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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last modified: 2015-09-07 17:59:08 by Contributors

廟號

Contents

1. 개요
2. 용례
2.1. 조선의 경우

1. 개요

원래 중국에서 죽은 군주의 영(靈)을 태묘(太廟: 조상의 영을 제사지내는 묘,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 사용되는 칭호(이름)로 추증되었으며, ~조(祖), ~종(宗) 등의 형태를 갖는다. 종묘에 올라가야만 올릴 수 있으며 광해군연산군처럼 폐위되고 영영 복권되지 않은 군주의 신위는 종묘에 없기 때문에 묘호가 없다.

대(漢代)에는 묘호가 있기는 하지만 시호만 쓰고 묘호를 일괄적으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묘호로 알려진 황제는 적다. 그런데 대(唐代) 이후로는 묘호가 일괄적으로 붙게 되고, 황제의 시호는 점차 길어졌기 때문에 이를 줄여서 부르기 위해 대개 묘호를 약칭 대신으로 사용하였다. 역사적으로는 같은 묘호가 있으므로 '국명+묘호'로 사용한다. 대(明代)부터 황제는 제위할 동안 하나의 연호만 쓰는 일세일원제가 확립되었기 때문에, 군주의 약칭으로 살아있는 황제 본인에게도 사용가능한 연호를 사용했다. 그래서 황제의 통칭 중 하나가 '묘호 연호+제(帝)'이다.

시호와의 차이점은 시호는 군주, 신하 양쪽 모두에게 쓸 수 있지만 묘호는 국가의 묘(廟)에 올라간 군주의 경우에만 붙는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어떠했는가를 평가하는 시호와 달리 묘호는 '군주'로서의 업적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제후에게도 역시 쓸 수 없다.

묘호에 붙는 글자는 시호를 붙이는 시법에 준한다. 원래 황제에만 붙이는 것이지만, 조선은 그냥 무시하고 자신들의 왕에게 올렸고 고려는 원간섭기 이전인 충렬왕 이전까지 묘호를 올렸다. 삼국시대 때는 확실치 않은데 백제는 없고, 신라무열왕에게 태종이라는 묘호를 올렸다. 그 외에 진흥왕순수비에 태조라는 묘호를 쓰는 임금에 대해 거론되지만, 다른 기록에는 대체 누가 신라의 태조인지 기록돼 있지 않아 설이 분분하다. 고구려의 경우 태조왕에게 묘호를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 학계에선 묘호와 비슷하게 지은 호칭이라는 게 통설이지만, 본래 고대에는 중국에서도 역대 군주 중 일부 소수의 중요한 업적을 세운 군주에게만 특별히 묘호를 올렸기 때문에 고구려도 묘호를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도 있다.

조선 성종은 "우리는 제후국인데 묘호를 붙이는 것은 참람한 일이다."라며 선왕들의 묘호도 삭제하고 자신에게도 묘호를 붙이지 말라고 지시했으나 신하들이 이미 선왕들의 종묘 신주, 묘비나 각종 문서에 묘호가 기록되어있어서 이것을 다 지우려면 비용이 든며 반대하여 없던 일이 되었다. 사실 성종의 주장이 아주 억지나 사대를 위한 명분만은 아니다. 성종 스스로도 과거 국가들 가운데 묘호를 쓰지 않은 예를 예로 들면서 조뿐만 아니라 종도 내켜하지 않았을 뿐이다. 묘호는 본래 상나라의 제도였어서 주나라 이후로 쓰지 않다가 한나라 때 부활했다. 그리고 당나라 이전에는 묘호를 일부 소수의 천자한테만 올렸던 것. 그러나 성종 사후 '모某왕'이라고 두라는 것을 연산군이 아예 상당한 존호인 성종을 딱 붙여버리면서 성종의 유지도 없던 것이 되었다.

이것이 문제가 된 적도 있는데, 정유재란 때 명나라의 정응태가 조선이 일본과 손잡고 명을 치려한다는 무고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증거로 든 것 중 하나가 묘호의 사용이었다. 조선이 일본과 손잡았다는 말 자체가 허무맹랑한 것이었기에 정응태가 사형당하는 것으로 끝났으나, 다른 건 다 모함이었다고 해도 묘호 사용은 사실이었기에 이거만큼은 고려 때부터 이어지던 걸 그냥 계속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사죄해야 했다. 하지만 묘호 사용 자체가 폐지되지는 않았다. 이를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느슨해지긴 했어도 당대에 묘호를 사용하는지 아닌지를 상당히 신경썼다는 걸 알 수 있다.

현대에선 명나라 이후 중국의 황제들을 부를 때 '묘호 연호+제'에서 묘호도 빼버린 '연호+제'가 통칭으로 쓰이고 있다. 이 영향인지 한국에선 고려 이후 군주들의 통칭이 대부분 '~조', '~종'이고 대한제국에서야 군주의 지위가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조', '~종'은 왕으로서의 칭호이고 중국 황제들의 통칭으로 쓰이는 '연호+제'가 황제로서의 칭호인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연호+제'는 연호를 제정할 수 있고 '일세일원제'라는 걸 의미하는 천자국의 군주에게 사용하는 거라 천자국만 쓸 수 있는 건데, 위에서 말했다시피 묘호도 원칙적으로는 천자국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묘호가 '연호+제'보다 격이 낮다고 보기 어렵다.

