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무라카미 하루키

last modified: 2015-04-13 17:27:03 by Contributors

村上 春樹(むらかみ はるき)

일본소설가. 국내에서는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ノルウェイの森) 작가로서 유명하다.

Contents

1. 개요
2. 작가 성향
2.1. 작품 세계: 소설
3. 작품 일람
3.1. 장편소설
3.2. 단편소설
3.3. 수필집
3.3.1. 수필 일람
3.4. 르포르타주
4. 관련 인물
5. 일본 문단과 불화
6. 예루살렘 연설
7. 트리비아


1. 개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동성인 무라카미 류와 함께 일본의 한 세대를 풍미하는 작가로서 간주되며, 요시모토 바나나와 함께 일본 밖에서도 유명한 작가이다.[1] 2006년 이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2010년에도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수상하지는 못한 상태. 2012년에도 후보에 올랐었다.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모옌이 선정되어 아시아 작가인 하루키는 10년 뒤 쯤에나 노릴 수 있게 됐다[2]. 2013년에도 후보에만 오르고 앨리스 먼로가 수상했다.

1949년 1월 12일 교토 출생. 대학에 진학하며 상경하여, 와세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재즈 카페 "피터 캣"을 운영하며 틈틈히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1979년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데뷔하였다. 1987년 발간된 ‘노르웨이의 숲’이 43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어 무라카미 하루키 붐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단편소설, 장편소설을 포함하여 에세이, 논픽션, 기행집 집필 활동도 활발하고 영미 문학 일역가로서도 활동한다. 군조상을 위시해 노마문예신인상, 다니자키상, 요미우리문학상, 프란츠카프카문학상, 예루살렘문학상을 받았다.

2. 작가 성향

현대 미국의 문학과 영화에 많이 영향받고 자랐으며 패션 잡지와 영화와 재즈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에 익숙하다. 이것은 작품에도 많이 나타나는데 소설에선 지배하는 분위기와 세부 묘사 대상으로, 수필에서는 소재로 사용하며 극단으로는 수필집 한 권 전체를 1980년대의 미국 문화를 이야기할 때스크랩도 있다.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고 조직상·집단상 행동이나 국가주의적인 운동에는 상당히 반발하는 개성이 있다. 자민당의 준 막부 정치가 지속되는 일본 행정부와 일본 사회의 공동체 성향을 향한 비판을 그 사람이 쓴 작품 곳곳에서 목도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좌파를 두둔하지도 않는다. 그 자신 1960년대 말 전공투의 좌절을 경험하고서 개인주의를 토대로 문학에 입문한 예. 즉, 좌우에 무관히 조직 논리에 기초한 악행이나 이치에 부합한 사유가 결여된 집단 행동을 혐오한다. 겁나 복잡하다[3] 예컨대, 미국·일본 안보조약 반대 운동이 있었던 1960년이나 반전운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학생운동이 벌어졌던 1969년 같은 해를 두고 가수 모씨가 어떤 노래를 부른 해라는 식으로 거시 담론을 의도로 회피하는 태도를 자주 드러내지만, 이런 회피하는 태도는 예전에는 역설 일종으로 간주됐으나 현 시점에서는 더는 역설로서 의미는 없고 독자는 그저 하루키의 농담을 진지하게 수용할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되나 이런 성향이 역설스럽게도 은연중 내재된 일본인의 기묘한 피해의식을 조장했다고 (<해변의 카프카>)고모리 요이치 같은 사람들에게는 대차게 까이기도 했으나 특히 언더그라운드 이후 개인이 모여 합력하는 긍정스러운 공동체나 결속을 두고서는 오히려 긍정하는 편. 한마디로 집단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것과 별개로 본인이 여전히 집단이나 조직에 잘 적응한다거나 속하기 좋아하지는 않는 성향이라서 일본 우익 세력을 못마땅하게 보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밑에 언급될 오에 겐자부로만큼 일본 우익 세력에 자주 쓴소리하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인터뷰나 기고문을 이용해 일본 우익 세력의 보수성이나 호전성을 부정하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가 2012년 일본의 우경화를 대차게 깐 기고문 탓에 넷우익들이 하루키를 벌떼처럼 까고 들었다.위인은 역시 고향에서는 인정 못받는가 보다

