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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last modified: 2015-04-06 23:34:38 by Contributors

남자의 로망은 혼탕 항목으로.


사진 좀 잘 자르지

다수의 사람들에게 목욕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을 받는 장소.

일본 제국 시절에는 높으신 분들집무실이기도 했다.
한국 한정으로 이걸 운영하면 떼부자[1]가 된다는 언어유희가 있다.[2][3]

Contents

1. 역사
1.1. 서양
1.2. 한국
1.3. 미국/영국
2. 현대의 목욕탕
2.1. 규모와 구조
2.2. 구비품
3. 트리비아
3.1. 목욕탕이 주 소재인 작품들


1. 역사

1.1. 서양

문명이 세워지고 다수의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게 되면서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인더스 문명의 중심지인 모헨조다로 유적에서는 대규모의 공중 목욕탕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문명의 초창기부터 목욕탕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로마 시대 때는 커뮤니티 장소로도 애용되었고, 목욕하면서 연극 등을 볼 수 있는 공연 시설이나 도서관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고대 로마 시대의 목욕탕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또한 사치스럽기로 유명하다.
로마 제국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면서 나신을 드러내는 걸 안 좋게 여기는 인식이 퍼진 데다가[4], 당시 목욕탕이 매춘의 장소로 쓰이는 등[5] 여러 이유로 인해 위와 같은 사치스러운 형태의 목욕탕은 사라졌다.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중세 시대에 들어서도 유럽에는 공중목욕탕이 존재했고 씻는 것을 그다지 기피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목욕탕이 일종의 공창의 역할을 겸하면서 목욕하러 간다=매춘하러 간다 정도의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오늘날 '안마방에 간다'는 말과 비슷한 뉘앙스로) 심지어는 목욕탕이라면서 욕조는 없고 침대만 즐비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본래 목적인 위생과 청결에 있어서도 점차 멀어졌을뿐더러 목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중세 후기에 들어 물로 씻는 일반적인 목욕 대신 사우나가 보급되고 증기목욕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목욕은 청결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치로 여겨지게 되었다. 결국 중세 말에 들어서 목욕탕은 비위생적인 관리로 전염병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게다가 몸을 씻지 않는 기괴한 풍습이 생겨나며[6] 몰락한다. 이건 전염병의 원인이 비위생적인 관리가 아니라 목욕탕이나 목욕이라고 잘못 짚어버린 탓도 있다. 다만 고대 로마, 중세 시기의 목욕탕은 현대와는 달리 위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안 씻고 사는게 전염병에는 보다 안전할 수도.

근대에 들어서는 인구는 폭증했는데 사회기반시설은 점차 열악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고대나 중세보다도 사람들이 더 잘 못씻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청결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목욕시설을 유지하려면 대량의 깨끗한 물과 그 물을 운반할 수 있는 상수도 시설, 그리고 물을 데울 수 있는 연료가 필요한데 과거에는 사람 수가 적었기에 일단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발전한 기술력으로도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 향수[7]가 널리 쓰이고 발전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키탕검열삭제의 이미지를 덮어쓴 것도 이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고대 로마의 유산과 함께 청결을 중시하는 이슬람교의 영향 덕분에 목욕탕이 비교적 온전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터키 목욕탕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터키에 있는 진짜 터키탕(터키어로 Hamam)은 고대 로마시대의 목욕탕과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다. 중앙에 '괴벡타쉬'(Göbektaşı)라고 불리는 뜨뜻한 둥근 돌이 있고, 그 주변에는 몸을 담글만한 욕조와 세면도구들이 널려있다. 일단 욕조에서 몸을 불린다음에, 괴벡타쉬에 철푸덕 누워있으면 때밀이 아저씨(혹은 아줌마)가 와서 때를 밀어준다.


이것이 원조 터키탕


이렇게 고급스러운 것도 있다.

