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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대여법

last modified: 2015-10-21 09:37:22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특징
2.1. 소련
2.2. 영국
2.3. 중국국민당
3. 전후 상황
4. 의의

1. 개요

Lend-Lease. 렌드리스 법, 혹은 렌드리스 계획.현실판 쇼미더머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주장한 미국의 대연합군 물자지원 계획이다. 나치 독일, 이탈리아 등의 추축국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국에게 물자를 지원하자는 취지였으며, 1941년 3월 11일에 시작해 1945년 9월 2일에 종료했다. 그 이후로도 이미 보내기 시작한건 운송을 계속해서 그 해 9월 20일에 원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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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특징

각종 무기나 군수품 외에도 식량이나 연료도 지원했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0년에 주창했던 민주주의병기창(Arsenal of Democracy)정책의 일환이다.

사실 유럽 연합군의 핵이었던 소련영국 모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혁명과 경제정책의 실패로 자금이 부족했고, 거기다 전쟁 초기 독일군에게 탈탈 털렸기 때문에 제대로 싸우기 힘들었다. 일본군에 대항하던 중국국민당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아무튼 이것을 지난 대전에서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던 미국의 물량으로 커버하는 것.

일단 해당 법이 제정된 초기에는 미국이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독일같은 추축국도 원칙적으로는 무기대여법에 의해 지원을 받을 수 있긴 했지만, 대서양의 제해권을 영국이 가진 상황에서는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상선이 미국에 접근할 수 없으므로 그야말로 공염불이다.하지만 영국이 U보트에서 벗어난것도 결국 미국의 물량공세 덕분이였으니... 물론 일본 제국의 경우에는 갈수록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 중이었으므로 별도의 법률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결국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무기대여법은 원래 목적대로 연합군을 위해서만 작동하게 되었다. 만일 독일이나 이탈리아도 랜드리스를 받았다면 아마 유럽 전체가 셔먼으로 뒤덮였을지도 모른다

2.1. 소련


목록. 끝이 없는 글씨에 정신이 멍해진다.

사실 이 계획으로 가장 득을 본 것은 연합군의 탱커였던 소련이었다. 아 미국님 힐좀 이 덕에 소련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원을 받아서 결국 독일에게 반격할 수 있었다.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소련이 독일의 공세를 막아내는건 가능하겠지만 반격을 가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다만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1942년 이전에는 무기대여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잘못된 주장이다. 어쨌든 소련이 생산 라인을 모조리 무기에 몰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무기대여법 덕이었다. 여기에 직접 병기 및 관련 군수품도 지원받았다.

소련 공군은 경합금 관련 기술이 부족해 방부 처리가 안된 나무전투기를 만드는 안습한 상황에서 벗어나서 미국이 지원한 경합금으로 생산한 항공기에 미제 엔진을 달고[1], 미국이 지원해준 항공유로 띄워 미국이 준 무전기로 통신하면서, 미국에서 보내준 고폭약으로 만든 항공폭탄으로 독일군을 개발살냈다.뭐야 이거 그냥 미국전투기잖아 게다가 직접 영국제와 미국제 비행기 18,303대를 지원받았는데 이는 소련 공군이 보유한 모든 항공기의 15%를 차지했다.

미국이 준 약 15,000,000 켤레 군화는 소련 육군 병사들이 신고 남았고, 함께 온 혹한기 대비용 털장화는 소련 병사들의 꿈이라고 불릴 정도로 질이 좋았다. 소련군 병사들은 미국이 준 스팸 통조림을 먹고 다녔다. 심지어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중반에 소련군이 막장 상황에 빠져서 식량 배급이 극도로 부실할 때 병사들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나눠 준 게 허쉬 초콜릿이었다고 할 정도. 게다가 기호품도 공급했기 때문에 미국이 준 콜라를 마실 수 있어서 게오르기 주코프 같이 콜라를 입에 달고 다닌 사람도 많았다. 위의 랜드리스 목록 링크에 따르면 과일주스, 바나나, 사과 등 오만잡다한 것들[2]이 다 올라와있다.

군과 민간인의 생활을 동시에 지탱해준 수송 분야는 완전히 미국제가 꽉 잡았다. 당장 소련군은 미국이 준 409,526대의 트럭지프를 타고 다녔는데, 이는 나치 독일이 2차대전 중 생산한 모든 트럭 수를 능가한다. 게다가 미국이 준 철도레일과 1,860량의 기관차와 11,181량의 화차와 객차로 병력과 물자를 실어날랐으며, 이 때문에 전쟁기간 내내 소련제 기관차, 화차, 철도 관련 시설에 대한 생산은 거의 없었으며, 기존에 있던 차량과 시설을 보수할 목적으로 가뭄에 콩나듯 조금 생산한 것이 전부였다. 덤으로 석유도 2,599,000톤을 지급해서 모처럼 받은 수송차량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막았다.