7년간 고쿠분지에서 재즈 카페를 경영할 정도로 재즈를 비롯한 거의 모든 음악을 좋아하며 오디오 시스템과 중고 레코드 모으기에서는 오타쿠다운 열정이 있지만,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 오디오 시스템에 투자하지 오디오 시스템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본인의 수필을 보면, 이공계 계열 센스는 꽝이라서 자주 이사하는 하루키는 이사 때 복잡한 오디오 배선 연결을 제일 골치 아파한다. 처음 외국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도시의 중고 레코드 가게 알아보기라니 이미 할 말이 없는 정도. 그 사람의 집에는 음악 감상실이 따로 있다. 특히 재즈에 관한 한 평론가 수준으로 수필집을 내기도 했지만, 음악을 좋아할 뿐 음향 기기를 조작에는 소질이 없다. 이사하면 스파게티 가락처럼 얽히고 섥힌 오디오 선을 제대로 꼽는 행위만으도 고역이라고 주장하는데 몇몇 작품을 보면, 스페인계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를 '느끼한 목소리'라고 까는 태도라든지 가끔 남들과 다른 독특한 음악관(--觀)을 보이는데 하루키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다들 싫어하지 않나? 그런 녀석은 서핑스쿨에 콱 처박아야 하는데. 하긴 그래봤자 곧 교관이라도 돼서 남들을 쥐어박을 테지라고 말한다.

그의 내성적이면서 담백한 성격은 수필집에서 확인 가능한데, 반면 단편 소설집 '밤의 거미원숭이'를 보면 꽁트에 가까운 재미난 이야기도 많다. 장편은 진지하게 쓰고 단편은 가볍게 쓴다고 본인도 밝혔다. 장편소설이 본업이자 전력을 경주해 페이스 조절하면서 쓰는 마라톤이라면 단편소설과 수필은 휴식이나 스트레칭으로 생각하고 쓴다고 말한다.

2.1. 작품 세계: 소설

  • 쥐 삼부작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포함하여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은 주인공이 같으며 친구인 '쥐'가 공통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쥐 삼부작으로 불리고 약간 시간 차를 두고 6년 뒤에 나온 '댄스 댄스 댄스'는 '쥐'는 직접으로 나오지 않으나 주인공이 동일하며 이 삼부작을 완결하는 소설이다.

  • 작품 간 유사점
    대부분 소설 주인공은 1인칭 '나'로 전개되고 '나'는 20대에서 30대 남자로서 부모와 거의 교류가 없으며 형제도 없다. 이것은 하루키의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듯하나, 최근 작품인 어둠의 저편, 해변의 카프카, 1Q84도 일부에서는 3인칭 시점을 시도했으며 주인공을 15세 소년으로 내세우기도 하는 등으로 변화했다.

    하루키의 작품에는 성격이 매우 다른 자매, 즉 우수한 언니와 평범한 동생, 쌍둥이[4] , 벽을 뚫고 지나가기, 주인공이 자주 먹는 스파게티, 끝없이 깊은 우물, 연결되지 않는 전화가 소재로서 유난히 반복하여 등장한다.

    그리고 섹스가 정말 자주 등장한다. 일부에서는 "야설작가"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섹스를 통해 해당 주인공의 성장이나 이야기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어쨌든 결국은 같이 잔 이야기

    마지막으로 죽음에 관한 내용도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편인데, 이는 단편소설에서 짧은 내용으로 인상을 깊게 남기기 위해서는 죽음만큼 효과적인 소재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비단 무라카미 하루키뿐만이 아닌, 동화 작가가 아닌 이상 거의 모든 소설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성이다.

  •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의 예외성
    하루키의 많은 소설에서는 오컬트 요소와 초현실적인 존재(예: 양 사나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의식 아래 세계'가 현실 세계와 동시에 진행되는 작품이 많다. '노르웨이의 숲'은 그 사람이 쓴 작품 중 유일하게 이런 오컬트다운 요소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현실주의 소설이지만, 역설스럽게도 이것이 그 사람이 쓴 작품 중 최다하게 판매된 작품이라는 사정은 유의해야 한다. 작가 자신도 그저 단발성 시도에 가까웠던 캐쥬얼한 작품이 최고 히트작이라는 사실에 크게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한다. 오죽하면 이전 평범한 전업 작가였던 시절에는 사랑받던 느낌이였는데 상실의 시대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자 모든 사람에게 미움받는 느낌까지 들었었다고. [5] 3년간 유럽 체류 시절[6]에 쓴 소설이며, 댄스댄스댄스도 동기에 쓰여졌다.

