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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

last modified: 2015-08-17 21:55:11 by Contributors

미드웨이 해전
날짜
1942년 6월 4일 ~ 1942년 6월 7일
작전명
MI作戦 (MI 작전)
장소
미드웨이 제도
  교전국1 교전국2
교전국 미국 일본
지휘관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체스터 니미츠
나구모 주이치
야마모토 이소로쿠
병력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약 7척
구축함 15척
항공기 360기
항공모함 4척
전함 2척
보조함 약 15척
항공기 264기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다수의 전투함
피해 규모 항공모함 1척 침몰
구축함 1척 침몰
항공기 약 150기 손실
307명 전사
항공모함 4척 침몰
순양함 1척 침몰
항공기 248기 손실
3057명 전사
결과
미군의 승리
기타
일본의 공세 저지. 미국이 주도권을 일본에게서 뺏어옴.

Contents

1. 개요
2. 배경
2.1. 미군의 사정 - 이보다 나쁠 순 없다.
2.2. 일본군의 사정 - 칼 끝을 어디로 돌릴 것인가?
2.3. Game Changer 둘리틀 특공대
3. 전투 준비
3.1. AF는 대체 어디지?
3.2. 일본군을 기만하라
3.3. 대체 이길 마음은 있나요?
4. 양군 편제
4.1. 일본군
4.2. 미군
5. 전투
5.1. 전초전
5.2. 미드웨이 기지와의 공방전
5.3. 미국 항공모함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5.4. 미국 함대의 공격
5.5. 운명의 5분
5.6. 마지막 공방전
6. 일본 함대의 퇴각과 전투의 마무리
7. 정리
8. 평가
8.1. 하늘은 미국 편
8.2. 일본군의 삽질
8.3. 미드웨이 이후
9. 이야깃거리들
9.1. 요크타운
9.2. 후치다 미츠오
9.3. 그외 흥밋거리들
10. 미디어


1. 개요

1942년 6월 4일부터 6월 7일까지 미드웨이 제도 주변에서 벌어진 일본미국의 전투. 이 전투에서 일본군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는 바람에 태평양 전선에서의 주도권을 미국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 때문에 태평양 전쟁의 분수령으로 평가받는다.


2. 배경

2.1. 미군의 사정 - 이보다 나쁠 순 없다.

태평양 전쟁 개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연합군 세력은 미국(America), 영국(British), 네덜란드(Dutch),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Anzac)으로 줄여서 ABDA 연합군이었는데 이들 사정은 썩 좋지 않은 편이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전쟁준비가 미처 덜 된 상황이었고, 영국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외부에 병력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네덜란드는 이미 본토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한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중일전쟁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은 일본군을 상대로 전선을 유지하기는커녕 계속 뒤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결국 ABDA 연합군은 필리핀과 자바해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배하며 사실상 와해됐다. 인도차이나영국군은 일본군에 항복했고, 필리핀 바탄 반도에 고립된 미군과 필리핀군 역시 일본군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영국군은 인도까지,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연합군은 멜라네시아 지역까지 방어선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숫적으로 가장 적었던 네덜란드군은 아시아 함대가 박살나고,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격파되어 사실상 연합군에서 이탈했다. 이것도 모자라서 인도양에서 벌어진 실론 해전으로 인해 인도양 동부의 제해권이 일시적으로 일본군에게 떨어지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제 태평양에서 일본에 대항할 존재는 사실상 미국만 남았지만 사정은 녹록치 않았다.

진주만 공습에서 신나게 털린 태평양 함대의 경우 전력의 중핵이었던 전함을 대부분 상실했다. 침몰한 전함들을 다시 건져올려서 진주만 도크에서 수리중이었지만, 전함은 그렇게 빨리 수리되는 것이 아니라서 10척중 완전 침몰한 2척을 제외한 8척은 1943년 ~ 1944년에 다시 전선에 배치되는 상황이니 당장 전함을 사용할 수 없었다.

외형적인 전력의 손실 뿐만아니라 태평양 함대의 전반적인 사기도 땅에 떨어져 있었다. 스스로 최강이라 자부하고 있었다가 자신들이 한수 아래라고 얕보던 적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절름발이가 되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태평양 함대 소속 고위 장교들은 이제 남은 건 퇴역이나 한직으로 밀려나는 일이라며 낙담해 있었고,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아래로 번지게 마련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킨 건 태평양 함대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었다. 그는 태평양 함대 소속 장교들을 전원 유임시킨 것이다. 당시에도 미 태평양 함대는 미 해군내 엘리트들이 모이는 곳이었으므로 그들을 대신할 인재들을 다시 모은다는게 쉽지 않고, 진주만 공습의 경우 태평양 함대에게 책임을 물을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니미츠의 판단이었다.

한편, 니미츠 제독은 당시 미 해군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고, 여차하면 물량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전에라도 일본 해군 항모기동부대를 격멸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과는 별개로 당장의 전력차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고, 전장의 주도권은 일본이 쥐고 있었으므로 일본이 알아서 나서지 않는 이상 니미츠가 일본군 항모기동부대를 잡을 기회는 없었다.

미 해군이 할 수 있는 대응은 당장 손에 남아 있는 항모기동부대를 이용해서 이제는 일본군 손에 넘어간 마셜 제도, 웨이크 섬, 마르커스 섬에 공습을 가한 것이 전부였다. 이 일련의 공습작전은 항모기동부대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하고, 앞으로 있을 일본군과의 본격적인 전투에 대비하여 사기와 공격정신을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당장의 전술적인 효과는 미미했으므로 태평양 함대 내에서도 일본군은 미군의 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분석하고 있었고, 일본군 수뇌부 역시 미군의 공격 자체를 사소한 발악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다.

미군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2.2. 일본군의 사정 - 칼 끝을 어디로 돌릴 것인가?

진주만 공습남방작전이 예상외로 큰 성공을 거두자 일본군 수뇌부에서는 이후의 진로를 두고 혼란이 빚어진다.

'미국의 싸대기를 맛깔나게 때리면 미국이 쫄아서 협상장에 나오겠지?' 라는게 기본 생각이긴 했지만 미국을 협상장에 이끌어 내는 방법을 두고 일본 육군, 일본 해군, 그리고 연합함대 수장 야마모토의 생각이 완전히 달랐다. 해군 휘하의 일개 조직에 불과한 연합함대가 왜 따로 거론되는지는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항목을 반드시 참고 할 것. 당시 일본군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보는 사람이 다 어지러울 것이다.

중국전선을 최우선으로 두던 육군은 남방 전선을 비롯한 태평양 방면에 더 이상 발을 걸치고 싶지 않았으므로 점령지의 방어를 강화하고 미군의 공격을 계속 막아내면 미국이 알아서 떨어져 나갈거라는 수세적 전략을 주장했다. 반대로 일본 해군은 자신들이 확보한 전략적 우위를 바탕으로 공세에 나서면 미군이 확실한 타격을 입을거란 계산을 하고 있었으며 그 일환으로 호주 침공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호주 침공은 보급과 전력 동원에 문제가 있었으므로 육군에게 손쉽게 반박당했고, 이에 해군에서는 호주와 미국간의 연락선만 끊어놓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진주만 공습이 끝난 직후의 회의에서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들이 모두 건재하기 때문에 이것이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위에서 언급한 미 해군 항모들에 의한 일련의 도서지역 공격은 이러한 야마모토의 생각을 더욱 굳히게 하였다. 이에 남방작전이 종료되는 즉시 중부 태평양 방면에서 미 해군에 공격을 감행하여 미국 항공모함을 끌어낸 다음 이들을 격멸한다는 작전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야마모토 제독의 계획은 일본군의 어느 누구도 동의하거나 지지하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야마모토의 원래 구상은 호주나 미드웨이가 아니라 미 해군의 본거지인 하와이 침공[1]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야마모토의 구상은 육군과 해군 모두의 외면을 받기 딱 좋았다. 야마모토의 의중에 말려들지 않으려던 대본영 내 해군과 육군 수뇌부는 호주와 미국 간 연락선을 차단하는 내용의 MO작전과 FS작전을 합의하기에 이른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야마모토는 한발 물러나서 미드웨이를 공격하는 방안으로 선회했고, 진주만 공습으로 얻어진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이용하여 이 계획을 어떻게든 밀어붙였다. 진주만 공습 때 처럼 자신의 직위를 걸고 나서야 마지 못해 승인을 얻었지만 거기에는 댓가가 따랐다. 해군 수뇌부가 구상한 MO작전을 위해 제 5 항공전대를 제공해야 했고, 육군의 요구에 따라 알루샨 열도의 공격도 같이 진행해야 했다. 참고로 과거에는 알류샨 열도 공격이 일종의 양동작전으로 기획된 것처럼 알려졌었으나, 실제로는 모두가 하나하나의 목적을 가진 작전이었다. 이렇게 결정된 미드웨이 공격작전은 MI작전으로 명명되었지만 야마모토의 연합함대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 작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일본군 내에서 미드웨이 작전이 결정되기까지의 상세한 과정은 여기를 보자.

양군 수뇌부를 확실하게 끌어들일 더 이상의 뾰족한 수가 없던 야마모토 입장에서는 그저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이 상황을 엎어버렸다!!

2.3. Game Changer 둘리틀 특공대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군과 국민들의 사기고양을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상징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며 이에 적극적으로 도쿄 폭격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군 수뇌부는 틈만 날때마다 불려가서 빨리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다면서 루스벨트에게 쪼인트까임 갈굼을 당하고 있었는데, 항공모함에서 육상 폭격기를 발진시키면 도쿄 공습이 가능하다는 계획이 나왔고 이 안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둘리틀 특공대가 결성됐다. 그리고 이 공습을 성공시켰다.

사실 중형 쌍발 폭격기 16대로 수행했던 둘리틀 특공대의 폭격 자체는 대단한 피해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대단치 않은 폭격은 미국에게는 진주만 공습의 울분을 갚아주는 카운터 펀치가 되었고, 일본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을 얻어맞고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이는 폭격 그 자체보다는 벌건 대낮에 미군의 폭격기에게 일본 본토, 그것도 황궁이 있는 수도 도쿄를 대놓고 공격당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특히 이것이 항공모함을 동원한 공습이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일본 해군은 그야말로 온갖 비난에 시달리며 해군에 대한 기대는 심해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해군이 비난당한 것은 해상경계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점[2]도 있었지만 역사상 단 한번도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았던 일본 본토, 그것도 '덴노가 거주하는 황궁이 있는 수도 도쿄가 대놓고 폭격당했다'는 점이 컸다. 본토에 폭격이 있다는 것은 일본에서 인계의 신인 덴노의 옥체가 폭탄에 상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주는 것이었다. 거기다 일본 군부는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에서 보듯이 해군과 육군이 완전히 분리되어 육군이 해군의 작전을 해군에 심어둔 스파이를 통해 알아낼 정도로 막장[3]이었으니, 육군이 해군을 공격할 최상의 떡밥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해군은 이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덴노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똑같은 방법으로 일본 본토를 다시 공격한다면 해군은 육군을 주축으로 한 반대파에게 그야말로 샌드백마냥 두드려맞을 판국이었다. 마음이 안절부절못하는게 당연하지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제서야 수뇌부는 야마모토 제독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야마모토 제독은 혜안을 가지고 이 안건을 제시한 것이었고 수뇌부가 그 선견지명을 무시한 까닭에 이 험한 꼴을 당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특히 체면 문제가 걸려있던 해군에서는 야마모토 제독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대본영에서도 큰 저항없이 이 작전을 채택했다. 더불어 육군에서도 정예연대를 편성하여 상륙부대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미군은 일본군의 다음 공세를 대비하면서 일본군을 기만하고 그 정보를 캐내기 위해 두 번의 낚시를 시도했다. 그리고 일본군이 그 때마다 낚여주는 바람에 대박.


3. 전투 준비

3.1. AF는 대체 어디지?

1942년 5월 20일 야마모토 제독이 발신한 통신문이 태평양 함대에서도 감청되었다. 일본 해군은 모든 통신문을 암호화하여 전달하고 있었고, 설령 감청당하더라도 해독하지 못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IBM에서 개발한 장치를 이용하여 암호문을 해독하고 있었고, 그 결과 일본군의 다음 공격 목표가 AF란 사실을 입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AF가 어디냐는 점이었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과 참모부는 미드웨이를 AF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본토의 높으신 분들 중에서는 하와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남태평양의 어느 섬을 지목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육군에서는 샌프란시스코라고 주장하면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었다.

이 때 로슈포르 중령의 암호 해독반이 계책을 냈다. 당시 미드웨이 섬에는 도청의 우려가 없는 해저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를 일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정기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내용을 무선으로 교신했다. 이 무선을 이용하여 미드웨이 기지에 약속된 통신을 보내도록 하고, 일본군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감청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미드웨이의 급수시설이 멀쩡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드웨이 방어군이 "해수 담수화 장치가 고장나서 식수가 부족하다"란 내용의 거짓 무전을 무선을 통해 '평문'으로 보내도록 해저 케이블을 통해 지시하였고, 그런 줄도 모르고 이 떡밥을 덥썩 물어버린 일본군은 이틀 뒤, AF에 식수가 부족함, 추후 해수 담수화 장치가 필요할 것이란 무전을 날렸다. 이 무전은 성공적으로 감청됐고 다음 공격목표가 미드웨이란 사실이 판명됐다.

당시 미드웨이는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최전방 요충지였다. 특히 동태평양에는 이렇다 할 섬이 없기 때문에 미드웨이가 무너지면 그 다음은 바로 하와이였고, 하와이가 무너지면 바로 미국 서해안이었다. 물론 하와이는 진주만 공습 직후 엄청난 수준의 요새화로 준비가 철저하긴 했지만, 만약 미드웨이에서 패전할 경우 서태평양의 제해권을 잃은 상태에서 망망대해의 한복판인 하와이는 고립무원이 되고, 이는 하와이 자체가 함락되는 것과는 별개로 사실상 전선이 미국 서해안까지 후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최악의 시나리오인 본토 침공까지 계산해야 했으며 이 지경까지 가면 미국 행정부의 전쟁 수행의지 자체에도 타격이 갈 것은 뻔했다.
따라서 미군은 이에 그 이전부터 요새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미드웨이가 공격지로 판명된 이상 더 많은 물자를 쏟아부어 방어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 섬에 주둔한 해군과 해병대 지휘관에게 필요물자 요청목록을 보내도록 지시하고는 그보다 훨씬 많은 물자를 보내고, 거기에 당시 중령이던 방어 지휘관들에게 격려 차원에서 대령 계급장을 보냈다. 여기에 버팔로, 와일드캣, 빈디케이터, B-17 등의 항공기도 있는대로 보냈다. 비행장 크기가 섬의 1/4을 차지하는 작은 섬에 항공기 124대가 북적거렸고, 대공포에 추가로 지뢰까지 떡칠해버렸던 탓에 설사 미 함대가 전멸한다 해도 미드웨이 섬을 점령하기는 힘들 것이란 예상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준비상황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당장 미 육군은 위에도 나왔다시피 미국 서부 해안이 위험하다며 대부분의 폭격기들을 손에 꼭 틀어쥔채, 미 해군이 요구했던 수량에 미치지 못하는 숫자만 미드웨이로 보냈다. 당시에는 나름 타당한 결정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조종사들은 태반이 풋내기들이었으며, 버팔로는 이미 열세임이 증명되었고 와일드캣 정도나 간신히 싸울 수 있었다. 빈디케이터는 조종사들에게 '바이브레이터'라고 놀림받을 정도로 기체의 노후화가 심해서 날개에 비닐 테이프를 붙여야 할 정도였다. 그나마 6기의 최신형 뇌격기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이 역시 조종사들은 대부분 신참들이었다.

