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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국양왕
         385년에 [[후연]]을 습격하여 [[요동]],[[현도군]] 2군을 탈취했으나 후연의 건국자 [[모용수]]의 아들 [[모용농]]의 반격에 수개월만에 빼앗겼다.
         재미있는 것은 송용태씨는 위의 [[근초고왕(드라마)]]에서는 적국인 전연의 황제 [[모용황]]이었다.[* 게다가 [[대조영(드라마)]]에서는 [[당태종]] 역할을 맡았었다. 역시 [[선비족]] 계열인 당태종과 그의 아들이 고구려를 멸망으로 몰고 갔음을 생각하면 역시 묘한 캐스팅.~~대신[[wiki:"광개토대왕"아들]]이 앞서 선비족을 [[개발살]]냈으니 쌤쌤인 상황.~~덧붙여 [[티몬과 품바]] 한국어판의 품바 더빙을 맡은 분이다.(...)] 포스는 괜찮은 편이지만, 그런데 여기서도 그 [[모용황]]의 아들 [[모용수]]에게 밀리는 역할이라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당히 [[wiki:"티벳여우"묘한 느낌]][wiki:"배우개그"이 들게 하는 캐스팅.] --그러고보면 독고영재도 [[박정희]] 연기는 포스가 있었는데 말이지--
  • 광개토대왕
         우선 [[당나라]]가 [[위진남북조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양서'와 '북사' 고구려전에 "[[모용수]]가 죽고 [[모용보]]가 즉위하자, 광개토왕을 평주목으로 삼고 요동·대방 2국 왕으로 봉했다. 요동군을 공략하여 가졌다."[* 요동군 공략 시점에 대한 통설과 그에 대한 이견은 [[http://ekrrkdwjd.egloos.com/2875608/ 링크]]을 참조.]는 기록이 있다. 모용보의 재위기간이 396~398년임을 보면 요동으로의 진출은 대략 이 사이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광개토왕이 요동 방면으로 진출하자, 모용보가 이를 인정하는 셈으로 광개토왕을 책봉한 것 같다는 주장이 현재까지의 통설.
         후연의 역사를 보면, 이 시기 후연이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었다는 점과 이어서 생각할 수 있다. 396년 후연은 북위를 상대로 참패를 겪고 [[모용수]]까지 분사하면서 국운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이후로도 북위에게 국토가 유린당하자 모용수의 뒤를 이은 [[모용보]]는 397년 용성으로 달아나게 된다. 하지만 398년 용성에서도 난한의 쿠데타로 모용보가 제거되고, 난한은 다시 [[모용성]]에게 제거되는 막장 상황. 이러한 후연의 위축과 혼란은 광개토왕의 요동 진출을 도왔을 것이다.
  • 광개토태왕(드라마)
         ||<^|2><#dcdcdc>1~5||<#dcdcdc>'''후연과의 전쟁, 이고깽 담덕'''||<#dcdcdc>385년(?)[* 사실 광개토태왕 1화의 극중 시점이 언제인지는 영구미제다.(...) 서기 385년에 고구려와 후연 사이의 전쟁이 있었고, 담덕은 386년에 태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사실 1화의 시점은 385년이 가장 유력하다. 그런데 문제는 극중에서 담덕이 직접 자기 입으로 후연이 건국된 지 6년밖에 안 된 나라(384년 건국)라고 말한다! 또 모용수는 벌써부터 황제(386년 등극)가 되어 있다! 따라서 수양제와 연개소문이 싸운다는 식의 타임 패러독스가 생겨버린 상황. [[이뭐병]]?]||
         ||||고구려의 요동 전선으로 후연이 대대적으로 침공해 들어온다.[* 사실 실제 385년의 전쟁은 고구려의 선빵으로 시작되었다. 즉 여기서의 고구려군은 빈집에 들어앉아서 귀가한 집주인에게 여기는 예전부터 내 집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에는 [[인간흉기]] [[소드 마스터]] 고담덕이 있다! 고담덕은 홀홀단신으로 후연의 태자 모용보를 생포해 개처럼 끌고다니고 모용수가 이끄는 후연군 본대를 저지하는 등 깽판을 벌이다가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때의 작전(사항계+공성계)을 재활용해 승리를 거둔다.(...)[* 이렇게 요동을 차지해버리니 정작 광개토왕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인 요동 확보가 날아가버렸다.(...) ~~자폭!자폭!자폭!~~]||
         ||||후연은 백제에 손을 내밀어 양면에서 고구려를 협공할 것을 꾀한다. 하지만 정작 후연은 담덕의 거짓말에 넘어가 담덕의 누이를 태자 모용보와 혼인시키는 것으로 입을 닦아버리고, 이와 관련해 후연에 방문해 있던 담덕은 풍발의 음모에 빠져 모용수의 시해를 기도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마침내 담덕은 후연에서 도주하고 도영은 행방불명된다.||
