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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last modified: 2015-05-27 13:52:53 by Contributors

民族主義, Nationalism / Ethnic nationalism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학술적 논란
4. 민족주의의 특징
4.1. 장점
4.2. 한계점
4.3. 총평
5. 한국에서
5.1. 민족주의 음악
5.2. 관련 항목


민족주의는 세력에 대한 갈망이되, 이 갈망은 자기기만으로 완화될 수 있다. by 조지 오웰

1. 개요

서구의 정치 이념인 'nationalism'의 번역어로, 공통의 언어, 역사, 종교, 습속, 혈통 등의 특징들을 기준으로 등질적인 공동체를 구획하여 타자와 구분되는 하나의 정체성과 국가를 공유하는 집단인 'nation'의 개념을 분명히 하고, 이 공동체에 걸맞은 독립적인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상. 'nation'과 'nationalism'은 이후 '민족'과 '민족주의'로 번역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혈통적인 연계성이 특히 강조되었다.

민족주의의 번역에는 굉장히 논란이 많은데, 한국어에서의 "민족"이란 개념에 가장 일치하는 것은 분명 "Ethnic group"이지만 민족주의는 ethnic group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nation의 파생어 nationalism이기 떄문이다. 영어에서는 일단 "Ethninc nationalism"이란 단어가 따로 존재하며 실질적으로 한국어의 민족주의란 단어에 가장 가까운 의미는 이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Nationalism"이란 단어의 번역이 약간 애매해지는데, Nationalism을 국가주의라고 번역하기에는 국가주의는 statism이라는 별개의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nation-state를 국민-국가로 번역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nationalism=국민주의. 뭐가 이리 복잡해

공통적인 특성을 갖는 하나의 공동체의 확립 및 타자와의 구분을 전제로 하므로, 내부 공동체의 단결과 타자로부터의 독립 등에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단결을 해치는 요소나 타자에 대한 배척이 이루어지므로, 공격적으로 전용되는 경우가 많은 사상이기도 하다.

다른 이데올로기와는 다르게 민족주의란 그 개념이 모호하며 다른 이데올로기와 잘 합쳐진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근ㆍ현대의 거의 모든 신생 독립국가들을 탄생하게 한 이념이기도 하지만,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분야의 갖가지 담론을 '민족'이라는 이라는 이름 아래로 소환시켰던 그 파괴적인 힘은 도리어 양차대전을 비롯하여 증오와 피로 얼룩진 20세기의 수많은 분쟁을 만들어냈다.

2. 역사

혈통적인 공동체의 관념은 고대부터 있었고 개중에는 유대인처럼 수천년을 유지한 경우도 있지만, 근대적인 의미의 'nationalism'은 'nation'의 개념을 기본적으로 인식하면서 태동한다. 'nation'은 흔히 '국가', '민족'으로 번역되지만, 그것 외에도 '국민'의 뜻을 지니고 있다. 국민들의 공동체 의식이 등질적인 '민족'을 구성하며, 이들이 건설하는 국가가 '국민 국가(nation-state)'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적 의미의 민족주의는 보통 17세기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대륙의 외부 세력(숙적인 프랑스나 여타 가톨릭 세력 등)들과 맞서면서 영국인이라는 배타적 집단 의식이 형성되고, 그것이 강력한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영국 국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면서 영국 민족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국민 국가 건설'의 관념은 전통적 계급구도를 뒤엎어 놓은 시민혁명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몽사상이 보급되면서 정치 참여에 대한 의지를 갖는 시민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이는 이전의 봉건제도에 의한 분절성을 극복하고 통일적인 국가가 성립하는 데 강한 추동력이 되었으며, 지식 및 교육의 확산과 정치 참여 계층의 확장과 함께 하며 유럽 각국의 지배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의 민족주의 도입 과정은 조금 다르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침탈이 가속화되면서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들이 서구 식민 지배자에게 저항하기 위한 결속의 근거를 삼기 위하여 도입한 것이다. 이른 시기의 예로는 미국 독립전쟁이나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열풍이 있고, 19세기 후반에는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저항을 위한 민족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적 민족주의로 출발한 일본 민족주의가 제국주의 침략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꽤 흥미로운 사례이다. 어쨌든 근대에 민족주의를 도입한 국가, 세력이 한둘이 아니고 그들이 받아들인 방식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들을 간단히 일률화하기는 힘들다. 어쨌든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자들과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세력 양쪽 모두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게 되었다.