3.2. 일본군을 기만하라

한편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남태평양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산호해 해전이 종료됐는데 니미츠 제독은 일본군을 기만하기 위해 두 번째 떡밥을 던졌다. 당시 보급문제로 진주만을 경유하느라 산호해 해전에 참여하지 못한 윌리엄 홀시 제독에게 모든 항공모함을 이끌고 일본군의 툴라기 기지로 진출하여 병력을 노출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의 의미를 이해한 홀시 제독은 충실히 그 명령을 수행했고 일부러 정찰기가 있는데까지 가서 대놓고 모든 병력을 보여줬다. 그 결과 일본군은 태평양 함대의 모든 항공모함이 남태평양 지역에서 작전중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더불어 남태평양에서 작전을 마친 항공모함 기동부대가 도착하자마자 니미츠 제독은 3일만에 보급과 정비를 마치도록 한후에 바로 미드웨이로 출격시켰다. 더불어 일본군의 주요 정찰 거점에 구축함을 파견하여 알박기를 시전했다. 당시 일본군은 비행정을 이용하여 미군의 동향을 정찰하고 있었고, 중간에 잠수함을 만나 급유를 받는 장소들이 있었는데 여기에 구축함이 버티고 있으니 정찰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전장에서 미국 항공모함을 발견할 때까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작전준비를 마치고 미드웨이에 파견된 미국 함대는 정규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9척, 경순양함 4척, 구축함 32척, 잠수함 19척이었다. 이 병력은 사실상 태평양 함대가 최대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었다. 게다가 알류샨 열도 지역에도 병력을 배치해야 됐고, 테오볼드 소장이 지휘하는 제8기동부대에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3척, 구축함 13척을 할애해야 했기 때문에 미드웨이에 투입된 병력은 훨씬 더 적었다. 일본군과 비교하면 명백한 전력 열세였기 때문에 니미츠 제독은 영국의 태평양 방면 항공모함 3척 중에서 1척을 빌려오려고 접촉을 했는데 막상 영국은 일본군의 다음 목표가 인도양 부근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항공모함 빌려준 것 때문에 인도양을 상실하면 댁들이 책임져줄거요?"란 반응이 돌아와 못 빌렸다. 렌드리스에 의지중이던 영국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앞서 언급한 실론 해전의 패배 등으로 인해 이 당시 인도 상실에 대한 영국의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태평양 지역 식민지들에 대한 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인도만이 영국이 보유한 유일한 돈줄이었다. 만일 인도까지 잃게되는 상황이 됐을 경우, 나치 독일의 공습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피폐한 경제상황이 그야말로 헬게이트급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 외에 개전이래 항공모함 작전을 지휘해오던 홀시 제독이 피부병을 얻어 병상에 눕는 바람에 프랭크 플레처 제독이 총지휘를 맡았고, 홀시 제독이 지휘하던 부대의 지휘는 레이몬드 스프루언스 제독이 지휘하게 됐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철저하게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는 미군의 목표는 한 가지.

일본 항공모함을 격멸한다!

3.3. 대체 이길 마음은 있나요?

그야말로 이기기 위해 있는 방법 없는 방법을 다 동원한 미군과 달리 일본군의 상태는 그야말로 개판오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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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억지로 우겨서 결과 고친다고 실전에서 안 그럴 것 같냐?
우기는 것도 우기는 거지만 마지막 장면의 반응은 도대체......
덤벼라 양키! 나 아카기는 실은 폭탄 한 발만 맞아도 격침된다!!

특히 작전 수립단계에서 미드웨이 공격계획 작성 전에 실행한 모의전에서 미드웨이 기지에서 발진한 미군 공격기의 공격에 기함인 아카기(카가라는 설도 있다)가 어뢰 9발을 얻어맞고 격침된다는 결과가 나오자, '배 한척이 어뢰를 이렇게 한꺼번에 얻어맞을리가 없잖아'라는 연합함대 참모장 우가키 마토메의 주장으로 결과를 3발 명중, 소파로 고치고선 계속해서 모의전을 진행했다는 일화가 유명. 일단 미드웨이 기지의 항공기들은 일본함대에 전혀 피해를 입히지 못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이런 발로 굴린 시뮬레이션도 맞아떨어지긴 했다. 다만 실제 전투에서 문제가 된 것은 미드웨이 기지에 이어 공격을 개시한 미해군의 항모(…). 이 모의전도 결국 미드웨이의 공략 자체는 성공했으나, 몇몇 함이 연료부족으로 좌초되는 등 상당히 볼썽사납게 끝이 난 모양. 근데 '실전에서는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하자' 한마디로 땡이었다고.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무리한 모의전을 진행했는지는 불명이나, 당시 미드웨이 공략을 좀 더 뒤로 미뤄야 한다는 반대파들[5]이 있는 상황에서 미드웨이의 조기공략으로 전쟁을 빠르게 끝내야 한다는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주장을 밀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겠냐는 추측이 있다.

일단은 아카기의 피격탄을 바꾼 후에 당연히 실제로 9발을 맞으면 어쩔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일본으로써는 그런 식으로 항공모함이 침몰시에는 이길 도리가 없으니 이 워게임은 의미가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일단 워게임의 명중은 주사위로 결정하니 어뢰를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고 다시 할시엔 결과도 달라진다.) 어쨌건 간에 위의 만화처럼 농담처럼 바꾸지는 않았고 아래에서도 반발이 꽤나 있었다는 것이 현재 정설이다. 저 정면은 만화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항공모함의 굉침을 감당하지 못할 국력으로 미국과 맞선 것이 가장 큰 패인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게다가 진주만 공습을 앞두고 철통보안을 자랑하며 미군을 골탕먹인 것과는 달리 그야말로 보안 따위는 엿 바꿔먹은 행동을 보여주었다.

출항을 앞둔 군함의 승조원들은 "우리 미드웨이 레이드 갑니다"를 떠들고 다녀 스파이들도 어렵지 않게 그 정보를 캐낼 수 있는 수준이었고, 병력이 배치되는 과정에서 야마모토 제독은 아예 무선으로 모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왜 그래요 안 그러시던 양반이... 게다가 군함들끼리도 무선통신을 통해 미드웨이를 떠들고 다녔다. 그중에서 압권인 것은 어떤 군함에서 이번 작전이 끝난 이후 승조원들의 편지 주소를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자 다른 군함에서 미드웨이라고 답변할 정도였다. 상황이 이랬으니 미군은 통신감청을 통해 상당한 양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지만 앞서 낚시를 통해 미드웨이란 사실을 알아낸 태평양 함대 사령부를 헷갈리게 만들었으며 워싱턴이나 영국군도 "비열한 쪽발이들이 페이크를 치고 있다."면서 니미츠 제독을 압박했다.

물론 일본군도 바보가 아니기에 이런 통신들은 대부분 암호문으로 보내고 있었으나, 일본군에게는 불행하게도 당시 미군은 정보분야에 투자를 엄청나게 했고, 결국 일본군의 암호(전략암호 D)를 상당히 해독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군 지휘부는 적어도 일본군 참가 함장만큼의 작전 개요는 파악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미드웨이 작전 직전에 암호를 바꾸기는 했지만, 미군의 정보당국은 일본군의 암호 교신 패턴을 거의 파악하고 있어서 미드웨이 해전 중 일본 해군에게 일어난 대강의 상황은 짐작할 수 있었다.[6]

일본군은 작전에 참가하는 전력을 4개의 부대로 나눠서 나구모 주이치 제독이 지휘하는 제1항공함대(각각 정규 항공모함 2척씩으로 구성된 제1, 제2 항공전대를 묶어서 구성), 알류샨 열도 방면을 공격할 북방함대, 미드웨이 상륙을 위한 침공부대, 야마모토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본대로 편성했다. 일본 함대의 규모는 정규 항공모함 5척, 경항공모함 3척, 전함 11척, 중순양함 13척, 경순양함 9척, 구축함 65척의 거대한 세력으로 여기에 잠수함 22척과 수상기 모함, 소해정 및 기타 보조함정들을 합치면 거의 200척에 가까운 대함대였다. 특히 본대에는 당대 최강의 전함인 야마토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각 부대들의 배치였다. 목표지역의 거리가 있는 북방 함대를 제외하더라도 부대를 굉장히 넓은 간격으로 배치했는데, 이 때문에 이후 전투에서 어느 한쪽이 공격받고 있어도 나머지 전력이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실제로 항공모함들이 당한 이후에 전함으로 야간공격을 시행하려고 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미 해군을 따라잡지 못했다. 연합함대 수뇌부 및 야마모토 사령관을 태운 야마토는 항공함대 후방 500km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항공전이 예상되는 해역에 야마토를 이렇게 이끌고 나온 것은 전혀 쓸모없는 일이었다. 파동포를 쏘려고 했나. 결국 이 200척에 달하는 함정 중 실제로 미드웨이 전투에 투입된 함정은 아무리 많게 잡아봐야 그 1/10 정도였다.

일본 해군이 이렇게까지 느슨한 자세로 싸움에 임한 것은 진주만 기습 이후로 계속된 일방적인 전투를 거치면서 미군이 잔뜩 쫄아있을거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야마모토는 미드웨이가 점령되고 나서야 미 해군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일견 어이없어 보이는 부대배치 또한 이를 감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야마모토를 비롯하여 일본군은 그 누구도 미군은 전혀 쫄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역사가들은 이를 두고 승리병이라고 일컫는다. 당시 일본군의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자만심에 대한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이러한 일본 해군의 안일함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진주만 공습 당시 제1, 제2 항공전대와 함께 제1항공함대를 구성했던 제5항공전대(쇼카쿠, 즈이카쿠)가 이 작전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들 역시 제1항공함대의 일원으로 미드웨이 침공작전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드웨이 침공을 위한 육군과 해군간의 작전 조율과정에서 미드웨이 침공을 돕는 대신에 호주와 미국 사이의 연결선을 차단하려는 MO 작전에 2척의 항공모함을 지원해주기로 함에 따라 먼저 전장에 나가게 된 것이다. MO 작전은 산호해 해전으로 이어졌고, 이 전투에서 제5항공전대 소속 항공모함들이 저마다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전열에서 이탈하게 되면서 결국 미드웨이 침공 불참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중 즈이카쿠의 경우 쇼카쿠와 달리 함 자체의 피해가 비교적 가벼웠으므로 함의 수리를 서두르고 큰 피해를 입은 기존의 항공대 대신에 다른 항공대를 배속시키면 작전 투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과 그에 배속된 항공대를 일체화된 존재로 취급했기 때문에 항공대가 항공모함을 옮겨다니며 작전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마치 전함의 본체와 주포와 같은 관계로 본 것이다. 이러한 경직된 사상 덕에 여차하면 투입이 가능했던, 일본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항공모함 1척이 중요한 전투의 순간에 발이 묶여있었다. 설령, 이러한 사상이나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야마모토 제독을 비롯한 군 상층부에서 전력을 최대한 끌어모으려는 생각이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즈이카쿠를 완편 상태로 참가시켰을 것이지만, 야마모토 제독을 비롯한 군 상층부는 즈이카쿠를 미드웨이 침공에 참가시키려는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빈사 상태로 돌아온 요크타운을 긴급 수리해서 억지로 참전시켰던 미 해군의 행보와 매우 대조되는 장면이다.[7] 또한, 그때까지 일본 해군이 진주만 공습을 비롯한 서전에서 거둔 화려한 전과와 산호해 해전의 결과로 인한 MO 작전의 실패가 하나같이 항공전력의 숫적우세와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행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일본 해군 안에는 불안요소가 산재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를 인식한 사람이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 25일부터 각 함대들의 출항이 시작되면서 MI 작전(미드웨이 공략 당시 일본의 작전명)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5월 말, 6월 초에 이르러 위에서 언급된 미군의 부산하고도 수상한 움직임(비록 항공모함을 직접 포착한 것은 아니지만)이 계속 포착되면서 미군이 일본군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정보가 야마모토에게 전달되었다. 앞서 가는 나구모 역시 이 정보를 알고 있었으나, 야마모토와 나구모 모두 이 정보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해당 정보를 접수한 본대에서 제1항공함대와 연락하려다가 "나구모 제독도 통신을 들었을 것이니 굳이 본대의 위치를 노출시킬 필요는 없다."는 진언을 받아들여서 제1항공함대에 정보를 보내지 않았는데,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나구모 제독은 기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무선봉쇄 덕분에 이 정보를 듣지 못했으며 결국 이것이 커다란 패착이 됐다는 것이 통설이었으나, 최근 연구결과로는 나구모도 이 내용을 이미 알았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렇게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 이유는 미리 짜놓은 계획이 헝클어지는 것을 원치 않은데다, 미드웨이와 하와이 사이에 미리 배치해둔 잠수함들이 미군 항공모함의 접근을 알려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 잠수함들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게다가 이 잠수함 부대의 지휘관은 미드웨이 공격작전에 별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가 뒤늦게 잠수함 부대를 전개했는데, 제때 전개했어도 이미 늦었다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전개가 늦었다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

4. 양군 편제

4.1. 일본군

일본 해군 연합함대 - 정규 항공모함 5척, 경항공모함 2척, 수상기모함2척, 전함 11척, 중순양함 13척, 경순양함 9척, 구축함 65척, 잠수함 22척, 함재기 248기, 수상기와 비행정 16기 [8][9]

4.2. 미군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7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6척, 잠수함 16척, 함재기 233기, 육군소속의 육상기 127기

  • Task Force 16(제16임무부대) - 레이먼드 A. 스프루언스 소장
    • TG 16.5 Carrier Group
    • TG 16.2 Cruiser Group
      • CruDiv6(제6순양함분대) - 토마스 C. 킨케이드 소장
        • 중순양함 5척 - 펜사콜라(CA-24), 빈센스(CA-44), 뉴올리언스(CA-32), 미니애폴리스(CA-36), 노스햄튼(CA-26)
        • 경순양함 1척 - 애틀란타(CL-51)
    • TG 16.4 Destroyer Screen
      • DesRon1(제1구축함전대) 구축함 9척 - 펠프스(DD-360), 모너헨, 위든, 아일윈, 볼치, 커닝엄, 베넘, 엘릿, 모리
    • Task Force 16 Oiler Group
      • 구축함 2척 - 듀이(DD-349), 몬신(DD-436)
      • 함대 유조선 2척 - 시마론(AO-22), 플랫(AO-24)

  • Task Force 17(제17임무부대) - 프랭크 J. 플레처 소장
    • TG 17.5 Carrier Group
      • 항공모함 1척 - 크타운(CV-5)
    • TG 17.2 Cruiser Group
      • 중순양함 2척 - 아스토리아(CA-34), 포틀랜드(CA-33)
    • TG 17.4 Destroyer Scree
      • DesRon2(제2구축함전대) 구축함 6척 - 함만, 휴즈, 모리스, 앤더슨, 러셀, 그윈

  • 잠수함 부대 - 미해군 태평양 함대 잠수함 부대 사령관 로버트 H. 잉글리시 소장
    • TG7.1 (잠수함 12척) - 캐셔럿, 플라잉 피시, 탐보, 트라우트, 그레이링, 노틸러스(SS-168), 그루퍼, 돌핀, 가토(SS-212), 커틀피시, 거전, 그레너디어
    • TG7.2 (잠수함 3척) - 나왈(SS-167), 플런저, 트리거
    • TG7.3 (잠수함 4척) - 타펀, 파이크, 핀백, 그라울러


5. 전투

5.1. 전초전

1942년 6월 3일 오전 8시, 알류샨 열도의 더치 하버에 공습이 감행되었다. 그리고 애투섬과 키스카섬에 대한 상륙작전도 병행됐는데, 미군의 저항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방에 파견된 제8기동부대의 사령관 테오볼드 소장은 "일본 놈들이 알래스카를 공격할 것이다."라면서 부대를 엉뚱한 곳에 배치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양측 모두 별다른 손해없이 공습이 마무리되었다.

