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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last modified: 2015-04-10 12:14:4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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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미국의 소설 Gone with the Wind
1.1. 개요
1.2. 줄거리
1.2.1. 등장인물
1.3. 그 밖의 이야기
1.4. 영화
2. 한국 영화
2.1. 줄거리
2.2. 등장인물
2.3. 기타

1. 미국의 소설 Gone with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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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표지

미국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쓴 유일한 장편 소설. 이 한 편으로 마거릿 미첼은 세계 문학사에 획을 긋는 작가로 등극했다. 1936년 출판되었고 이듬해에 퓰리처 상을 수상하였다.

1.1. 개요

이 소설이 출간되기까지는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소설은 1929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나 수백여곳 출판사에서 모두 거절당했기에 줄곧 마거릿 미첼의 집에 묻혀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친구인 파커슨 부인의 권유로 원고를 맥밀런 출판사의 담당자에게 넘겨 주었는데, 담당자는 처음 원고만 보고도 질려 버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은 초판 출간 당시 1037쪽에 달하는 양이었고, 그게 원고가 되다 보니 분량은 트렁크 하나에 가득 찰 지경이었다. 그래서 담당자는 '다음에 보겠음' 하며 그 원고를 물리쳐 버리는데, 끈질긴 파커슨 부인은 그 담당자가 뉴욕으로 돌아가는 열차의 좌석에 이 트렁크를 놓아 두고 '꼭 읽어 주시죠' 라는 메모를 남겼다. 담당자는 이를 무시했는데 이번엔 또 셔틀 심부름꾼이 인편으로 메모를 전했다. 이것도 무시당했지만 그 뒤 또 전보가 날아오자 결국 담당자는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뉴욕에 도착할때까지 천 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를 읽고 당장 출판 계약을 신청했다고 한다.

처음 이 소설의 제목은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인 "내일은 또 다른 내일"(tomorrow is another day) (이 대사는 우리나라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로 번역되었다.)이었는데, 이 담당자가 제목을 바꿔보길 권해서 지금의 제목이 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당시 내일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이 워낙에 많아서 이 제목으로는 주목받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단한 호평을 들으며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작품으로 마거릿 미철은 퓰리처상을 받았으며[1],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가 마셨던 음료가 그녀의 이름을 딴 칵테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스칼렛 오하라 2번 참고.

여담으로 북한에선 매우 유명한 소설이다. 자유롭게 책이 팔리는데 북한에선 미국 여성이 고달프다는 것으로 이 소설을 보고 이해한다고 한다. 즉 미국을 까는 용도로 쓰이는 셈.(2013년 10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서도 언급된다) 물론 나온지 80여년이 지난 소설인데다가 배경이 150여년전 일이기에 현대인들의 인식과 차이가 엄청난 건 당연하다. 폐쇄적인 북한체제라면 더더욱 차이가 벌어진다 뭐 이건 고전 소설 보고 조선이나 옛 시대보다 행복하지 않느냐며 자기위로를 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1.2. 줄거리

소설의 내용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여주인공 스칼렛의 인생 역정이다. 스칼렛 오하라는 대농장주인 제럴드 오하라의 장녀로, 예쁜 얼굴과 매력을 능수능란하게 휘둘러 남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한 몸에 모으는 어장관리의 달인 16살 소녀이다. 그러나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는 따로 있었으니, 이웃 윌크스 집안의 애슐리 윌크스였다. 그러다 애슐리가 자기 사촌 멜라니와 정식으로 약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스칼렛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자 애슐리는 스칼렛을 사랑하지만 결혼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멜라니와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고백한다. 화가 난 스칼렛은 애슐리의 뺨을 때린다. 그런데 이 광경을 레트 버틀러가 본의 아니게 모두 훔쳐보게 된다. 레트 버틀러는 스칼렛을 놀리고, 스칼렛은 화가 나서 뛰쳐나가고 만다.

스칼렛은 애슐리와 멜라니에 대한 질투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멜라니의 오빠인 찰스의 구혼에 응한다. 얼마 안 가 남북전쟁이 터지고 애슐리도 찰스도 모두 의용군으로 입대하게 되는데, 찰스는 전장에 가 보지도 못하고 병사해서 졸지에 스칼렛은 16세의 미망인이 된다. 그 후 스칼렛은 애틀랜타에 있는 죽은 찰스와 멜라니의 고모인 피티팻의 집에 가서 지낸다.

전쟁은 계속되고 남부는 갈수록 피폐해지며 일찍이 소녀 시절 스칼렛에게 구애하며 친하게 지냈던 동네 청년들 대부분이 전사한다. 북군이 애틀랜타를 포위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자 스칼렛은 임신중인 멜라니를 데리고 고향인 타라 농장으로 도망친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레트 버틀러였다. 그는 찰스턴 출신의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젊은 시절 일으킨 모종의 사건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난 후 도박으로 연명하다가 남북전쟁을 기회로 삼아 밀수 무역 및 필수품의 매점매석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스칼렛은 그를 싫어하는 한편 그녀와 비슷한 현실주의적 성격에 은근히 끌리게 된다. 그는 애틀랜타를 탈출하여 타라로 도망치기까지 스칼렛과 멜라니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 주며, 스칼렛과 멜라니를 타라 근교까지 데려다 준 뒤 스칼렛에게 작별의 키스를 남기고는 그가 그토록 증오했던 남부 정부군에 입대하러 떠난다.