  • 작품관 변화: detachment에서 commitment로
    1980년대 후반까지 하루키의 모든 소설의 화자는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담담하고 자폐스러우면서도 감각스러운 성격과 취향이 있는 '나'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장기간 미국 체류에 따른 영향, 불혹을 넘긴 나이에 따른 작가의 내면 성장으로 말미암아 타자에서 자발하는 격리(detachment)에서 결속(commitment)으로 변하기 시작한 세계관이 수필집 <슬픈 외국어>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이후 1990년대 중반·후반 일본을 강타했던 옴진리교 사건 피해자 유가족과 예전 옴진리교 소속자들을 취재한 르포인 <언더그라운드>에서 크게 진보하며, 작가 스스로 어린 시절의 한때를 보냈던 고베에서 일어난 대지진을 모티브로 한 단편 연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서는 최초로 3인칭 주인공을 등장하게 하고 마지막 단편 <허니 파이>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commitment'를 대상으로 한 의지를 본격으로 현로하고서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기존 세계관과 인간관에 토대하서도 작중 화자의 스타일을 바꾸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거나(<해변의 카프카>), 타인과의 연계 / 소통을 희망을 이야기하는(<어둠의 저편>) 태도를 보인다.

3. 작품 일람

3.1. 장편소설

3.2. 단편소설

  • 중국행 슬로보트
  • 렉싱턴의 유령
  • 반딧불이
  • 빵가게 습격
  • 빵가게 재습격
  •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 꿈에서 만나요(= 소울 메이트)[8]
  •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단편집)
    • 쿠시로에 내린 UFO
    • 다리미가 있는 풍경
    • 태국에서 일어난 일
    •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 벌꿀 파이
  • 밤의 거미원숭이(단편 작품 모음집)
  • 동경기담집
  • 여자 없는 남자들(단편집)
    • 드라이브 마이 카
    • 예스터데이
    • 독립기관
    • 여자 없는 남자들

3.3. 수필집

하루키가 쓴 소설은 읽기 쉽고 주인공들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도 대체로 'cool'하다는 인상이 드는 작품이 많지만, 그것과 별개로 주제 자체는 우울하거나 무겁고 초현실스러운 때가 잦은데 하루키가 쓴 수필집은 "소설의 하루키와 판이한 하루키"라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고 재미있으며 위트가 넘치고 읽기도 쉽다. 자신은 '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같은 느낌으로 만든다고 밝혔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쓰므로 최선을 경주하지만 본업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본래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주간지나 월간지, 문예 계간지에 틈틈이 연재하는 개념으로 수필을 작성하니 소설보다 분위기가 밝고 제시하는 주제도 명확하며 공감할 내용이 많다. 소설을 읽을 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수필을 읽고 확실히 이해되기도 하지만, 외국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담은 수필은 일반 짧은 수필보다는 진지하고 작가의 작품세계 이해에 많이 유익하다. 대표작으로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1980년대에 한 생활을 녹여낸 <먼 북소리>, 프린스턴대학에서 1991년에서 1993년까 2년간 체류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슬픈 외국어(원제: 이윽고 슬픈 외국어)>가 있다.

하루키가 쓴 모든 작품은 문학사상사에서 독점 계약 출판하기에 수필도 이 회사에서 언역해 출간한 작품이 많지만, 잡지에 연재했던 1980년대 수필집은 원래 체계와 제목을 무시하고 순서를 뒤죽박죽 섞거나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를 제외하고 언역한 때가 있어서 아쉽다.

수필마다 삽화를 그린 화백 안자이 미즈마루의 재치 있는 화(畵)도 볼만하다. 특히 미즈마루가 그리는 하루키의 얼굴은 not only simple but also real.

하루키가 쓴 어느 수필을 보면, 실물 하루키를 (즉 하루키의 사진을) 본 적이 없는 어느 여성 독자가 길에서 하루키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했다고 한다. 어떻게 자신을 알아보았느냐는 하루키의 대답에 그 여자는 "미즈마루가 그린 삽화와 똑같이 생겨서."였다고 대답했다. 얼핏보면 아기 장난 같은 화풍이 일품. 물론 진짜 장난은 아니다. 달인 경지라고 해야 할까?

백암출판사의 3권짜리 수필집과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많으며, 동 출판사에서 출간됐지만 시기상 나중에 출판된 <스크랩> 일부 내용은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에 포함되어 있다. 물론 모두 들어 있지는 않다.

3.3.1. 수필 일람

작품 제목과 분류는 문학사상사나 국내 여러 출판사의 한국어판 체계를 따라 연대별로 배열.