식량 분야도 엄청난 지원을 받았다. 일단 소련은 자급자족이 가능했긴 했지만 개전 초의 대패배로 주요 곡창지역이 독일군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제대로 된 농기계도 없이 인력부족인 상황에서 남은 농경지만으로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미국에서 트랙터나 콤바인을 지원해주고 비료까지 투입한 덕분에 간신히 기초적인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통조림 같은 저장물자나 전투식량은 미국제의 비중이 엄청나게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식량 지원은 4,281,910톤으로 소련이 필요한 식량의 25%를 담당했다. 식량지원은 중대한 문제였는데 만일 식량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다면 러시아 혁명의 전례처럼 전시경제로 굶주림에 견디다 못한 노동자, 농민이 반전을 주장하며 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무기대여법은 식량과 기초적인 원자재, 통신과 철도, 지프 등으로 대표되는 수송장비를 소련에 대량공급해 줌으로 독소전 초반에 공업력의 3/4, 식량 생산량의 반 이상을 잃어버린 소련이 독일의 공격에 버티고 나아가 공세를 펼칠 수 있게 해주었다. 주요 공업지를 거의 다 잃어버리고 남은 것을 쥐어짜내 독일보다 더 많은 전차와 항공기를 찍어내던 소련군의 전설적인 근성은 사실 미국의 쇼미더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기대여법으로 지원된 물자 중 "아 뭐 수량도 많지않고 성능도 그닥이었음."라고 가장 저평가를 받는 병기도 의외로 호평인 경우가 많았다. 츤데레 일단 전차를 비롯한 기갑차량은 12,161대로 소련의 보유량 중 15%를 차지했으며, 야포 및 박격포의 경우에도 96,000문으로 소련의 보유량 중 2%를 차지할 정도로 수량이 만만치 않았다. 이외에도 기관총 131,600정, 포탄 325,784톤, 야전용 전화기 422,000개를 지급해서 전투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했다.

미국이 준 전차의 경우 공식 입장은 미국과 영국이 보내준 전차들은 T-34 등의 소련제 전차보다 성능이 떨어지며 별 도움이 안되었다고 깠지만, 실제론 소련 전차병들은 대부분의 미/영제 전차를 좋아했다고 한다. 우선 소련제보다 기계적 신뢰성이 높아 고장이 잘 안 났고, 일부 구성품이나 컨셉은 소련이 그대로 베껴서 자기네들 전차에 적용하기도 했다. M4 셔먼 전차도 소련군은 '장갑 괜찮고 속도도 나름 빨라 추격전에 좋고 고장도 잘 안 나고 화력도 좋다'고 극찬을 했다. 그나마 셔먼 전차의 흠이라고 잡은게 너무 높아 넓은 평지에서 적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과 궤도 폭이 협소해 험지돌파 능력이 모자라단 것이었지만, 당시 소련 기갑부대 중 정예부대들에게 셔먼을 몰아줄 정도로 애용했다고 한다. 서부전선의 미군은 셔먼 전차로 독일군의 티거판터에도 맞서야 했다가 학살당했으니 장갑과 화력이 약하다고 징징거렸지만, 동부전선의 소련군은 티거와 판터 등에 맞설 전차로 자국산의 IS-2 같은 전차들이 있었기에 셔먼의 장갑과 화력에 대해 만족해했다. 참고로 걸작이라는 T-34 전차도 성능은 뛰어나지만 실제 운용시 승무원에 대한 배려라든가 기계적 신뢰성 같은게 매우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러시아 자연환경의 험악함과 1920년 국제왕따가 된 2류 공업국가가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적 군사적적 압박에 저항하기 위해선 '전인민을 빠르게 무장시켜야 한다.'라는 요구를 따르다 보니 그저그런 성능에, 엄청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만든 단순한 구조, 단순한 구조에서 오는 높은 내구성, 사용자의 편의성 따위는 엿 바꿔먹은 반(反)인체공학적 설계가 된 탓이 크다.