한편 이 소식을 전해들은 태평양 함대 사령부는 일본군이 자신들이 예측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 만족하고 미드웨이에 일본함대가 곧 출현할 것이므로 정찰을 강화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6월 3일 오전 9시, 미드웨이에서 파견된 정찰기가 일본군의 상륙부대를 발견했다. 정찰기와의 접촉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나구모 제독은 그냥 보고만 올리고 말았으며 다음날 새벽에 미드웨이를 공격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장 먼저 B-17 폭격기를 동원하여 일본 함대를 폭격하였으나 수평폭격의 한계로 인해 실패했다. 당시 미국이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노던 폭격조준기조차 원형공산오차(CEP) 30m로 사실상 선박을 맞추는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어서 어뢰를 탑재한 카탈리나 비행정을 동원하여 새벽 1시경 다나카 라이조 제독의 수송함대에 뇌격을 가해 수송선과 유조선에 피해를 주었다. 하지만 속도가 떨어지는 수준의 피해였으며, 작전참여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5.2. 미드웨이 기지와의 공방전

6월 3일 새벽 3시를 기점으로 일본 해군과 미드웨이 방어군은 각각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새벽 4시, 미드웨이에서 전투정찰 임무를 띤 카탈리나 비행정과 F4F 와일드캣들이 이륙하여 일본 함대 수색에 나섰으며, 새벽 4시 30분에는 일본군에서 제로센, 급강하 폭격기, 뇌격기 등이 이륙하여 미드웨이로 출동했다. 이때 나구모 제독은 노련한 조종사들을 후위로 뺀 다음, 경험이 적은 조종사들을 1파로 보냈다. 이때 항공대 지휘관으로 내정된 후치다 미츠오 중좌는 맹장염 수술을 받았기에 항공기 탑승이 불가능했고, 그 대신 자신이 신임하는 부하인 도모나가 대위를 대신 추천했다.

한편 미국 항공모함이 출현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나구모 제독은 정찰기들을 발진시켰으며, 일부 전력은 함선공격용 철갑탄을 무장하여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문제는 20기나 정찰에 투입한 미군과는 달리 딸랑 8기만 날렸다. 그 넓은 해역[14]에서 미군 항공모함을 발견하기 위한 정찰기 숫자로는 매우 부족한 수준이었다. 한편, 중순양함 토네에서 발진시키기로 되어있던 정찰기가 캐터펄트 고장으로 발진이 30분 늦어졌고 이것은 나중에 일본군이 패배하는 원인의 하나로 꼽혀왔다.

새벽 5시 30분 초계에 나선 정찰기가 미드웨이로 날아가는 일본해군 항공대를 발견했고, 그 25분 후에는 다른 정찰기가 일본 제1항공함대 제2항공전대(소류, 히류가 포함된)를 발견하여 보고를 올렸다. 이 당시 미국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제1항공함대의 동북쪽 320km 지점에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총지휘관이던 플레처 제독은 일본의 항공모함이 다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꿔서 자신이 이끄는 CV-5 요크타운은 나머지 2척의 항공모함에 대한 예비대로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스프루언스 제독에게 CV-6 엔터프라이즈와 CV-8 호넷을 동원하여 남서쪽의 일본함대를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따라 스프루언스 제독은 약 250km 거리까지 접근한 후에 공격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함대를 이동시켰다.

6시가 되자 미드웨이의 레이더에서도 일본군 대편대가 탐지되었고, 미드웨이의 모든 폭격기, 공격기 전력들은 일본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곧바로 출격했다. 15분 후 일본군 편대가 미드웨이 인근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자 미리 상공에서 대기중이던 F2A 버팔로와 와일드캣들이 기습적인 공격을 가하여 2기를 격추시켰지만 곧이어 제로센들이 반격에 나섰다. 결국, 미드웨이의 전투기 부대는 편대장 팍스 소령을 비롯한 많은 조종사들이 희생당했고 살아남은 조종사들의 전투기도 엄청난 손상을 입는 등 완전히 박살났다.

별다른 손실을 입지 않은 도모나가 대위의 부대는 미드웨이 섬을 맹폭했지만 곧 미군의 저항에 부딪쳤다. 불행하게도 섬이 쑥대밭이 되었고 수비대 인원이 많은 피해를 입는 상황이었지만[15] 활주로는 의외로 멀쩡했고 이미 수비대 전원은 콘크리트 방공호로 대피한 상태였다. 미군 수비대의 피해는 전사 11명, 중경상 18명으로 집계되었다. 성공적으로 수비대 인원 전원이 대피한 상태였다. 우리 왜 폭격한거지??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작은 섬 전체에 대공포 떡칠이 된 상태라 섬 자체가 대공사격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라서 이상하게도 다량의 대공기관총, 대공포 물량과 단단한 참호로 인해 일본군 편대 절반이 몰살되고 말았다. 만일 이때 일본군 전함들이 근처에 있어 함포사격으로 지원했다면 이미 게임오버였을테지만, 이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파동포 쏘기 게다가 일본군은 미드웨이 점령 후 비행장을 날로 먹을 요량으로 살살 폭격하는 패착까지 범했다.

7시를 전후로 마무리된 공격의 성과를 관찰한 결과, 미군의 저항이 심해 2차 공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도모나가 대위는 함대에 2차 공격이 필요하다고 타전했다.

비슷한 시간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공격대들이 일본함대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VT-8(제 8 뇌격비행대)소속 TBF 어벤저 6대[16]와 육군항공대 소속 B-26 4대로 모두 뇌격을 실시했으나 각각 5대,2대의 피해를 입은 채 공격에는 실패했다. 이들이 물러난 뒤인 7시 55분경 로프톤 헨더슨 소령[17] 이끄는 SBD 돈틀리스 부대가 일본 제1항공함대 상공에 도착하여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함대 상공을 초계하던 제로센에 걸려서 공격대의 절반이 격추당한 끝에 공격은 실패했다. 이어서 8시 30분경에 구형 빈디케이터 급강하 폭격기들이 도착했으나 이들 역시 피해만 입은 채 공격에 실패했다. 핸더슨 공격대와 빈디케이터들이 박살나던 동안 B-17 폭격기들이 수평폭격을 가했지만 역시 앞서 언급한 이유로 인해 실패했다.[18] 종합하자면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일본 함대의 상황은 거의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미군 조종사들의 공격에 대해 회피기동을 하느라 그때마다 함상에서의 작업이 중지됐으므로 안그래도 모자란 시간을 잡아먹고 말았다. 덤으로 그 와중에 끼어든 미군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잡으러 다니느라 항공모함, 호위함정 할 것 없이 함대 진형이 죄다 흐트러지고 말았다. 거기에다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의 공격과 이들을 막으려는 제로센들의 요격이 진행되는 와중에 1차 공격대가 함대 상공에 도착해서 착함을 기다리는 등 바다와 하늘 모두 정신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미군처럼 무전기와 레이더가 충실하고 별도의 통제시설까지 갖췄다면 아군 함정들과 항공기들을 적절히 통제하며 이런 상황에 대해 대응 가능했을지도 몰랐지만, 당시 일본 함대의 통제수단은 수신호, 발광신호, 조명탄, 연막이 전부였고 통제시설이라곤 일본항모 특유의 좁아터진 함교 뿐이었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은 제1기동함대 수뇌부들의 상황 파악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하나 주목할 점은 이 때 일본함대가 거둔 전과는 모두 제로센에 의한 것이었고 대공포화에 의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미군조종사들은 대부분 신참들이어서 대공포화를 제대로 회피할만한 수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게 더 큰 문제였다. 이 빈약한 대공포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본함대에게 비극의 단초가 되고 만다.

5.3. 미국 항공모함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한편 나구모 제독은 2차 공격을 위해 당시 대기중이던 공격대에서 함선공격용 무기들을 철거하고 육상공격용 폭탄 장착을 지시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아까 늦게 출발했던 정찰기가 플레처 제독이 지휘하던 17기동부대를 발견하고 보고를 올렸지만 함종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게다가 무전기 고장으로 보고가 늦게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나구모 제독은 15분 가량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 일단 제1항공전대(아카기, 카가가 포함된)에는 무장전환작업을 중지하고 적의 함종을 파악할 것을 지시했다.

그 사이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미군 공격대의 습격이 이어졌지만 역시 기량 부족이었던 까닭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폭탄이 날아오기 때문에 회피기동을 해야 했으므로 그 때마다 항공모함에서는 무장전환 작업이 잠시 중단되는 등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핸더슨 공격대의 공격이 끝났을 무렵 아까 그 정찰기가 추가로 "항공모함은 없었다"라는 보고를 올린 덕분에 나구모 제독은 안심할 수 있었으며 무장전환작업 재개를 지시했다. 그런데, 정찰기에서 다시 "항공모함 1척을 봤던 것 같다"고 보고를 번복하는 바람에 나구모 제독과 참모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미드웨이에서 파견한 공격부대(빈디케이터, B-17)가 또 나타나면서 대응할 시간을 더 뺐겼다.

제1항공함대의 우선 목표는 미국의 항공모함 격멸이었고, 발견되었으면 공격을 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당시 미드웨이 공격에 나섰다가 귀환한 1차 공격대가 함대 상공에 도착해 있었고, 함상에 있던 2차 공격대는 육상공격용 폭탄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때 일단 닥치고 비행기부터 띄운 다음 미드웨이에서 귀환하는 1차 공격대에 함선공격용 무장을 달았어야 했는데, 그 대신에 2차 공격대의 무장을 전환하는 사이 1차 공격대를 수용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가 이전까지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이는 당시 일본함대가 처한 상황과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항공모함과 함재기의 운용 과정, 당시 전술적 상황을 간과한 주장이다.
함재기의 발진 과정에 필요한 절차들(무장, 급유, 이동, 엔진 예열, 기타 등등)을 아무리 서둘러도 당시 일본의 항공모함과 함재기로서는 1차 공격대의 귀환 이전에 함재기들을 출격시킬 수 없었다. 정찰기의 보고를 접수한 직후 바로 출격지시를 내렸어도, 함재기들의 출격이 완료될 때까지 도모나가 공격대는 최소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도 귀환하는 기체들이 멀쩡하고, 적의 공격이나 기타 지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실제로는 1차 공격대의 함재기 중 다수가 심한 피해를 입어서 한시바삐 착륙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미군의 추가공격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함대 방공을 위해 전투기들을 수시로 띄워야 했다. 또한, 적기가 전투기들의 방어를 뚫고 공격하면 이를 회피하기 위해 항공모함이 급기동을 할 수밖에 없으며 함재기의 이착함은 당연히 불가능해진다. 이 때는 비행갑판위에 계류되지 않은 비행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 된다. 더군다나 위에 나왔다시피 함종, 규모, 위치 모든 게 불확실했으므로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함재기들을 보냈다가 허를 찔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여러가지 사정들이 맞물린 탓에 그 시점에서는 공격대를 발진시킬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것 저런 것 다 무시하고 함재기를 날려보냈다 한들 그 시점에서는 이미 늦었다. 정찰기의 보고가 들어온 시점에서 이미 미군 함재기들은 일본 함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찌되었건 간에 이후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들이닥쳤을 때, 비행갑판 아래의 격납고 안에는 연료와 무장을 가득 채운 함재기들이 들어차있고, 각종 무장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격납고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명중률은 높으나 뇌격에 비해 낮은 파괴력을 가진 급강하 폭격[19]임에도 불구하고 이 함재기들과 폭탄들이 유폭해서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만약 이렇게 유폭이 없었다면 일본의 항공모함 중 절반 정도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5.4. 미국 함대의 공격

오전 7시, 일본군을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도착한 미국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그 즉시 공격부대를 발진시켰다. 이 무렵 스프루언스 제독도 한 가지 삽질을 하고 있었는데,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이룬 후에 공격하러 가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이는 엔터프라이즈 중심의 16기동부대가 항공모함간의 전투를 해보지 못한 탓이 컸다. 반면 요크타운은 날아가면서 편대를 형성하도록 지시를 해둔 상황이었다. 더불어 일본 항공모함에서 파견한 공격대에게 공격당할 우려가 있었으므로 미처 제독이 지휘하는 호넷 중심의 18기동부대에게 멀리 분리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세 척이 각각 활동했으며, 그 결과 일본 함대의 타격력 분산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발진시키고 있던 엔터프라이즈에서 돈틀리스 몇 대가 말썽을 부려 출격이 늦어지자 다급해진 스프루언스 제독은 그냥 기다리지말고 공격에 나서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상공에서 대기중이던 항공기들은 그 즉시 일본 함대를 찾아 비행을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 이외에도 각 항공모함에서 항공기들이 발진하여 152기에 달하는 대규모 편대가 형성되었다.

한편, 앞서 제 1 항공함대를 노렸다가 호위함정들의 공격을 받고 물러났던 미국의 잠수함 SS-168 노틸러스[20]는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다가 또 다시 재수없게 걸렸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기회를 엿보던 노틸러스가 아라시를 발견했는데 그대로 가면 아라시에게 포착당할 상황이라 선제공격을 했으나 유효타를 주지 못해서 구축함 아라시의 폭뢰 공격을 피해 잠수해야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다시 살짝 부상했으나, 아직 아라시가 남아있어서 별 수 없이 다시 잠수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아라시는 본대에서 뒤처지게 되었고 황급히 본대를 따라 항해를 시작했다.[21]

한편 미군 비행부대는 날아가면서도 삽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우선 호넷의 제8뇌격기 대대를 이끌던 존. C. 월드론 소령[22]이 적의 예측지점으로 비행하자고 제안했지만 호넷 비행대의 총지휘관인 링 중령이 기각하면서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링 중령이 계급빨과 직위빨로 부대의 지휘권을 잘 잡고 있었겠지만, 평상시 링 중령은 권위주의적으로 부하를 통솔했고(대표적으로 자신이 사관실에 들어왔을때 일어나지 않은 조종사들을 육지로 내쫓았다.), 이로인해 부하들의 불만이 상당했으므로 부대의 통솔력이 미약했던 상태였다.