  •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3, 도서출판 백암)
  •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문학사상사)
  •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문학사상사)
  • 먼 북소리 (문학사상사)
  • 우천염천 (문학사상사)
  • 스크랩: 그리운 80년대의 추억 (문학사상사)
  • 하루키의 여행법 (문학사상사)
  •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문학사상사)
  • 또 하나의 재즈 에세이 (까치)
  • 슬픈 외국어 (문학사상사)
  • 하루키 일상의 여백 (문학사상사)
  •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문학사상사)
  • 무라카미 라디오 (까치)
  •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동문선)
    = 비밀의 숲 (문학사상사)
  • 승리보다 소중한 것 (문학수첩)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사)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체)
  •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비체)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문학동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존 백암출판사에서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에서 3을 재구성하고 일부 누락된 에세이나 대담을 실은 것. 화백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가 대폭 반영되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기타 백암출판사판에 있던 역자[9] 주가 대부분 삭제되었고 현행 외래어 표기법 에 맞게 지명·인명 등 표기되어 있다.[10]
    •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백암판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에 수록된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와, 3에 수록된 '랑겔한스섬의 오후' 수록.
    •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백암판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에서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 수록.
    •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백암판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와 동일한 내용 수록.
    • 해 뜨는 나라의 공장
      백암판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3에 수록된 ' 해 뜨는 나라의 공장' 수록.
    •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3.4. 르포르타주

언더그라운드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을 주제로 취재한 내용이다. 현재까지 유일한 르포르타주.)
언더그라운드 2권 약속의 장소에서

4. 관련 인물

  • 안자이 미즈마루(安西水丸)
안자이 미즈마루는 필명이고 본명은 와타나베 노보루(渡辺昇)다!! 하루키의 수필집은 유명 삽화가인 안자이 미즈마루와 콤비를 이루어 한 작품이 많다. 미즈마루의 그림이 없는 하루키의 수필집은 그 가치를 20% 가량 잃으나, 끝내주게 그림을 느리게 그려서 여러 사람 복장을 터지게 했다. 간단한 그림이든 복잡한 그림이든 상관 없이 똑같이 늦게 그려서 신기하다. 삼각형 도형을 그리든 작대기 하나를 긋든 둘다 똑같이 시간이 걸린다. 한 번은 하루키가 신문에 칼럼을 기고할 당시 미즈마루에게 조금 어려운 과제를 내주고자, 한마디로 골탕 먹이려고 두부 시리즈 연작[11]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별 고민 없이 네모반듯한 날두부 하나만 텅 그려주었다고.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는 드디어 안자이 미즈마루를 골탕먹일 소재를 찾았다면서 기뻐했는데 그 소재가 곤충(...)이였다. 안자이 미즈마루는 곤충, 특히 지네류의 털많고 징그러운 쪽을 아주 무서워한다고 하며, 하루키는 이것을 발견하자 바로 호쾌하게 연작 시리즈로 써 주는 대인배 정신(...)을 발휘하였다. 삽화를 보면, 정말 그냥 지네들만 덜렁 그려져 있다.참고 링크 책으로도 출판된 무라카미 수필집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림체는 유치원생이 그린 그림같지만 실제로는 일본대학 미술학과 출신에 교수 겸임 및 굵직굵직한 상을 여러번 받은 사람이다. 소설도 쓴다. 국내에서도 하루키의 작품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 하루키 얘기에 빼먹으면 조금 심심한 인물이다.
2014년 3월 19일 뇌출혈로 쓰러져 향년 7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류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한국에서 현재는 절판된 대담집도 내고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고양이를 주는 등, 왕래가 있었다. 무라카미 류가 더 어리지만[12] 데뷔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먼저 했으며, 하루키는 원래 로스 맥도널드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무라카미 류'로 데뷔하려다가 우연히 같은 이름의 류가 먼저 데뷔해버려서 강제로 본명으로 데뷔했는데 하필 데뷔했을 때가 도카와 하루키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때라서 '무라카미 류+카도카와 하루키 이름을 짜집어놓은 펜네임은 너무한 것 아니야' 하는 억울한 소리를 들었다(...)

