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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해군사관학교

last modified: 2015-04-15 01:58:24 by Contributors


The United States Naval Academy.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생도 생활
4. 육해전
5. 동문
5.1. 기수별
5.2. 가상의 동문
6. 기타

1. 개요

미국해군사관학교이다. 메릴랜드 주 애너폴리스(Annapolis, Maryland)에 위치한 4년제 연방 교육기관. 5개의 연방교육기관(육군,해군,공군,해양,해안경비)중 두번째로 오래됐으며 미합중국 해군미합중국 해병대 장교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다. 포브스에서 2013년에 발표한 America's Top Colleges에서 28위에 랭크(웨스트포인트는 7위).[1] 입학자격은 16∼20세의 미혼인 미국시민으로 대통령,부통령,상원,하원 의원의 추천자 그리고 천조국의 위엄돋는 명예 훈장 수여자의 자녀 중에서 체력 테스트와 신체 검사후에 선발한다.[2] 신입생들의 평균 SAT 성적은 1300정도. 4년동안 학문과 군사교육을 이수하며 졸업하면 학사 학위 수여와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非항공,해병장교는 5년, 회전익기를 조종하는 장교는 8~11년, 고정익기를 조종하는 장교는 6~8년 의무복무하게 된다.

2. 역사

1845년 10월 10일에 창설되었다. 창설의 주체는 해군청장이었던 조지 밴크로프트. 미 육군 기지 포트서번 자리를 인수하여 해군사관학교로 개조하였다. 첫 입학생은 50명이었고 교수는 7명이었다.

(ɔ) The original uploader was Hugh Manatee at English Wikipedia from

당시의 해군사관학교.

남북전쟁이 터지자 북부의 연방 정부는 해군사관학교를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였다. 1861년에 로드아일랜드로 이전하였다. 북군 해군의 장교 24%가 사임하고 남군 해군으로 옮기면서 인력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1865년 전쟁이 끝나자 해사는 다시 애너폴리스로 이전하였다.

(ɔ) from

1894년의 졸업생들. 저 멋대가리없는 옷을 일본 해군이 그대로 베껴다 해체될 때까지 써먹는다.

남북전쟁 이후에 육군의 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들어온 것에 비해 미국 해사는 상당히 백인 중심이었다. 해군의 엘리트적 기질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긴 하다. 일본군일본육군사관학교에는 소수나마 선인이 들어갔지만 일본해군병학교에는 거의 없었고 그 때문에 대한민국 해군은 일본군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인물들이 주축이 되었다. 미국 해사는 1949년에서야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론 6번째 입학생이자 첫 번째 졸업생인 웨슬리 앤서니 브라운(Wesley Anthony Brown, 1927-2012)을 배출했다.

(ɔ) United States Naval Academy from

웨슬리 브라운. 1969년 소령(Lieutenant Commander)으로 전역했다. 같은 해사 출신으로 3년 선배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로스컨트리를 하기도 했다. 그의 활동은 미국의 인종통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3. 생도 생활

미 해병대의 인원도 미국 해사에서 일정 부분 보충된다. 나머지는 학사사관학군사관으로 보충된다.

생도대장은 일반적으로 준장이 임명되는데 해군과 해병대에서 모두 배출되고 가끔씩은 대령이 보임되기도 한다.

© Michael Slonecker from

캠퍼스 풍경.

© (cc-by-2.5) from

1학년은 플리브(Plebes)이라 부른다. 딱봐도 짬찌포스가 난다. 보통 입학 직후 일정 기간을 수병처럼 입혀 굴린다. 2학년은 흔히 소포모어라 부르는 일반 대학들과 달리 '영스터'라고 부른다. 3학년이 세컨 클래스, 4학년이 퍼스트 클래스라고 불린다. 또한 3학년 이전까지는 자퇴에 있어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3학년이 된 후에는 자퇴시 그간의 교육비를 현금으로 해군 측에 반납해야 한다.

(ɔ) from

여유넘치는 4학년들. 헌던 기념비(Herndon Monument)라는 곳에 1학년 모자를 걸어놓는데 1학년과 4학년이 올라가 다른 모자를 올려놓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의미는 1학년들 보고 생활이 잘 되길 기원하는 거라고.