사실, '민족주의'로서 통합된 국가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민족주의는 비슷한 언어, 비슷한 문화만 공유하고 있으면 대단히 넓은 범위의 인간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버릴 수 있다. 민족주의의 위력으로 혈연에 기초한 이나 , 귀족이나 노예와 같은 계급 제도, 종교, 지연 등의 다른 사회적 연결 고리는 분명 상당히 약화되고, 적어도 같은 민족 내부에서는 균질적인 사회가 출현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같은 민족이 아닌가?"라는 구호 때문에 '내부 갈등'은 크게 줄어든다. 결국 같은 규모라면 외부로 투사할 수 있는 국력이 엄청나게 달라지게 되며, 설사 규모가 크다고 해도 민족주의로 묶이지 않은 국가는 국가라는 개념이 거의 솜무더기 처럼 흐리멍텅하게 인식된다. 이 때문에 민족주의 국가와 민족주의가 완성되지 않은 국가를 비교하면, 후자는 거의 "나라 꼴도 못 같춘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러므로 후발 국가의 지식인들에게는 "같은 민족이라면 다 같이 힘을 합쳐서 나라를 건설하자."는 민족주의가 그럴듯하게 보이게 된다.[1]

그런데 'nation'의 개념이 당시에 유행하던 사이비 과학사회진화론, 우생학, 인종 차별 등과 결합하면서 혈통적인 민족의 관념이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가 충돌하는 사건 등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동아시아는 특히 역사적인 연고가 오래되고 내부의 단결력이 뚜렷하며 이미 공간적인 구획이 확고한 국가들이 존재했으므로, 근대 일본의 번역어인 '민족(民族)'을 혈통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20세기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이러한 독립 국가 건설의 열풍을 유럽에 적용하여 제국들의 해체를 위해 이용하였으나, 아시아와 아랍 등지에 큰 파급을 미치면서 민족주의를 다시 한 번 고조시켰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운동으로 3.1 운동 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족/개별 국가(nation)를 넘어 국제적인(international)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한 사회주의 국가 소련도 제국주의에 대한 공세를 위해 각국의 민족주의 세력과 협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의 식민지가 독립하였고, 유럽 지역이 막대한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는 동안 1960년대까지 독립 열풍이 몰아닥치면서 세계 각지의 식민지들이 스스로의 단결을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하였다.