2. 용례

원칙적으로 왕조의 창시자에게는 조(祖)를 올린다. 십중구십 태조, 고조 둘 중 하나다. 그 외에 재위 기간 중 국가가 전복될 만한 위난이 닥쳤으나 잘 대처했을 때, 혹은 새로 건국한 것에 버금갈 정도의 대개혁을 완수한 경우에도 조를 쓴다. 왕조의 창시자의 선조에게 부여되는 경우(추존)도 있으나, 예외가 많다. 반면 종(宗)자가 들어가면 덕이 있다는 뜻으로, 쉬운 말로 그냥 그럭저럭 어려운 사건도 없었고 대단한 업적도 없이 자리보전이나 잘 했다는 뜻이다. 다만 종도 적어도 백성들을 잘 다스려서 성군소리를 들을 정도는 되어야 붙었고, 일반적인 황제에게는 종도 안붙은 일이 흔했다.

앞서보듯 초기에만 해도 묘호 자체, 즉 조와 종 모두가 드문 것이었다. 종은 뒤에 남발되지만 조는 더더욱 남발되지 않았기에 조의 남발은 조선만의 특수사례였다. 고려때는 그 많은 국란이 있었지만, 잘 헤쳐나간 경우에도 '조'를 붙인 왕은 오직 태조 왕건밖에 없었다. 여하간 보다 높게 친다는 요상한 컨센서스가 효력을 발휘한 적이 종종 있었으며, 곧바로 이것이 호칭 인플레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祖를 뜻읽기한 의미가 '할아버지'이고, 宗은 '계승자'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조가 종보다 우월하다는 해석이 얼마나 잘못인지 쉽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묘호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대체로 조를 아주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안썼다.

  • 은 태조 유방이 태조로 묘호를 받았다. 흔히 한 고조로 알려져 있지만 유방의 정식 묘호는 '태조'이다. '고조'라는 표기는 '고황제'의 존칭이었으며, 후한을 건국해서 사실상 한을 재건국한 세조 광무제, 그리고 촉한을 건국한 열조 소열제의 3명.

  • 서진세조, 고조, 나라, , 의 경우 조를 받은 임금은 태조 밖에 없다.

  • 역시 수문제는 고조로 묘호를 받았고 수양제 역시 세조로 올려졌으나 이를 추존한 세력이 정통으로 인정받지못하는 세충 하의 꼭두각시 황제였기 때문에 후세 사가들은 양제를 세조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선 잘 인정하지 않는다.

  • 은 태조 묘호를 추존받은 칭기즈 칸과 몽골 제국을 중국왕조화하면서 제2의 건국을 한 원 세조 쿠빌라이로 2명.

  • 주원장(태조)과 건문제를 무력으로 몰아내고 사실상 재건국을 한 영락제(성조) 2명.

  • 누르하치(태조)와, 베이징 중원을 점령한 치적을 세운 순치제(세조),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대만을 수복하였으며 몽골로 친정한후 후환을 제거하여 중국 완전정복이라는 업적을 이룩한 강희제(성조) 3명.

이처럼 일반적인 경우 "조"를 받은 임금은 나라를 세우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제2의 개국, 국가의 재구축이라 할 만한 큰 위업을 달성한 임금이었다.

실제로 추존 군주중 최초로 "조"의 묘호를 받은 이는 바로 조조다. 이때만 해도 조조가 위왕으로서 황제에 오르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조위를 개창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태조라는 묘호를 받았고 이후로도 왕조 성립 이전에 기틀을 마련하거나 일정한 공이 있던 조상이라면 조를 받았다. 이 덕분인지 수나라 때까지만 하더라도 추존 군주는 모두 창업 군주의 부친이나 조부 뿐이었다. 하지만 당나라부터는 이런 룰이 깨지고 증조부, 고조부, 많기로는 5대조나 6대조까지 추존하면서 모두 묘호에 조를 올렸다. 5대조까지 추존하는것은 나중에 전례란 이름으로 수입되어서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조상 5대조를 추존하고 나중에 고종이 황제가 되자 자기 위 5대조의 조선국왕을 황제로 추존한다. 영조는 6대조가 넘어 영종이 영조로 파워업하는 정도에서 끝났지만 손자인 정조는 4대조라서 황제로 추존되었다. 정조의 소원으로 장종으로 추숭했던 고종의 5대조인 사도세자도 장조의황제로 추존 황제로 만들어주었다. 태조 이성계의 경우 왕조 창시자이기에 예외로 두고 그냥 황제가 되었다.