타라에 돌아왔으나 그 곳은 이미 스칼렛이 알던 예전의 안락한 장소가 아니었다. 농장과 목화는 북군에게 불타버렸고 어머니인 엘렌은 장티푸스로 죽었으며, 아버지인 제럴드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킨다. 스칼렛은 여동생 둘과 의지가 되지 못하는 아버지, 거기에 멜라니와 멜라니의 아들, 끝까지 남아 있던 흑인 노예 몇 명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련한 처지가 된다. 이 과정에서 힘겹게 따 두었던 얼마 안 되는 목화와 재산마저 북군에게 약탈당하는 등 스칼렛은 갖은 시련을 겪는다. 이 부분에서 스칼렛은 단독으로 침입해 온 북군 병사를 직접 쏘아 죽이기도 한다.

결국 전쟁은 남부의 패배로 끝나고 전쟁터에 나갔던 인물들도 하나 둘씩 돌아오기 시작한다. 스칼렛은 전쟁이 끝났으니 모든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이른바 '재건 시대'로 불리는 북군에 의한 군정 시기가 도래했던 것이다.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남부의 농장주들은 과거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완전히 잃고 만다. 타라 농장도 과중한 세금으로 인해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데,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가 막대한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구해 올 의향으로 애틀랜타로 향한다. 그러나 레트 버틀러는 공교롭게도 북군에 의해 수감되어 있는 상태여서 돈을 줄 수가 없었다. 실망하고 나오던 스칼렛은 마침 여동생 수엘렌의 애인인 프랑크 케네디를 마주치고 대신 그를 꼬여낼 결심을 한다. 스칼렛은 여동생 수엘렌이 새 애인을 사귀었다며 프랑크 케네디를 속여 NTR한 뒤 그의 재산으로 타라를 지켜낸다. 스칼렛은 남편 프랑크 케네디가 제재소를 경영하는 방식이 영 못마땅하자 자신이 직접 경영에 나서고 술집을 차리는 등 상당한 사업 수완을 발휘한다. 그러나 경영일에 바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홑몸으로 나다니던 스칼렛은 흑인 슬럼가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KKK단에 관계하고 있던 프랑크 케네디는 스칼렛이 성추행 당한 것을 보복하러 갔다가 살해당하고 만다. 그 뒤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의 청혼을 받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레트 버틀러는 스칼렛을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해 있었고, 스칼렛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스칼렛은 그때까지도 애슐리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레트 버틀러에게 안길 때도 스칼렛은 그것이 애슐리였으면 하고 생각하는 지경이었으니 결혼 생활은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딸인 보니 버틀러가 다섯 살의 나이로 낙마해 죽은 사건이 파국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 뒤이어 애슐리의 부인 멜라니가 사망하는데, 스칼렛은 멜라니의 죽음으로 비로소 멜라니의 선의를 깨닫고 애슐리에 대한 환상을 버린다. 동시에 자신이 레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스칼렛에게 정이 떨어져 버린 레트 버틀러는 별거를 요구하고 그녀의 곁을 떠나간다. 스칼렛은 절망에 빠지지만, 여태껏 절망적인 일에 맞닥뜨렸을 때마다 생각했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사실 원문은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니까"이지만 왠지 이게 밋밋하다고 생각했는지 한국 번역자인 영문학자 故 장왕록(1924~1994) 교수가 초월번역을 했다) 를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1.3. 그 밖의 이야기

원작자 미첼은 이 소설 하나로 베스트셀러 작가 목록에 올랐고, 미국 문학 최대 영예인 퓰리처상도 받았으며 영화화로 인한 여러 수익까지 화려한 성공을 거둔다.그러나 그 뒤로는 어떤 소설도 문학활동도 하지 않았고, 1949년 뺑소니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닷새동안 혼수상태로 입원했다가 숨졌다.) 몇몇 지인들과 나눈 짧은 수필이나 시같은 몇몇 간략한 글들 외에는 그 어떤 소설이나 책으로 낼 것들이 없었다고 한다.출판사들이나 유족들이 돈벌이가 될까하여 엄청 꼼꼼하게 찾아봤음에도 찾아낸 게 저거뿐이라 그나마 그녀 살아생전 사진이나 주변 인물들 이야기를 담아서 그 수필 및 간략한 글을 넣어 미첼의 유작이라느니 온갖 홍보를 하며 책을 냈지만 그다지 팔리지 않아 묻혀졌다.

19세기 중반 당시 남부의 생활상을 잘 버무려 묘사해낸 작품이지만, 작중에서 남부를 끊임없이 미화하고 당시 노예제도를 매우 옹호하는 것[2]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우울증에 시달린 어느 흑인 청년은 후일 자신의 성을 버리고 말콤 X라 지칭하게 된다(....)

소설이 열린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뒷이야기를 궁금해했고, 마침내 공모 끝에 마거릿 미첼의 유족에 의해 공식 인정된 알렉산드라 리플리라는 작가에 의해 후속작인 '스칼렛'이 쓰여졌다.