3. 학술적 논란

최근 한국에서 이 민족주의의 성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최근 서양사학계에서 주목을 받는 탈민족주의 관점은 기존의 민족주의가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아 온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근대에 새로이 발명된 개념이라는 것이다.[2] 이는 특히 근대에 서구의 이념을 수입한 경우인 동아시아 등에서 다시 한 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본래 동아시아에는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동아시아는 유럽과는 다르게 '조선', '일본', '중국'의 경우와 같이 각 나라의 구성원이 그 기원부터 달랐음이 명확하고, 민족적인 개념의 차원에서 서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민족'이라는 별칭을 써서 분리할 필요성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전근대의 동아시아 문명권은 책봉조공이라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중화문명'의 기치아래 그 중심인 중화와 중심의 변경인 수많은 조공국으로 위치지어져 있었고, 이것에 입각하여 각 나라와 그 구성원들의 정체성이 정해졌기에 근대적인 개념에서의 '민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말, 일본이 개화기를 거치면서 'nation'이라는 단어를 '민족'[3]이라고 번역하면서 비로소 민족주의가 동아시아의 어휘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일본은 세계 2차대전 이후에 이것을 오역이라고 일컬은 뒤 국가주의로 수정하여 이후의 교과서에는 민족주의란 단어를 교과서에서 제거 했으나,[4]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직까지 민족이라는 단어를 교과서에서 가르치고있으며 세 나라 모두 민족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한나라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동아시아의 혈통주의적)+(유럽의 국가주의'nationalism')가 합처진 짬뽕적 개념이고 식민지 침략에 대한 항쟁이나 식민지 확보(일본의 경우)에 따라 구채화되어 이미 유럽의 Nation과는 완전히 다른개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20세기가 끝나가면서 제국주의가 막을내리고 세계주의가 시작되면서 미국같이 인종차별같은것이 사회문제가 되면 안되는 나라들이 앞장서서 민족주의에대해 철퇴를 가하고있다. 민족주의가 강하면 소수민족들이 자국내에서 스스로 파벌비슷한것을 만들어 문재가 될 수도있고 다른나라 특히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나라일수록 뭉처서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주기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의 수많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깊은 나라나 민족에서 반감이강하고 특히 한국,중국,일본같은 민족적 특수성이 강한나라나 민족의 존속이 위협받을 위기에 처한 민족들은 민족주의를 인정하고 또한 민족을 지켜나가려고 하고 있다. 한국민족사학을 대표적으로 예시를들자면 고조선으로부터 시작되는 왕조 정통성론이나 종족 및 혈통 관념과 조상 숭배 등 역사 속에서 민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선험적인 관념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중국은 중화사상을 응용하여 '중화민족'의 실존을 주장하고 소수민족 문제를 강압적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근대 이전의 유럽 국가들도 그와 비슷한 자국 의식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를 바탕으로 민족주의를 창출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 민족주의란 그런 모호한 개념을 넘어선 사상적 개념, 즉 17세기 유럽의 근대적 국민 국가(민족 국가, nation-state)의 토대가 되는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타국과의 엄격한 구분을 주장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기보다는 동아시아의 세계 체제 내에서 한자, 불교, 유교 등의 보편 문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했는데, 이는 민족주의에 의한 분화가 이루어진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지 않은 학자들은 유럽과 동아시아는 역사적 배경이 크게 다르므로,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입각한 민족주의 이론으로는 동아시아의 민족 관념을 설명하는 것이 무리라고 주장한다. 설사 그것이 근대적 민족주의의 형태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미 민족에 준하는 어떤 관념이 있어서 그것이 근대의 변혁기를 거쳐 현대의 동아시아 민족주의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서양에서 말하는 'nation'과 동양에서 말하는 민족은 서로 다르다는 것인데, 이걸 제대로 설명하려면 유대인 특유의 속성을 반영한 시오니즘처럼 기존의 근대 내셔널리즘 이론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민족의 특수한 발전양상을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개발되어야 할 듯 하다.

한편 혈통적인 차원에서 민족주의에 접근하는 이론은 특히 많이 두들겨맞았다. 이스터 섬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상호 간의 인적 교류를 전제하여 형성되고 변화해 왔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치 독일의 아리아인 순혈주의나 환빠들의 '너도 나도 우리 민족'과 같은 주장은 지양해야 될 사상 중 하나이다.(아리아인 순혈주의와 한국인들의 '우린 모두 같은 민족'을 같이 봐야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굳이 그러한 의미가 아니더라도, 영국과 다른 혈통적 집단이라고 볼 수 없는 미국의 독립이 'nationalism'의 주요 사례로 꼽히는 것은 한 번쯤 '혈통 상의 민족'을 많이 재고해 보아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민족주의는 근대 담론과 함께 한국 역사학계에서 논의가 많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니 궁금한 사람은 엔하위키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책과 논문을 찾아보자.[5] 일단 유럽 근현대사, 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한 근대 세계사, 한국사 전반 등을 공부해야 하는 골 빠개지는 매우 흥미로운 테마이다.