© Rdsmith4 (cc-by-sa-2.5) from

때 가는 기지 교회다.

(ɔ) 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1st Class Chad Runge from

졸업하는 미 해사 사관생도들. 좀 골룸한(?) 전통이 있는데, 졸업식날 대통령 앞에서 사열을 할 때 최선두에 서는 소위는 수석 졸업자도, 여단장생도 출신자도 아닌 꼴찌 졸업자다. 수석 졸업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일반 120학점의 대학들보다 30학점이나 많은 150학점을 이수하고 UDT, 해병, 항공, 수상함, 잠수함 등 갖가지 빡센 훈련을 거치면서 근성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여성 생도의 경우 1975년부터 입학이 허용되었다.

(ɔ) NASA from

초창기 여성 생도 중 웬디 로런스(Wendy B. Lawrence, 1959-) 해군 대령(예)은 해사 출신 여성으로서 최초로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웬디 로런스의 경우 집안 배경이 매우 빵빵하다. 해사에 입학한 후 아버지 윌리엄 로런스 제독이 해사 교장으로 부임했으며 딸이 졸업/임관하는 흐뭇한 모습을 교장으로서 직접 보기도 했다. 아버지 윌리엄 로렌스도 해군 항공대에서 전투 조종사로 복무[3]하여 쓰리스타까지 다는 등 무용담이 대단한 인물인데, 최초로 항공모함에서 발진해 마하2 속력을 돌파한 인물이자 중령 시절 베트남 전쟁에서 격추되어 전쟁포로 생활을 6년이나 하면서 비슷한 시기 포로로 잡힌 제임스 스톡데일 중령(명예 훈장 수훈자이며 훗날 로런스와 마찬가지로 중장까지 오른다)과 함께 포로수용소에서의 고된 고문과 매질을 견뎌내면서도 포로들의 저항을 주도하고 같이 수용되었던 모든 포로들의 계급과 이름을 기억해서 훗날 미군 베트남전 포로들의 행적을 찾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DDG-110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도 머큐리 계획 당시 테스트 파일럿을 지망했다가 아깝게 떨어지기도 했는데 딸이 아버지의 우주에 대한 꿈을 대신 이뤘다.

웬디 로런스 외에도 해사 또는 해군/해병대 출신 우주 비행사가 매우 많다. 일단 미국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앨런 셰퍼드와 아폴로 13호의 선장이었던 짐 러벨이 해사 출신이고, 버락 후세인 오바마 행정부의 찰스 볼든 NASA 국장도 해사를 나와 해병대 항공대에서 복무하며 우주왕복선 파일럿으로 활동한 투스타 출신. 아무래도 역사가 깊다보니 미국공군사관학교에 비해 역사적인 우주비행사들이 더 많은 편. 해사 출신은 아니지만 해군 항공대 출신이었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로는 닐 암스트롱도 있다.

(ɔ) The original uploader was Bunzil at English Wikipedia from
마이컬슨-몰리 실험의 기념물이다. 이 실험을 했던 앨버트 에이브러햄 마이컬슨(Albert A. Michelson)은 해사를 졸업하고 의무복무 이후 전역하여 민간인 과학자로 활동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시 재소집되어 소령까지 올랐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데, 이는 미국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 중에는 최초이다.

4. 육해전


웨스트포인트미국해군사관학교가 벌이는 army navy game이 유명하다. 미 3군 사관학교 대항전 중 가장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미 대학 미식축구 경기이고 이때는 양 사관학교 동문들의 격려와 응원의 메세지들과 양 군 참모총장들까지 배석하여 격려차원에서 열띤 응원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F-14 2대에 'Go Navy', 'Beat Army'라고 적어 붙여놓고 격려비행을 한 적도 있다(...)


심지어 해당 비행기 모형을 팔기도 한다.


1890년대부터 시작했다. 해당 포스터는 1964년 로저 스타우벅이 그린 포스터.

(ɔ) U.S. Navy photo by Damon J. Moritz from

2004년도의 게임.


포스가 대단하다. 운동장엔 육사, 관중석엔 해사 인원이다.