         ||||백제는 후연에 손을 내밀어 고구려를 남북으로 협공하고, 고무가 다시 요동성에서 후연의 침공에 맞서게 된다. 담덕은 요동성을 구원하러 달려가지만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사실은 관미성을 포위하고 있던 백제군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날려버린다. 대신 요동성에서는 모용수와 고무 사이의 일기토가 벌어지고, 때마침 도착한 담덕에 의해 후연군은 물러가지만 고무는 옆구리를 너무 깊게 찔린 나머지(...) 사망한다.||
         ||<^|2><#dcdcdc>73~76||<#dcdcdc>'''모용수 독살(!)''' ~~[[역사 왜곡|뭐 이런 미친...]]~~||<#dcdcdc>396년||
         ||||한편 후연에서는 모용희가 모용보를 독살하려고 독배를 건네는데 모용수가 그걸 나서서 마시고는 죽어버린다.(...) ~~뭐 이새끼야?~~ 그러자 담덕은 또 모용수를 조문가고 여기서도 후연은 담덕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그러고, 또 담덕은 보란듯이 함정을 깨부수고 돌아오고 그걸로 끝.(...) ~~아니 후연 얘네들은 턱밑까지 다가온 북위는 어쩌고 이러고 있는지? 그보다 참합피 어디갔어 참합피?~~||
          * 고구려 18대 [[고국양왕]]. 고국원왕의 제2자. 배우 송용태는 전작 [[근초고왕(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전연의 초대 황제인 모용황'''으로 나왔다. 전연은 후연의 전신이고, 모용황은 모용수의 아버지이니 이것은 이미 [[배우개그]].(...) 전작에서는 고구려로 쳐들어가 [[고국원왕]]을 [[개발살]]내더니, 이제는 그 업보로 바로 그 고구려에서 환생한 모양이다. 그것도 자신에게 개발살난 고국원왕의 아들로 태어나 전생의 아들(모용수)의 공격을 받는다. 덧붙여 [[대조영(드라마)]]에서는 [[당태종]]이었던 것으로 보아 이것은 [[wiki:"본격 시리즈"본격]] 시대를 초월한 인연. ~~[[wiki:"장비를 정지합니다"이건 미친 짓이야!]]~~
         [[모용수]] : [wiki:"김동현(1950년생)"김동현]
          * 아신왕의 이복동생이며 해당 배우는 [[wiki:"태왕사신기"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고운(모용운)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엥?''' 그리고 [wiki:"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 맡은 배역이 당태종의 조카 강하왕 도종, [wiki:"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에서 [[전연]] 5황자이며 이후 [[후연]] 황제가 되는 젊은 시절의 '''모용수'''였다.(...)~~연, [[당]]에서 [[백제]]로 나라 갈아타기~~
  • 광개토태왕(드라마)/비판
         그나마 반동인물 중에서는 모용수가 [[대인배]], 개연수가 [[확신범]][* 드라마 초반부의 개연수는 진심으로 고구려를 위하는 인물이였으며 단지 자신의 사상과 믿음이 너무나 확고해 담덕의 존재가 고구려에 해가 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담덕을 제거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비록 중반부 접어들면서부터 개연수의 캐릭터가 권력만을 탐하는 간신으로 변하긴 했지만 초반부 개연수 캐릭터는 악역이면서도 KBS1 대하드라마에서도 보기 드문 포스를 자랑했다.]처럼 묘사되어서 다면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역시 그들의 다면적인 면모를 묘사하기에는 스토리텔링상의 뒷심이 모자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연수는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채 정립되기도 전[* 정확히는 담덕의 태자 책봉을 기점으로. 사실 달리 보면 태자 책봉 직후에 담덕이 취한 행보가 정치적 고려라고는 없이 미칠 듯이 병맛이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면 '''담덕이 나쁜놈이고 개연수가 당연한 행동을 한 것이 맞다.''' 단적으로 이 드라마에서 태자시절 담덕의 행보는 [[대왕 세종]]에서 보인 양녕대군의 행보와 판박이다.]에 국익보다 자신의 이권에 골몰하는 권신으로 흑화되고, 그 모용수조차도 극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대사라는 게 "고구려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이니 [[이뭐병]].(...)