  • 무라카미 요코
    무라카미 하루키의 부인으로 그가 대학생 시절 같은 수업을 듣다가 사귀게 되어 대학 졸업 전에 혼인하였다. 여담으로 에세이에서 나오는 하루키와 무라카미 요코간 일화는 상실의 시대의 미도리와 주인공과 일화와 비슷한(이라기보다 거의 정황이 똑같은) 부분이 많다. 현재는 전업 주부이나 하루키가 쓰는 여행 에세이의 사진은 대개 요코의 작품으로서 사진 실력은 프로 사진작가 빰치는 수준이다. 수필에서 아내가 필름을 교체할 줄 모른다고 놀리기도 한다.
    수필집을 보면 소설가 데뷔 전에 부인이 직장을 다니고 하루키 본인이 집안 살림을 도맡은 시기가 잠깐 있었는데, 장을 보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했던 당시 일과를 상술하여 매우 가사에 도가 튼 모습을 현로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소설 ‘태엽감는 새’에 반영되어 있다. 하루키는 이 시절을 회상하며 '남자는 한번쯤은 주부 역할을 해 봐야 좋다. 세상이 생각하는 많은 여성성은 오롯이 주부라는 직업 때문에 생긴다' 라고 밝히기도.

  • 가와이 하야오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라는 대담집의 공동 저자. 하루키는 가와이 하야오를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라고 회상했다. 하루키 이해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책. 여담이지만 저 대담집은 제목을 보고 하루키x미야자키 하야오라고 생각한 사람도 꽤 있는듯(...)

5. 일본 문단과 불화

세계에 걸쳐 명성을 얻은 사람이건만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상인 쿠타가와상과 인연이 없었다. 초기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제81 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으나 오에 겐자부로[13]이건 너무 외국소설 일역투라 상 못주겠군요라고 일침해서 수상에 실패했으며[14] 두 번째 소설인 1973년 핀볼도 비슷한 이유로 수상에 실패했다. 이후로는 하루키가 중편소설을 쓰는 탓에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를 일이 없다. 하루키에겐 이게 못내 상처로 남았는지 1Q84에서 신인상 후보 작품을 고쳐써서 아쿠타가와상을 노린다는 소문도 떠돈다.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후보 운운 얘기가 나온 것은 언더그라운드 무렵의 일이다. 아쿠타카와상과 노벨문학상 위상을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위상이 높은지는 상식으로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데다가 아쿠타카와상은 젊은 작가들에게 수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헛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하루키 소설을 대상으로 평은 엇갈린다. 하루키의 아쿠타가와상 받은 사실을 두고 일침한 오에 겐자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비판한 바 있고 와타나베 나오키는 자기애 현상에 불과하다라고 신랄하게 말한 바 있으며, 하루키가 쓴 소설에 나오는 여성상과 여성관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하루키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상과 여성관은 논란의 소지가 있긴 하다. 물론 하루키가 남성이니 남성의 한계를 감안해야지만... 어떤 평론가는 무라카미 하루코라는 여성작가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재미있는 가정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가 쓴 소설을 높게 평가하는 평론가도 있다.

6. 예루살렘 연설

하루키는 2009년, 예루살렘문학상을 받았다. 예루살렘 문학상은 프란츠 카프카 문학상과 더불어서 벨 문학상으로 가는 전초로 간주되는데 이 수상식 자리에서 하루키는 높고 단단한 벽에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알의 편에 서겠다라고 연설해서 꽤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침공하는 사태가 있던 시점이라 하루키가 한 이 발언은 이스라엘을 비판한 내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일본에서는 벽과 알이라는 표현이 너무 모호하다라는 비판하는 견해가 제기됐다. 정말 모호하다. 하루키 자신이 자세히 말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최신작인 1Q84와 연관해 생각하면, 단순히 벽과 알이 이스라엘을 비판한 것이라기보다는 조금 근본성을 띤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뭐 그 일을 향한 생각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아예 저서인 '잡문집'에서 다원성 의미를 담은 발언이지만 기본으로 벽은 시스템을 의미하고 알은 개인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고 직접 해설했으며 이 말은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라 본인이 소설을 쓸 때 늘 기초로 까는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직접 읽고 판단하자. 연설문 번역

7. 트리비아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열혈 팬이다. 소설가가 된 계기도 야구장에서 찾았는데,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경 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데이브 힐튼의 2루타 소리를 듣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 음악과 함께 그의 작품 세계를 지지하는 요소는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달리기이다. 실제로 저녁 9시 취침 - 새벽 5시 기상을 몇십 년째 빠뜨리지 않고 지키고 있으며, 생선과 채소류를 주로 먹고 하루에 1시간에서 2시간씩 빠짐없이 달리기한다. 일찍 일어나서 달리고서 오전에 집필, 오후에는 음악을 듣거나 수필, 일역 등 반취미인 작업.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 재능보다 규칙과 단련을 믿는다고 말한다. 일단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장편소설을 쓴다는 건 상당한 체력을 요하니까.

