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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도

last modified: 2015-03-25 06:44:04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줄거리
3. 비평
4. 기타사항


1. 개요

김동리의 단편소설.

1935년 중앙일보[1]화랑의 후예로 당선되고 이듬해인 193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김동리는 1934년 시 부문에 백로가 당선되어 등단 직후 연이어 발표한 화랑의 후예(1935), (1936)와 무녀도(1936)가 평단과 대중의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단숨에 유명 소설가가 된다.

2. 줄거리

도입부에서는 나의 시점에서 진행되다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설의 본격적으로 전개가 되는 전형적인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먼저 낭이라는 인물이 그린 무녀도라는 그림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시작된 이 액자식 구성은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으로, 본격적인 스토리로 들어간다.
무녀도라는 그림의 영 좋지 않은 분위기가 그렇듯 이야기의 중심점이 되는 모화의 집에 대한 설명도 그렇다. 그 집은 경주읍성에서 외부로 5리쯤 가서 있는 조그만 마을―여민촌 혹은 잡성촌이라고 불리는 마을에 있는데, 모화의 집도 인간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 집에는 모화와 낭이가 살고 있는데, 모화가 절간에 가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욱이를 제외하면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모화에게 굿을 하러 오는 사람들 아니면 봄, 가을에만 찾아오는 아버지일 뿐이다. 그마저도 모화는 자신이 굿할 일이 없으면 주막에 가서 술을 즐겨 마시곤 한다. 그 탓에 집에서의 살림을 꾸준히 하는 것은 기대하기도 힘들고, 그 곳에는 낭이만 집에 있었다.
모화의 사생아인 욱이가 절간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그 도깨비굴처럼 묘사된 모화의 집이 사람 냄새나는 곳으로 바뀌어간다. 그러나 모화가 생각하고 있던 욱이는 절간에 있다가 간만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절간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예수도(기독교)신도가 되었다. 이 때문에 욱이와 모화 간의 대립을 유발했다.
모화에게 있어 예수도는 동학당과 같은 잡귀일 뿐이며, 그 종교를 믿는 욱이에 대해서 미운 자식 취급을 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욱이는 그런 모화를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모화가 생각했던 것처럼 사귀들린 사람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욱이는 평양 현 목사와 이 장로라는 인물에게 편지를 띄웠고 경주 지방의 예수교인을 찾아 나섰다. 모화는 그러고 있는 욱이가 그저 집을 나가고 없으니 날이 갈수록 초조해져서 치성을 드리는데, 그 과정에서 낭이까지 영향을 받는다.
두 번 집을 나갔던 욱이는 어머니인 모화의 포옹을 거르고 일어나 방에 누웠는데, 그날 밤 모화가 욱이가 품에 안고 있었던 <신약성서>를 뺏어다가 접시불 옆에 태워버렸다. 그것을 목격한 욱이는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냉수그릇을 집어 들려고 했지만, 모화의 손에는 이미 식칼이 들려있었다. 그러다가 불이 붙어서 방에까지 붙으려는 불길을 욱이가 꺼줬더니 칼빵을 먹인다. 며칠 뒤 욱이는 사망한다.. 욱이가 죽고 나서 모화가 살고 있는 집은 처음 묘사가 되어있던 그대로 복귀되었고, 그와 동시에 모화는 아예 미치광이처럼 되어버렸다. 그 결과 과거에 모화의 굿이나 푸닥거리를 빌던 사람들조차도 교회 세력에 좀 더 가까이하기 시작한다. 이로서 모화는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의 마지막 굿을 작정하고 준비한다.
이것은 예기소에 빠져 죽은 김씨 부인의 넋을 달래는 것이다. 이걸 작정하고 굿을 준비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서양잡귀를 멀리 하고 굿을 가까이 하게 하려는 듯. 그래도 사람들은 오히려 모화의 초혼 굿을 외줄타기 또는 판소리 공연처럼 여겨져 전물상도 몰려오고 큰 구경을 하는 듯이 묘사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온갖 소문이 구경꾼들에게서 들려오는데, 그 내용은 바로 낭이에 대한 소문이다. 이 굿으로 어쩌면 낭이가 정말로 말을 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은 이 장면 이후 열흘 뒤에 드러난다. 하지만 낭이가 임신해 있다는 내용도 있지만 그 결과가 출산인지 아니면 유산인지에 대한 묘사는 일절 되어있지 않다.
그 이후, 욱이의 뒤를 따라 예기소에 빠져죽는다. 그 뒤 낭이는 체수 작은 사내(사실은 아버지이다)의 나귀에 태워져 어디론가로 가게 되고, 모화가 살던 집은 누구 하나의 관심도 갖지 않아 버려졌다.

3. 비평

한국의 전통문화와 외래문물의 대립, 그 중에서 기독교와의 대립이 매우 첨예하게 다뤄진 소설이다. 특히 빠른속도로 밀려 들어온 외래문물에 의해 어떻게 토속신앙이 변질되고 망가졌는지를 아주 잘 나타낸 면이 있다.

소설 내용을 보면 몇 해 두고 소식이 없던 아들 욱이가 돌아왔는데 상봉의 기쁨 이전에 모화가 새파랗게 질려 겁먹은 모습을 했다는 묘사가 있고, 아들이 예수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게 된 모화는 그때부터 아들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고 반대로 아들 욱이는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기도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모자간의 대립은 더욱 격렬해져 아들의 성경을 태우는 형태로 나타나고 이를 막으려던 욱이를 모화는 신들린 상태로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다. 이후 아들 욱이는 끝내 소생하지 못한다.

그리고 모화가 살던 마을에는 욱이의 주선으로 외국인 선교사가 들어와 교회가 들어서고 기독교가 퍼지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굉장히 비판적인 작가의 시선을 볼 수 있는데 아래와 같다.

  • 이러할 즈음 이 고을에도 조그만 교회당이 서고 전도사가 들어왔다.그리하여 그것은 바람에 불처럼 온 고을에 뻗쳤다.

  • 읍내의 교회에서는 마을마다 전도대를 내보냈다. 그리하여 이 모화의 마을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 두 눈이 파랗고 콧대가 칼날 같은 미국 선교사를 보는 것은 원숭이 구경보다도 더 재미나다고들 하였다. "돈은 한 푼도 안 받는다. 가자."마을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 이 마을 방 영감네 이종 사촌 손주사위요,선교사와 함께 온 양조사 부인은 집집마다 심방하여 가로되,"무당과 판수를 믿는 것은 거룩거룩하시고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죄가 됩니다. 무당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무당은 썩어빠진 고목 나무나 듣도 보도 못하는 돌미륵한테도 빌고 절을 하지 않습니까. (중략) 우리 인생을 만든 것은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 아버지올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4. 기타사항


해당 소설의 무대가 경주인 만큼 여민촌 혹은 잡성촌의 무대는 김동리의 고향마을인 성건동을 소재로 하였다. 또한 작중 모화가 빠져죽은 소 또한 근방에 존재하는데, 해당 작품에 나오는 예기소는 또한 애기소, 금장소(행정구역상 현곡면 금장리에 위치하므로)라 부르기도 한다. 2012년에 소 위 언덕에 금장대를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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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4년 현재 중앙일보와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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