1.2. 한국

한국의 경우 불교가 전래되면서 몸을 청결히 했다는 기록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신라시대의 목욕탕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기도 했으며, 삼국유사에는 683년에 신라의 재상이 동래온천에 입욕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에는 역시 불교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몸을 자주 씻었다는 기록이 있고,[8]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정방이라 하여 실내에 목욕소를 두었다.

왕실이나 민간에서 왜관이나 국내의 온천지[9]에 온천욕을 다녀오는 일은 자주 있었으며 온양에는 을 설치 했을 정도. 당시 온천욕은 휴식의 의미도 있었지만 대개 의료적인 측면이 컸다. 1671년 정구(鄭逑)가 남긴 봉산욕행록(蓬山浴行錄)을 보면 당시 동래 온양 온천의 온정원(溫井院)을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당시에도 이미 온양 온천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 잡지 못해 수차례 개축하였으며 이는 1766년 부산 온양 온천에 세운 온정개건비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온정개건비 앞에 있는 석조(石槽)는 현존하는 조선 당시의 욕조 유물이다.[10]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서 목욕용 옷을 따로 입고 씻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피부에 좋다며 남아를 복숭아 꽃물(...)에 씻긴 기록이나, 쌀겨, 조두 등을 비누처럼 거품내어 사용한 기록이나[11] 수세미로 만든 일종의 목욕용 기구들과 전하는 이름들을 볼때 어느 정도 목욕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12] 또한 현대의 찜질방과 비슷한 유형인 한증막이 존재했으며,[13] 글과 그림으로 많이 묘사된 탁족[14]이나 신윤복의 단오풍정 등을 볼때 정형화된 욕탕보다는 개울이나 강가 등 노천에서 씻는 행위를 즐긴 경우도 많은 듯 하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목욕탕 문화가 유입되었다. 일본과 가까워 일본인이 많이 정착한 부산의 경우 1909년에 부산 시가지[15]에서 온천이 있는 동래까지 부산전차를 만들어 온천셔틀로 돌리기도 했다. 근대적인 공중 목욕탕 시설도 이 시기에 도입되었는데 1924년 평양에, 1925년 서울에 첫 공중목욕탕이 들어섰다. 당시 사람들은 공중 목욕탕을 두고 "어찌 남에게 맨몸을 보여주나"하고 거부 반응을 보여 정착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대다수가 찜질방과 겸업하고 있다. 찜질방이 없어도 어지간히 작은사이즈가 아닌 이상 이발소가 같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찜질방을 겸하는 업소라도 대개 목욕탕 시설 안에 찜질을 위한 작은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대다수다. 수영장도 목욕탕과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대중목욕탕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한국 말고도 일본도 그렇다고 한다. 일본에서 목욕탕을 주로 다니는 이가 쓴 책 <450엔의 행복>[16]에서 거론되었는데, 일본도 갈수록 대중 목욕탕들이 폐업하고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 풍경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어느 동남아 남성은 한국의 목욕탕에서 모든 남성들이 다벗고 있는 모습을 보고 컬쳐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자국의 목욕탕에서는 같은 남탕이라도 팬티만 입고 목욕했다고. 이건 제법 많은 나라들이 그런데 유럽과 아랍,북아프리카를 다니며 신혼여행을 1년에 걸쳐 다닌 이우일,선현경 내외도 유럽이나 아랍 목욕탕에서 팬티만 입고 다니는 탓에 훌러덩 벗고 들어갔다가 다들 어이없게 쳐다봤더라는 일화가 나온다. 1999년 한국에서 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예선전을 하러 온 바레인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도 팬티를 입고 목욕했던 일화가 있다. 그리고 한국내 거주 미국인 한명이 술 취한 상태에서 목욕탕에 들어갔다 남자들이 다 벗은걸 보고 게이 사우나로 착각해[17] 남중생을 성추행하다 불구속입건을 당한 적이 있다.

