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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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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서적
2.1. 역사와 책임
2.2. 민족사랑
3. 영상물
4. 독립운동가 이갑성 친일 의혹 제기
5. 지부
6. 해킹사건

1. 개요

1949년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을 이어받고, 친일 문제 연구계의 권위자인 임종국씨의 유지를 이어[1] 1991년에 설립된 민족주의 역사 단체. 초대 소장으로는 김봉우, 2대 소장으로 상범씨가 역임한 바 있고 현재는 3대 소장으로 문학평론가 헌영씨가 재직중이다. 임헌영 소장 인터뷰
원래 명칭은 반민족문제연구소였으나 현재는 민족문제연구소로 바뀌었다. 여러 한일 단체들이 매년 진행하는 야스쿠니 반대 공동행동 행사에도 동참하고 있으며, 그밖에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추모 행사 사업등 활동하고 있다.#

연구소의 이름으로 인해 그 의미가 여러 언론에서 매우 잘못 알려졌는데, 민족문제연구소는 '민족'을 '문제'의 대상으로 보는 곳이 아니다.일제시대 친일파 문제 같은 반민족적인 문제에 대한 연구하는 곳이 주류이면서도, 그밖에 일제말기 강제동원 피해자분들 관련사업,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ex: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 등)등 활동하고 있다. 오해하면 곤란하다.[2]

2. 서적

일제의 식민지 정책, 대한민국 해방 후 과거 청산 문제 및 일본의 과거사 반성 문제를 다룬 학술서적과 잡지들을 내고 있으며, 임종국 씨의 저서들도 일부 재발간하고 있다. 이 곳에서 발간된 서적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친일인명사전.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2.1. 역사와 책임

포럼 '진실과 정의'와 공동으로 과거 청산 문제를 다룬 잡지, 역사와 책임을 발간 중. 연 2회 발행되고 있으며, 일단 10호 이상 나와야 학술 잡지로서의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현재까지는 계속 발간 중.

2.2. 민족사랑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에게 보내주는 잡지로 월간지이다. 홈페이지에서도 pdf로 열람이 가능.

3. 영상물

자체적으로 영상도 여러 가지 제작하고 있다. 유튜브Vimeo의 민족문제연구소 채널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다큐 중 최근에 나온 것으로는 이승만 ·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리아 게이트프레이저 보고서 인용을 다룬 내용의 '백년전쟁' 시리즈가 유명하다. 다만, 이 동영상에는 이승만대통령이 법원 기소된 것으로 묘사하는 등 일부러 악의적으로 왜곡한 부분들이 많다고 뉴라이트조선일보등에 의해 지적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4. 독립운동가 이갑성 친일 의혹 제기

과거 민족대표 33인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 이갑성의 친일 의혹을 제기했다. 아래는 의혹의 주된 내용과 그에 대한 반박이다.

첫째로 이갑성이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의 촉탁(비서)이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국내에 남아있는 조선총독부 자료를 검토한 결과 마루야마의 촉탁 리스트에 없었다. 비공식적인 촉탁이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아도 마루야마와 이갑성의 접점은 없다.

둘째로 1930년대 상해에서 활동할 당시 창씨명(岩本正一, 이와모토 쇼이치)으로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했으며, 그 근거로 명함이 발견되었으나 호적자료를 확인한 결과 이갑성은 1940년 7월 23일에 창씨개명을 하였다. 또한 명함에 적혀있던 이름으로 볼 때 만주에 있었던 기업으로 추정되는 '일만산업공사'는 존재한 적이 없는 기업으로 밝혀졌다.

셋째로 미쯔미시 주식회사의 신경출장소장을 역임했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미쯔비시 본사의 사료를 검토한 결과 신경출장소는 물론 어느 출장소에서도 이갑성을 비롯한 조선인의 근무기록은 없었다.

오히려 1934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발행한 <국외용의조선인 명부>[3]에 이갑성의 이름이 적혀있다. 명부의 기록을 보면, 1930년대 이갑성이 상해에 거주할 당시 30년대 중반부터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40년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한 기록도 있음을 볼 때, 이갑성의 일부 관련자의 증언만을 토대로 한 친일 의혹은 근거가 없다.[4][5]

결국 민족문제연구소 등 여러방면에서 오랫동안 친일파라는 공격을 받아온 이갑성은 SBS의 심층 취재와 2006년 '민족대표 33인의 재조명 학술대회'를 통해 논박되면서 뒤늦게 친일파 누명에서 벗어났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없는 상태이나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이갑성의 이름이 수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민족문제연구소측에서는 이갑성의 친일의혹제기를 철회한것으로 보인다. 허나 공식적인 입장 표명없이 은근슬쩍 뺀 것은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다.

5. 지부

여러 도시에 연구를 지원하는 지부가 있다..
광주지부, 안산시흥지부, 경기북부지부, 부천지부

6. 해킹사건

2013년 5월 12일 해킹을 당하여 일부 회원들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다.해당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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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설립 발의를 임종국씨의 빈소에서 했다. 물론 그 외에도 독립기념관김삼웅씨나 운현씨 외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 [2]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우익 언론들이 연구소 명칭에 대해 잘못 소개하고 있어서이다. '반민족문제연구소'에서 '민족문제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어서 더 오해하기 쉽다.
  • [3] 국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 중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등의 이유로 주시해야 할 인물들을 기록한 명부다.
  • [4] 위 내용은 2005년 3월 1일에 삼일절 특집으로 방송한 SBS 뉴스추적을 토대로 서술되었다. VOD
  • [5] 단 본 자료에서 1940년대의 근거는 미약한 편으로 복역을 마치고 창씨개명을 한 1940년대 이후의 행적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좀더 정확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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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4-11-26 19: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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