  • 달리기를 향한 애정은 실로 대단해서 "나는 머리로 사물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파악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할 정도.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비롯한 각종 마라톤 대회와 철인 삼종 경기에 수십 번 출전한 달리기의 베테랑이다. 등단 이래 30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 가능했던 원동력인 셈이다. 최근에는 이와 관련된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달리기를 말할 때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가끔 달리기를 예찬할 때 "신체 장애가 있고 스포츠를 못하는 사람도 조금 생각하라."고 지적받으면 '건강한 몸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무신경하게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더 문제 있다'고 받아친다. 1998년 6월 호놀룰루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마라톤 15km 코스에 어느 시각장애인의 동반자로서 줄 하나를 연결해 마주 잡고 달린 훈훈한 일화도 있다.

  • 외국어에 능통하고 낯선 환경에 꽤 쉽게 적응하는 성격 덕분에 여러 국가에서 거주하였다.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터키어를 할 줄 안다. 일역은, 영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와 독일어도 해당 언어로 쓴 문학작품을 읽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도 그리스와 이탈리아와 영국을 오가면서 완성되었고 <태엽 감는 새>는 미국에 소재한 프린스턴 대학에서 교환 교수로서 일하던 시절 직필했다. 이때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먼 북소리>, <슬픈 외국어>)

  • 2005년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문학곡/시나리오을 전공해서인지 다른 작가와 다른 문체를 느낄 수 있고 대사에 비중이 꽤 높아서 독자가 읽기 쉬운데 정작 본인은 "와세다 대학에서 나는 아내만 얻었다"고 말한다.

  • 영화를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서 연극영화론을 전공했고 수업에는 잘 안 들어가는 대신 희곡과 시나리오가 있는 도서관, 명화좌[15]에서 거의 살았다. 본인은 수업은 그리스 고전 비극만 해서 재미없고 테네시 윌리엄스나 사무엘 베케트 같은 현대 작가가 쓴 작품을 다루는 수업은 교수가 작가 욕만 해대서 들어가기 싫고(…) 해서, 타협책으로 "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니까 영화 감상이 공부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졸업논문도 미국 영화 비평에 관한 내용이지만, 의외로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에는 난색을 표해서 하루키의 소설 중 가장 영화화가 용이하다는 평을 듣던 상실의 시대도 영화화에 상당히 오랜 세월이 걸렸다.

  • 하루키는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었는데 이 작품이 당선되지 않았다면 글을 더는 쓰지 않았으리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쓴 소설이 당선된 셈인데 이상하지도 않은 게 이미 어린 시절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행한 관심이 지대해서, 학창 시절에도 책을 손에 달고 살았다.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었다니 말 다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러시아 원서와 미국 원서까지 찾아 읽었다니 흠좀무. 이미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독서가였기에 소설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된 셈이다.

  • 대학 졸업 후, 무라카미 하루키도 평범한 사람처럼 취직 하러 이리저리 원서 냈다. 어느 방송국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면접관이 "ㅉㅉ. 우리 회사는 와세다대학 정도로는 안 돼."라며 면박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기분이 상했었다. 대학 간판과 사람의 능력이 무슨 상관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서 결국 취직도 접고 재즈 카페를 차린다. 다른 작가들이 그렇듯이 소설이 잘 팔리기 시작하자 카페를 접고 전업 작가로 돌아선 예다. 장편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출판할 즈음부터 금전 사정이 좋아져서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었다.

  • 생선과 채소를 주로 먹고 붉은 고기는 평소에는 쇠고기 붉은 살만 먹는다. 가끔 스테이크가 땡길 때만 고기를 먹는데 한 달에 한 번 정도라고 한다. 스스로 자기 음식 취향을 노인 스타일이라고 규정헤서인지 터키 동부로 여행해서 음식 탓에 고생했다고 수필에서 언급했다. 동부로 가면 생선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고 죄다 양고기만 주로 먹으니 고생했다는데 수필에서 한국 요리처럼 터키 요리는 너무 향이 강해서 안 좋아한다고 쓰는데 그리스 시골에서 먹던 빵처럼 그리스 요리는 무척 잘 먹었다고 말한다.