1.3. 미국/영국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Bath House나 Public Bath라고 쓰여진 큰 건물이 있었다. 미국의 경우, 정말로 목욕시설이 부족했던 서부시대가 아닌 이상(갑자기 마을이 생성되던 서부시대에는 대부분 독립적인 건물에 유료 목욕시설이 있었다. 여행자들이나 행인들을 위한 사설 업장이었다), 대부분 수영장이나 기타 시설을 겸하고 있었다. 현재의 스파의 모태가 된 시설인 셈.

영국은 생각보다 대중 목욕탕이 발달했는데, 그 이유는 토리아 시대의 영국 가정은 대부분 한 건물에 여러가구가 북적북적 모여 사는 시스템이었고,[18] 당시에는 수도 펌프고 뭐고 제대로 된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 제대로 씻을 곳이 없었다!!! OMG 있다 해도 한 건물에 한두개의 수도시설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안 되면 우물에서 길어 와야(...)하는 상황이었다. 애초부터 사람이 사는 집 안에 욕실이 없는 구조였던 것.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일부 상류층을 제외하면 대부분 제대로 못 씻어서 때가 꼬질꼬질한 사람들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19]

이러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19세기 초엽부터 바닷물로 씻을 수 있는 대중탕이 리버풀의 부둣가에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부둣가의 선원을 위한 시설에 불과했고, 현대적인 의미의 대중목욕탕은 티 윌킨슨(Kitty Wilkinson)이라는 아일랜드계 이민자 여성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리버풀에는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키티 윌킨슨은 대인배스럽게 자신의 집과 마당을 빨래 공간으로 제공한 것. 또한 키티 윌킨슨은 이웃들에게 백제를 사용해서 빨래를 세탁하는 법도 가르쳤고, 그럼 그 전까지는 다들 물빨래만 했다는 이야기인가! 게다가 자신의 보일러로 빨래를 세탁까지 했다! 살균세탁 하셨나요 보일러 이러한 상황에 리버풀 시 당국은 청결함이 질병 창궐을 예방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여러사람들의 지원을 얻고 키티 윌킨슨의 건의에 따라 영국 최초의 대중 목욕탕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질병의 위험에서 해방되었고, 가난한 자들이나 노동계급도 얼마든지 더운물로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목욕탕은 영국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게 된다. 하지만 일본이나 고대 로마, 터키의 목욕탕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도 개인 목욕공간이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경우에 따라서 가슴높이나 머리까지 올라오는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 욕조가 놓여있는 구조였다.[20]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일본식 목욕탕처럼 커다란 탕에 여러명이 함께 있는 구조는 아니었던 것.[21] 재미있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키티 윌킨슨의 노력에서 기인한 문화여서 그런지, 목욕탕 뿐만 아니라 뜨거운물이 펑펑 나오고 스팀으로 살균소독까지 할 수 있는 빨래방(Wash House. 당연한 이야기지만 요즘처럼 세탁기가 있는게 아니라 그야말로 "빨래터")도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목욕탕과 빨래방이 한데 붙어있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런식의 대중목욕탕은 현대적 샤워시설의 확산과 스파의 확산으로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20세기 중후반까지는 꽤 남아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사우나스파가 영국식 대중목욕탕 전형이 되었다. 하긴 이제 집집마다 생활 여건이 많이 좋아져서 목욕탕이나 샤워시설이 없는 집은 드문지라...

여담으로 영국에서 사우나에 갈때는 잘 확인하고 가자. 가끔 게이 사우나가 존재한다. 영국에서도 특히 런던은 성소수자를 위한 배려가 잘 되어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게이 사우나가 성업중이다. 물론 그렇다고 게이 사우나에 들어가는 순간 비누 좀 주워줘 시츄에이션이 펑펑 터지는 것은 아니니, 본인이 굳이 게이가 아니라고 해도 흥미가 동한다면 상관없다. 애초에 거긴 다들 몸 씻으려고 오는 곳이지 그렇고 그런 거 하려고 오는 성인 업소가 아니다. 무서운(?) 점으로 따지자면 일반 목욕탕이 훨씬 더 무섭다. 상대가 게이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니... [22]