결국 링 중령과 부하들간의 불화는 미드웨이에서 부하들이 단체로 항명하는 사태로 번지게 되었다. 당장 월드론 소령이 독단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전력이 분리되어 버렸다. 이때 월드론 소령은 링 중령에게 "Well, the hell with you."라는 말을 남겼다. 오늘날 표현으로 말하자면 "XX드쇼." 혹은 "F*** you!" 정도의 표현이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험악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와중에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전투비행대가 호넷의 뇌격기부대를 자신이 쫓아가야 될 부대로 오인하고 쫓아가는 바람에, 엔터프라이즈 뇌격비행대는 호위없이 단독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게다가, 엔터프라이즈의 전투비행대는 호넷의 뇌격기 부대마저 놓쳐버렸고, 전투가 진행되는 내내 엉뚱한 곳을 맴돌게 된다. 결국 뇌격기 부대는 전원이 전투기 호위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후 비참한 결과를 맛보고 말았다.

어찌됐든 호넷의 뇌격비행대가 처음 일본 함대를 발견하고 뇌격에 돌입하였다. 하지만 전투기 호위도 없었고 워낙 주옥같은 미국의 항공어뢰 때문에 아무런 성과도 없이 모두 격추당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2차대전 중반까지 미 해군의 항공어뢰든 잠수함용 어뢰든 형편없는 어뢰의 신뢰성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이다. 어뢰 투하조건은 저속에 저고도로 똑바로 비행해야 하는 등 지나치게 까다로워서 뇌격기들을 적기와 대공포화에 고스란히 노출시켰고, 그렇게 투하한 어뢰도 엉뚱한데로 항주하거나, 불발이 속출했다. [23] 게다가 링 중령이 일본 함대의 위치와 함종을 자세히 보고하였지만, 호넷의 모든 비행대가 같이 움직이고 있다고 판단하여 그 어디에도 중계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호넷의 나머지 비행대는 엉뚱한 곳을 맴돌다가 그냥 귀환했다. 제8뇌격기 대대에서는 조이 게이 소위만이 살아남았다.

뒤를 이어서 엔터프라이즈의 뇌격기 대대도 도착하여 뇌격에 돌입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전투기 호위가 없었고 전투기 지원을 애타게 요청했지만 하필 당시 근처에 있던 전투비행대는 연료가 떨어진 바람에 도와줄 수 없었고, 뇌격기들은 모두 격추당했다.

곧이어 요크타운의 뇌격기 대대가 도착해서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호위 전투기들도 제대로 도착하여 존 S. 태치 소령의 지휘에 따라 타치 위브 전술을 선보이면서 그런대로 뇌격기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주옥같은 항공어뢰가 역시나 형편없는 신뢰성을 보여주었고 호위전투기 또한 열세였던 까닭에 일본 군함에 이렇다할 피해를 주지 못했다. 결국 이 공격대도 제로센의 요격에 걸려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들 뇌격기 덕분에 일본해군은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빼앗기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뇌격기들을 요격하기 위해 방공전투기들이 모두 저공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이 게 극적인 반전의 계기 중 하나가 된다. 훗날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당시 일본 함대의 고위 지휘관들은 미군의 목숨을 건 공격에서 사무라이를 연상했다고 술회했다. 정신력에서 미군이 질 줄 알았냐

한편, 뇌격기 대대의 파상공격에 정신이 팔려있던 그 때,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사이에 웬 급강하 폭격기 부대가 일본 함대 상공에 도착했다!

5.5. 운명의 5분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급강하 폭격기 비행대는 일본 해군이 있을 곳으로 예상된 지점에 도착하였지만, 일본 함대가 이미 변침해버린 관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편대의 지휘관을 맡은 C. 웨이드 맥클러스키 소령의 지시로 부하들은 돈틀리스의 본래 순항속도보다 빠른 190노트의 속도로 날아갔기 때문에 연료가 슬슬 간당간당해질 때였다. 그 때문에 남서쪽으로 더 비행을 해보기로 결정하고 그래도 안 되면 모함으로 귀환하기로 결정했는데, 때마침 운좋게도 가느다란 항적이 하나 발견되었다. 이 항적을 따라가면 일본 함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맥클러스키 소령은 추적을 시작했는데 이 항적을 남긴 배가 바로 아라시였다.[24][25]

이들이 일본 함대의 상공에 도착한 것은 요크타운의 뇌격기 대대가 공격을 막 시작하던 시점이었는데, 그 덕분에 제로센들은 모두 해수면 근처로 내려가 있어서 그들을 저지할 전투기 세력도 없었다. 상공을 감시하던 견시들도 모두 저공에 있던 미군 뇌격기들에 익숙해진터라 고공에 있던 급강하 폭격기들을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

최적의 공격 위치에 있었던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 부대는 카가를 먼저 공격하였다. 미드웨이의 조종사들과는 달리 스스로 베테랑이라고 자부할 만큼 경험많은 조종사들이었기에 그야말로 완벽한 급강하 폭격을 선보였으며, 2개 비행대[26]가 한꺼번에 덤벼드는 통에 결국 카가는 회피기동에도 불구하고 여러발의 폭탄이 명중했다. 카가에 대한 명중탄은 공식적으로 4발이지만, 워낙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얻어 맞다보니 얻어맞는 쪽은 물론이고, 때린 쪽도 정확하게 몇 발이 명중했는지 모를 지경이었으므로 실제로는 10발 전후로 명중한 것으로 역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 연료와 무장이 만재된 전투기,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무장들이 유폭을 일으키면서 카가의 비행갑판과 격납고가 절반 이상 날아가고 남은 구역들도 불지옥으로 돌변했다. 이 와중에 함교도 직격탄을 얻어맞았고, 이 때 카가의 지휘부는 몰살당하고 말았다.[27] 이 때문에 카가는 본 해전에서 격침당한 일본 항모들 중 최대의 인명피해를 기록하게 된다.[28]

카가가 얻어맞는 사이, 카가와 비교적 가까이 있던 아카기는 운 좋게도 이들 급강하 폭격기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유 인즉, 원래 폭격 수칙대로 하자면 맥클러스키 소령의 비행대가 가장 마지막 순서로 아카기를 공격하고 공격 장면을 촬영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대함 공격의 경험이 부족했던 탓인지, 비행대 지휘관 맥클러스키 소령은 혼란스러운 통에 이 수칙을 못 떠올렸고, 가장 먼저 발견한 카가를 향해 급강하를 시작해 버렸으며, 나머지 휘하 폭격기도 카가 쪽으로만 갔다. 원래 수칙대로라면 맥클러스키 비행대의 뒤를 따르던 리처드 홀시 '딕' 베스트 대위가 지휘하는 비행대가 카가를 공격해야 했고, 실제로 이들 비행대들도 대부분은 맥클러스키 소령의 편대와 상관없이 카가로 몰려가 버렸다.

이렇게 아카기는 운 좋게 살아남는 듯 했으나......

제대로 된 수칙과 공격 순서를 기억해낸 베스트 대위가 뭔가 일이 꼬였음을 깨닫고, 그 즉시 편대원 둘을 데리고 빠져서 아카기를 공격하러 갔다. 그리고, 이들이 아카기의 운명을 바꿔 버렸다.
첫 번째 공격은 빗나갔고, 두 번째로 프레드릭 T. 위버가 폭격을 감행했지만 빗나갔다. 그러나 이 일격은 선체 바로 근처에서 터지면서 아카기의 키를 고장내 버렸다. 덤으로 비상시 탄약고를 침수시켜 유폭을 방지하게 하는 물펌프도 고장내 버렸다. 그리고 베스트 대위가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는데, 베스트하게도 비행갑판 한복판을 관통하고 격납고 안에서 폭발했다[29] 이 폭발로 아카기의 소화장치와 방화 커튼이 망가졌으며, 바로 옆에 있던 무장을 만재한 뇌격기들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이 폭발은 다른 항공기와 무장을 유폭시켜 아카기를 불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30]

때마침 맥스 레슬리 중령이 이끄는 요크타운 소속의 급강하 폭격기 대대도 거의 비슷한 시점에 소류에 공격을 가해 3발을 명중시켰고, 결국 소류도 나머지 두 척의 항공모함과 마찬가지 꼴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히류는 급강하 폭격기들의 공격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히류 역시도 요크타운의 뇌격기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던 상황이라서 아군의 참화를 두 눈 뜨고 봐야만 했다.[31]

아카기에 탑승하고 있던 나구모 제독은 간신히 탈출하여 경순양함 나가라로 사령부를 옮겼다. 그리고 불과 5분만에 금쪽같은 항공모함 3척을 말아먹은 현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아 그대로 드러누워 아베 히로아키 소장에게 지휘권을 넘겼다...는게 익히 알려진 이야기지만 사실은 나구모가 계속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나구모는 자신의 주특기였던 수뢰전[32]을 실시하기 위해 미군 함대를 향해 자신의 함대를 전진시켰다. 미국 함대도 자신들처럼 수상함으로 최후 결전을 벌이러 접근할 것이라고 믿은 탓이었다. 나구모가 미군 함대와 직접 멱살잡이 하겠다고 나서면서 그나마 자신에게 남은 1척의 항공모함 히류는 안중에도 없던 그 때, 히류에 타고 있던 제2항공전대장 야마구치 다몬 소장은 히류의 함재기들에게 미국 함대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5.6. 마지막 공방전

히류에서 발진한 공격부대는 정찰기가 보고했던 지점으로 날아가려고 했지만 마침 귀환하는 미국 공격부대가 보이자 그들을 추적했다. 그들은 요크타운 소속의 비행대였고 그 때문에 요크타운이 공격받게 되었다. 한편 함재기들을 수용하고 있던 요크타운은 일본 공격부대가 레이더에 나타나자 즉시 모든 함재기 수용작업을 중지하고 방어준비에 나섰다. 그리고 요크타운 상공으로 날아온 항공기들은 모두 엔터프라이즈로 보내버렸다.

레이더 덕분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전투기들이 원거리로 마중나가 저지하였으며, 실제 18기의 급강하폭격기 중에서 11기를 격추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요크타운의 대공포에 2기가 더 격추되었지만 폭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공격에 대비하여 연료관에는 비내연성 기체인 이산화탄소를 연료관이 터질정도로 빵빵하게 집어넣었고, 무장들을 안전한 곳으로 치우면서 최대한 신관을 제거했고 일부 폭탄들은 신관만 쑥 뽑은채 바닷속에 버리기도 했다. 특히 단가 높은 큰 폭탄들이 대상이었을 정도로 확실한 조치를 미리 완료했으므로 일본 항공모함과 같은 꼴을 겪지는 않았다. 다만 1기의 폭탄이 하필이면 굴뚝을 타고 들어가 기관실이 타격을 입는 바람에 큰 낭패를 봤다. 플레처 제독은 이를 기점으로 부대 지휘권을 스프루언스 제독에게 넘겼다.

요크타운이 큰 피해를 입어 무력화됐다고 판단한 일본군은 새로 발견한 엔터프라이즈를 다음 공격목표로 잡고 히류에서 새로운 공격부대를 출격시켰다. 하지만 일본군은 미군의 손상관리 및 복구능력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원래 미 해군은 전 함정 승무원들의 화재대처능력 및 함정보수능력 향상에 크게 투자하고 있었다(단, 항공기 승무원들은 예외). 사실상 전 승무원이 소방요원이자 보수요원인 셈으로, 소수의 보수반원에만 의지하던 당시 일본 해군과는 아주 대조적이었으며, 특히 그 당시의 요크타운은 산호해 해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걸 급히 수리하느라고 출항 이후에도 전문 기술자들이 승함해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 때문에 요크타운은 다소 성능이 떨어졌지만 대부분의 기능을 30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복구하여 정상적인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일본군은 2차 공격대가 도착한 시점에 '지금 작전 중인 항공모함은 아까의 요크타운이 아니다'라고 판단했고, 다시 공격했다.

당시 공격부대에는 뇌격기 편대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뢰를 먼저 하나 발사하여 요크타운이 회피하도록 유도하고 회피시, 도달하는 지점에 또다른 어뢰가 명중하도록 하는 고난이도 공격기술을 실행하였다. 그 결과 요크타운은 2발의 어뢰에 얻어맞았으며, 이것이 치명상이 되어 결국 침몰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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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요크타운이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엘리엇 벅매스터 함장은 곧 퇴함 명령을 내렸다. 이전의 교전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승무원들은 대단히 여유있게 퇴함했다고 한다. 벅매스터 함장은 가장 마지막에 남아서 퇴함하지 못한 승무원이 있는지 확인한 후 퇴함했고 곧 구조되었다.

요크타운이 어뢰에 피격된 그 시각, 요크타운에서 보낸 정찰비행대가 히류를 발견하고 그 즉시 위치를 보고하였다. 이에 엔터프라이즈에서 공격부대가 발진하였고, 정보 전달의 착오로 뒤늦게 정보를 전달받은 호넷에서도 공격부대가 발진했다. 여기에는 모함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복수를 다짐하는 요크타운의 비행대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전력이 거의 거덜났지만 요크타운을 두 척의 미 항공모함으로 판단했던 야마구치 다몬 소장은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기습효과를 노릴 수 있는 석양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가용할 수 있는 항공기는 9대밖에 없었다. 게다가 쉴 새 없는 전투로 지친 승무원들은 막 식사를 하고 있었고,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승무원들의 피로도 극심하여 미군 항공기를 제때 발견할 수 없었다.

당시 히류는 전함 하루나, 키리시마와 중순양함 토네, 치쿠마, 그리고 경순양함 나가라 5대가 둘러싸고 있는 윤형진 형태로 방공망을 짜고 있었다. 이때 히류를 폭격하기로 되어있었던 것은 운명의 5분때 아카기를 폭탄 한발로 작살내버린 베스트 대위의 제6폭격비행대대였는데, 제3폭격비행대대의 셤웨이 대위는 하루나를 폭격하러 가다가 히류를 노린 폭탄 2발이 빗나가는 것을 목격하자[33], 목표를 히류로 바꾸어 급강하에 들어갔고 제3폭격비행대대의 맨 뒤의 2대를 제외한 12대의 돈틀리스가 히류를 향해 급강하했다. 제6폭격비행대대는 갑자기 끼어들어온 제3폭격비행대대를 먼저 보내고 이후 자신들도 급강하 폭격을 개시했다.

히류에는 총 4발의 폭탄이 명중했는데, 4발 모두 함수부분에 밀집되어 떨어졌다. 특히 자카드 소위의 첫번째 명중탄은 1번 승강기에 직격하면서 승강기를 두쪽으로 박살내고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이후 셤웨이 대위가 2번째 명중탄을, 제3폭격비행대대의 누군가가 3번째 명중탄을, 그리고 아카기를 명중시켰던 베스트 대위가 4번째 명중탄을 명중시켰다. 거의 동시에 명중한 4발의 폭탄은 히류의 전방갑판을 완전히 박살내버리며 상층갑판에 적재되어 있던 제로센을 유폭시키고 화재를 일으켰다.