2013년 12월에 열린 114회 시합에 배석한 조너선 그리너트 해군참모총장레이먼드 오디에어노 육군참모총장.지면 참모총장이 갈군다 여담으로,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3회 연속으로 해사가 이겼다.

5. 동문

해군의 역사적인 고위급 장교들 대다수가 해군사관학교 출신인데, 이들 외에도 각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초중급 장교들이 꽤 있다. 특히 NASA에서 우주 비행사를 뽑을 때마다 해사와 해군 출신자들이 공사/공군 출신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경쟁하는 편이다.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이어진 전설적인 문 레이스 시절의 우주비행사들 중 해군과 공군에서 NASA로 파견된 테스트 파일럿들 중엔 해사 출신자가 꽤 있었다. 2013년 기준으로 역대 NASA 우주비행사를 배출한 대학 통계(NASA 2013년 우주비행사 통계 참조)를 매기면 해사가 압도적(...)으로 많다.[4]

육사 출신으로 엘리트 장교들이 채워지던 공군의 초창기에는 소수지만 해사 졸업생들 중에서도 공군으로 임관한 자원들이 있었는데, 제독들의 반란으로 서로 으르렁대던 시기임을 생각하면 그들의 군생활이 얼마나 험난했을지는...[5]

  • 개리 러프헤드 : 1973년 졸업자. 29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 데이비드 로빈슨 :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센터로, 고등학교 때 주에서 한가닥 하는 농구선수였음에도 대학 장학금을 받지 못해 SAT를 쳐서 해사에 들어왔다(...) 6피트 7인치라는 지나치게 큰 신장 때문에 신체검사에서도 간당간당했는데 해사 들어와서도 계속 크는 바람에 7피트의 키로 인해 복무에 부적합하다고 퇴교될 뻔도 했지만 특례로 생도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해사 농구부에서 운동을 계속했는데 기량은 역시 우월했기 때문에 그가 재학 중일 때 해사 농구부는 NCAA 남자농구의 다크호스가 되었으며, 그는 1987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받았다. 교칙상 5년 복무가 원칙이었으나 해군청장이 지나치게 큰 기로 항해 병과에 배치되기 힘든 그의 사정을 인정하여 지상에서 의무복무 2년을 마친 후(복무기간에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출전해서 동메달을 땄다) 1989년부터 자신을 지명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활약하여 첫 시즌 신인왕을 먹었고 두차례 드림팀 멤버로도 활동하여 올림픽 금메달 두개를 땄으며 2003년 은퇴할 때까지 NBA 4대 센터로 군림하여 2009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야말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농구선수. 해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팬들이나 선수들 사이에서 The Admiral(제독)로 불렸다. 농구스타라도 나름 스타니까 제독 소리 들어도 된다?
  •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 로버트 헤레스 : NASA와 별개로 진행되었던 공군의 우주 프로그램 MOL에서 선발된 우주 비행사로, 프로그램이 취소된 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NASA로 전속되지 못하고 공군에서 복무하여 NORAD&우주사령관, 초대 합참차장까지 지냈다. 해사 졸업 후 공군으로 임관해서 4성 장군을 달았던 단 4명의 용자에 속한다.[6]
  • 로저 스타우벅 : 농구에 데이비드 로빈슨이 있다면 풋볼엔 스타우벅이 있다고 할 수 있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레전드 미식축구 선수.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고 1964년 임관하여 1968년까지 복무한 뒤 댈러스 카우보이스에 입단했다.
