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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외

last modified: 2013-07-31 19:14:55 by Contributors

모용선비의 역대 군주
고조 선무제 1대 태조 문명제
모용섭귀 모용외 모용황

생몰년도 269년 ~ 333년 음5월(65세)[1]
재위기간 285년 ~ 333년 음5월(49년)[2]
묘호 고조(高祖)
시호 선무황제(宣武皇帝)[3]
연호 -
부모관계 아버지: 모용섭귀 / 어머니: ?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한국에서의 모용외


1. 개요

휘는 외(廆), 본명은 혁락괴(弈洛瑰)·약락외(若洛廆). 선비족 모용부의 군주이다.

어려서부터 미남이고 몸집이 우람했다고 한다.

2. 생애

269년 선비족 모용부의 대인 모용섭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283년 모용섭귀가 사망하자 모용섭귀의 동생인 모용내가 그 자리를 찬탈했다. 모용외를 죽이려하니 모용외는 요동으로 도망가 2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살아났다. 285년 국인(귀족)들이 모용내를 죽이고 모용외를 옹립했다.

모용외는 우문선비를 공격하기 위해 나라(서진)에 표를 올려 허락을 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빡친 모용외가 진나라의 를 침략해서 살육을 벌였다. 그러자 진나라에서 군대를 보내 모용외를 공격하자 모용외가 대패했다. 그 이후로 모용외는 진나라에 대한 노략질을 그치지 않았다.

285년 동쪽으로 부여(동부여)를 공격하였다. 부여왕 의려는 대책없이 공격당하자 자살했고, 모용외가 그 국성을 함락하고 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 귀환했다. 진나라가 가침을 보내 의려의 아들 의라를 맞이해 왕으로 즉위시키려하자 모용외가 손정을 보내 기병으로 이를 요격했다. 가침이 이를 막아내고 손정을 베어 부여를 회복시켰다.

결국 모용외는 진나라와의 대립에서 힘이 부치자 “나는 선공 이래 대대로 중국을 받들었으며 또한 화예(중화오랑캐)가 서로 다스림이 다르고 강약이 실로 차이나니 어찌 진나라와 더불어 다투겠는가? 어찌 불화하여 내 백성들을 해롭게 하겠는가!”라며 정신승리성 발언을 하고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항복했다. 이로써 모용외는 진나라에 의해 선비도독에 봉해젔다. 이때 모용외가 진나라 동이교위부의 하감을 찾아갔는데 하감이 무장을 한 채 그를 맞이하자 그도 군복을 입고 들어갔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모용외는“주인이 예의로써 대하지 않는데 손님 또한 어찌 예의를 차리겠소!”라고 말했다. 이에 뻘줌해진 하감은 모용외에게 경탄했다.

선비족 우문부와 단부는 모용부가 날로 성장하자 모용부와 왕래하며 이를 경계했다. 모용외는 이들을 후하게 대접해주며 경계를 허물도록 했다. 289년 중심지를 청산으로 옮겼다. 294년에는 대극성으로 중심지를 옮겼다. 농사와 누에치기를 보급하고 법제를 진나라의 것과 같게했다. 301년 진나라의 지방(유주)에서 물난리가 나자 모용외가 식량을 보급하여 이를 구제했다. 이에 진나라측에서 관복을 하사하며 사의를 표했다. 훗날 전연의 땅이 되니 미리미리 구제

서진에서는 드디어 팔왕의 난이 일어났고, 모용외는 이를 틈타 주변 세력을 소탕한다. 대표적으로 302~303년 우문부의 우문막규가 동생 굴운을 보내 진나라 변경의 성을 침탈하고 굴운의 별수(별장) 대소연이 여러 부를 공략하자 모용외가 직접 이들을 공파했다. 대소연이 분노하여 10만 대군을 이끌고 모용부의 수도인 극성을 포위했다. 그러자 극성은 공포에 휩싸여 맞서려는 자가 없었다. 모용외는 이렇게 했다. “소연이 비록 , 개미떼처럼 많이 모였으나 군에 법제가 없고 이미 우리의 계책 속으로 떨어졌도다. 제군들은 다만 힘껏 싸우면 될 뿐 걱정할 것 없다.” 그리고는 무장하여 직접 성밖으로 달려나가 소연을 대파하고 달아나는 그들을 백여리에 걸처 추적해 만여명을 참획했다.

