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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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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남북조시대 무로마치 시대 전국시대




Contents

1. 개요
2. 개괄적 역사
3. 대중 매체에서
4. 역대 쇼군


1. 개요

室町時代.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가 일본을 통치하던 시기로서 일반적으로는 1336년 ~ 1573년의 240여년에 해당한다. 당시 막부의 장군(천하인)이 아시카가 씨(氏, 우지)라서 아시카가 막부라고도 하며 아시카가는 미나모토의 방계에 해당하는 우지이기 때문에 쇼군직을 무리없이 계승하기도 하였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를 미나모토 막부시대라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때문에 이 시기를 언급하는 조선이나 명대의 사서에서 아시카가의 쇼군을 '원(源)○○'로 부르기도 하여 좀 헷갈릴 수 있으나, 이는 조선과 명에 보낸 일본측 외교문서에서 쇼군들이 자신의 성을 그렇게 칭했기 때문이다. 사료에서 이름을 대조해 보면 쉽게 구분이 가능하여 큰 문제는 없다. 이후 도쿠가와 씨가 쇼군직을 계승했을 때도 외교문서 상으로는 '덕천'씨가 아닌 원씨로 칭했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일본은 원씨(源, 겐지의 무로마치 막부)가 다스리다가, 평씨(平, 다이라 씨/헤이지) 씨의 치세가 되었다가,[1] 다시 원씨의 지배로(에도 막부) 회복되었다고 인식하기도 했다. 한국사고려 말엽에서 조선 중기와 겹치는 시기.

학계에서는 실제로 무로마치 시대가 언제 끝났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며 각각 1467년의 오닌의 난이나 1493년의 메이오 정변에 무로마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고 하는 설이 있다. 이는 그 시점에서 아시카가 쇼군가의 실권과 권위가 상실되면서 사실상 전국시대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무로마치 막부 정권의 시작에 대해서도 남북조시대가 끝난 139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무로마치 막부의 권위가 확립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즉 실질적으로는 100년도 안되는 70여년의 매우 짧은 시기만을 다스린 막부인 셈. 그나마 전성기는 요시미츠의 시대인 1368~1408의 40여 년 정도. 세분하면 남북조-무로마치-전국시대로 보면 된다. 명목상으로는 남북조와 전국은 대부분 무로마치 시대에 포함되지만 쇼군 정권이 실권을 행사한 기간은 이 정도다.

2. 개괄적 역사

시작은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킨 고다이고 천황에 반발한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천황의 혈통 중에 한 명(후의 고묘 천황)을 옹립하여 천황가가 남조와 북조로 나뉘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를 무로마치 시대 중에서 분리해서 따로 남북조 시대라고 불리우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무가의 지지를 얻은 아시카가가 옹립한 북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천황을 갈아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한 다카우지는 새로 천황으로 옹립한 고묘 천황에게 최고위의 관직인 다이나곤과 세이이다이쇼군의 자리를 받고, 이것으로 명실공히 일본의 실력자가 되어 무로마치 막부를 개창했다. 다카우지가 정권을 장악한 1336년부터 1573년 쇼군 요시아키(義昭)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교토에서 쫒겨날 때까지 15대의 쇼군이 배출되었다.

이 막부의 리즈시절은 대략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의 치세. 이 쇼군 치세에 남북조가 통일되었고 '무로마치 막부'의 어원이 되는 교토의 무로마치 어소도 그의 치세에 지어진 것이며 그 유명한 금각사(킨가쿠지)도 이때에 지어졌다. 금각사는 화려함에 걸맞게 무로마치 막부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막부의 실질적인 창업자는 아시카가 요시미츠라고 봐도 좋은 셈. 그만큼 정치 수완도 상당히 뛰어난 걸물이었다. 그러나 정작 요시미츠는 덴노 찬탈 의혹[2]이 있고 일본사에서 3세기 이후 유일하게 중국에게 책봉을 받은 인물이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제가 확립된 근대 일본 사회에서는 그 평가가 굉장히 박했다.

시대적인 특성으로는 오랫 동안 지속된 전란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크게 성장하여 후의 일본의 기틀을 다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신분에 연연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주류세력인 무가부터가 그리 높은 신분이 아니었던 점과 더불어 오랜 전란으로 인재를 쓸 때 신분으로 가릴 수 없게 된 점등이 원인이 되었다. 한 편으로 실력만 있으면 출신성분은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자 반대로 실력이 없으면 윗사람이라고 끌어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서 후의 전국시대에는 가신들이 다이묘를 끌어내리는 꼴을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하극상이 만연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시대에는 무라(村, 일본의 전통적인 마을 구성)가 구체화되기 시작하고 농민 봉기인 잇키가 대두되는 등 서민 문화가 태동하기 시작한다. 이는 소와 말을 이용한 경작과 모내기의 확산 등으로 인한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시장, 도시의 확산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또한 전기 왜구가 들끓던 시기라 세 차례에 걸친(고려 창왕-조선 태조-세종) 쓰시마 섬 정벌이 이 시기 초중반에 이루어졌다.