사실 마가릿 미첼 사후 저작권 소멸을 막고자 나름 문체가 비슷한 에로 애정 소설 작가를 초빙한 건데 결론적으로 이 소설에서 스칼렛은 결국 레트와 다시 재결합하게 된다.[3] 그러나 원작에 비해 조금은 억지스러운 전개와 안드로메다로 확대되는 스케일(스칼렛이 제럴드의 고향인 아일랜드로 건너가고, 영국-아일랜드 분쟁까지 배경 요소로 추가된다)등으로 이를 후속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스칼렛' 이외에 다시 마거릿 미첼 위원회에 의해 공식 인정된 속편으로 '트 버틀러의 사람들' 이 있다. 이는 원작을 레트 버틀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였고, 프리퀄도 넣었다. 역시 결말 부분에는 스칼렛과 레트가 재결합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지나치게 레트의 시각으로 그린 나머지 원작의 시니컬한 레트 대신에 정의의 사도로 그려낸게 흠. 참고로 두 소설 다 국내에 출간되었다. "스칼렛"의 경우는 위에 서술한 번역자 장왕록 교수의 딸인 故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4]가 번역할 만큼 화제작이었고 드라마판도 거액으로 수입되었는데... 결론은 현실은 시궁창 후자는 빨리 출판계에서 사라졌다.

1992년에는 이가출판사라는 곳에서 속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1권짜리 책을 낸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 작가가 무단으로 낸 괴작. 억지 내용[5]으로 아스트랄함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헐리웃 유명영화들 속편 소설들이 한국 작가 이름으로 마구잡이로 후다다닥 서점에 깔리곤 했다. 사랑과 영혼이라든지 죽은 시인의 사회라든지 당시 유명 작품들 괴작 속편들이 나왔는데 하나같이 원작 팬들을 절망으로 떨어뜨릴 수준이었다. 중국 해적판 속편 소설만 깔 게 아니지 말입니다. [6]

여러나라에서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개작해서 상연된바 있다. 저작권료는???~ 한국에서도 두번 연극무대에 올랐는데 80년대판에서는 스칼렛은 유지인, 애슐리는 임동진, 매미는 강부자(...)로 열연했다. 버틀러는.... 백일섭이었다(...) 나중에 나온 판은 혜영이 스칼렛 이덕화가 버틀러였다.[7] 2015년에는 뮤지컬로도 공연되었다. 바다서현이 더블 캐스팅으로 스칼렛을 맡았다. 하지만 부산 공연에서 사운드가 먹히는 현상 때문에 최악으로 평가 받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판 원문에서 흑인들의 말투같은 경우, 한국 번역판에서는 보통 사투리로 번역되는데... 소설에서 사용된 미국 남부의 흑인말투는 억양이나 발음이 표준어와 다른 사투리라기 보다는 문법이 안 맞는 영어에 가깝다. 조사가 탈락하거나, 어순이 도치되거나, 사용되는 형용사와 동사의 수가 부족한 등. 요즘은 이걸 반영한 번역도 새로 나왔던데, 대신 가독성이 떨어지는게 큰 흠이다.

1.4. 영화

제 12 회 (1940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리들의 낙원
제 11 회 (1939년) 수상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레베카
제 13 회 (1941년) 수상작

Gone with the Wind (1939)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8]·여우조연상[9]·각본상·컬러촬영상·편집상·미술상·명예상·기술공로상 수상, 남우주연상[10]·여우조연상[11]·특수효과상·음악상·음향녹음상 노미네이트

대히트를 친 소설은 1939년에 영화화 되었다. 제작비는 600만 달러를 들였는데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난 제작비였다.[12]

  • 스칼렛 오하라 - 비비안 리
  • 레트 버틀러 - 클라크 게이블
  • 애슐리 윌크스 - 레슬리 하워드[13]
  • 멜라니 윌크스 -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 매미 - 해티 맥다니엘

촬영당시 여러 이야기도 넘쳐났는데, 처음 맡던 감독인 조지 쿠커(George Dewey Cukor,1899~1983)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과의 마찰로 인해 빅터 플레밍으로 교체되었다. 조지 쿠커는 무척 자상했기에 여배우들에게 상냥했던 반면[14] 빅터 플레밍(1889~1949)은 슈퍼 마초 감독으로 유명했기에 교체 소식을 들은 비비안 리는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그런데 플레밍도 셀즈닉과의 마찰로 촬영을 중단했는데 셀즈닉이 가소롭다는 듯이 '세상에 감독이 당신밖에 없나?' 라는 투로 다른 감독을 알아보자 백기를 들고 제발로 찾아와 사과를 하고 다시 감독을 맡게된다.

원작자가 처음 레트 버틀러 역에 꼽은 배우는 바실 래스본(Basil Rathbone,1892~1967)이었다. 그는 셜록 홈즈로 유명한 배우로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레트 버틀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배우였고 대중들은 압도적으로 클라크 게이블을 원했다.[15] 클라크 게이블은 대중들의 관심에 부담스러워 하며 역을 맡기를 꺼려 했으나 캐롤 롬버드와 결혼[16]하기 위해 첫 아내에게 지불해야 할 이혼 위자료에 쓸 5만 달러라는 당시에는 막대한 보너스 때문에 결국 수락하였다. 그러나 또 문제는 그의 전속계약을 맺은 MGM 영화사가 딴지를 거는 통에 셀즈닉은 수익금 절반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주기로 한 계약을 맺고나서야 비로소 그를 출연시킬 수 있었다.

