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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엑스포스

last modified: 2015-04-06 13:01:42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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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엑스포스 최후의 순간까지 썼던 팀 로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Montreal Expos
프랑스식 이름 레 젝스포 드 몽레알(Les Expos de Montréal)
창단 1969년
연고지 캐나다 퀘벡몬트리올(1969년~2004년, )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
(1977년부터 2004년까지 사용, 야구수용인원은 45,757석)
월드 시리즈 우승(0회) -
내셔널리그 우승(0회) -
지구 우승(1회) 1981[1]
와일드카드 획득(0회) -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리그 참가
2.2. 엑스포스의 몰락
2.3. 워싱턴 연고이전, 그리고 난관
3. 몬트리올 올림픽의 유산(...) 스타드 올랭피크
4. 영구결번
5. 들어는 보셨나, 프랑스어 야구중계

1. 개요

''Les Expos de Montréal(레 젝스포 드 몽레알) / Montreal Expos'''

캐나다 몬트리올을 연고지로 존재했던 메이저리그 야구 팀. 1969년부터 2004년까지 몬트리올을 연고지로 했으며 2005년부터는 워싱턴 D.C.로 프랜차이즈를 이동하여 워싱턴 내셔널스가 된다.

2. 역사

2.1. 리그 참가

1969년 리그 확장의 일환으로 캔자스시티 로열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밀워키 브루어스(창단 당시 시애틀 파일러츠)와 함께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메이저리그에 참여했다. 팀 이름은 1967년에 열렸던 몬트리올 엑스포에서 따 왔다. 창단 당시만 해도 몬트리올에 나름 인기 있었던 마이너리그 팀인 몬트리올 로열스[2]가 있었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도 캐나다의 야구 전파에 선도적 역할을 할거라 기대했지만, 아시다시피 캐나다는 닥치고 아이스하키(...) 특히 몬트리올에는 NHL 스탠리컵 23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팀이자 NHL 전통의 명문팀인 몬트리올 캐내디언스(Les Canadiens de Montréal)가 있어 흥행은 생각만큼 성공적으로 되진 않았다. 그래도 창단 초창기에 캐나다에 첫 메이저리그 팀이 생겼다는 이유로 '엑스포스는 곧 캐나다 팀'이었고 이때문에 홈구장인 스타드 파르크 자리(Stade Parc Jarry)가 만원이 될 정도로 나름대로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 초 명예의 전당 포수 게리 카터와 외야수 안드레 도슨, 당시 꼬꼬마 외야수였던 팀 레인스, 1루수 워런 크로마티[3], 3루수 래리 패리시, 에이스 스티브 로저스 등을 앞세워 1981년 팀 역사상 유일하게 플레이오프 올라가기도 했지만[4], 이팀의 진짜 전성기는 같은 캐나다팀인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하던 1992~94년이다. 이 시기 엑스포스는 투수진에는 데니스 마르티네즈, 켄 힐, 마무리 존 웨틀랜드가 있었고, 타선에는 캐나다 역사상 최고의 타자인 래리 워커와 명감독 펠리페 알루의 아들인 이세스 알루, 2루수 들라이노 드실즈, 꽃미남마퀴스 그리솜 등의 선수가 포진한 상당히 젊은 팀이었다. 또한 없는 살림 속에서도 당시 단장이었던 댄 두켓의 화려한 돈질 능력 또한 돋보였는데, 1993-94 오프 시즌에 데니스 마르티네스의 부상으로 가용할 수 없게되자 LA 다저스의 유망주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들라이노 드실즈와 맞바꾸며 신의 한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결국 엑스포스는 1994년 전반기를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를 기록하며 아랫 동네 팀처럼 월드시리즈를 꿈꾸기에 이른다.

그러나 1994 시즌 올스타전 이후 파업으로 리그가 중단되는 바람에 플레이오프가 통째로 날아갔고, 플레이오프의 관중수익을 기대하던 팀은 토론토 블루제이스처럼 고액 연봉자들을 감당 못하고 팔아야 했다. 이후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 '괴수' 블라디미르 게레로 외엔 그다지 별 볼 일 없는 팀으로 전락했다.

