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모사드

last modified: 2015-04-08 13:21:50 by Contributors

(ɔ) PNG crusade bot.

Original uploader was PNG crusade bot at en.wikipedia.

Later version(s) were uploaded by SGT141 at en.wikipedia. from


Mossad
히브리어: המוסד

설립연도: 1949년
구분: 해외 정보기관
소재지: 이스라엘 텔아비브
설립목적: 나치의 학살에서 살아 남은 유대인팔레스타인 이주
주요사업: 대(對)아랍 정보수집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고,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잠언 11:14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알려진 주요 행적
4. 한국과의 인연 및 한반도 내부에서의 활동
5. 픽션 속의 모사드 요원


1. 개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놀라운 정보수집능력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공작 능력으로 악명 높다. 주요 공작으로는 다음이 알려져 있다.

  • 아돌프 아이히만 : 나치의 일원으로 유대인 강제수용소 설치의 주역이다. 15년 동안 추적해 국제법을 무시하고 납치해서는 국내법을 고쳐가며 교수대에 올렸다.

  • 요제프 멩겔레 : 나치의 일원으로 생체 실험의 주역이었다. 시체가 확인될 때까지 40여 년을 쫓아다녔다.

  • 이라크의 MiG-21 파일럿 귀순 : 제3차 중동전쟁 직전에 미인계이라크 파일럿을 유혹해 MiG-21과 함께 귀순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해당 파일럿은 이라크의 소수 민족 아시리아인으로 아시리아인들은 3세기부터 기독교도였다. 그 때문에 19세기에는 심한 핍박을 받았으나 1960년대 시점에선 사담 후세인바트당 치하에서 비교적 우대를 받았다. 이는 바트당의 사상적 기반 구축에 아랍 민족주의자들과 더불어 바로 아시리아 기독교도들이 초기 정당 구성원 및 지도자의 상당수를 차지했던 때문이다. 이 아시리아인들은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마자 곧바로 핍박받기 시작한다. 참고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있다. 망명을 선택하기 까지의 이라크 파일럿의 심정변화 등을 잘 그린 편.

  • 모르데카이 바누누 : 이스라엘인이지만 자국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폭로했다. 모사드 공작원의 미인계에 유혹당해 납치된 뒤 온갖 가혹행위를 당하며 심문을 받았고 결국 징역 18년이 선고됐는데 그 18년 중 12년간 독방에 감금됐고[1] 창문 없는 좁은 방에서 24시간 전등이 켜진 채로 지내다가 2년 반이 지나서야 교도소 측이 밤에는 전등을 꺼주어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있었다. 다른 수감자에게는 허용되는 신문, 라디오, TV가 금지됐으며 면회도 직계가족과 변호사에게만 허용됐다.

  • 뮌헨 올림픽 참사에 대한 보복 : 검은 9월단에 의한 뮌헨 올림픽 테러가 발생하자 모사드는 보복을 시행했다. 영화 '뮌헨' 이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국내 정보기관 신 베트도 있으나 외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 역사

1948년 6월 초대 책임자를 레우벤 실로아흐로 하여 외무부 산하 정치국으로 출범하고, 이후 1949년 12월 13일에 정치국을 확대개편하여 정보조정연구소(the Institude for Coordination, '모사드'는 Institud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로 재출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식명칭은 '중앙공안정보기관(Central Institute for Intelligence and Security, המוסד למודיעין ולתפקידים מיוחדים)'으로, 제2차 세계대전나치의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 이주시키기 위해서 1949년 다비드 벤 구리온 총리의 제안으로 설립되었다. 초대 의장은 레우벤 실로아흐(ראובן שילוח). 이후 1951년에는 총리 직속기구로 재편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모사드의 창설연도를 1951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휘하에 현장투입 및 암살팀인 '키돈'과, 통신감청 전문기술팀 '야호로민', 해당 공작 지역에서 모사드를 도와주는 유대인들인 '캇차'와 '사얀'/'사야님', 그리고 도처에서 운용하고 있는 각국 국적의 모사드 정보원들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53년에 취임한 2대 의장 이세르 하렐(Isser Harel)이 전문가 조직으로 발전시켰으며, 외국에서의 첩보활동·정보수집·비밀정치공작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1960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잠복지인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했으며,[2] 1972년 9월의 뮌헨 올림픽 사건에 관여한 검은 9월단 일원 13명을 7년 동안 추적하여 암살한 것으로 추정된다.[3] 이 와중에 모사드는 1973년 노르웨이에서 모로코인 웨이터 아흐메드 부치키를 검은 9월단의 지도자 중 하나인 알리 하산 살라메로 착각해서 살해하기도 했다. 아흐메드 부치키를 살해한 요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르웨이 당국에 체포당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모사드는 유럽 내 활동에 지대한 타격을 입었다.[4] 1996년 이스라엘 정부는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불했다. 비록 공식적으로 이 사건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중동전쟁에서 큰 공을 쌓은 이스라엘 스파이 엘리 코헨의 형 모리스 코헨도 모사드 요원이었다. 하지만 아우가 시리아에서 교수형당하는 걸 그저 TV화면으로 바라봐야 했다.