2. 현대의 목욕탕

2.1. 규모와 구조

보통의 동네 목욕탕부터 대형 스파시설까지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가격은 싸고 작은 동네 목욕탕의 경우 6~7천원 수준부터, 유명 대형 스파의 경우 1~2만원 수준정도까지 다양하다. 그 탓에 작은 규모의 동네 목욕탕은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현재 대부분의 목욕탕이 부지를 확보하여 겸업을 하기 때문에, 목욕탕과 찜질방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져가는 상태. 더군다나,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웬만한 집은 제대로 된 목욕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그냥 목욕시설만 있는 '대중탕'은 이미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70년대엔 씻을만한 시설이 진짜로 목욕탕밖에 없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때문에 동네 목욕탕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크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정신없는 대형 찜질방보다는 오히려 조용하고 호젓한 동네 탕이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기에는 좋기 때문. 특히 막 목욕을 끝내고 나와서 조용한 탈의실에 앉아 삶은 계란에 차가운 사이다나 얼린 야쿠르트를 먹는 기분은 대형스파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나체로 들어가야 되는 것 때문에 당연히 남녀의 구분이 존재하며 남탕과 여탕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규정에는 만 5세 이하 , 신장 100cm 이하라고 명시가 되어 있으나, 그냥 아주 어려 보이는 어린이의 경우 성별에 상관 없이 남탕이나 여탕에 모두 입장할 수 있다. 물론 혼자는 불가능하고, 부모를 동반해야 하지만. 다만 일부 무개념 아줌마들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아들도 막무가내로 데려오는 바람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여탕 출입 가능 남아의 나이 규정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03년경 원래 만 7세였던 기준이 만 5세로 낮아졌지만 아이들의 성장이 점점 빨라지면서 이를 만 4세로 더 낮춰야 한다는 건의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얼핏 보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찬성할 의견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가정 환경(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등)이나 연령대에 따라 의견이 제각각이며 반대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반대로 아빠를 따라 남탕에 들어오는 여자애들[23]도 가끔 있는데, 이것 때문에 주변 남성들이 심하게 불쾌해하거나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듯 하다. 그리고 보통 엄마 입장에서는 자신이 직접 데려갈 수 있는 딸을 굳이 아빠와 함께 남탕에 들여보내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남자 아이가 여탕에 들어가는 것에 비해서는 사례 자체가 많지 않다.

자리(좌석?)는 샤워기의 배치 형태에 따라 나뉘는데, 입식, 좌식 두 종류가 있다. 입식은 정면의 어른 키 정도의 높이에 거울과 샤워기가 배치되어 있어 말 그대로 서서 씻을 때 이용하는 자리이고, 좌식은 앉은뱅이 책상 정도의 높이에 수도꼭지와 손에 잡고 다룰 수 있는 샤워기가 배치된 형태로, 앉아서 주로 때를 미는 용도로 이용한다.

스스로 때밀기가 귀찮거나 좀더 완벽한 때밀기를 위해 목욕탕마다 한명씩 배치되어 있는 때밀이 아저씨(혹은 아줌마)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 역시 만만치 않으니 정말 귀찮지 않은 이상 때는 스스로 밀자. 이따금 서로 모르는 사람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훈훈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현대의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장소(탕)로는 대개 온탕(대개 38~42℃) 과 냉탕(15~20℃), 열탕(43~45℃)이 있으며, 뭔가 알 수 없는 성분[24]을 풀어놓는 특수목적 탕이 있고 이벤트탕이라고 부르며, 요일이나 날자별로 날마다 다른 성분을 풀어놓는 곳도 종종 있다. 온탕의 레벨업판이라고 할수 있는 열탕은 사실 온탕보다 끽해봐야 2~4℃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남에도 불구하고 온탕과의 괴리가 상당하다.(매우 뜨겁다) 열탕에 들어가서 조금 있다가 곧바로 온탕에 입수하면 온탕물이 상대적으로 미지근한 걸 넘어 시원하게까지 느껴질 정도. 젊은 층들의 경우 열탕을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열탕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부록으로 냉탕의 최종진화판인 얼음탕도 있다. 어떤 곳은 얼음탕이 아니라 급냉탕이나 북극(...)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이쪽은 얼음탕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입수했을 시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다만 열탕은 뜨거운 물과 찬물만 적절히 섞으면 준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얼음탕은 따로 얼음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인지 흔하게 찾아보기 어려운 편.