4. 민족주의의 특징

4.1. 장점

민족주의는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동질성을 강조함으로써 결속력을 도모하고 위기상황에서 하나의 국가 혹은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위기대처능력은 바로 민족주의가 처음으로 태동한 프랑스 혁명 직후의 프랑스에서부터 입증된다. 혁명기의 혼란과 연이은 외침을 겪으며 민족주의적 의식이 고취된 당대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를 우리들의 국가로, 프랑스인들은 우리네 동포로 인식하였으며, 이는 자국과 자민족을 여전히 '국왕의 국가'이자 '국왕의 신민' 정도로 여기던 주변국들과 명백히 대비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폴레옹 제국과 프랑스 대육군(La Grand Armée)이 대영제국신성로마제국(후일 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러시아 제국 등 당대의 열강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패권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위기상황에서 민족주의의 위력을 증명하는 또다른 대표적인 예시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동부전선의 교전국인 소비에트 연방이다.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적 사고보다는 국경을 초월한 계급간의 연대를 강조해왔으며[6], 실제로 소련 초기 러시아의 수많은 역사적 위인들이 공산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격하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소전쟁 초기의 암울한 전황 속에서 스탈린이 선택했던 방법은 러시아의 독립과 근대화, 조국전쟁 등 역사적인 승리의 순간들에 자리하였던 러시아의 영웅들을 부각시키고 시아 정교회를 재허용하는 등 민족주의적 사고에 기초한 것이었다. 조국이 존망의 위기에 처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러시아인들의 저항정신을 고취시켜 끝내 나치를 파멸로 몰고 간 원동력은 결국 허울뿐인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반감 따위가 아니라 바로 (러시아) 민족주의였던 셈이다.

또한 민족주의는 약소국이 외세의 압제에 맞설 기회를 제공하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저항적 민족주의(혹은 방어적/해방적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침탈을 경험한 피식민국가들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아왔다. 당장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민족주의[7]는, 반대방향에 위치한 공산주의[8]와 함께 항일 저항운동의 핵심 키워드였다. 일제의 한국어 말살 교육이나 창씨개명 등에 맞서 한민족의 얼을 지키자는 운동이 벌어진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고.[9]

마지막으로 민족주의는 후발주자가 (열강 구도가 고착화되었던) 근대 이후 국제사회의 판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후의 카드(Game Changer)였다. 오랫동안 수십 수백개의 영방국가로 쪼개져 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통일을 루고 유럽사회의 열강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유럽 사회를 강타한 민족주의의 확산이었다.[10] 이러한 독일 민중의 민족주의적 신화는 수백년간 주위 열강들에 의해 분열된 채 변방으로 취급받던 국가가 불과 한 세기만에 유럽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심지어 양차대전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깽판을 벌이고 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럽의 지도 국가로 자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4.2. 한계점

민족주의는 태생적으로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천편일률적인 몇 가지 기준으로 정의내리려는 경향성을 나타내며, 이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기준, 즉 민족성에서 벗어나는 모든 가치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프로이센독일 제국의 전통에 집착하면서 민주주의는 독일 민족의 민족성에 반하는 서구(영·프)의 가치랍시고 배척하다가 끝내 나라를 말아먹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독일이 좋은 예시이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국수주의전체주의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 물론 이처럼 극단적인 이데올로기가 주변 국가들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자국민 혹은 자민족에도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가 수많은 희생을 통해 체득한 바 있다. 실제로 민족주의의 요람이었던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EU의 결성으로 현재는 민족주의가 약해졌다.(민족주의와 결별하기 싫어하는 동아시아)

항일 유격대 시절의 투쟁논리와 소위 '민족해방전쟁'을 근거로 주체사상선군정치를 발명, 반미-반일-반제국주의 논리까지 버무려서 인민 세뇌에 써먹고 있는 북한도 가까운 예이다.[11]