         그나마 1화의 전개는 이 고국양왕 2년의 전쟁을 조금 비튼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극중에서 담덕이 모용보에게 "한낱 늑대도 자기 굴을 지키려고 죽음을 무릅쓰고 덤빈다"면서 요동이 고구려의 고유 영토라고 강변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게다가 이때 후연 측 대장은 모용수의 삼남 모용농이었지 모용수 본인이 아니었으며, ~~그러나 모용농은 [[사기캐]]라서 나오면 안 될지도. 야예 드라마에 출연도 하지 않았다.~~ 이때 모용수는 황제도 아니고 연왕(燕王)이었다. 모용수가 황제가 되는 것은 담덕이 태자로 책봉되는 것과 동시의 일이다.[* 따라서 '''모용수가 황제라면 담덕은 이미 태자가 되어있어야 한다!''' 또 이와 동시에 [[북위]]가 등장하는데 북위가 건국된 건 또 386년 7월인거다? 위에서 본 후연의 고구려 침공이 북위가 건국되기 한참 전인 386년 11월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공깽]].] '''무엇보다도 고구려가 볼기짝을 두들겨맞고 쫓겨나기는 커녕 후연의 볼기짝을 신나게 두들겨준다.(...)'''
         게다가 역사서에 따르면 후연의 황제 [[모용수]]는 396년에 북위의 등짝을 보러 갔다가 앞서 [[모용보|태자놈]]이 말아먹었던 참합파 전투의 현장을 보고 울화통이 터져서 죽었는데, 여기에서는 하무지가 충동질한 모용보와 모용희 간의 내홍에 휘말려서 [[고기방패|자신을 희생하여 내홍을 봉합하는 식]]으로 독살됨으로써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더욱이 모용수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후연은 북위에게 일방적으로 관광당하고 중원의 영토를 죄다 까먹은 채 요서로 쫓겨났는데, 극중에서는 399년에도 여전히 중원에 도읍하고 있어 [[북위]]의 존재를 완벽히 무시했다. 그저 [[흠좀무]].
         또 후연이든 고구려든 군주의 칭호로 '''황제'''라는 말이 밥 먹듯 쓰이는데, 연나라의 왕 모용수는 386년 1월에 들어서야 황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에러가 있다. 그리고 [[광개토왕]] 문서 초입에 잘 설명되어 있듯이 고구려에는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당시의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왕'이라는 칭호가 반드시 '황제'보다 작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주문왕]]과 [[주무왕]] 이래 주나라의 군주들과 [춘추전국시대]의 군주들은 음... ~~하지만 툭하면 사극 작가들의 황제병이 도져서 말이지. 안될거야 아마.~~
          * 3화에서도 역시 고무와 모용수가 회담하는 장면에서 [[환빠]]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충격과 공포의 발언이 등장했다. 고무가 '''"요동성에서 중산까지는 우리 선조 [[치우천왕]]의 영토"'''라고 한 게 그것. 도대체 왜 치우천왕이 고구려의 선조인지도 모르겠거니와, 같은 감독의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 양만춘이 "치우천황이 말을 달리며 중원을 호령한지 천 년이 지났다"고 운운한 것과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이런 것까지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따라하냐!~~
         제작진이 얼마나 정줄을 놓았는지 알 수 있는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630742 기사]. 결국 한국일보에서는 [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09585 '시청자 분노 폭발']이라 전했지만 이미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중동에 수출'''되는 장면이 뉴스에 잡힌 바 있었는데, 하필이면 막장극마냥 모용수가 윽박지르는 장면이라서 이거 참 [[인지부조화]]스러운 상황... 그저 국가망신 수준. 이러한 시청자들의 꾸준한 디스로 드디어 2011년 11월 5일 11시 KBS1의 [http://www.kbs.co.kr/1tv/sisa/tvfriend/view/vod/index.html TV비평 시청자 데스크]에서 '<대하드라마 광개토태왕>을 비롯한 시청자의견'으로 다루어지게 되기도 했다.
  • 근초고왕(드라마)
         [[모용수]] : 정재곤
  • 김동현(1950년)
         그래서일까...드라마 [[대조영(드라마)]]에서는 [[거란]] 무상가한(無上可汗, 더 높은 자가 없는 최고의 [[칸]]) [[이진충]](아사나이)을 연기했고, [[광개토태왕(드라마)]]에서는 [[선비족]]이 세운 [[후연]](後燕)의 황제 [[모용수]]를 연기했다. --[[전투종족]] 황제 2연타--
  • 명장
          * [[모용수]]
  • 모용보
         ||<width=30%> [[모용수]] || {{{+1 ←}}} ||<width=30%> 모용보 || {{{+1 →}}} ||<width=30%> [[모용성]] ||
         || '''부모관계''' || 아버지: [[모용수]] / 어머니: 단씨 ||
         [[모용수]]의 4남으로, 좋게 말하자면 [[문인]]의 기질이 있었지만 거꾸로 보면 답답한 [[꼰대]]의 기질이 있었다. 그리고 난세의 한가운데에서 이러한 모습은 이내 후연의 몰락을 불러왔다. 이미 [[북위]]의 위협이 가시화된 마당에 무리한 개혁을 추진하여 반발이 일어났고, 마침내 북위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요서로 달아나게 되었다. 요서에서 다시 중원으로 나오려던 와중에 단속골의 반란으로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며, 단속골을 죽인 난한이 모용보를 받들겠다고 하자 이를 믿고 용성으로 들어갔다가 [[wiki:"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난한에게 죽임당했다.]]