1980년대 말~1990년 대 중반은 모사드에게 암울한 기간이었다. 벌여 놓은 각종 작전이 실패해 언론에 알려져 망신을 당해 국장이 여러차례 교체되기도 했다. 높으신 분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정보기관을 휘두르면 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

그러다 2002년 메이어 다간이 국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부활의 계기를 맞는다. 취임사는 "적의 뇌를 삼켜라."

"나는 레바논에 참전했을 때 가문끼리의 싸움이 초래한 비참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한 족장의 머리가 깨져서 뇌가 거리에 흩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족장의 부인과 어린아이들의 시체가 있었다.
이때 살아남은 한 아이가 족장의 뇌수를 한 움큼 쥐더니 집어삼켰다.
이것이 레바논 사람들이 가문끼리의 싸움에서 하는 행동이다.

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나는 여러분의 뇌가 다른 자들에게 먹히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뇌를 먹는 사람은 여러분이어야 한다."


그래도 모사드는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다보니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졌지, 이스라엘 내 첩보를 주로 맡는 신 베트(Shin bet)는 미국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첩보기관이다. 어느 나라든 그렇지만 모사드와 신 베트는 은근히 사이가 나쁘다고 한다. 그렇긴 해도 같은 이스라엘 첩보기관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땐 돕긴 하지만. 2012년에 만들어진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영화 게이트키퍼즈에 나온 전직 신 베트 국장들의 증언을 봐도 모사드가 마치 자신들이 우위인양 설쳐댄다고 마구 화를 내며 털어놓는 게 나와서 이를 본 모사드 출신 국장들도 불쾌하게 반론하던 적이 있다. 이스라엘은 정보기관이 꽤 많은 편이다.

3. 알려진 주요 행적


1976년에는 공중납치되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인질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여객기 승객들을 구출하기도 했다. 그밖에 유럽과 중동 등에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지도자 암살사건에도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1년 6월 이스라엘 공군의 이라크 원자로 폭격도 이 기관에 의한 상세한 사전조사가 바탕이 되었다고 하며, 그 해 8월 1일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유력한 지도자 아브 다우드가 바르샤바에서 저격당한 사건에도 관여설이 나돌았다. 대(對)아랍 정보수집 능력은 미국CIA를 능가한다는 평을 받는다.

이처럼 나치 잔당 및 이슬람 테러리스트에겐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필리핀에서 교황을 폭탄으로 암살하려던 테러리스트를 체포했는데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고문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필리핀 당국이 '모사드에게 넘겨버린다'고 상당히 쪼잔한 협박(…)을 했다. 그러자 순순히 굴복했다고 한다. 망태 할아버지가 따로 없다.이놈 아저씨인가

1995년에는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상을 하려다가 자국인에게 암살된 자국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암살사건에도 관여했다는 음모론이 있다. 바빌론 작전 때는 프랑스까지 가서 사람의 목을 잘라 호텔에 던져두거나 차량째로 날려버려 민간인 피해를 내는 등 그다지 테러리스트랑 다를 바가 없는 조직. 한마디로 엮이면 좋은 꼴 보기는 힘든 곳.

2010년 2월 20일에 두바이에서 일어난 하마스의 지도자 암살사건의 배후로 추궁당하고 있다. 호텔 CCTV에 수차례 수상한 인물들이 드나드는 장면이 포착되었는데, 여권위조를 비롯한 여러 국제법 위반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묶인 사건이라서 이러한 이스라엘의 '초법적 처형'이 많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다면 본 기사를 참조. 2010년 3월 영국이 국내주재 중인 모사드 관련 이스라엘 외교관을 추방하였는데, 영국에 입국할 때 모사드 암살요원들이 소지한 영국 위조여권이 모사드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
영국 중대조직범죄청(SOCA)이 이스라엘에 수사관을 보내 위조 여권 사용경위를 조사하여 밝혀진 위조수법은 이스라엘에 영국인들이 입국할 때 이스라엘 공항직원들이 영국인의 여권을 체크한다면서 가져갔다가 복사하여 개인정보를 빼낸 뒤 20분 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이건 뭐 나라가 범죄조직도 아니고...