  • 리사 노왁
  • 리처드 매크
  • 리처드 아미티지
  • 마이크 멀린 : 합참의장을 지냈다.
  • 미셸 하워드 : 최초의 여군 4성제독이다.
  • 알레이 버크
  • 앨런 베이커 : 해사를 졸업하고 수상함 장교로 복무하다 종교에 귀의하더니 미국 개혁교회 목사가 되어 군목으로 복무하며 해병대 군종실장[7]까지 올라간 전무후무한 커리어의 소유자.
  • 앨런 셰퍼드 : 미국 최초의 우주인이자 달에도 갔던 그 앨런 셰퍼드다. 중령 계급으로 우주 탄도비행을 갔다왔으며, 돌아온 뒤 귓병을 앓아서 행정직으로 밀렸다가 수술을 받고 복귀하여 폴로 14호를 타고 달에 가서 골프(...)도 치는 등 활약을 했다. 달에 갔다와서 제독으로 진급하여 이후 소장으로 전역했다. 우주인 명예 훈장 수훈자.
  • 어니스트 에반스 : 최종계급 중령. 명예 훈장 사후 추서.
  • 어니스트 킹
  • 에릭 올슨 : 1973년 졸업생. 해군 출신으론 처음으로 SOCOM사령관을 지냈다.
  • 엘모 줌왈트
  • 윌리엄 리히: 1897년 졸업생. 해군원수를 지냈다. 아들은 윌리엄 해링턴![8] 이름을 땄다.] 리히도 해사 1927년 졸업자로 해군소장을 지냈다.
  • 윌리엄 맥마이클 셰퍼드 : 최종계급 대령. 네이비 씰 출신의 NASA 미션 스페셜리스트 우주인으로서 ISS Expedition 1[9]의 사령관을 지낸 우주인 명예 훈장 수훈자. 우주비행사들 중 보기드문 네이비 씰 출신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챌린저호 폭발사건 당시 잔해 수색작업에 참여한 기록으로 역사에 남았다.
  • 윌리엄 앤더스 : 아폴로 8호의 멤버로서 짐 러벨, 프랭크 보먼(육사 출신 공군 파일럿)과 함께 인류 최초로 달 궤도 비행을 하고 돌아왔다. 졸업 후 해군이 아닌 공군으로 임관해서 공군소장까지 진급했다.
  • 윌리엄 홀시
  • 제임스 서덜랜드
  • 제임스 스톡데일
  • 제임스 웹
  • 조너선 그리너트
  • 존 매케인 1~4세 : 대통령 후보를 지낸 존 매케인이 제일 유명하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 아들까지 4대가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해군 가문이다. 그것도 그냥 해사 출신이라는 게 아니라 부자가 각각 포스타까지 달았던 먼치킨들(...)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은 1958년 졸업생으로 최종계급은 대령이고, 2009년 졸업하고 임관한 존 매케인 4세는 선조들의 이름이 워낙 막강하기에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대외적으로는 잭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 존 앨런: 1976년 졸업자. 미 해병대로 들어가 ISAF 사령관을 지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구멍동서이다.
  • 지미 카터 : 최종계급 대위. 해사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통령이 되었다.[10]
  • 짐 러벨 : 최종계급 대령. 아폴로 8호의 사령선 조종사였으며 아폴로 13호의 선장을 맡기도 한 그 인물로, 우주인 명예 훈장을 받았다.
  • 찰스 볼든 : 해병대 항공대 출신의 우주 비행사. 소장으로 퇴역했으며 2009년에 NASA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 체스터 니미츠
  • 토머스 스태퍼드 : 아폴로 10호 선장, 아폴로-소유즈 미션 아폴로 선장으로 활동한 우주비행사. 미군 역사상 장성 계급을 달고 우주에 올라간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공군으로 임관하였는데, 1952년 졸업 동기들 중 가장 먼저 별을 다는등 중장까지 가장 빠른 진급을 했다.
  • 프랭크 플레처 : 동명이인인 삼촌/조카 모두가 해사 출신으로 제독까지 지냈다. 게다가 둘 다 명예 훈장까지 받은 능력자.
  • 피터 페이스 : 미합중국 해병대 출신 최초의 합참의장.
  • 하이먼 리코버
  • 해리 해리스: 1978년 졸업생. 일본계 미국인으로 첫 4성제독에 오른 인물.