         장남 모용전, 5남 모용주와 함께 전처 단씨의 소생이다. 그의 형들은 모용수가 [[전진]]에 있을 때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서장자인 모용성은 [[부견]]이 몰락 한 후 있었던 [[장안]]의 복수극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온다.
         [[북위]] 건국자 탁발규가 강성해지자 태자로서 아버지의 명을 받아 정벌에 나서지만, 도리어 탁발규의 계책에 낚여 회군하다가 '''참'''합파에서 '''참'''패하여 결과적으로 아버지도 분사하게 만든다. 모용수 항목 참조. 모용수가 죽은 뒤 탁발규는 [[산]], [[업]], [[신]] 세 땅만 남겨놓고 후연 전역을 유린했으며, 모용보는 그나마도 항복할 경우 무조건 죽이는 탁발씨의 잔혹함이 아니었으면 민심을 수습하지 못해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탁발규도 정책을 투항우대로 전환하면서 신만을 함락시켰다(397년). 탁발규는 회군해 다음 해 황제로 즉위했고, 이후 [[후진]]과 영토갈등을 벌였다.
         398년 탁발규의 군대가 돌아가자, 모용보가 영토 수복에 나서서 대군을 이끌고 [[용성]] 서쪽의 을연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위군 장상이던 단속골이 반란을 일으켜 [[모용수]]의 7남 모용륭의 아들인 모용숭을 추대하였다([[단속골의 난]]). 이에 모용보는 모용수의 6남 모용농[* [[고구려]] [[고국원왕]]의 요동,현도 공격을 되막아낸 인물이기도 하다.]의 군영으로 달아나 아들 [[모용성]]의 군대와 합세하여 용성으로 들어갔고, 단속골은 모용보의 동복동생 모용주를 비롯한 종실의 여러 왕들을 죽인다.
         이어서 모용숭을 추대한 단속골이 상서 [[난한]]과 함께 용성을 공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용농마저도 난한의 꼬임에 넘어가자 한동안 수성전을 벌이던 모용보와 [[모용성]]은 남쪽으로 달아났고, 모용농은 모용숭의 부하들에게 죽임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난한이 다시 단속골을 죽인 뒤 [[모용보]]를 보위한다는 말로 꾀어들여서 죽이고 난한 자신이 대[[선우]]로 즉위하였다. 이렇게 모용씨 가문은 거의 모용성, 그리고 [[모용수]]의 막내아들 [[모용희]] 정도만 빼고는 몰락해버렸다..
  • 모용선비/계보
         ||<|11>'''[[모용수]]'''(垂)||모용전(全)||
  • 모용선비/왕사
         ||1||[모용수]||384~396||세조||성무제||
         ||8||[모용수락간]||407~415||
  • 모용세가
         역사적으로 보면 [[후연]]의 건국자 [[모용수]]가 이런 플롯의 원형격. [[전연]]을 멸망시킨 [[전진]]의 [[황제]] [[부견]]의 부하로 들어가 [[와신상담]]하면서, 부견을 충동질해 [[비수대전]]에서 참패를 겪도록 음모를 꾸미고, 그 틈을 타서 후연을 재건했으니 그야말로 딱 비슷하다.
  • 모용위
         ||<width=30%> [[모용준]] || {{{+1 ←}}} ||<width=30%> 모용위 || {{{+1 →}}} ||<width=30%> 모용홍(서연) / [[모용수]]([[후연]]) ||
         모용위는 부견의 휘하에서 신흥후로 임명되었다. [[비수대전]]에서는 후방에 있었으나 이후 [[모용수]]가 거병하여 전연을 재건한 [[후연]]을 세우자 장안에서 감시를 받는 처지에 놓였다가 같은 선비인 서연의 모용충沖[* 후에 서연의 2대 왕이 된다. 수세에 몰려 모용홍의 휘하에 있었음.]의 공격에 부견을 뒷치기 하려다가 들켜. 부견에게 죽임당했다.
         부견이 모용수에게는 마치 영웅이 영웅을 알아보듯 관대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의 장면. --팔자도 사납지-- 하지만 사실 부견도 "내가 그대를 대우한 것이 어떠했기에 이런 뜻을 품었는가?"라고 말했다. 그때 그의 가신인 모용숙이 "가문과 나라의 일이 중한데 어찌 의기(意氣 : 은혜)를 논하겠소!"라고 대꾸하자 격분한 부견에게 끔살. [http://xakyntos.egloos.com/2354331 #].