참고로 마가렛 미첼은 레트 버틀러 역에 그루초 막스를 꼽기도 했으나 명백한 조크에 불과하다. 데이빗 O. 셀즈닉은 마가렛 미첼에게 영화 전반에 대한 조언을 구하였고 그녀는 타라의 외관에 대한 비평을 한번 하였으나 무시되자 더이상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한 비비안 리는 이 작품으로 막대한 인기를 얻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스칼렛과 일치하는 외모로 유명하지만, 연기로도 인정받는 실력파 배우다. 특히 51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말론 브란도와 함께 보여준 극한에 다다른 연기력은 최근까지 회자된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두번째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결핵과 조울증 등 건강문제도 많이 겪었으며, 영화보다는 연극쪽 활동이 더 많았다.

당시 46살이던 레슬리 하워드는 21살의 배역을 맡기에는 자신이 너무 나이들었다는 이유로 애슐리 윌크스 역을 맡기를 거절하였으나 인터멧조에 프로듀서로 크레딧을 올릴 것을 약속받은 후에 수락하였다. 그는 1943년 비행기를 타고 포르투갈로 가던 길에 나치군 공격으로 격추당해 같이 타고있던 다른 12명과 같이 죽었다. 그가 탄 비행기가 민간인이 탄 비행기였기에 이게 의문으로 남았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 드러난 사실은 나치군이 이 비행기를 격추한 것은 민간위장용 작전기로 오해했고, 거기다 윈스턴 처칠이 타고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 비행기가 공격받을 것을 알고도 미군 측이 여기에 끼어들면 미군의 작전에 해가 된다고 하여 일부러 놔둬서 죽게 된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드러나서, 다른 탑승객 유족들이 분노하여 미군 측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런데 그 비행기에 하워드가 탄 게 과연 오해였느냐? 이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있다. 하워드가 실은 미국이나 영국 간첩이라서 나치가 정확하게 노리고 제거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레슬리 하워드의 아들이던 배우 로널드 하워드(Ronald Howard,1918~1996)는 1984년에 쓴 회고록인 <아버지를 찾아서>에서 아버지가 영국을 위한 스파이였다면서 아버지를 전사자로 대우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화상에서 늘상 순하고 착한 멜라니를 연기한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1916.7.1 ~ )는 정작 현실에선 매우 당차고 밝은 성격이며 손해보는 걸 일절 용납하지 않고 영화사와 계약 문제로 오랫동안 소송을 벌여 승소하는가 하면 지는 걸 싫어하던 성격이라 사람들은 그녀야말로 성격이 스칼렛 오하라였다고 말했단다.[17] 워너브라더스 소속이었기 때문에 원래 멜라니 역을 맡을 수 없었으나 워너브라더스사의 사장 잭 L. 워너(1892~1978)의 아내에게 간청하여 역을 따낼 수 있었다.

하빌랜드는 2021-04-21 현재도 살아 있으며, 2014년 1월 인디아 윌크스 역의 알리시아 레트가 99세로 사망하고 메이벨 메리웨더[18] 역의 메리 앤더슨도 2014년 4월 6월에 96번째 생일을 지낸지 사흘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이젠 하빌랜드가 2021-04-21 현재 살아있는 출연자 중 최고령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빌랜드와 더불어 이 영화 출연자들은 고작해야 보 윌크스[19] 역을 맡은 아역배우였던 미키 쿤(Mickey Kuhn /1932년생으로 1957년 이후로 배우에서 은퇴)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참고로 다른 배우들의 사망일을 보면 캐린 오하라 역의 앤 러더퍼드는 2012년 6월 11일 94세로 사망했다.

그밖에 영화상에서는 아주 잠깐 나오던 스튜어트 탈레턴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조지 리브스(1914~1959)로 당시에는 이름없던 애송이 배우였다. 이후로도 배우로선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가 1950년대 초반 TV 드라마 슈퍼맨에서 슈퍼맨을 맡아 인기를 끌면서 비로소 알려지지만 그 반대로 슈퍼맨 이미지로 가려져 철저하게 묻혀진 끝에 자살하면서 바로 슈퍼맨의 저주 시발점이 되어버렸다.

영화도 어마어마한 흥행[20]을 거두었으며 26년이나 미국 및 세계 영화 극장 흥행 1위를 지켰었다. 이 기록은 1965년에서야 사운드 오브 뮤직이 깼다. 참고로 타이타닉은 13년만에 아바타에게 미국 및 세계 극장 흥행 기록이 깨졌던 걸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당시 대박을 거둬들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물가변동을 고려하면 여전히 전미 흥행 1위의 기록을 지키고 있다. 다만 80년전 영화인지라 집계의 어려움 때문인지 물가변동을 고려한 월드와이드 기록은 알 수 없다.

명작영화를 꼽을때 항상 순위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엄청 인기 있었고 극장에서도 수십년동안 상시 상영되었을 정도. 젊은시절의 할머니와 어머님들의 가슴을 불지르게 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개봉한 것은 1995년[21]으로, 1989년 MGM의 필름 보관소를 매입한 CNN의 사장 테드 터너가 리마스터링하여 50주년 기념으로 공개한 버전으로 이미 1992년 2월 KBS-1에서 새해특선으로 방영한 버젼이었다.[22]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3시간 50분.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과 비교해도 대단히 긴 러닝타임이다. 이 때문에 영화 자체를 1부와 2부로 나눠 중간에 휴식 시간을 둘 정도였다.[23]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지만 역시 영화에 원작의 방대함을 다 넣을 수는 없었던 듯 하다. 원작에 비해 조연이나 단역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잘리거나 비중이 많이 축소되고, 중간중간 이야기도 축소하거나 과감히 제외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원작에 비해 딸리지는 않는다. 원작을 알고 봐도 영화가 손색없게 보일 정도로 각색이 상당히 잘 되어 있다.

