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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카즈요시

last modified: 2015-03-21 12:44:57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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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FC No.11
미우라 카즈요시
(三浦 知良 / Kazuyoshi Miura)
국적 일본
출신지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생년월일 1967년 1월 26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177cm / 72kg
프로 입단 1986년 산투스 FC 입단
소속팀 산투스 FC (1986)
파우메이라스 (1986)
SE 마츠바라 (1986)
CRB (1987)
XV 지 자우 (1987~1988)
코리치바 (1989)
산투스 FC (1990)
요미우리 SC (1990~1992)
베르디 가와사키 (1993~1994)
제노아 CFC (임대) (1994~1995)
베르디 가와사키 (1995~1998)
GNK 디나모 자그레브 (1999)
교토 퍼플 상가 (1999~2000)
비셀 고베 (2001~2005)
요코하마 FC (2005~ )
시드니 FC (임대) (2005)
에스폴라다 홋카이도[1] (임대) (2012)
국가대표 89경기 55골

1993년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
김주성(대우 로얄즈) 미우라 카즈요시(베르디 가와사키) 에드 알 오와이란(알 샤바브 FC)

Contents

1. 소개
2. 클럽
3. 국가대표
4. 여담

1. 소개

일본의 현역 축구선수.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고, 47살인 현재도 아직 현역으로 요코하마 FC에서 뛰고 있다.
J리그 최고령 출전선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201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홍명보 감독보다 무려 두 살이 더 많다!! 도대체 언제까지 현역으로 뛸 건지…….(관련 기사)

2. 클럽

1986년에 브라질로 축구유학, 브라질 프로팀에서 4년간 뛰다가 J리그가 출범하자 1990년 일본에 돌아왔다. 이후 요미우리 FC에 들어갔다. 이후 이 팀은 이름이 베르디 가와사키로 바뀌고 90년대 최고의 명문구단이 된다. 1994년에는 세리에 A팀인 제노아 CFC에 영입되지만 별 활약을 못펼치고[2] 다시 1995부터 다시 베르디 가와사키에서 뛰었다. 이후 크로아티아 리그(1998), 호주리그(2005)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결국 해외에서는 별 활약을 펴지 못했다. 그리고 교토 퍼플 상가빗셀 고베를 거쳐 2006년부터는 요코하마 F.C에 있다. 체력적 한계인지 2010년에는 10게임밖에 출전 못했다.

3. 국가대표


일본 대표팀이 공한증을 벗어나 거의 대등해진 1990년대 부터는 일본 대표팀의 스트라이커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미국월드컵 최종 예선전에서 후반 15분에 터진 미우라의 결승골로 일본은 9년 만에 한국을 꺾었다. 현재 중국 못지않은 공한증에 시달리던 일본은 이것으로 징크스를 확실히 깬 것이다.(9년간 A매치는 2무 7패) 그래서 일본은 최초로 월드컵에 자력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한국은 이 당시 거의 탈락을 예상하고 있었으나 종료 30초전에 이라크에게 골을 먹은 일본팀이 비기는 바람에 일본 팀은 최종예선 3위로 탈락하고, 2장이 배정된 아시아 티켓은 한국과 사우디가 나눠가졌다. 당시 전성기였던 미우라에게는 이것이 천추의 한이 되는데, 월드컵에는 한번도 출전한적이 없기 때문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활약하면서 일본대표팀의 본선행을 이끌었으나, 그 과정에서 이미 그의 기량을 능가하는 후배들이 넘쳐났고, 이 때 오카다 감독은 본선에서는 미우라를 대표팀에서 빼버렸다. 하지만 같은 포지션인 동갑내기 나카야마 마사시가 선발된 것 보면 그를 능가하는 후배선수가 많았던 것 같지는 않다. 감독과의 불화설도 잠시 떠돌았었다. 이유야 어쨌든 결국 일생일대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도 '불러주기만 하면 반드시 참가한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50에 가까운 나이인지라 꿈이었던 월드컵 본선 출전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2012년에 열린 풋살 월드컵에 일본 대표로 출전하면서 간접적이나마 소원 성취(…).
93년 당시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좌절시킬 뻔한 골의 주인공이었기에 한국 팬들 사이에서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으나, 세월이 많이 지난데다가 결과적으로 일본은 예선탈락하고 한국은 본선진출했기에 그러한 감정도 많이 희석되어 지금은 한일전을 장식했던 추억의 선수 중 한 명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오히려 50이 다 된 나이에 아직도 현역으로 뛰냐며 놀라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

4. 여담

유니폼의 이름은 클럽, 국대를 막론하고 KAZU라고 표시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골 세리모니 카즈댄스도 있는데 이건 브라질의 삼바댄스를 따라한 듯 하다.이치로는 이를 따라한 것 같다.

90년대 중반 SBS에서 방영하였던 애니메이션 태풍의 그라운드는 그를 모델로 한 작품인데 팀은 시미즈 S펄스 소속으로 나온다. J리그 출범 초창기라 저작권 개념이 엄격했던 일본이지만 특별히 실제 팀이름을 쓰는 것을 허가했다고 한다. 그 밖에 주요 인물들도 J리그 선수들을 모델로 만들었었다. 또한 미우라 카즈요시-야스토시(형) 형제가 아예 실명으로 등장하는 KAZU & YASU 영웅탄생(カズ アンド ヤス ヒーロー誕生)이라는 작품도 있었다.

그가 교토 퍼플 상가에 있을 때 박지성이 입단, 짧은 시간이지만 같은 팀 동료로 뛴 적도 있었다. 박지성이 자서전에서 말하길 처음엔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인 스트라이커라 다소 편견이 있었는데 친절하고 프로다운 태도 때문에 그런 편견은 금방 씻을 수 있었고, 덩달아 존경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인연 때문인지 미우라는 2011년 6월에 벌어진 박지성 자선 축구 경기에도 참가했다.

명탐정 코난 극장판11번째 스트라이커에서는 미우라를 포함한 J리그의 몇몇 선수들이 캐릭터로 나오는데, 실제 선수들과 함께 자신들의 캐릭터의 성우를 맡았다. 국내판에서는 김승준이 맡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1967년생 동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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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풋살 클럽. 잠시 풋살선수로 뛸 때 소속됐었다.
  • [2] 첫 경기에서 상대수비수와 충돌하여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다. 결국 최종 성적은 23경기 출장 1골 1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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