(ɔ) U.S. Navy (Donation of Kazutoshi Hando, 1970) from
1번 승강기가 박살나 잔해의 일부가 아일랜드에 걸쳐있는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아카기가 폭탄 1발에 유폭되며 침몰했고, 카가가 아일랜드를 직격당해 완전히 무력화되고 이후 유폭하며 침몰한 것에 비교하면 히류의 피해는 복구 가능한 수준이었다. 피격지점 바로 아래층에 있던 다수의 제로센이 유폭하긴 했지만, 항공유가 발화하거나 폭탄이 유폭하지도 않았고 아일랜드도 멀쩡했다. 거기에 4발이 골고루 떨어지지 않고 함수에 집중되어 떨어졌기에 보다 빠른 뒷처리가 가능했다. 따라서 적절한 데미지 컨트롤을 했다면 침몰을 막을 수 있었지도 몰랐다. 하지만 위 문단에서 언급된 하루나 폭격을 위해 날아가던 제3폭격비행대대의 남은 2대가 히류와 하루나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속력을 늦출 수 없었고, 추가공격을 피하기 위해 고속항진하고 있었던 까닭에 불길이 함 전체로 번지면서 무력화되었다.

화재가 함 전체로 완전히 번져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야마구치 다몬은 나머지 병사들을 퇴함시키고 함장인 가쿠 대령과 함께 불타오르는 히류에서 운명을 같이했다. 순식간에 격침된 카가나 소류, 뇌격처분된 아카기와는 달리 히류는 몇 시간에 걸쳐 천천히 가라앉았다.[34] 석양을 배경으로 타오르는 히류의 상공에는 갈 곳을 잃은 제로센들이 처량하게 맴돌았고, 이후 한대씩 차례차례 해상에 불시착했다.

(ɔ) Imperial Japanese Navy from
버려진 채 불타오르는 히류.

이 즈음 나구모는 자신이 2척 이상의 미국 항공모함과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퇴각을 검토하고 있었다. 정찰기의 보고와 격추당해 포로로 잡힌 미군 조종사를 심문한 결과였다. 여기서도 아라시가 등장한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바다에 표류하던 미국 제3뇌격비행대대의 웨줄리 프랭크 오스무스(Wesley Frank Osmus) 소위를 포로로 잡은 후에 심문해서 미국의 함대가 항공모함 3척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6월 5일 오후에 갑판 위로 오스무스 소위를 끌어내서 소방용 도끼로 뒷목을 가격했다. 당연하게도 오스무스 소위를 처형하려고 이렇게 한 것이며, 오스무스 소위는 충격으로 배에서 떨어졌으나, 난간을 붙잡고 가까스로 매달린 걸 다시 한번 쳐밀어서 바다에 생으로 수장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연하게도 전범행위이다.[35] 이런 쌍놈! 이후 나구모는 미군의 재공격과 히류를 상실하는 난리통의 와중에서 전투 지속여부를 두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야마모토 제독에게 철수를 건의하게 된다.

이로써 미 함대와 일본 제1항공함대 사이의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6. 일본 함대의 퇴각과 전투의 마무리

모든 함재기들을 수용한 스프루언스 제독은 수상함 사령관 시절의 경험을 살려 일본 해군이 야간작전을 시도할 것이라고 판단, 다시 항공모함 작전이 가능해지는 새벽까지 도망가기로 결정하였다. 일본의 함대는 전함과 구축함, 순양함들의 수상함전력이 미국보다 우월하였고 미군은 전함이 한척도 없었다. 거기다 야간에는 항공모함의 함재기들이 활약하는데 큰 무리가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당시 미군의 작전 목표는 일본 항공모함을 잡는다는 한가지 뿐이었으므로 이 목표가 달성된 이상 굳이 과욕을 부릴 이유는 없었다. 이에 따라 미국 함대는 계속 동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타격을 입은 일본 항공모함들은 적에게 노획될까봐 하나둘씩 자침하기 시작하였는데, 소류와 카가가 먼저 침몰했으며 히류와 아카기는 나중에 야마모토 제독의 명령에 따라 구축함에서 어뢰를 발사하여 침몰시켰다. 소류와 히류의 함장들은 이함을 거부하고 배와 함께 가라앉는 것을 선택했다.[36]

제1항공함대의 참사를 전달받은 야마모토 제독은 북방 함대에게 즉시 본대에 합류할 것을 지시하고, 곤도 중장으로 하여금 휘하의 침공부대 소속 전투함들과 살아남은 제1항공함대의 전투함들을 이끌고 미국 함대를 추격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야마모토 자신도 역시 본대를 이끌고 미국 함대의 추격에 나섰다. 더불어 대기중인 잠수함들은 야간에 미드웨이를 포격하고, 미국 항공모함들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나구모는 제1항공함대의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만다. 히류가 공격받은 것을 전후로 하여 전투 지속여부를 두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철수를 건의한 것이 야마모토의 화를 돋구는 바람에 나온 결과였다. 제1항공함대의 지휘권은 공략부대의 지휘관인 콘도 중장에게 넘어갔다.

지휘권을 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함(아카기)을 잃은 나구모가 야마구치에게 인계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는 전후 사정을 모르는 얘기다. 이 시점에서는 히류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히류에 타고 있던 야마구치 다몬 소장은 자결할 생각으로 불타는 히류에서 내리지 않고 있었으므로 역시 정상적인 지휘를 할 수 없었다. 설령 히류의 사정이 양호해서 정상적인 지휘가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전투서열에서 밀리는 야마구치 소장이 제1항공함대의 지휘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여하튼 분기탱천한 일본 함대가 추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본대부터가 500km나 떨어져 있었고, 북방 함대는 그보다 더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미국 함대가 동쪽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도망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자 야마모토 제독은 6월 5일 자정을 약간 넘긴 시간에 미국함대의 추격을 중지하고 더불어 미드웨이 공격을 중단한다고 선언하였다. 다만 북방 함대에게는 패전을 가리기 위한 목적을 위해 예정대로 키스카와 애투섬에 상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37]

한편 야마모토 제독의 명령을 수신하지 못한 잠수함 한 척이 미드웨이 근해에 부상하여 포격을 가하는 바람에 미드웨이 주둔 미군은 물론이고 태평양 함대 사령부를 놀라게 만들었는데, 곧 작전이 중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딘가 있을 파손된 요크타운을 찾아서 격침시키기 위해 배회하기 시작했다.

요크타운의 피격 소식을 전달받은 태평양 함대 사령부는 요크타운이 일본군에 나포되지 않도록 어뢰로 격침하라는 명령이 내렸는데 막상 현장에서 살펴본 결과 잘하면 견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에 오후부터 예인선을 이용하여 견인을 시작했고, 구축함 6척을 배치하여 견인중인 요크타운을 호위하도록 명령했다.

6월 5일 새벽 3시, 미 해군 잠수함 탬버가 급히 퇴각중인 미드웨이 공격부대를 발견하였고 어뢰공격을 위해 접근하였으나 발각되어 황급히 잠항을 하였다. 문제는 중순양함 모가미의 함장이 탬버에서 어뢰를 발사했다고 오인하여 급히 회피기동을 하다가 옆에 있는 중순양함 미쿠마의 측면을 들이받아버렸다. 양쪽 모두 손상을 입고 속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본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오전이 되자 미드웨이에서 날아온 급강하 폭격기들이 공격을 퍼부었고 미쿠마는 적재하고 있던 산소어뢰의 유폭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완전히 낙오되었다. 그리고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에서 파견한 공격대가 간신히 버티고 있던 미쿠마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여 격침시켰다. 한편 본의 아니게 같은 편을 공격했던 모가미는 남아있던 산소어뢰를 바다에 몽땅 버리는 바람에 공격은 미쿠마보다 더 많이 받았으나 간신히 격침을 모면하고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파손된 까닭에 일본으로 끌려가 수리를 받야아만 했다.

열심히 도망가던 스프루언스 제독은 날이 밝자 다시 반전하여 일본 함대를 추격하기 시작하였으나 구축함 다나카제 한 척만 발견했으며, 그나마도 격침시키지는 못했다.

진주만의 태평양 함대 사령부는 항공모함 4척을 날려버렸다는 보고를 듣고도 계속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일단 일본 수상함대의 규모가 크다보니 그대로 공격해도 소용없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6월 5일 하룻동안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 함대가 미드웨이 공격을 포기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제서야 안도하기 시작했다.

6월 6일 오전, 배회중이던 일본군 잠수함 伊-168이 예인중이던 요크타운을 발견하였다. 구축함들이 경계를 하고 있었으나, 잠수함이 침투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고 4발의 어뢰를 발사하여 요크타운에 바짝 붙어있던 구축함 해먼을 격침시키고, 요크타운에도 어뢰가 명중되어 다시 침몰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구축함들이 즉각 나서서 보복에 나섰지만 잠수함은 간신히 탈출, 도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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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침몰할 것 같은 요크타운은 침몰할 듯 말듯 버티면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날이 어두워져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예인을 포기했으며 6월 7일 새벽 5시쯤에 침몰하고 말았다. 워낙 위험해서 승함을 포기했지만 오랜시간 요크타운이 침몰하지 않고 버텼던 까닭에 현장에 있었던 인력들은 침몰하는 모습을 보며 그냥 배수펌프라도 설치해둘 걸 그랬다면서 후회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사냥에 만신창이가 된 거대한 코끼리의 죽음을 연상시켰다고...

이를 끝으로 미드웨이 해전은 종료되었다.


7.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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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 전개도

일본제국함대궤멸
일본군 피해
- 항공모함 4척(아카기, 히류, 소류, 카가), 순양함 1척(미쿠마)격침
- 항공기 322대 손실(격추가 아니고 항공모함이 격침당하면서 함께 수몰된 것이 대다수)
- 해군 3500여 명 전사. 파일럿 약 100여 명 포함

미군 피해
- 항공모함 1척(요크타운), 구축함 1척(해먼) 격침
- 항공기 147대 손실
- 해군 307명 전사. 파일럿 약 200여 명 포함
- 미드웨이 기지 파손


8. 평가

일본군의 패인으로 분산된 함대, 레이더의 부재, 너무 많은 정보를 노출시킨 것 등이 꼽히고 있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일본군의 자만과 지나치게 쓸데없이 세밀한 작전이 꼽힌다. 일반적으로 작전을 짤때는 이례적 사태나, 실수등의 여러가지 패턴에 대비해서 유연하게 짜는게 일반적인데, 일본군의 작전은 쓸데없이 세밀하고 서로 연계되어있어서, 모든 작전이 성공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즉 어느 한 작전이라도 실패할 경우 연계된 모든 작전이 셧다운되는 형식이었다. 어째 본축구랑 비슷하다

8.1. 하늘은 미국 편

사실 얼핏 보기에는 미군에게 일방적으로 행운이 작용하면서 미드웨이 해전의 승패가 결정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흔히 盡人事待天命 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저 '진인사'라는 측면에서 미국은 일본보다 한발씩 앞서 있었다

실제로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큰 전투, 특히 큰 해전의 특성상 쌍방 모두 전략적 레벨, 전술적 레벨에서 삽질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사에 있어 절대법칙(?) 중 하나는 "모든 작전은 작전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이다. 말하자면 머피의 법칙. 클라우제비츠의《전쟁론》을 보면 "어떤 작전이라도 전쟁 5분 뒤부터 일그러진다."는 말이 나온다. 어쨌든 일본군이 저지른 실책이나 우연히 벌어진 사고들이 더 뼈아팠기 때문에, 나아가 미군에게 결정적인 행운으로 이어졌던 것도 미국의 중요한 승리 원인으로 작용했다.

  • 양측 기동부대 간 치열한 정찰전이 이어지고 있었을 때, 사실 일본군도 거의 동시에 미 기동부대를 발견하였다. 발견한 것은 항공모함 소류에서 발진한 정찰기였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무전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 순양함 치쿠마에서 보낸 정찰기는 국지적인 악천후로 인해 제대로 된 관측을 할 수 없었는데, 하필 그 지점이 미 기동부대 근처였다.
    사출기의 고장으로 30분 늦게 출발해서 패인을 제공한 것으로 유명한 중순양함 토네의 정찰기의 경우, 오히려 예정된 시간과 루트대로 움직였으면 발견이 불가능했고 30분 늦었기 때문에 그나마 관측이 가능했다.

  • 가게로급 구축함 아라시가 함대로 복귀하던 중 긴 항적을 남겼는데, 하필이면 그게 미군 급강하 폭격기 편대를 이끌던 맥클러스키 소령의 눈에 딱 걸렸다. 아라시의 뒤를 따라간 미군은 일본 항모전단을 발견했고 그 뒤는...

  • 무엇보다도, 마치 누군가 철저한 스케줄을 짠 듯이 딱 떨어지는 타이밍(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연료와 폭탄, 그리고 제로센들은 뇌격기 요격을 위해 모조리 저공에...)에 결정적인 타격을 날린 급강하 폭격기 부대의 도착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이 공격순서가 의도된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니미츠는 그것이 절대로 미리 계획된 게 아니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우리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만약 급강하 폭격기들이 10분만 늦었다면 우리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지도 몰랐다. 함재기들이 일본함대의 상공에 도달한 순서는 절대로 미리 계획된 게 아니었다. 조종사들이 죽을 걸 알면서도 그런 명령을 내릴 지휘관은 없을 것이다. 뇌격기 조종사들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게 아니었고, 그때 하늘은 분명히 우리 편이었다."

  • 아카기는 운이 좋았다면 카가와 소류가 당할 때 무사할 뻔 했다. 원래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카가와 아카기를 1개 대대씩 나눠서 공격해야 했으나, 이런 대규모 대함 공격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탓에 카가에게만 공격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6폭격비행중대의 리차드 베스트 대위가 아카기에게 눈길을 돌렸고, 요기 2대를 이끌고 아카기를 공격했다. 그리고 베스트 대위의 일격으로 아카기는 불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아카기가 이 사람을 어마어마하게 싫어합니다

  • 소류와 히류의 운명 역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요크타운의 비행대들은 뇌격기와 급강하 폭격기 모두 비슷한 시각에 일본 함대 상공에 도달했었다. 그런데, 뇌격기들은 그 당시 가까이 있던 히류를 향해 곧바로 공격했지만, 급강하 폭격기들은 히류를 제껴두고 좀 더 멀리 있던 소류를 공격하러 가버리면서 뇌격기들이 먼저 공격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당시 현장 지휘관의 착각과 미군의 교리 때문이었다. 요크타운의 급강하 폭격기대 지휘관이었던 레슬리 중령은 자신들의 뒤에 다른 비행대 소속 급강하 폭격기들이 추가로 더 따라오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일본군의 예비대에 대응하기 위해 1개 비행대는 출격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이 레슬리 중령에게 통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미 해군 급강하 폭격기의 전술교리상 먼저 도착한 비행대는 멀리 있는 목표를 공격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레슬리 중령은 주저없이 히류를 '뒤따라오는 비행대'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소류로 향했던 것이다. 만일, 이들이 소류 대신 히류를 목표로 삼았다면 히류는 급강하 폭격기와 뇌격기의 협공에 걸려드는 셈이 되었으므로 집중공격을 받았던 카가와 마찬가지 꼴을 당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야마구치 다몬 소장의 운명이 일찍 결정났을지도 모르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 공격 이후 일본군의 반격도 불확실해졌을 것이다.