또한 다민족 국가에서는 단결이 아닌 골칫거리 중의 하나. 조율을 제대로 못 할 경우 내전으로 치닫게 되어 국가 막장 테크로 가는 경우도 있고, 제노사이드 혹은 그에 준하는 대규모 학살이 벌어져 그 국가에 대한 국제 여론이 매우 나빠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후투족과 투치족이 내전을 벌여 수십만명이 죽어나간 르완다 내전, 6개 국가로 분해된 유고슬라비아 등이 있다. 현대의 중국 또한 자국 내의 민족 분규를 해결하는 데 '55개의 민족이 화합하여 만들어내는 중화민족'의 개념을 창작하여 티베트, 위구르 문제 등을 강압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족주의가 강성해질수록 그 민족의 근간이 되는 역사를 '민족의 역사'라는 하나의 줄기로 묶어내려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문제는 현대 민족국가들 대다수가 근대에 형성된 것이므로 근대 국가와 민족 관념을 자꾸 고대사로 확장, 투영시킴으로써 그 역사에 대한 소유권과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민족을 초역사적 실체로 보지 않는 이상 이런 태도는 역사학 연구에서 지양해야 할 태도이며, 그 저변에는 대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중국이 그 대표주자로써, 동북공정 문제와 고구려, 발해 역사가 한국 역사냐, 중국 역사냐 따위의 소위 역사 분쟁은 이미 한국 사회에도 익히 알려진 바 있다. 물론 한국 사학계도 이에 대해 ', 에 대한 고구려의 승리는 민족의 방파제 역할을 한 것' 등 민족주의를 도구로서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민족을 정의하는 관점에 따라 "저런 놈들과 같은 수준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면 안 된다"[12]라는 주장과 "그렇다고 한민족의 역사를 강탈하려는 시도를 좌시하면 안 된다"[13]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한때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자본주의 맹아론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담론 또한 한국사학계에서 민족주의와 근대가 갖는 위상이 어땠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각 항목 참고.

또한 한 민족이 여러 나라에 퍼져 있을 경우, 강성해진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이 사는 땅은 다 달라고 요구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히틀러와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였다. 결과는 둘다 폭망... 1차 대전만 해도 세르비아인이 사는 땅은 무조건 세르비아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세르비아 과격주의자들의 총성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 고대사에 대한 소유권 문제가 확대되어 엄청난 영토를 "원래 우리 땅이었다."란 논리로 요구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입으로나마 이런 개드립을 치고 있고 환빠들도 이에 해당한다.

4.3. 총평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침해할 수 있는 사상이라면 어떤 사상이라도 엄정히 비판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런 이데올로기들 중 "민족주의를 빼놓고는 근대사를 쓸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가장 보편적이고 확고부동한 성공을 거둔 것이 민족주의였고, 세계인에게 가장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전체주의 탄생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유럽연합의 대두 역시 그런 정치적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가예정

5. 한국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개 그렇지만 한국 역시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외부인 유입이 적은 대륙 끝의 반도라는 지리적 요인과 장기적인 쇄국 정책으로 인한 인적 교류의 단절, 비교적 안정된 강역을 유지하면서 큰 분열없이 중앙 집권적 통치를 유지하고 통일적인 이념을 유지했다는 역사적 요인과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외세에 의한 큰 흔들림으로 더욱이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조선 사람은 하나의 동포라는 논리가 어렵지 않게 먹혀들 수 있었다. 사실상 중국이라는 대륙에 막혀 밖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면 섬나라 민족들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이면 된다.