2005년 3월에 뉴질랜드에서 모사드 요원들로 추정되는 2명의 인물들이 체포되어 6개월형과 미국달러로 $32,500의 벌금을 뇌성마비환자들을 위한 기부금으로 내라는 판결을 받았다.BBC 영어기사 이스라엘 출신인 Uriel Zosha Kelman와 Eli Cara는 모사드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 내무부에서 이 둘의 입국심사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알아낸 후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감시를 한 후에 체포하였다. 이 둘은 위조여권을 통해 입국한 뒤 범죄조직들과 일한 적 있음이 밝혀졌다고…. 이후 각각 2개월, 3개월 뒤에 이스라엘로 추방됐다고 한다. 당시 헬렌 클락 정부는 이스라엘 대사의 입국을 취소시켰고 사과를 요구해 정식으로 이스라엘 정부의 사과를 받아냈다.

허나 2010년에 일어난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 때 타고있던 승합차가 돌에 깔려 사망한 이스라엘 여행객에게서 5개의 위조여권이 발견되고, 혼잡한 틈에 12시간도 안 되어 이스라엘 대사와 몇몇 이스라엘 여행객들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복구작업을 위해 투입된 뉴질랜드 SAS가 이들의 흔적을 조사했다고 한다(물론 공식발표는 이들의 뛰어난 구급조치와 인명구조능력 때문에 생존자 구출을 위해 투입되었다고 한다.). Stuff 뉴질랜드 (영어)

2012년 이란의 핵개발 관련 과학자들이 연속으로 암살당한 사건이 모사드의 소행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참고 단, 반이란 단체 및 망명 단체들이 모사드에 협조하는 것도 많다고 한다. 과거 팔레비 왕조 시절 비밀경찰 샤바크가 모사드와 동맹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 받았는데 호메이니 정부에게 샤바크는 철저하게 숙청당했고 일부 샤바크 관계자는 해외로 이민가서 지금까지도 반이란 활동에 나서고 있기에 이들이 모사드와 은밀히 협력했다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먼나라 이웃나라>에 의하면 스위스에서 옆집 아줌마의 신고로 정보요원이 체포당한 적이 있다. 어? 크피르의 도면을 빼돌릴 때에도 이웃 주민에게 걸리고(…).

정보부치고 2012년까지 내부에선 배신자가 없기로 유명했다. 일단 알려진 것 중에선.
그러나 2013년 초, 2010년 이스라엘의 비밀 감옥에 수감 중 사망한 '죄수 X'라는 죄수가 호주 출신의 모사드 요원이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기록이 깨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요원이 위에 언급된 2010년 2월의 하마스 지도자 암살 작전에 참가했었는데, 민감한 정보를 출신국인 호주 정보부에 넘기는 등 이중간첩 행위를 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당하고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것.

인력 공개모집을 하기도 한다. 구호는 "모사드는 열려있다." 아니 공안 정보기관이 왜 열려있어(...)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이스라엘에서는 당신이 정보기관을 찾아갑니다!

모사드와 중국 간의 관계는 독특하다. 모사드는 지난 50년 동안 중국 국가안전부(MSS)와 함께 공작활동을 벌이면서 그들의 행태를 일거수일투족 꿰뚫고 있는데, 처음부터 함께 공작활동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1964년 MSS가 아프리카에 진출해 아랍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며 이스라엘을 공격하라고 부추기자, 모사드는 케냐, 가나, 콩고, 잠비아 등 곳곳에서 차량 폭파, 총기 암살, 약물주사 후 사자와 악어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식으로 MSS 요원들을 암살했다. MSS는 당시 수십 만 명의 인력과 구소련 KGB에 맞먹는 예산을 갖고 있었지만 모사드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아프리카로 갔던 MSS 요원들이 속속 죽어 나갔으며, 시신도 못 찾을 정도였다. 예를 들자면,

1. MSS 요원이 모사드 요원을 칼로 난자해 암살하면
2. 빡친 모사드는 그 MSS 요원을 잡아서 총으로 쏴 죽이거나, 썰어서 악어 밥으로 던졌다.
3. MSS 역시 열이 뻗쳐서 모사드 요원을 추적한 다음 당했던 만큼 보복하면
4. 모사드도 그 요원을 잡아내 폭탄으로 요단강 익스프레스 태워 보냈으며,
5. 여기에 MSS 역시 반격하면 모사드는 적들이 근무하는 사무소를 향해 로켓포까지 쐈다고. ㄷㄷ