2.2. 엑스포스의 몰락

게다가 하술된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Stade Olympique de Montréal)의 노후화 문제 때문에 구단에서 신축구장을 요청했으나 몬트리올 올림픽으로 인한 엄청난 재정난에 시달리던 몬트리올 시 정부의 징징으로 없었던 일이 돼버렸고, 설상가상 팀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구단주 프리 로리아[5]는 손을 탈탈 털고 참치로 갈아타면서 구단주가 사라진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MLB의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어, 팀 운영비는 나머지 29개 구단의 공동출자로 충당하게 된다. 뭐 일단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MLB사무국의 관리하에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근근히 버텨가면서 나름대로 중하위권 성적내며 생각 외로 선전해왔다.

엑스포스가 돈을 잘버는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MLB에서 돈을 받아서 운영해야 하는 관계로 예산은 항상 빡빡했으며 관중이 없어서[6] 홈경기의 3분의 1을 푸에르토 리코 이람 비손 스타디움(Estadio Hiram Bithorn)에서 치르는 강행군을 강요받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7] 그 와중에서도 에이스 바톨로 콜론이 20승을 찍어주고[8], 신인 선수들의 폭풍성장과 절묘한 트레이드 전략으로 5할 승률 이상을 2번이나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선전을 했다. 이 때의 단장이 후에 뉴욕 메츠에서 무능한 단장에 라틴 아메리카 커넥션으로 팀의 분열을 조장했다고 까이는 마 미나야[9]이며, 미나야가 뉴욕 메츠의 단장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 보여준 수완이 한 몫 했다.

그리고 엑스포스는 2004년에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져버렸다. 비록 최후에는 비인기팀이었긴 했지만, 한때는 '엑스포스=캐나다팀'이라는 인식과 함께 스타드 올랭피크에 5만이나 되는 팬들이 들어찼던 적도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안타까운 연고지 이전이었다. 이에 대해 'Triumph & Tragedy - the 1994 Montreal Expos'라는 다큐에서 엑스포스의 역사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내용이 꽤 슬프다. 1 2 3 4

2.3. 워싱턴 연고이전, 그리고 난관

결국 29구단 공동자금 지원도 한계에 봉착해서 그대로 가면 해체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도 엑스포스 유치에 워싱턴의 대안으로 올라온 후보들이 있었으며 네바다라스베이거스, 버지니아 주 노포크는 꽤 적극적이 었으나 전자는 도박문제, 후자는 도시규모가 작아서 MLB로부터 거부 당했고 MLB가 마음에 두고 있던 포틀랜드와 샌앤토니오는 시측에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서 실패했다.[10] 이 때문에 MLB는 고심 끝에 워싱턴 세네터스[11]가 텍사스로 옮긴뒤 비어있던 워싱턴 D.C.에 연고이동을 결정[12], '워싱턴 내셔널스'로 개명하게 된다.[13]

워싱턴 이전도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는데 첫째는 다시는 몬트리올 같은 사태를 일어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재정적 뒷받침이 되는 구단주 그룹을 찾는 것이 문제였고, 두 번째는 워싱턴 DC 내에 야구 전용의 새 구장을 짓는 일이었다. 이 문제는 일단 프랜차이즈를 워싱턴으로 옮기고 나서 워싱턴 D.C.의 시장성을 내세워서 구단주 그룹을 찾고 구장은 새 구장을 2009년에 완공하는 조건으로 일단은 워싱턴 세네터스가 쓰던 미식축구 겸용구장인 RFK 스타디움을 쓰는 방법으로 어찌어찌 해결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구단주인 피터 앤절로스가 "워싱턴은 세네터스 나간 1973년부터 우리 영역이었음. 왜 내 나와바리에 새 구단을 만들어서 영업권을 침해하셈?"이라면서 딴죽을 걸면서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이전 문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였으나 MLB 측에서 "님, 나와바리도 좋지만 MLB 전체를 위해서 대국적 견지에서 좀 이해해주삼. 워싱턴지역도 인구가 700만[14]이나 되는 대도시 지역이니 팀이 한 개쯤 더 있다고 크게 손해보지 않을 거임. 대신 님 영역 침해한 건 우리가 인정하고 미안하니까 워싱턴 팀 경기 중계하는 방송권을 님 구단이 대주주로 있는 MASN에게 줄테니 그걸로 이해 좀 해주삼."하면서 사정사정 한 끝에 겨우겨우 워싱턴으로 이전을 확정지었다.