실제로 조선 말기에도 외국에 대해 격렬한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조선 과 이미 죽은 명나라 을 제외하면 모두 오랑캐라고 생각해 서양, 일본, 모두에게 배타성을 보였다. 이러한 민족주의 마인드는 나이에 상관 없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일본어 단어를 써도 그냥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고[14] 짱개나 쪽바리 등의 비하적 표현은 젊은층이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더 자주 보인다. 블리자드에서 스타크래프트 2의 한국 서버와 대만 서버를 하나로 묶는다고 했을 때, 유저들이 "짱깨(중국)와는 플레이하기 싫다"는 등의 무례한 표현을 쓰고 집단 반발한 것이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15][16] 조선족의 경우에는 시각이 많이 갈리는 편인데,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므로 한국인처럼 대해 주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17] 숫제 한국에 돈 벌러 온 동포들을 중국인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서해상에서 불법 중국 어선 선원들이 적반하장으로 한국 해양경찰들에게 폭행과 살인을 가하면서 전체 중국인까지 혐오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국내의 각종 애국기믹에는 열광적으로 동조하면서도 해외에서 시행되는 적당한 애국기믹이나 자국문화 삽입 같은 경우도 과도하게 비난적인 성향이 있다. 물론 일본의 제국주의 미화는 비판해야겠지만, 사무라이나 기모노를 등장시키는 것만으로 거부감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경우는 일본 극우들이 하도 극성을 떠니 반대로 배타적 민족주의가 분출된 케이스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족주의는 하나의 민족이 두 개로 쪼개져서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특이성 때문에 타국의 민족주의와도 다른 독특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대체로 일제강점기라는 흑역사 때문에 일본친일파에 대한 반감이 크며, 또한 '외세'와 친교하기보다 마이웨이를 걷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외세'를 '궁극적으로는 신뢰할 수 없는' 세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세부적인 사항은 우익과 좌익 민족주의가 크게 다른데, 북한에 대한 시각을 예로 들면 우익 민족주의자들은 대체로 북한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는 한편 좌익 민족주의자들은 북한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18][19]. 다만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극소수의 극우극좌세력을 제외하면 이러한 대외적 태도는 좌우를 막론하고 그냥 국내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20].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우파가 마냥 외세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의심하는 것만도 아니다. 같은 보수라고 해도 네오콘들과 헨리 키신저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한편 이 문제는 통일에 대한 담론과도 어느 정도 맥이 닿아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들이 모두 통일을 이상적인 가치로 표방해왔고,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을 당위성이 이제는 사실상 민족 외에는 없다시피 할 정도로 북한과는 여러 면에서 이질화되어 있어 그만큼 민족 개념에 집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 국제결혼 여성이 국회의원이 되는데 정작 당내의원들은 순혈주의가 만연해서 내심쩍어하는 반면, 민족통일 외치는 통합진보당에선 되려 이주노동자노조가 존재하고 이를 적극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지지자나 국민들은 좌우이념 상관없이 배타적 민족주의에 찌들어있는 상황. 진보적인 성향의 이용자가 주류라고 하는 다음에서 조차 한국의 인종차별문제를 다룬 기사 댓글의 베스트 의견이 외국인이 자국민보다 혜택을 받는다며 역차별을 주장한는 것들이다. 애초에 기업이 이주노동자를 쓰는 이유는 제대로 된 권리가 지켜지지 않고, 절박해서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하는, 그야말로 더 착취하기 좋아서인데 이런 착취노동자들보다 자국민이 오히려 홀대받는다는 식의 주장은 재특회나치당의 극우적 사상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범죄를 일으켰을 때 한인들이 모두 자책감을 느끼고 집단 예배를 하는 등 과도한 자책감에서 형성된 행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한국과 달리 이러한 문화적 풍조가 없는 미국에선 이러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5.1. 민족주의 음악