  • 집중 공격을 받은 카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공격력이 분산되었던 아카기나, 소류의 경우 불과 1~3발의 명중탄이 '영 좋지 않은 곳'[38]에 맞으면서 어찌 손 쓸 틈도 없이 전투력을 잃고 침몰에 이르렀다.

전장에는 정말 '승리의 여신'이 존재하는 것인가 싶은 대표적인 전투 중 하나가 바로 미드웨이 해전이다.

여담으로 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를 기원하며 항모전단의 집결예정지에 Point Luck(행운의 지점)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대로 되었다. 히류에 있던 야마구치 다몬이 미군의 마지막 공습을 시작할 때, "하늘은 결국 우리 일본을 버리려 하는가"하며 탄식하기도 했다.

8.2. 일본군의 삽질

그러나, '승리의 여신'이 미국에 미소를 보낸 그 이면에는 태평양 전쟁 초전의 승기에 들뜬 일본군이 보여준 너무나 안일한 태도와 러일전쟁이후 일본군에 자리잡은 공격 일변도의 사상이 있었다. 여기에 심심하면 들먹이는 저들의 "대일본제국"운운하는 자뻑하는 작태 역시 일본을 패전으로 이끄는 지름길이었다. 저들의 자국군을 부르던 별명이 '무적황군'이었다는 점을 생각하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주만 공습 때 보여준, 미국 전체를 속여넘길 정도로 철저한 보안의식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작전 자체도 안일함과 자만심의 극치였다. 야마모토는 진주만 기습 이후 6개월간의 전투로 인해 미군이 겁을 먹었다고 짐작했고, 이건 야마모토 뿐 아니라 당시 일본군 고위 장성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그 이유는 일본군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일본이 가지고 있던 치명적인 약점인 제대로 된 적과 제대로 된 전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 때문에 자만심에 쉽게 빠진 것이다. 그래서 야마토를 위시한 주력부대를 한참 떨어진 후방에 배치한 것은 '안 그래도 쫄아있는 미군'이 주력 부대를 미리 보고서는 혹시나 움직이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이 작전이 '미드웨이를 점령'하고 '미국 함대를 격멸'한 뒤 북으로는 알루샨 열도를 먹고 남으로는 호주까지 위협한다는 구상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원래 야마모토의 구상은 하와이를 직접 공략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는 생각밖엔... 결국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다보니 위에 나온대로 전력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야마모토를 비롯한 일본군의 생각과는 달리 미군은 쫄기는커녕 오히려 '오기만 해봐라 개발살 박살을 내줄테다'라며 일본군에 대한 각종 정보를 낱낱이 수집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적시적소에 끌어모으면서 잔뜩 벼르고 있었다. 원래 미국은 자국내의 여론 때문에 전쟁을 참전하지 않은 것 뿐이지, 절대로 겁쟁이가 아니었다! 물론 진주만 공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당해 열세에 놓이긴 했지만 일단 기선을 제압하고 난 후에는 전시체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더우기 군수물자 같은 보급지원에 있어서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일본 정도는 한방에 훅하고 보낼 정도로 최강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이미 미드웨이 해전의 승패는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본 해군에 자리잡은 공격 일변도의 사상은 병력 운용의 융통성을 떨어트리고 결국 참화를 불러오는 요인이 되었다.
미국이 기존의 정찰기 이외에도 함재 폭격기, 지상 폭격기까지 모조리 동원하여 40기 가까운 정찰기를 보내는 동안 일본 해군은 10기 남짓한 정찰기를 보냈다. 일본 해군의 이런 행동은 공격에 투입할 폭격기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꺼린 것으로, 정찰기로 투입할 수 있는 함재 폭격기를 일부라도 더 투입했다면 정찰기 한 대쯤 무전기 고장을 일으켰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점은 일본 해군도 깨달았는지 미드웨이에서의 교훈을 받아들여서 정찰을 강화하게 되고 과달카날 전투 중 미 해군의 가용 항공모함을 1척으로 줄여버릴 정도로 미 해군을 몰아붙이게 된다.[39] 그래봤자 미국의 물량이 터져나온 이후로는...

3척의 항공모함이 격침된 뒤 홀로 남은 히류가 공격에 나서지 않고, 후퇴했다면 비록 전투에서는 졌을지라도 후일을 도모할 여지는 그만큼 더 늘어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 해군 그 누구도 그 시점에서 후일을 위한 전력 보존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40]결국 히류 역시 잃으면서 태평양 전쟁 초반 일본 해군 타격력의 핵심이었던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그 위세가 꺾여버렸다.

레이더의 부재도 일본군의 패인으로 꼽히기는 한다. 레이더가 없어 급강하 폭격대의 접근을 알지 못해 항공모함 3척이 격침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히류도 역시 레이더가 없어 미군의 접근을 파악하지 못해 격침당한 반면, 요크타운은 레이더가 있었기에 일본 항공대의 접근을 파악하여 빨리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4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레이더 기술은 있는 기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지지부진했고, 결국 필리핀 해 해전(마리아나 칠면조 사냥)에서도 미 해군이 레이더로 일본군의 접근을 미리 파악하고 죄다 요격시켜버린다.

즈이카쿠의 부재도 악영향을 끼쳤다. 산호해 해전에서 함재기를 잃었어도 배는 무사했으므로 다른 데서 항공대를 끌어다가 채웠다면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일본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국이 요크타운을 응급수리해서 미드웨이에 출동시킨 것과는 천지차이. 이외에도 알류산 열도로 항공모함 류조준요를 보낸 통에, 안 그래도 모자란 항모전력이 더 줄어들었다.

8.3. 미드웨이 이후

승패는 병가지상사이다. 그리고 미드웨이 해전 이후에도 약 1년 가까이 일본 해군의 세력이 더욱 우세했던 것도 사실이다. 흔히 진주만 이후에 열받아서 확충한 함대를 미드웨이 해전 당시부터 투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열받아서 미친듯이 배를 찍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미드웨이 해전에 참여한 미 해군 함정 중 새로 진수된 함정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진주만 공습에서 살아남은 배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당시 미 해군은 사용가능한 항공모함이 3척밖에 없었고, 그중 요크타운은 응급수리만 된 걸 억지로 끌고 나와서 이동 중에도 기술자들이 승함해서 계속 수리했을 정도로 미 해군으로서도 전력을 쥐어짜어 동원한 전투였다. 그리고 미군이 분노의 쇼미더머니를 쳐갈긴 결과가 나타난 건 과달카날 전투가 끝난 뒤부터였다. 어쨌든, 미드웨이 해전 덕에 미국은 아직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직전의 가장 취약했던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오히려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군이 더 심각한 병크 문제를 보였다는 것이다. 일본의 대본영 해군부는 미드웨이 해전의 참혹한 전과를 철저하게 은폐하였으며, 미드웨이에서 패배한 시점에서 이미 전략적 가치를 잃어버린 알류산 열도 점령을 크게 선전했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조종사와 승조원을 모조리 극비리에 연금시켜 버렸다. 진주만 공습의 1차 공격대장이었던 후지타 미츠오 중령도 이때의 수감자 중 한 명이었다. 전후 본인의 증언에 의하면 이때, "국가의 영웅이었던 우리가 한 순간에 죄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며 자괴감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아카기 전투기 부대장 이타야 시게루 중좌나 폭격기 부대장 에구사 타카시게 중좌 등 중견급 간부들과 부상자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되고 모두 연금되었다. 그래도, 이들은 사정이 나았다. 부상을 입지 않은 초급 장교들과 사병들은 연금도 모자라서 아예 남방전선에 총알받이로 보내 버렸다. 이것은 가서 조용하게 죽으라는 소리나 다를바 없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일본 해군 고위층들의 의도대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실제로 작전을 입안하고 지휘했던 고위 지휘관들은 그 누구도 문책받지 않았다.

적이나 다를바 없이 지내던 일본 육군도, 정부의 고위 관료들 거의 대부분도 모를 정도로 그 은폐공작은 철저했다고 한다. 일반 국민들이야 말 할 것도 없고...이런 보안 정신으로 미드웨이로 갔어야지. 일본의 어떤 최고위 외교관도 미드웨이 패전 후 몇 달이 지나서야 입소문으로 패전의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고 했으니...[42] 이런 은폐공작(?)은 하루 이틀 일도 아니어서...일본 군인들과 관료들, 국민들 대부분이 자기 나라가 처참하게 망해가는 꼴을 조금씩이나마 알게 된 것은 1944년 6월 필리핀 해 해전사이판 전투의 패배 때부터였다. 이때서야 도조 히데키 내각이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물론 전황을 호전시키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일본군은 자국 언론에 미군 항공모함 3척 격침, 자국 항공모함 1척 격침이라는 완전히 거꾸로 된 발표를 했으며, 일본 언론은 "이로써 우리 제국의 방위 수역은 미 합중국의 서해안까지 확장되었다"는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이러한 은폐공작의 부작용은 심각해서 과달카날 전투에서 일본 육군이 병력 투입을 주저하는데에 영향을 주어서 결과적으로는 과달카날이 미군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이후 일본의 전쟁 수행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력을 잃은 해군은 똥줄이 타 들어가는데, 육군에서는 '쟤네들 미 해군 박살냈다면서 왜 저럼?' 이런 식의 반응이 나와버리니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일본에게 있어서는 주력 항공모함 4척과 수많은 함재기들을 잃은 것이 이후의 치명상으로 작용하게 된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일본이 베테랑 파일럿의 대부분을 미드웨이에서 잃었고 이 때문에 이후 항공전에서 일본이 불리해졌다는 기존의 통설은 다소 오해가 있다. 당시 참전한 일본 해군 함재기들 대부분은 미드웨이 공격대나 함대 방공에 나선 기체를 빼면 미 함대와 직접 교전을 벌인 것도 아니었고, 항공모함들이 순식간에 침몰한 것도 아니라 공격을 해보기도 전에 기습을 받아 화재나 유폭으로 인해 전투불능 상태에 빠진 뒤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서 가라앉아서 함선에서 대피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덕분에 공격에 직접 휘말리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 파일럿을 포함한 항공기 승무원들 대부분은 안전하게 다른 배로 옮겨탈 수 있었다.[43] 일본측 파일럿의 손실은 아카기 7명, 카가 21명, 소류 10명, 히류 72명의 총 110명으로, 이 전투에서 208명의 파일럿을 잃은 미군측보다 오히려 적은 수다. 여기서 히류의 파일럿 손실이 큰 이유는 다른 배들과는 달리 초기 피해가 없어 오히려 배가 가라앉는 순간까지 미국 함대와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이 큰 이유다.

하지만 항공기 정비요원들은 이야기가 약간 달라진다. 항공모함들이 최초로 타격을 입은 지점들이 하나같이 비행갑판과 그 바로 아래에 있는 격납고인데다 하필 공격당한 시점이 항공기 출격을 준비하던 때인지라 사방팔방에 연료를 만재한 항공기들과 무장들이 널려 있었으므로, 그때 그곳에 몰려 있던 정비요원들 대다수가 최초 타격 이후 화재와 유폭에 휘말려 수 분만에 전사해버렸다. 피해의 전파 속도가 느렸던 아카기를 제외한 나머지 세척의 항공모함에서 저마다 백단위의 정비요원 손실을 기록하면서,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 1기동부대가 보유한 총 정비요원 1800여명 중 40%에 달하는 721명의 정비요원을 잃었다. 문제는 당시 일본 입장에서는 이들 정비요원들 역시 조종사들만큼이나 귀중한 인력이었다는 것이었다. 산업 기반이 취약했던 당시의 일본의 민간 부문에서 기계 정비에 종사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일본 해군의 항공기 정비요원들은 대부분 조종사 교육과정에서 탈락한 인원들이 주가 되어 집중적인 교육을 받고 투입된 인원들이어서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단기간내에 보충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당시에 투입된 정비요원들 역시 조종사들과 마찬가지로 수년간의 실전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이었다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비행기만 주면 파일럿도 가능하고, 정비도 가능한 엘리트급 요원들이 이 전투에서 개발살났다는 것이다.

물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해군의 항공전 역량을 박살낸 건 과달카날 전투와 그 뒤에 이어진 2년간의 소모전이었으므로 상기한 인명피해는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일본 해군에게 있어서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작전에 참가한 제1, 제2항공전대가 사라진 것이었다. 제1, 제2항공전대는 제1항공함대의 중핵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항공모함 몇 척, 항공기 몇 대 수준의 손실이 아니었다. 고속 정규항공모함, 항공기, 파일럿과 항공기 승무원, 정비요원, 함상 운용요원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조직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더군다나, 제1, 제2항공전대는 일본 해군에 항공모함이 탄생한 이래 수년에 걸친 실전경험으로 단련되어 있었고, 그에 따른 숙련도와 전투 능력은 당시까지만해도 다른 항공전대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능한 조직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태평양 전쟁 개전 당시 일본 해군의 전략은 외곽 방어망 곳곳에 배치된 지상비행장이 방어의 근거지가 되고 유사시 적을 방어선 가까이 끌어들이는 동안 항공기를 집결하여 격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상 아래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태평양 상의 외곽 방어망을 설정하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기동예비대였다.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데에는 고속 정규 항공모함들로 구성된 항공전대가 최소한 3개가 필요했다. 미군의 공격을 막으려면 재빨리 해당 구역으로 이동해서 한 번에 대량의 항공기를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해군에게 있어서 제1, 제2항공전대는 이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핵심이었다.

물론, 미드웨이 해전 이후에도 일본의 항공모함 및 항공전력의 숫적 우세는 여전했다. 그러나, 질적인 부문에 있어서는 결코 우세를 장담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항공모함들 다수는 규모가 작아서 항공기를 대량으로 한 번에 운용하기 어려운 경항공모함들이었고, 그나마 기동예비대로 쓸 수 있는 고속성능을 가진 항공모함은 류조, 쇼카쿠, 즈이카쿠 뿐이었다. 규모가 큰 항모라면 준요가 있지만 속도가 느렸고, 류조의 경우 정규항공모함으로 취급받았지만 크기가 작았기에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다. 이는 함대 전체의 항공기 운용능력 저하로 이어졌고 그 반대 급부로 구축함 같은 호위세력이 더 필요해졌지만, 당시 일본 해군의 능력으로는 호위세력의 증강이 매우 버거웠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필리핀 해 해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운용이 이전보다 소극적으로 변한 건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항공모함과 그에 따르는 항공전대의 운용이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일본 해군의 항공력은 지상 비행장에 과하게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과달카날 전투를 필두로 한 이후의 전투에 있어서 일본군의 선택지를 크게 제한하는 변수가 되고 말았으며, 미군은 이 약점을 놓치지 않고 공략하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것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일본 해군이 태평양 전쟁 이전에 수립한 전략계획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입은 피해로 인해 박살났다.

이 때문에 그동안 일본이 쥐고 있던 전쟁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일본은 태평양에서 더 이상의 전진을 멈추고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야 되는 입장이 되었다. 그 뒤는 모두가 알다시피 미군의 압도적 쇼미더머니 작렬.

