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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

last modified: 2015-03-08 12:08:23 by Contributors

실제로 보고 그린 그림은 아니다.[1] 이 때 끌고 가는 대포는 틸르리 궁전 앞에 장식되어 있던 대포인데, 포탄도 없이 일단 끌고 가는 것이다.

Contents

1. 개요
1.1.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 대한 이견

1. 개요

프랑스어: prise de la Bastille

1789년 7월 14일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 사건.

당시 파리 근교에는 루이 16세의 명령으로 국경지대에서 진주한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파리 시민들 사이에는 군대가 파리로 진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져나갔다. 이런 가운데 7월 11일, 루이 16세는 재정총감 네케르를 파면했고 이 소식에 파리는 혼란에 빠졌고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고 각 거리마다 바리케이드를 쳤다.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다. 바스티유 감옥은 파리의 요새로 무기와 탄약을 저장하고 있었고 정치범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1만여명의 시민들은 바스티유로 쳐들어갔고 바스티유 수비군은 15문의 대포를 발포하여 시민 약 100여명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끈질긴 공격으로 결국 바스티유는 함락되고 정치범들이 석방되었다.

이후 혁명정부는 압제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철거했고 오늘날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자리에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프랑스는 매년 7월 14일을 프랑스 혁명 기념일로 지정하고,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기념하여 폭죽을 쏘는 성대한 축제를 연다.
참고로 1994년의 기념 행사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희대의 용자짓을 벌였다. 바로 독일군 부대를 초청해 파리에서 행진을 하게 한 것. 이는 1944년 파리 해방 이후 50년 만에 독일군이 파리에서 행하는 행진이었다. 이 당시에도 이미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었지만 역시 프랑스 국내에선 엄청난 논란이 일었으나[2] 미테랑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행사를 강행했다. 프랑스 최고의 국가 기념일에 행한 독일군의 행진은, 독일과 프랑스가 역사의 앙금을 완전히 털어내고 협력 관계로 접어들었음을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로 남았다.

1.1.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 대한 이견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에 대한 이의제기의 핵심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은 없었다는 것이다.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에 저장된 무기와 탄약을 탈취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으로 쳐들어 간 것은 맞지만, 바스티유 감옥의 군대가 시민들에게 발포하고 저항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바스티유 감옥에 정치범들이 수용되어 있었고 파리 시민들이 이들을 구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으로 쳐들어갔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바스티유는 원래 요새였지만 이후 귀족 등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감옥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파리 북부에 새로 요새가 건설되면서 요새로서의 기능은 거의 사라진 뒤였다. 다만 파리 시민들에게는 요새였다는 이야기와 정치범들이 잡힌다는 이야기만 남아있었을 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처럼 바스티유가 수많은 정치범들을 가두고 있지도 않았으며 바스티유 감옥 안의 죄수들은 사복도 입고 하인을 부리고 애완동물을 기르는 등 복지 수준도 심각하게(?) 높았다고 한다.[3][4] 참고로 습격 당시 수용된 죄수 중엔 자기가 자원해서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이런 과도하게 좋은 시설 때문에 프랑스 정부에서는 재정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던 시기에는 그냥 폐기하자는 논의도 있었는데, 워낙 수감된 이들이 범털이라...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를 습격할 당시 바스티유에는 정치범들은 없었고 그저 7명의 죄수가 있었는데 이중 4명은 사기범이었고 2명은 정신질환자, 1명은 근친상간범이었다고 한다. 이 잡범 구성에는 언급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대동소이하다는 것이... 결국 일부는 소란을 틈타서 사라졌고, 일부는 이후 혁명정부에서 다시 다른 감옥으로 보냈다고.


더 중대한 문제는 바스티유 수비대는 저항할 능력이 있긴 했지만 하루분의 식량 밖에 없었던 탓에 오래 버티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바스티유 수비대장인 드 로네이 사령관은 시민대표와 협상한 끝에 무기와 탄약을 내주고 수비대가 안전하게 철수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합의는 지켜지지 못했고 드 로네이 사령관과 세명의 병사들은 파리시청에서 처형당했고, 시민들은 이들의 목을 창에 꽂아 파리 시내를 행진했다.

이런 점이 밝혀지거나 논란이 된 것은 혁명 과정에서 연금 대상자 선정 등과 관련해서 증거를 찾다보니 하나 둘 씩 튀어나왔다고. 문제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자체가 신화가 되고, 그 날이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 된 판에 신화를 붕괴 시킬 수가 없어서 그대로 가는 상황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 독립전쟁보스턴 티 파티와 유사한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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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바스티유 습격을 다룬 그림 중 실제로 보고 그린 그림은 없다.
  • [2] 이 당시 에피소드 하나. 미테랑의 전임 대통령인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행사를 반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그는 TV 등에 출연해 미테랑과 독일 측을 맹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런데 데스탱 본인도 나중에 치명적인 꼬투리를 잡혔다. 데스탱이 집권한 시절에도 독일군을 초청한 전례가 있었다. 데스탱 정권 때인 1978년 독일군 군악대가 프랑스에 들어와 퍼레이드를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데스탱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 [3] 대표적인 예로 사디즘으로 유명한 사드 후작도 여기 수감돼있었는데(감옥 습격 바로 전날에 다른 감옥으로 이송됨.), 그당시 그의 감방에는 엄청난 숫자의 장서와 자위도구(자기가 만든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반입한 것들) 및 각종 가구들이 있었다. 거기다 거기서 유명한 소돔의 120일 이라는 작품까지 썼으니... 이건 뭐 감옥도 아니다.
  • [4] 일설에 따르면 7월 2일, 사드 후작이 들끓기 시작한 감옥 밖의 군중을 향해 "시민 여러분, 간수들이 우리 죄수들을 죽이고 있습니다!"라고 감옥 습격을 선동하는 고함을 질렀고, 그 탓에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같은 시기를 다룬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도 이 대사가 실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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