공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라서 P-39 에어라코브라가 정예부대 소속이었으며, 전과도 엄청난 경우가 많았다. 역사상 미제 전투기로 올린 최다격추수 보유자들도 소련 파일럿들이다. 독일은 떼삼사로 최다격파수를 가지고 있더니

말 그대로 소련은 무기대여법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이다. 정작 미국과 소련이 2차대전 전에는 간접적으로 전쟁했었고 전쟁이 끝나고 몇년 뒤부터 몇 십년간 서로 노려 본 사이임을 생각하면 참 웃긴 셈. 얼마나 나치가 싫었으면….

이 공급량을 보면 히틀러를 지하벙커 속에서 자살하게 만들고 나치 독일을 무너트린건 소련 병사와 인민들의 피, 그리고 미국 노동자들의 땀과 정부의 달러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2.2. 영국


소련처럼 전적으로 무기대여법에 의지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영국도 엄청난 지원을 무기대여법에 의해 받았다.

일단, 영국 육군의 경우 사실상 전차의 주력이 M4 셔먼으로 통일되다시피 했다. 이는 보병전차순항전차로 이원화된 전차개발구조의 문제 및 그 결과물도 상황에 쫓겨서 급조하는 등 영 신통치 않아서 자원을 낭비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의 기술력도 출중하였으므로 파이어플라이 같이 셔먼 전차를 개조한 개량형도 많이 생산했지만 옛날 모자랄것 없었던 대영제국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망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찌하랴.

영국 해군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서 개전 당시 대서양과 지중해, 태평양 3개 전선에서 활동하느라 전력이 분산되어 함선 수가 부족한데 대서양 전투유보트의 위협까지 받자 미국에게 구식 구축함 50척을 지원해달라는 것을 시작으로 수십척의 호위항공모함 및 호위구축함을 지원받았다. 게다가 주력함인 전함항공모함도 영국 본국의 수리 및 건조시설이 부족해 대규모 개장이나 수리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면 미국으로 가서 수리 및 개조를 받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한마디로 미국 없었으면 개전 당시의 해군 규모를 유지하기도 곤란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러한 함선 지원의 대가로서 영국은 카리브 해 지역의 주요 해군 기지들을 미국에 양도하게 된다. 때문에 영국은 카리브 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미국에 넘겨주게 된다.

또한 본토만으로는 식량자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의 식량지원이 소련보다 더 절실했다. 덕분에 영국 요리는 말 그대로 스팸처럼 쏟아지는(...) 스팸이 지배하는 상황[3]에 놓였으며, 영국에서 생산하는 각종 통조림이나 전투식량도 상당수가 미제 완제품, 그렇지 않더라도 미국에서 들여온 원재료를 영국에서 가공처리한 것일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영국이 소련에게 지원한 물자의 상당수도 사실상 미제였다. 일단 미국제가 직접 넘어간 것도 많고, 영국이 미국에게서 지원받은 물자로 생산한 병기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중 호평받은 것은 발렌타인 전차였다.

2.3. 중국국민당

중국국민당의 경우에는 지원규모에 비해서 효과가 낮은 편이다. 물자의 질이 낮았기 때문은 아니고 국민당군이 처한 열악한 상황때문이었다.