흔히들 남자가 투명인간이 되면 하고 싶은 것 순위 안에 꼭 들어가는 것이 여탕가기. 그런데 들어가면 물과 발자국이 묻을테니 들통나서 말짱 꽝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가는 사람도 있지만 자라면 기억이 흐릿해진다. 물론 가봤자 허망한 망상마냥 몸매좋고 예쁜 여성들이 호호호 후후후 거리면서 줄지어 목욕하는 일따윈 없고, 대부분이 아줌마에서 할머니들 뿐이지만(...).애초에 남탕도 몸매 쩔고 멋있는 남자만 있는 거 아니잖아

2.2. 구비품

참고로 일반적인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의 구비품이 다르다. 남탕의 경우 안에 수건이고 비누 및 치약 따위가 다 비치되어 있어서 때밀이수건만 들고 가면 되는 곳인 반면(그나마 이것도 안에서 판다), 의 경우 샤워기, 탕, 물을 제외하고는 수건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곳도 있다. 목욕갈 때 남자들은 짐이 얼마 없는데[25] 여자들은 짐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안 그렇지만 옛적에는 아무래도 집안 살림에 관심이 없는 남자들이 그냥 돈 내고 목욕만 하고 나오는 반면에 여자, 특히 아줌마들은 들어가서 수건이랑 비누, 비누 담는 플라스틱 케이스까지 슬쩍해 나왔기 때문에 목욕탕 주인의 손해가 심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사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수도세 아끼려고 목욕탕 가서 빨래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이 쪽은 남자들도 자주 있었는지 21세기 초반까지 남탕에서도 웬만한 사우나에선 빨래 물건을 들고 오지 말라는 말은 다 볼 수 있다. 이건 군대에서의 습관과도 관련이 있을 듯. 대개 이쪽은 숙박비를 아끼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빠는 경우가 많지만. 심지어 일본 관광지의 온천에도 한국어로 '세탁하지 마십시오'라고 써붙어있는 곳들이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2000년대까지 남탕엔 있을거 다 있으면서 여성들만 자기 목욕할거 다 챙겨오라는 처사가 불공평하다고 느낀 여성단체에서 목욕탕연합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시범적으로 지정된 지역의 목욕탕에서 기간 한정으로 에 수건과 비누를 비치하고 통계를 낸 적이 있었는데, 결과는 여탕의 수건 회수율은 30%에 불과했다. 반면 남탕의 수건 회수율은 140%에 달했다.(......)러시아? 저런 수치가 나온 건 오히려 개인적으로 가져온 것(이라기보다는 다 구비돼 있어서 굳이 안 챙겨도 된다는데, 부인, 어머니 등이 굳이 가져가라고 쥐어준 것)을 놔두고 가는 경우까지 생겨서 그런 것.그럼 남탕에서 가져오면 되겠네 나머지 30%는? 그래서 아직까지 대부분의 여탕엔 비누랑 수건이 없다. 여자들은 집에서 별도로 가져오든지 아니면 구내 매점에서 구입해야 한다. 혹은 입구에서 2개 정도의 수건을 나눠주고 나올때 돌려받는 곳도 있다.