         이때의 학살극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것은 모용수의 서손인 [[모용성]] 밖에는 없었다. 그의 동생 [[모용홍]]이 세운 [[서연]]에선 유황제로 추증하고, 약 14년 뒤 숙부 [[모용덕]]이 세운 [[남연]]에선 헌무황제로 추증하였다.
  • 모용주
         [[후연]]의 인물. [[모용수]]의 아들.
         369년 9월에 모용덕과 사온이 싸울 때 모용덕 휘하에서 기병 1천을 거느리다가 기병 2백으로 동진의 군사를 유인해서 나머지 기병들이 매복해서 후연이 이기게 한 적이 있다. 모용수가 적빈을 진압하러 갈 때 업에 있다가 모용농과 함께 열인으로 달아나 사람들을 모았으며, 386년에 모용해, 모용린, 모용소 등과 함께 부정, 부소, 부막, 부량 등을 공격했다.
  • 모용희
         || '''부모관계''' || 아버지: [[모용수]] / 어머니: 단씨 ||
         즉위하기 전에는 웅장하고 영리하여 아버지 [[모용수]]의 풍모를 닮았으나 넓은 안목이 모자라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장에서의 모습이었고 어릴 때부터 싹수가 노란 [[색욕마인]]이었다. 17세(!)의 나이에 [[과부]][[형수]]와 [[간통]]하고, 18세(!)에 나이로 [[자매덮밥]]을 이뤘으며, 23세(!)의 나이에 [[네크로필리아]]에 이르렀다.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 즉위한 뒤 하는 짓거리는 제대로 [[막장]]이다. 이 사람의 일생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기 드 뤼지냥]]처럼 즉위해서 [[수양제]]처럼 망했다. '''[[wiki:"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색으로 흥한 자 색으로 망하리라.]]'''
         385년, [[모용수]]가 막 연나라를 재건하여 화북 지방에 [[후연]]을 성립시킬 때 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후연이 어느 만큼 자리를 잡자, 9세의 나이로 다른 형제들과 나란히 하간왕(河間王)에 책봉받았다. 그러나 [[모용수]]가 죽고 뒤이어 즉위한 [[모용보]]는 [[북위]]의 공세를 못 버틴 나머지 수도 중산을 버리고 용성으로 몽진했는데, 이 때 어려서 성을 빠져나가지 못한 모용랑, 모용감, 모용희를 이복형 모용륭이 말에 태워서 가까스로 탈출시켰다. 이 때가 모용희의 나이 13세였다.
         이듬해 [[모용보]]가 영토 수복을 위해 을연에 주둔하는데, 군영에서 금위군 장상이던 단속골이 모용륭의 아들 모용숭을 왕으로 추대하며 반란을 일으킨다. 단속골은 [[모용수]]의 종실의 여러 왕들을 죽였지만 모용희는 평소 모용숭의 총애를 받았으므로 무사했다. 뒤에 난한이 단속골을 죽이고, 도망가 있던 [[모용보]]를 받드는 모습을 보여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게 한 뒤 죽여버린다. 이후 난한은 모용희를 요동공으로 책봉해서 모용씨의 후손을 대표하도록 남겨두었다.
         그러나 얼마 뒤 [[모용성]]이 난한을 죽이고 정권을 잡자, 모용희는 다시 하간공을 하고[* 이 때 모용성은 장락왕의 호칭을 유지하였기에 종실의 다른 왕들을 낮추어 공으로 삼았다.], 시중·거기장군·중령군·사예교위에 올랐다. 이 때 모용희의 나이는 14세였다. 이듬해에는 도독중외제군사·상서좌복야·영중령군을 했고, 다시 이듬해에는 [[고구려]]를 침공하는 선봉으로 신성과 남소성을 무너뜨리는 데 용맹함이 으뜸이었다. 개요 항목에서 "웅장하고 영리하여 모용수의 풍모가 있었다"는 평가도 바로 이 때 모용성이 한 말이다.[* 이 때 고구려 [[광개토왕]]은 한창 한반도 남부의 [[신라]]를 구원하는 데 군사력을 동원했다. [[광개토대왕]] 문서 참고.]
         이러한 점을 반영한 듯, 드라마 [[wiki:"광개토태왕(드라마)"광개토태왕]]에서도 최초 인물 설정은 '포악하고 잔인한 성격을 숨기고 있다'는 식이었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줄거리 때문에 비중은 [[고운]]에게 모두 빼앗기고 낭만이라곤 하나 없는 [[wiki:"그냥 시체"그냥 찌질이]]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이후 풍발에게 그대로 끔살.(...) 하긴 애당초 이 드라마에서 [[모용수]]를 빼면 후연 쪽 인물들은 죄다 찌질이였지만.(...)