일단 중일전쟁 개전초의 국민당군 정예병력은 독일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는 이 시기 아직 일본과 동맹을 맺지 않은 나치 독일이 대량의 무기를 수출하고 한스 폰 젝트,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같은 고문관들까지 파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이 일본과 동맹을 맺으면서 고문관들이 철수하고,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다량의 병력과 장비를 상실한 국민당군은 그 이후로 미국의 지원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공산당군과 군벌, 국민당군으로 나누어진 복잡한 구조 때문에 실제 도움이 되긴 힘들었다. 처음부터 일본과의 공업적, 군사적 격차가 현격해서 자력으론 어림도 없는 상태였고 그나마 정예라 할 수 있는 국민당군은 미국이 1941년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기 이전 4년간 사실상 홀로 싸우는 과정에서 소모되고, 군벌 군대는 군대의 질이 제각각인건 차치하더라도 반장전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장개석과 척을 진 사람이 많았으며, 신용할 수도 없어서 지원을 해주기도 힘들었다. 여기에 중국군과 협력해야 할 스틸웰이 중국의 복잡한 정치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장개석과 척을 지는 통에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1938년까지 일본 해군이 중국 연안의 주요 상공업 지역이 함락당하고 국민당 최정예 군단이라 할 수 있는 5군과 6군, 장제스가 소련에게서 받은 장비로 어렵사리 마련했던 기갑부대 200사단은 버마방어전을 지원하다 소멸했다.[4] 그리고 인도차이나와 미얀마까지 일본이 장악하면서 중국으로 가는 통로는 하늘 밖에 남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물자보급이 시작된 1942년 5월부터 1945년 2월까지 공중수송으로 물자가 왔지만, 그나마도 대부분이 중국 주둔 미공군용이었고 중국군에게 돌아간 물자 중에도 장개석이 그토록 원했던 병기는 적었다. 당시 항공수송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으며, 항공 루트가 통과하는 윈난 성 지역은 기후와 지형 조건이 매우 험악하기로 악명높아서 추락 등 각종 사고가 빈번했다. 오죽하면 추락한 항공기들의 잔해들로 길잡이가 가능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라는 점까지 염두하면 애당초 중국군에게 주어질 물자의 총량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1944년 봄 일본의 대륙타통 작전으로 중국내 미공군의 비행장들이 완전히 박살난 반면 태평양에서는 맥아더가 사이판을 점령함으로서 일본 본토를 공습할 수 있는 전진 기지를 확보되었기에 미국에게 중국이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성도 없어졌다. 장개석과의 사이가 극히 나빴고 인종차별적 시각까지 가졌던 스틸웰은 모든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며 물자를 나눠쓰는 것도 거부했다. 그를 비롯한 대다수 미국 장교들은 중국 내의 복잡하게 꼬인 알력과 정세, 중국인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었고 장제스를 존중하려 들지도 않았다. 분명히 국민당군이 고전하긴 했지만 전쟁 초기, 특히 동남아 전역에서의 패배에는 서방 연합군측의 실책이 분명히 있음에도 책임을 몽땅 국민당군으로 돌려서 반목을 키웠다.

1944년 버마 전역에서 국민당군이 엄청난 피해를 입어가며 버마 북부와 운남성 남서부에 주둔한 일본군을 축출해 인도에서 시작된 레도 공로가 윈난 성 쿤밍과 직접 연결되면서부터 상황은 어느 정도 개선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물자량이 3할 이상 증가하며 국민당군의 장비 부족도 어느 정도 해소되고 일본군이 되려 밀리기 시작하지만, 그 때는 이미 1945년 4월,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최전방의 국민당 사단들은 전쟁 내내 총알 하나 지원받지 못 한 채 맨몸으로 대륙타통 작전을 비롯한 일본군의 공세를 받아내야 했다. 대륙타통 작전 즈음에 이르러 그나마 남아있던 정예부대 Y군도 일본군의 공세여력을 무시한 스틸웰의 강요로 버마 북부에 투입되어 소모되었다. 기나긴 전쟁으로 병사들뿐 아니라 장교들의 피해도 극심해졌는데 소장 이상 장관급 지휘관만 100여명 넘게 전사했다.[5] 서구군의 노하우를 흡수했던 정예사단과 장교단의 소멸은 표면적인 전력에서 크게 앞섰던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참패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공산군도 문제였다. 2차 국공합작은 말이 합작이지 둘 다 애시당초 신뢰같은건 없었다. 신4군 사건 이전이나 이후나 공산당군은 사실상 국민당이 장악한 해방구를 흡수하거나 국민당군과 교전을 벌였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군에서 탈영해 독립운동에 참가한 장준하의 수기에도 나타나는데, 장준하가 탈영 후 잠시 의지했던 국민당 유격대를 습격해 와해시킨건 일본군이 아니라 팔로군이었다. 장제스 역시 애시당초 국공합작 따위 할 생각도 없었고 일본과 싸우기 전 단계로 내부의 적인 공산군을 괴멸시킨다는 목표를 내걸고 움직였다. 그러나 공산당과의 교전에 시원찮게 임하던 장쉐량이 일으킨 시안사변으로 대차게 꼬여버렸고 장제스는 그 보복으로 장쉐량을 가택연금시킨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전쟁 전부터 (물론 입으로)항일구호를 내세우며 내부사정이고 뭐고 빠른 개전을 원하던 지식인과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한 공산당은 신4군 사건을 기점으로 여론전에서 상당히 앞서갈 수 있었다.

결국 무기대여법에 따라 중국국민당으로 들어간 물자는 상당량이 국공내전에서 사용되었고, 중국국민당이 패퇴한 뒤 대부분의 물자는 그대로 중국 인민해방군으로 넘어갔다. 이들 물자의 일부는 심지어 6.25 전쟁에 투입되어 미군을 향해 불을 뿜기도 했다.