물론 어디나 예외는 있다. 대체로 혼란기에는 조를 남발한 경우가 많았다. 조위(2대 열조 조예)를 시작으로 오호십육국시대남북조시대, 오대십국시대의 국가들은 2명 이상이 조를 받은 국가들이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탑은 북위로 실제 재위한 황제 중 조를 받은 이가 4명.

2.1. 조선의 경우

사실 조선의 경우는 다른 왕조에 비해 조(祖)를 받은 임금이 지나치게 많다. 일단 기본 용법 중 하나인 개국 시조 앞 몇 대를 추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보자면 조선에서 실제로 재위한 임금 가운데 조를 받은 임금은 7명이나 되며 추존된 임금인 태조 이성계의 4대조(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친), 사도세자, 효명세자까지 합치면 무려 13명이나 된다.

바로 전 왕조인 고려도 추존된 태조 왕건의 3대조인 국조, 의조, 세조를 제외하면 조를 받은 건 태조 뿐이다.

상기 언급하였지만 시호를 짓는데 시법이 있듯이 당연히 묘호를 짓는데 그 방법이 있긴하다. 하지만 유난히도 조선에서는 세조 이후 지켜진 적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처음에는 "종"으로 묘호를 올렸으나 이후에 추승의 경우가 너무 많다.

일단 이유는 있으니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그 위난을 잘 해쳐나왔다 해서 조라는 묘호를 내린 것이다. 선조나 인조의 경우는 임진왜란병자호란 때문에, 세조의 경우는 계유정난 때문에 조를 붙였다. 이 경우에도 1차적으로 붙인 묘호는 종(세조는 신종, 선조는 선종)이었지만 후계자들(예종, 광해군)이 억지로 조로 추숭해 버렸다. 다만 인조는 1차 선정부터 열조(烈祖)였다가 효종이 더 높은 글자를 쓴다고 인조로 바꿔버렸다. 결국 태조 이성계를 제외하고 세조부터는 억지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조정의 만년 떡밥.

영조, 정조는 조금 있다가 보고, 한편으로 순조철종기에 조를 받았는데 지금도 한국사의 작은 떡밥으로 남아있다. 철종의 정통성을 강화하기위한 처사로 보이며 추숭한 목적은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고, 사학(천주교)을 처단했기 때문".

고종 때는 대한제국을 세우면서 왕위에서 제위로 바꾸고, 고종을 기준으로 4대조까지의 들을 황제로 높이고, 그에 따라 묘호를 높이면서 정조는 원래 정종이었다가 조로 추숭되었다. 조선 말기 계보도가 조금 막장이라, 고종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익종)의 아들로 양자입적한 상태라 효명세자부터 4대를 역산하면 사도세자, 정조, 순조, 효명세자가 된다. 그래서 고종은 이들 4대를 장조, 정조, 순조, 문조로 추존했다. 그나마 엄밀히 말해서 이 4대 추존(순조 제외)은 조선의 조 남발 사례에서 한발자국 벗어나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어쨌든 황제 즉위라는 준개국에 해당하는 상황에서 개국 선조 몇대를 조로 추존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일반적인 사례였다. 다만 영조의 경우는 4대 추존이라는 일반적인 예법과 별도로 따로 추진된 추존사례이다. 원래는 영종이었다가, 고종 27년, 그러니까 대한제국을 세우기도 전에 그냥(...) 추존했다. 제일 오래 재위하면서 나라 잘 다스렸으니까 추존한다는 뉘앙스. 단 영조는 황제로 추존되지는 않았다.

'조'를 붙인 경우들은 대부분 정통성 강화를 위해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통성이 없을수록 조가 더 남발 된 것이다. 세조 이후 조선의 왕위계승이 계속 방계계승으로 이어지면서 왕위의 정통성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져나오게 되었다. 사실 세조는 세종의 적차자이니 방계는 아니지만, 적장자 다음으로 적장손이 대를 잇는게 당연한데 그걸 찬탈(...)했으니 방계에서 굴러들어온 것보다도 정통성에 애매함을 느꼈을 것이다. 후대의 선조는 정식 왕비에서 태어난 적자의 계통이 끊어지는 바람에 확실하게 방계승통을 시작해버렸다. 이런 정통성 논쟁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예송논쟁이었다. 그리고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예론과 같은 보수적 학풍이 대두하면서 신하들이 충신이라는 명분을 어떻게든 마련하기위해 임금의 칭호를 높이는 데 꽤나 힘썼고, 조 호칭은 더더욱 남발될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조선왕조 자체가 28대 500년으로 길기도 했고, 왕족 내부의 쿠데타라고 할 수 있는 반정, 양위도 결코 드문편은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하도록 하자.

조선시대에는 묘호에 '조'를 붙이는게 나름대로 중요한 문제였지만 결국 지금 보면 왕에 대한 평가는 묘호에 '종'을 붙이냐, '조'를 붙이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 자명하므로 결과적으로는 부질없는 짓이나 다름없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선조나 인조가 '조'가 붙었으니 세종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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