  • 무당마검
          * 분뢰일섬 [[모용수]] - 모용도의 동생.
          * 낭인왕 패왕 사중비(査仲飛) - [[사패]]시절에 존재했던 모용수련과 [[wiki:"공선"전륜회주]]와 그 지인들이 창안해낸 유업인 삼신기 중 하나인 하단의 사자기(獅子氣)를 잇는 남자. [[아미파]]와도 접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용세가의 심법인 중단의 청명기공과 우연하게 [[모용청]]이 익히게 된 상단의 일선진기를 보고 마지막 하단의 사자기를 전하여 합일케 하고자 만나게 된다. [[남궁연신]]과 호각을 이루는 강자.[* 결과적으론 밀렸다. 다만 폐쇄된 모용청의 진기를 살리기 위해 본인의 진기를 상당부분 소모했다는 핸디를 잡힌 상황.] 등장은 짧지만 대사 하나하나가 [[폭풍간지]]이다.
  • 북위
         [[선비족]]의 일원인 탁발선비(拓跋鮮卑)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나라로,[* 탁발선비는 종종 '타브가치(tabgachi)'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 둘은 물론 동일한 집단의 다른 표기이기는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타브가치와 탁발선비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즉 타브가치의 원 발상지는 대흥안령산맥 북쪽의 알선동이었는데, 이후 북중국과 인접한 내몽골 지역으로 집단이 이동하면서 서요하와 동몽골 지역에 본래 거주하던 선비족 집단과 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 박한제 교수의『중국역사기행 3권 -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의 알선동 파트에서 이러한 설명이 제시되고 있으니 참조해보자.] 386년 [[서진#s-1|서진]] 정권에게 하사받았던 기존의 국호인 '[[대]](代)'[* 대는 본래 춘추전국시대 산서성 북쪽 지역에 위치해 있던 국가였다.]를 탁발규가 '[[위]]'로 바꾸고 칭제건원했다. [[후연]]의 황제 [[모용수]]는 이러한 탁발선비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고 공격을 감행했지만 395년 참합피의 전투에서 후연군은 대패했고 북위는 이를 계기로 397년 후연의 수도 중산을 함락시키면서 본격적으로 화북에 진출하게 된다. 이 공격으로 후연은 상당한 내분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내분에다가 모용수-모용보 시대의 대 고구려 어그로의 부채를 하필이면 탁발규에게 얻어맞고 난 시기에 [[광개토대왕]]에게 제대로 얻어처맞으면서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해 요서의 [[북연]]과 산동의 남연으로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 비수대전
         부견은 중원 재통일을 위해 남아도는 국력을 총동원, 대군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말 그대로 부하도 아들도 동생도 아내도 엄마도 그리고 주요 신하들도 심지어 부견이 존경하던 스님도 다 반대했다. 바로 그 왕맹도 죽으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한족은 아직 동진을 그리워하고 있고, 그 동진은 현재 위아래가 일치단결되었으니 괜히 집적대지 말고 선비족 출신으로 계속 폐하께 살랑대는 [[모용수]]랑 요장부터 신경쓰시고, 기회 되면 제거해 버리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근데 이 친구가 뭐에 씌였는지, 왕맹 사후 7년에 주위에서 죄다 들고 일어나 반대했는데도 "할래할래~ 전쟁 할래애~!!" 하면서 주변에 떼를 쓰더니 위에 언급한 저 [[모용수]]가 "그럼 하죠."라고 맞장구 좀 쳐주자마자 '''선봉만 25만에 자신이 이끄는 군대까지 모두 87만, 여기에 기타 병력까지 합쳐 100만이 넘는 대군'''을 구성해 동진에 대거 침략을 감행하였다.[* 동시에 서역으로도 10만 원정군을 보냈다!] 중국사상 현대 중국을 제외하고,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서 현대 이전에 군대를 일으켜 '''{{{#red 문자 그대로 백만대군}}}'''을 찍은 경우는 [[수양제]]와 이 [[부견]]이 전부다.[* 그나마 부견은 기타 병과까지 합쳐서 100만이지만, '''수양제는 전투병력으로만 113만을 찍었다(...)'''][* 그로부터 천 년이 넘어 1차대전 때가 되어서야 백만대군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둘 다 처참하게 [[wiki:"망했어요"망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부견이 자기 생전에 중국통일을 한 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의외로 통일작업이 순탄하게 이루어졌고, 남은 국가는 동진뿐인지라 조금만 더 하면 목표달성이기는 했다. 물론 자기 발 밑이 아직 불안정하다는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는 무시되기 일쑤. 아마 자기가 '''[[wiki:"대인배" 덕을 베풀어서 사람들이 감복]]'''했으므로 문제가 끝이라고 본 모양이며, 실제로도 부견이 전사한 후에도 일족이 계속 부견의 의지를 받들고 저항했으며, 나중에 배반하는 모용수나 요장같은 이들도 초기에는 양심에 찔리는지 패전 후에도 즉시 부견의 뒤통수를 치지는 않았다. 즉 부견이 난세에서는 조금만 틈을 보이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무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끝내 천하통일 다 해놨는데 전진은 이 한 방으로 캐망했고, 전쟁하자고 홀로 부추켰던 [[모용수]]는 집에 가서 자기 나라인 [[후연]](後燕)을 세웠다. 부견은 자신이 멋지게 낚였다라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으니... 거기에 왕맹이 조심하라고 그리도 충고하던 신하 요장도 독립하여 후진(後秦)을 세웠으며, 역시 신하이던 모용홍도 덩달아 독립하여 서연을 세우고 힘빠진 전진으로 틈만 나면 쳐들어왔다.
