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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비트 왕조

last modified: 2015-02-28 20:32:59 by Contributors

(ɔ) Flad from
المرابطون, 알 무라비뚠 (아랍어)
Imṛabḍen (베르베르어)
Los almorávides (스페인어) [1]
Almoravid Dynasty (영어)

Contents

1. 개요
2. 기원과 확장
3. 전성기와 몰락
4. 특징과 의의

1. 개요

1040년 발흥하여 1147년 멸망한 북아프리카베르베르인 왕조. 최초 발상지는 현대의 세네갈 지역이지만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면서 모로코가 실질적 중심지가 되었다. 남북으로 3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판도를 자랑하였고, 타이파 시대를 종식하고 이베리아 반도 내 이슬람 세력의 패권을 재확립했지만 100여 년 만에 또다른 베르베르인 왕조인 무와히드 왕조에게 멸망당했다.

아랍어로는 알-무라비뚠(Al-Murābiṭūn)이라고 하기 때문에 무라비트 왕조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지만 대개 영어스페인어 표기를 따라서 알모라비드 왕조 혹은 알모라비데 왕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2. 기원과 확장

무라비트 왕조의 핵심 세력은 현대 세네갈 지역에 살던 베르베르인 부족인 람투나(Lamtuna)족이었다. 람투나 족은 대략 9세기 경에 이슬람으로 개종했는데, 모로코의 첫 이슬람 왕조였던 드리스 왕조가 해체된 이후 북서아프리카 지역에는 눈에 띄는 강자가 없었으므로 다른 베르베르 부족들과 비슷한 고만고만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040년 경 그 지도자 중 하나였던 야히야 이븐 이브라힘(Yahya ibn Ibrahim)이 메카 순례를 다녀오던 도중 튀니지의 아랍 도시 까이라완에 들르게 되었다. 카이라완의 학교에서 야히야는 이슬람 4대 법학파 중 하나인 말리키 파 학자들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았고, 열렬한 설교자 압드 알라 이븐 야신(Abdallah ibn Yasin)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엄격한 종교적 교조주의에 입각한 교단을 만들었고, 수 년에 걸친 포교와 세력 확장 끝에 강력한 규율을 가진 신정국가 조직을 이뤄냈다.

© Bamse (cc-by-sa-3.0) from

야히야 이븐 이브라힘은 강력한 교단 조직 외에도 새로운 군대 체제를 만들었다. 그때까지 베르베르 부족들의 전투방식은 대개 창과 방패를 들고 밀집하여 힘싸움을 벌이는 고대 그리스식 팔랑크스와 유사하였던 반면, 야히야의 새로운 군대는 마케도니아사리사를 연상시키는 긴 장창과 함께 투창을 도입하였으며 측면 공격과 섬멸전을 위해 낙타병과 기병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부족 간 힘싸움의 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정복전쟁을 위한 군대를 갖추고, 엄격하고 광신적인 교단 조직까지 결합되어 무라비트 세력은 엄청난 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야히야는 1056년 전사했지만 그 때 이미 북으로는 시질마사, 남으로는 아우다고스트에 이르는 영역을 정복하였다.(그림 참조)

정치적 지도자인 야히야는 죽었지만 교단 지도자인 압달라 이븐 야신의 권위도 높았으므로 그는 형제인 아부 바크르 이븐 우마르(Abu Bakr ibn Umar)를 새 지도자로 임명하였다. 아부 바크르는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서 모로코를 정복하고, 1061년 사촌인 유수프 이븐 타쉬핀(Yusuf ibn Tashfin)을 새로 정복한 모로코의 총독으로 임명한 뒤 원래 영역인 사하라 사막 지대를 안정시키기 위해 돌아갔다. 유수프는 1062년 중세 모로코의 중심도시이자 모로코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기도 하는 새 도시 마라케시(Marrakech)를 건설하고, 1080년에는 알제리 지역을 정복하고 새 도시 틀렘센(Tlemcen)을 세웠다. 아부 바크르는 유수프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을 보자 더 이상 그를 어찌할 수 없다고 보고, 사막 지대에 그냥 눌러앉아 살다가 1087년에 죽었다. 그 후 유수프가 모로코 전역에서 남부 사막 지대까지 통치력을 확고히 함으로써 왕조의 전성기를 맞았다.

정확한 연도나 과정은 알 수 없지만 남쪽의 가나 제국이 무라비트 왕조와의 전쟁으로 몰락한 것도 이 즈음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초 가나 제국은 완전히 영향력을 상실하고 산산이 분열되었지만, 무라비트 왕조에 병합되지는 않았으며 이슬람의 전파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열되었던 인근 아프리카 세력은 이후 등장한 말리 왕조에 의해 다시 통합된다.