5.1. 기수별

미군/장관급 장교를 보면 알겠지만 미군에서는 학군사관이 장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그러나 해사의 경우엔 제독을 달면 다른 출신에 비해 중장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괄호안은 (미합중국 해군/미합중국 해병대)이다. 동기회에 제독 항목이 정리된 기수만 적는다. 동기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미국아재들 센스도 한국아재들 못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동기회의 경우 전역한 사람들 주축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관련 자료가 부실한 동기회들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Go Navy, Beat Army가 들어간다

임관연도 대장(해군/해병) 중장(해군/해병) 소장(해군/해병) 준장(해군/해병) 장관급 장교 총원(해군/해병) 출처
1949년 동기회에 자료 없음 #[11]
1950년 동기회에 자료 없음 #
1951년 동기회에 자료 없음, 2014년 11월 기준으로 임관자 725명 가운데 449명 사망 #
1952년 자료 없음 #
1953년 동기회 홈페이지가 죄다 부고 얘기... #
1954년 상동 #
1955년 동기회에 자료 없음 #
1956년 동기회에 자료 없음 #
1957년 848명 임관[12]해 대장 4명, 중장 6명, 소장 16명, 준장 5명 배출[13] #
1958년 동기회에 자료 없음 #
1959년 798명 임관[14], 26명 해군제독(대장2명), 1명 해병 장성, 4명 공군 장성 #
1960년 1 (1/0) 4 (3/1) 17 (17/0) 1 (1/0)[15] 23 (22/1) #
1961년 자료 없음 #
1962년 자료 없음 #
1963년 자료 없음 #
1964년 927명 임관, 22명 장관급 장교 진출 #
1965년 자료 없음 #
1966년 자료 없음 #
1967년 자료 없음 #
1968년 자료 없음 #[16]
1969년 동기회가 회원제 #
1970년 1337명이 입학 838명 임관[17], 제독 22명, 장군 3명 배출.[18] #
1971년 동기회 홈페이지에 자료 없음 #
1972년 동기회 홈페이지에 자료 없음 #
1973년 4 (4/0)[19] 7 (6/1) 9 (8/1) 6 (5/1) 26 (23/3) #
1974년 동기회 홈페이지에 자료 없음 #
1975년 동기회 홈페이지에 자료 없음 #
1976년 동기회 홈페이지에 자료 없음 #
1977년 동기회 홈페이지에 자료 없음 #
1978년 3 (3/0) 12 (11/1) 8 (6/2) 8 (8/0) 31 (28/3) #
1979년 0[20] 6 (6/0) 20 (19/1)[21] 4 (4/0) 30 (29/1) #

5.2. 가상의 동문

6. 기타

2006년 제작된 제임스 프랭코 주연의 영화 나폴리스가 해군사관학교의 이야기...를 다뤘다기엔 무늬만 해사 영화지 사실상 복싱 영화라서 이도저도 아니라는 혹평을 듣고 잊혀졌다. 그나마 대위가 예뻤다

미 해병대에서 의외로 힘을 잘 못 쓴다. 미 해병대는 학군들이 강세이다.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사령관해군사관학교 출신임을 감안하면 의외인 점. 미 육군, 미 해군, 미 공군에서 학군은 한국보다는 비율이 높지만 그래도 사관학교보다는 소수파인데 미 해병대에서만은 반대가 된다. 그나마 해병대 출신으로서 합참의장까지 지낸 피터 페이스 장군이 해사 출신이긴 하다.