3. 대중 매체에서

어쩐지 사극, 만화, 영화, 게임, 소설 등 여러 창작물에서 실컷 우려먹는 헤이안시대, 센고쿠 시대, 에도시대에 비해 대중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시대이다. 이 시대를 다룬 작품이라면 막부 창건자인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대립한 쿠스노키 마사시게나 닛타 요시사다 같은 이들을 다룬 <다이헤이키(太平記)>를 소재로 한 사극이나 소설이 있는 정도. 근데 다카우지보다는 마사시게나 요시사다의 인기가 더 많다.(…) 이는 위에 언급된대로 다카우지가 일본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천황과 대립각을 세운 탓도 있고 더욱이 3대 쇼군인 요시미츠는 명나라 영락제로부터 '일본국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영락제의 국서에 대해 요시미츠가 신(臣)이라고 칭한 답서를 올렸을 정도. 거기다 자신의 아들을 덴노의 양자로 들이는 식으로 자신의 가문을 덴노로 올릴려고 했다. 하지만 사후 덴노측의 반발과 집안내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이런 모습들이 아무래도 일본인들 눈에 좋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 거기에 무로마치 막부 말기는 센고쿠 시대와 겹쳐서인지 이 막부의 리즈시절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그나마 이 시대 인물 중 대중적으로 자주 다뤄지는 인물은 일본 역사에서 유명한 승려로 전국시대 초창기에 사망한 잇큐 소준(一休宗纯). 많은 일화와 전설을 남긴 승려로 망나니 장군이나 미토 코몬 못지 않게 일본에서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창작물의 단골 소재다.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이 흔히 잇큐상(一休さん)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일본의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물이나 서브컬처에서는 자주 다루지 않던 시대였으나, 놀랍게도 전국 바사라 시리즈의 최신작으로서 발표된 전국 바사라 4의 무대가 무로마치 시대가 될 예정이라고. 전작인 전국 바사라 3가 전국시대 말기인 세키가하라 전투를 다루었기 때문인지, 시대 설정을 아예 전국시대 이전으로 돌려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전국 바사라 3 이상으로 등장 캐릭터 리스트에 정리해고의 피바람이 예상되는데

4. 역대 쇼군

순번 이름 재임기간
1대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 1338~1358
2대 아시카가 요시아키라(足利義詮) 1359~1368
3대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 1368~1394[3]
4대 아시카가 요시모치(足利義持) 1395~1423
5대 아시카가 요시카즈(足利義量) 1423~1425[4]
6대 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教) 1429~1441[5]
7대 아시카가 요시카츠(足利義勝) 1442~1443
8대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1449~1473[6]
9대 아시카가 요시히사(足利義尚) 1474~1489
10대 아시카가 요시타네(足利義稙) 1490~1493, 1508~1521
11대 아시카가 요시즈미(足利義澄) 1495~1508
12대 아시카가 요시하루(足利義晴) 1522~1547
13대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 1547~1565
14대 아시카가 요시히데(足利義栄) 1568[7]
15대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 1568~15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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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는 헤이지를 자칭했다.
  • [2] 요시미츠의 죽음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병사했지만 조정에서 손을 쓴 것이라는 음모론도 있다고 한다. 뒷날 혼노지의 변에도 조정이 배후였다는 설과 비슷한 케이스.
  • [3] 1394년 요시모치에게 쇼군직을 물려주고 승려가 되었지만 1408년 사망할 때까지 권력을 계속 장악했다.
  • [4] 1425년 요절해서 은거해 있던 부친 요시모치가 1429년 사망할 때까지 쇼군직을 대행했다.
  • [5] 요시미츠의 아들로 본래 출가한 승려였지만 제비뽑기로 쇼군이 된 인물. 그래서 '제비뽑기 쇼군'이란 별명이 있었다. '만인 공포'라고 불릴 정도로 잔혹한 정치를 펼치며 무리하게 쇼군의 권위를 찾으려다가 승려 맞아? 되려 다른 다이묘에게 살해되었다.
  • [6] 흔히 이 사람 재임기에 발생한 오닌의 난을 기점으로 센고쿠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 [7] 13대 요시테루를 암살한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미요시 3인중에 의해 옹립됐으나, 요시아키를 옹립한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교토에서 축출당해 병사한다.
  • [8] 흔히 1573년까지 재임했다고 적은 자료가 대부분이지만 이 해는 요시아키가 교토에서 축출되어 실권을 잃은 해이고 공식적으로는 조정으로부터 쇼군 해임령을 받지 않았으며, 노부나가에 대항하던 유력 다이묘들 역시 1573년 이후에도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요시아키가 쇼군 직함을 유지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권 장악이 굳혀진 1588년 1월까지다. 이 때 이르러 스스로 쇼군직에서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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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4-10-18 16: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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