3. 전후 상황

사실 이 계획은 무상 지원이 아니다. 전부 빌려준(리스) 것. 루스벨트가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회를 설득할 때 '무기를 빌려준 다음 다시 그 무기를 돌려받는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했다. 이 때 나온 비유가 이웃집에 불이 났으면 불이 번지기 전에 호스를 빌려줘야 한다는 것. 한편 반대편은 이 법안을 에 비유해 '아무도 돌려받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비난했다.

1945년 9월 2일, 전후 피폐한 영국은 갑자기 무기대여법이 끊기자 미국에 추가원조를 요청했다. 그래서 쓰고 남은 물건을 미국이 거의 10분의 1 가격으로 떨이로 팔고 나서 50년 단위로 상환을 받기로 계약을 체결하는데, 그 '10분의 1'로 떨이 판매를 한게 파운드화로 대략 11억 가까이 됐다.

소련은 러시아 제국의 비밀창고에 있던 금괴로 갚았다. 100% 완전히 갚은 건 아니고, '금괴로 땡처리 했으니 나머지는 일 없음'하고 입 씻은 것에 가깝다. 사실상 제대로 다 안 갚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원조받은 물자의 총금액이 113억 미국 달러인데 반해 그 때 지불한 가치가 이자 값 정도 밖에 안된다(…) 사실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지옥으로 보낸걸로 갚았다 카더라. 영국은 50년이나 넘은 2006년에서야 비로소 다 갚을 수 있었다.

중국국민당의 경우는 국공내전 이후 타이완으로 쫒겨 나가서 갚을 여력은 커녕 추가적인 도움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었기에 그냥 미국이 빚 받기를 사실상 포기했다. 그 외에도 무기 대여를 받은 국가들은 전쟁 이후 물자 지원에 대한 보답 겸 대금 지불 대신으로 미국에게 병기나 식량 등의 물자를 지급하거나, 기지 부지 등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사실상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 때문에 연합국이 미국의 빚쟁이가 되어버렸다. 또한 독일이 더 오래 저항하거나 미국에게 선전포고 안 했으면 그만큼 빚이 더 늘어났을 것을 생각해보면...

4. 의의

무기대여법으로 당시 강국이던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은 미국의 무기를 자주 접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미국산 무기에 익숙해진 유럽의 조병창들과 군인들의 경험은 훗날 북대서양 조약기구 창설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마디로 미국산 무기를 오래 쓰다보니 길들여져서, 북대서양 조약기구를 창설하면서 미국식 규격이 새로 도입되었지만 별 문제없이 미국식 규격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

전후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에 따라 피폐해진 유럽에 부흥자금을 지원하는 마셜 플랜까지 실시, 무기대여법과 마셜 플랜은 전후 세계에서 미국의 입지를 새롭게 구축하는데 많은 보탬이 되었다.

사실 이것은 미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당시 대공황의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했던 미국 경제가 이런 잉여 생산품을 모조리 외국에 처분하게 되어 대공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1950년대 미국의 활황을 만들게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연합국의 윈윈게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냉정히 말하자면 미국이 조금 더 많이 이득이였고.개이득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의의는 바로 만약 무기대여법이 없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떻게 끝났을까? 나치가 워낙 꽉 막힌 집단인데다 생산력 자체가 미국 빼고도 넘사벽이라 결국 소련의 물량에 밀린 독일이 패하긴 했겠지만 적어도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이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루스벨트의 말마따나 이웃집에 불이 났을때 소방 호스를 제 때 빌려주어서 우리집까지 불이 옮겨붙지 않게 된 셈이다.

최후의 랜드리스 수혜자는 아케미 호무라라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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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총 14,902기의 엔진을 지원
  • [2] 이왕 정부 돈으로 퍼주는 거(…)니까 온갖 업체들이 골고루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 [3] 애초에 오늘날 이런 불필요한 메일을 일컫는 '스팸'이 이런 스팸만 먹던 영국의 사정에서 나온 말이다...
  • [4] 스틸웰이 직접 지휘했고 장제스는 5군, 6군, 66군 총 3개군을 지원했다.
  • [5] 중국군은 그때나 지금이나 준장이 없이 소장부터 장성이다. 같은 기간 공산군 고위장성 전사자는 2명이다. 1941년 초 기준으로 국민당 유격대는 80만 이상, 팔로군은 22만, 신4군은 4만 가량으로 공산당 유격대 다 합쳐봐야 국민당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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