3. 몬트리올 올림픽의 유산(...) 스타드 올랭피크



스타드 올랭피크
왠지 도쿄돔 삘 나는 조명.

엑스포스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인 스타드 올랭피크를 28년간 사용했다. 그러나 원체 문제 투성이인 구장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 애초에 올림픽 개막을 며칠 앞두고 겨우겨우 완공한 데다 여기저기 보수를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 종합경기장으로 지어졌던 경기장이다보니 야구를 관람하기에는 관중석 구조가 뭐같기로 악명을 떨치던 구장이었다.[15]

캐나다의 거의 전 지역이 그렇듯 몬트리올도 기후가 냉대기후권이라 천연잔디를 제대로 관리하기에는 애로사항이 꽃피는 곳이다. 또한 봄과 가을에는 덕아웃에 LP 가스통을 들여놓고 난로를 땠던지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장에 있는 타워에 케이블을 걸어서 지붕을 여닫는 식으로 서늘한 공기를 차단하고, 관리하기 까다로운 천연잔디 대신 인조잔디로 시공하는 등 경기장을 마개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지붕과 인조잔디가 선수단을 괴롭히기 시작할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다.

결국 1990년 후반 즈음되어 인조잔디가 닳아 선수들의 하체 관절에 무리를 주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안드레 도슨, 블라디미르 게레로 등 툴플레이어가 몬트리올을 벗어난 이후 주루능력을 포기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16] 거기에 지붕을 덮고 걷어내는 케이블의 고장이 잦는데, 1991년 시즌 중반에 지붕 고장 문제로 어쩔수 없이 일정을 조정하여 한신 타이거스 뺨치는 '죽음의 원정'을 다니는가 하면, 급기야 1998년 시즌 중에 지붕 마감재가 떨어지는 사고가 벌어져 불가피하게 몇몇 경기의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구단은 그 정도로 노후화 되던 스타드 올랭피크를 대체할 만한 신축구장을 몬트리올 시에 요청했지만 몬트리올 시 정부는 1976년 올림픽 이후 심각한 재정적자 크리 때문에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2002년 개장을 목표로 새 구장 계획을 세웠긴 했지만 이 계획은 결국 백지화돼버리고 말았다.

한때 한국의 모 구단도 이걸 모티브로 하여 모 종합경기장돔경기장으로 개조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1년에 한번,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이곳에서 스프링캠프 경기를 가진다. 이때 관중 동원수가 블루제이스 정규시즌 관중 수보다 많다는게 함정.

4. 영구결번

몬트리올 시절에는 게리 카터의 8번, 러스티 스타우브(Rusty Staub)와 안드레 도슨의 10번, 팀 레인스의 30번이 영구결번이었지만, 연고 이전 이후 모두 없던 것으로 치부했다. 워싱턴의 팀으로 아예 새출발 하려고 하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6년 가량 몬트리올 시절의 결번을 무시했다가 2011시즌 개막과 함께 다시 몬트리올 시절의 결번을 부활시켰다. 그래서 현재는 MLB 구단 공통 결번인 42번을 제외하면, 위에서 말한 4개의 결번이 다시 생겼다. [17] 다만 공식적으로 홍보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고 비워두기만 하는거라 그런지 딱히 비워주고 싶어서 비워주는 건 아니라고!, 므르브 항목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많은 정보가 담겨있는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공식으로 영구결번이 되었다는 언급은 없다. 하지만 내셔널스 홈페이지에는 언급이 되어있으니 공식으로 봐도 될 듯. 참고로 재키 로빈슨이 첫 마이너리그 생활을 한 팀이 몬트리올 로열스고, 마이너리그 우승을 이끌며 영웅이 된 곳이 바로 몬트리올이었다. 그래서 전구단 영구결번이 되기 전에 몬트리올은 그 인연을 들어 일찌감치 재키 로빈슨의 42번을 영구 결번으로 처리했다.