MSS는 그렇게 모사드와 치고박고 하다가 KGB가 멀티를 시도하자 모부투 자이레 대통령을 앞세워 휴전을 제의하고, 함께 KGB를 막자는 제안을 했다.[5] 그 뒤 모사드의 태도는 중국과 급속히 친해졌다. 나중에는 중국과 함께 미국의 주요 연구소를 털기도 했다. 2005년 5월 5일 중국 MSS, 인민해방군 정보국과 함께 미국의 핵무기 연구소인 로스 알라모스에서 가짜 화재를 일으킨 뒤, 중요한 핵무기 정보가 든 하드 드라이브를 해킹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로스 알라모스의 이 하드 드라이브를 분실한 것으로 생각했다. 한 달 뒤 구석에 숨겨져 있던 하드 드라이브를 발견한 뒤 난리가 났다. 특히 FBI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6]

다만 5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2005년부터 아프리카 독재정권들에게 막대한 외화를 뿌리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원을 모으려다 지역주민들의 극심한 반발로 쫓겨나다시피 한 상태다. 반면 이스라엘은 흑인 유대인들과 우방국 네트워크를 활용해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4. 한국과의 인연 및 한반도 내부에서의 활동

※《기드온의 스파이》참조. 물론 모사드에서 해당 작전내역이나 공작을 인정할 리는 없다.

중동에 수출된 북한무기의 경우 모사드가 직접 한국으로 무기들을 보내주기도 했으며, 굳이 북한제가 아니더라도 중동 전쟁 동안에 T-72 등 러시아제 전차들을 입수한 이스라엘은 이걸 군용기에다 실어서 한국에 보내주기까지 했는데, 이를 이용한 시험 데이터는 북한군의 전차 성능 연구와 차세대 국산 전차 개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2014년 1월에는 선진 정보기관에 대해 배우기 위해 7명의 한국 국회의원이 모사드를 방문했다. 다만, 이 때 한국 언론이 방문 일정을 언론에 예고한 바람에 모사드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내에도 당연히 모사드 요원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 국정감사에서는 2003~2013년 북한 이외의 국가에 현지 협력자로 활동하던 한국인 30여명이 처벌받았다고 한다. 이 중엔 우방국 정보기관의 비밀공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사드 외에도 각국 정보기관에 있어 서울은 대북정보수집에 있어 정말 긴요한 도시이다.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천만 명의 내외국인 중에 모사드를 비롯한 각국 첩자들이 당연히 섞여 있다. 우호국이라 해도 간첩은 간첩이다. 아니 그전에 잡아낼 수나 있으려나 최고를 자부하는 유럽, 러시아, 미국, 모사드가 있는 이스라엘까지 타국의 첩보원들이 활보한다. 모든 외국인들을 의심하여 조사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잘못하다간 외교분쟁으로 번진다. 대부분 상대 요원의 활동이 포착되면 그때 의심되는 인물을 여럿 잡아 조사한다.

5. 픽션 속의 모사드 요원

----
  • [1] 이는 서방세계에서의 가장 긴 독방 수감기간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고 한다.
  • [2] 이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 언론들은 "아이히만이 나쁘다"라는 보도만 줄기차게 해댔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모사드, 나아가 유대인 측에겐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인 인간. 게다가 대량학살을 저지른 죽어도 쌀 놈이었기 때문에 아이히만을 옹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 [3] 영화 뮌헨이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 [4] 이 사건은 이라크로부터 당시 최신형 소련제 미그기를 탈취하는 작전 이래로 그간 비교적 승승장구하며 꽤 주목할 만한 첩보계의 플레이어로 주목받던 모사드에 타격을 준, 이른바 릴레함메르의 실패라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작전목표 달성 실패는 물론 이 때문에 유럽 내 공작망이 붕괴되어 다시 재구축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이후 모사드의 요원 훈련 교범 및 코스에서 주 교훈으로 삼는 실패 사례가 되었다고.
  • [5] 모사드와 MSS가 치고받고 하는 동안 KGB가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이밀며 아프리카를 요리하려고 했다고 한다. 중소분쟁 이후 소련과 갈라진 중국으로써는 또다른 적이 출현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것은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던 터라 여기서 이해관계가 일치한 양국은 결국 휴전에 동의한다.
  • [6]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08 13:21:50
Processing time 0.1994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