3. 전성기와 몰락

무라비트 왕조가 북아프리카에서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게 되자, 타이파[2] 세력의 대표인 세비야의 영주 알 무타미드가 찾아왔다. 원래 타이파들은 고만고만한 세력을 가지고 자신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없는 이들이었지만, 이는 기독교 세력들의 레콩키스타 추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고 말았다. 결국 타이파 중 가장 세력이 크던 톨레도가 카스티야에게 정복당해 그 수도가 되는 지경에 이르자 부랴부랴 이웃한 이슬람 세력인 무라비트 왕조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에 응하여 1086년 이베리아로 건너가 레온-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6세를 격파한 유수프는 타이파 세력들의 실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충격"의 정체는 4년 후 밝혀지는데, 유수프는 타이파 지도자들이 종교적으로 해이해졌으며 사치와 방종에 빠졌다고 주장하며 그 휘하의 교조적인 종교학자들의 지지를 명분 삼아 타이파 세력을 모조리 제거하고 안달루스 지역을 차지해 버렸다. 이 와중에 엘 시드가 발렌시아를 차지하고, 사라고사의 타이파 세력도 저항하였으나 나중에 점령되었다. 유수프는 1106년 죽었는데, 이 때가 무라비트 왕조의 전성기였다. 순니파로써 압바스 왕조 칼리파의 종주권을 인정하였으나, 칼리파의 다른 칭호였던 아미르 알 무미닌, 즉 "신자들의 사령관"을 칭하며 권위를 세우기도 했다.

유수프 이븐 타쉬핀 사후 무라비트 왕조에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은 이베리아의 기독교 세력이었다. 1119년 프랑스의 도움을 받은 아라곤이 사라고사를 점령하였고, 유수프의 아들인 알리 이븐 유수프는 1138년 레온-카스티야의 알폰소 7세와 포르투갈의 아폰소 1세에게 연달아 패하며 이베리아 내의 입지가 크게 위축되었다. 또한 모로코의 아틀라스 산맥 근처에서 발흥한 무와히드 왕조가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북아프리카의 입지도 크게 위험해지기 시작했으며, 결국 알리 이븐 유수프가 사망한 1143년 이후 무라비트 왕조의 영역은 빠르게 무와히드 왕조에게 정복당했다. 알리 이븐 유수프의 후계자들이 몇 년간 저항하긴 했지만 대세를 막지는 못했다.

4. 특징과 의의

무라비트 왕조가 이전의 마그리브(북아프리카)와 안달루스(이슬람 치하 이베리아)의 예전 왕조들과 대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베르베르인이 주도 세력이자 통치 세력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베르베르인들은 이슬람의 확산 과정에서 아랍인들에게 패하고 그 휘하로 들어갔지만, 무라비트 왕조가 발흥하던 시대까지도 아랍인과 동화되지 않았으며 서로 감정도 험악한 편이었다. 특히 안달루스의 후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인들은 베르베르인들을 야만인 취급하였으며, 이후 타이파 시대에도 아랍계 타이파와 베르베르계 타이파는 격렬히 대립하였다. 하지만 베르베르인 왕조인 무라비트 왕조가 안달루스와 마그리브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이루면서 양자가 점차 베르베르인 주도로 동화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무라비트 왕조는 비교적 단명했지만, 다른 베르베르 세력인 무와히드 왕조, 그 다음에는 린 왕조가 뒤를 이으면서 이 추세가 계속 이어졌다.

한편 상술하였다시피 무라비트 왕조의 주도세력은 상당히 교조적이고 광신적인 종교 집단이었는데, 이는 기독교 세력과 계속 접촉하면서 이교도 문화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던 안달루스 지역의 문화와 대비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라비트 왕조는 안달루스를 지배하면서 특별히 그런 문화를 억압하거나 제거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런 종교적 교조주의는 무와히드 왕조 시대에도 이어지지만, 안달루스 지역에 대한 마그리브의 영향력은 빠르게 약화되었기 때문에 큰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담으로 위에 서술된 내용에서 이미 알 수 있지만,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 정복자에서 엘 시드 캠페인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흑위대는 바로 이 무라비트 왕조를 지칭하는 것이며, 여기서 등장하는 흑위대의 수장 유서프는 유수프 이븐 타쉬핀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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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재미있게도 스페인어에서는 아랍어 정관사 al까지도 고유명사화 시키고 그 앞에 다시 정관사를 붙인다. 스페인어내의 아랍어 단어들은 이러한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를테면 el alcázar(요새화된 성), el arroz (쌀) 같은 단어들이 있다. 각자 원형은 al-qaçr, ar-ruz.
  • [2] Taifa. 후(後) 우마이야 왕조의 해체 이후 알 안달루스, 즉 무슬림 치하 이베리아 지역에서 산산이 쪼개져 할거하던 세력을 말한다. 그 세력 범위는 대개 도시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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