8. 게리 카터(Gary Carter): 1974년부터 1984년까지 몬트리올에서 뛰면서 맹활약한 명예의 전당 포수. 통산 11차례 올스타와 3번의 골드글러브, 5번의 실버슬러거를 자랑하는 한 시대를 풍미한 포수다.

10. 안드레 도슨(Andre Dawson): 1980년대를 주름잡은 강타자. 1977년 신인상, 1987년 내셔널리그 MVP의 주인공이다. 다만 가장 오래 뛴 것은 엑스포스가 맞지만, 최전성기는 시카고 컵스. 그래도 명예의 전당 모자를 오래 뛴 엑스포스 걸로 해 줘서 그렇게 가게 되었다.[18]

10. 러스티 스타우브(Rusty Staub) : 통산 2716안타를 기록한 1루수. 근데, 몬트리올에서는 단 3년만 뛰었다(1969~71, 79). 그런데도 영구결번 된 것은 루이지애나 출신이지만 몬트리올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워서였다고. 그리고 단지 프랑스어를 배웠다는 이유 뿐만 아니라 엑스포스의 초기 시절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었던 인기 스타였다. 즉, 엑스포스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30. 팀 레인스(Tim Raines) :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외야수. 전성기에 비해 말년의 성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최소한 몬트리올에서는 7년 연속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맹활약했다.

42.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영구결번이기는 한데, 몬트리올 시절에 이미 영구결번되었다. 그 이유는 재키 로빈슨이 처음 데뷔한 곳이 LA 다저스 산하 마이너 팀이었던 몬트리올 로열스였기 때문. 여기서 맹활약하면서 백인 관중들이 흑인 선수를 연호하는 일이 벌어졌고, 여기서 자신감을 얻어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5. 들어는 보셨나, 프랑스어 야구중계

