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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뤼흐 스피노자

last modified: 2015-06-03 04:10:44 by Contributors

(ɔ) Unknown from


1632년 11월 24일1677년 2월 21일

Baruch Spinoza(네덜란드어)
Benedictus de Spinoza(라틴어)

네덜란드유대인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같이 륙합리론을 대표하는 트로이카 중 한 명이다.

본래 랍비가 되려 했으나 유대교 교리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23세에 쫓겨나고 안경 렌즈갈이로서 일생을 보냈다. [1][2] 그렇다고 유대교인이 된 것도 아니니 종교적으로는 완전히 고립된 삶을 보낸 셈. 그나마 그의 재능을 알아본 친구들이 지원을 해주어서 그렇게 어렵게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말년엔 교수직을 제의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히브리어의 교본을 쓰고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조금을 할 줄 알았으며 라틴어로 저술을 한 먼치킨(당연히 모국어는 네덜란드어).네덜란드인 답게 사상도 매우 특이하다.

그의 세계관을 간략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이라는 범신론(汎神論)을 바탕으로 한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하나의 실체이고, 바로 이러한 실체가 곧 신이라는 것이다. 물질은 물론 정신도. 르네 데카르트가 물질과 정신을 전혀 다른 것으로 설정한 것과 달리 그는 이는 단지 신의 다른 속성일 뿐이라고 했다.[3] 나아가 신의 속성은 물질과 정신에만 국한되지 않고 무한히 있으나, 우리의 지능이 제한되어 있어 이 두 속성밖에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사상을 간단히 요약한 문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 즉 자연'

그 밖에도 윤리학면에서 독특한 주장을 펼쳤는데, 윤리를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였고 진정으로 한 것도 한것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의 성질과 감정을 마치 하늘이 비를 뿌리고 해를 비추듯 선함과 악함으로 나눌 게 아닌 인간 자체의 본성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삶의 지침과도 같은 행복하게 사는 법을 제시했다. 자신의 정념 혹은 의지는 분명 외부의 어떤 영향에 의한 것이며 그 원인을 이성적으로 관조하여 심적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 정신분석학과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여튼 사상이 기독교적 세계관에선 이단에 가까운 것이라 동시대인들에게 많이 까였고 그의 사후 출판된 저서들을 분서하고자 하는 자들도 많았다. 이렇듯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까닭에 까가 굉장히 많았는데, 고대 철학자들 중에서 당대에 까가 가장 많았던 사람이 소크라테스라면, 스피노자는 근대철학자들 중에서 까가 가장 많은 철학자이다. 물론 까 못지않게 빠도 많았지만

같은 네덜란드인인 렘브란트와 같은 동네에 비슷한 시기에 살았는데 한번도 서로 만난 기록이 없다고 한다.

'노자를 숭배해서 스피노자'라는 개드립이 있다. 그런데 정말 노자의 사상에서 취한 바가 많다고 본인이 밝혔다. 농담이 농담이 아니야... 실제로 스피노자가 살던 당시에는 동양 문물이 수입되던 시기였고, 스피노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도덕경을 읽어봤다고 하니...[4] 그런데 그의 인식론은 노자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윤리관은 노자보다는 장자에 가깝다는 것이 특이하다.

발리스는 그를 '신에 취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자연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그를 '선구자'라고 불렀다. 니체는 신이 없다는 입장에서, 스피노자는 범신론적 입장에서 상반된 견해를 가졌지만, 니체는 둘의 철학이 비슷함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엥겔스는 '변증법의 뛰어난 대변자'라고 여겼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로 유명하지만, 정작 본인이 저런 말을 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사실 탈레스의 말이고,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그의 전기작가가 한 말이지만, 어쨌든 해당 인물을 대표하는 너무도 유명한 명언으로 각인된 덕분에, 사실이야 어쨌든 그냥 그 사람이 한 말로 치고 넘어가듯이, 스피노자의 저 명언도 그냥 스피노자가 한 말로 치고 넘어가는 분위기. [5] 덧붙여 저 말은 보통 '그래도 난 굴하지 않아!'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저 말의 철학적인 진짜 의미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내일 지구는 반드시 멸망하니 의미가 없다. 그러니 필연을 받아들이고 오늘은 오늘 할 일을 하면 된다." 나의 정해진 운명을 미리 알게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 비록 스피노자가 발언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모든 것은 필연이라는 그의 철학관을 잘 나타내 주는 명언이다.

주저로는 티카(Ethica)가 있는데 국내에도 번역본이 여럿 있으니 시간나는 분은 한 번 읽어봐도 좋겠다. 시간이 많이 나셔야 됩니다... 스피노자에 대해 좀 쉽게 접해보고자 한다면 다른 저서인 '신학정치론'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에티카에 비하면 아주아주 무난한 편이다.

여담인데 17세기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책자《세명의 사기꾼》(예수, 모세, 무함마드를 사기꾼이자 위조한 가짜로 비난하는 책자로 누가 썼는지 지금도 모른다. 중세 유럽이나 아랍이라면 지은이는 살아남지 못했을 책이니까)의 지은이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자는 이슬람교인 및 기독교인, 유태인 등 여러 사람이 쓰고 수정하고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자는 한국에도 번역되어 나왔는데 이런 책자를 17세기에 썼다는 게 대단하다.[6] 참고로 한국판 책자에선 지은이를 스피노자의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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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렌즈를 가공해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는 '전설'이 스피노자를 따라다니지만, 현미경이나 망원경에 쓰이는 렌즈 가공을 익힌 것은 광학(光學)에 대한 과학적 관심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스피노자의 생계는 친구와 지지자들이 연금 형식으로 보낸 돈으로 유지되었는데 풍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난에 시달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스피노자가 렌즈를 가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에 렌즈 가공이 돈벌이가 되는 일이었고, 남는 시간에 학문 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2] 하지만 렌즈를 가공하면서 생기는 유리가루를 많이 마셨고 그것이 폐에 쌓이면서 마흔줄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 [3]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해 모순을 낳았다. 스피노자의 생각은 데카르트의 이론을 개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4] 비슷한 예로 라이프니츠가 있다. 라이프니츠는 주역책의 가치에 매우 감탄했고, 이를 모티브삼아 단자론의 내용을 만들기도 했다.
  • [5] 단, 이는 한국 한정이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마르틴 루터가 한 말로 알고 있다. 물론 마르틴 루터가 처음 한 말도 아니라는 것이 함정.
  • [6] 갈릴레이가 종교재판 받은게 17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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