  • 사마염
         머리카락이 땅까지 닿을 만큼 길고 두 팔이 무릎까지 왔다고 한다. 머리카락 묘사로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계속 장발 일러스트로 등장한다. 그리고 유비 또한 팔 길이에 과장된 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유비와 사마염을 일치시키려고 한 사가들의 의도 같다는 의견이 있다. [후연]의 창업자 [[모용수]]도 이런 묘사가 있는데 아마 당시에는 7척 5촌과 더불어 제왕의 [필수요소]였나보다.
  • 서연
         [[오호십육국시대]] [[선비족]] 모용홍(慕容泓)이 건국한 나라이다. 국호는 연(燕)이었는데 연을 국호로 사용한 다른 국가와 구분하기 위해 서쪽 지역에 국가가 있던 관계로 '''서연(西燕)'''으로 부른다. 384년 병주 평양에서 선비족을 이끌고 거병하였다. 그러나 내부분란과 주위 국가의 침입으로 인해 약화되었고, 394년 [[후연]] [[모용수]]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역사가 짧아 16국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 세조
         || [[모용수]][[br]](慕容垂) || [[후연]]세조[[br]](後燕世祖) || 성무황제[[br]](成武皇帝) || 384~396 || ||
  • 아신왕
         누군가는 아신왕이 [화병]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광개토왕 시기에 화병으로 죽은 왕은 [후연]의 [모용수]밖에 없다. 그것도 이 경우에는 광개토왕 때문이 아니라 [[북위]]를 상대로 벌어진 참합피 전투의 결과였고.
  • 역사 관련 정보/중국 역대 황제
          || 1대 || 세조(世祖) || 성무황제(成武皇帝) || [[모용수]](慕容垂) || 건흥(建興) 386 ~ 396 || 386 ~ 396 ||
  • 오호십육국시대
          || - || - || 연왕(燕王) || [[모용수]](慕容垂) || 연원(燕元) 384 ~ 386 || 384 ~ 386 || 선평릉(宣平陵) ||
          || 1대 || 세조(世祖) || 성무황제(成武皇帝) || [[모용수]](慕容垂) || 건흥(建興) 386 ~ 396 || 386 ~ 396 || 선평릉(宣平陵) ||
  • 전연
         훗날에 [[전진]]의 황제였던 [[부견]]에 의해 멸망했으나, [[모용황]]의 다섯째 아들인 [[모용수]]가 부견을 부추겨 [[비수대전]]을 일으켜 전진을 망하게 만들고 [[후연]]을 건국하기도 하였다.
  • 전진
         369년에 환온(桓溫)이 북벌을 일으켜 전연을 공격하자 전연에서 구원군을 청하며 [[낙양]] 근교 [[호뢰관]](虎牢關) 서쪽의 땅을 할양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자 왕맹의 의견을 받아들여 전연에 군사를 보내주어 환온의 북벌군을 물리치는 것을 도와준다. 그 뒤 전연의 왕족 [[모용수]](慕容垂)가 망명해오자 그를 받아들이고 호뢰관 서쪽 땅에 대해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369년 말에 전연을 공격했으며 370년에는 전연을 멸망시켰다. 373년에 동진의 [[사천]](四川) 지방을 정복하고, 승상 왕맹이 죽은 뒤인 376년에는 전량(前凉)과 대(代)를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였다.