남탕에는 웬만한게 다 있다는 말을 들으면 여자들이 오히려 놀랄 정도. 반대로 남자들은 여탕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그 이유가 여탕의 수건이나 비누가 자꾸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니, 도대체 그걸 왜 가져가?"라며 이해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물론 같은 여자도 이해가 안 간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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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대여용 수건에 도난방지장치를 해놓아서 그냥 가지고 나갈시 경고음이 나오도록 시설을 설치해 놓은 곳도 있고 그런 곳에서는 꼭 하루에도 몇 번씩 경고음을 듣게 된다고 한다. 일부 목욕탕에선 수건에 목욕탕 이름 대신에 목욕탕에서 훔친수건 이라고 프린트 해 놓은 곳도 있다. 동네 주민인지 누가 컬투쇼에 이걸 사연으로 보냈는데, 컬투는 "이런 치사한 목욕탕은 망해 없어져야 한다. 수건 몇장 훔쳐가면 어때서." 라면서 공중파에서 절도범을 편들었다.[27] 아무리 소액이라도 절도는 절도고, 목욕탕에서 수건을 단순히 몇장 잃어버리는게 아니라는건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역시 범인은 아무 말이나 막 하고 항의 들어오면 사과하기의 달인 정찬우.

참고로 위의 이미지에 "왜 수건을 2장만 주나"라고 적혀 있는 것은 목욕탕 수건 도난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찜질방에서 남성들에게는 수건을 무한대로 제공하면서 여성들에게는 2장으로 한정하는 것에 대해 여성들의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얼핏 보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성들에게 수건을 무한으로 제공할 경우 1인당 무려 10장 이상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한을 두었다고 한다. 대충 따져봐서 들어갈때 몸 가린다고 한 장, 머리감을때 머리 묶는다고 한 장, 사우나 들어갈때 두 장, 씻을 때 허벅지에 걸쳐두려고 한 장, 몸 닦을 때 한 장, 머리 말린다고 한 장... 등등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정도다.


3. 트리비아

여탕에는 남탕에서는 볼 수 없는 '자리맡기'라는 기이한 풍습이 있다. 씻기 전부터 자리를 맡아두고 탕이나 사우나 이용할 때조차 '이 자린 내거'라고 맡아놓는다는 것. 사람 많으면 20분 정도 기다리곤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 자리에 오래 앉아서 꼼꼼히 씻는 여자들의 경우 확실히 자리가 있어야 맘놓고 탕에 들어갈 수 있는데다가, 대부분의 여자들이 목욕도구를 들고 욕탕에 들어가는데 샴푸나 다른 목욕도구를 아무데나 놔두면 누군가 훔쳐갈 것이 아닌가? 라는 서글픈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빈 자리가 있으면 아무 자리나 앉아서 씻는 남자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 커플이라면 이런 것으로 싸우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자. 이것 때문에 부산 동래쪽의 온천에선 사망사건까지 있었다. 자리 때문에 죽인건 아니지만 할머니와 젊은 여성이 자리싸움을 하다가 젊은 여성이 다치게 되었는데 이후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를 했더니 가해자인 할머니가 자살해버린 사건이다. 2011년인 지금도 동래쪽 온천에선 유명한 이야기다.[28]

자리맡기 이외에도 여탕에서는 커피나 각종 차를 큰 물통에 얼음 가득 넣은 뒤 탕 안에 가지고 들어가서 마시는 풍습도 있다. 여탕보고서에서 이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 댓글에서는 독자들의 컬쳐쇼크가 교차했다. 남성의 반응은 '여탕에는 커피도 파냐? 충격!'이었고, 여성의 반응은 '헐, 남탕에는 커피 안 파나? 충격!'이었다.

경상도 지방에는 자동 등밀이 기계가 있는데 예전에 스펀지에서도 나왔었다. 원래는 등을 미는 용도지만 스킬이 늘수록 모든 신체부위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게 기계를 몸에 맞춰서 강약 조절을 하는게 아니라 몸이 기계에 맞춰 강약 조절을 해야 해서 숙달되지않으면 며칠동안 따갑다. 요새는 서울에도 많이 있다.

외국에도 대중목욕탕이 존재한다. 칸막이로 나뉘어서 욕조가 하나씩 배당되는 시스템인 곳도 있고, 한국처럼 커다란 탕이 있는곳도 있다. 하지만 정문에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으면 게이 사우나다.