이 팀은 프랑스어권인 몬트리올을 연고로 한 덕분에 중계방송도 영어와 프랑스어 2개국어로 했다. 그 결과 이 팀은 프랑스 야구용어를 정립했다는 최대의 유산을 남겼다. 또한 이들이 프랑스어로써 방송하면서 정립한 야구용어가 프랑스 야구용어의 표준이 되었다. 몬트리올 시절 막판에는 TV 중계는 영어 쪽 방송 없이 프랑스어로만 중계방송을 했다. 그래서 박찬호 다저스 시절에 몬트리올 원정 등판이 있을 때 현지 방송을 받아서 중계를 하는데 메이저리그 전문가라고 데려온[19] 해설자들이 프랑스어 자막과 프랑스어 중계를 해석을 하지 못해서 데꿀멍 한 적도 있다. 향후 야구가 좀더 국제화가 될 경우를 생각하면 아주 귀중한 유산이며, 야구로서는 엑스포스의 이전이 프랑스어권의 야구의 보루를 상실했다는 점에서 생각보다도 큰 타격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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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유일한 우승 기록이지만, 이것은 파업으로 인한 단축시즌으로 인해 우승을 이룬 것이다.(...)
  • [2]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본격적으로 데뷔하기 전에 뛰었던 팀이었다.
  • [3]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이자 돌격 크로마티 고교의 모티브였던 바로 그 크로마티 맞다.
  • [4] 1981년 포스트시즌은 그해 벌어졌던 선수노조 파업으로 시즌을 전후반기로 나눠 각 지구 전후반기 우승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자웅을 벌이는 식으로 운영됐다.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LA 다저스에게 패배. 그리고 엑스포스는 포풍 세일을 감행하는데... 한편, 이 해 LA 다저스는 멕시칸 특급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를 앞세워 뉴욕 양키스를 꺾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다.
  • [5] 현재 마이애미 말린스의 그 유명한 막장 구단주. 이 인간이 몬트리올에서 손털고 플로리다 구단주를 맡아 눈물의 대방출 바겐세일을 밥먹듯이 저지르고 있고(...) 플로리다 구단주를 하던 존 헨리가 말린스를 매각하고 보스턴 레드삭스를 매입한다.
  • [6] 01 시즌엔 평균관중이 7,647명에 불과했다. KBO 팀보다 못한 수치.
  • [7] 이는 MLB 사무국이 푸에르토 리코의 시장성을 시험하기 위한 일종의 이벤트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8] 이 트레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훗날 사이 영 상 수상자, 5-tool 외야수내야수를 보내는 용자짓을 벌였다. 물론 당시 엑스포스가 플옵을 노렸던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짓.
  • [9] 한마디로 돈도 쪼들리던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저정도 성적을 냈으니 돈만 충분히 쥐어주면 월드시리즈 우승도...라는 기대로 데려왔으나 한정된 예산에서 쥐어 짜는 능력은 있지만 넉넉한 살림을 효과적으로 쓰는 능력은 없었던 듯... 질러서 데려오는 선수들마다 먹튀에 전부 라틴 아메리카 출신 선수들로 메츠의 백인 팬들로부터도 시선이 곱지 않았다.
  • [10] 포틀랜드의 경우 신축구장 계획도 있었지만 실제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샌앤토니오는 알라모 돔을 개조해서 쓰면 되겠지만 이 동네는 미식축구가 인기있는 동네다.
  • [11]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신이다. 워싱턴 세네터스는 역사적으로 2번 존재했는데 두팀 모두 워싱턴을 떠났다. 전신은 現미네소타 트윈스, 후신으로 現텍사스 레인저스.
  • [12] 워싱턴도 후보로 생각을 안한 건 아니지만 위에서 설명했듯 볼티모어의 존재 때문에 일단 후순위로 미루어 놓은 상태였다.
  • [13] 따라서 SK 와이번스나 넥센 히어로즈와는 달리 워싱턴 내셔널스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역사와 통산기록을 계승한다. 내셔널스가 팀 정체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 [14] 워싱턴 D.C.는 자체인구는 50만으로 적은 편이나,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 경계에 위치해있고 행정중심도시기 때문에 유동 인구가 많아 같은 생활권으로 본다. 볼티모어는 메릴랜드주의 핵심 도시.
  • [15]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인 잠실운동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잠실운동장도 축구 관람에는 최악의 구조로 악명이 나 있다. 이와는 반대인 경기장이 애초에 야구장으로 사용할 걸 생각하고 지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터너 필드.
  • [16]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FIFA가 인조잔디 피치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스타드 올랭피크 구장을 사용하게 됐다(대표적으로 한국-브라질 전이 이 구장에서 열렸다.) 야구에서는 인조잔디를 기피하는데 축구는 오히려 인조잔디를 사용하려 하니 아이러니하다. 물론 이때의 인조잔디는 대회를 위해 새로 시공한 인조잔디였다.
  • [17] 엑스포스가 몬트리올을 떠나 워싱턴 내셔널스로 이름을 바꿨던 2005년에는 NHL 몬트리올 캐내디언스의 홈구장에 이 네 영구결번 배너가 걸리기도 했다.
  • [18]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엑스포스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선수가 한명도 없게 될 판이었다. 참고로 명예의 전당에 새기는 동판에는 입성할 때 쓰고 온 모자를 기준으로 선수의 상을 만드는데, MLB 역사에 몬트리올 엑스포스라는 팀이 있었다는 걸 남기기 위한 조치로 위의 게리 카터도 마찬가지 케이스였다. 카터의 경우는 뉴욕 메츠의 모자를 원했으나 MLB 사무국 측의 강력한 요청과 베테랑 위원회의 권고로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모자가 새겨졌다.
  • [19] 그래 놓고서는 영어로 진행되는 중계를 듣고 해석해 주는 것으로 때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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