         그 뒤 농서의 걸복국인(乞伏國仁)이 일으킨 반란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사실 이 반란의 원인은 부견 그 자신의 정책에 있었다. 이상주의자였던 부견은 멸망시킨 나라의 국민들을 수도로 이주시키고 오히려 저족을 지방으로 내보냈는데, 전진이 비수대전에서 지자 이 정책은 전진을 발목잡는 원인이었다.] 전진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며 끝내 부견은 모용홍, 모용충의 서연에게 공격을 받아 장안을 버리고 도주하였다가 인근에서 [[강족]] 출신 [후진](後秦)의 요장(姚萇)에게 사로잡혀 [[선양]]을 하라는 그의 제안에도 거부하고 그를 모욕하다가 죽음을 겪었다.[* 부견은 이민족이던 요장과 모용수 등을 중용하고 우대했으며 진심으로 포용했다. 그러나 요장은 그가 불리한 틈을 타서 그를 사로잡아 죽이고 말았다. 나중에 [동진]의 권신 [유유]가 요장의 손자 요홍을 수도 건강으로 압송해 요씨 일족들과 함께 참수시켜 후진은 멸망했는데 일종의 [인과응보], [업보]였다. 반면 모용수는 일종의 애증관계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서인지 그가 세운 [[후연]]은 상대적으로 번성했다.]
  • 한국 사극/역대 왕역
         || 정재곤 || 3회 ||정조, 북연 혜의제 고운, 후연 성무제 모용수 역을 맡았다. ||
          * [[모용수]] : 정재곤(근초고왕), [[김동현]](광개토태왕)
  • 한국 사극/외국인
          * [[모용수]] : [정재곤]([wiki:"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
  • 한백무림서/등장인물
          * 모용수
          * 분뢰일섬 [[모용수]]
  • 형주 공방전
         끝으로 공격루트에서 형주가 주된 충돌 지점이 아니었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합비]]는 말 할 것도 없고, [[유수구 전투]]와 [[석정 전투]] 등 여러 위-오의 주요 전투는 바로 양주(楊州)에서 벌어졌다. [[전진]]이 [[동진]]을 치기 위해 벌인 [[비수대전]] 역시 회수방면에서 벌어졌으며[* 물론 거대한 [[전역]]인 만큼 [[모용수]]를 통한 형주 방면의 부공과 [[요장]]의 촉에서 출발하는 진공 역시 존재했다.], [[수나라]]가 [[진(육조)|진나라]](陳)를 멸망 시킬 때도 장강을 바로 건너 건강(건업)을 기습하는 루트를 활용했다. 형주가 오나라의 방어에 도움이 된건 사실이지만 이른바 "목줄", 즉 주된 방어기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 호부견자
          * [[모용수]] - [[모용보]], '''[[모용희]]''' :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희대의 걸물로 평가받았고 망한 [연나라]를 다시 일으켰는데, 아들 가운데 하나는 그걸 또 말아먹고 다른 하나는 [[수양제]]의 프로토 타입이었다. ~~대신 모용농이 있긴 하지만…~~
  • 후연
         [[오호십육국시대]]의 한 축을 이룬 국가로 [[모용수]]가 건국해, [[전연]]을 그대로 계승했다.
         === 전연의 멸망과 모용수의 건국 ===
         [[전연]] [[모용황]]의 다섯째 아들인 [[모용수]]가 건국했다. 모용수가 모용평의 암살 음모를 피해 [[wiki:"전진#s-2" 전진]]으로 망명했는데, 이후 전진의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발리자 그 틈을 타 자립하여 세웠다. 모용수는 비록 자신을 사랑으로 대해준(?) 부견의 뒤통수는 쳤지만, 이후 의리를 갚아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모용수가 [[wiki:"북위#s-2" 북위]]에게 대패한 충격과 그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의 해골을 보고 절망감으로 [[화병]]을 앓다가 사망하여 그의 4남 [[모용보]]가 즉위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쇠락상을 극복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그의 치세에는 온갖 내분이 횡행했고 그의 아우 모용덕이 남연을 세우며 남쪽 지방이 한꺼번에 떨어져나갔다. 그래서 이 때부터 [[북연]]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 뒤 모용수의 아들인 [[모용희]]가 군주로 옹립되었다. [[모용성]]의 두 아들을 제치고 그가 즉위한 것엔 [[모용보]]의 부인이자 [[모용성]]의 어머니인 태후 정씨의 공이 컸다. 정씨는 모용희와 [간통]했는데 그 대가로 황제에 올려주었다. 모용희는 재위 이전에 표기대장군으로 고구려 토벌을 지휘하여 위에 기술한 바와 같은 큰 공을 세웠고, 그 전에 북위와의 전투에서도 여럿 공을 세운 바 있다. 이런 배경으로 후연의 군권을 휘어잡았고 더군다나 [[모용수]]에 버금간다고 할 만큼 뛰어난 평을 받는 인재였다.
          || - || - || 연왕(燕王) || [[모용수]] || 연원(燕元) 384 ~ 386 || 384 ~ 386 || 선평릉(宣平陵) ||
          || 1대 || 세조(世祖) || 성무황제(成武皇帝) || [[모용수]] || 건흥(建興) 386 ~ 396 || 386 ~ 396 || 선평릉(宣平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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