2002년 해사 졸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국내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위대한 지도자를 향하여(In the Shadow of Greatness)>라는 제목의 책인데, 형수 예비역 해군준장이 번역한 퀄리티가 좀 많이 아햏햏해서 읽다가 경악하는 수가 있다. 그래도 해사에서의 생활과 임관 후 초급장교로서의 이야기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원문과 비교&대조해서 읽는 등의 방식으로 읽어볼 가치는 있다. 중요한 문서 잘못 세절해서 까일까봐 똥줄태우다가 솔직하게 보고했다는 상대적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해상에서의 검문 검색, F-14 최후의 여성 조종사, 아프간에 떨어져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는 해군[22]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다만 진주만 공습 이후 첫 졸업기수인 1942년 기수[23]와 자신들을 비교[24]하며 조국에의 헌신 같은 이야기를 하는등 미국만세 분위기가 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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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ttp://www.forbes.com/top-colleges/list/
  • [2] 해안경비 사관학교를 제외한 4개의 사관학교(육군,해군,공군,해양)가 동일
  • [3] 웬디는 헬리콥터 조종사로 복무했는데, 여성은 90년대 초반 테일후크 스캔들 전후로까지 전투기 전방석에 배치되지 못하고 후방석 관제사나 헬리콥터 같은 지원용 기종만이 가능했다. 대한민국보다 이르긴 하지만 천조국도 여군 차별의식에 쩔어있던 시대를 막 헤어나오는 중이다. 지금도 심심하면 동성간 이성간 성폭력 스캔들 터지는게 미군의 실태.
  • [4] 통계가 학부/대학원 졸업자를 대학별로 각각 집계한 것이라 우주비행사들 대부분은 여러 학교에 중복으로 집계되지만, 해사는 학부 졸업생만으로 53명이나 배출했다. 뒤로는 마찬가지로 학부만 있는 미국공군사관학교가 37명, MIT가 36명, 해군대학원(Naval Postgraduate School)이 35명, 스탠퍼드 대학교, 퍼듀 대학교, 미국육군사관학교가 20명 내외.
  • [5] 공군의 전신이 육군 항공대인지라 공사가 생기기 전까지 육사 출신자들이 공군 초창기 장교단을 형성했고, 비행사관후보생(Aviation Cadet) 과정에서도 많은 이들이 배출되었다. 반면 해사 출신은 공사가 없어서 공군 임관이 적극 권장되던 시기에도 제독들의 반란 직후였기 때문에 공군 임관을 께름칙하게 여기는 풍조도 있었다. 게다가 이들이 임관하던 시기의 해군참모총장이 다른 이도 아니고 알레이 버크였으니(...)
  • [6] Lawrence A. Skantze, 헤레스, Monroe W. Hatch Jr., James B. Davis 넷 뿐이다.
  • [7] 해군 군종병과는 해군 군종센터장이 소장으로 최선임이고 해병대 군종실장이 준장으로 2인자이며 해군 군종센터장으로 올라가는 주요 진급코스에 속한다.
  • [8] 리히 원수의 아내의 이름이 루이즈 해링턴이다.
  • [9] ISS 장기 체류 프로그램.
  • [10] 육사 출신은 율리시스 S. 그랜트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있다.
  • [11] 처음으로 미국 흑인이 임관한 기수이다.
  • [12] 해군 568명, 공군 206명, 해병 62명, 루군 1명, 필리핀군 1명. 민간인 10명.
  • [13] 해군에서 24명, 공군 5명, 해병 1명, 페루군 1명.
  • [14] 해군 639명, 해병 58명, 공군 83명, 육군 6명, 타국군 4명, 8명 민간인.
  • [15] 미 해군이 아니라 필리핀군
  • [16] 합참의장 마이크 멀린, NASA 우주비행사 출신으로 NASA 국장에 오른 찰스 볼든, 해군청장 출신으로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을 지낸 제임스 웹이 나온 기수이다.
  • [17] 해군 711명, 해병 103명, 공군 3명, 민간인 17명. 민간인 17명은 해군지원단이나 에너지관리단 등 군 관련 직종으로 예비역 임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18] 대령과 중령은 해군에서 각각 148명과 210명, 해병에서 대령중령 합쳐서 33명을 배출했다. 즉 해병 가운데 67명은 소령 이하로 전역했고 해군 가운데 331명도 소령 이하로 전역했다.
  • [19] 베다위키에 항목이 있는 사람으로 개리 러프헤드, 에릭 올슨 등이 있다.
  • [20] 일찍 전역한 동문인 션 스태클리가 해군대장에 상당하는 해군청 차장을 지냈다.
  • [21] 한 명은 페루군 해군이다.
  • [22] 의무 직별처럼 해병대에 붙어다니거나 지상비행장에 온 해군 조종사, 네이비 씰 같은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각종 이유로 해군 인원들도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많이 돌아다니며 적잖은 사상자를 냈다. 책 내용에 의하면 이런 물개해군을 아프간에서 본 땅개육군 중사가 "길 잃으셨나봐요? 바다는 꽤 멀텐데ㅋㅋ"하며 농을 던진다(...)
  • [23] 해당 기수의 네임드로는 엘모 줌왈트가 있다. 다만 줌왈트는 당시 국가 전체가 전시체제라서 1년 조기 임관.
  • [24] 2002년 기수는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며 임관한 첫 기수이다. 테러 소식이 전해진 사관학교에서 충격과 공포에 빠진 생도들의 모습도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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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01: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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