열세의 함대로 승리했고 전쟁의 전환점이 된 전투이기에 미국인들에게 미드웨이 해전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전투로 회자된다. 우리가 명량 해전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9. 이야깃거리들

9.1. 요크타운

항공모함 요크타운의 분전은 미군 승리의 비결 중 하나로 꼽는다. 원래 산호해 해전에 참가했던 요크타운은 일본의 경항공모함 쇼호를 격침시켰지만, 자신도 전치 3개월짜리 진단을 끊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요크타운은 장기간 수리로 전력에서 제외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것처럼 미군은 가뜩이나 전력이 열세이고 항공모함도 부족한 상황인에 요크타운을 투입할 수 없다면 더더욱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미 진주만 공습으로 전함을 상실한 태평양 함대의 입장에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전력이 항공모함이었다. 만일 항공모함마저 잃는다면 미 해군은 일본의 연합함대와 대적할 능력을 잃는 것과 다름 없었으므로 어떻게 해서라도 항공모함 전력을 유지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에 니미츠 제독은 요크타운의 상태를 정확히 보고하도록 했고 가장 수리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엘리베이터나 기관쪽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체크했다.

그리고 니미츠 제독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우린 항공모함 한 척을 놀릴 여유가 없네. 동력과 엘리베이터가 멀쩡하다고? 그러면 3일 안에 요크타운이 함재기를 운용할 수 있게 수리하게"
정비병들이 백단위로 갈려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 명령이 떨어지고 요크타운이 진주만에 도착하자마자 2,000명 정도의 기술진과 공작함이 옆에 달라붙어 정말로 사흘 만에 전투가 가능한 수준까지 만드는 기적을 연출했다. 파손부위를 강판을 이용해서 급히 용접하느라 환기를 시킬 수 없었는데, 그 결과 실내온도가 섭씨 50도 정도 까지 올라가 작업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또한 얼마나 용접을 위해 전력을 끌어다 썻는지 하와이 전체의 전력 수급이 불안정해졌다는 카더라까지 있었을 지경. 어쨌거나 저쨌거나 응급수리를 마치고 함재기가 착함할 수 있을 정도로 수리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미드웨이 해전 내내 기술자들이 계속 수리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폭탄 3발을 맞고 엄청난 불기둥이 솟으며 격침되는 듯했으나 그걸 또 1시간만에 수리했다. 그 때까지도 일본은 미국이 항공모함 2척만을 가지고 온 줄 알고 있어서 요크타운을 두 번 보고 미국의 항공모함을 전부 침몰시킨 줄 알았다고 한다. 야마구치 다몬 소장이 한 척 남은 항공모함 히류를 퇴각시켜 전력을 보전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전멸. 요크타운은 미드웨이 해전 전체의 양상을 바꾼 것이다. 결국 침몰하기는 했으나 요크타운은 엔터프라이즈와 더불어 이미 미 해군의 전설이 되었다.

9.2. 후치다 미츠오

본 해전에서 항모 아카기의 항공대장으로 참전한 후치다 미츠오는 참전 직전 받았던 맹장 수술 후유증에다 아카기에서 탈출하던 도중 입은 부상이 겹치는 바람에, 더이상 비행 임무에 나서지 못하고 지상근무에 종사하다가 패전을 맞았다. 미군 포로 생활을 하면서 개신교로 개종하여 선교사로 여생을 보냈으며, 훗날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일제의 식민통치를 사과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대로 끝났다면 굳이 별도의 항목을 할애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훗날 후치다 미츠오는 미드웨이 해전사의 연구에 오랫 동안 영향을 끼친 존재가 되었다.

진주만 공격과 미드웨이 해전에 중견급 간부로 참전했고, 전쟁 후반기에는 주요 부대들의 참모를 지낸 후치다의 경력은 전후 미군의 이목을 끌었고, 심문과정에서 보여준 후치다의 품성과 언변은 미군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면서 전후 처리과정에서 관련 자료 정리 작업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은 훗날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전문가들과 쉽게 접촉하여 인맥을 쌓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레 태평양 전사 연구분야에서 후치다의 영향력도 높아지게 되었다.

이후, 전쟁의 상흔이 조금씩 아물어가던 1951년에 후치다는 그 유명한 "ミッドウェー"(영문명 "Midway: The Battle That Doomed Japan, the Japanese Navy's Story" 1953년에 미국에 출간됨.)를 출간하였고 이 책은 일본과 미국 양쪽 모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그 당시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이겼을텐데...'라는 식의 자기만족을 선사했고, 미국에서는 당시 참전한 미군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시의 적군이 영웅으로 묘사하고 추켜세웠으니 인기가 없을리가...... 거기에다 위에서 언급된 배경이 더해지자 후치다의 저서는 순식간에 미드웨이 해전사의 바이블이 되면서 많은 연구가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고, 미드웨이 해전사에 있어서 후치다의 권위도 공고해졌다.

그러나...

본 문서의 곳곳을 잘 살펴봤다면 유달리 과거의 통설이었다는 식으로 기술된 내용이 많이 보일 것이다.
그 내용들의 출처는 다름 아닌 그의 저서였다. 본문에서 그 내용들이 부정된 것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그 저서의 내용은 곳곳에 오류투성이였다. 알류샨 공격이 양동작전이라든가, 당시 일본 해군의 함대간 교신문제, 정찰과 관련된 내용들, 함재기의 무장전환 및 피격 당시와 피격 직후의 상황과 같은 함선의 전반적인 상황, 나구모의 추태와 야마구치 다몬의 활약, 미드웨이에서 일본 해군 항공대의 괴멸적 피해 등등 수많은 부분들이 후치다의 착각이나 오해, 심지어는 창작과 과장으로 채워진 내용들이었다. 사실 이건 당연하다면 당연한게 미드웨이 해전 당시 후치다 자신은 전체 함대의 말단 조직이랄 수 있는 비행대의 일원이었지 함대 전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함재기 및 함선 운용과 같은 타 병과와 관련된 내용에 대한 깊이있는 지식도 없었다.[44] 저서를 출간할 당시에 참전자들을 두루 만나면서 오류를 수정하였더라면 모르겠으나 그런 정황은 없다.

따라서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 해군의 구체적인 항공모함, 함재기 운용실상이 미드웨이 해전사의 연구에 반영되면서 후치다의 저서는 그 권위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일본내에서는 이미 1980년대에 해상자위대의 공식전사가 발간되면서 그 권위를 잃었고,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후치다의 저서에 나온 내용들을 본격적으로 뒤엎기 시작한 뒤 2000년대 들어서 그 권위가 완전히 사그러들었다. 오늘날 후치다의 저서는 일종의 문학서적쯤으로 취급받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9.3. 그외 흥밋거리들

미드웨이 해전이 시작되기 전에 니미츠 제독은 정보참모 에드윈 T. 레이턴(Edwin T. Layton) 대령에게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일본 함대의 구체적인 행동예측을 요구했다. 하지만 레이턴 대령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예측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니미츠 제독은 좀더 확실한 예측을 제출하라고 거듭 갈굼 요구했고 결국 레이턴 대령은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이 "미드웨이 현지시각으로 6월 4일 오전 6시에 북서쪽인 방위 325도, 175마일 거리에서 발견될 것"이라 답변했다. 레이턴 대령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예측을 한 모양이었는데 실제 일본 함대가 6월 4일 오전 5시 55분, 방위 320도, 거리 180마일에서 발견됐다!

더치 하버 공습에서 제로센 1기가 사소한 고장으로 미리 약속된 장소에 불시착하였는데, 제1항공함대가 대패하고 황급히 철수하는 바람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어버렸다. 전투가 끝난 후 주변을 정찰하던 미군의 비행정은 불시착한 일본 기체를 발견하고 조사대를 파견했는데 거의 온전한 상태의 제로센이 있었다. 제로센의 정보에 목말라있던 미국은 즉시 이 기체를 인양하여 '아쿠탄 제로'로 명명하고 본토로 이송했고 고장난 부분을 수리한 다음 열심히 연구해 제로센의 장단점을 파악했다. 그리고 벌어진 결과가 바로 1942년 가을 이후 급증하는 제로센 손실이었다. 또한 해당 시점에서 이미 시제기 초도비행이 이루어진 그루먼사의 제로센 킬러 F6F 헬캣의 개선과 양산이 크게 앞당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미드웨이 해전 이후에 다른 섬을 공략할 여유를 가진 미군은 다음 섬 지상공략에 쓰일 M4 셔먼 300대와 그에 맞는 전차병 운용병력들을 순양함, 구축함에 분승해서 8월 중순 진주만을 출발하여 9월 14일날 수에즈 운하에 도착, 사막형 위장도색을 마치고 아프리카의 영국8군에 지원됐다.

스프루언스 제독이 6월 5일 날이 밝기 전까지 계속 도망간 것을 문제삼아 태평양 함대 사령부에서는 홀시 제독이 지휘했어야 된다는 투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일본측의 자료를 열람해보니 스프루언스 제독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야마모토 제독은 항공모함들을 모두 잃은 이상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막판 뒤집기를 시도, 남은 수상함대를 싹싹 긁어모아 야간 함포전을 벌일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로 맞붙었다면...?

  • 일본의 수상함대 전력은 전함만 11척, 중순양함 13척, 경순양함 9척, 구축함 65척, 잠수함 22척
  • 미국의 수상함대 전력은 항공모함 2척(이 시점에서 요크타운은 빈사상태), 전함 0척(…), 중순양함 9척, 경순양함 4척, 구축함 32척, 잠수함 19척

그대로 대참사가 벌어진다. 함포전에서는 크고 아름다운 전함이 절대 우위를 지닌 전력이기 때문이다. 괜히 고집부리다가 기껏 다 이겨놓은 해전을 단 한 번의 야간전으로 한순간에 말아먹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스프루언스 제독이 정말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미 함대가 계속해서 동쪽으로 빠지는 것을 알게 된 야마모토 제독은 날이 밝으면 미 항공모함과 미드웨이의 미 항공전력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으니 모든 것이 끝났음을 받아들이고 날이 밝기 전에 전면 퇴각을 결정하게 된다.

미드웨이 해전의 클라이맥스 중 클라이맥스였던 급강하 폭격기 대대의 공습과 일본 항모의 침몰 장면은 아쉽게도 그 어떤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45] 양쪽 모두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걸 찍을 겨를이 없었을테니 당연하지만 그래도 무척 아쉬운 일. 다만 그 클라이맥스의 한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항공모함 호넷에서 출격했던 제8뇌격기대대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조지 게이 소위는 해전의 클라이맥스를 모두 지켜보고, 해전 후 1주일 가까이 바다 한복판에서 버티다가 극적으로 카탈리나 수상기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 후 계속해서 싸우다 무사히 종전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해전이 벌어진 지 반세기가 넘어가면서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조지 게이 소위가 격추당한 지점과 이후 일본 함대가 격멸당할 때까지의 이동 상황 등 당시 상황과 조건들을 다 따져볼 때 조지 게이 소위는 일본 항공모함들의 최후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선전거리가 필요했던 미군에게 조지 게이의 참전 및 생환 과정은 더 없이 좋은 소재였으므로, 크게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갔었을 가능성도 있다.

10. 미디어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의 미드웨이 부분에서는 미드웨이라고 메인 캐릭터들이 모두 미드일드의 주인공들이 나왔다. CSI : NY, House M.D., 로스트, 스타 트렉, 노다메 칸타빌레, 프리즌 브레이크, 신세기 에반게리온, 히어로, 히어로즈(미드) 등등. 심지어 야마모토 제독은 '가랏! 나구모! 미드웨이를 일드웨이로 만들어버려라!고 하기도 한다(…).

1976년에 유니버설 영화사에서 미국 독립기념 100주년으로 영화 '미드웨이'를 제작했다. 전편격인 도라!도라!도라!가 흥행실패를 한 원인을 분석하여 여기선 유명 배우들을 고용했다.[46] 그러다보니 제작비가 제법 늘어서 정작 전투라든지 다른 요소에서 제작비를 팍 줄였다.[47] 그래도 드라마적인 이야기를 넣어서 도라!도라! 도라! 절반이 안되는 제작비 1100만 달러로 북미 4322만 달러라는 꽤 흥행은 성공했지만 영화 고증수준은 상당히 엉망에다가[48] 다른 영화들의 장면을 짜집기했다. 이를테면 전시 선전영화인 동경 상공 30초,[49] 일본에서 제작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전기 영화 태평양의 폭풍, 그리고 전작인 도라!도라!도라!이다.[50] 더군다나 전투 장면중 대부분을 1944년 당시 선전 필름을 사용했다. 더불어 음악은 존 윌리엄스.

한국에서도 1977년 7월 15일 개봉하여 서울 관객 23만으로 당시에는 꽤 흥행에 성공했는데 80년대 나온 비디오판은 상당부분 삭제를 했다. 중간에 나오는 산호해 해전부분이나 찰턴 헤스턴의 베드신, 검열삭제 아님등을 편집했다.

http://video.mgoon.com/4208660 그리고 가볍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캡콤의 게임 1943은 미드웨이 해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단순 슈팅 게임이니만치 고증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서 함재기가 아닌 P-38 라이트닝이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꼴을 볼 수 있다.