첫 아카데미 흑인여우조연상이 탄생한 영화이기도 했다. 배우는 주인공 스칼렛의 하녀역을 맡았던 해티 맥대니얼(1895~1952). 그때는 민권법이 지정되기 전이라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고 상을 탔음에도 흑인 출연진들은 시상식에 올 수가 없었다. 이때 클라크 게이블이 말도 안된다면서 그렇게 하면 자신도 시상식 안간다고 하는 바람에 해티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애틀란타에서 열린 첫 시사회에서도 이랬다. 이때도 클라크 게이블이 흑인 배우들도 당연히 이 영화를 빛낸 배우들인데 그들을 피부색 때문에 못 나오게 하면 나도 시사회고 나발이고 안 간다고 항의해서 흑인 출연진들이 참석할 수 있었다.[24] 당시 KKK가 반발하여 게이블에게 비난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라디오 방송에 나온 게이블은 "흑인이고 뭐고 간에 같은 영화에 배우로서 최선을 다했고 그녀가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음에도 나오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안된다고 생각한다."라며 조금도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클라크 게이블의 별명이 괜히 헐리우드의 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다.

결국 게이블 덕분에 시상식에 나온 그녀는 소감으로 "검둥이로서 내가 처음 나오게 되어 기쁩니다.그리고 그걸 도와준 게이블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먼 미래에는 (흑인들이) 더 많이 올라오게 되겠죠."라고 했다. 이후에 주연상까지 받은 흑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명언이자 예언인 듯. (그렇다고는 하지만 해티 맥대니얼 이후 우피 골드버그사랑과 영혼의 '오다 메' 역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흑인여우조연상을 받기까지 51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후로 배우로서 별다르게 활약하지 못하며 조연으로 간간히 나오다 사라졌다. 2006년 미국에서 그녀를 기리는 기념우표가 나오기도 했다.

보통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가 유명한 대사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서술되었듯이, 한국의 번역가의 창작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자신을 붙잡으면서 '그넘 난 이제 어떡하란 말이에요?'라는 스칼렛에게 작별을 고하는 레트의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솔직히 말하면, 내 사랑,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이다. 스칼렛과의 관계에 지친 래트만이 할 수 있는 이 시니컬한 대사는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이자,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사이다.

미쳤다는 소리 들어가면서 이걸 제작한 당시 37살 야심찬 젊은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1933년판 킹콩도 그가 제작했다)은 늘그막에 내가 뭐하자고 이걸 제작했는지라며 자주 중얼거릴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하여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로 만드는 영화들마다 반드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비교당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이런 말 하는 이들에게 마구 화도 내고 이후 도박과 폭음으로 인하여 1965년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다.

아카데미에서 이 영화와 대결한 영화는 프랭크 카프라(1897~1991)가 감독,제작한 "미스씨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인데, 아카데미 11개부문에 후보로 올라 대결하다가 모두 패배하고 오리지널 각본상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원작이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 상을 탈 수 없었기에 겨우 수상한 것이다[25]. 이때 프랭크 카프라 감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나온 해에는 당신의 최고 걸작을 만들지 말라."라는 명언을 남겼고, 이 명언은 1997년 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타이타닉에 밀려 수상을 거의 하지 못한 LA 컨피던셀의 감독인 커티스 핸슨이 다시 한번 인용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 비행기의 날개 위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으며 거기서 이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참고로 흡연구역이라고 한다.

2. 한국 영화

차태현, 오지호 주연 사극 코미디 영화로 2012년 8월 8일 개봉했으며 원래는 3~4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연기되었다. 참고로 영어제목은 The Grand Heist. 영어까지 1번과 똑같이 지었다간 국제적으로 욕먹었을지도 모르지 더불어 제작자 4명중 한 사람이 차태현 형인 차지현.

2.1. 줄거리

조선시대, [26] 권력을 둘러싼 음모에 맞서 서빙고(얼음 저장시설)[27]를 터는 도둑들의 이야기로 3년간의 강도 높은 기획과 준비를 거쳐 완성된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존 인물이었던 실학자 이덕무와 무사 백동수를 소재로 하여, 현실과 가상의 이야기가 섞인 영화로 만들었다.[28][29]

우의정 이성호[30]의 서자 이덕무(차태현 役)는 대단한 책벌레로, 지인 양씨와 함께 운영하는 책방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31]
양씨가 구해오는 서역에 관한 책이나 사진 등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는데, 작중에서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여러 번 활용하기도 한다.[32] 그러다 좌의정 조명수 대감이 자신과 측근들의 얼음사업에 방해되는 서빙고 담당직이었던 이성호와 백동수(오지호 役)를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며 이덕무에게 반역죄[33]를 덮어 씌우고 백동수를 귀양보낸다.[34] 이덕무와 양씨는 혹독한 고문을 받았는데, 고문 도중에 양씨가 숨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이성호는 조명수와 협상하여 아들을 풀려나게 하고 자신이 대신 귀양을 갔다. 이를 알게 된 이덕무는 각성하여, 책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면서 조명수 일당에 복수할 계획을 짰다. 그리고 귀양을 가 있던 백동수를 계획에 끌어들인다. 그의 계획은 조명수이 관리하는 서빙고의 얼음을 몽땅 빼내 조명수의 재산과 맞바꾸고, 얼음 사업의 비밀 장부를 찾아내 조명수를 완전히 몰아내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각종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2.2. 등장인물

