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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케 칸

last modified: 2015-04-06 21:26:38 by Contributors

몽골 제국의 역대 대칸
3대 정종 구유크 칸 4대 헌종 몽케 칸 5대 쿠빌라이 칸

Mongke.jpg
[JPG image (39.08 KB)]
묘호 헌종(憲宗)
시호 환숙황제(桓肅皇帝)
칸호[1] 몽케 칸(ᠮᠣᠩᠺᠡ ᠬᠠᠭᠠᠨ)
(夢哥汗 / 몽가한)
보르지긴(ᠪᠣᠷᠵᠢᠭᠢᠨ)
(孛兒只斤 / 패아지근)
몽케(ᠮᠣᠩᠺᠡ)
(夢哥 / 몽가)
생몰기간 1209년 1월 10일 ~ 1259년 8월 11일
재위기간 1251년 7월 1일 ~ 1259년 8월 11일


현대 몽골어: Мөнх хаан
한자: 蒙哥汗
(1208–1259)

무장 친위대 빌헬름 몽케 장군과는 관계없다.
몽키가 아니다.(...)

몽골 4대 대칸. 그의 시대에 몽골 제국은 최대 판도에 이르렀다. 건국 후 받은 묘호헌종(憲宗). 칭기즈 칸의 4남인 툴루이의 큰아들이자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 일 한국의 창시자인 훌라구의 큰형.

사촌인 구유크 칸이 사망한 후 바투와 제휴하여 쿠릴타이에서 칸의 자리에 추대되었으며 동생 훌라구로 하여금 중동 지방을 침공하게 하고 동생인 쿠빌라이 칸으로 하여금 을 치게 했지만 쿠빌라이가 독립적인 세력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자 쿠빌라이를 뒤로 물리고 본인이 쳐들어갔다가 사천지역에서 병을 얻었고 사망했다.[2]

그의 즉위 과정에서 몽케의 후견인 격이었던 바투와 구유크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바투가 구유크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다.

기독교, 정확히는 경교를 믿었다고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의 어머니가 경교도(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였지 뭉케 그 자신은 기독교도가 아니였다.

툴루이의 후손들이 오고타이 칸의 시대에 엄청난 핍박을 받은 탓에 톨루이 울루스는 제자 울루스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았다. 바투가 구유크 칸 사후에 몽케를 칸으로 세운 까닭 역시 이 때문이었다. 바투는 '얘들은 너무 약하니까 내가 몽케를 칸으로 세우면 몽케는 내게 의지하느라 주치 울루스에 참견 못 하겠지' 정도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3]

또, 툴루이 가문의 약화는 몽케로 하여금 숙청을 행하게 했다. 그리하여 몽케가 행한 숙청은 몽골 제국에서 전무후무한 규모였다.(...) 특히 칭기즈 칸으로부터 왕권을 영구히 부여받은 오고타이계가 당한 숙청[4]이 대단했다. 덕분에 오고타이계는 시망.(...) 이후 오고타이의 후손들 중 가장 잘 나간게 카이두였는데, 그나마 이두도 차가타이 울루스의 바락이 몰락하기 전까지는 반 쿠빌라이파 가운데 최약체였다.

그의 치세때 프랑스의 사자 자격으로 온 사제가 있었고 그는 몽케 칸에게 교황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했지만 몽케 칸은 당연히 그런거 신경쓰지 않았고(당시 몽골 제국은 세계 최강이라 봐도 좋을 정도였다.) 대신 기독교 사제들과 이슬람 교도들과 불교 승려들로 하여금 토론으로 서로와 겨루어 보라고 시켰다. 당연히(...) 이 세 종파들은 서로를 성공적으로 교화시키지 못했고 결국엔 기독교인들은 와인 마시다 취해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고 무슬림들은 질세라 쿠란을 외우고 불교도들은 조용히 명상을 시작했다.(...)[5]

그리고 이 프랑스인 사제가 돌아갈때 몽케 칸은 신이 손에 다른 손가락들을 내려주셨듯이 인간에게도 다른 방식들을 내려주었다며 몽골인들의 포용성을 설파했다. 근데 중국의 다른 기록을 보면, 그 뒤에 스님에게 가서 "다른 종교가 손가락이라면, 불교는 손바닥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조협려에서는 친히 몽골군을 이끌고 양양성을 공격하다가 양과가 던진 돌에 맞아 죽는 안습한 꼴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칭기즈 칸의 후예답게 용맹히 맞섰다는 묘사도 있긴 하다만... 게임에서는 더욱 묘사가 이상해져서 갑자기 프리더 마냥 변신을 한다. 그것도 2번이나.

게임 징기스칸 4에서는 파워업키트에서 등장. 능력치가 정치:86 전투:84로 높고 지모는 91을 찍는다. 평균 능력치가 동생 쿠빌라이를 능가한다. 기하학이나 외국어에 능했다는 사실 때문에 지모 고득점을 받은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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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몽골식 군주 칭호
  • [2] 남송의 격렬한 반격에 의해 전사했다는 말도 있다. 몽케 칸이 이끌던 우익군의 장수들 다수가 남송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걸로 봐서 가능성이 없진 않다.
  • [3] 구유크 칸의 시대부터 바투가 잘 나가서 반독립적인 칸국을 세웠다고 세간에는 알려져 있는데, 이는 몽케 시대의 일을 소급한 것이다. 단, 몽케 시대에도 바투의 권한은 해당 울루스 소속의 유목민들에게 한정된 것이었다. 하위 칸들의 권력이 정착민들에게도 행사된 것은 쿠빌라이 칸 시대 이후의 일이다.
  • [4] 전대인 구유크 칸이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추구한 결과 오고타이계는 인망을 잃었다. 그래서 그들을 보호하려는 몽골 귀족들이 없었다.(...) 후새드.
  • [5] 잭 웨더포드가 쓴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의 한 장면 묘사...인데 좀 부정확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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