국민악파로도 불린다. 19세기 후~20세기 초 즈음 해서 나타난 형태로, 러시아 5인조를 비롯해, 체코의 드보르자크야나체크, 메타나, 핀란드의 장 시벨리우스, 후기 낭만파로 분류되기도 하는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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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런 나라에서는 '국가 전체'보다는 씨족, 부족 같은 혈연 집단의 이익이나 왕족이나 귀족 같은 특정 계급의 이익이 '매우 당연하게' 우선시 된고 그것이 정당화 된다. 지식인이라면 문제 의식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그 대책으로서 이미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적어도 그렇게는 보이는) '민족주의'를 제시하는 것은 아주 쉽게 보인다.
  • [2] 예로서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이 과거부터 내려져 온 것이 아닌, 근대 시기 인쇄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발명된 이른바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였다고 말한다.
  • [3] 여기서 민(民)은 ethnic의 개념이 아닌, 전근대적인 앙시앙레짐에 대응하여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고 그 권리를 바탕으로 민주적 참정을 통해 국가를 이끌어가는 자유주의ㆍ민주주의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ㆍ구성원을 뜻하는 개념이고, 족(族)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민족이라는 어휘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것, 이른바 혈통(ethnic)을 강조하며 언어와 같은 문화, 역사, 관습 등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을 뜻한다.
  • [4] 위키백과 일본어판의 경우는 그냥 '내셔널리즘'이라는 원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5] 이성시, 임지현, 도면회 교수 등이 민족주의와 관련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사 연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 [6]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표어나 수많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조직들을 상기해 보자.
  • [7] 민족자결주의를 바탕으로 한 "한민족의 나라를 세우자"는 주장.
  • [8] 일본 제국의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노동자의 국가를 세우자"는 주장.
  • [9] 물론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되던 민족주의가 해방 이후에 오히려 인종차별독재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타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부 신생국에서 권력욕에 불타는 독재자들이 민족주의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벌어지는 문제들을 민족주의 자체의 단점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국민 다수의 건전한 정치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 자체가 잘못된 원칙이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 [10] 독일 제국 항목에도 잘 설명되어 있지만,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이 보수적·전통적 가치를 중시했던 것과는 별개로, '독일 민족국가'는 귀족계급보다는 소상공인을 비롯한 독일 민중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 [11] 다만 북한은 사실 민족주의라는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북한이 한'민족'인 대한민국, 아니 당장 북한 땅에서 나고 자란 토종 자국민에게조차 어떻게 대하는지만 돌이켜봐도.. 외국인이나 소수민족, 한민족의 전통적 가치에 반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몰라도, 아예 전 국민을 서열화하며 개인의 자유를 탄압하는 태도는 민족주의와는 무관하다.
  • [12] 일례로, 박노자는 고대 역사에 현대의 국가나 민족이란 개념을 대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과연 고구려인들이 신라인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애초에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에게 '하나의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을까? 예컨대, 삼국통일 당시 신라 입장에서는 결국 고구려나 백제나 당나라나 다 외국이자 견제 대상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 [13] 당대에도 삼한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음은 물론 삼국통일도 삼한일통이라고 일컬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은 적어도 최소한의 동질성은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발해와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을, 조선은 고조선의 계승을 공식적으로 자처한 나라이고, 고려와 조선이 현대 한국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유럽이나 중동처럼 수많은 민족들이 명멸한 케이스도 아니고, 한반도와 만주만을 무대로, 서로 유사한 유전적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온 연속성 있는 역사를 굳이 특정 시점에서 구분지으려는 시도부터가 서구 중심적인 민족주의 담론의 부산물일 뿐이다.
  • [14] 물론 이건 편견일 수 있다. 연장자들 중에서도 일본어 단어를 버릇대로 섞어 쓰는 사람들은 있다.
  • [15] 참고로 이건 대만인들이 요청해서 된 것도 아니고 블리자드가 결정한 사안이다. 그리고 애초에 대만과 중국은 다르다. 대만인들은 자신들이 Chinese라고 불리는걸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 [16] 다만 통합을 반대한 이유는 단순히 반중감정 때문만은 아니라, 대만인과 한국인의 평균적인 실력의 간극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특히 멀티플레이의 팀전에서는 그 영향이 심했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는 잘 통합 된 듯. 애초에 스타2의 인구가 줄어들기도 했고.
  • [17] 중국은 조선족 등 소수민족들에게 중국인의 정체성을 갖도록 교육한다.
  • [18] 좌익 민족주의자들은 우익을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수구반통일세력"으로, 우익 민족주의자들은 좌익을 "북한 체제를 따르는 친북세력"이라고 공격하는건 우리에게 익숙하다.
  • [19] 한편 좌익 민족주의자들이 주화입마에 빠질 경우 위험한 사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일반화 하지는 말자.
  • [20] 진보 일각에서 "외국 우파들은 외세에 배타적인데 우리나라 보수는 왜 친일 친미냐"라는 식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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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5-27 13: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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