304년에 흉노족 사람인 유연이 자립해 나라를 세우고 311년에는 진나라의 수도 낙양을 함락했다(영가의 난). 이러한 배경때문에 진나라에서는 많은 유민이 발생했고 이들이 모용부로 귀부했다. 모용외는 진나라에서 귀부하는 유민들을 거부하지 않았고 모용부가 성장하는 자원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세자 모용황을 진나라에 입조시켜 진나라의 선진 학문을 배우게 했고 진나라에서 배우고 온 모용황은 모용외에게 진나라의 학문을 가르첬다. 모용부는 진나라의 문물을 수입하여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307~313년 모용외는 선비의 대선우를 자칭했다. 선비족 소(희)련, 목(환)진이 해마다 요동군을 침탈했다. 이에 많은 유민이 발생하여 모용부에 망명했다. 모용외는 아들 용한의 건의로 소련, 목진을 격파, 함락시켰다. 이들을 극성으로 옮기고 요동군을 복구했다. 진나라에서 모용외에게 관직을 내렸으나 모용외는 무시했다. 313~317년에는 진나라가 모용외에게 관직을 하사하는데 성공했다. 317년에는 더 업그레이드된 관직을 내리려했으나 모용외가 사양했다.

서진은 망하고 동진이 확실히 건국되었으나 요동 등에는 진나라 세력이 남아있었다. 진나라 평주자사 최비는 유민들이 자신의 휘하로 오지 않고 모두 모용부로 흘러들어가자 이를 질투하여 고구려,우문부,단부와 손을 잡고 모용부를 분할하려 했다. 318~321년에 고구려(미천왕),우문부,단부가 손을 잡고 모용부를 공격하여 수도 극성까지 포위하나 모용외가 이들을 교란시켜 우문부가 모용외와 한 편인 것처럼 의심하게 하여 이들이 스스로 물러나게 했다. 이에 우문부의 군주인 우문실독관이 단독으로 모용부를 격파하려 덤벼들었으나 모용외에게 대패했다. 결국 최비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해버렸다. 최비는 모용외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 그의 승전을 축하했으나 모용외가“항복하는 것이 상책이고 달아나는 것이 하책이다.”라고 최비에게 경고하자 최비는 혼자서 고구려로 도망갔다. 모용외는 최비가 남기고 간 가족들을 극성으로 옮겼다.

320년 고구려요동을 공격했으나 모용외가 격퇴했다. 미천왕과 모용외는 일진일퇴하나 성과는 없었고, 고구려의 요동 정벌과 전성기는 이렇게 100년을 미뤄졌다.

단부의 말파의 세력이 아직 방비가 되어있지 않아 모용외가 모용황을 보내 단부를 습격했다. 단부의 땅인 영지에 침입해 명마와 보물을 약탈해왔다. 후조석륵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했으나 모용외는 거절하고 사신을 붙잡아 진나라(동진)의 건업으로 보냈다. 325년 석륵이 분노하여 모용외를 공격했으나 모용황이 격퇴했다.

묘용외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는데,“(獄,형벌)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현인, 군자는 국가의 기초이니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 가색(稼穡,=농사)은 나라의 근본이니 (중요하게 다루어) 긴급히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 주색편녕(酒色便佞,,여자 및 좋은 말로 아첨떠는 것)은 덕을 몹시 어지럽히는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는 자신의 유교에 대한 견해를 담은 수천 자로 된 가령(家令)을 저작했다.

333년에 사망했다. 그의 아들인 모용황은 자립하여 연왕을 칭했으며, 손자인 모용준이 전연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고조(高祖) 선무제(宣武帝) 혹은 무선황제에 추증했다.

3. 기타

4. 한국에서의 모용외

한국에서는 한국 고대사에서 부여를 대대적으로 말아먹고 고구려와 충돌한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물론 그쪽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잘 알지, 대중적인 인지도는 꽝이다. 그래도 최근에는 대중매체에도 꽤 등장해서 '근초고왕(드라마)', '광개토태왕(드라마)'에서 전연과 후연이 각각 조연으로 등장함과 동시에 미천왕을 다룬 김진명의 소설 '고구려'에서 모용외가 미천왕의 라이벌로 등장하여 인지도가 꽤 상승했다.

근데 사실 그래봤자 모름지가 현실은 시궁창이렸다. 김진명의 '고구려'는 가령이라는 유학서를 저작했다는 모용외의 지식인 포스를 싸그리 날리고 완벽한 야만족 우두머리를 연출하고 있다. 가만, 이거... 한국인이 아니면 사람도 아님 게다가 미천왕과 삼각관계에서 주인공 보정에 걸려 시궁창... 하긴 대신 아들미천왕의 아들에게 철저히 복수해버리지만, 어차피 끝은 다 정신승리로 마치게 되어 있다. 다시 그 손자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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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자치통감 기준, 진서의 향년을 적용.
  • [2] 자치통감 기준, 진서의 재위기간을 적용.
  • [3] 모용외에 의해서 추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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