란마 1/2에서도 란마핫포사이와 함께 대중탕에 가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당연히 핫포사이 영감은 주목적이 여탕 훔쳐보기였는지라(...) 이를 말리려는 란마와 한바탕 전쟁을 치뤘고, 결국 그 날 그 목욕탕은 그 여파로 폐허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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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파이터 2에선 에드몬드 혼다의 전용 스테이지가 목욕탕인데, 혼다가 목욕탕 주인이기 때문이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제대로 싸울 순 있으려나 또한 목욕탕 스테이지와 그의 필살기 백열장수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혼다가 때밀이로 인식되는 편(...).

원반황녀 왈큐레의 주인공 토키노 카즈토가 목욕탕을 운영한다.

3.1. 목욕탕이 주 소재인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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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은 부자.(...)
  • [2]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가 도로 망했습니다.
  • [3] 그런데 실제로 1980년대 정도까지는 목욕탕 경영자는 지역의 알부자로 유명했다. 21세기와는 달리 욕조에서 씻거나 샤워하는 것보다는 탕에 들어가야 씻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도 있어서 어지간한 사람은 목욕을 하려면 목욕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유중 하나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물 절약 등을 이유로 목욕탕에 거리제한 규정이 있어서, 목욕탕이 일종의 지역 독점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거리제한규정에 걸려있던 사업은 죄다 알부자 취급이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목욕탕과 주유소였다. 하지만 목욕탕은 1983년에, 주유소는 1995년에 거리제한이 폐지된다. 2015년 현 시점에도 거리제한이 남아있는 것은 담배소매인 정도이지만, 편의점을 포함한 일반 매장에서도 담배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 [4] 이게 그리스도교와 무슨 상관인지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은, 당장 창세기를 읽어 보고 아담선악과를 따먹고 제일 먼저 뭘 득템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무슬림들도 목욕탕에서 옷을 다 벗고 돌아다니지 않는다.
  • [5] 지금도 심심찮게 목욕탕이나 찜질방을 무대로 한 성추행 사건 기사를 볼 수 있다. 거기다가 고대 로마 시절 공중 목욕탕은 오랫동안 혼탕이었다. (로마 제국의 성관념은 창녀가 당당한 직업으로, 그것도 해당 여성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만인의 여친" 같은 이미지로서 존재하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신을 드러내는 게 아무런 도덕적인 문제가 되지 않았던 문화권이었다.) 나중에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야 남탕과 여탕을 그것도 시간제로 구분했다고 하니...
  • [6] 목욕이 청결보다는 쾌락과 결부되면서 씻지 않는 것이 일종의 금욕행위로 여겨지면서 영광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덕분에 어느 고결하신 수도자는 머릿니가 눈송이처럼 떨어졌다고...
  • [7] 소설 향수에서 이 시대의 유럽이 얼마나 냄새나고 더러운지(...)잘 묘사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그르누이는 향수에 대한 집착이 더 커진다.
  • [8] 특히 송대의 고려도경이란 책에서는, 고려 사람들이 씻는 걸 좋아하여 남녀가 어우러져 자주 함께 씻었다 라고 기록하기도. 읭???
  • [9] 탕정면, 온양, 온천동 등의 지명이 그 흔적이다.
  • [10] 봉산욕행록 등 당시 기록을 보면 나무 욕조도 같이 쓴듯 하다.
  • [11] 애초에 비누의 어원이 이거다. 항목 참조
  • [12] 당장에 고려만 해도 고려인들은 아침점심저녁으로 씻어제낀다며 중국 사신이 까댄 기록이 있을 정도.
  • [13] '한증막'이란 단어는 현대까지도 사우나를 일컫는 순우리말로서 남아있다.
