모리타니는 하마코끼리, 코뿔소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초원이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그러나 사하라 사막의 확장으로 모리타니는 불모지가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모리타니 북부는 베르베르인들이 낙타를 끌고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 지역은 말리에도 거주하는 닝케 족의 선조격인 푸르 족도 살고 있었으나 베르베르인의 이주로 인해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1076년 무라비트 왕조가 모리타니 동남부와 말리 일대의 가나 제국을 공격해 정복했으며, 이후 아랍인들에 의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이후 1814년부터 프랑스가 이곳의 해안선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901년 자비에 코폴라니는 자위야 부족이나 하산의 유목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트라자, 브라크나, 타간트 등을 1903-1904년까지 식민화했다. 그러나 북부의 아드라르는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고 샤이크 마 알 아이나인 등을 중심으로 저항이 있었다. 이는 1912년에 군사적으로 진압되었고, 1920년까지 이 지역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편입되었다.

프랑스의 지배 이후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유목민으로 남았지만 정주민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960년에 독립했을 때 수도인 누악쇼트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을 발견하진 못했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70년대 스페인 식민지였던 서사하라의 지배권을 놓고 모로코와 타협을 봤었지만 빈약한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에 1978년 지배를 포기하고 모로코가 차지하는 것을 인정했다. 이 문제로 알제리와 대립하기도 했으며 1970년대엔 리사리오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군병력을 1,800명에서 17,000명까지 증강했다. 이후 모리타니는 1984년에 서사하라를 독립국가로 승인했다.

독립 후, 대통령 모크타르 울드 다다는 다들 그렇듯이 모리타니는 서양식 다당제 민주주의에 대한 준비가 없다는 핑계로 일당 독재를 했다. 다다는 헌법을 뜯어고치고 1966, 1971, 1976년의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되었다.하지만 결국 서사하라에서의 실패 이후 얼마 안 된 1978년 7월 10일, 쿠데타로 추방당했다.

80, 90년대 내내 무어인흑인간의 반목이 계속되었다. 1980년대에는 7만 명의 흑인들이 남쪽으로 추방되었고 1989년엔 세네갈과 국경 분쟁을 치르기도 했다. 남쪽의 세네갈에서 반모리타니 폭동도 발생했다. 모리타니의 무어인들은 세네갈 출신이나 모리타니 출신 흑인들을 공격해 만행을 저질렀다. 1992년 형식상으로 모리타니는 민주화되었다. 그러나 군부독재는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다가 2005년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후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시디 모하메드 울드 셰이크 압달라히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국내 이슬람 반군과 대화를 재개하자 이에 모하메드 울드 압델 아지즈는 2008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2009년 모하메드 울드 압델 아지즈는 경제재건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4. 사회

노예 제도는 이 나라에 비공식적으로 남아 있으며 인구의 20%인 약 60만 명 정도가 사실상 노예 상태라고 추정된다. 물론 노예금지법이 있지만 국민들의 인식도 노예제를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국토의 대부분이 고립된 사막지대이어서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법으로 기소된 사람은 여태까지 1명 뿐이라 한다. 이 나라에서 노예제는 1981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고[6] 노예를 부리는 행위가 범죄가 된 것도 2007년에 불과했다.

결국 2013년 10월 16일, 호주 인권단체가 발표한 '세계 노예 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97.90점이라는 넘사벽 점수 [7]를 받아 세계 1위의 노예제 국가로 등극했다. 인구 약 380만 명의 4.1%인 15만 명이 노예 상태에 신분까지 세습되는 상태에 있다고 한다. 흠좀무.

다른 사이트에서도 위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66.41점으로 66.08점의 아이티보다 높은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이 나라에선 뚱뚱한 사람이 미인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그래서 10대 중후반의 여성들에게 과식을 강요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음식이 생기면 먼저 여성부터 먹이는 풍습도 여성을 살찌우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결혼 전에 신부학교라는(wife-fattening camp)곳에 입학(?)을 시킨다.그리고 무조건 먹이게 하는데 발목에 방울을 달아 조금이라도 움직여 방울이 울리면 맞는다. 심지어는 주리틀기의 미니버전으로 발가락이나 손가락 사이에 나무를 끼우게 하고 만약에 음식을 먹지 않으면 나무를 눌러 고통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폐습은 식량 상태가 좋은 시기에 주로 이루어지는데 보통 일일 16,000칼로리를 먹이며, 식량이 희소하다 보니 토할 경우 토한 것도 도로 주워 먹게까지 한다. 그 상태로 활동을 최소화한 채 강제로 계속 먹여 살을 찌우게 한다. 그래야 부모와 남편의 체면이 유지된다고 한다. 즉, 풍채 좋은(?) 몸매가 집안의 경제력을 상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식량이 부족한 곳이다 보니 가축사료에 정체불명의 수입산 약물까지 동원된다는데...