이덕무(차태현 役) - 천재 라고 쓰고 허당이라고 읽는다 지략가
백동수(오지호 役) - 조선제일무 이 양반도 은근 허당이다.
양씨 (이문식 役) [35]
장수균(성동일 役) - 한양 최고의 객주 돈줄
백수련(민효린 役) - 백동수의 여동생으로 잠수 전문가
홍석창(고창석 役) - 땅굴파기 1인자 두더지[36]
김철주(길동 役) - 운송 전문가 [37]
석대현(정근 役) - 폭탄제조 전문가 1 [38] ,병신년 최신 발명품!
김재준(종호 役)[39] - 변장, 소매치기 전문가 정사 전문가[40]
설화(채영 役) - 정보수집 전문가. [41]
난이(김향기 役) - 유언비어 유포 전문가
정군(천보근 役) - 폭탄제조 전문가 2 [42]

2.3. 기타

개봉 직전에는 제목 때문에 1번 소설과 영화가 너무 유명해서 우려도 있었다. 유명작 제목을 따라한다는 지적[43]도 있었고 1번 작품의 팬들은 언짢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막상 1번 항목의 작품 팬들이 언짢아할 이유는 없지만

일단 시사회나 개봉 첫날 평은 꽤 괜찮다는 평. 개봉 첫날만에 전국 19만 2천 관객을 동원하며 도둑들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로 올라섰으며 이후 도둑들과 1,2위 쟁탈전을 보이며 흥행이 좋다. 이웃사람이 개봉하면서 밀리긴 했어도 여전히 도둑들과 같이 2,3위 경쟁을 벌였었다. 최종관객은 전국 491만을 동원하며 역대 사극 영화 흥행 7위를 기록했다.[44]

잎서 나온대로 이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 AD406의 대표가 차태현의 형 차지현. 인터뷰에 따르면 어느 날 차지현 대표가 동생 차태현의 친구들 모임(용띠클럽)에 따라 갔다가 '밝은 느낌이 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생각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일찍부터 차태현을 주연급으로 캐스팅할 생각이었지만,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아 차태현에게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번 했어도 정작 출연 제의는 좀 시간이 지난 뒤에 했다고 한다.

이덕무의 계획 도중에 갑툭튀한 의문의 소년 '정군'의 진짜 정체가 떡밥이 되기도 했다. 정군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 등장한다.

관객 대다수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정군'의 정체는 바로 실학자 정약용이다. 성인이 된 정약용이 장원급제 후 정조 앞에 배알하며 본명을 밝히는데, 이 때 성인 정약용 역을 맡은 배우는 바로 송중기. 근데 눈썹이 없음...[45] 그리고 아역 때랑 다친 모양이 달라졌다

참고로 주인공들의 행위는 조선시대임을 감안하면 중범죄다.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당시 국가에서 관리하던 귀한 얼음을 모두 털었다는것 부터 이미 가중처벌 될 행위이다. 아니 대역죄급으로 참수는 피하지 못할 팔자. 물론 악역들이 할려던 짓도 만만치 않았지만 말이다.

또 고증 오류도 만만치 않은데, 만리를 판다는 말이 그것.효종의 북벌 이 성공했나보다. 러시아까지 조선의 땅이였다[46]

여담으로 이 제목은 어떤 어린이 채널에서 방영했던 팽이밖에 모르는 애니에서 모 캐릭터의 한국판 필살기 명칭이기도 하다(...).

2013년 2월 10일 설날특선으로 KBS-2에서 밤 11시에 방영했다. 종영한지 6달도 안 돼서(...) 참고로 SBS에선 같은 시각에 건축학 개론을 방영했다.

정말 여담이지만 엔딩곡이 오션스의 메인테마곡이 연상시킨다. 각각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매우 높은 수준의 보안을 뚫고 절도를 행한다는 장면과 함께 오션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