  • [14] 이 경우 개울이나 계곡에 발을 담그고 씻는 김에 풍취를 즐기며 노니는 일종의 피서나 소풍과 비슷한 취급을 받긴 했다.
  • [15]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대.
  • [16] 450엔은 일본 목욕탕 보통 평균 요금
  • [17] 그냥 게이바와는 엄연히 다른 곳이다! 항목 참조.
  • [18] 대부분 안뜰을 겸한 정사각형의 건물이나 아니면 길거리에 다닥다닥 붙은 2~3층짜리 아파트 형태였다.
  • [19] 당시 영국의 가장 열악한 노동계급 가정의 상황을 묘사한 글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었다. "...이 노동계급 부부는 한 방에 십수명의 자녀들과 함께 사는데, 집안은 언제나 난로의 연기로 매캐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욕조가 놓여져 있었고 이 욕조에서 가장이 퇴근 후에-그것도 미지근한 물이지만-목욕을 했다. 아이들은 방 구석의 침구 위에서 얼기설기 누워 잠에 들었고, 식탁도 없었기 때문에 밥은 서서 먹는일이 많았다." 흠좀무
  • [20] 알다시피 샤워 기구는 19세기 중반에 등장했고, 샤워장같은 시설은 19세기 말에 프랑스 군대에서 경제적 효율을 이유로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그 이후 감옥이나 집단 시설로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시간도 절약되니까) 퍼져나갔고, 이것이 전세계로 퍼져나간것.
  • [21] 다만 키탕이 19세기 후반 조금 유행하긴 했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에 대중목욕탕을 가리키면 이런식의 개인목욕탕을 가리키는 것.
  • [22] 이것은 게이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들 중 하나로, 게이도 엄연히 사람인지라 보는 눈이 있어서 남자라고 무조건 흥분하는건(...) 절대 아니다. 게이도 이성애자처럼 제각각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이 있고 그렇지 않은 취향도 있다. 이성애자라고 이성의 나체만 보면 무조건 발정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뭐같이 생겨서는 성추행 당할 거라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참 가관이다. 참고로 같은 농담이 게이바에도 존재하는데, 이성애자임에도 흥미본위로 게이바에 출입하는 사람도 많다.
  • [23] 여담이지만 일본의 한 목욕탕에서는 외견 연령 9살은 넘었을듯한 여자애가 아빠를 따라 남탕에 출몰해서는 수건으로 몸을 가리지도 않은채로 (일본의 목욕탕에서는 아무리 동성끼리 같이 있더라도 나체 상태일 때 그 부분은 수건으로 가리는 것이 예의이다) 남탕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데 정작 남성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사례가 있다.
  • [24] 물 가는 시간에 보면 볼 수 있는데 물을 채우고 나서 무언가를 뿌린다. 일반 색소로 추정된다. 날마다 색깔을 바꾸는 듯. 목욕탕마다 다를 수 있다.
  • [25] 필요한 거라면 칫솔, 면도기, 때수건 정도지만 들어갈 때는 그냥 돈만 챙겨들고 빈손으로 들어가도 괜찮다. 어차피 매점에서도 파니까. 이들 물건을 (칫솔, 면도기, 때수건 모두 합쳐서) 적게는 1,500원에서 많게는 3,000원 정도만 주면 살 수 있다. 예전에는 일회용 칫솔 정도는 무료로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환경문제 때문에 일회용품 무료제공이 금지되면서 없어졌다.
  • [26] 물론 잘하는 짓은 아니지만 여탕에서만 자주 사라지는 것은 실제로 약간의 돈에도 민감하고 살림을 책임지는 아줌마들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잘한 생활용품 구입비용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니깐
  • [27] 물론 사정을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 저 표시를 해놓은 목욕탕에서 사라지는 수건이 연 6000장에서 1000장으로 줄었다고 한다.
  • [28] 여담이지만 동래 및 현 연제구(구 동래구 관할 지역이 일부 있음)에는 남탕에도 위의 설명과 달리 수건부터 비누까지 다 가져가야 하는 목욕탕이 일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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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6 23: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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