사실 지금도 기아와 말라죽는 병(에이즈)가 창궐하는 아프리카에서는 뚱뚱한 여자가 미인이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나오는 날씬한 흑인 미녀들은 말그대로 해외용이다. 어짜피 미라는 것은 한 사회에서 가지기 힘든 희소성과 관련된 것인법

아프리카를 전문으로 여행하던 여행자가 2007년에 쓴 책을 보면 모로코와 이 나라의 국경에 폐차들이 가득해서 이상하게 여겼는데[8] 국경선에 무장 도적들이 가득하여 차를 약탈하고 쓸만한 부품을 다 빼버린 다음 내다버리기 때문이라고 경악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부정부패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뇌물과 비리가 후진국답게 당연시되며 바다의 쓰레기장이라 불리우는 배의 무덤이라는 곳도 돈을 받고 배를 버리는 것을 용납한 어떤 공무원의 비리로 탄생된 것이다.

스포츠로 축구가 인기가 많지만 국내사정이 이러다 보니 실력은 엉망. 피파랭킹 205위(2012년 9월)로 아프리카 최저를 자랑한다. 그 밑에 있는 나라가 동티모르부탄산마리노... 경제적,정치적으로 개판인지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아프리카)은 불참하면서 피파 랭킹도 더 추락했다. 애초에 월드컵 지역예선에 참가한 것이 1978년, 1998년 ~ 2010년 5회 뿐이다. 무슨 폐관 수련하는 것도 아니고

5. 외교 관계

대한민국과는 1963년에 수교하였다가 이듬해인 1964년에 단교 [9]하고 1978년에 재수교하였으며 1988년 서울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에는 자국 선수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1993년 대전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는 '중동공동관' 국가 자격으로 알제리, 수단, 요르단과 공동 참가하였다. 현지 한국인 교민은 20여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국내 대형마트 수산물코너에서는 이 나라에서 수입된 문어를 종종 볼수 있다.

북한과는 1964년에 수교하였는데 북한이 '폴리사리오 지원' 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단교하였다가 1980년에 재수교하였다.

6. 여행

관광지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사막의 마을이나 중세 가나제국의 고도 쿰비살레가 있으며 모래로 덮인 마을을 통과하면서 그곳의 유목민과 차를 마시거나, 혹은 달처럼 생긴 분지를 횡단하는 등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치안이 열악하다. 알카에다의 활동도 활발한 편이며 상습적으로 테러가 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사법체계가 미흡하고 경찰력이 미약할 뿐더러 자의적으로 수사나 체포를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가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모리타니 주재 한국공관이 없고 비자 발급 등의 업무는 일본대사관이 대행하고 있다.

음식은 안남미라고도 불리는 인디카쌀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찰기가 없고 밥알이 따로 논다. 한국식 밥을 기대했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고국의 음식이 그립다면 모리타니 곳곳의 중국음식점에서 자포니카 쌀로 된 요리를 내놓으니 이곳에서 아쉬움을 달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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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베르베르어로 바람부는 동네라고 한다.
  • [2] 실제론 프랑스어, 풀라어, 월로프어 등 많은 언어가 쓰이며 표준 아랍어가 아닌 하사니야 아랍어를 사용한다.
  • [3] 주로 무어인과 베르베르인이다.
  • [4] 소닝케족, 투클로르족, 풀라족, 월로프족 등이다.
  • [5] 100%에 가깝다. 또한 국교이기도 하다.
  • [6] 이 시기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늦은 것이다.
  • [7] 2위 아이티는 52.26점. 바로 다음 등수와 무려 45.64점이나 차이가 난다. 흠좀무
  • [8]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이 만든지 4,50년이 넘은 차도 끈질기게 재활용하여 쓰기 때문에 이런 폐차가 가득 쌓이는 걸 보기 어렵다고 한다.
  • [9] 당시 대한민국은 서독의 할슈타인 원칙과 비슷한 외교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즉,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는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외교 정책이었는데 모리타니가 1964년 북한과 수교하자 우리나라는 단교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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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9 13: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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