  • 방송에 출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성을 가진 작가 무라카미 류가 미디어에 얼굴을 자주 내밀고 이런저런 말하는 태도와 대조적이다. 오죽했으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을 좋아하는 팬 중에서도 그 사람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일 정도. 그 사람이 쓴 수필집을 읽으면 평범한 사람 사이에 섞여 유유자적하게 살며 이것저것 사물을 생각하는 방식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루키는 대학 시절 잠간 머리를 길게 길렀던 적도 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서 지금까지 계속 짧은 스포츠 머리를 유지한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 중에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성격도 소탈해서 옷이나 자동차 같은 거에 비싼 돈을 쓰지 않는다.

    이에 관련해서 일화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하루키에게 "선생은 저명한 소설가인데 왜 이런 차를 타고 다니십니까? 선생 정도면 더 좋은 차를 탈 수 있을 듯한데"라고 하는 말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한 하루키는 "아니 내가 번 돈을 어떻게 쓰든 니가 뭔 상관?"이라고 반응했다고.

  • 하루키가 쓴 소설만 보고 하루키가 여성 편력이 대단할 듯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루키는 고등학교 때 조금 놀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일탈된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 놀았다는 것도 동네 외진 곳에서 모닥불이나 피워 놓고 친구들끼리 술이나 마시는 정도였다고. 다만 어릴 때부터 책을 지독하게 많이 읽어 국어 성적은 늘 좋았다고 한다.

  • 하루키의 아내 무라카미 요코는 신학과를 졸업해서 하루키가 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양사나이도 성경에서 나오는 양의 의미로도 해석을 더할 수 있다고. 신학 지식은 아내에게 많이 영향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아내와 합의하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무리카미 요코는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어서 종종 아내가 찍은 하루키의 사진이 자신의 책에 실리기도 한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면 아내에게 보여주고 이런저런 조언을 듣기도 한다고.

  • 몽골 여행을 가서 노몬한 사건(할힌골 전투) 승전비를 보고 일본 극우를 비아냥거린 일로 살인 협박받은 바 있기도 하다. 우습게도 이때 한 몽골 여행이 그 일본 극우 잡지이던 마르코 폴로[16]에서 보내주었다. 하지만,그의 수필 및 기행문 책자에서도 언급하듯이 보내주면 가는 거지. 일절 마르코 폴로의 이념이니 뭐니 신경도 안 썼다.

  • 취미는 일역과 영일사전 idiom 암기라고 한다. 일역도 처음에는 취미 겸 생계 유지하고자 시작했다가 직업으로 굳어진 예라서 이제는 어디가서 취미가 일역이라고 말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진정한 의미의 취미는 마라톤밖에 남지 않았다고 투덜투덜. 잠깐 마라톤에 관한 책도 내지 않았던가? 주로 트루먼 카포티, 팀 오브라이언, 레이먼드 카버 등 미국의 현대소설을 일역했고 그 자신도 이 작가들에게 많이 영향받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쉽게 손대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서야 일역하였는데 나오자마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역한 위대한 개츠비 드디어 출간!" 같은 광고 문구가 나붙어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 영화화 자기 작품 상실의 시대(2010년 12월 일본 개봉)를 보고 조금은 다른 작품이 된 듯하다고 평가하였다.

  •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에서 소실판 나가토 유키가 줄곧 읽는 책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애니메이션 하이바네 연맹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 2012년에 한중일 간 영토 분쟁으로 동북아 3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아사히신문에 칼럼을 내서 현재 동북아 상황이 위험하다면서 상호 존중을 촉구하기도 했다.

  • 2013년 4월에 신작 소설이 나온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1Q84 제4 권이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신작이라고 하는 말로 미뤄 보면 그런 듯하지는 않다. 철저하게 어떤 내용인지는 보안에 부쳐서 출간되고서야 알 듯한데 4월 12일 자정에 책이 공개되었다. 제목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선주문만 50만 권이 넘을 정도로 폭발하듯 관심받는다.

  •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조정래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하루키의 영향력 아래 놓인 것에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인터뷰 논조만 보면 사소설과 역사소설의 대립처럼 보이나, 사실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소설이 사회에 대한 윤리성을 가지려 하지 않는 대한 비판이고, 이는 기성문단이 현재의 한국소설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논조의 말이다.