일본에서도 2013년 7월 20일 개봉했으며, 타이틀은 동일하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風と共に去り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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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최초의 여성 퓰리처상 수상자라고 잘못 알고있는 경우도 있지만 퓰리쳐상을 맨 처음 수상한 여성 작가는 1920년에 수상한 미국 작가 이디스 워튼(1862~1937)이다.
  • [2] 대표적으로 스칼렛 집안의 우두머리 노예가 전쟁이 끝나고 해방되자 북부로 떠났다가 제발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 등등...
  • [3] 마지막 문장이 스칼렛과 레트의 딸인지 후손인지가 쓴 회고이다. 드라마판은 좀 직접적으로 재결합을 암시했다.
  • [4] 책에는 장왕록, 장영희 공저로 표기되어 있다. 책 번역 이후 부친 장왕록이 수영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 장영희가 역자 후기에서 짤막하게 심정을 토로한 대목이 있다.
  • [5] 스칼렛이 레트를 되찾으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는데 영 쌩뚱맞고, 아예 상관없는 다른 농장 농장주의 딸인 마가렛이라는 아가씨가 등장, 벌칸이라는 흑인 노예와 잠자리를 치르고 어화둥둥하는 것이 주된 라인이다. 이 농장은 남북전쟁이 다 끝난 뒤에도 백인 주인이 노예들을 마구 학대하며 지내다가 노예들의 반란으로 폭망한다. 다만 남북전쟁 끝나고도 미국 시골이나 각지에서 여전히 흑인 노예를 부리며 여러 갈등이 수십여년에 걸쳐 벌어졌기에 이게 엉터리만은 아니긴 하다.
  • [6] 이쪽의 최 결정판은 "렉터스키" 박사가 클라리스 강간 생물(....)을 만들어서 펼치는 이야기인 속 양들의 침묵이다.
  • [7] 이 공연때 어떤 정신이상자가 나체로 무대에 뛰어든 적이 있었다고 한다
  • [8] 비비안 리
  • [9] 해티 맥다니엘. 아카데미 사상 최초의 흑인 수상자
  • [10] 클라크 게이블
  • [11]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 [12] 2차 세계대전도 발발하기 전에 러닝타임 3시간 50분짜리 영화를 풀컬러로 제작했다. 참고로 2년 뒤 만든 디즈니의 환타지아가 230만 달러 제작비로 만들었다가 망하고 제작비 회수하느냐 20년이나 걸렸던 걸 생각하면 제작비가 얼마나 엄청난지 알 수 있다. 1537%에 달하는 해당 기간의 미국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1939년의 600만 달러는 2012년의 9천8백만 달러와 맞먹는 구매력을 갖는다. 참고로 같은 해에 건조가 시작된 사우스 다코타급 전함의 건조비가 약 400만 달러였는데 당시 미해군 1회계년도 예산의 거의 절반이었다. 그런데 2009년에 나온 아바타는 제작비 2억 4천만~ 3억 달러였는데 다만 영문 위키에서는 600만 달러는 과장이고 실제로는 380만 달러 정도라고 표기하고 있다. 물론 이 정도로 엄청난 제작비이긴 하다.
  • [13] 장국영의 영어식 이름인 '레슬리'는 이 배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 [14] 반명 클라크 게이블은 큐커가 여배우들에게는 친절할지 몰라도 남자 배우들은 개처럼 취급했다고 회고했다.
  • [15] 그런데 영화관련 책자나 이선영(1번성우)의 영화음악실같은 라디오 방송에선 원작자가 소설을 쓰면서 클라크 게이블을 레트로 상상하며 썼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이걸로 아는 경우도 많았다.
  • [16] 코미디 여배우로 알려진 배우였는데 웃기려고 하다보니 사생활도 워낙 골때렸다고 한다. 심지어 클라크 게이블과 사귈 당시 잠자리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말하기도 하고 뭔 선물을 받았네 라면서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결혼하면서 이런 버릇을 많이 없앴고 착실하게 사랑하며 지냈으나, 1942년 결혼한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롬버드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를 잃고 게이블은 마흔 살이 넘는 나이로 공군에 입대하여 3년동안 복무했는데, 이 당시 허락을 맡고 비행기를 몰고 롬버드가 죽은 산에 착륙하여 꼼꼼하게 수색하여 그녀의 유품 하나를 찾아냈고 이걸 죽을때까지 간직했다고 한다.
  • [17] 동생 조안 폰테인(1917~2013년 12월 15일 사망)과 의절한 걸로 유명한데 특히 조안 폰테인이 1941년 자신을 제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몇년 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할 때 조안 폰테인이 인사를 건넸으나 매정하게 무시해버렸다고 한다.
  • [18] 피티퍼트 해밀턴의 친구 메리웨더 부인의 딸이다. 모녀가 다 소설에서는 출연도 꽤 많고 상당한 비중이 있는 조연이지만 영화에서는 그저 지나가는 단역 정도의 비중이다.
  • [19] 애쉴리 윌크스와 멜라니 해밀턴 사이의 외아들이다.
  • [20] 전세계에서 1억 9000만 달러 이상. 지금 물가가치론 31억 달러가 넘으며 전세계에서 27억 달러를 번 아바타를 넘어서는 엄청난 수치이다. 더불어 이후로도 재개봉으로 전세계에서 2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추가로 벌어들였다.
  • [21] 2011년 2월에 CGV에서 '백투더무비' 이벤트 형식으로 4개관에서 각 1회씩 상영한 적이 있다. 자막은 엉망에, 휴식시간 없음이었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런 악조건에서도 이영화 보려고 사람들이 하두 예매를 해서 관을 크게 옮겨서 틀어주기도 했다. 오오.