1988년 미국 미니시리즈 전쟁과 추억(War and Remembrance)에서 재현한 미드웨이 부분은 상당히 명장면으로 평가된다.[51] 본작은 미 해군 헨리 대령[52] 일가를 중심으로 2차 대전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헨리 대령의 둘째 아들이 미드웨이 해전에 급강하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전사한다.[53] CG가 없는 시절에 아날로그만으로 만든 작품 중에 상당한 수준이고 실시간대로 작전 상황을 재현해내었고 급강하 폭격기 조준경 사용 장면 등을 충실히 따르는 등 나름 고증에도 힘썼다. 물론 일본군이 미군식 고사포를 사용하는 건 잊자. 원작에 나오는 뇌격기의 자살적 돌격부분을 재현한 것이 포인트.하이라이트 장면.4분 30초부터 엔터프라이즈 폭격기대의 공습 장면이다.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곡리의 다리에서 항공모함 전대 사령관인 제독의 아들들이 각각 진주만 공습미드웨이 해전 때 사망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충격으로 아내는 정신 이상으로 아기 옷 뜨개질만 하고 며느리는 집을 나갔다. 그런 이유로 주인공인 라인베커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라인베커도 북한군에게 끔살

일본에서 제작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모습을 담은 동명의 영화에서 이 전투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영상

타츠노코 프로덕션 제작의 애니멘터리 결단에서는 2화부터 나오고, 거기다가 전후편으로 되어있어서 2회에 걸쳐 일본군이 처절하게 깨지는 모습을 보여준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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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진주만 공습 같은 1회성 공습이 아니라 지상병력을 동원한 직접 공격이다!
  • [2] 국적불명의 쌍발기 발견이라는 보고가 올라왔지만, PBY 카탈리나 수상기가 아니며, 미해군은 쌍발기를 운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했다.
  • [3] 그리고 육군은 육군대로, 해군은 해군대로 또 파벌이 갈라져서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이런 조직내 알력 다툼은 당시 미군에도 있었지만, 일본군의 경우 그 정도가 도를 넘어서서 서로간의 반목과 불신만 증폭시키고 있었던게 문제였다.
  • [4] 夢幻の軍艦 大和(몽환의 군함 야마토) 일어 위키페디아 링크 일본 아마존 링크
  • [5] 대표적으로 야마구치 다몬은 작전의 반년 연기를 주장했다.
  • [6] 이 암호도 나중에 해독된다. 일본군은 후에 야마모토 이소로쿠제독이 암살당할 때까지도 자신들의 암호가 해독당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일부 지휘관들은 감지하고 있었으나, 지휘부의 "그냥 걔네들 모른다고 하자..."는 한마디에 계속 암호를 사용했다. 미군이 야마모토를 격추하는 것을 망설인 이유도 일본군이 암호가 해독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서 암호를 바꿀까봐였다고 한다.
  • [7] 아래에서 서술한 니미츠 제독의 발언에서처럼 미 해군은 항공모함 한 척도 놀려둘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당시 요크타운의 항공대는 요크타운 본래의 항공대가 아닌 항공모함 새러토가의 항공대였다. 일본군과 대조되는 미군의 급박함과 현실성을 잘 보여주는 면모라고 할 수 있다.
  • [8] 함대별로 서로 떨어져 있어서 나구모의 1함대외에는 전선투입이 제대로 되지않았다.
  • [9] 이중에 호쇼 등의 일부 노후된 함선은 실질적으로 전력에 도움이 안되기에 뒤에 빠져있었고, 다수의 전함, 경항공모함을 포함한 섬 공략부대는 뒤에 따라오고 있었기에 대응이 늦어져 제대로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 [10] 이때까지도 야마토를 비밀병기로 숨기고 싶어했던 일본 군부 때문에 대부분의 함선이 제대로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덧붙이자면 야마토의 존재는 이미 일본내에서도 공공연한 비밀 정도로 퍼져있어서 스파이 등에 의해 연합국도 거대한 전함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던 때라 그다지 숨길 필요는 없었지만...
  • [11] 적은 숫자의 함재기와 노후를 이유로 후방으로 밀려났다. 단지 제1, 2항공전대가 송두리째 전멸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중에 호쇼의 함재기 파일럿이 공중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때 전투에는 참여한듯 하다. 혹은 전투 후에 상황파악을 위해 급히 파견됐거나.
  • [12] 콰잘린 환초에서 대기
  • [13] 콰잘린 환초에서 대기
  • [14] 면적만 따지면 프랑스의 국토 면적과 얼추 비슷하다.
  • [15] 자세하게는 이스턴 섬의 발전소, 수도관이 완전히 개발살 나는걸 신호탄으로 디젤유 저장소, 중대본부, 수상기 격납고, 탄약고들이 완전히 박살났다. 미드웨이 해전이 끝나고 나서도 이 시설은 복구하지 않았고, 결국 이스턴 섬은 지금도 황량한 상태로 남아 있다. 위성지도로 보면 오래 방치된 듯한 활주로 3개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 [16] 원래 VT-8은 어벤저로 기종 변경을 실시했으나 기종 변경을 끝내고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모함이 출격한 뒤였다. 한 대의 기체도 아쉬웠던 니미츠 제독은 이들 중의 일부를 미드웨이로 보냈고, 이렇게 미드웨이로 간 어벤저들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최초로 실전을 치르게 된다.
  • [17] 과달카날 전투의 메인 무대였던 헨더슨 비행장이 바로 이 사람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거다
  • [18] 웃긴 건 이때 미군 폭격기들이 찍은 폭격 장면들이 꽤나 그럴싸해서 미드웨이 해전 이후 미 육군은 이 사진을 근거로 '미드웨이에서 일본군 때려잡은 건 우리 폭격기들이다.'라고 철썩같이 믿고 떠들어댔다. 전쟁중에 아군과의 괜한 불화를 원치 않았던 미 해군은 그냥 웃어넘겼다. 전쟁이 끝난 뒤 진상이 알려지면서 미 육군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19] 뇌격의 경우 제대로 맞기만 한다면 함의 선체 구조 자체를 직접 파괴할 수 있는 반면, 급강하 폭격은 상부 구조물에 집중되는 공격 방식의 특성상 선체 자체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
  • [20] 세계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노틸러스(SSN-571)가 아니라 나왈급 잠수함의 2번함이다.
  • [21] 다만 이와 같은 기록에 대해 아라시에 탑승하고있던 생존자로 구성된 아라시 전우회는 아라시는 항공모함 아카기의 호위임무를 맡고있어서 옆에서 한치도 떨어진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기록은 최소한 두개의 부대가 언급한 것이 공통적으로 일치하는데다가, 아라시의 입장에서는 미국 기록을 인정하면 패전의 직접적 원인을 불러왔다는 불명예를 가져오기에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할 강력한 이유가 존재하므로 증언의 신빙성은 낮다.
  • [22] 네이티브 아메리칸인 샤이안 족의 후예였다.
  • [23] 당시 미군의 어뢰가 가진 극악한 신뢰성은 잠수함대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어떤 잠수함은 적 함대에 파고들어 6발의 어뢰를 발사했지만 모두 불발된 사례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개발국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서 그걸 개발했는데, 불발일 리가 없다능! 너님들 실력이 허접한 거라능!"라면서 뻗대고 있었다. 열받은 잠수함대에서는 "어뢰 대신에 (옛날처럼 육박전이나 할테니) 함선 붙잡을 갈고리나 내놔라!"며 악담을 퍼부어댔고 뇌격기 조종사들 역시 "ㅅㅂ 효과도 없는 어뢰쓰느니 그냥 철갑탄 쓸란다."해서 한동안 함선을 상대로도 일반 폭격기마냥 통상적인 수평폭격만 해댔다. 본문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이런 방법으로는 당연히 전과가 영 신통치 않았지만, 최소한 생환 가능성은 뇌격보다 훨씬 나았다. 어뢰 개발 관련 인사들이 물갈이되고 어뢰 자체의 개량이 이뤄진 이후에도 항공어뢰에 대한 불신은 높았고, 이 불신은 필리핀 해 해전에서 다이호쇼카쿠를 어뢰로 잡고 나서야 겨우 해소된다.
  • [24] 맥클러스키 소령은 이날의 공적으로 해군십자훈장을 수여받는다.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프리깃함인 USS 맥클러스키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 [25] 아라시는 1943년 8월 7일에 솔로몬 군도에서 아마기리, 하기카제, 시구레와 함께 작전 도중 미군에게 격침되었다. 상세한 정보는 가게로급 구축함 아라시 참조.
  • [26] 비행기 숫자 합계 28대. 폭탄 합계 50발.(...)
  • [27] 이때 함장 오카다 대좌가 전사하면서 항공장교가 함장직을 인수한다.
  • [28] 얼마나 개판이었는지는 당시 참전한 파일럿 '더스티 클리스'의 증언에 의하면 피아식별을 위해 갑판에 큼직하게 그려넣은 일장기에 명중한 폭탄도 있었고 아예 갑판 위에서 대기중이던 제로센에게 명중한 폭탄까지 있어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졌다고 한다.
  • [29] 참고로 베스트 대위는 미 해군 최정예라는 엔터프라이즈 소속 급강하 폭격기대 중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실력자였다.그야말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의한 베스트 샷.
  • [30] 이 공격으로 위버와 베스트 대위는 해군십자훈장을 수여받지만, 위버는 이날 전투에서 히류를 공격하다가 격추당해 전사했고 베스트 대위는 산소호흡기 문제로 결핵이 발병해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후 완쾌되었으며 2001년에 사망했다.
  • [31] 과거의 통설에서는 히류가 나머지 3척들과 거리를 멀리 두고 있어서 급강하 폭격기들의 공격을 피한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 당시의 일본 함대 진형을 보면 오히려 히류는 소류 가까이에 있었다.
  • [32] 실제로 고속, 긴 사정거리를 지닌 산소어뢰를 이용한 구축함의 뇌격은 일본 해군의 장기이기도 했고, 이 분야에서 나구모는 매우 뛰어났다.
  • [33] 이 폭탄은 제6정찰비행대대의 갈라허 대위와 스톤 소위가 떨어뜨린 폭탄이었다. 이후 같은 소속의 자카드 소위가 히류에 제1명중탄을 내게 된다.
  • [34] 히류도 거의 가라앉은 상태에서 구축함 마키구모의 뇌격처분을 받았다. 다만 명령체계가 어떻게 꼬였는지, 히류에는 다몬제독 외에도 기관장 등 다수의 생존자들이 있는 상태였고 이를 확인한 나구모는 이들을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이 구조되기 전에 마키구모가 어뢰를 명중시켰고, 이 생존자들은 겨우 찾아낸 9m짜리 보트에서 2주간 표류하다 겨우 미군에게 구조된다. 원래 이들을 구조하기로 되어 있던 구축함 타니카제는 엄청난 수의 미군기들의 공습을 받아 제대로 수색해보지도 못하고 겨우 살아 돌아갔다. 참고로 이 폭격으로 타니카제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가장 많은 미군기의 공습을 받은 수상함이 되었다(...)
  • [35] 이 행위로 인해 아라시의 함장인 와타나베 유스마사(渡辺保正) 중좌는 일본이 패전한 후 미국이 전범 재판에 피고인으로 올리기 위해 찾다가 전사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중지했다. 그리고 아라시의 생존자들은 포로 살해의 책임자로 와타나베 함장과 츠토무 마츠우라(松浦勉) 포술장을 지목했다.#1#2#3
  • [36] 미국이 야마구치 다몬을 높게 평가해 "다몬이 죽었으니 야마모토의 후임이 될 인물은 없다."고 야마모토 암살작선을 진행시켰다는 얘기가 있는데, 니미츠 평전 등 어떤 미국 측 기록을 뒤져봐도 다몬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애초에 이 이야기 자체가 일본의 논픽션 작가가 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미국 해군 장교가 "나가토가 있으니 일본은 침공 못한다"고 말했다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신빙성 없는 일화처럼 그냥 헛소문이다.미국측의 자료를 보면 오히려 니미츠는 야마모토를 무능한 장수로 평가해서 야마모토를 암살하면 유능한 사람이 후임이 될까 두려워 실행을 주저했다고 회고하는 장면만 나올뿐이다.저 사실을 일본입맛에 맞게 편집을 하면 작가가 쓴 글이 될수도 있을것이다
  • [37] 이때 상륙한 일본해군 육전대는 2년간 그곳에서 아무짓도 못하고 무위도식하다가 애투섬에서는 상륙한 미군과 격전 끝에 2천여명이 전멸하고, 키스카섬의 5천명은 미군 상륙 직전에 기무라 마사토미가 지휘한 구출함대에 의해 구출된다.
  • [38] 하필 맞은 곳이 방화격벽인데다 미군 항공모함을 잡으려고 어뢰에 연료까지 만재한 채 출격을 준비 중이던 함재기 근처라서 화재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든지, 아니면 각각의 방화구역에 사이좋게 한발씩 맞았다든가...
  • [39] 문제는 그 1척 남은 가용 항공모함이 해전사의 전설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지만. 엔터프라이즈가 가라앉지를 않아
  • [40] 여기서 일본 해군을 조금 변호한다면, 공격 중시의 해군전술 사상은 일본만의 특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조는 범선 시대의 영국 해군으로 같은 시기의 프랑스 해군이 미국독립전쟁 당시 인도양에서 활동했던 쉬프랑 제독을 제외하면 대체로 함정 보전을 염두에 두고 교전했다면, 영국 해군은 말 그대로 닥치고 돌격인 경향이 정말 강했다. 심지어 범선 시대 말기로 접어들면 아예 전투교리로서 상대의 단종진을 돌파하는 전투법을 채용할 정도이다. 이런 경향은 19세기말에 영국 해군을 모범으로서 증기력 해군을 창설한 일본 해군에게도 전수되었고, 게다가 점감요격 전법의 교리에 깔린 사상은 항공모함과 항모 전투기 부대는 결전 초반에 소모되어도 좋은 부대였다. 이런 분위기의 조직에서 조직의 리더가 교전 회피 및 전력 보존이라는 프랑스 해군식 발상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게다가 프랑스 해군이 역사적으로 받는 평가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 [41] 이에 대해 과대 평가라는 의견도 있다. 이당시 미군이 보유한 레이더의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데다 이를 운용하는 미군 병력들의 숙련도도 낮았기에, 일본군은 미 함대가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지점에서 본격적인 저항에 부딪혔으며 고도와 위치 선점 등의 문제로 인해 미군 함재기들이 일본군 함재기들을 놓쳐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전투기에 의한 함대 방공이 당당히 함대 방공의 한 축이 된건 필리핀 해 해전 부터라는 평이다.
  • [42] 여담이지만, 이 '최고위 외교관'은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에 한쪽 다리를 잃은 시게미츠 마모루이다. 시게미츠는 훗날 미주리호 함상에서의 패전 조인식에 일본 대표로 뽑힌다. 동정심 유발을 위해(…). 그러나 맥아더에게 그딴 게 먹힐 리가 없다. 참고로 시게미츠의 조카딸이 바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일본인 부인이다. 신격호의 일본이름도 처가를 따라서 시게미츠 다케오.
  • [43] 당시나 지금이나 항공모함에 승선한 함재기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경우 모함에 화재 발생시 무조건 화재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대피하도록 되어 있다. 그만큼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 [44] 이건 어느 시대, 어느나라 군인들이나 마찬가지다. 당장 자신의 임무에 필요한 정보를 체득하기에도 빠듯한데, 남의 일에 대한 것을 일일이 알아야 할 여유도 이유도 없다.
  • [45] 당시 언론에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 항공모함 격침 장면이라고 나온 것들은 당시 상황을 재현한 디오라마였다.
  • [46] 니미츠 제독은 헨리 폰다, 핼시 제독은 로버트 미첨, 야마모토 제독은 토시로 미후네, 그밖에 글렌 포드, 제임스 코번같은 여러 유명배우들도 나오며 기타 일본측 인물들은 나름 이름있는 동양계 미국배우가 네이티브 영어를 구사한다. 여담으로 베스트 키드에서 미야기 스승을 맡은 팻 모리타도 나왔다. 한편, 토시로 미후네는 더빙처리.
  • [47] 항공모함 전대가 실제 항공모함 1척으로 때운다.
  • [48] 영화 짜집기도 짜집기지만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애인을 기다리는 일본계 미국인 처자의 모습은???
  • [49] 초반부에 나오는 자료화면으로 묘사된 동경 공습 부분이 바로 그 영화이다.
  • [50] 잘 보면 미드웨이에 난데없이 미 전함 아리조나가 정박해있고 미드웨이 출격을 아침에 한다.
  • [51] 전편이 전쟁과 폭풍(The wind of war)이며, 한국에서는 KBS-1에서 심야에 전편은 1986년에 방영했고, 후편은 1989년 방영.
  • [52] 명 배우 '로버트 미첨'이 연기했다. 극 중에서는 후반부에 소장으로 진급. 더빙 방영판에선 성우 이봉준이 나레이션과 같이 연기했다.
  • [53] 참고로 이 둘째 아들의 며느리로 샤론 스톤이 나온다.
  • [54] 참고로 1화는 바로 진주만 공습. 그러니까 미군을 폭격으로 처발라버린 다음 화부터 일본군이 무참하게 깨지는 걸 보여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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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8-17 21: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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