  • 일본 사회의 "자기 책임 회피" 경향을 따끔하게 비판했다. 그는 2014년 11월 3일 보도된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공통적으로 자기 책임 회피가 있다.”면서 "태평양전쟁 문제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에 대해 정말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
  • [1] 이 세 사람이 동시대에 나타난 덕분에 일본 문학이 현재와 같은 형태, 즉 극히 사사로운 형태로 알려졌다. 혹자는 이런 현상이 근대다운 의미의 소설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당연지사라고 주장한다.
  • [2] 하루키는 이미 평론가 평가 따윈 초월한듯 '노벨상 따위 타 봤자 3년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은 3년 전 노벨상 받은 사람을 기억하는가? 어떤 소설가가 여자 천명 정도랑 자본 뒤에 죽는다면 차라리 그게 더 오래 기억에 남겠지.'라고 냉소했다
  • [3] 그냥 '아무 생각이나 기준도 없이 떼로 우 몰려다니며 나쁜 짓하는 거 싫어한다'는 얘기. 군중심리의 부정적인 면이 좋은 예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좌파든 우파든 자기들 나름의 기준이나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떼로 우~ 몰려다면서 집단논리를 통해 폭력성이나 어리석음을 정당화하는 행태를 싫어한다.
  • [4] 이것은 그 사람의 성욕상 판타지(...)와 관계된 부분으로, 쌍둥이 자매와 섹스가 꿈이라고 수필집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시대를 앞서간 쌍둥이모에 문제는 단순히 쌍둥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동이 동일해야 하는데 그러면 당장 드라이브할 때부터 골치가 아파진다고 말한다. 둘 중 누구 하나만 전석에 앉히면 이미 한 명만 차별 대우하게 되니까. 그렇다고 둘 다 후석에 앉히면 데이트도 아니게 된다고 한탄한다.
  • [5] 백만부가 팔린다는 건,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자신에겐 정말 기가 찰 정도로 지나치게 높은 판매고라서 감당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 [6] 그리스, 이탈리아, 런던을 돌아다니면서 생활하고 소설을 썼다.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창작에 몰두하고 싶어서라고.
  • [7] 원제는 色彩を持たない多崎つくると、彼の巡礼の年(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로, 조사인 '~의'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금 제목이 바뀌었다. 또한 '~의'를 형용사처럼 자유 자재로 활용하는 것은 일본식 표현이다. 역습하는 샤아가 아닌 역습의 샤아인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 [8] MOTHER시리즈로 유명한 이토이 시게사토와 같이 집필하였다.
  • [9] 김난주. 백암판과 동일하다
  • [10] 예 : 치바 → 지바
  • [11] 화백 안자이 미즈마루를 골탕먹일 요량으로 '기차에서 식당칸에 애완견과 함께 우아하게 포크 커틀릿을 먹는 롬멜 장군'과 엇비슷할정도로 복잡한 그림은 의외로 쉽게 그리지만 의외로 단순한 두부는 오히려 잘 못그린다고 생각한 것.
  • [12] 무라카미 류는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3살 어리다.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문화적 영향력(60~70년대 일본에서 근 반향을 일으킨 서구-특히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같은 세대에 속하지만... 무라카미 류가 69(소설)에서 다룬 학생운동과 노르웨이의 숲을 비롯한 하루키 작품에서 다뤄지는 학생운동의 묘사를 비교해 보면 이 3년의 차이가 의외로 큰 경험의 차이를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49년생인 하루키는 일본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이른 69년을 대학에서 보냈지만, 52년생인 류는 고등학교에서 보냈다. 이와 비슷한 세대의 사례로 51년생인 오시이 마모루 역시 69년을 고등학교에서 보냈고, 야수들의 밤같은 작품에서 그 경험이 드러남을 쉽게 알 수 있다.
  • [13] 1994년 노벨문학상 받은 사람이다.
  • [14] 여담이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받았어야 할 노벨상을 못 받은 사람과 앞으로 노벨문학상 탈 사람 넷을 뽑았는데, 르 클레지오, 오르한 파묵, 모옌, 황석영이 그 사람들. 2014년 현재 황석영을 제외하면 모두 노벨상 수상자이다. 유력한 후보로 매년 거론되는 하루키를 생각하면 묘하게 흥미로운 대목.내가 깐 사람이 노벨문학상 탈리가 없어?
  • [15] 명화를 상영하는 학교 내 극장
  • [16] 한국에 대하여 씹고 극우답게 일본을 자랑하기나 하던 잡지이다. 그러다가 유태인까지 씹으며 나치와 손잡고 싸운 일본이 잘못이 없다. 그리고 유태인 학살 수효도 부풀려졌다는 글을 싣다가, 미국 내 유태인 단체들의 반발과 보복성 엄포에 놀라 잡지를 폐간했다. 전여옥이 불쏘시개 일본은 없다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3 17:27:03
Processing time 0.228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