  • [22] 장면 삭제나 수정은 없다. 오래된 필름에서 새 필름으로 옮기고 바랜 색감을 다시 살리고 손상된 부분을 복원한 버전이다. 더불어 50주년 기념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당시까지 살아있던 배우들(흑인 하녀를 연기한 버터플라이 맥퀸(1911~1995)과 스칼렛 누이동생를 연기한 에블리 키예스(1916~2008)와 앤 루더포드(1917~2012.6.11) 인터뷰도 수록했는데 당시 하빌랜드는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도 영화 방영 하루 전날밤에 KBS-1로 방영된 바 있다. DVD에는 다큐멘터리 뿐 아니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인터뷰까지 실려 있다.
  • [23] 1,2부가 나눠지는 부분은 스칼렛이 타라로 돌아온 후 밭에 있는 무를 캐 먹다가 절대로 굶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부분이 끝나고 나서이다.
  • [24] 해티 맥다니엘을 유모 역으로 추천한 사람은 클라크 게이블이었다. 둘은 이전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 [25] 사실 루이스 포스터(1898~1974)가 쓴 원작 소설이 있긴 했는데, 이게 영화 개봉당시에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상태로 작가가 직접 영화로 각색한거라 오리지널 각본으로 해석, 후보에 오른 것이다.
  • [26] 정확히는 영조시대, 작중에서도 악역인 조명수가 후반에 금괴를 털고 사도세자 드립을 친다. 마지막에 즉위하는 왕이 정조인 걸 감안한다면...
  • [27] 한여름에 서빙고에서 보관한 얼음으로 차거운 음료를 먹을 수 있는 건 왕이나 일부 왕족이나 가능한 특권이었으며 극소수 대신에게 한여름에 얼음을 주는 건 크나큰 영광이었다. 즉 서빙고를 터는 행위는 왕권을 무시하는 행위로 대역죄급으로 목숨을 걸 짓이었다.당연히 잡히면 3대가 싸그리 멸족당할 정도로 엄벌을 받을 짓이다. 서빙고와 비슷한 경우가 오스만 제국에도 있었는데, 얼음저장시설에 둔 얼음으로 셔벳이나 얼음차를 술탄이 한여름에 신하에게 하사하거나 공을 세운 이들에게 얼음이 담긴 차를 주면서 이를 치하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 [28] 실제 이덕무와 백동수가 처남-매부 관계임에 착안해서, 영화에서도 이덕무가 백동수의 여동생과 만나서 결혼하는 얘기가 나온다.
  • [29] 다만 백동수 여동생의 영화 속 이름과 실제 이름은 다르다. 또 실제로 이덕무의 아내는 백동수의 2살 위 누나다.
  • [30] 실제 실학자 이덕무의 아버지 성함이 이성호이다. 물론 우의정은 아니었고, 정오품 통덕랑까지만 올랐다.
  • [31] 영화 상 내용으로는 양씨가 책을 구하기 위해 오랜 기간동안 여행을 가는 까닭에 책방에서 사는 것 같다.
  • [32] 곤장을 맞았을 때 이를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 바른 적이 있었다. 책 제목은 '고문의 기술'. 이를 바르고 난 뒤 이덕무는 기절했다.
  • [33] 세손을 음해하는 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 책은 조대감의 측근이 갖다 놓은 것으로 추정.
  • [34] 어떤 무리들이 노포대장군전으로 백동수와 일하던 인부들이 있던 얼음를 무너뜨려 인부들을 빠져 죽게 하였고, 백동수가 이를 뒤집어 씌우고 귀양을 갔다.
  • [35] 이덕무와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사이다. 서역의 책과 여인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작중에 의하면 이집트까지 갔다온 듯. 그것도 반 년 만에.
  • [36] 얼음을 옮길 땅굴을 팔 때 삽이 부러지자, 두더지처럼 손으로 다 파내었다.
  • [37] 매우 거친 인상과 다르게 목소리는 가늘다.
  • [38] 귀가 잘 안 들리는 단점이 있다. 야한 얘기를 들을 때도 크게 말해야 들린다고.(...)
  • [39] 응답하라 1997에서 윤태웅으로 나온 배우다.
  • [40]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도 몰라보게 변신할 수 있다.엌 너 누구야? 재준입니다 열녀와도 검열삭제를 했다고(...)
  • [41] 여자라고 무시하는 이들의 약점을 훤히 파악하여 모두 데꿀멍시켰다. 수원성의 한 열녀가 나라에서 받은 금비녀를 잃어버렸다는데, 누가 그랬을까?
  • [42] 전문가로 초빙된 게 아니라 이들의 작업장을 몰래 보다가 들켜서 합류. 내게 손을 대면 호각을 불겠소! 이거 말이냐? 살려주시오 후에 석대현과 함께 폭열탄과 폭음탄을 만들었다.
  • [43] 네멋대로 해라, 품행 제로, 게임의 법칙, 무방비도시 같은 영화들이 유명 예술영화로 추앙받는데 한국영화들이 이 제목으로 개봉한 탓에 게임의 법칙(1939년 프랑스 영화로 화가 르느와르의 아들인 장 르느와르가 감독했다)은 게임의 규칙이란 제목으로 뒤늦게 비디오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한국영화 무방비도시 같이 쫄딱 망한 경우도 있지만.
  • [44] 1위는 1761만 관객을 넘긴 명량,2위는 광해, 왕이 된 남자로 1232만 관객.3위는 1230만 관객이 본 왕의 남자,4위는 913만 관객을 동원한 관상,5위는 747만 관객이 본 최종병기 활, 6위는 500만 관객을 넘긴 해적:바다로 간 산적이다.
  • [45] 실제로 정약용은 어렸을 때 앓았던 천연두 자국이 남아 영화에서 나온 모습처럼 오른쪽 눈썹이 세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한다. 정약용이 사용했던 여러가지 호 중 삼미(三眉)는 여기서 유래된 것. 스스로는 좀 창피할 수도 있었을텐데 자신이 10살때 쓴 최초의 문집 이름을 삼미집이라 했던것을 보면 선생의 성격은 꽤나 무던했던 모양이다.
  • [46] 이전에는 조선 중후기에 불꽃놀이가 있는 것이 고증오류라는 글이 있었지만, 불꽃놀이는 15세기에 이미 조선에 들어와 국가 행사로 자주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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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0 12: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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